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전쟁 이후, 세계사의 지배세력(정신:교황청, 세속국가:서유럽)과, 중국(황하문명이후 수천년간 유교.태학.문화.경제)
1. 아편전쟁 이후, 세계사의 지배세력(정신:교황청, 세속국가:서유럽)과, 중국(황하문명이후 수천년간 유교.太學.문화.경제)이 세계인의 의식속에서 또는 교과서.학술서.사전등에서 그렇게 중요한 세력으로 인식되어온 전통적 기득권은 존중되어야 하겠습니다.
수천년 인류역사가 담긴 세계사라 바뀔 사유는 없습니다. 국제관습법 형식으로 인정되어온 교육이라 앞으로도 이런 세계사 교육은 그대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2차대전이란 인류 최대의 전쟁을 겪은 이후, 세계질서는 어느정도 재편된것은 분명한 현실입니다.
우선 세계사의 전통적 지배세력에 대해 언급합니다.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고, 아시아.아프리카의 구대륙은 중국을 제외하고 대부분 서유럽의 식민지나 지배하에 놓여 있었습니다. 해외정복이 합법적이던 인류전통이 지속되어 Original Title(原始的 權原)로 강대국의 해외정복이 인정되던 시대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또한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등 신대륙에 대한 서유럽 국가의 식민지 개척도 합법적인 영토획득시대에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이런시대에 구대륙에서 주요 전통적 강대국이라 하면 아시아의 중국과, 유럽의 정신적 구심점이었던 교황, 세속국가로는 프랑스.영국.스페인등이 대표적인 국가였을 것입니다. 2차대전 이전의 이태리도 전통적 문화 지배세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항해시대이후 개척된 스페인의 막대한 해외영토는 중남미.남미, 필리핀등 아주 거대했습니다. 물론 프랑스나 영국의 해외 식민지 개척도 아주 엄청났지요.
2차대전 이전에는 로마제국을 이어받은 이태리의 종교.문화.언어적 영향력과, 유럽내에서의 독일의 위치는 중요했었습니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로 놓여있던 당시, 중국과 영국간의 아편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한 이후, 중국은 서유럽의 위세에 눌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도처럼 식민지는 되지 않아서 노쇠한 그 큰 제국을 겨우 유지하는 수준이었습니다.
2. 동아시아에서 전통적 강대국으로 중국天子(중국 황제 겸임)의 위치로 여러나라 王들을 임명해주고, 조공을 받던 아시아의 강대국(세계적 강대국으로 대부분 존중해주던 나라) 중국이 또다시 淸日전쟁에서 지고, 유럽 여러나라의 영토할양등이 이어지니까, 한국에 존재하던 왕조들의 군사적 지원자이던 중국황제는, 일본이 한국을 조금씩 접수해가도 손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편 화제를 중세시대로 잠깐 돌려봅니다. 아시아와 유럽 대륙에서는, 몽고(흉노라 하여 중국 漢나라의 정복후부터 전통 유교국)인들이 元나라를 세우고, 이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서아시아.러시아 일부에 여러 칸국을 세우고, 우수한 중국문명(세계 4대 발명품인 종이.화약.나침반.인쇄술)을 보편적으로 접하게 된 이슬람(유교전통을 이어받은 중국 元나라와 몽고인의 후손들이 왕으로 군림하던 여러나라에서 새로만든 이슬람을 접하고 살던 중앙아시아.서아시아 인들은 유교문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 예로 들면 하늘天 숭배, 조상제사같은 유교전통, 漢字, 占을 보던 유교전통, 기타 여러가지 문화) 신앙인들과 교류하던 가톨릭국가 서유럽인들은 여기서 익힌 여러가지 신기술로 총이나 대포.나침반을 활용한 항해술,인쇄술을 발전시키며 결국은 과학기술대신 人文學과 經書에 치중하던 중국과 동아시아의 문화수준을 오히려 앞지르는 계기를 마련한 것 같습니다. 유럽인이 중국과 동아시아 문명을 앞지르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산업혁명인데, 아편전쟁에서 영국이 중국을 이기기 전까지는 중국은 여전히 중국天子(중국 황제도 겸임)의 나라로, 세계적인 경제대국이었고 최고대학 國子監(漢나라 太學에서 이어진 國子監. 국자감은 元.明.淸 시대에도 국자감으로 유지되다가 淸나라 말기 京師大學堂으로 바뀌고 경사대학당은 중화민국시대에 다시 北京大로 바뀜)과 황하문명.유교문화를 계승.발전시킨 문명대국이었습니다.
유교전통 유지국 元나라와 몽고인들의 여러나라를 간접적으로라도 접한것으로 보여지는, 중세 유럽인들은 중국.한국처럼 大學을 세우며 신학.법학.철학같은 학문과 지리학, 수학.천문학.생물.화학, 그리고 르네상스를 꽃 피우게 됩니다. 이런 계기는 중국문명을 퍼뜨린 유교전통 유지국 元나라와 몽고(고대부터 유교국)인들의 여러 국가가 세계제국을 형성한 이후 부터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일본은 동아시아의 변방으로 살다가 서유럽의 항해자들이 찾아와 총도 전달해 주면서 이후부터 일본은 군사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는 일본이 뒤떨어진 분야인 조선의 우수한 水軍과 전통 화약.明나라의 대포등이 일본을 격퇴시키는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조선침략에서 격퇴당한 이후, 일본에 여러 고대문물을 전해준 한국의 조선에 반성하는 자세로 살았지요. 그래도 서유럽과는 해양적 교류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단절시키지 않은채 살다가, 미국이 강제개항시키면서 다시 서양이 급속도로 발전시킨 과학기술을 다시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 당시, 일본이 아니었어도, 서양인들이 발명한 전기나 기차.전동차.자동차 기술은 조금씩 조금씩 조선이 받아들이면 되는 기술이었습니다(주권을 유지하면서도).
여하튼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 때부터 일본의 최전성기를 구가하게 됩니다(1945년 2차대전 패전때까지).
3. 2차대전을 거친후, 구대륙(아시아.유럽)의 전통적 주요 강대국.지배세력은 다음과 같다고 필자는 판단합니다.
가). 아편전쟁이후 세계사의 전통적 지배세력
a). 종교.문화.역사적 측면
ㄱ). 교황청(종교적 측면)
ㄴ). 동로마제국 붕괴이후(서로마 제국은 고대에 해체됨), 로마제국의 역사는 군사적 측면이 아니라 문화와 교육.역사적 측면입니다.
b). 지금까지 유지되는 세속국가 차원의 전통적 지배세력(2차대전 패전국이 아니어야 함): 영국.프랑스.스페인
c). 교육적 측면: 볼로냐 대학(수도원의 대강당에서 시작된 중세 유럽 최초의 대학), 파리대학(교황 윤허 대학)
나). 아시아의 전통적 지배세력
ㄱ). 문화.역사적 측면: 황하문명, 漢字
ㄴ). 종교적 측면:유교
ㄷ). 교육적 측면:중국의 漢나라 太學(國子監,京師大學堂,북경대)
ㄹ). 정치적 측면: 중화인민 공화국이 UN에서 유일한 중국대표로 인정되기 이전의 UN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이던 장개석 총통의 자유중국. 그 이후는 중화인민공화국.
4. 2차대전이 일어난 이후 세계사의 전통적.학술적 기득권은 다음과 같습니다.
a). 황하문명 중국의 유교.漢字, 漢나라 太學(國子監, 京師大學堂, 북경대)
b). 에게문명, 교황청, 가톨릭, 볼로냐대학.파리대학. 그리고 세속국가 차원에서 전통적 지배세력으로는 영국.프랑스.스페인
5. 세계사의 전통적 기득권이 유지되면서도 2차대전을 통하여 UN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이 된 강대국들
a). 군사분야 지배세력: 미국, 구소련(러시아로 변경됨). 2차대전 이후의 지배력은 서유럽에서 미국과 구소련(러시아로 변경됨)으로 옮겨졌다고 보는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의견입니다.
b). 현행 UN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역사적으로 영국.미국,중국,러시아,프랑스. 이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은 현행 5개국으로 마무리 되어야 하며 더 이상 추가하면 큰 분란이 예상됩니다.
6. 독일에 대한 필자의 의견
a).독일은 2차대전 패전국이자 전범국임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 유럽인들의 전통으로 각국의 왕실은 혼맥으로 이리 저리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영국왕실과도 역사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왕조가 독일의 하노버 왕가입니다.
하노버왕가에 대해 두산백과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701년의 왕위계승법에 의하여 앤 여왕이 죽은 뒤, 독일의 하노버가(家)에서 영입한 조지 1세에서 시작된다. 동왕(同王)과 조지 2세는 독일 출생으로, 영국의 정치에는 관심이 적어 의회정치 및 책임내각제의 발달을 촉진하였다. 다음의 조지 3세는 왕권의 회복을 도모하여 의회를 조종하였으나, 결국 미국독립의 실태(失態)를 초래하였다. 그 뒤 조지 4세, 윌리엄 4세를 거쳐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여, 64년의 치세 중에 영국의 최번영기를 맞이하였다. 다음 에드워드 7세의 즉위와 함께 색스 코버그 고타왕조라 개칭하였으나, 그것은 독일계의 명칭이었기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이 적국이 됨에 따라 조지 5세 시대인 1917년 윈저왕조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출처: 하노버왕가[House of Hanover, ─王家]
b). 독일의 경우, 프랑스.미국.구소련.영국이 공동 점령하여 패전국.전범국으로서의 죄를 반성하고 단죄해 온 나라입니다. UN적국에서 해제해 줄 수는 없지만, 가톨릭과의 역사적 유대감, 영국 왕실과의 어쩔 수 없는 역사적 인연 측면이 있고, 선진국이고 학술적 전통이 강한 나라인데다, 한국과는 선진기술.경제적 교류에 있어 중요한 나라이기 때문에, 대등하게 패전국 처리하고 중요시해야 될 나라가 독일입니다.
시기적으로 우연히 겹쳤는데, 전임 교황님(독일 출신 교황) 당시에, 과인(宮 성균관대 임금)과 御 서강대 임금님이 왕으로 등극하여 세계적 매체들에 알렸습니다. 여러나라들에 알려지고, 한국정부.교황청.미국정부도 인지하여, 국제법상 큰 하자는 없는것 같습니다. 스페인 국왕께서 한국을 형제국이라고 외교적 경로를 통하여 밝히신것도 교황청의 영향력이 작용한 듯 합니다.
7. 일본에 대한 필자의 의견
a). 일본의 경우, 현재의 경제력은 인정해 주면서도, 을사조약이 무효고 한일병합은 무효입니다. 게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본과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사실이 있어서 독일과 일본에 대해서는 대등한 관계(지금와서 한국이 지배자가 되고 독일.일본이 종속적 패전국이 되는 관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의 패전국으로 강하게 그 관계를 재정립해야 할 것 같습니다. 2차대전의 전후 처리는 배상이나 군대보유 제한, UN적국, 전범자 처벌로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b). 한국에 남겨진 일본 강점기 잔재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나 여러 관련대학들(서울시립대.경북대.부산대.전남대등의 관립학교들, 그리고 을사조약 이후에 들어온 동국대의 전신 불교학교)은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축출해야 될 일본 강점기 잔재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뒤에서 대중언론으로 카르텔을 형성한 연세대나 고려대의 위치도 결국은 일본강점기 잔재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의 추종세력일 뿐입니다.
을사조약이 무효고, 한일병합이 무효고, 일본이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했습니다.
따라서 국사에 나오는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에서 이어진 대학은 성균관대라는 정부출연 연구기관(한국학 중앙 연구원의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 수천명의 학자가 참여)의 서술은 국가적 의견에서 대중언론차원에도 적극 반영해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 백과사전, 종교학 사전, 시사 상식사전, 여러 학습사전, 교육학 사전의 서술 및, 성균관, 성균관대의 학술적 의견도 같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성균관에서 해방후의 성균관대로 이어졌다}.
우선 학교문제에서부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및 그 추종세력들인 일본 강점기 잔재들을 청산해가야 하겠습니다. 또한 헌법에 새로 반영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격으로 대일 선전포고를 한 사실도 적극 활용해가야 할 것입니다.
d). 그리고 유교국이었던 조선(대한제국)이기 때문에, 일본 총독부가 강제로 포교시킨 일본 신도, 불교, 기독교(주로 개신교, 가톨릭 극소수 성당. 이 부분은 구한말의 개신교 학교등은 인정해주면서도 과도한 포교상태는 해결해야 할것으로 판단. 한국은 美.蘇 軍政令등에 의해 모든국민이 조선성명으로 복귀한 유교국일뿐임)의 종교주권은 없으며 종교의 자유는 있다고 보여집니다.
e). 필자(宮 儒 윤진한)가 宮 성균관대 임금이 되어, 御 서강대 임금(서강대 기록보존소, 서 진교 교수)님과 함께, 세계적 매체들에 알리고, 묵인을 받고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로 정의해온 체제는 앞으로도 영구적입니다. 다만 조선(대한제국)의, 유교 국가제사 승계자인 황사손(이 원)은 李王정도로 하여 國王으로 헌법에 반영되기 원합니다. 그 위상은 宮 성균관대 임금(=御 서강대 임금)과 같게 될 것입니다
필요에 따라서 해당자들이 동의하면 육사 출신들은 지속적으로 중요시하겠습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파괴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패전국에 항복국가가 된 戰犯國(UN敵國) 일본에 어떻게 대처하는것이 승전국과 해방국의 권익을 지키는 방법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