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문화권의 24절기인 입동(立冬). 양력 2019년 11월 8일(음력 10월 12일)은 전국적으로 김장철에 접어드는 입동입니다.
유교문화권의 24절기인 입동(立冬). 양력 2019년 11월 8일(음력 10월 12일)은 전국적으로 김장철에 접어드는 입동입니다.
김장은 입동 전 혹은 입동 직후에 하여야 제맛이 난다고 합니다. 배추값이 비쌀때는 별 수 없이 포장김치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온난화 현상때문에 입동 이후에도 김장을 많이 하고, 포장김치도 잘 발달하여 가을태풍등으로 너무 배추값이 비싸면 다른 적절한 방법을 찾는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1]. 입동(立冬)
1. 유교 경전 예기(禮記)에서 설명하는 입동(立冬)에 대한 내용입니다.
是月也,以立冬。先立冬三日,太史謁之天子曰:「某日立冬,盛德在水。」天子乃齊。立冬之日,天子親帥三公、九卿、大夫以迎冬於北郊,還反,賞死事,恤孤寡。
이 달에는 입동이 있으므로 입동 3일전에 태사가 천자를 뵙고 말하기를, "모일(某日)은 입동입니다. 천지의 성덕이 수위에 있습니다."고 한다. 천자는 곧 재계한다. 입동에는 천자가 몸소 3공.9경.대부를 거느리고 북쪽 교외에서 겨울을 맞이하고(전욱 및 현명을 제사지낸다), 돌아와서 나라일을 위해 죽은자를 상주고 그 고아와 과부를 구휼(救恤)한다.
음력 10월의 24절기로는 입동(立冬)과 소설(小雪)이 있는데, 이 때는 초겨울로 겨울에 먹을 무언가를 저장하는 달로 유교 경전 예기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유교 경전인 예기 월령에서 언급하는 맹동지월(孟冬之月)인 음력 10월에 겨울대비, 저장하고, 쌓아놓고, 거두어들이는 내용(命百官謹蓋藏, 命司徒 循行積聚 無有不斂)은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 다 음 -
命有司曰 天氣上騰 地氣下降 天地不通 閉塞而成冬 命百官謹蓋藏 命司徒 循行積聚
無有不斂
또 유사에게 명하기를, "지금은 하늘의 양기가 위로 올라가버리고 땅의 음기가 아래로 내려가 천지가 서로 통하지 않고 폐색(閉塞)되어 겨울철을 이루었다(그러니 삼가 추위를 막는 준비를 하라)."고 한다. 그리하여 백관에게 명하여 삼가 창릉과 부고를 수리하여 저장시키고, 사도(司徒)에게 명하여 읍리(邑里)를 순행하게 하여 노적가리를 살펴서 창고에 거둬들이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한다.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2. 중국은 전통적으로 태음태양력을 쓰고 있는 나라입니다. 물론 현대는 양력을 많이 쓰지만, 중국.한국.베트남.몽고의 전통 유교국 및 2차대전후의 신생 유교국가인 대만.싱가포르, 전 세계 중국화교는 태음태양력에 의해 음력으로, 설날(춘절)같은 전통 명절을 쇠고 있습니다.
음력은 양력과 달리, 주로 달의 운행에 맞추어 사용한 역법이라, 밤에 달이 운행할 때, 계절이나 24절기를 적용해야 들어맞는 역법입니다. 태양이 활동하는 낮과는 다소 계절 차이가 발생합니다.
2]. 한국의 사전류에서 설명하는 입동(立冬).
1. 표준 국어대사전에서 설명하는 입동.
이십사절기의 하나. 상강(霜降)과 소설(小雪) 사이에 들며, 이때부터 겨울이 시작된다고 한다. 11월 8일경이다.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설명하는 입동(立冬).
입동(立冬)
정의
24절기의 하나.
내용
상강과 소설 사이에 들며, 음력 10월, 양력 11월 8일경으로, 태양의 황경이 225°에 이를 때이다. 입동을 특별히 절일(節日)로 여기지는 않지만 우리의 겨울생활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
겨울 동안의 김치를 장만하는 김장은 입동을 기준해서 하기 때문이다. 김장은 입동 전 혹은 입동 직후에 하여야 제맛이 난다. 입동이 지난 지가 오래면 얼어붙고, 싱싱한 재료가 없으며, 일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 때가 되면 시장에는 무·배추가 가득 쌓이고, 또한 옛날에는 냇가에서 부녀자들의 무·배추 씻는 풍경이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다. 전라남도지방에서는 입동의 날씨를 보아 그해 겨울 날씨를 점친다.
즉, 입동날 추우면 그해 겨울은 몹시 춥다고 한다. 경상남도 도서지방에서는 입동에 갈가마귀가 날아온다고 하며, 밀양지방에서는 갈가마귀의 배에 흰색의 부분이 보이면 이듬해에 목화가 잘된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입동날씨점을 본다. 즉, 입동에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바람이 독하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이른바 고사를 지낸다.
그해의 새 곡식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토광·터줏단지·씨나락섬에 가져다 놓았다가 먹고, 농사에 애쓴 소에게도 가져다주며, 이웃집과도 나누어 먹는다.
. 출처: 입동[立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두산백과에서 설명하는 입동(立冬).
입동[立冬]
- 요약 24절기 중, 19번째 절기로서 음력 10월 절기이다. 양력 11월 7~8일 경으로 태양의 시황경이 225˚일 때이다. 이날부터 겨울이라는 뜻으로, 동양에서는 입동 후 3개월을 겨울이라 한다.
24절기
양력 11월 7∼8일경으로, 상강(霜降) 후 약 15일, 소설(小雪) 전 약 15일에 해당한다. 태양의 시황경이 225°일 때 입동이 들고, 음력으로 10월 절기이다. 이날부터 겨울이라는 뜻에서 입동이라 부르고, 동양에서는 입동 후 3개월(음력 10∼12월)을 겨울이라고 한다.
늦가을을 지나 낙엽이 쌓이고 찬바람이 분다. 김장시기는 입동 전후 1주일간이 적당하다고 전해 내려오지만 근래에는 김장철이 늦어져 가고 있다. 옛날 중국에서는 입동기간을 5일씩 3후(三候)를 정하여, ① 물이 비로소 얼고, ② 땅이 처음으로 얼어 붙으며, ③ 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고 하였다.
[24절기]
. 출처: 입동[立冬] (두산백과)
4. 한국 세시풍속사전에서 설명하는 입동.
입동
[ 立冬 ]
정의
24절기 중 열아홉 번째 절기. 이날부터 겨울이 시작된다고 하여 입동(立冬)이라고 한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225도일 때이며, 양력으로는 11월 7일 또는 8일 무렵, 음력으로는 10월에 든다.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 후 약 15일,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 전 약 15일에 든다.
내용
중국에서는 입동 후 5일씩을 묶어 3후(三候)로 삼았다. 초후(初候), 중후(中候), 말후(末候)가 그것으로 초후에는 비로소 물이 얼기 시작하고, 중후에는 처음으로 땅이 얼어붙으며, 말후가 되면 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입동을 특별히 명절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겨울로 들어서는 날로 여겼기 때문에 사람들은 겨울채비를 하기 시작한다.
입동 즈음에는 동면하는 동물들이 땅 속에 굴을 파고 숨으며, 산야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풀들은 말라간다.『회남자(淮南子)』권3 「천문훈(天文訓)」에 의하면 “추분(秋分)이 지나고 46일 후면 입동(立冬)인데 초목이 다 죽는다.”라고 하였다. 낙엽이 지는 데에는 나무들이 겨울을 지내는 동안 영양분의 소모를 최소로 줄이기 위한 자연의 이치가 숨었다.
입동 무렵이면 밭에서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하기 시작한다. 입동을 전후하여 5일 내외에 담근 김장이 맛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온난화 현상 때문인지 요즈음은 김장철이 조금 늦어지고 있다. 농가에서는 냉해(冷害)를 줄이기 위해 수확한 무를 땅에 구덕(구덩이)을 파고 저장하기도 한다. 추수하면서 들판에 놓아두었던 볏짚을 모아 겨우내 소의 먹이로 쓸 준비도 한다. 예전에는 겨울철에 풀이 말라 다른 먹이가 없었기 때문에 주로 볏짚을 썰어 쇠죽을 쑤어 소에게 먹였다.
입동을 즈음하여 예전에는 농가에서 고사를 많이 지냈다. 대개 음력으로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날을 받아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하고, 제물을 약간 장만하여 곡물을 저장하는 곳간과 마루 그리고 소를 기르는 외양간에 고사를 지냈다. 고사를 지내고 나면 농사철에 애를 쓴 소에게 고사 음식을 가져다주며 이웃들 간에 나누어 먹었다.
입동에는 치계미(雉鷄米)라고 하는 미풍양속도 있었다. 여러 지역의 향약(鄕約)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계절별로 마을에서 자발적인 양로 잔치를 벌였는데, 특히 입동(立冬), 동지(冬至), 제석(除夕)날에 일정 연령 이상의 노인들을 모시고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것을 치계미라 하였다. 본래 치계미란 사또의 밥상에 올릴 반찬값으로 받는 뇌물을 뜻하였는데, 마치 마을의 노인들을 사또처럼 대접하려는 데서 기인한 풍속인 듯하다. 마을에서 아무리 살림이 없는 사람이라도 일년에 한 차례 이상은 치계미를 위해 출연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도랑탕 잔치로 대신했다. 입동 무렵 미꾸라지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도랑에 숨는데 이때 도랑을 파면 누렇게 살이 찐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다. 이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노인들을 대접하는 것을 도랑탕 잔치라고 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10월부터 정월까지의 풍속으로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임금에게 우유를 만들어 바치고, 기로소(耆老所)에서도 나이 많은 신하들에게 우유를 마시게 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겨울철 궁중의 양로(養老) 풍속이 민간에서도 행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입동을 즈음하여 점치는 풍속이 여러 지역에 전해오는 데, 이를 ‘입동보기’라고 한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속담으로 “입동 전 가위보리”라는 말이 전해온다. 입춘 때 보리를 뽑아 뿌리가 세 개이면 보리 풍년이 든다고 점치는데, 입동 때는 뿌리 대신 잎을 보고 점친다. 입동 전에 보리의 잎이 가위처럼 두 개가 나야 그해 보리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 믿어지고 있다. 또 경남의 여러 지역에서는 입동에 갈가마귀가 날아온다고 하는데, 특히 경남 밀양 지역에서는 갈가마귀의 흰 뱃바닥이 보이면 이듬해 목화 농사가 잘 될 것이라고 점친다.
이러한 농사점과 더불어 입동에는 날씨점을 치기도 한다. 제주도 지역에서는 입동날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겨울 바람이 심하게 분다고 하고, 전남 지역에서는 입동 때의 날씨를 보아 그해 겨울 추위를 가늠하기도 한다. 대개 전국적으로 입동에 날씨가 추우면 그해 겨울이 크게 추울 것이라고 믿는다.
. 출처: 입동[立冬] (한국세시풍속사전)
3]. 태음태양력 [lunisolar calendar, 太陰太陽曆].
- 요약
- 달의 삭망에 기준을 두면서, 계절에도 맞춘 역법이다. 30일 큰달과 29일 작은 달을 번갈아 두며 12개월 또는 13개월을 1년으로 한다. 평년에는 354일과 355일, 윤년에는 383일과 384일의 4가지 1년이 있다. 치윤법으로 19년에 7회 윤달을 두는 메톤법이 채용되었다.
큰달(30일)과 작은달(29일)을 조합하여 12개월(平年) 또는 13개월(閏年)을 1년으로 하는데, 평년에는 354일과 355일, 윤년에는 383일과 384일의 네 가지 1년이 있다....
태음태양력은 달의 차고 기울기를 주로 하면서 태양의 운행에 맞춰보려고 노력한 역법이다. 이 역법은 달과 태양의 두 운행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므로 매우 복잡하게 되기는 하지만, 실지로는 고대의 여러 나라와 여러 민족이 이 역법을 채택하였다. 물론 1태양년이 12삭망월과 정확히 일치한다면 태음력·태양력·태음태양력의 구분이 없게 되겠지만, 실제로는 태양년과 삭망월과의 비는 12.36827(=365.24220÷29.53059)이다.
이 일수 6940일을 중국에서는 장(章)이라고 하여, 이미 BC 600년경인 춘추시대의 중엽에 발견한 주기이고, 그리스에서는 BC 432년경에 메톤주기라고 하여 아테네의 메톤에 의하여 발견된 주기이다. 그리하여 19년 동안에 윤달을 7회 넣는 방법이라 하여 19년 7윤법(十九年七閏法)이라고 하였다. 태음태양력에는 바빌로니아력, 유대력, 그리스력, 인도력, 중국력, 한국에서의 음력(陰曆) 등이 있다.
한국은 중국 문화권 내에 속해 있어서 역에서도 중국력을 수입하여, 이것을 그대로, 또는 약간의 손질을 하여 우리의 역으로 써왔다. 그 중 백제에서는 중국에서 들여온 역법을 다시 일본에게 전달해 준 일도 있었다. 이들의 모든 역이 태음태양력이다.
각 시대별로 채택된 역법을 간단히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신라시대 674년(문무 14)에 대나마덕복(大奈麻德福)이 당나라에서 역술(曆術)을 배워와서 역서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역은 이순풍(李淳風)의 인덕력(麟德曆)일 것이라고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적혀 있다.
인덕력은 당나라가 665년에 반포하여 그후 64년간 쓰였던 역인데 1태양년을 489428/1340, 1태음월을 39571/1340이라는 일수를 주고 있다. 당시에는 소수(小數)를 다룰 줄을 몰라 이와같이 분수로 표현했는데 년과 월의 분모가 과거의 역에서는 달랐지만, 인덕력부터는 같은 값을 취하였다....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 서문(序文)에는 신라에서 대연력(大衍曆)도 쓰였다고 한다. 이 역은 인덕력의 일식예언이 맞지 않아 729년에 일행(一行)이라는 중이 엮었는데, 태양운동의 부등속을 나타내는 주요항인 중심차(中心差)를 밝혔다. 대연력은 729년 동안이나 채택된, 당의 대표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후주서(後周書)》와 《수서(隋書)》의 각 <열전(列傳)>에 백제는 송나라의 원가력(元嘉曆)을 썼고 인월(寅月)을 연초로 한다고 적혀 있다. 백제의 기록과 《니혼쇼키[日本書紀]》에는 일본에게 역박사를 보내어 역법을 알려준 후, 일본에 원가력이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백제가 원가력을 썼다는 증거이다. 원가력의 흔적은 무령왕릉(武寧王陵)의 지석에 있다. 원가력은 송나라 때 하승천(何承天)이 만들어서 445년 이래 65년간 송나라에서 채택되고 백제에서는 건국 초부터 계속 이 역을 썼다. 1일의 시작은 밤중이 되고, 갑자삭 오전 0시, 우수(雨水) 입기시각을 1년의 시작으로 하였다. 원가력에서는 평기법과 평삭법이 쓰였다.
고려 태조 때 고려에서는 당의 선명력을 이어받아 썼다고 하는데 이것은 나당(羅唐) 사이의 국교로 보아 830년경에는 신라에서도 선명력이 사용되었으리라고 믿어진다. 선명력에서는 태음시차(太陰視差)를 고려하여 일월식 계산에 약간의 진보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특별한 과학사상이 새로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선명력은 고려시대에도 건국 이래 충선왕까지 근 500년간 쓰였다.
중국에서는 당(唐)·송(宋)이 자주 개력하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 말기부터 고려 말기에 이르는 약 500년간 선명력을 계속 써왔다. 그러나 이 역법에 오차가 생겼을 때 고려에서는 해결하려고 매우 애썼을 것이다.
그후 1281년(충렬 7) 원나라 사신 왕통(王通)이 수시력(授時曆)을 가져왔었고, 이어 충선왕(재위 1309∼14) 때에 최성지(崔城之)가 왕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수시력을 얻어와 이것을 준용하게 하였다. 원나라에서는 이 역을 1280년부터 88년간 채택하였다. 수시력은 곽수경(郭守敬)·허형(許衡)·왕순(王恂) 등이 여러 관측기계를 제작하여 면밀한 관측과 정밀한 계산을 하여 엮은 역법인데 중국력으로서 최선의 역이라고 알려져 있다. 역원(曆元)을 너무 멀리 잡지 않고, 소수를 활용하여 1년의 길이가 점점 줄어든다는 소장법(消長法)을 채택하였다.
대통력은 이 수시력의 소장법을 없앤 것인데 1370년(공민왕 19)에 성준득(成准得)이 명나라에서 얻어왔다. 그러므로 대통력은 수시력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대까지 합치면 중국에서의 수시력의 수명은 근 500년이나 되며, 한반도에서는 1370~1652년(효종 3)의 약 350년간 쓴 셈이 된다.
1653년(효종 4)에 서양역법인 시헌력이 흘러들어오게 되었다. 시헌력에서는 처음으로 정기법(定氣法)이 채택되었고, 삼각함수에 의한 수식계산을 하였으며 천체운동에 관하여는 처음에는 이심원(離心圓:複合圓)의 사상을, 나중에는 타원궤도의 사상으로 전진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1896년 태양력의 실시까지 쓰였다.
. 출처: 태음태양력[lunisolar calendar, 太陰太陽曆] (두산백과)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의 유교와 세계의 유교를 되돌아보고, 다방면으로 연구.검토하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고 있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
http://blog.daum.net/macmaca/2524
2.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
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Royal대 예우.
http://blog.daum.net/macmaca/2560
3. 한국은 유교나라임. 불교는 한국 전통의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 http://blog.daum.net/macmaca/2632
4.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blog.daum.net/macmaca/2596
5.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179
6.한국에서는 Royal대인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 세계사를 반영시 관습법적으로 교황 윤허 Royal 서강대도 성대 다음 Royal대로 두 대학이 가장 학벌이 높고 좋음. 서울대는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같은 건 없음. 단지 마음대로 등록하던 여러 신문에 남아있던, 친일부왜배들이 성균관대에 도전하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나라에서 일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주권없고 학벌없는 대학임은 변치 않음.
http://blog.daum.net/macmaca/2260
7. 한국사와 세계사의 연계는 불가피함. 그 동안의 한국 공교육 전통을 감안하면, 지엽적인 마찰이 생겨도 수천년 인류역사를 담은 세계사와의 연계는 가장 옳은 정답에 해당됩니다. 한나라이후 세계종교로 동아시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아온 유교전통.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Royal대 예우.
http://blog.daum.net/macmaca/2575
8. 유교의 내세관(來世觀)과 기복신앙(祈福信仰) 측면에 대한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800
9. 유교국가의 전통적 특징중 하나는 호적(戶籍)제도였음. 한국과 중국의 호적제도에 관하여!
http://blog.daum.net/macmaca/2492
10. 세계사로 볼때,한나라때 동아시아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은 이미 세계종교 유교가 자리잡았음. 위만조선.한사군때 유교가 한국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고려.조선시대는 기자조선도 인정했었음. 한자, 한문성씨사용,고인돌, 고대 부여 영고,고구려동맹, 예의 무천,삼한의 상달제등 제천의식이나 전통 유교풍속은 황하문명에서 피어난 상고시대 유교의 영향을 나타냄. 이후 삼국시대는 부여 및 삼한의 유교를 승계하여 난생신화같은 하늘의 아들 의식, 하늘숭배.조상숭배가 있는 설날.추석.단오.한식같은 유교 명절, 유교 교육, 한자의 사용, 한문성씨의 사용등이 있었고, 불교는 중국불교형태로 받아들였지만,거센 반발때문에, 신라의 경우 이차돈의 순교가 있고나서야 후발 외래 포교종교로 불교를 받아들임. 고려는 치국의 도가 유교, 수신의 도가 불교였는데, 유교의 각종 명절과 제사가 있었고, 교육기관으로 국자감이 있었음.
새롭게 종교인구 산출을 어떻게 해도,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11. 1954.10.1,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승만) 연설문. 우리나라의 종교인 유교를 강조, 유교의 교훈을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 아세아 동방 모든 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를 입었다고 하시며, 유교의 교훈을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 유교의 전통 가르침인 삼강오륜을 중시하는 연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