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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史 성균관중심. 宮성균관대=御서강대만 Royal대. 다른대학들은 자격은 줄수 없고,자격없는 힘으로 강한세력 형성한 일본 강점기 미청산

國史 성균관중심. 宮성균관대=御서강대만 Royal대. 다른대학들은 자격은 줄수 없고,자격없는 힘으로 강한세력형성한 일본강점기 미청산 

상태로 봄.

 

@ 舊韓末(조선말기에서 大韓帝國까지)에는 대학이 아니다가 해방후에 비신분제 대학으로 된 기독브(브란 의미는 구한말 제중원.세브란스 의학전문에서 비롯된 해방후의 세브란스대를 말함. 일본강점기 연희전문에서 비롯된 연희대와 서로 다른 학교로 있다가 해방후 1950년대 후반 연세대로 통합됨, 연희대는 일본 강점기 잔재로 봄)이(구한말 고등학교 성격 이화학당에서 비롯된 해방후의 비신분제 평민대 이화여대)는  Monkey서울대(한국 영토에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일본 강점기 경성제대와 다른 관립학교 중심으로 서울대로 변한 대학)보다는 자격이 좋음. 

 

여하튼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이외의 대학들은 자격으로 인정할수는 없고, 다만 자격없는 힘으로 왕조시대의 대학 학벌없이 4년제 학사자격 세력을 형성한 일본강점기와 미군정기 과도기의 비신분제 대학들이라 할 수 있음.  독립투사 개인들에 대한 자격은 변하지 않고 언제든지 정당하게 예우해 주어야 함. 국민대 설립자 신익희씨가 대학설립 초기에 재정이 어려워 해인사측 인사를 끌어들여 불교성격이 다시 해방한국에 끼어들고, 친일파 방응모의 조선일보에 남아있던 세력들이 시기상의 불일치로 전국적인 반대를 하던 경성제대 후신의 국립대(나중에 서울대가 됨) 설치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묵살해, 해방후 임시정부 요인이 지정한 친일파 명단에 조선일보 사주 방응모와 동아일보 사주 김성수도 등재되었을것.   

 

서강대 출신 방송인(가수) 양희은씨 의견은 아주 다양한 의견이었는데, 그 당시 방송 담당자들이 서울대 힘을 배제시키지 못하고, 100번 서울대 격하는 없이, 국시110브(일본 연희전문 후신 연세의미)만 집중적으로 공격한것은 일본 강점기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한것 같음.

 

그런데 국민대 출신 손석희가 국시110브로 순응하며 만족하며 살면 충분했을것을, 해인사가 낀 국민대 성격을 탈피하고자 宮 儒 본인(윤진한, 손석희와 일면식도 없음)에게 개인적으로 어거지 피우기에 더 이상 국민대를 키워줄수는 없음. 국시브도 더이상 인정해주지 않겠음. 

 

아직까지는, 기독브이에 어떤 자격을 줄수는 없기에, 국시110브로 공격했던 사람들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수는 없고, 지금도 화나면 그렇게 말로 떠들며 공격할 자유는 있음.

 

@ (宮성균관대=御서강대). 世界史측면의 교과서.백과사전.학문적성격으로 볼때 거의 변동시킬수 없는 상태가 되었음.

 

(宮성균관대=御서강대)뒤에 해방후에 대학으로 된 비신분제 기독브(세브란스 대학) 이(이화여대)는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할 대상에 해당되지는 않으므로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Monkey 서울대(경성제대와 일본강점기 관립전문학교가 주축)보다는, 분명하게 좋은 자격임.  

 

기독브이는 해방후의 비신분제 대학이고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Monkey서울대는 학벌자격을 줄 수는 없음..    

 

여하튼 해방후 남북유림 1천여명은,일본이 교육기능을 폐지시킨 조선(대한제국) 최고대 성균관의 교육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해 남북 유림 1천명(그 당시는 남북이 왕래가 가능하고, 남북분단의 영구화를 막고자 김구선생이나 민족정당 인사들은, 북한을 방문하여 귀국하지 않으면서도 남북분단을 막아보고자 노력하던 시기였음, 왕래가 자유로운 북한 방문후 귀국하지 않아도 실정법상으로 어떻게 못하는 시기이기도 함, 성균관대 복구설립에 참여한 이승만.김창숙 선생등은 북한방문에 의한 남북분단 예방보다는 남한에 남아 다른 중요업무를 추진하던 변동기)은 1945년 11월 30일 고문에 이승만.김구, 위원장에 독립투사인 김창숙 선생을 위원장으로 추대하여 성균관대 설립을 결의하여, 남북 유림 1천여명이 한국인 대표로 모여 조선최고대학 성균관대의 복구가 이루어졌고, 현재의 성균관대는 조선(대한제국) 최고대 成均館에서 이어진 600년 歷史와 傳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宮성균관대=御서강대) 공동 Royal대 체제임. 

 

성균관에 대학자를 더 붙여 복구했음. 

국사영역에 나오는 조선(대한제국)의 최고대학 성균관에서 이어진 현재의 성균관대학교는 조선태조때 설립되어 지금까지 600년 역사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국사영역에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 중앙연구원이 발행하는 백과사전인데 세계사와 비교도 필요함.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한국학 중앙연구원이라 정부입장이 성균관대 600년 역사를 학술적으로 정확하게 인정하고 있는것임), 두산(두산 동아)백과, 종교학 대사전, Basic 중학생을 위한 국사 용어사전[이은석/2006.11.15/(주)신원문화사]등이 조선 성균관에서 현재의 성균관대로 이어진 600년 역사를 학술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校史도 그렇습니다. 

 

국사에 나오는 조선 최고대학 성균관과 관련하여 한국사의 입장은 위와 같이 현재의 성균관대학교가 조선초의 성균관에에서 이어진 최고대학임을 확정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 성균관의 이 부분에 대해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경학과의 학제도 옛 학제와 달리 3년제 학교로서 학급이 편성되고 학년이 전·후 2학기로 구분되었으며, 입학시험을 통하여 학생을 선발하되 20세 이상 40세까지의 연령제한을 두었고, 졸업시험에 합격한 자에게만 졸업증명서를 주어 졸업시켰다.

학과목도 많이 달라져서 유학 등의 전통적 학과목 외에 본국역사(本國歷史)가 필수과목으로, 만국역사(萬國歷史)·본국지지(本國地誌)·만국지지(萬國地誌)·산술이 선택과목으로 설치되었는데, 이듬해인 1896년에는 선택과목도 모두 필수과목으로 바뀌었다.

그 뒤 1905년(광무 9)에 성균관의 관제가 개정되어 장이 칙임관(勅任官)으로, 교수가 3인으로 늘어나면서 판임관(判任官)으로 바뀌고, 박사(博士 : 판임관) 3인이 신설되었다. 박사는 1907년(융희 1)에 사업(司業)으로 개칭되었다.

그 다음해에는 성균관이 경학 외에 기타 학과, 즉 신학문도 학습하는 곳으로 법규가 바뀌었다. 그러나 일본에 병탄된 지 1년 만에 일제의 식민지정책의 일환으로 전면적인 개혁을 강요당하여 경학원(經學院)으로 개칭되면서, 최고학부로서의 교육기능을 상실당하고 석전향사(釋奠享祀)와 재산관리를 주임무로 하는 기관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 뒤 전국 유림들에 의한 성균관 교육기능의 회복 움직임이 크게 일어나, 1930년에 경학원 부설로 명륜학원(明倫學院)이 설립되었다.

1939년에는 명륜전문학원(明倫專門學院)으로 승격되는 부령(府令)이 공포되었으며, 1942년에 재단법인 명륜전문학교의 설립인가를 얻어 신입생을 뽑고 교육에 임하였으나, 그 다음해 일제가 태평양전쟁에 광분하느라 폐교 조치되고 말았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명륜전문학교가 부활되고, 경학원도 성균관으로 환원되었다. 그 이듬해인 1946년에 명륜전문학교는 발전적으로 해체되고, 그 대신 성균관대학(成均館大學)이 설립되고 현재의 성균관대학교로 발전하였다

 

@ 조선초의 성균관을 이은 고종때의 성균관에 경학과가 설치되고, 일본강점기이후에는 경학원, 명륜학원,명륜전문학원.명륜전문학교,폐교의 수난을 겪어온 한국 최고대학 성균관. 어찌되었든 일본 강점기는 무효며, 조선 최고대학 성균관(고종때의 경학과)의 전통은 현재의 성균관대로 이어지고 있는건 분명합니다. 이전에는 진사나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을 상재생, 그렇지 않은 입학생을 하재생이라 하여 대학교육을 시켰는데, 이전의 성균관은 입학이 아주 까다로웠고, 졸업은 과거에 합격해야 졸업자격을 얻은걸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성균관의 유생이라 하더라도 과거에 합격하기가 그리 쉬운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졸업관련, 졸업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또는 논문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학위를 주지 않는 현대의 대학제도 특정부분이 연상됩니다. 한편, 세계사 최초의 대학은 漢나라 太學이고 그 후신이 國子監(元明淸의 국자감을 대체한 대학이 京師大學堂,경사대학당이 북경대로 바뀜)이며, 한국도 그 대학제도는 고구려 太學과 고려 國子監등에 연원을 두고 있습니다. 국자감에서 이어진 대학이 조선의 성균관이고 舊韓末의 경학원이고, 1910년 한일병합이후 명륜학원, 명륜전문학교등으로 왜곡을 겪으면서 최고대학의 지위를 왜곡당하다가 해방후에 복구설립되어 성균관대학교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 국사는 국사대로 세계사는 세계사대로 학문 고유영역을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니까 국사와 세계사의 조화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그 접점을 학문적으로(객관적으로)꾸준히 찾아야 할 것입니다. 세계사 영역은 중국 한나라 태학(필자의견: 나중에 각 왕조의 국자감으로 이어지고 중국의 북경대로 이어짐)이 세계 최초의 대학이고 서양 최초의 대학이 볼로냐대학이라는 사실은 오랫동안 굳어진 교과서적.학문적 정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