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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풍요로운 추석[秋夕, 중추절(仲秋節)]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양력으로 2022년 9월 10일은 음력으로 8월 15일 추석(중추절)입니다.세계적으로는 중추절[仲秋節,中秋節]로 표기하면 쉽게 ..

즐겁고 풍요로운 추석[秋夕, 중추절(仲秋節)]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양력으로 2022년 9월 10일은 음력으로 8월 15일 추석(중추절)입니다.세계적으로는 중추절[仲秋節,中秋節]로 표기하면 쉽게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1]. 한국에서는 추석(秋夕)이라고도 많이 부르는데, 세계적으로는 중추절[仲秋節,中秋節]로 표기하면 쉽게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하고, 중추절(中秋節)이라고도 한자로 표기하는데, 국어사전 식으로는 중추절(仲秋節)이고, 유교 경전에서도 중추(仲秋)를 사용하므로, 중추절(仲秋節)로 쓰면 한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세계적으로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그러나, (中秋節)도 같이 사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에서는 조상에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하면서(조상제사), 보름달에 소원도 비는(관습적으로 신분고하에 상관없이, 한국인이면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는 유교명절 추석의 전통적인 제천의식의 하나) 행복한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기본적으로 역사적 특성상 한국은 역사적인 기자조선 이후, 정사로도 분명한 위만조선.한사군이후 수천년 유교 국가임. 

국사에 나오는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궁 성균관대)는 대학의 학벌 측면에서는 교황 윤허의 Royal대인 서강대와 협력.동반자 관계임.  

 

그러나 종교로는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기때문, 유교를 국교로 하던 조선,대한제국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야 할것임. 물론 현행 헌법상 국교가 없고 종교의 자유는 있지만, 미군정기때 모든 한국인들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유교국가인 조선의 한문성씨와 본관을 호적이나 주민등록에 등재해서 모두 유교도 자격을 가지고 있음.그리고 교과서로는 삼강오륜 유교교육과 유교의 인.의.예.지.신 교육, 충효교육을 많이 받아옴. 또한 유교 전통명절인 설날.대보름.한식(청명절).단오절.추석(중추절)등의 주요 명절 및 24절기의 주요 기념일 및 여러가지 절일(節日), 문중별.가족별 제사를 행하고 있는 유교국가임.    

 

추석의 달맞이, 그리고 명절이나 특정 기일에 행하는 조상제사는, 유교 경전에 나오는 구절등을 본받아서 그렇게 행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유교국가(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2차 대전후의 중국인들의 신생국가(대만,싱가포르)에서 특별한 사유없이,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고 일부러 거부하는것은, 원칙적으로 無君無父의 금수일(祖上도 몰라보는 금수)뿐입니다.

 

[2]. 이제 추석(중추절)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 추석(中秋節.仲秋節,秋夕)에 대한 종교학대사전의 설명.

 

추석(중추절)에 대해 종교학 대사전은 대략적으로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추석은 『예기(禮記)』의 <춘조월 추석월(春朝月 秋夕月)>이란 기록에서 옮겨온 것으로 보이며, 가배란 신라시대 경주지방의 방언이다. 망국(亡國)의 비애를 안고 사라진 고조선ㆍ부여ㆍ옥저ㆍ삼한(三韓)ㆍ가야ㆍ고구려ㆍ백제ㆍ발해 등의 추석에 관해서는 그 기록의 멸실ㆍ미흡으로 상고(祥考)할 길이 없으나 추석이 중국ㆍ신라 등지에 있었음을 미루어 보아 고조선ㆍ부여ㆍ삼한ㆍ가야ㆍ고구려ㆍ백제ㆍ발해 등지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지금은 신라의 가배일이야기만이 『사기(史記)』에 한 마디 전할 뿐이다.
추석에는 추석빔을 입고 햅쌀로 술ㆍ송편을 빚고, 햇과일을 마련하여 가묘(家廟)에 모신 조상 앞에 차례(茶禮)를 지내며, 조상의 산소에 성묘(省墓)한다. 산소에 우거진 잡초는 추석 전날 베는 것이 상례(常例)이나 성묘 때 베는 것도 무방한데 이것을 벌초(伐草)라 한다. 또한 이 날은 술ㆍ송편ㆍ과일 등을 나누어 먹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즐겁게 논다.  * 출처:추석[秋夕] (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 필자 주 1). 위의 서술에 동감합니다. ...추석이 중국ㆍ신라 등지에 있었음을 미루어 보아 고조선ㆍ부여ㆍ삼한ㆍ가야ㆍ고구려ㆍ백제ㆍ발해 등지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지금은 신라의 가배일이야기만이 『사기(史記)』에 한 마디 전할 뿐이다.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황사손(고종황제 후손 이 원으로 환구대제, 사직제례, 종묘제례 및 많은 제사를 주관함.)이시지만, 석전대제를 주관하는 성균관이 명절때 성묘.차례는 않는것보다 하는게 낫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성균관의 명절 예법 간소화의견은, 강행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점차적으로 의견절충해서, 문중.가족별로 조정하면 될것입니다. 또한 법규나 경전에 규정된게 아니면, 모든 예법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관계기관들의 연구하에, 조절해서 수용할수도 있습니다.

 

2]. 유교 경전인 禮記로 천신(天神), 지신(地神), 일신(日神) 및 추석의 月神 숭배등 제사를 살펴보고 역사적 과정을 알아봄.

 

1). 유교 경전인 예기에 나오는 달에 제사하는 내용이 후세 사람들의 귀감이 되어 정월대보름과 중추절등에 달맞이등을 하며 소원을 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天神, 地神, 사철의 신, 한서(寒暑)의 신, 해의 신, 달의 신, 별의 신, 가뭄의 신, 사방의 신등에 제사지내는 예기 제법(祭法)의 설명.

 

다음은 유교경전인 예기(禮記) 제법(祭法)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 다 음 -

 

燔柴於泰壇祭天也  瘞埋於泰折祭地也  用騂犢  埋少牢於泰昭祭時也
祖迎於坎壇祭寒暑也  王宮祭日也  夜明祭月也  幽宗祭星也
雩宗祭水旱也  四坎壇祭四方也
山林川谷丘陵能出雲爲風雨見怪物皆曰神
...

 

나무를 단위에 쌓고 그 위에 옥(玉)과 생(牲)을 놓고서 함께 태워 그 기(氣)로 하여금 하늘에 이름게 함은, 천신(天神)을 제사지내는 법이다. 또 비단과 생을 단상에 파묻는것은 지신(地神)을 제사지내는 법인데, 이 때 그 생은 다 같이 성독(騂犢)을 쓴다. 소뢰를 태소에 파묻는것은 사철의 신을 제사지내는 법이다. 감단에 송영(送迎)하는 것은 한서(寒暑)의 신을 제사지내는 법이다. 왕궁(王宮)에서는 해의 신을 제사지내고 야명(夜明)에서는 달의 신을 제사지내고 유영에서는 별의 신을 제사지내고 우영에서는 가뭄을 제사지내고

사감단에서는 사방의 신을 제사지내는 것이다. 산림.천곡.구릉으로서 능히 구름을 일으키고 비바람을 이루며 괴이한 현상을 나타내는 것을 모두 신(사방의 신)이라고 한다...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위에서 유념해 둘 것은 유교의 전통적 다신교(多神敎) 측면입니다. 최고신인 天(太極과 연계된 天)을 중심으로, 그 하위에 지신, 사철의 신, 한서(寒暑)의 신, 해의 신, 달의 신, 별의 신,  가뭄의 신, 사방의 신, 조상신등을 숭배해 온 유교 제의가 수천년 전통입니다.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 행할수 없던 여러가지 괴이한 현상을 나타내는 것을 모두 신(사방의 신)으로 보았던 전통적 다신교적 유교의 신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게 유교입니다.   

. 필자 주 2). 위에서 日月神에 제사하던 祭法은 殷나라때 생겨서 후대에 天子제도로 확고한 정착이 되기 이전에 생긴 제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 써 놓은 한문 문장(禮記 祭法)으로 보면 그  당시는 殷나라 天子가 아닌 殷仁으로, 周人으로 제사하던 祭天儀式, 日月神 숭배전통이 있었습니다. 이 제사가 변형 유지되어 중국 일부지방이나 殷나라 왕족 箕子의 후손으로 언급되는 箕準王의 선조 및 부여(殷正月의 曆法으로 祭天儀式인 영고를 지냄), 삼한(상달제.시월제), 고구려(동맹), 예(무천), 백제의 교천, 신라의 日月神 제사, 고려의 제천의식등으로 이어졌겠지요. 天子제도가 생긴 이후 중국 사람들이 보기에 고대 한국인들이 함부로 사당등을 지어 제사하는걸로 보여졌다면(당서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풍속에는 함부로 만든 사당이 많은바 라고 기록), 天子제도의 확고한 형성으로 天子의 제사와 諸侯의 제사, 士大夫 제사, 庶人의 제사를 구분하기 이전에 형성된 중국일부지방.한국일부지방의 풍속들이 그렇게 전승되니까 그 후에 생긴 天子부터 庶人까지의 제사법 구분으로 판단하여 함부로 사당을 짓는다고 기록했겠지만 그 당시는 중국이 고대 한국을 제지하고 그러던 시대는 아니었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원나라를 거치면서 국자감 개칭등 그런 天子國 주장이 강해졌고,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을 天子國으로 확실히 대우해 주면서 조선 초기에 제천의식이 폐지되고 고종때 부활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여하튼 역사적으로 부조리할수도 있는(후세 사람이 보기에) 관습이 허용되어도 중국 天子와 海東天子(한국의 天子)는 급이 다릅니다.    

 

有虞氏禘黃帝而郊嚳  祖顓頊而宗堯

夏后氏亦禘黃帝而郊鯀  祖顓頊而宗禹

殷人禘嚳而郊冥  祖契而宗湯

周人禘嚳而郊稷  祖文王而宗武王.

 

燔柴於泰壇祭天也   瘞埋於泰折祭地也

...........

王宮祭日也   夜明祭月也

............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 필자 주 3). 위의 祭法관련 작자인 전금과 후세 학자의 설에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어느 것이 결정적으로 옳은지에 대해 학자들간에 이론이 많다고 예기 譯解者(권오돈/발행처 홍신문화사/2003.10.30 발행)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 필자 주 4). 전금에 대한 설명. 중국 역대 인명사전(2010.1.20/이회문화사)에 의함.

 

展禽.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 대부(大夫)를 지냈다. 성은 전(展)씨고, 이름은 획(獲)이며, 자는 금(禽)이다. 유하(柳下)는 식읍(食邑)의 이름이고, 혜(惠)는 시호다.

 

. 필자 주 5). 殷周때 생긴 천자제도로 사람들을 강제하기전 일반 백성이 日月星辰을 우러르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日月星辰 숭배 풍속이 天子제도 확립후 생긴 새로운 숭배풍속이라 하면 그 신분에 따라 의관을 정제하고,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하는게 옳겠습니다. 그러나 天子제도의 강제전에 확립된 관습으로 月神을 바라보며 단지 소원을 비는것에 대해서는 祭法에 어긋난다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의 달맞이 풍속도 그렇게 형성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일반 백성들이 단지 달맞이라는 소원비는 의례로 달맞이 하는것은 그대로 전승되어야 하겠습니다.

 

3). 우리 유교국 한국인들은 중단하지 말고 대보름과 추석때 달님에 소원비는 달맞이를 행해도 됩니다. 제천의식은 황사손이 별도로 하고 계시는데, 일반인들은 대보름과 추석때 달님에 소원비는 행사를 하는게 가장 옳고 일반적입니다.        

    

일월성신을 民(백성)이 우러러보는 禮記 제법의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及夫日月星辰  民所瞻仰也  山林川谷丘陵

民所取財用也  非此族也  不在祀典....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3]. 추석(中秋節.仲秋節,秋夕)에 대한 두산백과의 설명.

 

‘중추’라는 말은 《주례(周禮)》에 가장 처음 등장한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 고대 왕들은 음력 8월 15일 달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1년 4계절(3개월)을 1개월씩(孟 혹은 初,仲,季) 나누었는데, 음력 8월 15일은 가을의 중간인 '중추(仲秋)'라 하였다. 이것에 착안해 8월 15일 달에 제사 지내는 날을 중추절(仲秋節 혹은 中秋節)이라고도 불렀다. 이 외에도 ‘팔월에 행하는 행사’라 해서 팔월절(八月節) 혹은 팔월회(八月會)라고 부르기도 했고,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라는 뜻을 따 단원절(團圓節)이라 부르기도 했다.

.출처:중추절[zhong qiu jie, 中秋节] (두산백과)

 . 필자 주 6). 달맞이는 유교에만 있는 고유 의식이므로, 그 성격에 충실하여 뒷동산등이나 보름달이 잘 보이는 장소에 올라 달맞이 하면 될것입니다. 굳이 높은 산에 오를 필요는 없으며 불교가 결합된 일본 양력 추석(오봉)의 영향을 잘못 받은 사람도 있을것인데, 절등에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불교는 창조주보다 부처가 더 높게 대우받는 존재이며, 無君無父의 금수라 배척받아와서 유교의 조상제사나 유교의 달맞이등을 불교시설이나 불교인등과 결부시켜서 행하면 않됩니다.   

 

4].  유교권 공통名節인 中秋節.仲秋節(秋夕)날은 가까운 뒷동산이나 언덕등에 올라 月神(달님)을 향해 각자의 소원을 빌며 달맞이를 하는 날입니다. 한국에서의 달맞이는 대보름 달맞이와 추석 달맞이가 대표적 의례행위입니다.

 

달맞이(추석)

정의 

추석날 저녁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거나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

 

내용

추석날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보름달을 보면 좋다고 하여 마을 뒷산이나 높은 곳에 오르기도 하고 혹은 마당에서 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기도 하며 달의 모양을 봐서 풍흉을 점친다. 중국 남송()시대 맹원로()의 저서 『동경몽화록()』에는 “중추날 밤에는 대문을 장식하고 술자리를 마련하여 달맞이를 하는데 풍악소리가 밤새도록 끊이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사기()』 권43 「열전()」 김유신조()에 “8월 보름에 왕이 월성() 산 위에 올라 경치를 바라보며 시종관들과 함께 주연을 베풀고 즐겼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성종실록()』 성종 20년(1489) 8월조에 “옛 사람들이 추석에 달구경한 것이 어찌 황음()하여 그러하였겠는가? 오늘 저녁에 경연 당상()과 출직()한 승지()·주서()와 홍문관()·예문관()에게 주악()을 내려 청량()한 곳을 가려서 태평의 날을 즐기게 하려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 후기 조재삼()의 저서 『송남잡지()』 「세시류()」 시월잉태조()에는 “쇄쇄록()에 이르기를, 날이 흐리거나 구름이 있어 추석 달이 보이지 않으면 토끼가 새끼를 배지 못하고 개구리가 알을 낳지 못하며 또 메밀이 결실을 맺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지역사례

 

추석날 달맞이는 전국적으로 행해지는 풍속이다. 전남 지역에서는 달을 보고 절을 하면서 소원을 빌기도 하고, 남보다 먼저 달을 보게 되면 아들을 낳게 된다고 하여 아들이 없는 집의 사람이 먼저 달을 보도록 양보하기도 한다. 충남 지역에서는 추석날 달이 잘 보여야 보리농사가 잘 된다고 여기며, 횃불과 짚을 준비하여 달이 떠오르면 짚에 불을 붙여서 소원을 빌기도 한다.
해안 지역에서는 달이 밝고 둥글면 가을 어장이 좋다고 여긴다. 부산 지역에서는 추석날 보름달이 희고 밝으면 이듬해 물이 흔해 풍년이 들고, 달이 붉으면 가물어서 이듬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또한 달의 서쪽이 이지러져 있으면 서쪽에 있는 마을에 흉년이 들고, 동쪽이 이지러져 있으면 동쪽에 있는 마을에 흉년이 든다고 한다. 서울 지역에서는 추석에 달이 보이지 않으면 개구리가 알을 배지 못하고 토끼도 새끼를 배지 못하며, 메밀도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속신이 있다. 또 이날 높은 산에 올라가 달에 절을 하고 남보다 먼저 달을 보면 첫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도 한다.

 

의의

추석에 달맞이를 하는 행위는 달을 소생의 상징물 또는 생명력의 상징물로 여기는 믿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정월대보름과 더불어 일년 중 가장 밝고 둥근 달이 뜨는 추석에 달맞이를 함으로써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고, 내년 농사의 풍작과 못다 이룬 소망을 기원하는 것이다.

. 출처: 달맞이(추석)(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추석 달맞이는 마당.누각에서 해도 月神(달님)은 소원을 빌도록 허용하고 계십니다. 본인좋으라고 하는것이니까 온국민 모두 달맞이를 하면 좋겠습니다.

 

5]. 추석(中秋節.仲秋節,秋夕)에 대한 베이징관광국의 설명.

 

중추제(中秋节,zhōng qiū jié,중추절) 소개

추석(中秋节중추절)은 음력으로 8월15일로, 한해의 중간쯤에 있어 중추라고도 불리우게 되었다.  추석은 중국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음력설 다음으로 중요한 명절이기도 하다. 해마다 추석이면 중국 사람들은 집에 모여앉아 월병과 과일 등을 차려놓고 먹으면서 달구경을 한다. 월병은 소를 넣은 원형의 다과로서 모임을 상징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월병을 서로 선물하기도 한다. 
 

◇ 중국의 추석, 중추절의 유래 

추석의 유래는 일반적으로 상아분월(嫦娥奔月)의 전설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다만 내용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존재한다. 아래는 그중 일반적인 이야기 중 하나이다.

 

아주 먼 옛날에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나타나서 대지를 아주 뜨겁게 불태우고 바닷물을 고갈시켜 백성들은 살아갈 도리가 없었다. 이 일은 후예(后羿)라는 영웅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는 곤륜산(昆侖山) 정상에 올라가 신궁(神弓)으로 나머지 아홉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리고 백성들을 재난에서 구제했다. 얼마 후 후예는 상아(嫦娥)라는 미인을 아내로 얻었다. 하루는 후예가 친구를 찾으러 곤륜산에 갔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서왕모(西王母)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때 후예는 서왕모에게서 "불사약(不死藥)"을 얻었다. 이 약은 복용하면 즉시에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약이었다. 후예는 아내를 홀로 남겨둔채 승천할 수 없었기에 그 약을 아내 상아에게 잘 보관해두라고 주었다.

이 일을 뜻밖에도 후예의 식객이었던 봉몽(蓬蒙)이 알게 되었다. 봉몽은 후예가 외출한 틈을 타서 상아에게 그 불사약을 내어놓아라고 협박하였다. 상아는 봉몽의 적수가 되지 못한 것을 알고 그만 그 불사약을 입에 삼켜 버렸다. 상아는 그 약을 삼킨 후에 곧바로 몸이 땅에서 멀어지더니 하늘로 훨훨 날아갔다. 상아는 하늘로 올라가면서 얼마나 남편을 그리워하였든지 더 이상 날아 올라가지 못하고 인간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달에 떨어져 선녀가 되었다.

후예가 집으로 돌아온 후 시녀들이 모든 사실을 울면서 말해줬다. 슬픔을 억누르지 못한 후예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그날밤은 달이 유난히도 둥글고 밝았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상아와 똑같이 생긴 흔들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후예는 급히 제상을 내어와 상아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과 과일을 그 위에 차려놓고 월궁(月宮)에 있는 상아에게 제사를 지냈다. 백성들도 상아가 신선이 되어 달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달 아래 제상을 차려서 상아에게 행복을 빌었다. 이때부터 민간에서는 중추절에 달에게 절하는 풍습이 전해지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 추석의 전통 풍습

중국의 주요 추석행사로는 달구경, 월병먹기, 조수보기, 등불구경 등이 있다. 음력 8월 15일의 달은 여느 때보다도 맑고 둥글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중추절을 일명 월석, 팔월절이라고 한다. 이날 쟁반같이 둥근달을 보는 것은 추석의  빼놓을 수 풍습이다.  또 멀리 타향에서 고향 부모님과 친척에 대한 그리움을 달구경을 하면서 달래기도 한다.

 

중국의 고대기재에 따르면 추석때에는 석월(夕月)이라는 제월제도 있었는데 바로 달신에게 제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주나라때에 와서는 추석밤이면 제월제를 지냈는데 제사상에는 월병수박, 사과, 붉은 대추, 배, 포도 등이 제물로 올랐다고 한다. 이중에서 특히 월병과 수박은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제물이었다고 한다. 수박은 또 꼭 연꽃모양으로 쪼개놓아야 했다는 설도 있다.

달빛아래서 온 가족이 함께 촛불을 밝히고 일일이 달신에게 제를 지낸 후 가족의 주부는 월병을 썰었다고 하는데, 집에 있든지 타향에 있든지를 막론하고 온 가족 성원의 숫자를 세어서 그 숫자대로 꼭 같게 월병을 썰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런 풍속이 이미 사라지고, 온 가족이 단란히 모여서 월병을 먹는 것으로 즐거운 명절의 한때를 보낸다.

 

또한 등불구경은 중국의 강남일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풍습이다. 이곳에서는 추석을 십여일 앞두고 참대로 등불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등불에 과일, 새나 짐승, 물고기나 벌레 등을 새기거나 중추절 축하메세지 같은 것을 새겨 넣는다. 등불의 색깔 또한 가지각색인데 추석밤이면 긴 참대에 등불을 걸어 집의 처마나 베란다에 걸어둔다. 때로는 작은 등불 여러개로 글자를 새기거나 각종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정월대보름의 등불놀이에 이어 중추절의 등불놀이 또한 그 규모가 상당하다. 

 .출처: 베이징관광국 한글 공식사이트.2013-09-11

 

6]. 유교 경전이 아닌 시중의 풍속으로 인식해보는 중추절의 유래에 대한 다른 해석

 

중추절의 기원과 관련해 전해지는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하나는 다음과 같다. 아주 오랜 옛날 하늘에 태양이 열 개가 떠 있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1년내내 뜨거운 태양이 작열해 땅이 갈라지고, 모든 작물이 메말라 죽는 등 인간들이 고통에 허덕였다. 고통 받는 인간들의 모습을 본 하늘의 제왕이 더 이상 이를 방치하면 안되겠다 싶어 활을 잘 쏘기로 정평이 난 호우이[羿]를 불러 9개의 태양을 활로 쏴 떨어뜨리고 하나만 남겨두라고 하였다. 호우이는 명령대로 9개의 태양을 떨어뜨려 인간세상을 구하고, 영웅이 된다. 그 후 호우이는 창어[]라는 예쁜 부인도 얻고 인간세상을 구한 영웅으로 추앙 받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활을 잘 쏘는 호우이는 사냥을 매우 즐겼는데 하루는 사냥을 하러 쿤룬산[]에 갔다가 우연히 서왕모(西, 신화 속의 여신으로 곤륜산에 살며 불로장생의 선도()를 키웠다고 전해짐)를 만나게 된다. 호우이는 서왕모로부터 먹으면 하늘로 승천해 신선이 될 수 있는 신비의 묘약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인 창어를 두고 혼자 하늘로 올라갈 수 없었던 호우이는 신비의 약을 창어에게 맡겨두었다. 이 때 호우이의 부하 중 한명인 펑멍()이 이 사실을 알고 약을 훔칠 기회만를 노리고 있었다. 하루는 호우이가 부하들을 모두 이끌고 사냥을 나가는 날이었다. 펑멍은 이 기회를 틈타 약을 훔치기 위해 창어의 방으로 들어갔다. 놀란 창어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당황하다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펑멍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 그 자리에서 신비의 묘약을 꺼내 삼켜버렸다. 그러자 창어의 몸이 하늘로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남편을 홀로 두고 갈 수밖에 없었던 창어는 인간세상에서 가장 가깝다는 달에 남아 남편을 그리며 살게 되었다. 한편 사냥에서 돌아온 호우이는 시녀로부터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가슴 아파하며 통곡하였다. 그 날 이후 호우이는 달에서 창어가 자신을 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내가 좋아하던 뒷정원에 제사상을 차려 향초를 꽂고 아내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사람들도 8월 15일 불쌍한 창어가 달에서 무사 평안하게 지내길 기도하는 제사를 치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의 중추절 명절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출처: 중추절[zhong qiu jie, 中秋节] (두산백과)

. 필자 주 7). 두산백과에 나오는 중추절의 유래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 다 음 -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사람들도 8월 15일 불쌍한 창어가 달에서 무사 평안하게 지내길 기도하는 제사를 치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의 중추절 명절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필자가 정리하면 중국 시중에서 전하는 속설중 하나가 호우이[羿]의 아내 창어[]가, 달에서 무사 평안하게 지내길 기도하는 제사를 치르기 시작해서 중추절의 유래가 되었다는 또다른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시중에서 전하는 속설로만 의미가 있는 것이며, 유교 경전으로 볼 때는 천(天, 하늘), 태양(日), 달(月)을 숭배하여 제사지내던 전통에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고대 중국의 왕들이 음력 8월 16일에 달에게 제사지내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두산백과의 중추절 설명에 잘 나타납니다.

 

- 다 음 -

 

‘중추’라는 말은 《주례(周禮)》에 가장 처음 등장한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 고대 왕들은 음력 8월 15일 달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1년 4계절(3개월)을 1개월씩(孟 혹은 初,仲,季) 나누었는데, 음력 8월 15일은 가을의 중간인 '중추(仲秋)'라 하였다. 이것에 착안해 8월 15일 달에 제사 지내는 날을 중추절(仲秋節 혹은 中秋節)이라고도 불렀다...  

 

7]. 추석(仲秋節,秋夕)에 대한 한국세시풍속사전의 설명.


중추절

 ]

 

정의

중추()는 가을 석 달 중에 중간 달을 의미하고 절()은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인 한가위를 이르는 말로 음력 8월을 달리 부르는 말. 일년 열두 달을 사계절로 나누어 1~3월을 춘(), 4~6월을 하(), 7~9월을 추(), 10~12월을 동()이라 하고, 각 계절에 속한 석 달을 나누어 첫 달을 초() 혹은 맹(), 두 번째 달을 중(), 마지막 달을 모() 또는 만(), 계()라고 한다.

내용

『여씨춘추()』 「중추기()」에 “중추의 달에 해는 각수(宿)에 있으며, 저녁에는 견우[宿]가 남중하고 새벽에는 자휴[觿宿]가 남중한다.…… 거센 바람이 불고 기러기가 오며 제비는 돌아가고 새들은 좋은 먹이를 갈무리한다(   觿……    ……).”라고 하였다.

 

.출처:중추절 [仲秋節]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8].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추석에 대하여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추석을 명절로 삼은 것은 이미 삼국시대 초기이었으니,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유리왕 때 도읍 안의 부녀자를 두 패로 나누어 왕녀가 각기 거느리고 7월 15일부터 8월 한가위 날까지 한 달 동안 두레 삼 삼기를 하였다. 마지막 날에 심사를 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한턱을 내고 <회소곡 會蘇曲>을 부르며 놀았다고 한다.

 

 

9]. 삼국사기는 8월 15일(음력)의 추석과 관련하여 회소곡과 결부하여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三國史記 卷 第一

新羅本紀 第一(儒理尼師今)

九年(西紀 三十二) …王旣定六部 中分爲二 使王女二人 各率部內女子 分朋造黨 自秋七月旣望 每日早集大部之庭績麻 乙夜而罷 至八月十五日 考其功之多小 負者置酒食 以謝勝者 於是 歌舞百戱皆作 謂之嘉俳 是時 負家一女子 起舞嘆曰 “會蘇 會蘇” 其音哀雅 後人因其聲而作歌 名會蘇曲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유리 이사금)

9년(서기 32) …왕이 6부를 정하고 나서 이를 반씩 둘로 나누어 왕의 딸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部) 안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무리를 나누어 편을 짜서 가을 7월 16일부터 매일 아침 일찍 큰 부[部]의 뜰에 모여서 길쌈을 하도록 하여 밤 10시경에 그치는데,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적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진 편은 술과 음식을 차려서 이긴 편에게 사례하였다. 이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모두 행하는데 그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 이때 진 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며 탄식해 말하기를 “회소 회소(會蘇)”라고 하였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아름다워 후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서 노래를 지어 회소곡(會蘇曲)이라 이름하였다.

 

출처 : 정구복 외 4인, 역주 삼국사기, 한국학중앙연구원

 

10]. 한국에 종교주권 없는 일본 강점기 포교종교들의 임의적인 해석에 의해 조상제사나 차례를 기피하는 시도가 발생하여 왔었는데, 불교,기독교는 원래부터 조상제사와는 관계없어서 그런 현상이 생기는것 같습니다. 세계종교중에서는 황하문명의 유교가 가장 오래된 종교중 하나지만, 서양의 로마 가톨릭은 그 교세가 현대에는 가장 큰 종교인데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한 측면에서는 상호 통하는 종교임은 분명합니다. 불교는 無神論的 경향으로 부처가 창조부보다 높게 책정되는 점이 창조주 중심.神중심의  유교.기독교.이슬람교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도 조상제사와 관계없는 無君無父라는게 유교측 전통 입장입니다.  그러다가 유교권의 조상제사를 민속적 차원에서 인정해주는 조치가 생겨 이전처럼 강한 마찰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어도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므로, 한국은 유교국입니다.    

 

11]. 한편, 조선성명 복구령등에 의해 한국은 전 국민이 한문성씨와 本貫을 사용하는 유교도의 나라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일본 총독부령 83호에 의해 강제 포교된 강점기 포교종교인 일본 신도, 불교, 기독교(개신교가 대부분, 가톨릭 한두개 성당)는 한국에 종교주권은 없지만, 종교의 자유는 있습니다.   

* 이 글은 비영리적이며, 유교권(중국.한국.베트남.대만.싱가포르등 전세계 십수억명 유교신도)의 공통명절인 중추절(추석)에 대해, 다른나라와 비교하며  다시 한번 되짚어보자는 종교이해적 차원의 공익적인 글로 자료를 인용하였습니다.     

 

 

* 첨부자료.

 

1.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그리고 세계사를 반영시 관습법적으로 교황윤허 서강대.

http://blog.daum.net/macmaca/2560

 

2. 한국은 유교나라임. 불교는 한국 전통의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 http://blog.daum.net/macmaca/2632

 

3.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blog.daum.net/macmaca/2596

 

4.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179

 

5.한국에서는 Royal대인 성균관대와 세계사를 반영시 관습법적으로 교황 윤허 Royal 서강대가 가장 학벌이 높고 좋음. 서울대는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같은 건 없음. 단지 마음대로 등록하던 여러 신문에 남아있던, 친일부왜배들이 성균관대에 도전하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나라에서 일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주권없고 학벌없는 대학임은 변치 않음. 

http://blog.daum.net/macmaca/2260 

 

6. 한국사와 세계사의 연계는 불가피함. 그 동안의 한국 공교육 전통을 감안하면, 지엽적인 마찰이 생겨도 수천년 인류역사를 담은 세계사와의 연계는 가장 옳은 정답에 해당됩니다. 한나라이후 세계종교로 동아시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아온 유교전통.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그리고 세계사를 반영하여 관습법적으로 교황윤허 서강대.

http://blog.daum.net/macmaca/2575 

 

7. 유교의 내세관(來世觀)과 기복신앙(祈福信仰) 측면에 대한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800

 

8. 유교국가의 전통적 특징중 하나는 호적(戶籍)제도였음. 한국과 중국의 호적제도에 관하여! 

http://blog.daum.net/macmaca/2492

 

 9. 세계사로 볼때,한나라때 동아시아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은 이미 세계종교 유교가 자리잡았음. 위만조선.한사군때 유교가 한국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고려.조선시대는 기자조선도 인정했었음. 한자, 한문성씨사용,고인돌, 고대 부여 영고,고구려동맹, 예의 무천,삼한의 상달제등 제천의식이나 전통 유교풍속은 황하문명에서 피어난 상고시대 유교의 영향을 나타냄. 이후 삼국시대는 부여 및 삼한의 유교를 승계하여 난생신화같은 하늘의 아들 의식, 하늘숭배.조상숭배가 있는 설날.추석.단오.한식같은 유교 명절, 유교 교육, 한자의 사용, 한문성씨의 사용등이 있었고, 불교는  중국불교형태로 받아들였지만,거센 반발때문에, 신라의 경우 이차돈의 순교가 있고나서야 후발 외래 포교종교로 불교를 받아들임. 고려는 치국의 도가 유교, 수신의 도가 불교였는데, 유교의 각종 명절과 제사가 있었고, 교육기관으로 국자감이 있었음.

 새롭게 종교인구 산출을 어떻게 해도,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5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