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후의 성균관대. 성균관에서 이어진걸 해방후의 성균관과 성균관대 주요 인사들, 유림들은 알고 있었지만
해방후의 성균관대. 성균관에서 이어진걸 해방후의 성균관과 성균관대 주요 인사들, 유림들은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성균관이 성균관대라는 국가적 공식의견이 확실하게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선학교나 입시학원, 일본강점기에서 이어져 청산되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진 대부분의 대중언론들은 일본 강점기 잔재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중심으로 발표해왔었음. 그리고 전기, 후기라는 새로운 해방후의 신조어.
이러다가 필자나 다른 서강대 학벌위원등 다른 이견을 가진 측과 100% 일치하지는 않지만 서강대 사학과 출신 가수.방송인인 양희은씨가 방송에서 100번 서울대, 국시110브(브는 일본 연희전문 후신 연세대를 말함)라고 의견표명을 한이후, 10여년 넘게 전국방송을 하여, 일본강점기 잔재 서울대 중심 카르텔이 많이 약화된것임.
대중언론에서 그 위력은 T.V., Radio의 위력이 신문.잡지보다 전파속도가 빠르고 광범위함.
여하튼 필자는 국사나 세계사, 참고서, 백과사전, 교육학사전, 종교학사전, 학습사전, 법률.정치학 사전, 시사 상식사전, 논문등을 가장 권위있는正論으로 삼기때문에, 대중언론의 의견이 어떻든 교과서.참고서.백과사전.각종 사전, 논문, 학술서적 중심임.
방송에서의 의견표시 능력은 100번 서울대나 국시110브(일본 강점기 연희전문 후신 연세대)도, 이제 거의 대등해졌는데, 입시학원, 일선학교 진학지도 교사, 여러가지 신문.잡지에서는 아직도 일본강점기 잔재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중심 연세대.고려대 카르텔에 지방지나 지방의 입시전문가들도 그렇게 연계하고 있음.
100번 서울대, 국시110브(일본 연희전문 후신 연세대) 의견은 양희은씨의 방송 의견이고, 해방후 한국 국민들의 대중여론은 일본 강점기 잔재 경성제대의 국립 서울대 설치안에 중학교(그 당시 중학교는 중.고 통합과정 중학교로, 대학진학 예정학교들임)학생들이 대대적으로 반대한것임. 식민지교육의 연장이나 한국인의 자주정부가 들어서기전의 국립대 설치(적국 일본의 적산재산인 경성제대등의 일본강점기 잔재를 국유화하는 개념의 국립대 설치로 볼 수 있음. 적산재산 국유화개념)라 반대한것에 해당됨.
이런 일본강점기 잔재학교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국대안(국립대 설치안) 반대운동도 그렇고, 왜놈학교 배척현상도 그렇고, 이는 한국인의 자주의식 표현임.
한편,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행된 대중언론의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카르텔은 필자나 성균관대 능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세력이 되어버렸음.
이에 국사 성균관 중심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세계의 지배세력이던 교황청과 서유럽을 상기바람)의 Royal동맹을 영구화하여 발표해 온것임.
필자가 宮 성균관대 임금이나 왕으로 자처할 수 있던건, 교황윤허 御서강대 임금님이 필자의 고등학교 동창인 관계로 정신적 영향을 받아 그렇게 진행시켜 온것임.
법적 구속력은 없는 상태로, 신의 은총을 입은 카리스마 현상에 의해 宮 성균관대 임금=御 서강대 임금으로 발표해 온것임.
임금으로 등극하고 소개시키고 공동 임금이라 발표해놓고 퇴진하기도 어려운 상태였음. 그러면서 대한제국 황제의 후손인 황사손(이원)도 발견하는 복잡한 우여곡절도 겪었음.
여하튼 역사적으로 가장 옳은 자격인 성균관의 대학자격이며, 宮 성균관대 임금의 位에서 필자는 퇴진할수 없기에 미래에 합법적으로 국민들이 宮 성균관대 임금을 국왕으로 옹립하기 원할시에는 70%의 영토를 宮 성균관대 임금이 가지고, 반드시 御서강대 임금에게 30%의 영토를 주어 왕의 지위에 걸맞게 처리해주어야 할것. 사실 필자 혼자서는 宮 성균관대 임금으로 자처하는 지위유지도 어려운 상태임. 宮 성균관대 임금=御 서강대 임금의 공동 체제니까 보이지 않는 힘이 지원해주는것.
공동의 Royal대 체제 유지를 위해, 공동 왕위를 유지하기 위해, 한번 글로 발표한 영토 분배 계획인데, 취소치 않고 실제로 필자나 필자(宮 성균관대 임금. 문필가, 宮 儒 윤진한, 1962년생. 1981년 전주 신흥고 졸업, 성균관대 경상대학 무역학과 주간 1983학번. 퇴계장학생)의 후계자가 법률적으로 宮 성균관대 임금과 국왕이 되도록 그대로 당초의 원안을 변경시키지 않고 이어나가겠음. 국민들이 법률적으로 왕정을 원할시 70%의 영토는 宮 성균관대 임금이, 30%의 영토는 御 서강대 임금에 귀속되어야 할것.
御 서강대 임금님(서진교 교수. 서강대 기록보존소. 1981년 전주 신흥고 졸업, 서강대 사학과 입학하여 서강대에서 석사.박사학위)의경우, 한국사를 전공하신 분으로, 교황윤허 御서강대출신이지만 토착화된 御 서강대 임금님. 여하튼 필자는 대한민국이 유교의 관습적 국교전통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원하며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삼강오륜교육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국사 성균관의 정통성이 함께 이어져야 한다는 사상임.
御서강대 임금님은 한국인이며 전통문화의 바탕속에 이를 계승할 수 있는 적절한 분으로,대표집필은 문필가(학자아님)인 필자가 하고 있음.
여하튼 宮 성균관대 임금과 御 서강대 임금은 한국인이며. 한국사와 한국의 국내법을 바탕으로 세계사와 국제법을 수용할 임금들임.
국민들이 원하면 宮 성균관대 임금을 국왕으로 옹립(그럴경우 반드시 70%의 영토는 宮 성균관대 임금에게, 30의 영토는 御 서강대 임금에게 분배시켜야 함). 그러나 영토 분배는 宮 성균관대 중심으로 대중언론분야등 모든 분야에서 모든게 안정화되고(宮 성균관대=御 서강대), 유교국가로 완전히 복구된후에, 남북통일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진 다음에, 宮 성균관대 임금이 법률적으로 확실하게 국왕으로 등극하고 여유가 생기고 힘이 있을때, 宮 성균관대 임금이 유리한 쪽으로 나머지 30%의 영토를 御서강대 임금에게 분배하여야 할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일본총독부 포교종교(일본 신도, 불교, 기독교)의 종교주권을 인정해 줄 수 없습니다(종교의 자유는 인정). 일본신도와 일본 불교는 강제.불법의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이후에 일본 총독부를 통하여 강제 포교되었음. 일본강점기 이전에 유교국가 조선(대한제국)에 들어온 가톨릭과 개신교는 유교의 틀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유교도의 나라에 속하면서, 극히 극소수 인원들이, 해당 종교시설에서의 종교활동을 묵인받는 형태였다고 판단하며, 일본 강점기에도 일본 총독부를 통하여 포교대상은 포교대상이었음. 개신교와 가톨릭의 경우 일본강점기나 해방후에 그 잔재를 인정.추종하던 행위에 대해서는 그 행위를 불인정하는게 옳습니다. 언론등에 일본강점기를 추종한 행위는 불인정하며 한국에서 세계사 교육이 보편화되고 필자가 한국사와 국내법에 세계사의 특성과 국제법을 부분적으로 연계시킨후에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로 발표한 후부터는 서강대학내와 동반자들의 구역에서 성씨와 본관사용 및 설날.추석 및 조상제사 인정등 유교국가의 관습을 인정하면서, 부분적으로 유교와 동등한 자격을 인정해준걸로 하겠습니다(필자의 조치가 아직 법적 구속력은 없음). 필자는 다만 필자의 고교동창인 御서강대 임금님(서강대 기록보존소 서진교 교수)의 협조와 서강대의 세계적 네트워크인 예수회의 적극적 협조로 宮 성균관대 임금이 국왕으로 등극하기를 바랄뿐입니다. 30%의 영토분배가 시행되지 않으면 교황청이나 세계의 여러 가톨릭국가들이 단합하여 宮 성균관대 임금을 인정치말고 그 나라도 배척하고 왕위에서 축출하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宮 성균관대임금의 국왕등극을 원하지 않으면 현상태의 민주공화국 상태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헌법前文, 을사조약.한일병합 무효의 임시정부 법통, 한국사 교육, 세계사의 교육등을 토대로 법적 구속력은 없는 宮 성균관대 임금=御 서강대 임금의 정신적 지위를 인정하면 될 것입니다.
이는 외세의 강압이나 개입이 아니라, 한국인의 내부적 행위임을 함께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파괴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패전국에 항복국가가 된 戰犯國(UN敵國) 일본이 왜곡시키고 단절시켰던, 한국의 유교와 교육등을 되돌아보고, 주권수호.상실주권 회복을 위해 다방면으로 연구.검토하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고 있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일합방과 을사 5조약이 원천무효라고 결의한 한국 국회결의. 그리고 한일합방건 일본정부 발표에대해 원천무효라고 밝힌 한국 외무부
http://blog.daum.net/macmaca/712
2. 일본강점기때 폐지.왜곡된 성균관. 해방후에 설립(재건승계)된 성균관대학교가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백과사전.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현대 한국사적 입장에 대한 학술적 고찰. 그리고 한국사의 성균관대(성균관에서 이어짐)와 세계사를 연계하여 해방이후 합법적으로 설립된 敎皇聖下 윤허대학인 예수회의 서강대와의 Royal.Imperial 특성의 공통점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733
3. 自然人에 대한 공평한 능력우대와 달리 法人體로볼때, 일본 강점기 잔재 경성제대.관립전문학교 후신 서울대등은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강점기 잔재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732
4. 2차대전 결과와 상관없이,세계사와 한국사를 바꾸지 못하면, 교과서(백과사전,학습서), 학술서적상의 기득권 대학 학벌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1812
5. 종교인구 조사를 어떻게 해도, 응답자가 자기종교를 어떻게 표기해도 한국인은 모두 유교도임.
http://blog.daum.net/macmaca/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