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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바빌론의 예루살렘 침공때 성중에 포위된 이스라엘백성들이 인육을 먹었다는 기록이있다.그리스신화에서는 ‘오디세이’에

@ 성경에 바빌론의 예루살렘 침공때 성중에 포위된 이스라엘백성들이 인육을 먹었다는 기록이있다.그리스신화에서는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폴리페모스가 그리스인의 인육을 먹는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에서는 최초의 왕조인 하(夏) 시대부터 인육을 먹었다. ‘사기’에도 은 왕조의 주왕이 폭정을 거듭하면서 사람을 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다음은 국방일보에 나오는 인류의 식인풍습에 대한 글입니다. 알고 넘어가야 할 인류의 모순적 역사인데, 현대사회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알고 있어야 할 인류역사입니다.

 

인류의 모순되고 복잡한 원시적 문화형태를 부정할수는 없기에 알고 넘어가자는 차원에서 비영리적으로 쓰는 글입니다. 현대사회에서는 분명히 범법에 해당되는데 고대에는 4대문명의 순장등 그런 악습들이 많이 있었지요.  

 

인류문명의 초기 형성단계에는 정말 현대 기준으로 이해할 수 없는 풍습이 존재했었는데, 그 초기문명을 이룬나라가 강대국이었다면 남에게 간섭받지 않고, 原始的 풍속을 유지하여 오늘에 이를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권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세계인이 같이 어울려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충고도 받고 서로 보완하며 개선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섬뜩한 식인 풍습, 中 역사에선 다반사

<14> 인자한 영웅 유비, 인육 먹다
2013. 10. 15   18:05 입력

 1972년. 우루과이 대학의 럭비팀을 태운 비행기가 안데스 산맥에서 추락한다. 조난당한 사람들은 살기 위해 필사적인 구조요청을 한다. 영하 40도에 이르는 안데스 산맥의 혹한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라디오를 통해 수색작업을 포기했다는 절망적인 보도를 듣게 된다. 이젠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이들은 살기 위해 죽은 사람의 인육을 먹으며 72일을 견딘다. 이 중 29명이 죽고 16명이 극적으로 구출된 이 사건은 실화로 영화 ‘얼라이브’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아무리 살기 위해서라지만 인육을 먹는다는 것은 비도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사람의 살점을 먹는 카니발리즘이 고대로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록에 나오는 식인풍습으로 성경에 바빌론의 예루살렘 침공 때 성 중에 포위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육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스신화에서는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폴리페모스가 그리스인의 인육을 먹는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에서는 최초의 왕조인 하(夏) 시대부터 인육을 먹었다. ‘사기’에도 은 왕조의 주왕이 폭정을 거듭하면서 사람을 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삼국지에도 인육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도 삼국지에서 가장 인자한 영웅으로 그려지는 유비가 주인공으로 말이다. 놀랄 일 아닌가?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유비가 여포에게 쫓겨나 허도에 있는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러 가는 중이었다. 하루는 조그만 마을에서 지내게 됐다. 집주인인 유안은 유비를 존경하고 있었다. 정말 극진히 대접하고 싶었지만, 돈도 없었고 먹을 것도 없었다. 그는 아내를 죽여 요리를 만들어 유비 일행에게 대접했다. 그동안 쫄쫄 굶었던 유비가 고기를 맛있게 먹고 도대체 무슨 고기이기에 이렇게 맛이 좋으냐고 물었다. 유안은 이리 고기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유비는 부엌에서 팔과 다리의 살이 떨어져 나간 채 죽어 있는 여인을 보게 된다. 유비가 유안에게 어쩐 일이냐고 물었다. “흉년이 들고 대기근이 닥쳐 귀인에게 대접할 식량이 없어 아내를 죽여 살을 대접했습니다.” 유비가 조조를 만나 유안 이야기를 했다. 조조는 선뜻 돈 100냥을 주면서 “유안이란 사람은 과연 의기남아요. 돈 100냥을 줄 테니 유안에게 새 아내를 맞게 하시오”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무리 먹을 것이 없다고 해도 자기 아내를 죽여 인육을 대접할 수 있을까?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대목이다. 또 아내를 죽여 귀인을 대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인이라고 말하는 조조의 사고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사와 날씨를 이해해야만 한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중국 역사에서 황제들은 물론 승리한 장수들이 패배한 적장들을 죽여 그 인육을 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조조가 유안을 의기 있는 남자라고 말하는 것은 당대의 권력자들이 인육을 먹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는 중국의 빈번한 천재와 기근이 이런 문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구황사(中國救荒史)’에는 상탕(기원전 1766년)부터 1937년까지 3700여 년 동안 수해, 한발, 메뚜기 피해, 태풍, 지진, 대설 등의 천재가 무려 5258차례나 기록돼 있다. 특히 기원전 206년부터 1936년까지 기근에 결부되는 자연재해가 2072차례나 발생했다. 대기근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육을 먹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셋째, 전란이 일어날 때마다 기근이 끊이지 않는 것도 식인 문화에 일조했다. 전란에 의한 살육(殺戮), 기근에 의한 아사(餓死) 이외에도 서로를 죽여 마치 양이나 돼지처럼 식육으로 이용한 것이다.

 현재의 사고로 인육을 먹는다는 것은 이해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당시의 여러 문화적인 정황을 볼 때 중국에서 식인 문화는 용인된 사회 현상이었다. 특히 대기근이나 전란 때처럼 먹을 것이 없을 때면 더욱 그랬다. 그래서 중국인 누구도 인육을 먹었다고 유비를 짐승 같은 사람이라고 욕하지 않는 것이다.

[TIP]인육 풍습은 최악의 날씨 탓

중국 역사에서 삼국지의 무대를 제공한 한나라 때 인육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온다. 이것은 이 시대에 중국 역사상 가장 나쁜 날씨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26년의 기록에 의하면 “매년 한발이 계속돼 북방 변경과 청주, 서주에서 굶주린 백성들이 서로 죽여 고기를 먹었다.” ‘진서(晉書)’에도 “성안에 기근이 심하여 사람들이 서로 죽여 인육을 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백성들은 굶주린 나머지 서로 죽여 그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이라고 할까? 삼국지 시대에는 최악의 날씨로 대기근이 든 것뿐만 아니라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백성들의 삶은 그야말로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들이 겹치면서 중국의 식인문화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들지 않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나간 것이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