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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학벌없는 경성제대(京城帝大)후신 서울대와 일본 관립전문학교 후신들도 역시 Monkey대학임. 전국 각지의 일본잔재 공립 중.고등학교들도 역시 Monkey학교임.

 

 

[1]. 브라만교에 반기를 든 부처가 창조주보다 높아서 필자는 일본 신도.경성제대후신 서울대.불교에 대해서 창조주를 모르는 無神論的 Monkey라고 의견을 제시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 먼저 일본 불교의 특이한 점을 알아보겠습니다. 고교생이 알아야 할 한국사 스페셜[2009.2.5, (주)신원문화사]은 일본 불교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대처승(결혼하여 아내가 있는 승려)도 일본 불교의 특징입니다. 한국 불교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불교 안에서 일제 시대에 새롭게 창시된 종교가 원불교입니다.

 

다시 필자의 글로 돌아갑니다. 

 

한국 불교는 조계종의 승려가 천민승려의 신분으로 산속 절에서 독신으로 살아가야 극소수로 인정해줬기 때문에(그런데, 왕족이나 사대부 가문중 극소수로 출가하는 경우도 있고 부녀자가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승려가 되는경우도 있어 관습적으로 그 개인들에 대해서는 천민 아닌 출가이전 신분을 적용하는게 옳음) 일본 강점기에 들어온 모든 일본 불교나 이에서 파생된 신생종교는 한국에 종교주권이 없습니다. 시중에 불교마크 달고 포교하며 결혼하고, 유교 주역의 사주.점보고 활동하는 모든 일본 민중불교는 한국에 종교주권도 없고 거기에 불교신자라고 등록시켜도 종교주권은 없으며 한국은 국가기관에 의무적으로 등록하는 조선식 한문성명을 가진 유교도 나라일뿐입니다. 일본이 후발로 만든 神道(유교는 아니고 불교도 아닌데, 後發局地的으로 유교와 불교를 혼합하여 일본이 만들어낸 일본만의 신앙)를 기반으로 설립한 모든 학교도 마찬가지로 한국 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일본 총독부가 강제로 포교하여 일본 신도, 불교(일본 불교임. 산속 조계종 천민승려가 아니라 시중에 나오거나 결혼하는 모든 계파의 불교는 일본적인것), 기독교(주로 개신교. 가톨릭 극소수 성당)를 포교하여 일본 항복후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의 주권은 한국에 없습니다. 헌법상 종교의 자유는 있지만 일본 강점기 포교종교들은 행정법상 조선성명 복구령에 의해 국가기관에 조선식 한문성명을 등록하며 살아가는 유교도입니다. 

 

다만 을사조약 이전에 구한말 합법적으로 설립된 개신교 학교들은 일본 강점기 강제 포교종교가 아니지만, 조선성명 복구령에 의해 국가기관에 조선식 한문성씨를 등록해야 하기때문에 행정법상 유교도면서 외래종교인 개신교를 학교등에서 같이 믿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방후에 합법적으로 설립된 가톨릭계파도 유교도면서 성당.학교에서 가톨릭등을 같이 믿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행정법상 모든 한국인은 유교도입니다.  

 

한국은 전국민이 조선성명 복구령에 의해 조선식 한문성명으로 살아가고 설날.입춘.대보름.한식.단오.추석.동지등의 유교 전통名節을 쇠고 유교의 三綱五倫이나 仁義禮智信등을 학교에서 배우며, 유교의 冠婚喪祭를 치르는 유교국입니다.         

 

@ 다음은 부처가 창조주보다 높은 위치를 가진 불교의 특성 설명 자료입니다. 유교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은데, 불교는 브라만교에 반기를 든 부처가 창조주보다 높아서 필자는 일본 신도나, 일본 강점기 잔재학교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 일본 잔재학교, 불교에 대해서 창조주를 모르는 무신론적 Monkey라고 의견을 제시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 다 음 -

 

 

1). 그 때 하늘의 범천(梵天)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겠다는 생각을 알고,

<아! 이 세상은 이제 멸망하겠구나.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智)--- --대정각(大正覺)을 여신 부처님의 마음은, 중생에게 가르치심을 설하는 일에 뜻이 없구나!> 라고 생각하고, 얼른 부처님 앞에 나타나서 무릎을 땅에 대고 꿇어 앉아 지극정성으로 부처님께 합장하고 간청하였습니다.
 --높으신 세존이시여 ! 원하오니 가르치심을 설하시옵소서. 선서(善逝)이시여, 가르치심을 설하시옵소서. 이 세간에는 티끌에 더렵혀진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이 가르침을 듣지 못한다면 쇠퇴하고 멸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간에는 가르치심을 이해하는 많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갈타국에는 부정한 자에 의하여 펴진 부정한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이제 부처님께서는 아무쪼록 그 감로(甘露)의 가르치심을 열어 주시옵소서--라고 앙청하였습니다.

 

. 출처: http://www.beophwa.com/bonmun/bonmun-002-(1).htm

 

2). 하늘의 제석, 도리천왕이 부처님께 귀의하고 나귀 몸을 벗다...

 

. 출처

http://www.mahazen.org/technote6/cokd4.php/data/board/freeboard/file/1/b324334e_%E9%97%82%E5%82%99%E8%83%B6%E9%8D%98%D1%87%E6%82%BA%E9%8A%8A%E3%83%83%E5%93%84%EE%9D%9C%E9%88%A7%EE%84%84%E5%B9%83%E5%A7%97%E2%82%AC%E5%AE%95%E5%A0%95%E5%A6%B8%E9%94%9D%E5%8B%AD%E6%B3%8A%E7%BC%82%E4%BD%BA%E5%81%93%E9%8D%8E%E6%8A%BD%EE%94%96%E9%8D%9B%EE%86%BE%E7%8F%B6%E9%96%B8%E6%84%B5%E4%BA%9E%E5%A6%AB%EE%88%9E%E6%9F%A1%E6%BE%B6%E5%BA%A1%E5%8A%B5%E9%90%8E%E6%B0%AD%E5%A3%86%E7%BB%B1%E6%92%B3%EE%85%BC%E9%8D%9B%EE%88%98%E2%82%AC%E5%B2%B2M.doc?board=cokd4&page=1&sort=comment&shwhere=subject&command=body&no=152

 

3). 제석천이 부처 공양

 

① 제석천이 부처님께 공양한 인연 < 신심이 솔솔 갈웅 스님의 불교설화 < 특집기사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금강신문 (ggbn.co.kr)

 

86. 부처님의 머리카락에 경배하는 제석천 < 유근자의 이야기가 있는 불교미술관 < 이전 연재모음 < 지난연재 < 기사본문 - 불교언론 법보신문 (beopbo.com)

 

 

4). ...'삼계(三界) 가운데 인간의 고액(苦厄)을 구제하는 이는 오직 부처님만이 계실 뿐이다.'
  제석천은 부처님께서 계신 처소로 갔다. 그 때 부처님께서도 좌선을 하면서 보제(普濟)삼매에 들어 있었다. 제석천은 예를 드리고는 땅에 부복해서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법·성중(聖衆)의 세 가지에 귀의하였는데,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그의 목숨이 홀연히 떠나면서 문득 도예공의 집에 이르러 당나귀 어미의 뱃속에 들어가 새끼가 되었다.... 

 

http://www.dochang.pe.kr/ymain/board.php?board=etc31&command=body&no=51

 

@ 한편, 교황성하의 방한은 환영하며,한국헌법은 종교의 자유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일단, 방한하기로 하셨으니까 한국인들은 교황님의 안전보장에 최선을 다해 협조 바랍니다.    

윤지충과 동료 123위 시복 결정…교황 8월 방한할듯(종합3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6742432

 

기사를 보니까, "한국 교회 차원의 시복 조사를 진행해 2009년 모두 125위에 대한 시복 청원서를 교황청에 제출했다"고 나오는군요.

 

# 필자의견

윤지충의 시복식을 해도, 유교적 기준으로  국제법과 관습법상 그는 유교 교리를 거부한 금수(조상도 몰라보는 금수)입니다. 

이 전통은 변하지 않습니다. 윤지충(尹持忠)은  두산백과에 의하면 "어머니가 죽은 뒤 가톨릭 의식에 따라 위패를 폐하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하여 사형된 한국 최초의 가톨릭 순교자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선교가 오래된 가톨릭 예수회는 조상제사를 포용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종교마찰을 피하기 위해 서로다른 문명.종교가 충돌할때는 이런 현지적응적 방법이 더욱 현실적이고, 역사를 이해하는 현명한 선택이라 판단합니다.  유교와 기독교는 하느님(유교의 하늘天, 가톨릭의 天主)이 인간을 창조하신 점에서 같고, 天子(천자는 유교개념, 기독교는 하느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개념의 유사성이 비슷합니다. 조상제사 문제는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낳고...낳고 문장에서 알수 있듯, 유교와 기독교가 통할수 있는 문구에 해당됩니다. 조상도 몰라보는 (상징적) 금수라고 유교적 의견을 제출하기는 하지만,유교와 가톨릭이 有神論에 기반해 하느님을 모시는 동서양의 대표적인 종교임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로마 가톨릭이 유교의 조상제사를 적극적으로 배척하지 않는한 유교와 가톨릭은 동서양의 대표종교가 맞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낳으신 인간!

세계사에 기반해 앞으로도 가톨릭을 매도하지는 않을것이며, 동서양 대표종교인 유교와 가톨릭이 서로를 이해하는 공감대를 넓혀가기를 바랄뿐입니다. 조상제사 거부시, 필자가 금수라고 적용하는 대상은 전통적인 유교권 국가의 국민들(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신생 국가들(대만,싱가포르) 사람을 일컫는 것입니다. 조상제사 관련, 유교 경전 禮記 王制篇에서는 천자(天子. 7묘)부터 제후(諸侯. 5묘),대부(大夫. 3묘),사(士. 1묘), 서인(庶人. 묘가 없고 단지 寢에서 제사)까지 모두 그 신분에 따라 조상제사방법을 달리한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유교권 국가에서 신분차등에 의한 조상제사는 하나의 관습법입니다. 여기에서의 묘(廟)는 사당을 의미하는 묘(廟)로 가제(家祭)를 의미하며 무덤에서 제사하는 묘제(墓祭)가 아닙니다. 

유교권 국가의 국민이 아니면 조상제사 거부자라 하더라도 조상도 몰라보는 금수라는 용어를 적용하지 않는게 맞습니다.  그리고 불교는 원래 중국에서 無君無父의 금수 소리를 듣던 외래종교로 불교가 조상제사를 주로 하는 신앙은 아니며 주 예불대상은 부처입니다. 부처에 대한 예불은 조상제사가 아니고, 중국이나 한국등에서 불당에서 조상제사 하는것은 불교가 아니고 유교적 제사일 뿐입니다. 유교권 국가에 들어와 불교형식을 빌어서 제사하는 어떤 조상제사도 불교가 아니며 유교제사며 그들은 유교도일 뿐입니다. 유교권 국가의 사람들이 쓰는 그 한문성명을 추적하면 조상을 알게됩니다(시조가 신분이 높았어도 점차적으로 신분이 낮아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주인성을 따라 호적신고를 한 노비계층도 있는데 이들은 문중 조상제사나, 족보등에서 가려집니다). 불교인은 국가에 등록하는 성씨와 인연을 끊고 불교법명만 가지고 살아야 산속에 은거하는 불교인(한국의 경우 조계종 천민 승려 극소수)으로 인정됩니다. 한국에서는 모든 국민이 국가기관에 조선성명을 등록해야 하기때문에, 모두가 유교도이며, 舊韓末에 설립된 몇 몇 기독교 학교의 경우, 학교내에서 예배활동 하는경우는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지만 그 조선식 한문姓名을 포기하기 전에는 유교도입니다. 서강대의 경우도 학내에서는 종교주권을 宮 성균관대 임금이 허락한걸로 하지만, 국가기관에 성명등록을 한 사실때문에 행정법상 유교도이기도 합니다. 서강대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인은 그 조선식 성명등록의 의무화때문에 행정법상 모두가 유교도입니다.                

 

.필자 주 1). 다음은 위키백과에서 인용한 중국에서의 천주교 내용입니다. 

 

 

.......천주교는 명나라때부터 마테오 리치 신부(1552년-1610년)등의 예수회 선교사들의 전교활동으로 소개되었다. 천주교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전교하면서 겪었던 어려움 중 하나는 조상제사문제였다. 조상제사문제는 1704년 조상제사에 반대하는 도미니쿠스 수도회와 조상제사를 중국인전통으로 존중하는 예수회간의 신학논쟁으로 이어지는데, 결국 교황청에서 조상제사를 천주교 교리에 어긋나는 것으로 규정하여 금지함에 따라 중국의 천주교 신자들과 선교사들은 탄압을 받게 되었다. 천주교 선교사들은 유럽에 중국 문화를 소개하여 유럽 지식인들의 중국연구열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중국인들과 똑같은 을 입는 등 중국전통문화를 존중하였다...

 

.필자 주 2). 다음은 베트남에서의 천주교 탄압 내용입니다. 위키백과에서 참조.

 

....더구나 이 시기에 베트남에서 기독교가 박해받음으로써 베트남-프랑스 간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었다. 명명제가 즉위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어 1836년에 유럽인 선교사 7명을 처형하고 수백의 협회가 파괴되자, 탄압을 두려워한 수 만의 민중들이 산이나 들로 숨어들었다. 19세기 중반 베트남의 가톨릭 교도가 45만 명으로 늘어나자 응우옌 왕조는 대대적인 기독교 탄압으로 1840년~1860년까지 유럽인 선교사 25명과 베트남 성직자 300명을 처형하여 2만 명의 신도가 죽었고 그들의 마을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

# 한국도 마찬가지 역사를 가진 전통 유교국입니다. 유교 교리상 조상제사는 반드시 치러야 하는 제의입니다. 어떤 사유로 전통 유교와 조선 조정이 중요하게 했던 조상제사 거부자에 대해 시복식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이 조상제사 거부 지침때문에 가톨릭 선교사들이 청나라에서 추방되고, 과거의 베트남.한국에서 배척당했던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이 배척 역사가 있어서 선교 역사가 오래된 가톨릭 예수회도 조상제사를 상대국의 전통으로 이해해주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필자가 가톨릭계 Royal대학인 서강대의 힘이나 능력이 월등하게 뛰어나서 필요로 해왔던것은 아니며, 단지 어떤 좋은 계기로 서강대의 Royal대학 자격을 인정하게 되어 글을 써오면서 인정해 준 것입니다. 대한제국이 을사조약이 무효라고 여러가지 노력을 하였지만 일본강점기를 겪게되면서 유교계 Royal대학인 성균관은 왜곡.강등.폐지등의 수모를 겪다가, 해방후 미군정기에 성균관과 유림들.임시정부 요인들의 노력으로 성균관의 대학자격을 복구하여 문교부에 성균관대로 등록시켰습니다. 포츠담선언과 카이로선언에 따라 한국 영토에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명칭을 서울대로 바꾸면서 국립대로 전환시켰어도 경성제대에서 변경된 대학이라 여전히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고 축출해야 할 일본 강점기 잔재임은 변치 않습니다. 그런데 친일파 방응모의 조선일보에서 시작된 서울대 중심 기사에 친일파 김성수의 동아일보가 동조하여 대중언론에서는 자격없는 서울대뒤에서 일본 연희전문 후신 연희대(나중에 연세대), 고려대 카르텔과 이의 동조자 중심으로 기사를 써 왔습니다. 대한제국이나 유림들.임시정부 요인들과는 완전 다르게 자격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추종세력이 일본잔재 세력을 규합한 것이지요. 그러나 대한제국의 역사.성균관.임시정부 요인들의 자격이 한국영토에서는 분명 옳기에 대중언론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해방후의 성균관대는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에서 이어져 6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 유엔 국제법위원회에서 을사조약은 무효라하여 이를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과 병행시켜 적용해도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은 성균관대입니다. 한국유교도 일본강점기 잔재가 대중언론에서 최근 다시 왜곡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일본강점기 잔재의 발호현상을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서강대의 입장을 어렵게 하는 과도한 조치는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제사같은 경우 아직도 조선왕조 후손인 황사손(이 원)의 유교 국가제사가 가장 관습적인 왕조제사 자격을 가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효재 왕실문화원 기획실장이 황사손(이 원)에 대한 과인의 국왕추대와 종교수장 자리 제의를 거절해서 문제가 발생했지만......

 

모든것은 주의깊게 지켜 보겠습니다.  황사손(이 원) 같은 경우, 직접 자기 의사 표명을 하지 않아서 필자가 유언으로 그의 유교 제사장 자격(기타 다른 지위도...)을 결정할수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한국인의 정서로, 조선왕조 후손인 황사손(이 원)이 국왕으로는 가장 적당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필자가 宮 성균관대 임금(=御 서강대 임금)으로 세계에 발표해왔기 때문에, 황사손이 國王으로 추대되어도 필자는 宮 성균관대 임금(=御 서강대 임금)으로 국왕과 같은 지위를 가질것입니다. 현재의 宮 성균관대 임금(=御 서강대 임금)은 헌법에 보장된 국가 공식적인 지위는 아니지만 국제법과 관습법.정신적으로 그렇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첨부자료. 그런데 주의해야 할 점은 황하문명을 가졌고, 유교종주국인 중국이, 유교의 본래 성격.세계성에 가장 큰 자격과 능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유교에 대해서는 중국만한 나라가 없습니다.

 

1. 스페인 국왕, “한국은 형제국가”. 御서강대 임금(서강대 기록보존소 서진교 교수)께서 전하시기를 교황청도 宮 성균관대를 교황청에서 생각하는 御 성대로 하고있다고 알려주심.宮 서강대=御 성균관대 이기도 함.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 ˝한국은 형제국˝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 "한국은 형제국" | Save Internet 뉴데일리 (newdaily.co.kr)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 "한국은 형제국" - 국민일보 (kmib.co.kr)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 "한국은 형제국" (imbc.com)

스페인 국왕께서 느끼신바는 김대중정부이후 노무현,이명박정부를 거치며 한국정부, 교황청, 미국개입하에 宮 성균관대 임금(宮 儒 윤진한)인 과인과 御 서강대 임금(서강대 기록보존소 서진교 교수)이 공동 임금으로 한국을 정신적 통치하고 있다고 트위터나 페이스북, 구글등에 밝혀와서 그렇게 어려운 형제국으로 느끼신다고 거론하신것이라 판단됨. 여러 정부가 개입하여 발생한 과도기의 새로운 역사.  

 

2.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京城帝大와 일본 관립전문학교 후신 서울대등도 역시 Monkey대학임.

일본 신도는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tistory.com)

 

필자가 글을 써 놓은 내용이 위의 블로그임. 읽어 보실것 

 

3. 필자(宮성균관대임금)와 御서강전하(서진교교수)공통점은 한국을 강제점령했던 일본.일본잔재 경성제대후신 서울대등을 자격없이 본다는점.일본신도+일본불교계열 Monkey로봄.

필자(宮성균관대임금)와 御서강전하(서진교교수)공통점은 한국을 강제점령했던 일본.일본잔재 경성제대후신 서울대등을 자격없이 본다는점.일본신도+ (tistory.com)


필자가 글을 써 놓은 내용이 위의 블로그임. 읽어 보실것 

 

4. 독일언론이 맞는말 했음. "일본은 벙커 안으로 들어가 다른 나라들에 저주를 퍼붓고.. 

 

.필자 주 1). 다음은 위키백과에서 인용한 중국에서의 천주교 내용입니다. 

독일언론이 맞는말 했음. "일본은 벙커 안으로 들어가 다른 나라들에 저주를 퍼붓고 있지만, 이 저주는 일본으로 되돌아오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tistory.com)

 

필자가 글을 써 놓은 내용이 위의 블로그임. 읽어 보실것 


 

5.  종교인구 조사를 어떻게 해도, 응답자가 자기종교를 어떻게 표기해도 한국인은 모두 유교도임(서강대에게는 별도의 종교주권 인정함).

종교인구 조사를 어떻게 해도, 응답자가 자기종교를 어떻게 표기해도 한국인은 모두 유교도임. (tistory.com)

 

필자가 글을 써 놓은 내용이 위의 블로그임. 읽어 보실것 

 

6.  유교의 내세관(來世觀)과 기복신앙(祈福信仰) 측면에 대한 고찰.  

유교의 내세관(來世觀)과 기복신앙((祈福信仰) 측면에 대한 고찰. (tistory.com)

 

필자가 글을 써 놓은 내용이 위의 블로그임. 읽어 보실것 

 

 

수천년 세계종교인 가톨릭과 유교가 똑같지는 않겠지만, 유교는 결혼을 하지 않고 하늘天(하느님)과 山川의 神, 조상신, 선성(先聖. 공자님이 先師의 위치에 계시다가 점차적으로 유일한 先聖으로 대체되어 文宣王의 칭호도 추존받으시고 황제와 왕들이 제사하는 先聖으로 변화됨)만을 모시며 살겠다는 중간 역사가 없어서 조상신과 가족과 완전히 단절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습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특징을 유교의 대부분 성직자들은 가지고 있습니다. 유교는 이전부터 수천년동안 祭.政이 일치되는 특징으로 국왕부터 조정 대신 및 문중의 종손, 성균관.향교의 보직자들이 聖職者와 정치 및 교육 권력자 역할을 병행해왔는데, 해방이후에는 祭政이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 가톨릭의 제정분리 역사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인간 창조주 하늘天(유교의 하늘天.하느님, 가톨릭의 하느님.天主님)은 인간 창조주 이시며 最高神이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하느님의 마음과 형상을 닮았고, 창조주 하느님을 숭배하는 우리 인간의 믿음은 수천년 역사로 정형화 되어 종교나 역사.문화.법으로 체화되어 유교나 기독교(가톨릭.정교회,성공회,개신교)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기타 이슬람교.브라만교도 최고신인 알라나 브라만을 숭배하는 믿음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다만 불교는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고 피조물 부처가 범천을 가르치고, 범천이 부처 발 밑에서 무릎꿇고 부처의 가르침을 배운다는 특이한 사상으로 브라만에 도전하여 일어난 후발 사상이 불교입니다(창조주에 대항하는 Monkey 특성). 일본 막부를 타도하고 후발로 일본 국교가 된 일본 신도도, 일본 수장 일왕이  이렇게 살아있는 부처처럼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되어 타 종교의 하느님이나 세계사의 세계종교인 예수님보다 높다고 강요하던 Monkey특성을 한국에 대한 일본강점기에 퍼뜨린적이 있었습니다(그런데 日本은 전쟁에 패한 패전국이 되어, 日王은 막부타도후의 짧은기간에 급조된 살아있는 神의 지위를 포기하고 인간선언을 하였습니다). 황하문명 중국 유교에서 유래된 한국 유교의 숭배대상(하늘天, 山川의 神, 祖上神, 先聖)은 제사로 또는 교육과 학교제도로 수천년 동안 한국인의 몸 속에 체화되어 왔습니다. 

 

 

[2]. 결혼하는 일본승려계통 일본 천황(성씨가 없어서, 한국문화와 맞지도 않음)이나, 일본 불교계통 새로운 일본 신도(神道)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성씨없는 일본천황 휘하에서 만들어진 학교들이라 일본 불교계통 마당쇠.돌쇠학교들임)과 그 추종자들이 TV나 각종 공중파에서 마음대로 떠들며 유교나 기독교를 싸잡아 공격하며, 어떨때는 오랜 귀족.양반 문벌인 파평윤씨 태생의 유교집안 필자(宮 성균관대 유생)이름을 들먹이며 공격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루머를 만들어내는 수준이며 낭설 퍼뜨리기입니다. 필자의 아버지 어머니는 오랜 유교 집안이며 양반가문임을 다시 확인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양반에 유교도인데, 어찌된 일인지 필자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한국영토에 주권은 없지만 청산되지 않은 패전국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추종세력 및 일본 잔재 불교세력들)의 공격적인 영향을 받게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절에 다녀도 한국사람은 호적이나 주민등록상 조선성명 복구령에 의해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한문성씨와 본관을 사용하는 유교도들입니다. 아주 중요한 문제는 유교나 가톨릭등 오랜 세계종교가 하느님을 최고신으로 숭배하는데 반해,불교는 부처가 브라만교에 대항하여 부처가 창조주보다 높다는 무신론적 Monkey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은 한국이 전해준 한자,유교,도교,중국 불교등이 혼재하다가, 막부시대, 기독교에 대항하여 전 주민을 절에 등록시킨 이후, 일본 전체가 국가적으로 독특한 Monkey 불교국가로 변한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본 신도 또한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됩니다. 한국 영토에 주권없는 京城帝大와 일본 관립전문학교 후신 서울대등도 역시 Monkey대학임. 경성제대 후신이 주축인 서울대는 점령대상으로 한국에서 축출해야 될 일본잔재임은 여전한데, 미군정기에는 대학으로 승격된 평민계 기독브(세브란스 의전)이(이화학당) 하위의 Monkey(종교와 관련없이 점령군의 미군대위가 총장으로 초대 취임)대학으로 잠정적 개편을 당하였다 할 수 있음. 을사조약이 무효고, 일본이 받아들인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등에 따라, 한국인은 일본의 불법 강점기에서 벗어난 해방민족이고 해방국가임. 일본과 일본인은 연합군의 점령대상(한국에있던 일본총독부나 그 휘하 조직인 경성제대 및 일본의 교육기구등도 미군정기 점령대상). 미군정기를 거치고 나면 을사조약 무효이론.포츠담선언과 카이로선언에 따라 다시, 한국에서 축출해야 될 일본 강점기 잔재가 일본 총독부잔재와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 일본이 세운 학교나 강점기 포교종교들임. 

 

일본이 새로 만든 후발 국지적 신앙인 신도에서 유교의 조상제사등을 차용하였다 주장하여도 그들은 이를 유교로 보지 않고, 일본인의 개념대로 일본은 유교와 불교를 외래종교로 보는 잘못된 종교관을 가지고 있는것 같음. 세계종교 유교를 인정하지 않고, 그들이 19세기에 새로만든 후발 혼합신앙인 局地的 民族信仰 神道 중심으로, 유교와 불교등을 재단하며, 현재는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유교화된 중국 불교)를 2중으로 같이 믿고 있는 상태임.   

 

일본은 동아시아의 중심이었던 황하문명, 세계종교 유교, 태학.국자감.경사대학당, 성균관같은 유교 교육과 동떨어져 살다가, 서양에서 조총같은 무기를 우연히 입수하여, 전쟁기술만 발전시키며 여전히 아시아의 고립된 변방문화를 가지다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청일전쟁.러일전쟁의 승리로 급작스럽게 국제적 위상이 상승하여, 그들의 後發 局地的 문화를 단시간내에 퍼뜨리려는 시도를 하였다 할 수 있음.     

 

[3]. 히로히토의 인간선언등.  

 

1. 히로히또의 인간선언. "살아있는 부처"개념에서 차용한듯한 "살아있는 신"등은 불교사상으로 판단됨.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창조주보다 높아 창조주를 발밑에서 가르친다는 불교의 Monkey 부처 사상처럼 Monkey 일본 수장(천황은 잘못된 표현)이 하느님이나 예수님보다 높다고 주장하여 개신교인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하였음.

 

하느님(하늘天)이 인간을 창조한 유교(詩經의 天生蒸民)나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한 기독교, 그리고 神중심 이슬람 및 인더스문명의 원래 시초인 브라만교(힌두교의 모태가 됨)는 무신론적 불교와는 다른것 같음. 브라만교에 대항하여 네팔출신 부처가 새로 만든 無神論的 불교는 하느님(신)을 숭배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에서 그 큰 특징이 있는것 같음.   

 

2. 경향신문 기사.

 

정진호 기자 기사(2010.12.31 기사).

 

[어제의 오늘]1946년 일본 히로히토 일왕의 ‘인간선언’

 

 

 
ㆍ국민들에 패전 수용 권유

 

 

  • 1946년 1월1일 아침. 일본 히로히토 일왕(昭和天皇)은 라디오 방송으로 신년 담화를 발표한다.

    “나와 우리 국민 간의 유대는
    상호 신뢰와 경애로 맺어진 것이지 신화와 전설에 의한 것이 아니다. ‘천황은 신(神)이며 일본인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여 세계를 지배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가공의 관념일 뿐이다.”

     
     

일왕은 스스로 자신이 ‘신이 아닌 인간’임을 밝혔고, 국민들에게 전쟁의 패배를 받아들이도록 권유한다.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는 패전국 일본에 대한 원활한 통치를 위해 히로히토와 정치적 거래를 한다. 아시아 각국의 바람과는 달리 일왕을 전범으로 법정에 세우지 않으며 ‘천황제’ 역시 폐지시키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그 대신 신격화된 초법적 권위로 절대복종의 명령을 내리던 일왕이 직접 육성으로 일본인들에게 ‘인간’임을 선언하도록 했다.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국가와 ‘천황’에 대한 거역할 수 없는 ‘콤플렉스’가 통치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에 ‘천황’에 대한 단죄 대신 정치적 이용을 선택한 것이다.

사실, 일왕은 신앙의 대상이기보다는 정치적 도구에 불과했다. 11세기 무사들이 막부를 세우고 정권을 장악한 이래 700여년간 한 번도 권력의 중심에 서 본 적이 없다. 권력은 고사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실권을 잡은 1600년 이후로는 항상 존폐의 불안 속에서 지내야 했다.

 

일왕이 다시 역사의 전면에 서게 된 것도 정치적인 이유였다.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지도자들은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일왕을 이용한다. 일왕을 민족 통일의 상징으로 내세웠고, 유신정권의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는 일왕을 헌법 위에 올려놓으며 ‘천황의 뜻’이라면 불가능이 없는 일본 제국주의를 탄생시킨다. 하지만 무모한 전쟁은 무조건 항복으로 마무리됐고, 이듬해 ‘천황’은 ‘인간’이 됐다. 물론 아직도 일본인들의 ‘천황’에 대한 애착은 대단하다. 여전히 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지만 이는 ‘인간선언’으로 일왕에 대한 친밀감이 높아졌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비록 타의에 의한 정치적 ‘인간선언’이었지만 ‘천황’의 인간화는 전후 일본의 정치·경제적 선진화에 큰 도움이 됐다.

새해 우리나라에서도 비인간적인 ‘정치’를 쏟아내던 이들의 반성과 성찰, 그리고 진심어린 ‘인간선언’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3. 엔하위키 미러에 나타난 히로히또의 인간선언 본문.

 


연두, 국운진흥의 조서

이에 신년을 맞이한다. 돌이켜보건대, 메이지 덴노(明治 天皇)는 메이지 초에 국시로서 5개조의 서문(誓文)을 내리셨다.

여기서 말하기를,

 1, 넓리 회의를 활성화하고 만사를 공론에 부쳐 결정하라.

 1, 상하가 합심하여 경륜(經綸)을 활발히 행하라.

 1, 문무백관으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각자 그 뜻을 이루고, 인심(人心)이 지치지 않도록 할 것을 요한다.

 1, 구래(舊來)의 누습(陋習)을 타파하고 천지의 공도(公道)를 따르라.

 1, 지식을 세계에서 구하여 황국의 기반을 크게 진작하라.

예지(叡智)가 공명정대하니, 또 무엇을 덧붙이겠는가. 이에 짐(朕)은 각오를 새로이 하여 국운을 열고자 한다. 모름지기 이러한 취지에 따라 구래의 누습을 타파하고 민의를 창달하며, 관민(官民) 공히 평화주의를 철저히 하고 풍부한 교양으로 문화를 구축하며, 이로써 민생의 향상을 꾀하고 신일본을 건설하라.

크고 작은 도시가 입은 전화(戰禍), 이재민들의 간고(艱苦), 산업의 정체, 식량의 부족, 실업자의 증가 추세 등은 실로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국민이 현재의 시련에 직면하여, 또 철두철미 문명을 평화에서 찾는 결의가 굳고 그 결속을 잘 완수하면, 단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인류를 위해 찬란한 전도(前途)가 전개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무릇 가정을 사랑하는 마음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나라에서 특별히 그 열렬함을 본다. 이제 실로 이 마음을 확충하여 인류애의 완성을 향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생각컨대 오랜 기간에 걸친 전쟁이 패배로 끝난 결과, 우리 국민은 자칫 초조함으로 흘러, 실의의 심연에 침윤되려는 경향이 있다. 궤격(詭激)한 풍조가 점차 거세져 도의를 지키는 마음이 몹시 쇠퇴하고, 그로 인해 사상 혼란의 징조가 있음은 참으로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짐는 너희 국민과 함께 있으며, 늘 이해(利害)를 같이 하고 평안함과 근심걱정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 필자 주 1). 다음부터는 히로히또의 인간선언 해당 문구임.


짐과 너희 국민 사이의 유대는 시종 상호 신뢰와 경애로 묶여지는 것이지 단순히 신화와 전설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덴노(天皇)을 현어신(現御神)으로 하고, 또 일본 국민을 다른 민족 보다 우월한 민족이라 하며, 나아가 세계를 지배할 운명을 가진다는 가공의 관념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짐의 정부는 국민의 시련과 고난을 완화하기 위해 모든 시책과 경영에 만전의 방도를 각구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짐은 우리 국민이 시국의 난제에 궐기하여 당면한 곤고(困苦)를 극복하기 위해, 또 산업과 문운(文運)을 진흥하기 위해, 용왕매진(勇往邁進)해주기를 희망한다. 우리 국민은 공민 생활에서 단결하고 상부상조하여 서로 관용하고 용서하는 기풍을 진작하는 데 있어 능히 지고의 우리 전통에 부끄럽지 않는 진가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것이 실로 우리 국민이 인류의 복지와 향상을 위해 절대적인 공헌을 할 까닭임을 의심치 않는다. 한해의 계획은 연두(年頭)에 있다. 짐은 짐이 신뢰하는 국민이 짐과 한 마음으로 스스로 분발하고 격려하여, 이로써 이 대업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히로히토

 

쇼와21년(1946년) 1월 1일  
 
4. "하나님이 높은가, 천황이 높은가" 질문을 받고 고난을 당했던 개신교의 사례등. 가톨릭도 이런 비슷한 고난 있었음 
 
1). 한국 기독교사, 박봉진 목사 편. 
한국에서의 교파합동에 따른 성결교대표이던 이명직목사는 “일제가 성경에서 구약을 제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다”며 강력히 맞섰고 결국 성결교단은 당시 기관잡지인 `활천'이 폐간되는 동시에 43년 5월,전국 성결교회 일제검속령이 내렸다.바로 이 때 박봉진목사도 철원경찰서에 구속,수감된다.

유치장으로 들어가기 전 넥타이와 허리띠를 풀게하고 좁쌀과 콩밥을 주는 색다른 환경 속에서 박목사는 차디찬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그러나 박목사에게는 더 큰 고통과 형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형사앞에 불려간 박목사는 신사참배를 거절한 이유를 하나님 이외에 참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고 하나님이 천황보다 더 높다고 여기느냐고 묻는 질문에도 언제나 그렇다고 대답했다.강직한 신앙은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절대 허용치 않았다.

“목사님을 때리는 소리가 마치 장작패는 소리로 들렸다고 합니다.기절하면 다시 물을 끼얹어 깨우고 갖가지 방법으로 3개월간을 주야로 고문했지요.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마른 볏집처럼 말랐지만 항복을 얻어내진 못했습니다.일본천황에 충성하겠다고 자술서 한장만 쓰면 풀려나올 수 있는 것을 아버님은 끝까지 신앙지조를 지키신 것이지요
 
2). 한국 장로신문. 제 1363호(2013년 4월 20일). 
164. 일제 치하 기독교인은 반역자.
 
더구나 중요한 것은 일제 헌법이 천황을 신성불가침이라 규정한 점이다. 신성하고 절대로 범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길거리를 가다가도 어디에선가 천황폐하라는 말이 나오기만 하면 자동차도 사람도 다 그 자리에 순간적으로 정지하고 반듯하게 차렷 자세로 서 있어야 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일제 말기에 우리 기독교인들은 일본 경찰이나 형사에게서 천황이 높은가, 여호와 하나님 높은가라는 황당한 검문을 받기 일쑤였다. 또 그 헌법에는 일본인의 모든 권리가 천황에게서만 나온다는 그런 조항이 서두에 나온다. 국민들은 다만 천황의 신하에 불과하였다. 그렇다면 절대자 이상의 권한과 존엄을 누리는 것이 일본 천황이었다. 북한에서 김정은은 국가 최고의 존엄이란 말을 쓴다. 그런 천황에게는 최경례 곧 최고의 경례를 표하여야 하는데, 기독교는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는 어떤 존재도 섬기거나 예배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신앙 첫째의 준수사항이다.
이제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일제시대 기독교는 그 자체가 헌법상 존재할 수 없거나 천황제 아래 굴종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따라서 천황을 예배하지 않거나 신사참배에 가지 않는 것은 그 자체가 반역일 수밖에 없었다.
 
민 경 배 목사<백석대학교 석좌교수>
 
3).  가톨릭신문 기사. 발행일 : 1984-07-22 [제1415호, 6면]

[다시 태어나도 사제의 길을 - 오기선 신부 사제생활 50년의 회고] 76. 첫 한국인 교구장 탄생의 뒷얘기들

 
主敎임명놓고 日本에 密派돼
교황사절에 한국인임명호소
숨막히는 면담 끝에 승락 얻어-기쁨의 눈물 넘쳐
교구장취임장면 全國서 뉴스영화로 上映
 
일본 군국주의가 한반도 문화를 페결핵균처럼 파먹어 들어가던 때、우리 가톨릭도 탄압을 받았다. 천황이 더 높은가 그리스도가 더 높은가 하여 각 성당 제대 위에 가미다나(神棚)를 모셔라 했고 미사 시작전 동방요배(東方遙拜)와 일본국가제창을 강요했다. 성당의 종을 때어 헌납하라、신부출장땐 배정기(配程記)를 제출하고 허락을 받아라、 고해성사때 신자들이 신부들께 스파이질을 하니 신부와 신자사이에 의자를 놓고 그내용을 들어야겠다고도 했다. 마침내는「기독교 종교단체법안」까지 만들었고、1940~41년에는 일본내 외국인교구장을 교황사절을 앞장세워 일본인 교구장으로 갈아치웠다.....  
4). 평화신문 2000.08.13 발행. 가톨릭뉴스.
종소리를 듣고 성당으로 몰려온 신자들은 "이제는 하느님이 높으냐 천황이 높으냐는 일본
헌병의 질문 신사참배 강요 황군(皇軍)의 무운장구를 비는 미사 고해소에 형사가 입석하 는 일 그리고 신부가 공소를 방문할 때마다 순사에게 신고해야 하는 일이 없어지게 됐다" 고 기뻐했다.


http://news.catholic.or.kr/WZ_NP/section/view.asp?seq=37966&tbcode=SEC02 

 
 
 
5. 대략적인 마무리.
 
한국은 (後發 局地的) 神道 국가 일본의  불법강점기때문 모든 주권을 잃었던 나라입니다. 神道는 19세기에 일본의 국교가 된 後發局地的 신앙입니다. 모든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를 탄압하던 일본 막부시대이후 불교적 토양으로 바뀐 일본 불교를 토대로 "살아있는 부처"개념의 "살아있는 신"이된 일본 수장(日王이 적당)입니다.
 
일본에서 後發局地的으로 19세기부터 일본 국교가 된 神道. 日王(天皇은 중국의 전설과 신화에 나오는 고유명사 천황칭호를 도용한 誤用)은 "살아있는 부처"개념을 차용하여 후발로 만든 "살아있는 신"개념에 해당됩니다. 
 
日王(天皇이라 오용)은 불교적 특성이 강한 후발국지적 일본만의 특이한 존재로 "살아있는 부처"처럼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님보다 높은 존재라고 일본 Monkey들은 19세기에 불교사상등을 혼합하여 유교사회에서는 생각도 하기 힘든 "살아있는 신"이라는 존재를 만듭니다. 그렇게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님보다 높다고 후발로 만든 존재니까 전통 유교국가 한국에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일본 신도와 일본 민간불교를 마음대로 퍼뜨리며 유교의 하늘天(하느님)이나 공자님보다 더 중요하게 일본 神道와 日王(天皇이라 誤용)숭배, 일본 불교를 퍼뜨렸겠지요.  
 
네팔출신 피조물 부처가 인더스문명의 브라만에 대항하여 새로운 사상을 일으키고 창조주를 발 밑에서 가르친다는 특이한 無神論 사상이 불교입니다. 창조주를 모르고 깔아뭉개면 Monkey류는 분명합니다. 
日王이라야 적당할텐데 중국 상고시대 전설적.신화적 존재인 天皇의 고유명사 칭호까지 도용해버리고 天皇이라 호칭을 붙입니다. 
새로만든 일본 신도의 수장(천황? 아님)도 無神論的인 부처 Monkey처럼 살아있는 부처처럼 살아있는 神이되어 하느님보다, 예수님보다 높다고 그렇게 인식시키며 신사참배도 강요하고 그래서 한국의 기독교학교나 기독교 인들은 이 신사참배를 거부한 경우도 발생합니다. 하느님이나 예수님보다 높은 "살아있는 부처(실제로는 창조주부정 후발 피조물이 덤비는 Monkey사상)"개념이 후발국지적 일본 신도의 수장(일왕, 천황이라고 오용하고 있음)인 "살아있는 신" 이었습니다. 이런 특이한 "살아있는 부처"개념의 "살아있는 신"이란 후발 국지적 사상을 유교국가 한국에 마음대로 퍼뜨린 일본. 일본 신도, 일본 불교(시중에 진출하여 불교마크 달고 포교하며, 승려가 결혼하며, 산속 천민승려로 머물지 않고 재가불교 형태를 띄는 경우가 많음)를 한국에 퍼뜨리며, 2차대전때 항복하면서 "살아있는 신"의 지위를 포기하고 "인간선언"을 하게 된 일본 수장!(日王인데 天皇이라고 중국 고유명사 天皇칭호 도용중).  인더스문명의 브라만에 대항 창조주를 부정하고 창조주를 밑에두고 창조주에거 설법한다는 無神論的 사상의 불교 부처(알고나면 창조주에 대항하는 Monkey사상임).
 
여하튼 19세기에 모든 주민을 절에 등록시키던 일본 막부의 습속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불교적 사상으로 유교를 왜곡시키며 일본의 국교가 되고 生佛(살아있는 부처)개념의 "살아있는 신"이되어 하느님이나 창조주, 공자님, 예수님이 안중에 없었을 無神論的 Monkey류 일본 신도 수장!(살아있는 부처류, 살아있는 신으로 잘못 떠받들려짐).
 
연약한 피조물 일본 수장(일왕,천황?)은 2차대전 패전후 "살아있는 신"의 지위를 포기하고 인간선언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도 그 잘못된 전통은 그대로 상당부분 살아있어서 일본이나 불법강점기 한국에 일본 불교적 생각을 퍼뜨려왔고, 지금도 이런 불교적 생각들은 한국 영토에서 완전히 축출되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으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과 함께 이 땅에서 완전히 축출시켜야 할 불교적 일본신도와 시중까지 진출한 일본 불교. 이런 잔재들을 축출해야 그 생각들이 잘못되었다고 대대적인 교육.홍보가 가능할 것입니다. 
 
한국 유교도 일본 불교적인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때문에 여러가지 왜곡을 겪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일본 神道는 19세기에 일본 國敎化 된 신앙으로 유교도 아니고, 불교도 아니며, 일본만의 後發 局地的 신앙에 해당됩니다.     
 
* 필자 주 2). 신도가 19세기에 국교가 되었다는 출처 두 가지.
 
. 출처 1.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교양 6 철학 종교. 존 라이트외/김우열 역/이지북/2005.06.10, 117페이지
The New York Times guide to essential knowledge
 
.... 신도는 19세기 메이지 천황 치세에 국교가 되었고, 신도는 일본천황의 신성을 강조함으로써, 제 2차 세계대전 전후에 제국주의자의 파괴적인 민족주의를 부추기는데 기여하였다. 전후기간중에 천황의 신성 주장과 함께 신도의 국교로서의 지위는 폐지되었으나, 일본 전사자의 넋을 추모하는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하는 것과 같은 태도에 대하여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 출처 2. 일본의 신도. 시사 상식사전/박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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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에 신도는 천황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 종교가 되고, 신사는 정부의 관할 하에 놓이게 된다. 결국 국가와 종교의 합체는 국수주의적인 기풍을 몰고 왔으며, 특히 1930년대 이후에는 '국가신도'가 널리 보급되기에 이른다.

1889년 헌법에는 형식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지만 신사에서 참배하는 것을 모든 일본인의 애국적인 임무로 간주했다. 10만 개가 넘는 신사에 대한 행정은 정부가 맡았고 신도식 수양을 가르치는 수신(修身) 과목은 학교의 필수과목이 되었으며 정부는 천황의 신성(神性)을 선전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사회의 모든 종교는 국가로부터 분리되게 된다...  
 



 
서울대는 경성제대 후신 대학으로 한국에 아무런 주권이 없고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될 비합법적 침략잔재에 불과합니다. 대중언론에서 이 뒤의 카르텔로 국사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해 온 성균관대에 대항하는 패전국 일본 강점기 잔재들은 왜놈학교나, 일본이 강제로 포교시킨 일본 신도, 일본 불교, 소수의 일본 기독교인데 원칙적으로 한국에 주권이 없습니다. 다만,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그 자격과 세계적인 인식에서 큰 타격을 입고 회복이 힘들정도로 침체된 현대사때문에, 불가피하게 세계사의 역사를 이용하여 유교의 오랜 역사를 유지하고자 합니다. 중국의 황하문명.세계종교 유교의 오랜 역사.중국의 오랜 대학제도인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승계됨).세계가 인정하는 중국의 4대 발명품(종이.화약.나침반.인쇄술)에 대한 학교 교육은 거의 변하지 않을것입니다.


일본 불법 강점기로 인해 왜곡된 세계질서와, 유교질서, 한국의 기득권 전통을 유지.복구하기 위하여 자료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19세기에 불교사상을 가미하여 유교사상도 혼합하면서 국교화시킨 천황제하의 일본신도로 가톨릭이나 개신교인들을 억압한것은 유교국인 조선(대한제국)이 그런게 아니므로 이해하셔야 됩니다. 국제법과 역사적 측면의 한국 국교는 유교며, 행정법상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모든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유교국인 조선.대한제국의 한문성씨와 본관을 주민등록에 의무적으로 등재하는 유교도의 나라임은 변치 않습니다. 설날.추석등 전국적인 유교명절을 쇠며, 오랜 유교교육을 실시해온 나라 한국.
하느님.일신(日神).월신(月神).지신(地神).산천신(山川神).조상신(祖上神)등을 숭배하며 공자님에 제사드리는 유교. 그러나 헌법상 국교는 없으므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는 현행 한국 헌법내에서 신앙의 자유를 가지시면 되겠습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서유럽 학자들의 이름이 많이 나오고, 수천년 인류역사를 담은 현행 세계사 내용은, 과거와 비슷하게 교육되고 있는데, 과거처럼 현재도 거의 같고, 앞으로도 변경시킬 수 없는 국제관습법적 자격을 가지고 있는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내 Royal대학들인 성균관대나 서강대에 대한 국사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세계사도 참조)등, 정부자료를 위주로, 자료인용을 하면서, 청산하지 않은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說)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성씨없는 일본 신도수장(일본만의 천황)은 세계사적 견지에서 한문성씨를 쓰는 유교국가들과 너무 동떨어졌고 성씨가 없어서, 유교종주국인 중국의 오제나 왕족 및 한국의 여러 왕정국가 왕족성씨 및 주요성씨와 연관성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성씨없는 일본 신도수장(일본만의 천황)은 세계사적 견지에서 유교였던 과정이 없었고, 성씨가 없어서 유교종주국인 중국의 오제나 왕족 및 주요성씨 (tistory.com)




2.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tistory.com)




3. 새롭게 종교인구 산출을 어떻게 해도,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이는 미 군정시 조선성명 복구령(조선.대한제국의 국교는 유교임)에 의하여 그 유래가 형성된 것입니다.
새롭게 종교인구 산출을 어떻게 해도,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tistory.com)




3.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성균관대.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성균관대. (tistory.com)
     
 
 

4. 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 참석. 
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1998). 볼로냐, 파리 1대, 옥스포드, 하이델베르크,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 참석. (tistory.com)



4. 한일합방과 을사 5조약이 원천무효라고 결의한 한국 국회결의. 그리고 한일합방건 일본정부 발표에대해 원천무효라고 밝힌 한국 외무부
한일합방과 을사 5조약이 원천무효라고 결의한 한국 국회결의. 그리고 한일합방건 일본정부 발표에대해 원천무효라고 밝힌 한국 외무부 (tistory.com)




5. 일본강점기때 폐지.왜곡된 성균관. 해방후에 설립(재건승계)된 성균관대학교가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백과사전.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현대 한국사적 입장에 대한 학술적 고찰. 그리고 한국사의 성균관대(성균관에서 이어짐)와 세계사를 연계하여 해방이후 합법적으로 설립된 敎皇聖下 윤허대학인 예수회의 서강대와의 Royal.Imperial 특성의 공통점 고찰.
일본강점기때 폐지.왜곡된 성균관. 해방후에 설립(재건승계)된 성균관대학교가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백 (tistory.com)

     
6. 自然人에 대한 공평한 능력우대와 달리 法人體로볼때, 일본 강점기 잔재 경성제대.관립전문학교 후신 서울대등은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강점기 잔재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일본 강점기 잔재 경성제대.관립전문학교 후신 서울대등은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강점기 잔재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tistory.com)



7. 2차대전 결과와 상관없이,세계사와 한국사를 바꾸지 못하면, 교과서(백과사전,학습서), 학술서적상의 기득권 대학 학벌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World Class Universities. 2차대전 결과와 상관없이,세계사와 한국사를 바꾸지 못하면, 교과서(백과사전,학습서), 학술서적상의 기득권 대학 학벌들 (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