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달맞이는 마당.누각에서 해도 月神(달님)은 소원을 빌도록 허용하고 계십니다. 본인좋으라고 하는것이니까 온국민 모두 달맞이를 하면 좋겠습니다.
@ 온국민 모두 즐거운 추석(仲秋節)이 되길 바랍니다. 유교 경전에 나오는 조상제사인데 이를 임의적으로 해석하여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하는것은 無君無父의 금수일(祖上도 몰라보는 금수)뿐입니다.
추석(중추절)에 대해 종교학 대사전은 대략적으로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추석은 『예기(禮記)』의 <춘조월 추석월(春朝月 秋夕月)>이란 기록에서 옮겨온 것으로 보이며, 가배란 신라시대 경주지방의 방언이다. 망국(亡國)의 비애를 안고 사라진 고조선ㆍ부여ㆍ옥저ㆍ삼한(三韓)ㆍ가야ㆍ고구려ㆍ백제ㆍ발해 등의 추석에 관해서는 그 기록의 멸실ㆍ미흡으로 상고(祥考)할 길이 없으나 추석이 중국ㆍ신라 등지에 있었음을 미루어 보아 고조선ㆍ부여ㆍ삼한ㆍ가야ㆍ고구려ㆍ백제ㆍ발해 등지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지금은 신라의 가배일이야기만이 『사기(史記)』에 한 마디 전할 뿐이다.
추석에는 추석빔을 입고 햅쌀로 술ㆍ송편을 빚고, 햇과일을 마련하여 가묘(家廟)에 모신 조상 앞에 차례(茶禮)를 지내며, 조상의 산소에 성묘(省墓)한다. 산소에 우거진 잡초는 추석 전날 베는 것이 상례(常例)이나 성묘 때 베는 것도 무방한데 이것을 벌초(伐草)라 한다. 또한 이 날은 술ㆍ송편ㆍ과일 등을 나누어 먹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즐겁게 논다. * 출처:추석[秋夕] (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추석에 대하여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추석을 명절로 삼은 것은 이미 삼국시대 초기이었으니,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유리왕 때 도읍 안의 부녀자를 두 패로 나누어 왕녀가 각기 거느리고 7월 15일부터 8월 한가위 날까지 한 달 동안 두레 삼 삼기를 하였다. 마지막 날에 심사를 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한턱을 내고 <회소곡 會蘇曲>을 부르며 놀았다고 한다.
삼국사기는 8월 15일(음력)의 추석과 관련하여 회소곡과 결부하여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三國史記 卷 第一
新羅本紀 第一(儒理尼師今)
九年(西紀 三十二) …王旣定六部 中分爲二 使王女二人 各率部內女子 分朋造黨 自秋七月旣望 每日早集大部之庭績麻 乙夜而罷 至八月十五日 考其功之多小 負者置酒食 以謝勝者 於是 歌舞百戱皆作 謂之嘉俳 是時 負家一女子 起舞嘆曰 “會蘇 會蘇” 其音哀雅 後人因其聲而作歌 名會蘇曲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유리 이사금)
9년(서기 32) …왕이 6부를 정하고 나서 이를 반씩 둘로 나누어 왕의 딸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部) 안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무리를 나누어 편을 짜서 가을 7월 16일부터 매일 아침 일찍 큰 부[部]의 뜰에 모여서 길쌈을 하도록 하여 밤 10시경에 그치는데,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적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진 편은 술과 음식을 차려서 이긴 편에게 사례하였다. 이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모두 행하는데 그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 이때 진 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며 탄식해 말하기를 “회소 회소(會蘇)”라고 하였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아름다워 후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서 노래를 지어 회소곡(會蘇曲)이라 이름하였다.
출처 : 정구복 외 4인, 역주 삼국사기,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에 종교주권 없는 일본 강점기 포교종교들의 임의적인 해석에 의해 조상제사나 차례를 기피하는 시도가 발생하고 있는데, 불교,기독교는 원래부터 조상제사와는 관계없어서 그런 현상이 생기는것 같습니다. 세계종교중에서는 황하문명의 유교가 가장 오래된 종교중 하나지만, 서양의 로마 가톨릭은 그 교세가 현대에는 가장 큰 종교인데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한 측면에서는 상호 통하는 종교임은 분명합니다. 불교는 無神論的 경향으로 부처가 창조부보다 높게 책정되는 점이 창조주 중심.神중심의 유교.기독교.이슬람교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러나 유교와 기독교.불교의 차이가 어떤 측면에서 어떻게 다른지 검토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서강대 출신 양희은씨가 일본 항복시의 조약보다, 조상제사 거부때문에 100번 서울, 국시 110브(일본 연세)라고 생각했다면 이해가 됩니다. 국제조약상으로 보면 연세가 서울대보다는 한국에서 자격있는 대학임은 분명합니다.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도 조상제사와 관계없는 無君無父라는게 유교측 전통 입장입니다. 그러다가 유교권의 조상제사를 민속적 차원에서 인정해주는 조치가 생겨 이전처럼 강한 마찰은 없어지게 되어 다행입니다. 동양의 유교처럼 서양의 대표종교인 로마 가톨릭의 조치입니다.
그러나 을사조약이 무효고,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에 따라 일본의 주권은 한국 영토에 없으며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합니다. 일본 강점기 잔재인 경성제대후신 서울대등의 법인체 성격이 이에 해당됩니다.
@ 유교권 공통名節인 仲秋節(秋夕)날은 가까운 뒷동산이나 언덕등에 올라 月神(달님)을 향해 각자의 소원을 빌며 달맞이를 하는 날입니다.
달맞이에 대한 역사기록은 우리나라에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3 「열전(列傳)」 김유신조(金庾信條)에 “8월 보름에 왕이 월성(月城) 산 위에 올라 경치를 바라보며 시종관들과 함께 주연을 베풀고 즐겼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 출처:달맞이(추석),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중추’라는 말은 《주례(周禮)》에 가장 처음 등장한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 고대 왕들은 음력 8월 15일 달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1년 4계절(3개월)을 1개월씩(孟 혹은 初,仲,季) 나누었는데, 음력 8월 15일은 가을의 중간인 '중추(仲秋)'라 하였다. 이것에 착안해 8월 15일 달에 제사 지내는 날을 중추절(仲秋節 혹은 中秋節)이라고도 불렀다. 이 외에도 ‘팔월에 행하는 행사’라 해서 팔월절(八月節) 혹은 팔월회(八月會)라고 부르기도 했고,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라는 뜻을 따 단원절(團圓節)이라 부르기도 했다.
* 출처: 중추절 [zhong qiu jie, 中秋节] (두산백과)
달맞이는 유교에만 있는 고유 의식이므로, 그 성격에 충실하여 뒷동산등이나 보름달이 잘 보이는 장소에 올라 달맞이 하면 될것입니다.
굳이 높은 산에 오를 필요는 없으며 불교가 결합된 일본 양력 추석(오봉)의 영향을 잘못 받은 사람도 있을것인데, 절등에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불교는 창조주보다 부처가 더 높게 대우받는 존재이며, 無君無父의 금수라 배척받아와서 유교의 조상제사나 유교의 달맞이등을 불교시설이나 불교인등과 결부시켜서 행하면 않됩니다.
@ 뒷동산이나 언덕에 오르지 않고 배월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달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배월(拜月)이라고 하는데, 달빛이 내려 비추는 마당이나 누각 등에서 향로, 초, 월병(月餅), 과일 등을 간단히 차려 놓고 절을 한다. 우리의 제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여자들이 제사를 주재한다는 것이다. 이 제사의 유래는 민간에 전하는 항아(嫦娥)의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다.
옛날 옥황상제 아들들의 장난으로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떠올랐다. 강은 마르고 땅은 불타 들어가 사람들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보다못한 옥황상제가 예(羿)를 보내 아들들의 장난을 멈추게 하였다. 하지만 옥황상제의 아들들은 막무가내였다. 화가 난 예가 명사수의 솜씨를 발휘하여 아홉 개의 태양을 쏘아 하늘에서 떨어뜨렸다. 그나마 하나의 태양이라도 남게 된 것은 그의 부인인 항아와 땅위의 사람들이 애걸하였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들은 옥황상제는 대노하였다. 장난을 멈추게 하라 하였는데 아들 아홉을 죽인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벌로 예와 항아는 인간 세상에 남겨졌다.
이를 동정한 서왕모(西王母)가 예에게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 약을 건네 주었다. 그런데 어느날 밤 항아가 혼자 몰래 그것을 먹어 버렸다. 하늘나라로 올라 가던 항아는 남편을 속인 죄로 비웃음을 받을까 두려워 달로 달아났다. 그리고는 거기에 광한궁(廣寒宮)을 짓고 월신이 되었다고 한다. 항아가 달로 달아난 날이 중추절이어서, 이 날 달을 향해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또한 아름다운 달빛 아래에서 달을 감상하며 소원을 비는 것도 중추절에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을 상월(賞月)이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집밖 출입이 부자연스러웠던 부녀자들이 달구경을 핑계로 바깥 나들이를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는 교외나 해변에서 달을 맞이하며 그간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망중한(忙中閑)의 시간이기도 하다.
한편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월병을 먹는 습관도 중추절에 절대 빠뜨릴 수 없는 풍속이며, 이 역시 달과 관련이 있다. 달에게 바치는 제사 음식이기도 한 월병은 지역에 따라 모양 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보름달같이 원형이며 간 혹 각이 부드럽게 다듬어진 정사각형인 경우도 있다. 이것은 둥근 보름달의 모양을 빌어 가정의 원만함과 단란함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월병을 먹기 시작한 것은 원대(元代) 말기부터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 출처: 중추절 [中秋節] (중국, 중국인 그리고 중국문화, 2011.3.3, 공상철 외, 다락원).
* 필자 주: 유교의 예법상 주례에 따라 중국 고대왕들은 음력 8월 15일 달을 향해 제사지내고, 한국도 마찬가지였으며, 국민들은 각자 달맞이를 하는 전통인데, 민간에 전하는 전설을 따른다면 항아(嫦娥)의 이야기에 따라 중국에서는 여자들이 시중에서 제사를 주재할수도 있을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마당에서도 달맞이등을 할 수 있습니다.
추석날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보름달을 보면 좋다고 하여 마을 뒷산이나 높은 곳에 오르기도 하고 혹은 마당에서 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기도 하며 달의 모양을 봐서 풍흉을 점친다. * 출처: 달맞이(추석),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 한편, 조선성명 복구령등에 의해 한국은 전 국민이 한문성씨와 本貫을 사용하는 유교도의 나라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일본 총독부령 83호에 의해 강제 포교된 강점기 포교종교인 일본 신도, 불교, 기독교(개신교가 대부분, 가톨릭 한두개 성당)는 한국에 종교주권은 없지만, 종교의 자유는 있습니다.
* 이 글은 비영리적이며, 유교권(중국.한국.베트남.대만.싱가포르등 전세계 십수억명 유교신도)의 공통명절인 중추절(추석)에 대해, 다른나라와 비교하며 다시 한번 되짚어보자는 종교이해적 차원의 공익적인 글로 자료를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