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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세계 공통어인 世界史를 중시합니다. 세계 4대문명(메소포타미아 문명,황하문명,인더스문명, 나일문명)+에게문명

제목: 필자는 세계 공통어인 世界史를 중시합니다. 세계 4대문명(메소포타미아 문명,황하문명,인더스문명, 나일문명)+에게문명을 중심으로 인류의始原宗敎들이 형성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 메소포타미아문명은 多神敎였고, 황하문명은 太極과 연계된 하늘天을 最高神으로 하여 山川의 神.祖上神(영혼불멸설에 의해 집권층의 무덤등이 발달)을 숭배하는 多神敎였고, 인더스문명(황하문명이나 나일문명과 달리 대규모 무덤이 발견되지 않음)의 브라만교도 多神敎였고, 나일문명(태양신숭배, 피라미드등 영혼불멸설)도 多神敎였습니다.

 

인류의 4대 문명중에서 수천년동안 현재까지 이어지는 종교는 유교입니다. 유사이래 최고문명은 황하문명의 중국이 가져왔는데, 아편전쟁 이전까지 세계 1위의 GDP생산국가 였었습니다.  

 

세계사에서 공식화 된 세계 최초의 대학은 중국 漢나라 太學이고, 서양의 볼로냐.파리대학이 중세 서양의 대학으로 세계사 영역에서 지금도 교육되어 집니다. 유럽의 대학들은 볼로냐대학과 파리대학을 모델로 설립된 대학들이 많습니다. 최근의 경향을 보면 옥스포드대학이 볼로냐 파리대학에 이어 세계사나 교과서 영역에서 중세 유럽의 대학으로 교육되어집니다. 

 

한국사는 성균관(성균관대학).

 

@ 이전에는 한국의 세계사 참고서영역에서 세계 4대 종교라 하여 유교,기독교,이슬람교,불교등을 거론하였던 적이 있었는데, 요즘의 세계사는 세계 4대 문명만 나오므로, 필자도 앞으로는 세계 4대 종교를 공식적으로 거론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최근의 세계사를 보면 인류의 오래된 종교들은 유교, 기독교, 브라만교(인더스문명)등입니다.

 황하문명의 유교는 수천년동안 유지되고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문명은 多神敎를 거친후 이스라엘의 유일신숭배사상(여호와 하느님숭배)이 태동하여 이스라엘의 부족종교가 점령자인 로마제국에 전파되어 박해를 받다가 國敎로 되었는데(그리스.로마신화와 연계되었다고 봄, 로마 가톨릭등 기독교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섬기지만 유태교는 예수를 인정치 않는 차이가 있음), 중세시대 대항해시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아메리카와 필리핀등을 식민지로 개척하여 로마 가톨릭은 세계종교로 발판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중세시대의 신대륙 개척은 국제법상 합법적입니다. 중국.서유럽의 영토확장시기와 만국공법등이 보급된 이후 20세기 초에 한국과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일본 및 2차대전때 독일의 유럽점령은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도의 브라만교는 현재 힌두교 성립에 큰 토대가 되었습니다. 불교는 브라만에 대항하여 발생한 無神論的 후발 신앙인데, 창조주를 부정하고 피조물인 부처가 창조주를 발 밑에 무릎꿇게 하고 설교한다는 자세입니다. 힌두교국가 인도에서, 인도의 불교신자는 현재 천민이라 합니다. 황하문명에서 발생한 유교는 인도불교를 받아들인 중국불교때문에 불교를 접하게 되었지만, 無君無父의 금수신앙으로 중국에서 배척하고 유교에 빌붙어 유교적 중국불교로 소수신앙으로 연명중이고, 한국 조선에서는 승려가 천민이었습니다. 불교배척이 별로 없던 일본에서 불교가 (後發局地的) 神道다음 입지를 형성한 후 일본강점기 한국에 건너와서 민간신앙으로 횡행하다가 일본 패망으로 한국영토에서 신도.불교.기독교는 종교주권이 없어졌습니다.      

 

* 불교가 중국에서  無君無父의 금수로 배척받아온 사실은 불교인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가 중국의 혼란기인 위.진.남북조 시대(고구려는 전진에서, 백제는 동진에서 전달받음)인데 조상제사의 나라 중국에서 오랫동안 전해지는 祖上의 姓氏를 쓰지말고 석씨를 쓰자고 동진시대의 승려가 주장했으니 무군무부의 금수라고 배척받았겠지요. 중국이나 한국,베트남,대만,싱가포르인들은 조상 대대로 전해진 조상의 姓氏를 쓰는 유교나라입니다. 한국은 해방이후에 美蘇軍政의 조선 姓名 복구령등에 따라 행정관청에 의무적으로 그 祖上의 姓氏를 등록해야 하는 유교 나라입니다.  

 

다음은 법보신문 2011.8.17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의 글입니다. 

 

 중국에서 세속의 성을 쓰지 말자고 주장한 사람은 동진의 도안 스님이다. 굳이 성을 써야 한다면 ‘석’씨를 쓰자고 했다. 아마도 ‘석’씨가 대중화된 것은 이 때부터일 것이다. 도안 스님은 왜 ‘석’씨를 주장했을까?


당시 스님들은 스승의 성을 받은 관계로 각양각색이었다. 또 하나. 불교가 처음으로 중국에 들어왔을 때 유가에서는 ‘무군무부(無君無父)’의 종교라 폄하했다. 국가도 가문도 없다는 것이다. 도안 스님은 이에 반기를 들며 외친다. “불교도의 진정한 스승은 석존이므로 불제자가 된 사람은 모두 ‘석’으로 성을 삼아야 한다.” 불교계 내의 무분별한 성씨 사용, 그리고 유학계 매도를 단박에 정리해 낸 것이다.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후는 어떠했을까? 초기에는 ‘석’씨도 거의 쓰지 않고 법명과 법호만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통은 근대 이전 까지 지속된다. 나옹 혜옹, 서산 휴정, 태고 보우의 예를 들어보면 명확해 진다.
그러나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법명 앞에 속성이 붙기 시작했다. 왜인가. 일본불교는 당시 대처불교였다. 따라서 자식에게도 성을 주어야 했기에 스님이 되어서도 속성을 붙였다. 물론 일본의 행정통제를 위한 강압도 있었겠지만 우리 스님들도 무분별하게 따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여파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화해야 할 일본불교의 잔재가 아닌가.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행정상에서의 공적 서류에 법명은 인정되지 않는다. 속명이 필요한 상황에서 법명 앞에 속성을 붙이는 게 대수’냐고. 아니다. 행정 서류에서만 밝히면 될 뿐이다. ‘한용운’도 마찬가지다. 당시 이러저런 이유로 썼다 해서 지금까지 그대로 놔둘 이유가 없다. 고려 시대의 일연 스님 비문에는 ‘보각국사’가 아닌 ‘보각국존’으로 되어 있다. 중국 원나라의 내정간섭을 받았던 터라 ‘국사’를 쓰지 못하고 부득이 ‘국존’으로 썼던 것이다. 그렇다 해서 우리가 지금 일연 스님은 보각국사라 말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중국 북주 도안 스님은 “그대가 이미 출가 했으니 낳아 준 어버이와, 세속, 일가친척을 떠난 것”이라 했다. 그리고 말한다. “그대가 출가했으니 수도인이라 불린다.” 불제자로서의 첫 걸음을 내디딘 이상 세연을 끊으라는 말이다. 물론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출가의 자부심을 갖고 수행에 매진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임금에게도 신하 노릇을 하지 않는다”고 도안 스님은 말하고 있다.


출가인은 법명법호면 충분하고 혹 성씨를 써야 한다면 ‘석’씨를 쓰면 그만이다. 한국불교의 오랜 전통, 그리고 출가인의 기개와 위상을 스스로 일제잔재 속에 묻힐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 (後發局地的) 神道국가인 일본의 姓氏는 유교나라인 중국(홍콩포함)이나 한국,베트남,대만,싱가포르,홍콩의 한문姓氏와는 확연히 다르며, 日王은 姓氏가 없는점이 유교나라의 보편적 문화와 크게 차이가 납니다(本貫형식의 本은 있다고 보여짐. 막부시대를 거쳐 하급무사들이 새로 옹립한 그나라의 종교수장임도 맞습니다). 일본은 백제시대 한국에서 전해준 千字文이나 유교경전을 위주로 祖上祭祀만 잘 지내고 있었어도(백제는 祭天儀式인 郊天을 가짐, 일본에 사직제사를 전해주었는지 잘 모름), 유교국가로서 무난하게 대접받을텐데, 일본 막부시대 全 住民을 절에 등록시켜 기독교를 탄압하는 정책을 취하면서 일본의 유교가 변질되고 유교국가에서 이탈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유교권 공통名節인 설날(춘절).한식(청명).단오.중추절(추석) 및 대보름.칠월칠석등 陰歷名節을 전부 陽歷으로 바꾸어 버리니까 유교권 국가와 공통되는 의식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변질된 불교색강한 일본 신도(유교의 조상제사+한자+유교 경전의 일부 의례+불교+일본 토속신앙 혼합)와 일본 민중불교가 을사조약 이후 유교가 國敎인 대한제국(조선)에 강제로 상륙해 불교적 시각을 가미한 조선사 편수위원회도 생겼고, 일본 민중불교가 한국에 있는 천민승려들의 산중불교와 연합하려 하였을 것이고, 시중에 출입하고, 대종교나 원불교같은 새로운 종교들이 일본 강점기에 형성되었다고 판단됩니다.   일본 강점기에 일본 총독부령 83호로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기독교(개신교 중심, 가톨릭 한두개 성당)의 종교주권은 한국 영토에 없습니다(종교의 자유는 있음). 그리고 일본 강점기에 형성되어 시중에 진출한 민중불교도 자격이 없으며(산속에서 천민 승려로 사는게 한국 불교), 일본 강점기에 형성된 불교특성 원불교나 대종교도 종교적으로 인정되기는 힘듭니다(대한제국의 주권이 유지되었다면  인정해 줄 수 없던 사파의 후발신앙들임, 종교의 자유는 있음). 일본 강점기에 형성된 외래신앙 및 후발신앙들은 종교의 자유는 있지만 한국의 전통적인 신분형성이나 자격을 인정받기는 어렵습니다. 

* 한국인은 조선왕조 후손인 황사손(이 원)의 유교 국가제사인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를 중심으로, 조선 최고대학인 성균관(성균관대로 600년 역사와 전통 이어짐, 과도기에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 두대학만 Royal대학으로 정립됨)과, 조상들이 물려준 조선유교식 한문姓氏(本貫 포함), 유교권 공통名節인 설날(춘절).단오.추석.대보름.한식등을 쇠며, 門中別.家族別로 조상제사를 하고, 유교 경전의 가르침대로 冠婚喪祭를 거행하고(현대적 적용해도 될것), 孔孟의 三綱五倫을 배워나가며, 孔孟의 仁.義.禮등을 지켜나가는 유교신도들입니다. 남한 5,000만, 북한 2,400만의 유교신자가 있는 전통 유교국.  종교의 자유는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