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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베이징대 전략협력대학에 선정

beercola 2015. 5. 12. 22:00

@ 성균관대, 베이징대 전략협력대학에 선정. U's Line ,2014-05-06 기사

 

http://usline.kr/n/news_view.html?c=n_weekly&seq=2266

 

 

@ 성대-베이징대 ‘白頭…’ 출정식. 문화일보 기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071801073622124008

 

 

@ 필자의견 1.

 

1). 베이징대는 漢나라 太學 이후, 여러나라의 國子監에서 이어진 중국의 대표적인 대학입니다. 元.明.淸의 國子監을 대체한 京師大學堂에서 이어진 대학이 베이징대입니다. 성균관대는 한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대학이고(最古), 조선(대한제국)시대 유일무이의 最高

대학이었으며, 현재도 그렇습니다. 

 

중국의 경우에는 국권을 빼앗기지 않아서, 문화대혁명같은 내부적 행위와 달리(나중에는 과오가 있다고 비판받음), 외부세력들이 중국의 전통문화를 말살하거나 왜곡시키지는 못했습니다.

 

2).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불법.강제.무효의 을사조약과 한일병합등을 거치면서, 외부세력인 일본에 의해 최고대학 성균관의 교육기능이 명륜전문학교등으로 왜곡되고, 대한제국(조선) 황실(왕실)의 주권이 상실되고 여러가지 유교 국가제사가 폐지되고, 유교국가 조선(대한제국)의 姓名도 나중에는 신도국가 일본식 성명으로 대체되는 창씨개명등을 당하고, 京城帝大등(그 후신이 서울대) 여러 일본 관립학교(현재기준 대학교, 전문학교, 중.고등학교등)를 대대적으로 설립시켜 한국인의 혼을 말살하고 일본인화 하는 교육을 실시했었습니다. 그리고 위안부등 강제징집.강제노역등이 있었는데, 강제.불법으로 조선(대한제국)의 모든 국권을 앗아가서 그렇게 약탈을 했었습니다.  

 

여하튼 명륜전문학교등으로 왜곡되다가 해방후에 대학으로 복구된 성균관후신 성균관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승만 전 대통령, 김구 주석, 김창숙 선생등)이나 전국 유림들 기준으로는 대한제국(조선) 유일무이의 최고대학 성균관에서 이어진 대학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군정당시 한국인의 자주정부가 출현하기 전, 패전국 일본의 잔재인 경성제대나 여러 관립학교들을 합쳐 적산재산의 국유화처럼 국립 서울대를 추진했는데, 을사조약.한일병합은 대한제국(한국)의 국내법으로는 당연 무효였고, 국제관습법으로도 프란시스 레이교수의 국제법논문에 따라 을사조약은 무효였습니다. 포츠담선언과 카이로선언에 의하면 일본의 주권은 한국영토에 성립되지 않고, 축출해야 할 대상이었기 때문에, 경성제대 및 여러 일본 관립전문학교 후신 서울대의 주권은 해방당시에도 한국에 없었으며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할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3). 해방당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의 국립 서울대 추진에 전국적인 반대가 있었는데, 이런 다툼을 보이며 한국인의 최고대학 성균관대와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경성제대(여러 관립 전문학교 포함)후신 서울대 및 그 추종대학들이 라디오, TV, 신문.잡지, 유림들과 독립투사들의 인식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갈등을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1963년 UN국제법 위원회에서 을사조약은 무효라고 하여, 한국정부가 일본과 한일조약을 체결하면서 을사조약.한일병합등 모든 조약이 원천무효(한국입장)라는 의견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1988년에 시행된 현행헌법[1988.2.25, 헌법 제10호, 1987.10.29., 전부개정] 에서는 일본에 선전포고도 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조항이 늦게나마 반영되었습니다. UN이 을사조약을 무효라고 국제법적 의견을 보인다음에 임시정부 조항이 헌법에 반영되었는데, 결국 무효상태인 을사조약이후 한국을 침략한 일본과 임시정부등으로 대항하다가, 1988년에 헌법에 임시정부조항을 반영하였는데, 對日선전포고를 한 한국은, 국내법상 對日승전국이 될 수 있고 또 승전국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2). 그리고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에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의 최고대학 성균관에서 이어진 대학이 현재의 성균관대라고 정부입장이 반영되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가 발간된 경위를 보면, 1979년 9월 25일 대통령령 제 9628호로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 편찬사업 추진위원회 규정>을 공포하였고, 동 규정에 근거하여 1980년 3월 18일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편찬사업 담당부서를 두었으며, 1980년 4월 10일 제 1차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편찬사업 추진위원회의 개최를 시작으로, 1991년까지 12년의 기간동안 3백여명의 편집진과 3천 8백여명의 집필자가 참여하였다.

 

1988년부터 시안본을 검토 수정하여 1991년에 전권이 출간되었고, 1995년에는 보유편이 28권으로 나왔으며, 일부 개정증보를 거쳐 2001년에 CD-ROM 개정증보판이 발간되었다. 이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2005년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기관명을 변경하였으며,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개년에 걸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개정증보사업을 인터넷 온라인 웹서비스 구축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韓國民族文化大百科事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필자의견 2.

대통령 령에 의해 정부측 의견이 조선(대한제국) 성균관이 현재의 성균관대로 이어졌다고 하였기 때문에, 국사 성균관에서 이어진 성균관대에 대해 학교.시중의 학원가,입시지.대중언론등에서 성균관대에 항거하고 도전하는것은 원칙적으로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패전국 일본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추종세력들이 UN, 한국정부에 대해 도전하는 행태라 할 수 있습니다. 알려줘도 자꾸 대중언론이나 학원가,입시가에서 성균관대에 도전하고 그러면 반정부 투쟁이 될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개념에 유의해 두고  패전국 일본 잔재처리(교육.학교.종교등 제반분야)를 한국 영토에서 장기적으로 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의 최고대학 성균관에서 이어진 대학이 성균관대라는 의견은 두산백과, 교육학사전, 종교학사전, 중.고생 학습사전, 시사 상식사전같은 권위있는 사전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그리고 성균관대와 성균관도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 필자의견 3.

 

한국사의 성균관처럼, 세계사에서는 중국 漢나라의 太學.國子監, 유럽 중세시대의 대학들인 볼로냐대학과 파리대학들을 정설로 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가장 권위있는 국사와 세계사 및, 한국 헌법.국제법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여 국내에서는 宮 성균관대(국사 성균관에서 이어진 600년 역사의 대학)=교황聖下 윤허 御서강대의 Royal대 체제를,한국에서의 영구적인 Royal대 체제라고 한국과 세계에 발표해 왔었습니다. 御서강대 학벌위원들과 함께 해온 의견들임.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파괴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패전국에 항복국가가 된 戰犯國(UN敵國) 일본이 왜곡시키고 단절시켰던, 한국의 유교와 교육등을 되돌아보고, 주권수호.상실주권 회복을 위해 다방면으로 연구.검토하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일본강점기때 폐지.왜곡된 성균관. 해방후에 설립(재건승계)된 성균관대학교가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백과사전.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현대 한국사적 입장에 대한 학술적 고찰. 그리고 한국사의 성균관대(성균관에서 이어짐)와 세계사를 연계하여 해방이후 합법적으로 설립된 敎皇聖下 윤허대학인 예수회의 서강대와의 Royal.Imperial 특성의 공통점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733  

 

2. World class Universities. Final. It based on World History Text books,Encyclopedia,Korean History Textbooks,Reference Books,scholarly books, etc.

http://blog.daum.net/macmaca/1288

 

3. 종교인구 조사를 어떻게 해도, 응답자가 자기종교를 어떻게 표기해도 한국인은 모두 유교도임.

http://blog.daum.net/macmaca/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