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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주요의례중 하나인 '추기 석전'이 9월1일 거행되었습니다. 공자님께 올리는 봄.가을의 제사가, 석전(釋奠)입니다. 전국 향교도 함께 석전(釋奠)을 거행합니다.

유교 주요의례중 하나인 '추기 석전'이 9월1일 거행되었습니다. 공자님께 올리는 봄.가을의 제사가, 석전(釋奠)입니다. 전국 향교도 함께 석전(釋奠)을 거행합니다.

 

[1]. '성균관, 유교 주요 의례' '추기 석전' 봉행.

 

2022, 09,01, 연합뉴스 양 정우 기자 보도기사

 

(서울=연합뉴스) 성균관(관장 손진우)은 1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 문묘에서 '추기 석전(釋奠)'을 봉행했다고 밝혔다. 

▲ 성균관(관장 손진우)은 1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 문묘에서 '추기석전(秋期釋奠)'을 봉행했다고 밝혔다. 석전은 유교 주요 의례다.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은덕에 감사하고, 유교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을 담아 올리는 제사다.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서울=연합뉴스)

[게시판] 성균관, 유교 주요 의례 '추기석전' 봉행 | 연합뉴스 (yna.co.kr)

 

 

[2].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인 성균관.향교의 추기(秋期) 석전(釋奠).

 

1]. 한국 유교는 조선.대한제국 국교인 유교의 전통을 이어받아 역사적.관습적.행정법 상으로는 전국민이 유교국가인 조선식 한문성씨와 본관을 호적.주민등록에 법으로 강제로 등록해 온 나라임. 전국적으로 성씨별 문중별 종친회가 있음. 그리고 학교에서는 유교의 삼강오륜 교육과, 인의예지신 교육, 충효교육을 실시해 온 나라임. 또한 설날.추석 등 유교 전통명절과 24절기의 주요 기념일, 문중별 제사, 성균관.향교의 춘기.추기 석전, 최고대학인 성균관대등에서의 별도의 유교교육이 있음.

 

유교는 크게 보면 주민등록에 강제로 조선식 성명과 본관을 등록하는 행정법, 설날.추석등 전통 유교명절의 성묘나 제사, 성씨별.문중별 전국적인 조상제사, 성균관.향교의 석전,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환구대제.사직대제.종묘대제, 24절기 및 주요 명절의 기념 행사, 성균관대등에서의 유교교육, 초.중.고에서의 유교 교육등이 유교의 전체집합을 이루는 요소들입니다.

 

2]. 유교 경전의 오경(五經) 사서(四書) 중 하나인 오경의 예기(禮記)에는 다음과 같이 석전(釋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편에 의거합니다.

- 다 음 -

 

凡學春官釋奠于其先師 秋冬亦如之 凡始立學者 必釋奠于先聖先師

及行事必以幣 凡釋奠者 必有合也 有國故則否 凡大合樂 必遂養老

 

무릇 봄과 여름에는 교관이 선사(先師)에게 석전(釋奠)을 드리고(생도로 하여금 도덕을 함양하고 고매한 인격을 도야하게 한다), 가을.겨울에도 이와 같이 한다. 처음으로 학교를 세운자는 반드시 선성.선사에게 석전을 드리는데 그 제례를 행할때는 반드시 폐백을 드린다. 석전제에는 반드시 합악(合樂)을 하되,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는 이것을 그만 둔다. 대합악(大合樂)이 있을 때는 반드시 양로의 예를 행하는 것이다.

 

. 필자 주 1). 번역자가 부가설명 해놓은 자구 풀이

 

ㄱ). 춘(春): 凡學春官의 春임.

춘하(春夏)의 약(略)이다.

ㄴ). 관(官): 凡學春官의 官임.

교관(敎官)

ㄷ). 석전(釋奠): 선성.선사를 제사 지내는 것

ㄹ). 선사(先師): 지난날에 학식과 덕망이 높았던 대중의 사표(師表)가 될 인물

ㅁ). 선성(先聖): 주공(周公).공자와 같은 성자(聖者)를 가리킨다.

ㅂ) 유합(有合): 합은 합악, 즉 합주악(合奏樂)을 말한다.

...

 

凡語于郊者 必取賢斂才焉

교학에서 논설을 듣는것은 반드시 현명한 인물을 뽑고 재능이 있는 자를 뽑으려는 것이다...

於成均以及取爵於上尊也

다만, 천자가 성균(成均)에서 주연을 베풀었을 때 당(堂)위에 올라 술을 마시는 영광을 입을 뿐이다.

 

. 필자 주 2). 번역자가 부가설명 해놓은 자구 풀이

 

ㄱ). 성균(성균): 오제(五帝)때의 대학 이름, 주나라 때까지는 이것이 남아 있었다.

ㄴ). 취직어상준(取爵於上尊): 상준은 당(堂)위에 있는 술통. 즉 술잔을 잡아 당 위에 있는 술통의 술을 마시는 것.

. 출처: 新譯 禮記/권오돈 譯解/홍신문화사/2003.10.30 발행의 문왕세자(文王世子)편.

 

3].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에서 설명하는 석전에 대한 규정

 

석전(釋奠)

석전제[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에 문묘(文廟)에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설명하는 석전(釋奠).

 

1. 필자가 필요에 의해 발췌한 부분적 요약 설명

 

...본래 석전은 산천에 베풀기도 하고 혹은 묘사에 베풀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학교에서 올리기도 했으나, 시대를 내려오면서 학교의 의식만을 뜻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 필자 주 3). 한국에서는 해방이후 미군정시대, 교육기능은 성균관대로 분리하여 미군정에 등록하고, 문선왕(文宣王)이시자 선성(先聖)이신 공자님에 대한 석전은 현재의 성균관으로 분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석전(春期, 秋期 釋奠)은 성균관과 전국의 향교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향교는 이전에는 고등학교[향교.서원.사부학당은 조선시대에 주로 양반계층을 대상으로 하던 고등학교 성격. 이 이외에도 명망높은 학자밑에서 사숙(私塾)하다가 과거에 응시하는 방법도 있었음. 이 이전의 소학교 기능은 서당등]에 해당되며, 성균관은 유일무이의 최고 교육기관으로 대학이었음. 현재 한국의 향교는 공식적인 교육기능은 없다고 할 수 있으며, 주로 석전제사등의 제사업무를 거행함.

 

2.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에서 설명하는 석전(釋奠).

 

석전대제 / 제관 배례문묘에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

유형성격행사시기행사장소

의식행사
제사, 추모의식
봄 2월(음력)과 가을 8월(음력)의 상정일()
성균관, 지방 향교

정의

전통 사회에서 산천()·묘사()에 올리던 제사, 또는 학교에서 선성선사()를 추모하기 위하여 올리던 의식.

연원 및 변천

석전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서는 『주례』·『예기』 등 유교 경전에 기록이 있다. 이들 기록에 의하면, 본래 석전은 산천에 베풀기도 하고 혹은 묘사에 베풀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학교에서 올리기도 했으나, 시대를 내려오면서 학교의 의식만을 뜻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산천·묘사에는 이밖에도 여러 제향()이 있는 반면에 학교에서는 오직 석전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석()은 ‘놓다()’·‘두다()’의 뜻이고, 전()은 ‘그치다()’의 뜻으로서, ‘제물을 올릴()’ 따름이고 ‘시동을 맞이하는()’ 등의 제사 절차는 갖추어 베풀지 않았다.

일설에는 소[]·양() 등 고기를 제물로 올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의식을 석전이라 하고, 오직 나물[: 빈조류()]만 드릴 뿐 일체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 의식을 석채()라 한다. 석채는 또 석채()라고도 쓰는데 이는 선사에게 채백()을 올려 폐백으로 삼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따라서 석전은 석채·석전()·정제()·상정제() 등의 일컬음이 있다. 정제니 상정제니 하는 것은 석전을 봄 2월(음력), 가을 8월(음력)의 상정일(: 첫 )에 모시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상대()에 이미 산천·묘사에서 석전을 올렸으며[『주례()』, 「춘관()」], 때로는 출정하여 죄 있는 자를 잡아오면 학교에서 석전을 베풀어 선사에게 아뢰기도 하였다[『예기()』, 「왕제()」]. 전자를 정기적()인 석전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부정기적()인 석전이다.

학교에서는 봄에 시()·서()·예()·악()을 가르치는 교관()이 선사에게 석전을 올렸고 가을과 겨울에도 마찬가지라고 『예기』 「문왕세자」편에 기록되어 있다. 선사란 앞서 간 전대()의 훌륭했던 스승들을 일컫는 말이고, 여름을 말하지 않은 것은 봄에 준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주대()에는 순()·우()·탕()·문왕()을 선성()으로 모시는 것이 고대 중국의 관례였다. 한()나라 이후 유교를 국교로 받들게 되자 공자를 점차 선성·선사의 자리로 올려 문묘의 주향()으로 모시는 동시에 석전으로 우러러 모시는 관례가 정착되었다. 후한()의 명제() 같은 제왕은 주공()을 선성, 공자를 선사로 삼아 공자의 고택을 찾아 가서 석전을 올리기도 하였다. 위()·수()·당()나라 이후로는 대체로 공자를 선성, 안회()를 선사로 받들어 석전을 올렸다. 명()나라에 와서 태학()의 문묘를 대성전(殿)이라 일컬어 석전을 올리는 사당으로 확립이 되었다.

 

. 출처: 석전[釋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5]. 두산백과에서 설명하는 석전.

 

석전[  ]

 

요약

 

문묘()에서 공자(:)를 비롯한 4성() 10철() 72현()을 제사지내는 의식.

 

 

석전제·석채()·상정제()·정제()라고도 한다.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첫째 )에 거행한다.

석전이라는 이름은 '채()를 놓고(), 폐()를 올린다()'에서 유래한다. 처음에는 간략하게 채소만 놓고 지냈으나 뒤에는 고기·과일 등 풍성한 제물을 마련하여 지냈다.

중국의 상대()에는 선성()·선사()의 제사로 발전하여 주공()을 제사하다가 한()나라 이후 유교가 중요시되자 공자를 제사하게 되었다. 후한()의 명제(:재위 57∼75)는 공자의 옛 집까지 가서 공자와 72제자를 제사한 기록이 있으며, 당()나라에서는 628년 공자를 선성(), 안회()를 선사()라 해서 제사를 지냈다. 739년에는 공자에게 문선왕()의 시호가 추증되었고, 명()나라 초기에는 대학에 묘()를 설치하고 대성전(殿)이라 하였다.

한국에서는 유교가 전래된 후, 신라에서 공자와 10철 72제파의 화상을 당나라에서 가져와 국학(:)에 안치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에서도 국자감(:)에 문선왕묘(문묘)를 세워 석전제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개국 초부터 성균관에 문묘를 설치하고 여기에 한국의 18현을 합한 112위()를 봉안하여 석전제를 지냈는데, 이를 위하여 성균관에 학전()과 학노비()를 지급하였으며 지방에서는 향교에서 석전제를 주관하였다. 지금도 성균관에서는 옛 의식대로 해마다 봄과 가을, 2차례씩 석전을 거행한다.

 

. 출처: 석전[釋奠] (두산백과)

 

. 필자 주 4). 황하문명을 가진 중국 유교(儒敎)는 제자백가(諸子百家)중 공자(孔子)님의 유가(儒家)가 한(漢)나라시대 국교(國交)인 유교(儒敎)로 정해지기 이전에는 나중에 유교나 유가라고 이름붙이기 이전의 시원(始原)유교(儒敎)시대를 거쳤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계사적으로 살펴보면 예수님이전의 기독교를 구약시대로, 예수님이후의 시대를 신약시대로 구분하는것과 비슷합니다.

 

[3]. 근대와 현대에는 고종의 을사조약무효(따라서 불법.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 대한민국 임시정부(대일선전포고, 한일병합.을사조약 무효), 해방후 미군정법령에 따른 성균관 재건,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전국민이 유교국 조선의 한문성명.본관 의무등록으로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 복구,국사 성균관(성균관대로 정통승계, 현재 6백년 넘는 역사와 전통을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음)교육을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아야 할것입니다.

Royal성균관대는 太學등의 별칭있고,왕립대학이며, 대한제국의 皇대학 전통과 자격을 가지고 있음. 해방후의 주권없는 일제잔재 중심 비신분제 국립대학과는 성격도 다름. 패전국 奴隸(임시정부 대일선전포고)이며, 한국영토에 주권없는 패전국 일본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이 대중언론에서 발호하는 가운데, 주권.자격.학벌없는 토착왜구잔재들과 그 추종세력들의 자격없는 침략.폭동에 Royal 성균관대가 시달려온지 오래됨.

 

카이로선언이후 프랑스.소련.폴란드등이 승인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제법.국내법적 위상을 상기하고, 패전국 일본잔재로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어온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패전국 일본잔재로 적산재산 형태)를 국립대로 강행할때, 전국적인 반대와 서울대생들의 등록거부.자퇴,등록거부등이 있었던 상황도 인식해야합니다.

국제법상 일본이 항복후,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에 따라, 한국영토에서 일본의 모든 주권은 없어왔음.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현행헌법 임시정부 구절(한일병합 무효, 을사조약등 불평등 조약 무효, 대일선전포고)에도 맞지 않는게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임.해방후 미군정부터 국사 성균관(성균관대)교육을 시켜온 나라 대한민국임.

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 승계 성균관대는 국내외에서 6백년 넘는 역사를 행정법.국제관습법으로 인정받고 있음.Royal성균관대.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패전국 일본 잔재이자, 불교 Monkey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어왔음

*성균관대로 정통을 승계하기로 하자, 미군정이 향교재단의 재산으로 성균관대 재정에 기여토록 하는 법을 추가로 만들어 주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대통령령으로 시작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발행으로 행정법상 조선 성균관 승계를 추가로 법제화. 성대 6백주년 행사때는 대통령.국무총리.교육부 장관 참석하였습니다.

.*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교황윤허,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 참석.

http://blog.daum.net/macmaca/1467

 

*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

 

[4].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시고,하느님(天)께서 선택하신 성인이신 공자님께 천명(天命),천덕(天德)을 부여.하늘에 죄지으면 빌곳이 없다고 경고하시게 하신 동아시아 세계종교입니다. 한국은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당시 조선성명 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조선 국교 유교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 해야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도입니다. 학교교육도 한문,윤리등을 통해 유교교육이 주류입니다.

세계사로는 한나라때 공자님을 추가로 제사하며 동아시아 세계종교로 성립된 유교! 한국사로는 유교의 始原유교 제천의식인 삼한 상달제.시월제, 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예의 무천 교육. 조상제사의 고인돌이 있습니다. 유교 교육기관 교육으로 보면 고구려 태학.백제 오경박사, 신라 국학, 고려 국자감, 조선.대한제국 성균관의 유교 최고대학 교육이 있습니다. 은(상).주시대 성립한 始原유교의 하느님,오제[上帝, 조상신계열로 승천, 하느님(天) 하위신으로 계절주관], 지신,산천신,부엌신(火관련 神)등을 숭배해 온 유교입니다. 은나라 왕족후손인 기자의 한국 기자조선(고려,조선시대 인정, 일제강점기 영향탓 기자조선이 부정되나 한국사의 고조선중 正史영역 기자조선임)의 마지막왕인 기준왕(분명한 正史인물 위만에 멸망)은 중국 始原유교 특징인 한문성씨(서씨,한씨) 성립의 시조로 삼한(三韓)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삼한은 始原유교 특징인 제천의식(단오절,상달제,시월제) 거행. 삼한의 마한유교는 백제영토로, 변한 유교는 가야로, 진한 유교는 신라로 이어졌습니다. 한나라때 공자님의 유가사상이 국교로 채택되며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로 성립되고 공자님도 제사하였습니다. 한(漢)사군의 낙랑은 부여.고구려(고주몽).백제(주몽임금 후손 온조왕, 백제는 마한영토의 始原유교도 승계)에 영향. 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강점기에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이 없습니다. 현재는 5,000만이 유교성명 복구하여 문중별.가족별 조상제사 행하며, 설날.추석.대보름.한식.단오의 주요 명절과 중양절(국화철)을 가지고, 유교문화 24절기의 입춘, 소서.대서의 삼계탕.피서, 상강(단풍철), 입동.소설의 김장철, 동지의 팥죽등 세시풍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대학인 성균관대입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있지만, 유교의 세계종교 자격이 있는 세계사를 반영해야 하기때문에 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예수회(귀족출신 이나시오 사제가 설립한 예수회는 교황청의 실세로 세계적으로 교황윤허대학은 별로 없음)의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국사 성균관 자격가진 성균관대[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다음의 Royal대로 성균관대 출신인 필자(윤진한, 문필가.유학자.사상가)의 사상이며, 유교와 세계종교 가톨릭의 역사적 자격을 바탕으로 공존하고자 합니다. 세계사의 오랜전통의 대학들인 중국 태학(세계 최초의 대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승계됨), 그리고 서양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파리대학의 세계사 자격은 베이징대와 성균관대에 아주 중요합니다. 세계사의 중국 황하문명, 세계종교 유교, 세계 4대 발명품으로 교육되는 중국의 종이.화약.나침판,인쇄술도 중요합니다. 학교교육 전분야에 걸쳐 근대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신학.법학.의학및 역사.철학과 고교때의 수학, 세계사, 사회문화, 국토지리.세계지리,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음악.미술등)은 유교경전이나 가톨릭 경전과 함께 세계인의 만국공통어입니다. 성균관대는 일본이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한 후, 미군정당시 성균관을 복구시키기로 법을 발효하여, 임시정부 요인들(고문:이승만.김구선생, 위원장:김창숙 선생)과 남북유림들이 모여 성균관에 대자를 더 붙여 성균관대를 설립(복구설립형식임)키로 결의하여, 성균관장이 성균관대신 성균관대를 미군정에 등록하여 국사로 가르치는성균관의 유일무이 최고대학자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균관대로 정통을 승계하기로 하자, 미군정이 향교재단의 재산으로 성균관대 재정에 기여토록 하는 법을 추가로 만들어 주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대통령령으로 시작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발행으로 행정법상 조선 성균관 승계를 추가로 법제화한것. 

 

[5]. 구한말 의병과 고종의 밀칙받은 유림들의 항거로 임시정부가 수립된것임.

고종밀명받은 유림들.대한독립의군부조직,대규모 독립운동획책,발각.

 

유림들이 3.1운동에 참여치 않은것은,그 선언서에 왕정유지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왕당파 유림이 참여하기 곤란하여서 그러함. 고종의 승하때문에도 일어난 3.1운동임. 그리고 3.1운동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한민국임시헌장에서도 "대한민국은 구황실을 우대함"이라는 조항을 넣었습니다. 이를 볼때, 을사조약이후의 의병활동, 고종의 을사조약 무효론에 입각한 외교활동, 고종의 밀명받은 대한독립의군부 조직에 의한 여러 독립운동 단체의 파생, 고종의 승하때문에 일어난 3.1운동등은 불법.강제의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을 거치며, 국권을 수호하겠다는 한국인들의 폭 넓은 지지속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연속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림들의 파리장서 운동.유교계는 3ㆍ1운동보다 7년 앞서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대규모의 독립운동을 획책하다가 발각되어 많은 핵심 인물들을 잃은 바가 있었습니다. 아래 자료들을 종합해보면 이렇습니다. 이전에 의병활동을 하다 일본 대마도(對馬島)에 유배되었던 임병찬(林炳瓚)이, 귀양에서 돌아온 뒤인 1912년 고종의 밀칙을 받고 독립의군부 전라남도 순무대장(巡撫大將)의 이름으로 비밀리에 동지를 모으기 시작하여 독립의군부를 조직하였는데, 1914년 5월 23일 동지 김창식(金昌植)이 붙잡힘으로써 조직이 발각되어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임병찬을 비롯한 많은 동지들이 일본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한독립의군부 사건 관련자는 모두 54명이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이 가운데 왕산 허위의 일족, 부하 또는 교유가 가장 많다고 파악했습니다. 실제로 허위의 사위인 이기영, 비서인 이기상 형제가 참여했고, 허위 부대의 참모를 지낸 여영조, 허위의 부하인 정철화도 참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유림들의 파리장서 운동은 이렇습니다. 3 ·1운동이 일어나자 전국의 유림(儒林)대표 곽종석(郭鍾錫) ·김복한(金福漢) 등 137명이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는 유림단 탄원서를 작성 서명하여 이를 김창숙이 상하이[上海]에서 파리의 만국평화회의에 우송한 것이다. 그러나 일경(日警)에게 발각되어 곽종석 이하 대부분의 유림대표가 체포되었으며 일부는 국외로 망명하였다. 그 후 곽종석 ·김복한 ·하용제(河龍濟) 등은 감옥에서 순사하고 그 밖의 인사들도 일경의 고문에 못 이겨 죽거나 처형되었다.

http://blog.daum.net/macmaca/3162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우리시대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교육.연구자료로 여러가지 자료들을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1988년 현행헌법전문에 임시정부구절이 반영되기 이전에도, 유일무이 합법적 기득권대학이어왔던 국사교과서 자격의 Royal대(泮宮,學宮,太學의 별칭을 가져온 성균관임)이며, 해방이후 국사자격으로 일류.명문(일류나 명문은 주권.자격.학벌없는 왜구잔재 서울대나 초급대.전문학교였던 연희전문, 보성전문들의 후신이 마음대로 규정할 성질이 못됨)의 자격을 형성해온 성균관대!

1988년 현행헌법전문에 임시정부구절이 반영되기 이전에도, 유일무이 합법적 기득권대학이어왔던 국사교과서 자격의 Royal대(泮宮,學宮,太學의 별칭을 가져온 성균관임)이며, 해방이후 국사자.. (tistory.com)

 

기존의 다음 블로그는, 카카오와 연계되어 티스토리로 전환되었으니, 앞으로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Report 제목: 일본강점기때 폐지.왜곡된 성균관. 해방후에 설립(재건승계)된 성균관대학교가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백과사전.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현대 한국사적 입장에 대한 학술적 고찰. 그리고 한국사의 성균관대(성균관에서 이어짐)와 세계사를 연계하여 해방이후 합법적으로 설립된 敎皇聖下 윤허대학인 예수회의 서강대와의 Royal.Imperial 특성의 공통점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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