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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親王과 제 13후실(洪貞順) 사이에 태어난 황손가수 이석. 이분이 의친왕사후 가족부양위해 DJ와 미8군 가수하면서

한국 대중음악의 선도자적 역할을 한것으로 판단됩니다. 비둘기 집이란 노래로 유명하지요. 통기타를 앞세운 많은  大學生.學士 가수들이 배출되도록 영향을 끼친분 같습니다.

 

美軍政을 거치고,해방 한국이 王政으로 복고되지 않고, 民主共和國 체제를 선택하면서 헌법 前文에서 유구한 歷史와 傳統은 인정했지만, 정치체제로는 대통령중심제의 민주공화국 채제를 택하게 되니까 英親王이나 그 후계자 이구公도 한국으로 귀국할 수 없게되고, 한국 국내에서도 조선(대한제국)의 황손들은 정치적으로 그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국제법.역사.관습으로는  황손이라는 사회적 대접을 받는 2중적 위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동고와 외국어대 스페인어과에서 공부한 황손가수 이석은 미국 워싱턴 포스트에 The Prince's Tale이라는 제목으로 이 분의 고단한 삶이 보도되기도 하였습니다.

 

의친왕의 9남 이갑(李鉀). 그는 의친왕과 제 11후실(함개봉)사이에서 태어났는데,이갑씨의 아들(이원)이 英親王과 이구公의 승계자로 조선(대한제국)의 황사손이 되어 이원公으로 살다가 그 당시 임금이던 宮 儒(본글의 필자, 현재는 황사손 이원公에게 임금자리 물려주고 宮 성균관대 大公殿下의 지위를 가진 섭정이 됨. 御서강 大公殿下도 궁유와 같은 王이었다가 寡人과 같은 大公殿下 자격이됨)가 임금자리를 물려주어 그 이후부터는 황사손(이원 전하,國王자격)께서 王의 자격으로 조선(대한제국)의 유교 국가제사(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등. 공자님제사의  국제법.역사적 祭主이시기도 함)를 치르는 종교적 國王이 된것임. 宮儒 寡人이 옹립하고 寡人은 御서강 大公殿下와 함께 영구 섭정이 됨.   

 

마지막 임금 순종임금이 王의 자격이고, 현재는 황사손이 公의 자격에서 宮儒 寡人(宮 성균관대 大公, 본글의 필자 윤진한)이 임금자리 물려주었는데, 어떤 칭호를 쓰든 王(KING)의 칭호가 가장 적당함.    

 

한국은 국제법과 역사, 美軍政의 조선성명 복구령등에 의해 전국민이 유교 조선성명쓰는 유교도임. 그리고  한국 최고대학은 國史 성균관에서 이어진 600년 전통의 성균관대임(宮 성균관대=御 서강대). 

 

義親王 사후, 황손가수 이석은 가족부양을 위해 DJ를 하게된 이후, 뉴월드 노래자랑에 나가, 베사메 무쵸를 불러 1등(상금 1만원)을 하고, 美8軍 무대와 워커힐로 옮기며 몸값도 뛰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