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노부유키의 말이 생각남. 해방당시의 조선일보를 보면서, 경성제대를 국립 서울대로 만드려는
아베 노부유키의 말이 생각남. 해방당시의 조선일보를 보면서, 경성제대를 국립 서울대로 만드려는 국대안(국립 서울대 설치안) 파동과 연상되어 그의 말이 다시 심각하게 느껴집니다.
1. 경성제대를 국립 서울대로 만드려는 계획에, 일반인들은 대한민국 자주정부가 출범하기 이전이라 시기상조라 반대하고, 대학은 대학 나름대로 반대하고, 이러한 반대운동은 널리 중학교(그 당시는 중.고 통합과정 5년제 중학교들로 많이 존재)에까지 파급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중학생들의 생각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시, 선배들이 겪어온 일본의 노예교육을 받기 싫다는 일본 불법강점기 잔재에 대한 거부였던 것 같습니다.
다른 해석도 있지만, 위의 의견을 중심으로 그 당시 상황을 살펴봅니다.
1). 우선 해방당시 미군정치하의 조선일보 기사로 살펴봅니다. 조선일보는 일본 강점기에는 일본식 연호도 쓰다가 해방후에는 다른 신문들이 발간되지 않을때, 단기라는 용어를 도입하다가 나중에는 서기와 함께 사용하여, 그 여파는 전국적으로 번진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군은 실제 역사가 아니라 수천살까지 살았다는 전설.신화입니다(고려시대 후반 중 일연이 삼국사기를 본 따 불교적 입장에서 각색해 낸 후발 불교설화가 삼국유사임. 正史는 아니고 전설.설화적 野史라고 교육되어 옴. 최근에 有史以來라는 사전에 공식 등록된 단어를 놔두고 단군이래라는 전설.설화적 용어를 쓰는 분도 있는데, 이는 공식적인 용어는 아닌것 같습니다).
주요 관점은 일본강점기에 불법.강제로 만들어진 경성제대를 미군정 당시 국립 서울대로 만드려는 문교부([* 필자 주 1). 유억겸 문교부장은 그 당시 문교부장으로, 최근에 대통령과 국회에 친일파로 보고됨. 동경제대 출신으로 가족들이 친일파가 많음]의 계획에 국대안 파동이 일어나고 교육계는 위기에 직면했던 보도기사가 나갈정도로 국립 서울대 설치에 많은 반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항복선언후 도망.피신도 갔던 한국인들(조선 총독부에 근무하던 한국인들)을 복귀시켜, 미군정에 임용시키니까, 법인체로서의 대학.중학교의 주권은 한국영토에 성립되지 않던 일본 강점기 국립.공립 학교들의 사정과 달리, 미군정의 관리라는 개인적 특성을 활용하여, 일본 강점기 잔재 중심으로 해방 한국의 틀을 짜 버렸다고 여겨집니다(대한제국 구 황실의 황족.정부관리, 임시정부 요인들은 배제됨).
2). 그 당시 조선일보 신문기사
가) 1947.1.29(서기)
오차장[* 필자 주 2). 그 당시 문교부 차장 오천석을 말함] 담화. 國大案(국립 서울대 설치안), 종합대학등 언급
* 필자 주 3). 서울대 국대안 파동으로 아주 시끄러워 지기 시작한 때입니다.
나). 1947.2.9
교육계 위기에 직면. 중학교 맹휴선풍. 유억겸 문교부장...
* 필자 주 4). 국립 서울대학안을 에워싼 학생들의 맹휴사건은 널리 중학교에까지 파급되었다는 그 당시 보도가 있습니다.
7일 현재 동맹휴학(맹휴)에 들어간 중등학교는 다음과 같다.
. 朝工 야간부, 漢城中學, 東明高女, 大東상업, 東星中學, 배재중학, 경기공업, 경복중학, 휘문중학, 京東중학, 中東중학.
* 필자 주 5). 이 당시 신문내용은 여러 기사가 나옵니다.
. 맹휴파동
.서울대학문제:중학생 제군은 학교로 도라가라.
.맹휴:배재중학.직원 총사직
.학생등록 겨우 2할:맹휴
.부일협력자 처벌안[* 필자 주 6). 임시정부 요인들도 귀국하고 해방당시니까 당연히 이런 의견이 나왔을 상황이라 여겨짐].
2. 이 당시는 마지막 조선 총독이던 아베 노부유키가 한국을 떠나면서 남기고 간 일본 군국주의 잔재 망령이, 인구에 회자되던 때입니다. 십년도 넘는 오래전 필자가 국립중앙 도서관에서 해방당시 조선일보를 보면서 느꼈던 아베 노부유키의 말을 메모해 두었는데, 한국일보에 이런 내용이 기고되었군요.
한국일보에 기고된 장영권(국가미래전략원 대표.정치학 박사)대표의 글과 함게 아베 총독의 일본 군국주의 망령을 다시 상기해 봅니다. 2013.10.15 기사입니다.
[기고/10월 15일] 일본 아베 정권과 동아시아의 미래
" 현재의 조선은 결국 일본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했다.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아베 노부유키는 제 10대 마지막 조선총독부 총독을 지냈다. 아베 노부유키는 조선인에 대한 대규모 탄압과 검거를 자행했다. 그는 1945년 9월 8일 서울에 진주한 미군사령관 하지 중장에게 정식으로 항복문서에 조인했다. 그리고 며칠 후인 9월 12일 조선을 떠나면서 이와 같은 연설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