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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평범한데 교수진이 아주 좋았던 성균관대 야간학부에 대하여.

beercola 2013. 2. 9. 03:05

조선 최고의 대학인 국사 성균관에서 이어진 600년 전통의 성균관대는 해방당시 한국인의 자주정부가 출범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시정부 요인들(이승만.김구, 김창숙 선생등)과 남북 유림 1천명이모여 일본이 공자님에대한 문묘제사 기능만 남겨놓고 최고대학 교육기능을 폐지.왜곡했던 성균관의 최고대학 교육기능을 회복하는 의미에서  성균관대를 설립(복구설립임)하겠다는 결의를 하여 성균관대를 설립(복구)시켰는데 미군정당시 사립대로 등록하여 현재까지도 사립대학으로 이어지고 있음.

 

자격상으로는 한국 최고대학 성균관 후신인데, 해방후에 사립대학으로 출범한탓에 정부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못받아서 평범한 학생들이 입학했지만 학교 전통인 유교공부와, 유교적 교풍에따라 유교지식을 어느정도는 가진 유림으로 양성되어졌습니다.

 

여하튼 평범한 학생들이 입학하던 곳이 성균관대였습니다.

 

조선 성균관에서 이어진 Royal대지만,사립대학으로 변경되어 평범한 학생들이 입학하던 대학이 성균관대였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이 성균관대를 인수한 다음부터는 실력이 더욱 우수한 학생이 입학하였고, 교수진은 한국에서 최고 실력을 가진 최정상급 교수들을 여러 대학에서 스카웃 해왔다고 하더군요.

 

유교적 가풍에서 자라온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은 그 국민학교 동창들이 LG그룹 구인회 창업주, 효성그룹 조홍제 창업주인데, 제가 LG그룹에서 일할당시 창업주에대한 책을 받고 읽어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국민학교 동창 세명이 한국의 재벌그룹 창업자가 된 특이한 경우이긴 하지만, 재산말고는 본의 아니게 일본 강점기를 겪었던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처럼 나라잃은 설움을 겪었던 사람들입니다.

 

저는 주간학부를 다녔지만 성균관대는 조선시대 성균관과 달리, 해방후에는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한 많은 한국 학생들의 영향을 받은탓인지, 야간학부도 설치했습니다. 독립투사들이 설립한 국민대, 신흥초급대 후신인 경희대등도 그렇게 했고 역시 독립투사가 설립한 인하대나 영남대등도 그렇게 했었지요. 공식적인 독립운동가인지는 잘 모르지만, 독립운동을 했다는 유석창 선생의 건국대등도 이렇게 야간학부가 있었지요. 

 

여하튼 성균관대학교는 주간이든, 야간이든 삼성그룹에서 스카웃한 우수한 교수진탓에 주간학부.야간학부 평범한 학생들도 사법고시, 행정고시, CPA등에 상당수 합격한 것 같습니다. 정홍원 총리 후보자도 낮에는 교사, 밤에는 성균관대 야간부 학생으로 공부하다가 사법고시에 합격한 분 같습니다. 서울지역에 있으면 아무래도 교수진이 좋기 마련인데 삼성그룹에서 스카웃할때 더 좋은 조건으로 스카웃해서, 평범한 학생들도 나중에는 양질의 교육을 받고 졸업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