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신소재…러시아 과학기술 성과 한눈에. 세계사의 기득권은 존중하면서도 승전국등의 국가주권은 강하게 보호해야!
드론·신소재…러시아 과학기술 성과 한눈에. 세계사의 기득권은 존중하면서도 승전국등의 국가주권은 강하게 보호해야!
@ 대중언론 보도자료.
드론·신소재…러시아 과학기술 성과 한눈에
한-러 과학기술 경제협력위, 28일 과학기술 경제포럼 개최
2017.11.27, 연합뉴스 신선미 기자 보도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1/27/0200000000AKR20171127162300017.HTML?input=1195m
@ 필자의견
1. 2차대전 이후 군사력 부분에서 그 보유한 핵무기 수(그리고 우주탐사 및 군사력.국방관련 과학기술등)를 볼때 미국과 더불어 구소련(러시아로 승계됨)의 군사력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세계의 지배력이 서유럽에서 미국과 소련으로 옮겨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서술한 내용을 필자는 군사적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존중하겠음. 미국과 러시아가 UN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의 지위가 여전하고, 핵무기나 우주탐사기술이 세계 선두그룹을 유지하면 군사력 분야의 미.러 두 나라의 지배권은 특별히 변할 사유도 없을 것 같음.
한나라 태학.국자감(중국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명칭 변경되어 계승됨), 볼로냐.파리 대학, 교황제등의 부분적인 기득권이 유지되더라도, 승전국(또는 한국같은 대일선전 포고국가)의 영토내에서는 승전국의 주권이 우선하고, 승전국의 재량에 따라 승전국의 국가주권을 우선하면서, 패전국 잔재를 청산하는게 인류의 보편법칙으로 더 타당하다고 판단합니다.
세계사에서 이태리의 볼로냐대학등의 기득권이 학술적으로 유지되는상태에서, 2차대전 승전국(또는 한국같은 대일선전 포고국가)의 영토내에서는, 세계사의 내용들을 학술적 참조자료 정도로만 인용하고, 승전국(또는 한국같은 대일선전 포고국가)의 국가주권을 우선하여 적용하는게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입니다.
2. 세계의 핵무기 보유현황
가. 2015년 6월 15일,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김병철 작성자 보도기사
전 세계 핵무기 현황을 한 장에 담았다(인포그래픽)
전 세계 핵무기는 몇개나 될까.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15년 전 세계 핵보유국의 핵탄두 보유량이 담긴 연례군축보고서를 공개했다.
1. 러시아 7500개
2. 미국 7260개
3. 프랑스 300개
4. 중국 260개
5. 영국 215개
6. 파키스탄 100~120개
7. 인도 90~110개
8. 이스라엘 80개
9. 북한 6~8개
http://www.huffingtonpost.kr/2015/06/15/story_n_7583290.html
나. 2006.10.9. 한국 한겨레신문 보도기사
세계 각국 핵무기 보유 현황
북한이 9일 오전 핵실험을 강행함에 따라 핵무기 보유 5대 강국을 비롯한 일부 핵개발 의혹 국가들의 핵무기 보유현황이 관심을 끌고 있다.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은 현재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개국만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있으나 최근 국제사회의 핵 신경전은 이들 5개국만이 핵무기 기술을 독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NPT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핵보유국임을 선언한 인도, 파키스탄은 실제 핵보유국 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핵보유 선언을 하지 않은 이스라엘과 이란은 잠재적 핵보유국으로 분류된다.
북한이 핵실험 성공으로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공식 선언할 경우 세계 8번째의 핵무기 보유 선언국이 된다. 그러나 단순 실험 성공 만으론 북한이 실전배치할 수 있는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고는 할 수 없다.
▲핵보유 선언국
△미국= 지난 1945년 처음으로 핵폭탄을 투하한 이래 대략 1만6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7만6천50개의 핵탄두를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 운용하고 있는 핵탄두 가운데 1천600여개는 지상에서 발사되는 대륙간탄도 미사일(ICBM)인 미니트맨과 피스키퍼 미사일의 탄두이고 1천660개는 B-52 및 B-2 폭격기 탑재용 핵탄두이다. 또 2천880기는 오하이오급 잠수함에 탑재하게 되며 1천120기는 전술핵무기(TNW)용으로 분류되고 있다.
미국은 특히 해외 주둔지에 핵무기를 배치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러시아= 1949년 핵실험을 개시, 대략 7천여개의 전략 핵탄두를 배치하고 있으며 전술 및 비축용 탄두까지 포함하면 보유량은 2만여개로 크게 늘어난다.
△프랑스= 60대의 미라지 2000N 폭격기 및 4대의 탄도미사일 탑재 핵잠수함(SSBN), 항공모함 탑재기에 사용 가능한 350개의 핵탄두를 갖고 있다.
△영국= 1952년 핵실험을 개시한 후 뱅가드급 핵잠수함에 탑재할 수 있는 대략 200여개의 전략 및 "준전략"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 400여개의 전략ㆍ전술 핵무기와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은 핵보유국으로 지난 92년 NPT에 가입한 바 있다.
△북한= 2005년 2월10일 핵무기 보유 선언에 이어 5월11에는 영변 5MW 원자로에서 폐연료봉 8천개 인출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또 지난 7월5일에는 대포동 2호 등 미사일 발사, 국제사회의 반발을 몰고 왔으며, 지난 3일 핵실험 계획을 발표한 지 6일만인 이날 핵실험을 강행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그동안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반드시 전장에 배치할 수 있는 핵무기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말해왔다.
△인도= 1974년 핵실험을 개시한 이후 핵보유국임을 공식 선언한 인도의 무기급 플루토늄 비축량은 240∼395㎏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핵탄두 설계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단순한 형태의 핵무기 40∼90개 정도를 제조할 수 있는 양으로 파악되고 있다.
△파키스탄= 자신들이 보유 중인 `최소한의 핵 억지력'이 인도 내륙 깊숙이 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밝혀왔다. 분석가들은 파키스탄의 핵무기 보유량이 지난 1998 년 5월 첫 핵실험 당시 10개 내외였으나 현재 최대 48개까지 늘어났을 것으로 보고 있다. NPT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핵보유 비선언국
△이스라엘= 핵보유국임을 밝히진 않았으나 일반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로 분류된다. 대략 100∼200개의 핵폭발 장치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공식적으로는 중동지역에서 핵무기를 들여오는 첫 국가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NPT에는 가입하지는 않았다.
△이란=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적하는 군사 전문가들에 의해 핵보유국으로 의심을 받아왔으나 핵개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진 않는다. 이란은 그간 핵무기 개발을 추진 중이라는 미국측 의혹 제기를 부인하면서 자신들의 핵 프로그램이 전력 수요에 맞추기 위한 평화 목적의 발전용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162861.html#csidx416f1c7b1d03c32803e9bedffeff436
3. 2차대전후 세계의 지배력이 서유럽 국가에서 미국과 소련으로 옮겨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견해.
제2차 세계대전
第二次世界大戰
World War Ⅱ
세계 경제공황 후 모든 강대국들이 참여한 전쟁(1939~45).
주요참전국은 독일·이탈리아·일본(이상 추축국[樞軸國])과 프랑스·영국·미국·소련·중국(이상 연합국)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해결하지 못한 채 남겨둔 분쟁이 20년 동안의 불안한 잠복기를 거쳐 다시 폭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여러 면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연장이었다. 이 전쟁은 유럽 대륙 전역뿐만 아니라 태평양의 섬들, 중국과 동남아시아, 북아프리카, 세계의 바다를 무대로 전개되었다(→ 색인 : 아시아, 아프리카). 제2차 세계대전은 20세기 지정학적 역사의 분수령으로서, 소련의 세력이 동유럽 여러 나라까지 뻗치는 결과를 낳았고, 중국에서는 공산당 정권이 수립되었으며, 세계의 지배력이 서유럽 국가에서 미국과 소련으로 옮겨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4,000만~5,0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인 동시에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다.
. 출처: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판.
4. UN안보리 상임이사국이라는 자격과 승전국이라는 자격을 볼때, 아편전쟁이전에는 황하문명의 중국(중국 유교가 아시아인에 영향끼침)과 서유럽(교황청이 정신적으로 유럽인에 영향끼침)의 균형상태였는데, 아편전쟁이후에는 서유럽(교황청 포함)이 세계의 지배세력이 되었고, 2차대전 이후에는 多極化 時代로 접어들었습니다.
황하문명의 중국과 漢字.유교(그리고 漢나라 太學)등에 영향받은 나라들, 에게문명과 로마제국.라틴어.로마가톨릭(그리고 볼로냐.파리대학)에 영향받은 나라들의 舊大陸(아시아와 유럽) 세력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다만 군사력 분야에서는 $화라는 기축통화를 가진 미국이 UN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면서 세계 최고 군사 강대국이 되어 舊 소련(러시아로 이어짐)과 더불어 군사력분야 지배세력으로 대두하여 전통의 중국.서유럽(정신적인 영향력의 교황청)과 多極化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세계사의 定說은 존중하면서도, 2차대전 승전국[또는 한국처럼 2차대전 종전후 공식 승전국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못했던 연합국편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카이로 선언이후 구소련(러시아로 이어짐).프랑스.폴란드의 인정을 받아서 그 시점부터 국제법과 국내법상 한국 임시정부는 일본등의 추축국에 대한 선전포고국이며 승전국 반열이었음. 또한 임시정부 기준, 그 시점부터 국내법과 국제법상 한일병합과 불평등조약인 을사조약은 무효였음]의 권리가 침해당하거나 억울하지 않도록 하는것은 필수적인 사항입니다.
5. 대한민국 임시정부 같은경우, 카이로 선언이후 프랑스.구 소련(러시아로 이어짐).폴란드 정부의 승인을 받아서 그 시점부터 국내법과 국제법상 이미 정통성을 확보하였습니다.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이후 2차대전 승전국들은 연합국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일본등의 추축국에 선전포고한 한국 임시정부나 장개석 중국정부는 연합국편에 서지 않고 일본.독일.이태리 등의 추축국에 가담했다면 역사적으로도 탄압대상이 되고 실제 생활에서도 체포.구금 및 사형언도등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런 피해를 예상하고 한국 임시정부는 전쟁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연합국편에 가담하였기 때문에, 이제라도 국제사회 및 국내에서 충분한 전승국 대우를 인정받아야 할 자격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정부가 공식 출범후에 헌법에 임시정부 조항을 넣지 않아서 한국인의 자주정부가 물리력을 행사할 강행규범의 근거가 부족했었습니다. 그러나 1988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에는 임시정부의 정통성이 공식적으로 보장되어 한일병합무효.불평등조약인 을사조약의 무효 및 일본같은 추축국에 대한 대일 선전포고 조항이 헌법상 다음과 같이 보장되게 되었습니다. 법제처가 출처입니다. 공익을 위한 국가자료들이라 출처는 간략하게 표시하겠습니다.
- 다 음 -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 필자 주 1). 현행헌법의 임시정부 정통성은 필자가 성균관대학교(1983학번, 성균관대 경상대학 무역학과 주간, 1981년 전주 신흥고 졸업하고 1983년 입학하여 성균관대를 퇴계장학생으로 다님) 다닐때 헌법을 수강하면서(필자는 헌법, 민법, 국제법 1, 국제법 2, 행정학등의 법률학과목도 수강함) 김영수 교수가 수업시간에 말씀하시더군요. 자기 연구분야인 임시정부가 헌법에 반영될것 같다고...
그래서 김영수 교수의 저서 한권을 소개해 봅니다. 2000년 12월 19일 교수신문 보도기사입니다.
[화제의 책]『한국헌법사』(김영수 지음, 학지사 刊) | ||||
고조선에서 6공까지 헌법의 역사 집대성 고조선부터 6공화국에 이르는 한국헌법의 역사를 집대성했다. 무려 1천1백80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독자들을 압도한다. 그 동안 체계적인 학적 조명이 전무했던 구한말과 상해 임시정부의 헌법사를 체계적으로 조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의 미덕은 충분하다. 저자 김영수 교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헌법까지 연구대상으로 포괄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를 위해 소군정과 북한의 법적 토대 형성과정을 살피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의 제정과 개정과정 및 주요 내용을 검토했다. 결국 고조선에서 현대한국에 이르는 통시적인 축과 대한민국헌법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아우르는 공시적인 축의 결합을 효과적으로 완수해낸 셈이다. 이 책이 그렇다고 차갑고 무거운 헌법의 역사책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다. 이 책의 심층을 복류하는 것은 '민주적 통일헌법'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저자의 실천적 관심인 까닭이다. 저자는 말한다. "민주법치국가 원칙에 입각한 국가질서 및 헌법질서를 궁극적으로 새로운 통일한국에서도 담보해내야 한다." |
. 필자 주 2). 국가보훈처에서 발췌한 임시정부 대일 선전포고문
임시정부 대일 선전 포고문 (1941)
오인은 삼천만 한국인민과 정부를 대표하여
삼가 중, 영, 미, 가(加), 호(濠), 화(和), 오(墺) 기타제국의 대일선전이
일본을 격패케 하고 동아를 재건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됨을 축하하여
자(玆)에 특히 다음과 같이 성명하노라.
1. 한국 전인민은 현재 이미 반침략전선에 참가하였으니 한 개의 전투단위로서 추축국에 선전한다.
2. 191O년의 합방조약 및 일체 불평등조약의 무효를 거듭 선포하여
아울러 반침략국가의 한국에 있어서의 합리적 기득권익을 존중한다.
3. 한국 중국 및 서태평양으로부터
왜구를 완전히 구축하기 위하여 최후의 승리를 얻을 때까지 혈전한다.
4. 일본세력하에 조성된 장춘(長春) 및 남경(南京)정권을 절대 인정치 않는다.
5. 루스벨트 처칠 선언의 각 조를 견결(堅決)히 주장하며
한국독립을 현실키 위하여 이것을 적용하며 민주진영의 최후승리를 원축(願祝)한다.
대한민국 23년 12월 10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6. 임시정부 조항이 헌법에 보장되기 전에는 박정희 대통령때의 한일조약이 조약법의 형태로 발효되었습니다.
한일기본조약은 1965년 당시 「헌법」(1962.12.26 공포 헌법 제6호) 제71조에 따라 체결되고 제56조에 따라 국회에서 비준되었으며, 제5조에 따라 발효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국가기록원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집필자는 박기병 (관동대학교 법학과 교수)
그리고 한일조약 관련, 다음 조항은 위키문헌에서 발췌한 자료들입니다.
. 한일 기본조약
1). 한글판
.......
제1조 양 체약 당사국간에 외교 및 영사관계를 수립한다. 양 체약 당사국은 대사급 외교사절을 지체없이 교환한다. 양 체약 당사국은 또한 양 국 정부에 의하여 합의되는 장소에 영사관을 설치한다.
제2조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
.............
2). 영문판
Article I
Diplomatic and consular relations shall be established between the High Contracting Parties. The High Contracting Parties shall exchange diplomatic envoys with the Ambassadorial rank without delay. The High Contracting Parties will also establish consulates at locations to be agreed upon by the two Governments.
Article II
It is confirmed that all treaties or agreements concluded between the Empire of Japan and the Empire of Korea on or before August 22, 1910 are already null and void.
7. 을사조약이나 한일병합의 무효관련 자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 선전포고문이나, 박정희 대통령때의 한일 기본조약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1988년에 헌법에 반영된 임시정부의 정통성 조항이 있습니다.
이 외에는 1963년 UN 국제법위원회에서 을사조약은 무효라고 한 법리적 의견이 있는데, 이는 상당히 준수해야 할 의무가 뒤따르는 국제법 영역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을사조약 당시 프랑스 국제법학자 프란시스 레이교수의 을사조약은 무효라는 국제법 학설도 국제관습법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출범이전의 국내법 개념으로는 고종의 항의나 의사표시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한국 국내법상 대표자에 대해 위협과 강요로 을사조약을 불법.체결시켜 이 조약은 대표적인 무효 조약으로 국제법 권위자들도 판단하고 있습니다. 국내법상 이 강제.무효의 을사조약을 토대로 대한제국 군대도 해산시키고, 그 이후 강제로 체결한 한일병합도 당연히 무효입니다. 국제법 개념도 그렇게 된다고 필자는 판단합니다.
가. 대중언론 보도기사
1).한겨레 신문 보도.
‘한일병합 무효’ 입증 문서 공개, 2010-06-25, 노형석 최원형 기자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27570.html
2).동아일보 보도.
“비준안된 韓日 강제합방, 국제법상 무효”, 2009-09-22, 윤완준 기자
http://news.donga.com/3/all/20090618/8745434/1
3).한국일보 보도.
한국 "병합조약 애초에 무효", 일본 "해방 이후에 효력 상실", 광복 70년·한일 수교 50년의 재인식 (4) 한일 과거사 인식의 분기점- "병합조약 이미 무효", 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2015.02.09 기사
8. 국내에 남은 일본 잔재들이 한일기본조약의 내용을 알았던 몰랐던, 조약으로서 한일 기본조약은 지켜야 할 법입니다. 일본 잔재세력들이 조선(대한제국)의 유일무이한 대학이었던 성균관[명륜전문학교등으로 격하되거나 폐교되는등 왜곡을 겪었음. 해방후에 성균관대가 되어 현재까지 이어지며 중간의, 왜곡과정에도 불구하고, 대통령령에 의한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의 서술로, 행정법상 600년 역사를 합법적으로 인정받고 있음. 그 이전에는 대한제국 국내법이나 여러가지 국제법으로 그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었는데, 대통령령같은 강행법 특성을 확보하지 못하여 대중언론에서 도전대상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음]의 계승대학인 성균관대에 대해 대중언론이나 다방면에서 왜곡시킨 자료들은 시정시켜야 할 것입니다. 한일기본조약의 제 2조, 현행 헌법상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조항은 강행법에 해당되므로 이에 위배되는 국내 일본 강점기 잔재들은 지금부터라도 다시 정리.청산 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니까, 유교가 국교였던 조선(대한제국)의 역사를 반영해야 됩니다. 1983년이후 10년 정도의 간격으로 통계청에서 조사하는 종교인구 조사(표본조사 형태로 통계조사 시작)는 타당성이 없으며, 한일기본조약 제 2조나 현행 헌법(임시정부 정통성)과 배치되는 위법적 특성을 가졌습니다. 이도 무효화 시켜야 할 것입니다.
9. 한국은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과 동국대, 경북대.전남대.부산대.서울시립대등의 주권이 한국에 없고,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할 대상입니다. 부산대 같은 경우는 부산 수산대의 전신에서 시작한 대학인데, 그러한 일본 강점기 상징성이 있기는 있습니다.
현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았을때 대중언론에서는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원칙은 그렇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 강점기에 세워진 공립 중.고등학교의 주권도 없고 축출해야 하는 원칙도 변하지 않습니다(평준화로 한국계 사립학교들이 큰 피해는 보지 않게 되었지만...).
또한 일본 강점기에 강제로 포교된 일본 신도, 불교, 기독교(주로 개신교, 가톨릭 극소수 성당)의 종교주권도 한국에는 없으며, 청산해야 할 대상임은 변하지 않으며 한국은 국내법상 제도적인 유교국으로 다시 복구되어야 합니다. 현행 헌법상 종교의 자유는 있음.
10. 한국은 국사 성균관에서 이어진 성균관대의 600년 역사와 정통성을 정부와 민간 백과사전, 학습사전, 성균관, 성균관대등에서 공통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조선왕조(대한제국 황실) 후손인 황사손(이 원)의 유교 국가제사(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 주관)도 다시 복구되었습니다. 일본 강점기때문에 피해를 보아온 성균관(성균관대)의 위상회복을 위하여 대응하던 중, 세계사의 전통 지배세력인 교황청 산하 예수회의 御 서강대 분들과 연결되어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 임금으로 세계적인 매체들에 발표해와서 국제법상 그 부분은 앞으로도 이어가겠습니다.
11. 헌법 임시정부 조항을 근거로 한일병합 무효나, 대일 승전국 반열의 필자(宮 성균관대 임금, 윤진한)의견에 御 서강대 임금(서강대 기록보존소, 서진교 교수)님이 적극 동조하신걸로 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독자들이 이해하시면 됩니다. 앞으로 이 강행법성격의 헌법 임시정부조항을 주요 근거로 일본 잔재청산을 해야 할것입니다.
.필자 주 3). 필자는 독립투사이자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이 너무 왜곡되는걸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의 뜻대로 해방정국이 풀리지 않았던 내용의 기사를 게재해봅니다. 검증은 필요한 신문기사입니다.뉴데일리 2010.08.12 보도기사입니다. 김은주 기자 보도기사. 여하튼 임시정부는 프랑스.러시아.폴란드 정부의 승인을 받았었고, 이후 남한은 미국과 북한은 구 소련과 공생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두 나라는 승전국 자격에 UN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이며, 브리태니커의 의견은 2차대전이후, 세계의 지배력이 서유럽에서 미국과 구 소련으로 넘어갔다고 언급하는 군사 초 강대국인점도 염두에 두시고 두 나라가 인정하기 전에는 자중하며 차분하게 일본 잔재를 청산하는 쪽에 비중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연합국편에 서서 대일 선전포고한 나라인데, 이 정도의 일본잔재 청산은 해 주어야 할 것이라 판단합니다.
12. 이승만의 대한민국 만들기
美, 이승만 귀국 방해 두차례, 가택연금도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54066
13.일본이 받아들인 포츠담선언에 위배(미군정령 상위법이 포츠담선언 및 카이로선언임)되면서,한국영토에 주권없는 일본강점기 잔재 경성제대후신 서울대등은 대중언론등에서 성균관대에 주권없이 덤벼온것.
그리고, 2차대전 당시 일본등 추축국에 선전포고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프랑스.구 소련.폴란드)사실과, 대한민국 건국때부터 임시정부를 승계해 온점, 현행헌법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반영으로, 법이론상 강행법적 차원에서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임을 상기해야 함.
따라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대중언론.사설 입시학원등에서의 발호를 중지시키고(대중언론에서 서울대를 추종해 온 신생 대학들의 카르텔, 일본 강점기 연희전문 후신 연세대 및, 보성전문 후신 고려대, 왜놈학교 잔재등 포함) , 해방한국의 학교교육에서 가르쳐온 성균관의 정통성 승계를 국가에서 보장하는 성균관대로 대중언론의 주권회복에 노력을 기울여야 함.
국사교육에서 가르쳐온 성균관의 정통승계는, 법적 측면에서 성균관대가 분명(대통령령에 의해 발행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법적 정설)하므로, 대중언론에서도 패전국 일본 잔재인 서울대나 그 추종세력들의 발호를 중단시켜야 하겠습니다.
성균관대의 협력대학으로는, 필자가 세계사를 반영하여 교황윤허 서강대를 인정해 왔으므로, 과거의 행태가 어떻든(세계사는 유교와 한나라 태학.국자감의 자격을 학술적으로 인정하여, 한국 유교나 한국 성균관도 혜택), 국사에서 가르치는 성균관의 정통승계대학인 성균관대와 교황윤허 서강대를 Royal대로 하여, 대중언론상(그리고 사설 입시학원등)의 성대나 서강대에 대한 도전등을 예의주시하면서 관리해 갈 필요가 있습니다.
해방후 미군정당시 법령으로 경학원에서 성균관으로 성균관을 복구시켰는데, 전국 유림대회 결의에 따라 성균관장이 교육기관으로 성균관대를 미군정에 등록(제사는 현재의 성균관에서 계승). 또한 국가기관이자 국책연구기관인 국사편찬위에서, 지금까지 성균관을 교육시켜왔는데, 성균관대가 성균관의 정통성 승계하여, 대중언론에서 아무리 덤벼도 성균관대의 최고 대학 학벌 못 이겨왔음. 한국정부는 대통령령에 의해 발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학교교육 국사에서 가르치는 성균관의 정통성을 성균관대가 승계함을 확인하여, 6백년 역사 인정. 이는 성대 6백주년 행사때 대통령.국무총리가 기념행사에 참여하고, 해외의 유서깊은 대학 총장들도 참석하여,세계사적으로도 한국정부의 의지를 밝힌것.
을사조약이후, 일본 불법 강점기에 대항해 온, 을사조약 무효 이론(국내법과 국제법)을 현행헌법과, 대통령령에 의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조선.대한제국의 성균관이 해방후의 사립 성균관대로 승계되어 600년 역사를 가짐)의 의견까지 연결해서 살펴봄.
http://blog.daum.net/macmaca/2026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파괴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패전국에 항복국가가 된 戰犯國(UN敵國) 일본에 어떻게 대처하는것이 승전국과 해방국의 권익을 지키는 방법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필자의 지금 의견은 보시다시피 논문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실에 근거해, 어느정도 주관적인 견해도 제시하고 있는것인데, 독단적인 것은 아니고,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 학벌위원들과 어느정도 조율을 하고 있습니다(學說은 아닙니다).
. 첨부자료
1.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성균관대.
http://blog.daum.net/macmaca/2325
2. 한일합방과 을사 5조약이 원천무효라고 결의한 한국 국회결의. 그리고 한일합방건 일본정부 발표에대해 원천무효라고 밝힌 한국 외무부
http://blog.daum.net/macmaca/712
3. 일본강점기때 폐지.왜곡된 성균관. 해방후에 설립(재건승계)된 성균관대학교가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백과사전.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현대 한국사적 입장에 대한 학술적 고찰. 그리고 한국사의 성균관대(성균관에서 이어짐)와 세계사를 연계하여 해방이후 합법적으로 설립된 敎皇聖下 윤허대학인 예수회의 서강대와의 Royal.Imperial 특성의 공통점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733
4. 自然人에 대한 공평한 능력우대와 달리 法人體로볼때, 일본 강점기 잔재 경성제대.관립전문학교 후신 서울대등은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강점기 잔재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732
5. 2차대전 결과와 상관없이,세계사와 한국사를 바꾸지 못하면, 교과서(백과사전,학습서), 학술서적상의 기득권 대학 학벌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