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시 100브(일본 강점기에 들어온 연희전문 후신 연세대 의미, 구한말의 세브란스 의전은 해방후에 대학으로 되었는데 서울대나 연희대 부류로 해방이후에는 지위나 학벌자격 줄 수 없음). 그리고 그 국자(국민대.단국대.건국대, 지방 국립대)가 누군지는 고민해야 하겠지만,확정않고 대중언론 의견으로 영구 유효처리하겠음(학설.이론은 아니지만 유효). 방송보다 필자가 사용하는 인터넷에서 대중언론 의견으로 반영함. 방송에서 말하든 말하지 않든, 宮 성균관대나 御 서강대를 타겟으로 위해를 가하려는 임의적인 방송은 인정하지 않으며 글로 채택할 수는 없음.
學說이나 定說로는 인정치 않음. 서울대는 일본강점기 경성제대와 일본 관립전문학교 후신이기 때문에 법인체로서의 합법적인 학교주권이 한국영토에는 없다는 견해를 필자는 선택해왔음
물론 한국의 대학질서는 국사 성균관에서 이어진 600년 역사와 전통의 성균관대(宮 성균관대=御 서강대)만 Royal대로 함.
@ 대학 학벌.대학질서.종교관련 한국에서 성균관대의 동의없이, 서강대 자체의 규정력은 없으며, 서강대 출신이외의 의견도 인정치 않겠음. 한국 역사에서 가르치는 성균관(성균관대로 600년 역사와 전통 이어짐, 궁 성균관대=어 서강대)대 출신인 필자가 다른 성균관대 출신 자문위원들의 일치된 의견을 보일때만 (궁 성균관대=어 서강대) 질서가 깨지지만 이 질서를 개정시키려면 성균관대 출신 단독으로도 않되며, 서강대출신 단독의견도 유효치 않음. 宮 성균관대 학벌위원 3명과 御 서강대 학벌위원 3명의 전원일치 계약서작성과 날인(인감증명서용 직인이 필요), 서명(전문감정가의 동의가 있어야 함) 및 발표로만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의 Royal대학 체제가 변경됨. 기타 대학들은 다른 대중언론이나 평가기관, 서적.신문.잡지들에서 어떤 평가를 받아도, 영구적으로 비신분제 평민계 Outsider 대학으로 끝나게 됨. 필자가 관여하지 않기때문에, 임의적으로 더 이상의 방송의견은 인정해주지 않겠음.
앞으로는, 임의적인 방송의견도 인정치 않고, 같은 대중언론인 신문.잡지및 기타 경로의 대학학벌 의견들도 더 이상은 인정치 않겠음.
@ 한국의 국왕은 고종과 순종의 후손인 황사손(이 원)이며, 역성혁명에 성공해도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이 거행하는 유교 국가제사인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의 제사권을 공식적으로 넘겨받는 절차를 거치고, 황사손(이원)과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이 합의해야 역성혁명에 의한 왕조교체가 가능함.
@ 황사손(이원)을 국왕으로 규정하기전, 宮 성균관대 임금(필자, 宮 儒 윤진한, 전주신흥고 졸업함. 성균관대 경상대학 무역학과 1983학번)과 御 서강대 임금(서강대 기록보존소 서 진교 교수, 전주신흥고 졸업함. 서강대 사학과 1981학번)이 공동으로 한국을 영혼통치해왔으며, 황사손(國王), 宮 성균관대 임금, 御 서강대 임금이 똑같은 King의 위치임도 변하지 않음.
@ 을사조약이 무효고, 일본이 항복해서, 원칙상으로는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 치르는 황사손(이원)이 한국의 왕이며, 국사에서 가르치는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이 泮宮.學宮의 최고.최고 Royal대학임. 그러나 해방이후 일본 강점기를 청산하는 기회를 얻지못해, 대중언론에서 극심한 혼란을 야기하는 의견들을 써왔기때문, 고종.순종의 후손, 國史 成均館에서 이어진 成均館大 출신들이 대중언론을 통해 인정받아온게 아니며, 배척.도전을 받아온 왜곡사실도 있었음.
일본의 항복이후 美軍政때, 조선일보.동아일보를 통한 왜곡이 주요 촉매로 작용하여 다른 대중언론과 제분야에도 영향을 끼쳐온 왜곡. 이러한 왜곡을 타파하기 위하여 십여년전 혼란기에 외래종교 서강대출신 양희은씨 의견 100번 서울대, 국시110브(일본 연세)가 있었음. 그 당시 정부측에서 대대적으로 TV,Radio,기타 시중의견,여러 군소 공중파를 통하여 筆者가 청취할때 국시110브(일본 연세로 필자는 받아들임)를 방송해서 대수롭지 않게 듣다가 몇년전부터 공식적으로 인터넷을 통하여 대중언론의 의견으로 필자가 인정해 준것임(성균관대에 피해가 없었고, 필자는 글로 써야 인정해준다는 경향이었는데, 대중언론인 친일부왜배들이 장악하여 Radio가 더 전파력이 큰 장점이 있다고 양희은씨가 의견을 제출하여 대중언론 의견으로 인정하게 된것임). 정부측(한국학 중앙연구원의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과 여러 백과사전(두산 동아, 파스칼)이 동조하여 위키백과, 종교학 대사전, 다른 학습사전등에서도 인정. 역사가 오래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성균관대의 600년 역사와 전통에 대해 세계사적으로 반대하지 않고, 구한말과 대한제국의 3년제 경학원(유럽의 현대 대학체제가 9학기 3년과정 대학 많음, 중세시대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중국의 태학, 볼로냐대학.파리대학이 세계와 서양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라는 세계사 가르침이 있어왔음)에서 이어진 대학이 성균관대라는 의견을 보여옴. 그리고 조선 태조때 세워진 대학이라고 볼 수 있으며로 반대하지 않는 의견을 보여옴. 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학술적의견은 국사 성균관에서 이어진 대학이 현재의 성균관대며 600년 역사와 전통을 승계하였다고 필자가 개입하기전에 규정해 놓았었음.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세계사적 규정력을 가진 백과사전인데 성균관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음.
기원은 1398년(태조 7) 서울 동북방 숭교방에 설립된 성균관으로 볼 수 있으며, 1895년 고종의 칙령에 의해 성균관에 3년제의 경학과(經學科)가 설치되었다...
* 필자의견 1). 일본 강점기의 교육기능 중단과 전문학교등로의 왜곡이 있었지만, 이는 강제무효조약인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에서 비롯된 왜곡이기 때문에 불법 강점기의 왜곡부분은 생략함.
다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본문으로 이어집니다.
1946년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이 설립되면서 정규 단과대학인 성균관대학으로, 1953년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었다. 1963년 학교법인 성균관대학으로 개편되었고, 1965년 삼성문화재단, 1979년 봉명재단(鳳鳴財團), 1996년 11월부터 삼성재단이 학교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이하 생략.
* 필자의견 2). 역사가 오래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인데, 한국계 백과사전과는 조금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으나, 성균관대 역사를 반대하는 입장도 아닌것같음. 언제 이렇게 규정해놓았는지 그 시기는 알 수 없음.
* 이 글은 공익상, 비영리적으로 자료를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