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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이 '을사조약 무효' 주장 최초 제기

beercola 2013. 8. 5. 21:05

장지연이 '을사조약 무효' 주장 최초 제기.

 

연합뉴스 2005.4.4 이 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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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한국외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한국언론연구회(총무 김동철)가 4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시일야방성대곡' 10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에서 주제논문 '시일야방성대곡 100주년의 역사적 의미-위암 장지연의 항일 언론활동과 사상적 변모'를 통해 이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장지연은 '시일야방성대곡(이 날에 목놓아 통곡하노라)' 가운데 "대황제 폐하의 강경하신 뜻으로 거절해 마지않으셨으니 이 조약이 성립되지 못할 것이므로 이등박문이 스스로 알아서 파기했어야 한다(정진석 교수가 현대문으로 옮김)"는 구절이 을사조약은 무효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지적한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장지연은 논설 바로 아래 지면에 '오건조약청체전말(五件條約請締顚末)'을 실어 을사5조약의 부당성과 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전말을 소상히 알렸다.

이 날짜 신문은 일본 헌병사령부의 검열도 받지 않은 채 배포돼 장지연은 구속됐고 황성신문은 정간됐다. 그러나 영국인 배설이 발행하던 대한매일신보가 이튿날 신문에 장지연의 용기를 극찬하며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외국인에게까지 널리 알렸다.

정진석 교수는 "을사조약은 고종이 날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논리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국제정치학자들의 주장"이라며 "시일야방성대곡에서 이 문제를 제일 먼저 거론한 장지연의 탁월한 안목이 잘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 필자 의견: 독립운동가들은 해방 당시에 누구도 장지연선생, 박정희 전 대통령을 親日派라고 하지 않았고, 두 분이 親日派가 아닌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임.   이 글은 비영리적이며, 역사적 사실에 대해 진실 규명을 하기위해 공익적 차원에서 기사를 인용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