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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학교교육을 바탕으로, 한국의 수능시험대비 언급되는 대학들. 세계사 중국 태학.국자감, 볼로냐.파리, 한국사 성균관

beercola 2017. 6. 10. 07:10

교과서.학교교육을 바탕으로, 한국의 수능시험대비 언급되는 대학들. 세계사 중국 태학.국자감, 볼로냐.파리, 한국사 성균관



수능 세계사와 국사 시험 대비하기 위해 정리된 자료로 살펴보는 중국 한나라 태학과 국자감, 중세유럽의 대학. 볼로냐,파리대학, 그리고 한국사 성균관.


I. 세계사 시험 대비 정리된 자료에 나오는 중국 한나라 태학.국자감, 중세 유럽의 볼로냐.파리대학

 

I]. 중국의 대학


1. 한나라 태학. 

 

가). 학생백과 자료.


한무제:한()나라의 황제로, 흔히 ‘한무제’라고 부른다....동중서의 건의에 따라 태학과 5경 박사를 설치하여 유학을 진흥하였다.


.출처: 무제[武帝]Basic 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 학생백과 > 세계사

 

나). 수능관련 세계사. Google에서 발췌. 

[PDF]세계사

www.visang.com/.../FileDownload.aspx?...15내공의힘%20고등%20세계사...
2015. 3. 23. - ② 유교가 통치 이념으로 채택된 것은 한 무제 때의 일. 이다. 춘추 전국 ..... 를 통치 이념으로 삼고, 수도에 태학설립하여 유교의 보급에 힘. 썼다.

 

. 필자 주 1). 내공의 힘 정답과 해설. 이런 용어를 쓰는 고등학교 세계사 교육자료. 

 

2. 국자감. 이는 Google에서 자료 발췌. EBS는 한국에서 수능대비 교육방송을 해 줍니다.

 

EBS 수능특강 사회탐구영역 동아시아사 (2014년) - Google 도서 검색결과

https://books.google.co.kr/books?id=TPQOBQAAQBAJ
한국교육방송공사 편집부 - 2014 - ‎Study Aids
2 과거제의 시행과 문인 관료층의 형성 (1) 과거제 1 수 대에 시작되어 대에 정비 ... 정비:과거제를 통해 능력을 중시하는 풍조 형성, 교육 기관 정비 → 국자감(, 명, ...

 

3. 국자감. 이는 Google에서 자료 발췌.

:: 수능 세계사 정리 6 : 중국사 4 / 명(明), 청(淸)

historia.tistory.com/2915
2008. 11. 22. - 수능 세계사 정리 6 : 중국사 4 / 명(明), 청(淸) .... 이는 생원(지방학생), 감생(국자감 학생), 거인(향시 합격자), 퇴직 관리들을 일컫는 말로, 민중교화, 

 

 

4.  두산백과에 나오는 베이징 대학교 설명.

 

1898년, 원·명·청 시대에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국자감()을 대체하여 ‘경사대학당()’으로 창설하였다. 1902년 경사대학당의 교육학원이 오늘날의 베이징사범대학교로 떨어져 나갔고 1912년 중화민국 성립에 수반하여 국립 베이징대학으로 개칭되었다. 1917년 학장으로 취임한 차이위안페이[]의 개혁으로 신문화운동의 중심이 되어 근대 학술연구와 토론의 자유 학풍을 확립하였고, 특히 1919년의 5·4운동이 재학생들에 의해서 추진된 이후 학생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20년 난징대학교에 이어 중국에서 2번째로 여학생 입학을 받아들였다. 중일전쟁 중인 1937년에 국민정부가 칭화대학, 난카이[]대학과 함께 후난성 창사[]의 오지()로 모아서 합병하여 창샤임시대학교로 만들었다가 1938년 다시 윈난성[] 쿤밍[]으로 옮겨 시난[西]연합대학을 조직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6년 연합대학은 해산되어 각각의 학교로 분리되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1952년의 대학 재편성에 의하여 옌징[]대학을 합병하고 칭화[]대학과의 조정이 단행되어 문·이과계의 기초이론을 중심으로 한 종합대학으로 개편되었다....

.출처: 베이징대학교 [Peking University, 北京大學(북경대학)] (두산백과)

 


5. 중국어판 북경대학 소개자료.

 

http://wenku.baidu.com/view/3c077fda6bec0975f465e290.html

 

위에 나타난 baidu. 필자가 첨언하면 Baidu는 중국의 百度文库(백도문고)입니다.

북경대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北京大学
 
 
北京大学,
中国最高学府,
创办于
1898
年,
初名京师大学堂,
是中国第一所国立大学,
也是中国近代最早以

大学

身份和名称建立的学校,其成立标志着中国近代高等教育的开
端。
北大是中国近代唯一以最高学府身份创立的学校,
最初也是国家最高教育行政机关,

使教育部职能,
统管全国教育;
并开创了中国高校中最早的文科、
理科、
政科、
商科、
农科、
医科等学科的大学教育,
是近代以来中国高等教育的奠基者。
北大传承着中国数千年来国家
最高学府
——
太学(国子学、国子监)的学统,既继承了中国古代最高学府正统,又开创了
中国近代高等教育先河,可谓

上承太学正统,下立大学祖庭

。在中国近现代史上,北大始
终与国家民族的命运紧密相连,深刻的影响了中国百年来的历史进程。

 

필자가 주안점을 두는 문구는 다음 문구임.

北大传承着中国数千年来国家
最高学府
——
太学(国子学、国子监)的学统,既继承了中国古代最高学府正统,

북경대는 중국 수천년의 국가 최고학부를 전승해오고 있다. 태학(국자학, 국자감)적 학통-  
 중국고대 최고학부정통을 이전에 계승했었다. 

 


@ http://www.125edu.com/puyan/zhinan/201508/647c98380.html

 

125edu.com은 중국어판  125教育网【中国研究生招生信息网입니다. 125교육망 중국연구생 (학생모집) 정보네트워크입니다.

一、北京大学

  北京大学,中国最高学府,创办于1898年,初名京师大学堂,是中国第一所国立大学,也是中国近代最早以“大学”身份和名称建立的学校,其成立标志着中国近代高等教育的开端。北大是中国近代唯一以最高学府身份创立的学校,最初也是国家最高教育行政机关,行使教育部职能,统管全国教育;并开创了中国高校中最早的文科、理科、政科、商科、农科、医科等学科的大学教育,是近代以来中国高等教育的奠基者。北大传承着中国数千年来国家最高学府——太学(国子学、国子监)的学统,既继承了中国古代最高学府正统,又开创了中国近代高等教育先河,可谓“上承太学正统,下立大学祖庭”。在中国近现代史上,北大始终与国家民族的命运紧密相连,深刻的影响了中国百年来的历史进程。

필자가 주안점을 두는 문구는 다음 문구임.

北大传承着中国数千年来国家最高学府——太学(国子学、国子监)的学统,既继承了中国古代最高学府正统 



2]. 중세유럽의 대학. 볼로냐,파리대학

 

1. Google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BS는 한국에서 수능대비 교육방송을 해 줍니다.  

 

[HWP]2 - EBSi

https://www.ebsi.co.kr/.../FileDownload.jsp?...비법!!수능개념총정리-...
② 대학. 12C경 설립. 교수나 학생이 조직한 길드. ·학생길드- 볼로냐 대학. ·교수 길드- 파리 대학. 특징- 국왕이나 교황에게서 특허장을 받아 자치 특권 누림. ③ 문학.

 

 

2. 이 내용도 역시 Google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16강 중세 서유럽의 문화와 비잔티움 세계 ① --- ?카노사의 ...

www.kbumac.or.kr/page/screen/screenDownload.php?...11%20세계사...
대학 발전(12세기) -이슬람 문학,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받음 ο도시 발달, 길드(조합) 형성 -학생 조합 중심: 볼로냐 대학(법학) -교수 조합 중심: 파리 대학(신학) ...
 


3. Google에서 발췌함. 교보문고 자료

유럽을 만든 대학들 볼로냐대학부터 유럽대학원 ... - 교보문고

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
역사일반 · 세계사 · 서양사 · 동양사 · 한국사 · 신화 · 민속학 · 문화일반 · 문화사 · 역사인물 ... 유럽을 만든 대학볼로냐대학부터 유럽대학원대학까지, 명문 대학으로 읽는 유럽지성사 .... 볼로냐대학: 유럽 대학들의 '모교' 2. 파리소르본대학: 중세 신학의 심장이 되다 3. ..... 해마다 수능철이 되면 수험생들 신경을 쓰느라 초조하다.


II. 수능에서 국사 시험대비 정리된 자료에 나오는 성균관.

. 성균관(해방이후 성균관대로 이어짐)에 대한 교과서나 수능 자료.



1. 최태성의 중급 수능 한국사. Google에서 발췌

 

큰별쌤 최태성의 중급 수능 한국사 (구석기~조선전기)

https://books.google.co.kr/books?isbn=8975270793
최태성 - 2015 - ‎Juvenile Nonfiction
개성 성균관 개성에 있는 성균관입니다. 고 려 후기에 등장하지요. 현재 서 울에 있는 성균관은 조선왕조가 세운 대학이고요. 고려의 교육제도 중앙 국자감 향교 유학부 ...

 

. 필자 주 2). 개성에 있는 성균관은 고려말에 원나라의 압력을 받아 고려 국자감을 성균감.성균관으로 개칭하고, 조선초기에는 이 성균관 명칭을 그대로 답습한 것입니다. 고려왕조를 멸망시킨 조선시대에 개성에 있던 성균관은 고등학교격인 향교의 위치가 되었지요. 한양에 있던 성균관만이 유일무이의 최고대학. 

 

. 필자 주 3). 다음은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에 나오는 성균관에 대한 설명입니다.    

 

우리 나라 최고학부의 명칭으로 ‘성균()’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298년(충렬왕 24)에 국학(국자감을 개칭한 것)을 성균감()이라 개칭한 데서 비롯된다. 그 뒤 1308년에 충렬왕이 죽고 충선왕이 즉위하면서 성균감을 성균관이라 개칭하였다.

1356년(공민왕 5)에는 배원정책()에 따른 관제의 복구로 국자감으로 환원되었다가, 1362년 다시 성균관으로 복구되었다. 한편 공민왕 즉위초에는 종래까지 성균관(국자감)에 유교학부()와 함께 설치되어온 율학()·서학()·산학() 등의 기술학부를 완전히 분리시켜 따로 교육시키게 함으로써, 성균관은 명실공히 유학교육만을 전담하는 최고학부가 되었다.

이와 같은 성균관은 조선 왕조가 들어선 뒤에도 그대로 존치되었다. 조선왕조의 한양천도()에 따라 새 도읍지의 동북부지역인 숭교방() 부근(지금의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구내)에 터가 정해져서 1395년(태조 4)부터 건축공사가 시작되어 3년 만에 대성전(殿 : 단종 때 殿으로 개칭됨.)과 동무()·서무(西)의 문묘()를 비롯하여 명륜당()·동재()·서재(西)·정록소()·식당·양현고() 등의 건물이 완성됨으로써 새로운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출처: 성균관[成均館]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필자 주 4). 국자감이 원나라 간섭기에 국학, 성균관이라 바뀌는 과정.

 

국자감의 명칭은 원나라 간섭기에 국학으로 개칭되었으며, 충선왕이 개혁을 추진할 때 성균관이라 고쳐 불렀다. 공민왕 때 다시 국자감으로 했다가 1362년 성균관으로 개칭되었다. 국자감의 학부편성은 유학학부인 국자학()·태학()·사문학()과 기술학부인 율학()·서학()·산학()으로 구성되었다. 입학자격은, 유학학부는 귀족자제를 대상으로 하여 국자학은 문무관 3품 이상, 태학은 5품 이상, 사문학은 7품 이상의 자제가 입학하도록 규정했으며, 기술학부는 8품 이하의 자제와 서인()이라고 되어 있어, 신분이 중요한 요건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교과과정은 유학학부에 있어서는 <논어>와 <효경>을 교양필수과목으로 하고, 전공과목은 <주역>과 <상서> <주례> <예기> <의례> <모시> <좌전> <공양전> <곡량전>의 9경으로 되어 있고, 그 밖에 산술과 시무책을 익히고 매일 습자를 하도록 했다. 각 과목에 이수연한이 규정되어 있는데, 이는 최장의 연한을 말하는 것으로 능력에 따라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으며, 유생으로 9년, 율생으로 6년을 재학하여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고 성업()의 가망도 없는 자는 퇴학시켰다. 학관으로 유학부에는 박사·조교를 두어 각 경서를 가르치도록 했으며, 기술학부에도 각기 박사를 두어 전공분야를 담당케 했다.

.출처:국자감[國子監] (한국고중세사사전, 2007. 3. 30., 가람기획)

2. 수능 한국사 해설지. Google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PDF]2016 수능 명쾌한 한국사 개념완성 - 해설지.pdf

www.mimacstudy.com/.../download.php?...2016%20수능%20명쾌한%2...
2016 수능 명쾌한 한국사 개념완성. 1 ...... 제시된 자료는 조선 시대의 지방 행정 조직에 대한 설. 명이다. ... ② 성균관은 중앙의 대학교육 기관으로, 제사 공간인.

 

III. 해방이후의 성균관과 성균관대.


1]. 한국은 국사 성균관에서 이어진 성균관대의 600년 역사와 정통성을 정부와 민간 백과사전, 학습사전, 성균관, 성균관대등에서 공통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조선왕조(대한제국 황실) 후손인 황사손(이 원)의 유교 국가제사(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 주관)도 다시 복구되었습니다. 일본 강점기때문에 피해를 보아온 성균관(성균관대)의 위상회복을 위하여 대응하던 중, 세계사의 전통 지배세력인 교황청 산하 예수회의 御 서강대 분들과 연결되어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로 세계적인 매체들에 발표해와서 국제적인 약속상 그 부분은 앞으로도 이어가겠습니다.  


한국에서 대학은 과에 상관없이 Royal대인 성균관대나 서강대로 가는게 좋습니다.


대학은 무슨과가 되었든(신설학과라도), Royal대인 성대나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 윤허대학 중 하나)같은 대학으로 가는게 Royal학벌 취득, 세계적인 인지도, 세계표준에서의 유리함,  학문적 자격(국사는 성균관 교육, 세계사는 다른 많은 교과서들처럼 서유럽 학자들 이름이 많이 나옴)등에서 더 좋다고 판단합니다.    


2]. 미군정기 이후의 한국정부에서 조치한 내용(대통령령에 의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발간)으로, 정부입장을 알려드립니다.


1. 정부출연 연구기관 자료에 나타나는 성균관대학교에 대한 학술적 서술내용.

1).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대한 설명.

가. 한국학 중앙연구원(韓國學 中央硏究院).

한국문화 및 한국학 제분야에 관한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는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의 설명자료임.

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韓國民族文化 大百科辭典).

........
발간된 경위를 보면, 1979년 9월 25일 대통령령 제 9628호로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 편찬사업 추진위원회 규정>을 공포하였고, 동 규정에 근거하여 1980년 3월 18일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편찬사업 담당부서를 두었으며, 1980년 4월 10일 제 1차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편찬사업 추진위원회의 개최를 시작으로, 1991년까지 12년의 기간동안 3백여명의 편집진과 3천 8백여명의 집필자가 참여하였다.  
  


2).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 나타나는 성균관대학교.


이칭별칭

성균관대, 성대

  • 유형

단체

  • 시대

현대

  • 성격

대학교, 사립종합대학교

  • 설립일시

1398년

  • 설립자

김창숙(金昌淑)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개설

성균관대학교의 연원은 1398년(태조 7) 국립고등교육기관으로 설립된 성균관에서 시작된다. 성균관은 조선 최고의 국립교육기관으로서 국가에 필요한 유능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전통적인 유학 교육을 실시하였다.

연원 및 변천

갑오경장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1895년 성균관에 설치된 3년제 경학과()가 성균관대학교의 근대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시작이다. 성균관은 제향 기능을, 경학과는 교육 기능을 담당하여 유학 경전을 위주로 교육이 이루어졌으나 역사학·지리학·수학 등 근대적인 교과목도 부과되었다.

그 밖에 교육의 목적, 교육과정의 운영, 입·퇴학 절차, 각종 시험 및 학생의 특전, 학기제 채택 등 전통적 교육기관에서 근대학교로의 제도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국권상실 뒤 일제에 의하여 경학원()으로 개편되어,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주로 문묘()의 제향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의 기능만 수행하게 되었다.

1930년 경학원에 로 교명을 회복하였다.

1946년 유림대회()가 개최되어 성균관의 정통을 계승할 대학 설립을 위한 성균관대학기성회가 조직되고 독지가 이석구()가 재단법인 학린사()의 토지를 희사하였다. 이에 김창숙()의 주도로 종전의 명륜전문학교의 재단을 병합한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이 발족하면서 같은 해 9월 정규 단과대학인 성균관대학이 인가되었다. 문학부와 정경학부를 설치하고, 초대 학장에 김창숙이 취임하였다.

1953년 2월 종합대학인 성균관대학교로 승격되어 문리과대학·법정대학·약학대학의 3개 단과대학과 1개 대학원의 편제를 갖추었고, 같은 해 6월 각 도의 향교재단()에서 재산을 기부함에 따라 재단법인을 성균관으로 확대해 개편하였다.

1958년 야간대학을 설치하였으며, 1963년 재단법인을 학교법인 성균관대학으로 개편하였다. 1965년 삼성문화재단이 대학의 운영권을 인수하였다가 1979년 1월 다시 봉명재단()이 학교의 운영을 맡게 되었고, 경기도 수원시 천천동에 자연과학캠퍼스을 신축하였다.

1981년 8월 자연과학캠퍼스에 이과대학·공과대학·농과대학·약학대학 등을 설치하였고, 같은 해 11월 교육대학원을 신설하였다. 1983년 11월 경영행정대학원을 경영대학원과 행정대학원으로 분리하고, 1987년 11월 유학대학원, 1990년 2월 산업과학대학원을 신설하였다.

1997년 3월 의과대학, 9월 의학연구소, 10월 디자인대학원, 12월 경영대학원을 신설하였으며, 1998년 1월 건학 600주년 공식기 게양 및 현판 제막식 행사를 거행하고, 도봉선수촌 신관을 준공하였다. 같은 해 4월 북한 고려성균관과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하고, 6월 교수업적 평가제를 도입하였으며. 8월 도서관 100만 장서 확보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9월에는 건학 60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였으며, 기념행사로 세계총장학술회의, 조선시대 성균관 재현행사, 동양학 학술회의, 연극공연, KBS 열린음악회 등을 개최하고, 『성균관대학교 600년사』를 발간하였다. 1999년 3월 자연과학캠퍼스에 의과대학 건물을 준공하고, 5월 법학도서관을 개관하였다....

                  

.출처:성균관대학교[SUNGKYUNKWAN University, 成均館大學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출판사들이 편찬하는 백과사전류에 나타난 성균관대학교에 대한 학술적 서술내용들.

1). 두산백과사전에 나타나는 성균관대학교.

成均館大學校


  • 사립

  • 특성

    종합대학

  • 개교일

    1398년

  •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25-2(인문사회과학캠퍼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서부로 2066(자연과학캠퍼스)

  • 교목

    은행나무

  • 면적(㎡)

    627,025

  • 홈페이지

    www.skku.ac.kr


성균관은 고려 때부터 있었지만 조선 개국 후 1398년(조선 태조 7)에 현 명륜동 캠퍼스에 설립된 국립 최고학부 성균관의 전통을 계승하여,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1895년 칙령으로 3년제 경학과(經學科)를 설치한 것이 그 시초이다. 경학과는 유학 경전을 위주로 교육하되 역사·지리·수학 등 근대적인 교과목을 부과하여 근대 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국권피탈 후 일제의 탄압으로 교육기능을 박탈당하고 경학원(經學院)으로 축소되었다. 1930년 민족의 교육열 고조로 일제는 부득이 명륜학원을 설립하였고, 1939년 명륜전문학교로 승격시켰다. 

8.15광복이 되자 1946년 재단법인(현재는 학교법인) 성균관대학을 설립하고 정규 단과대학으로 발족하였으며, 초대학장으로 김창숙(金昌淑)이 취임하였다. 교훈은 인·의·예·지이다. 1953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고, 1979년 수원에 자연과학캠퍼스를 신축하였다. 1996년 11월에 삼성재단이 성균관대학교 재단을 인수하고 운영해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하 생략.... 



그리고 교육학사전이나, 종교학사전, 학습사전도 성균관대가 성균관에서 이어진 대학이라고 학술적의견을 가지고 있고, 성균관대와 제사기구인 성균관도 그렇게 일치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서강대는 교황윤허 대학으로 그 Royal대 역사가 인정되고 있습니다.


....

1960년 2월 재단법인 한국예수회에서 서강대학으로 설립인가를 받아 같은 해 4월 개교하였다. 1948년 한국 가톨릭교회의 발의와 교황 비오(Pio) 12세의 윤허로 대학 설립이 기획되었고, 예수회 게페르트(Theodor Geppert) 신부의 주도로 1956년 재단법인 한국예수회가 발족되면서 대학의 설립에 이르게 되었다.

초대 학장에 킬로렌(K. E. Killoren) 신부가 취임하였으며, 영어영문학과·사학과·철학과·수학과·물리학과·경제학과를 두었다. 1963년 독어독문학과·생물학과·경영학과를 신설하였다. 1964년 국어국문학과·화학과를 설치하고 제1회 졸업생 62명을 배출하였으며, 같은 해 4월 「사립학교법」에 따라 재단법인 한국예수회가 학교법인 서강대학으로 개편되었다.


.출처:서강대학교[Sogang University, 西江大學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해방이후 70년동안, 국사교육에서 가르치는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해 온 성균관대. 한국 최고대학이 국사 성균관을 승계한 성균관대입니다. Royal대인 성균관대나 서강대(교황윤허의 Royal대학)의 학벌이 좋고 그 다음 비신분제의 대학들입니다. 비신분제 대학들의 대학 학벌을 공식화시킬수는 없지만,국민대와 인하대가 Royal대 다음에 해당되는 대학들입니다.


임시정부 요인 출신인 김구선생이 개입한 국민대[한국민족문화 대백과는 이렇게 서술합니다. 상해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광복과 함께 귀국한 신익희는 국가개발을 위해서는 민족의 계몽과 유능한 인재 양성이 우선이라는 신념에서 1946년 3월 김구()·김규식()·조소앙() 등을 고문으로 하고 조소앙을 명예회장으로 하며, 회장으로 신익희, 부회장으로 윤백남()·옥선진()이 중심이 되어 국민대학설립기성회를 조직하여 대학을 설립하였다].


그 후에 이승만 대통령이 해외 교포들과 같이 개입한 인하대[한국민족문화 대백과는 이렇게 서술합니다. 1952년 하와이 교포 이주 50주년 기념하여 이승만() 대통령이 낙후한 국내 공업기술 수준의 향상을 위하여 인천시에 공과대학 설립을 제의함에 따라 교포 및 국내 유력인사의 지원과 국가 보조금으로 학교가 설립되었다].

Power Elite인 육사출신 대통령들은 격변기에 헌법에 임시정부 반영을 거부하지 않았고,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발간시에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서 국민대, 인하대등과 함께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인정합니다.        

 
 1. 중요하게 고려해야 될 요소는 1988년부터 시행된 현행헌법에 반영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이란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다음 자료를 참조바람.

- 다 음-

일본에 선전포고한 대한민국 임시정부(현행헌법 전문에 임시정부 법통 보장). 임시정부는 1910년의 한일병합무효, 불평등조약의 무효(1905년의 을사늑약이 대표적)도 선언. 따라서 국내법상 을사늑약이후의 역사적 해석은 승전국반열인 한국(對日 선전포고국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현행헌법에 반영)의 몫임.

http://blog.daum.net/macmaca/1977

 
 

서울대는 경성제대 후신으로 을사조약이 무효고(따라서 국내법 우위의 전통 법이론으로 보면 한일병합도 무효), 일본이 항복하면서 받아들인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에 의해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이 없어왔습니다. 그 추종세력인 서울대.연세대.고려대도 당연히 그런 주권없고 학벌없는 일본 강점기 잔재 서울대의 추종세력.


한국의 현행헌법(1988년부터 시행)에 보장된 임시정부 법통때문에,이론상으로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강행법측면에서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이 없습니다.    


한국의 정부체제.국가체제(국가기관.국책연구기관인 국사 편찬위의 국사 성균관 서술, 교육기구로는 성균관=성균관대)는 바뀌지 않아왔고, 현재도 그렇습니다. 국사 성균관=성균관대이며 6백년 역사의 성균관대.



6백년전부터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의 최고 교육기관이던 성균관(성균관의 정통성은 해방후 미군정부터 국사교육을 통하여 성균관.성균관대가 유지.계승시켜옴)같은 유서깊고 정통성있는 Royal대인 성균관대.




한국의 역사적.교과서적.국가적 차원의 최고(最古,最高) 대학학벌은, 조선,대한제국과 마찬가지로, 해방후 미군정부터 현재까지 성균관의 정통성을 승계한 6백년 역사의 성균관대입니다.


한편 세계사를 저술한 것으로 판단되는[대부분 서유럽 학자들의 이름만 나옴. 이는 2차대전 이전 근대에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역사가 그렇게 만든것 같음] 서유럽.교황청의 영향력은 지금도 세계사나 여러가지 교과서(참고서 포함).백과사전.학술서적등을 통하여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서강대는 교황윤허로 대통령령에 의해 발행된 한국 민족문화대백과가 그렇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Royal대학은 성균관대(국사 성균관의 정통성 승계로 6백년 역사)와, 교황윤허의 서강대 뿐입니다. 다른 대학들은 비신분제 대학으로, Royal대에 대한 충성도를 보아, 개인적으로 조금씩 중용해 나가면 될것입니다.   



2. 세계사와의 연계.


성균관대는 역사적으로, 교과서적으로, 국가의 공식 의견으로,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의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성을 승계한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임은 언제든지 변치 않습니다. 그래서6백년 역사의 성균관대.


한편 세계사 교과서를 반영해 볼때, 교황청이 지속되고 서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가톨릭전통에 기독교국가라, 2차대전과 별개로 세계사를 바꾸고자 하는 세력은 없는것 같습니다. 


세계사(世界史)에 나오는 서유럽의 대학은 볼로냐.파리대학으로, 교과서(敎科書)나 공교육(公敎育)에서 지속적으로 가르쳐오고 있는데, 이 역사적.전통적 대학(大學)들의 자격은, 격변기(激變期)에 문제제기가 되지 않아, 앞으로도 변할 사유가 없을것 같습니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은 공교육(公敎育)으로 국사(國史)에서 가르치는 성균관[成均館. 해방(解放)후, 미군정기(美軍政期)에 성균관대(成均館大)가 성균관의 정통성을 승계하여 오다가, 다시 대한민국 정부의 대통령령에 의해 발행된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에서 성균관의 정통성 승계를 공식화하여, 성균관대의 6백년 역사를 정부측에서 공식화하고 있습니다.]의 정통성 승계자 성균관대((成均館大)가, 여전히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학벌임은 변치 않습니다.   


영국이나 미국도 기독교 국가라 교황중심의 세계사나 볼로냐.파리대학(최근에는 옥스포드대도 부분적으로 세계사에 보임)을 변경시킬 의지가 없는것 같으며, 중국도 그렇습니다. 세계사 교과서를 중심으로 이론을 전개하지도 않았고, 학술서가 아니지만 중국학자의 책을 한국에서 번역한 역사적 관성(세계사 불변의 법칙으로 한국에서 번역됨)이란 용어에서 힌트를 얻어보았는데, 지금도 유지되는 역사적관성이 세계사에 반영되고 있다면, 세계사 불변의 법칙은 맞는 용어입니다.  


세계사의 기존 내용을 중심으로 현재를 반영하여 미래를 어느정도 예측하며 필자의 의견을 제시해봅니다. 2차대전 때문에 세계사의 4대문명(그리고 에게문명), 종교(漢나라이후 전통 세계종교인 유교, 로마제국부터 인정된 기독교에서 발현된 세계종교인 로마가톨릭, 기타등등), 세계사의 전통대학(漢나라 太學, 이후의 國子監, 국자감에서 교체된 경사대학당과 경사대학당을 이은 북경대, 중세 유럽의 대학인 볼로냐대.파리대)들이 바뀔 사유는 없는것 같습니다. 


세계사 불변의 법칙은 2차대전 승전국들이 있는 서유럽(영국포함), 중국이 기존 세계사 내용을 변경시키자고 적극적 주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도 기존 세계사 내용을 거의 그대로 가르치고 있으며 역사를 존중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미국이나 러시아도 교황중심 로마가톨릭의 전통을 존중하기 때문에, 2차대전 때문에 세계사의 기득권들이 바뀔 사유는 없는것으로 판단됩니다.


패전국이 생겼어도, 교황중심 로마가톨릭과, 유서깊은 대학들의 기득권이 제도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필자가 경험하는 바로는, 세계사가 바뀔 사유가 없는것입니다. 한국은 한국사에 나오는 유일무이의 최고대학 성균관이 해방후에 성균관대로 이어지며 600년 역사를 인정받기 때문에, 정치체제가 민주공화국으로 바뀐것 말고는 역사나 국제법(을사조약 및 한일병합 무효라 조선.대한제국 국교인 유교의 자격이 이어짐).행정법(신도국가 일본의 창씨개명 압제에서 벗어나, 美.蘇 軍政당시 전국민이 조선성명 복구령등에 의해 유교국가의 조선 성명을 의무적으로 등록하는 제도가 행정법상 유교국가 특징)상 유교국가의 틀이 그대로 이어지는 나라입니다.


국내법우위론으로 보면 을사조약이 무효라, 당연히 한일병합도 무효임. 국제법으로는 프란시스 레이교수의 을사조약 무효론이 있어서, 불법 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임. 또한 국제연맹의 을사조약 무효, UN의 을사조약 무효론에 따라서도, 강제.불법의 한일병합은 무효임. 을사조약 무효는 국내법이나 국제법 모두 거의 당연한 이론이라 할 수 있음. 그런데 한일병합 무효에 대해서는 한국은 을사조약.한일병합이 원천무효라는 입장이지만, 일본은 이에 수긍하지 않는 경향이 있음. 특히 한일병합 무효건은 일본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경향이 강함. 이런 불완전한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별도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임. 예를들면 2차 대전중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프랑스.러시아.폴란드에 승인받아서 부분적으로는 이 때부터 한일병합은 무효임(불평등조약인 을사조약도 무효). 또한 2차대전중에 일본이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수락하여, 일본이 항복한 시점부터 일본의 주권은 한국영토에 없어졌으므로, 국제법상 당연히 이 시점부터 한일병합은 무효임(을사조약도 당연 무효).    


다음 자료를 참조바람.



1.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의 무효에 대한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1905 


2. 한일합방과 을사 5조약이 원천무효라고 결의한 한국 국회결의. 그리고 한일합방건 일본정부 발표에대해 원천무효라고 밝힌 한국 외무부

 http://blog.daum.net/macmaca/712


3. 국내법상 을사늑약이후의 역사적 해석은 승전국반열인 한국(對日 선전포고국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현행헌법에 반영)의 몫임. 

http://blog.daum.net/macmaca/1977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조선유교의 특징중 하나인 한문성명 및 본관등록에 대해서는 다음 자료를 참조 바랍니다.

  

대중언론이 이상하게 언급해도, 미군정때,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조선 유교의 한문성씨를 의무적으로 국가에 등록한이후, 한국은 행정법상 유교국가로 복구된것. 국사로 성균관 가르치고, 학교에서 삼강오륜 유교교육 실시해온 유교나라.

http://blog.daum.net/macmaca/2313


필자는 대학부분을 중요시하여 宮 성균관대 임금(=御 서강대 임금)으로,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의 Royal대학 체제를 세계와 한국에 알려왔습니다.



차후 대한민국에 왕정을 복구시키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362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내 Royal대학들인 성균관대나 서강대에 대한 국사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세계사도 참조)등, 정부자료를 위주로,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說)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성균관대.     

http://blog.daum.net/macmaca/2325     

 

 


2. 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 참석. 

   

http://blog.daum.net/macmaca/1467



 

3. 한일합방과 을사 5조약이 원천무효라고 결의한 한국 국회결의. 그리고 한일합방건 일본정부 발표에대해 원천무효라고 밝힌 한국 외무부

 

http://blog.daum.net/macmaca/712

 

4. 일본강점기때 폐지.왜곡된 성균관. 해방후에 설립(재건승계)된 성균관대학교가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백과사전.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현대 한국사적 입장에 대한 학술적 고찰. 그리고 한국사의 성균관대(성균관에서 이어짐)와 세계사를 연계하여 해방이후 합법적으로 설립된 敎皇聖下 윤허대학인 예수회의 서강대와의 Royal.Imperial 특성의 공통점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733       

 

5. 自然人에 대한 공평한 능력우대와 달리 法人體로볼때, 일본 강점기 잔재 경성제대.관립전문학교 후신 서울대등은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강점기 잔재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732

 

6. 2차대전 결과와 상관없이,세계사와 한국사를 바꾸지 못하면, 교과서(백과사전,학습서), 학술서적상의 기득권 대학 학벌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