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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학교 졸업생 스스로도 패전국 노예라고 자의식을 보이던 일제 잔재 전주고를 명문이라고 하는것은 처음 들어봅니다. 왜놈학교라고 어른들이 구박하는것을 보아온 필자는 잘 받아들여지..

beercola 2021. 1. 23. 10:53

@ 자기 학교 졸업생 스스로도 패전국 노예라고 자의식을 보이던 일제 잔재 전주고를 명문이라고 하는것은 처음 들어봅니다. 왜놈학교라고 어른들이 구박하는것을 보아온 필자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호남의 최고 명문은 신흥고가 맞습니다. 나는 중학교때 어른들이 왜놈학교 전주고 자손들을 구박하였다는 전주고 출신 어른의 성장담을 듣고, 전주고 나온 공무원이 자기 아들도 왜놈 노예학교라고 자책한다는 어떤 어른 이야기를 듣고 자란 사람입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겪어서 왜놈학교 안 보내려고 하던 사람들 많습니다. 내가 전주로 와서 신흥고 다닐때, 전주고 다니다가 2년 늦게 신흥고에 다시 입학한 사람과 1학년때 같은반이었는데, 전주고 나오고 서울법대 다니다가 음악이 좋아서 서울음대로 재입학한 음악선생이 있었습니다. 수업시간에, 그 두살 많은 사람과 농담하며 뚝너머(창녀촌. 전주고가 그 뚝너머 옆에 있었음) 얘기를 하는데 어찌나 혐오감이 드는지...1978년 마지막 비평준화시절 신흥고는 전북지역에서 가장 좋은 대학진학률때문에 선망의 대상이었지요. 내가 신흥고 입학하던 1978년이면, 우리 중학교에서 이리지역의 남성고 붙고 신흥고 가서 대학가겠다고 다시 고입공부해 신흥고에 지원한 친구들이 몇 명 있었는데 세 명 모두 떨어지고, 두 명은 재수해서 결국 신흥고 뺑뺑이로 내 후배로 들어왔습니다. 또 한명은 전주고 다니던 자기형 친구가 전라고생인데, 무엇이 그리 멋있어 보였는지 남성고 붙고 다시 공부해 전라고 붙어서 학교 다녔지요.남성고는 전주지역 비평준화때 그리 대학진학률 좋던 학교 아닙니다. 왜놈학교라고하면 전주고,군산고,전주여고,군산여고,실업계 직업학교격인 전주상고, 전주여상, 전주공고, 전주농림,이리농림등이 있습니다. 가지도 않을 왜놈학교를 먼저 시험보게 해 놓아서 전주고 붙으면 다시 공부하기 싫으니까, 그대로 눌러앉는 경우가 많았지요.

요즘보면 서울지역 후기모집 자사고, 외고, 국제고 및 일반고가 있는데, 여기가려고 하지, 전기모집 고등학교 가겠습니까? 일제 강점기를 청산하지 못해서, 공립학교를 먼저 시험보게 하는 때가 있었는데, 그렇다고 학교법인 왜놈학교들이 좋다고 하는 의식있는 어른들은 없었습니다. 해방후 미군정때, 왜구 경성제대를 국립 서울대로 하려고 하니까 전국 각지의 고등중학교(중고통합과정), 대학교, 일반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국립 서울대 설립안(국대안) 반대운동을 하여 많은 재학생들이 자퇴.등록거부하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명인만 해도 김종필 전총리(육사 전신으로 감)와 남덕우(국민대로 감), 초우.이별등으로 유명한 작곡가 박춘석(경희대 전신 신흥대로 감)등이 있습니다. 국민학교 여선생(전철자)도 왜놈때 사범학교 나온것을 부끄러워 하면서, 양반이 머리 땋고 서당이나 유명 한학자에게 공부하러 가는것이 멋있다고(양반이니까 그럴것. 그러면서 파평윤씨 양반가 자제인 필자에게 윤진한도 머리땋고 학동 모습하면 멋있을 것 같다고)그러더군요. 그 선생님때 서울대 국대안 반대운동에 참여하여 데모했다고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이들어서 어떤 아주머니가 다른 아주머니와 대화하다가 남편의 근친상간 문제때문에 자포자기하여 절망하는 말을 듣고, oo고 나온 사람은 그런다며 하고 무심코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마비되며 아무말도 안 나오더군요. 중학교때 윤리선생이 일본은 과학기술은 발달했는데 근친상간이 안 좋다고 어린 학생들 앞에서 교육하는데, 감이 안 잡히던 나이였습니다. 불교 Monkey 일본 행태중 하나인 근친상간 문제때문에 절망하던 사람들. 양반이 중요하던 그 당시에, 자격없는 왜놈학교 知가 무슨?(이런 암시어도 들었습니다).

일본은 성씨없는점쇠賤民천황(불교Monkey점쇠가 마당쇠Monkey賤民 서울대 전신 경성제대설립)의 불교(창조신부정 침팬치계열)기반 근친상간(성인야설,야동.한국오염중,안보기.퇴출要) 동물국. 일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출신이 소라넷으로 법적 처벌받은 사례보니까 실감이 납니다.

@ 광주 민주화사건처럼 서울대 국립대 설치 반대안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결코 서울대 인정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필자가 대학교때 서울대 나오고 하버드 유학파인 성균관대 국제법교수(고 김정균 교수)가 자기는 서울대가 대중언론에서 아무리 좋게 나와도 인정않는다라고 수업시간에 말하더군요. 일본과 국교 수립때 김종필 총리와 함께, 법안작성에 같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국대안 반대운동처럼 전국적인 한일회담 반대투쟁을 겪었던 한국입니다.

비평준화때 가장 좋은 대학교 진학률을 보였던 신흥고는 주로 공대를 많이 보내는 학교방침에 따라, 타 학교보다 적은 학급수에서 이공계로 진학을 많이 한 학교입니다. 문과쪽보다는 회사원,자영업자, 의.약사, 목사, 음악인, 사업하는 사람들이 많을것. 전북은 신흥고가 오래된 명문이고, 그 다음 전라고입니다. 사회생활하다보면, 고등학교 선배도 중요한데(지역에서는 더욱 그러함), 서울에서 살며 비평준화 자사고 성격의 상산고출신 서울대 졸업자가 자기 고등학교는 선배가 없다고 신흥고를 부러워 하더군요. 하긴 지금 보내라면 내 후손은 신흥고나 전라고 해성고, 상산고, 이리고를 보낼것입니다.

 

3.1운동, 광주 학생운동, 신사참배 거부로 자진 폐교, 해방후, 6.25 동란 학도병 참가, 5.18 민주항쟁때는 광주지역 외, 전국 고등학교 최초로 5.27 교내시위의 의기를 발산한 호남의 명문 전주 신흥고. 뛰어난 지능이라기보다는 구한말 한국에 설립되어, 일제강점기 단절된 역사를 안은채, 의기와 오랜 역사로 해방후 초대 서울시장, 제헌 국회의원 2명, 조선대 설립자(2.4대 국회의원), 고려제지 대표에 4대 국회의원, 거창고등학교 설립자, 차병원 설립자, 정세균 국무총리, 수산중공업 정석현 회장등 배출한 저력의 명문사립고. 미국에서도 동문회가 잘된다는 학교. 전북지역 카르텔로 전라고.해성고등이 있으며, 일제강점기 소위 왜놈학교로 패전국 奴隸계열 일본 잔재 전주고나 군산고 카르텔보다 민족적 자부심이 있는 학교 전주 신흥고.

 

광주항쟁당시 군사정권이 폐교도 검토했으나,승전국 미국 선교사가 세운 기독교 학교라 강대국의 숨은 위력을 발휘해 CIA한국책임자가 개입,폐교는 면하고, 졸업생들이 보복없이 활동하게 해준것은 기억하겠음.전두환.노태우 같은 서슬퍼런 군부통치자의 시대에, 한국학교라면 폐교대상인데, 군부가 어쩌지 못할 정도의 위력을 발휘했던 학교. 카터 대통령이 방문하려다 방문이 취소될 정도로, 한국 고등학교 중에서는 가장 미국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학교임.

필자는 국사 성균관 자격으로, 6백년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자격을 가진 Royal성균관대 출신임. 차후 성황폐하를 법으로 배출해야 될 성대출신.교황 윤허 서강대는 서왕전하.현재 황사손은 대한제국 황제 후손 (이 원).

 

. 김종필 국대안 반대, 학교 옮김.

[원희복의 인물탐구]“JP, 변혁에서 시작, 쿠데타 거쳐 모호함으로 맺다” - 경향신문 (khan.co.kr)

 

. 남덕우 국대안 반대, 학교 옮김.

[경향 60돌]설립 60주년 사립대학 - 경향신문 (khan.co.kr)

 

. 초우.이별등으로 유명한 박춘석씨는 오래전에 TV에 나와서 대담하던중, 왜 서울대를 그만두고 학교를 옮겼냐고 물으니까, 자기시대는 그게 옳았다고 답변.

별세한 작곡가 박춘석씨의 생애 (hankookilbo.com)

 

. 국사성균관자격 Royal성균관대(한국최고대).Royal서강대(교황윤허,성대다음)는 일류,명문.한국에 주권없이 대중언론항거해온 서울대(헌법에 임시정부반영,대일선전포고.패전국奴隸.賤民)한참뒤奴婢들 이이제이.최근상위대 한양대,중앙대,경희대,외국어대,건국대,인하대,이화여대,숙명여대,패전국 奴隸.賤民불교Monkey서울대(100번),연세대(국시110브),고려대

.해방후 미군정당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의 국립대화에 반대하던 중등학교(현재는 중.고 분리)들에 대한 단상.필자의 글임

http://blog.daum.net/macmaca/2135

 

 

@ 필자는 대학.교육.종교관련 관심이 지대한 성균관대 출신 문필가.사상가 윤진한(宮 儒)입니다. 1962년생으로 성균관대 1983학번으로 퇴계장학생이 되어 성균관대 경상대학 무역학과(주간)를 입학하고, 1988년에 졸업하였으며 대기업과 외국계 보험회사를 다니고, 세일즈맨으로 살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어 블로그에 20년 넘게 글을 써오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양반가문이신데, 필자는 파평윤씨 양반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중 1때 알게된 왜구학교들에 대한 조상들의 배척을 접하고 잊고 살아왔습니다. 어리고 아무 근거도 없고, 입시지.대중언론의 일방적 주입만 겪으면서도, 왜구학교들에 대한 본능적인 배척은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20년 정도 틈틈이 블로그에 글을 써오다가, 필생의 과업을 이루기 위해 최근 1년 넘게 문필가.사상가.유학자로 전업 문필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그러니까 45년 넘는 과정을 거쳐 최근의 이런글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필자의 고교시절때는 박정희 대통령의 학벌에 대한 의구심, 동향의 서강대 출신 선배의 의구심을 간접적으로 경험하였다고 생각하며, 나중에는 김종필 총리도 필자에게 간접적인 개입을 하였습니다. 해방당시 서울대생들이 자퇴.등록거부하고,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의 국립대화에 전국적인 반대를 당하고, 한.일 국교정상화때도 전국적인 데모를 겪었던 분들의 학벌에 대한 의구심이 필자에게 영향을 끼친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건 본인이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대중언론.입시지를 수 없이 접하고, 교과서교육과 헌법.국제법, 유교 경전(가톨릭도 간접 체험), 백과사전, 학술서를 중심으로 객관적으로 자료를 모으는 노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대중언론에서 아무리 공격당해도 국사 성균관(성균관대), 한나라 태학.이후의 국자감(베이징대로 승계), 볼로냐.파리대학의 교과서 자격은 변하지 않더군요. 세계종교 유교와 로마 가톨릭도 그렇습니다.교황성하의 신성성도 변하지 않더군요. 과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교과서 교육은 거의 변할 사유가 없을것입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