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유교권 국가에서 국가통치는 지금의 文科(문과.이과 구분시)계 대학 학부과정(조선.대한제국의 경우 성균관)을 거치고 졸업
전통적으로 유교권 국가에서 국가통치는 지금의 文科(문과.이과 구분시)계 대학 학부과정(조선.대한제국의 경우 성균관)을 거치고 졸업(과거 합격이 졸업시험 합격에 해당되다가, 나중에 과거제 폐지후에는 졸업시험으로 대체, 現代는 논문이나 졸업시험에 해당하는 자격시험이 있음)하거나 독학으로 과거시험에 합격한 분들이 통치해 왔습니다.
@ 구한말 성균관에 대한 약간의 제도변경시, 졸업시험 합격자만 졸업증명서를 주어 졸업시켰다고 합니다. 3년제 학위과정은 유럽의 대학등 상당수가 그러해서 반영한 듯 합니다. 성균관이나 국자감은 원래 9년정도의 재학기간에 과거에 합격해서 졸업해야 소기의 입학효과를 보는 최고대학이었는데, 과거합격도 못하고 조기 입학한 사람들은 그저 재야의 유림으로 머물러야 했던 것 같습니다. 현대적 개념으로는 고졸 졸업장을 가진 영재정도러 머물러야 하였다고 판단됩니다(과거 합격 못하면...). 또는 조기과정으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입학하였다가, 과거에 불합격하여, 대학졸업장 없이 사는 영재정도. 20세이상 40세 이하의 입학생 자격도 있는데, 영재는 별도의 시험을 통하여 조기입학도 가능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니다.
다음은 구한말 제도가 약간 변경된 성균관에 대한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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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경학과의 학제도 옛 학제와 달리 3년제 학교로서 학급이 편성되고 학년이 전·후 2학기로 구분되었으며, 입학시험을 통하여 학생을 선발하되 20세 이상 40세까지의 연령제한을 두었고, 졸업시험에 합격한 자에게만 졸업증명서를 주어 졸업시켰다.
학과목도 많이 달라져서 유학 등의 전통적 학과목 외에 본국역사(本國歷史)가 필수과목으로, 만국역사(萬國歷史)·본국지지(本國地誌)·만국지지(萬國地誌)·산술이 선택과목으로 설치되었는데, 이듬해인 1896년에는 선택과목도 모두 필수과목으로 바뀌었다.
.출처:성균관[成均館]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다음은 성균관의 수업연한입니다. 9년동안에 대과에 합격해야 하였던 제한기간이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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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충렬왕 때 국학을 성균관으로 개칭하였고, 공민왕 때 최고 학부인 성균관을 부흥시켜 순수한 유교 교육기관으로 개편하였다. 조선시대에 와서 최고 학부기관이 되었다. 입학자격은 생원, 진사와 15세 이상의 양반자제 및 유생(儒生)이 입학할 수 있고 정원은 120명이며, 수업연한은 9년이었다. 여기서 수업한 학생은 대과(大科)에 응시할 수 있었다. 원생은 특권이 부여되어 권당(捲堂), 공재(空齋)와 알성시(謁聖試)의 은전이 있었으며, 교육 내용은 주로 경학(철학, 윤리), 역사, 문학 등이었다.
.출처:성균관[成均館]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고려 국자감의 설명에서는 9년동안에 과거 합격 못하면 출학시켰다고 서술됩니다. 다음은 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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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연한은 대학에 진학하는 직접적인 목적이 과거준비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일단 과거에 합격하면 교육을 더 받을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수업 연한을 설정한다는 것은 별로 의의가 없었다.
그러나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자에게는 상한수업연한을 설정하였다. 유생(儒生)으로 9년, 율생(律生)으로 6년을 재학해 과거에 합격하지도 못하고 성업(成業)의 가망도 없는 자는 출학시켰다.
.출처: 국자감[國子監]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편, 일반적인 생원.진사의 성균관 입학과 달리, 조기에 입학한 특수혜택자들(이들은 상재생과 구별하여 下齋生이라 불림)은, 성균관에 입학하고나서 초시(생원.진사는 초시 합격의 上齋生이며 정규생임)를 볼 수 있는 출석기간도 정해져 있었다고 합니다. 능력에 따라 9년동안에 대과에 합격하면 성균관 졸업이 가능했던 제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재생의 경우, 성균관 졸업자격인 大科 합격이전에는 初試(小科에 해당)에 합격한 후, 大科에 응시할 기회를 쌓았다고 이해됩니다. 조기입학자의 경우 소과나 대과합격을 하지못하면 성균관과의 인연이 끊어지고, 이제 다시 자기 혼자 독학으로 소과와 대과를 합격할때까지 지속해서 보는 수 밖에 방법이 없었다고 이해됩니다.
다음은 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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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유생의 정원은 개국초에는 150인이었으나, 1429년(세종 11)에는 200인으로 증원되었다. 이 중 반은 상재생(上齋生) 또는 상사생(上舍生)이라 하여 생원(生員)·진사(進士)로서 입학한 정규생(正規生)이었으며, 나머지 반은 기재생(寄齋生) 또는 하재생(下齋生)이라 하여 유학(幼學) 중에서 선발된 자들이었다.
기재생은 대체로 사학생도로서 소정의 시험에 합격하여 입학한 승보기재(升補寄齋)와 부조(父祖)의 공덕으로 입학한 문음기재(門蔭寄齋) 등이 있었다. 성균관은 관리후보생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었으므로 입학하여 유생이 될 수 있는 자격은 대체로 양반사대부 자제들에게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양반사대부 자제라 하더라도 일정한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하였는데, ≪경국대전≫에 의하면 ① 생원과 진사, ② 사학생도 중 15세 이상으로 ≪소학≫ 및 사서(四書)와 오경 중 1경에 통한 자, ③ 공신과 3품 이상 관리의 적자(嫡子)로서 ≪소학≫에 통한 자, ④ 문과 및 생원·진사시의 초시인 한성시(漢城試)와 향시(鄕試)에 합격한 자 ⑤ 관리 중 입학을 원하는 자에게만 입학자격이 주어졌다.
성균관에 입학한 유생들은 동재와 서재에 나누어 기숙하면서 공부하였는데, 이들은 아침·저녁 식사 때마다 식당에 비치된 명부인 도기(到記)에 서명하게 되어 있었다.
이것은 원점(圓點)을 계산하는 근거가 되는 것으로서, 아침·저녁 두번 식당에 들어가 서명해야 원점 1점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원점은 오늘날의 출석점수와 같은 것으로서 성균관 유생들로 하여금 동·서재에 기숙하면서 학업에 열중하게 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다.
원칙적으로 이 원점 300점을 취득한 자, 즉 성균관에서 통산 300일 이상 기숙하며 공부한 유생에게만 관시(館試 : 성균관유생에게만 응시할 수 있는 특전을 준 문과 초시)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한편 성균관유생들은 재학중 학령(學令)의 적용을 받았는데, 학령은 성균관 학칙인 동시에 관학(官學) 일반의 학칙으로서 주자학정신(朱子學精神)이 철저히 반영되어 있으나 그 윤리적 기초는 소학정신(小學精神)에 두고 있었다.
.출처: 성균관[成均館]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전통적 유교국가인 중국.한국.베트남은 태학이나 국자감.성균관등의 대학과정을 두어 그렇게 교육했습니다. 또한 중국의 태학에는 전통적 유교국가인 흉노(몽고)출신 유학생도 입학했습니다.
유교 경전을 공부하고 과거시험에는 유교경전에 대한 지식과, 문학적.철학적.역사적 소양을 필요로 했으며, 語學(한문을 익혀야 했으니까...)능력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학적 재능은 배운 언어와 지식.교양을 바탕으로 글을 작성하는 능력에 해당되는데, 과거시험에 아주 중요했습니다.
철학적 노력도 필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시험에서 어떤 논제를 제시하면 국가나 사회 및 국민, 그리고 윤리 및 모든분야에 대해 오랫동안 사유해 온 철학적 사색이 도움이 되었겠습니다.
그리고 과거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評價를 과거시험에서 시험문제로 제시하면 역사지식이 큰 도움이 되었겠습니다.
다음은 조선시대의 문과시험 과목에 대한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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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의 시험 과목을 보면, 초시·복시·전시의 어느 단계에서나 모두 유교경전에 관한 지식과 유교이념에 바탕을 둔 문학적 재능, 그리고 역시 유교이념에 바탕을 둔 논술(論述) 능력을 시험하는 내용으로 일관하였다.
사서의(四書疑)나 오경의(五經義)는 첫 번째 부류에 속하는 것들이고, 부(賦)·송(頌)·명(銘)·잠(箴)·기(記)·표(表)·전(箋) 등은 두 번째 부류에, 그리고 전시에서 가장 많이 채택되었던 대책(對策)은 끝의 부류에 속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관리로서 필요한 실무와는 거리가 먼 내용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통치가 철저하게 유교이념을 바탕으로 덕치(德治) 및 교화(敎化) 위주로 운영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출처:문과[文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통치자 및 관리.학자들 ! 이들은 모두 유교경전 공부한 지위높은 儒學者며 통치자.관리.학자로 天子, 諸侯國 王, 士大夫등 천자부터 제후국 왕.고위 관리.중간관리까지 모두가 유교 경전 공부한 儒生이었습니다. 유교중심 재판관(유교 경전을 공부한 관리가 주요 판관이 되어 유교국의 법률로 판단), 유교중심 史官(유교경전을 공부한 후, 관리가 되고, 국가의 명을 받아, 국가의 관리로서 역사를 기록하고 평가), 관직에서 퇴직했거나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학식을 연마하는 士林들이 유교국의 국가통치를 맡아왔습니다. 법과 제도영역이 아닌 분야에서 대중들의 의식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관직에 몸담지 않고 시간적 여유가 있는 士林들이 제자를 가르치면서, 유교경전에 대한 의견을 담은 책, 통치자나 관리가 가져야 할 治國의 道를 논하는 책, 유교의 제사나 제사대상 여러 鬼神에 대한 의견을 서술하는 책, 齊家에 대한 책, 修身에 대한 책, 그리고 여러가지 학술서, 역사서, 실용서, 詩나 소설, 잡문등을 쓰면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한국의 경우 武班의 양반(군인,치안관리)은 어느정도 유교경전을 공부하면서 무과시험에 대비하여 합격하면 무반의 양반이 되었습니다.
무과시험은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사서 오경중의 하나도 선택할 수 있게 하는게 눈여겨 볼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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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과의 고시 과목은 크게 강서(講書)와 무예(武藝)의 두 종류가 있었다. 강서는 복시에만 있는 시험으로 사서오경 중의 하나, 무경칠서(武經七書) 중의 하나, ≪자치통감≫·≪역대병요 歷代兵要≫·≪장감박의 將鑑博議≫·≪소학≫·무경(武經) 중의 하나를 각각 희망대로 선택하여 ≪경국대전≫과 함께 고강하였다.
무예는 조선 전기는 목전(木箭)·철전(鐵箭)·편전(片箭)·기사(騎射)·격구(擊毬)의 6기(技)가 있었으나, 후기는 유엽전(柳葉箭)·과녁[貫革]·조총(鳥銃)·편추(鞭芻)를 신설하고, 기사를 기추(騎芻)로 변경하는 한편 격구를 폐지하였다.
.출처:과거 [科擧]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무과시험을 보는 출신은 미천한자가 면천절차를 밟아 응시하는 계층부터 아주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한편, 무과의 응시 자격은 애초 규정과는 관계없이 크게 완화되어 서자(庶子)는 말할 것도 없고 천인들도 면천(免賤)이라는 절차를 밟아 얼마든지 응시할 수 있었다. 따라서, 무과의 위상은 문과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미천한 사람들만이 무과에 진출한 것은 결코 아니다. 미천한 사람들이 대거 진출했고, 그에 대한 사회적 의의가 적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좋은 가문의 출신들도 많이 진출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출처:무과[武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의 경우는 중인계층이 중간관리가 되어 실무법률, 통역, 의학분야 관리가 되었는데, 譯官이나 醫官은 많은 돈을 버는 사람도 생겨났다고 합니다. 하급관리가 실무 법률을 담당하면서 관청이나 치안분야 하급관리가 된 뒤에 뇌물수수에 조심하면, 먹고는 살 수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일단, 과거는 평민이상이면 누구나 응시가 가능했지만, 나중에는 문벌귀족이 형성되어 버렸는데, 조선.대한제국의 경우 전주이씨.파평윤씨.안동권씨가 과거 급제자가 많았습니다. 필자는 五帝중의 한 분인 중국 소호금천에서 유래된 윤씨성인데, 파평윤씨는 고려.조선을 통하여 1천년 이상 명문 문벌로 이어져왔습니다. 물론 성씨만 가지고 되는건 아니고, 본관과 고향에서 토착명문문벌로 자리잡고 인정받아온 과정이 아주 중요합니다.
조선.대한제국시대를 벗어나면, 아득한 고대시대에는 역사적인 기자조선과 위만조선.漢四郡시대.三韓시대에는 기씨(箕氏), 서씨(徐氏),
한씨(韓氏)등이 토착성씨로 자리잡아 중국식 한문성씨를 사용한것으로 나타납니다.
@ 현대의 대한민국은 국사 성균관 및 여러 역사교육을 통하여 볼때, 성균관(성균관대학교)출신이 을사조약.한일병합 무효의 대한제국 국내법논리를 대한민국상태에서도 인정받아왔으니까, 국가통치의 주요 학과는 성균관대 유학과, 철학과(동양철학.한국철학.서양철학), 고시합격자가 되게 하는 법학과(로스쿨).행정학과, 사학과, 국가적 경제방침을 정하고 이끌어가는 관리나 학자를 배출하는 경제학과.경영학과.무역학과(글로벌 경제나 경영), 정치외교의 틀을 만드는 정치외교학과, 그리고 사회를 진단하는 사회학과, 제자를 가르치는 사범대학, 국제화시대의 어학인재를 배출하는 문과대학의 어문학과(영어.중국어.불어.독일어.러시아어등) 및 국내의 어문학자나 전문가를 배출하는 한문학과.국문학과, 구한말부터 전통을 가지는 수학과, 예술 인재를 배출하는 예술학부, 그리고 체육학부등 다양하겠습니다. 물론 의대나 약대, 공대, 기초과학을 가르치는 이과대학, 그리고 유전공학의 생명공학등 여러 이과학문도 현대에는 중요해졌습니다.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니까 서강대도 이런 개념의 학과들이 유교전통이 수천년인 한국 현대사회에서 중요하겠습니다.
@ 꼭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의 Royal대 협력관계가 아니더라도, 지금도 국가와 국민의 유교제사.명절.관혼상제.윤리규범(삼강오륜등)등 역사와 전통으로 수천년 이어지는 국민들의 의식이나 윤리.생활을 움직이는 학과는 文科의 儒學이나 文.史.哲, 그리고 법학.행정학, 정치.외교학, 경제.경영학등입니다.
분란이 생기면(요즘 필자 주변에서 자주 발생)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말해두고자 합니다.
한국은 국사 성균관(성균관대로 계승됨)의 나라며 고구려 태학.통일신라 국학.고려 국자감.조선 성균관을 이은 성균관대의 역사와 전통이 정설로 인정되는 나라입니다. 을사조약.한일병합 무효로 유교가 국제법이나 행정법(전국민이 조선성명 복구령에 의해 유교가 국교인 조선식 성명과 본관등록)상 국교고(헌법에는 종교의 자유 보장), 학교에서 삼강오륜을 가르치고 있는 수천년 유교국이 대한민국입니다. 고려시대는 국자감과 유교 교육, 治國의 道는 유교(修身의 道는 불교로 유.불.선 병립).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세계사와 2차대전 이후의 UN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를 다방면으로 연구.검토하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고 있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