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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경복궁,성균관대 부근 명륜동.혜화동, 남산한옥마을및 문중중심 전국 집성촌의 전통을 일본과

친일부왜배등이 존중해주며 그냥 놔뒀을리는 없지만, 학교졸업장과 족보, 문중활동 및 유교제사등의 활동을 보면 과거 그 집안의 문벌이 어느정도였는지 그래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것입니다.

 

집안이 좋은 양반가문중에는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婚事言約으로 결혼시킨 집안도 어느정도 있을것인데, 자기들이 보아온 상대방 집안이 자기와 같은 양반집안전통이기 때문에, 재산조사등 이런것없이 과거의 구식방법으로 할아버지.아버지가 혼사를 언약하였을 것입니다. 꼭 재산만보고 결혼시키지는 않았을것입니다.   

 

을사조약이후 일본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조선(대한제국)황실과 주요 양반가문을 밀착 감시하면서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가 많았던 전주이씨, 파평윤씨,안동권씨,청주한씨,밀양박씨등의 주요 문중을 감시하지 않았을리는 만무합니다. 1910년 한일병합이후에는 성균관의 교육기능을 폐지하고, 그이후 왕실의 각종 제사도 없애고, 설날도 양력으로만 쇠도록 압박하던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