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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7일은 입추(立秋)입니다(음력 7월 10일). 지열(地熱)때문에 낮에는 폭염날씨도 보이고,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입추 전후에는 가끔 비가 내리고, 점차적으로, 밤이되면

2022년 8월 7일은 입추(立秋)입니다(음력 7월 10일). 지열(地熱)때문에 낮에는 폭염날씨도 보이고,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입추 전후에는 가끔 비가 내리고, 점차적으로, 밤이되면 서늘한 바람이 불게 됩니다. 가끔 비가오고 대기 상공에서 찬 기운이 형성되면 밤에는 서늘한 바람도 불어, 가을로 접어드는 절기입니다.

 

입추무렵의 풍속으로는 기청제[祭: 고려조선 시대에, 입추() 지나도록 장마가 계속될 때에 나라에서 날이 개기를 빌던 제사. 출처는 표준 국어대사전임]가 있습니다. 

 

 

[1]. 입추(立秋)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

 

1].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나타나는 입추(立秋).

 

예기(禮記)의 월령(月令)은 입추에 천자가 하는일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立秋之日(입추지일) 天子親帥三公九卿諸侯大夫(천자친솔삼공구경제후대부) 以迎秋於西郊(이영추어서교)

 

입추인날에 천자가 친히 삼공.구경.제후.대부들을 거느리고 서교에서 가을을 맞이한다(가을의 帝인 少皥와 가을의 보좌신인 蓐收를 제사지낸다).

 

. 필자 주 1). 이 때 위 문장에서 天子親帥의 帥은 천자가 친히 3공.9경.제후.대부를 거느리고로 해석하려면 솔로 발음해야 맞겠다고 판단합니다.

 

. 필자 주 2). 유교 경전에서의 천자라 하면 수천년동안 중국 천자가 가장 일반적이며 세계적입니다. 한국같은 경우 자주적인 표현으로 중국 천자가 쓰던 천자라는 일반적 칭호보다 海東天子로 지역을 좁혀 표시하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 입추(立秋) 절기때는 유교에서 최고신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 다음의 하위신으로, 오제([五帝, 다신교 전통의 유교에서 조상신 계열로 승천하여 최고신 하느님(天, 창조신이시며 만물을 주재하시며, 인간을 창조하신]하느님 다음의 하위신이 되심]중의 한분이신, 가을의 신[추(秋)의 제(帝)],  소호(少皥)께서 다스리는 절기입니다.

 

2]. 입추무렵의 기청제(祭).

 

입추무렵의 풍속으로는 기청제[祭: 고려조선 시대에, 입추() 지나도록 장마가 계속될 때에 나라에서 날이 개기를 빌던 제사. 출처는 표준 국어대사전임]가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입추(立秋)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십사절기의 하나. 대서() 처서() 사이에 들며, 이때부터 가을이 시작된다고 한다. 양력으로는 8 8일이나 9일경이다.

 

 

3]. 입추(立秋)때는 지열(地熱)때문에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 그런데,  밤이되면 이슬이 내리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시기가 입추임.

 

지열(地熱)때문에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입추전후에 가끔 비가 오고 밤이되면 서늘한 바람이 부는 시기입니다. 말복까지는 사계절 중 가장 높이 뜬 태양의 태양열을 받아 지열이 쌓이고 쌓여 낮의 폭염이 만만치 않지만(양력 8월말까지는 낮동안에는 상당히 더운 날씨), 밤과 다음날 아침까지의 시간에는 아! 이게 밤에 이슬이 내린다는 입추(入秋)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날씨의 전환기입니다. 두산백과에 의하면 " 동양의 역()에서는 이날부터 입동() 전까지를 가을로 친다"고 합니다. 

 

 

양력(陽歷. 사전적정의로 太陽歷으로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을 1년으로 정한 역법)으로는 아직 여름이기 때문에 낮에는 뜨거운 햇볕이 곡식과 과일에 내리쬐어 결실을 맺게 해주면서, 야간에는 이슬이 내리는 계절의 전환기이기도 합니다.

 

立秋는 대서(大暑)와 처서(處暑) 사이에 있으며 이 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음력(陰歷. 사전적 정의로 太陰歷으로 달이 지구를 한바퀴 도는 시간을 기준으로 만든 역법)을 쇠는 유교문화권에서는 가을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태양을 기준으로하는 제천의식의 하나인 단오등이 있어서 태음태양력을 병행하고 있는 문화입니다.  

 

유교의 오경(五經) 사서(四書) 중 하나인 五經 예기(禮記)의 월령(月令)편에서는 입추가 낀 달을 孟秋之月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맹추지월은 가을의 첫달이라는 의미로 초가을인 7월을 의미합니다. 가을을 다스리는 帝는 소호(少皥)입니다. 예기 월령은 其帝少皥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를 보좌하는 신은 욕수라고 합니다. 예기 월령은 其神蓐收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필자 주 3). 가을을 다스리는 帝는 소호(少皥)인데, 여기서의 帝의 의미는 황제나 임금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유교 경전에서 쓰이는 帝로 五帝의 帝나,하늘의 아들인 天子로 인간을 다스리다가 승천하여 하늘天의 일부가 되어 하늘天(太極과 연계되신 하늘天)의 다스림 중 일부를 이양받은 天의 일부가 된 天子로 볼수 있습니다. 태고적에 天子로 살다가 초월적 하늘天과 天人合一된 上帝.하느님(太極과 연계된 하늘天에 天人合一된 하느님)의 의미로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2]. 백과사전류에서 설명하는 입추(立秋).

 

1].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에 나타나는 입추(立秋).

 

정의

24절기의 하나.

 

내용

 

대서()와 처서() 사이에 들어 있으며, 음력 7월, 양력 8월 8일경이 된다. 태양의 황경이 135°에 있을 때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다는 뜻으로, 화성()은 서쪽으로 흘러 있고 미성()은 중천에 떠 있다. 어쩌다 늦더위가 있기도 하지만, 칠월칠석을 전후하므로 밤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때부터 가을채비를 시작하여야 한다.

특히, 이때에 김장용 무·배추를 심고 9, 10월 서리가 내리고 얼기 전에 거두어서 겨울김장에 대비한다. 김매기도 끝나가고 농촌도 한가해지기 시작하니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이 거의 전국적으로 전해진다.

이 말은 5월이 모내기와 보리수확으로 매우 바쁜 달임을 표현하는 “발등에 오줌싼다.”는 말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 말이다.

 

. 출처: 입추[] (한국 민족문화대백과) 

 

2].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입추(立秋)

  

요약 24절기 중, 13번째 절기로서 음력 7월 초순, 양력 8월 8~9일 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135˚에 위치하며, 가을에 들어선다는 뜻대로, 이날부터 입동 전까지를 가을로 친다.

24절기 가운데 대서()와 처서() 사이에 드는 절기로, 순서로는 열셋째에 해당한다. 양력으로는 8월 8∼9일경, 음력으로는 7월 초순이며, 태양의 황경이 135°에 달하는 날이 바로 입기일()이다. 동양의 역()에서는 이날부터 입동() 전까지를 가을로 친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었다는 뜻으로,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기는 하지만, 밤이 되면 비교적 선선한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여름의 흙일도 끝나고 이제 서서히 가을채비를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옛날 중국에서도 입추의 15일간을 5일씩 3후()로 나누어 ① 서늘한 바람이 불어 오고 ② 이슬이 진하게 내리며 ③ 쓰르라미가 운다고 하였다.

농촌에서는 참깨·옥수수를 수확하고, 일찍 거두어들인 밭에는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기 시작한다. 태풍과 장마가 자주 발생해 논에서는 병충해 방제가 한창이고, 태풍으로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느라 분주하다. 이 무렵부터 논의 물을 빼기 시작하는데, 1년 벼농사의 마지막 성패가 이 때의 날씨에 달려 있다고 할 만큼 중요한 시기이다.

아직 남아 있는 늦여름의 따가운 햇살을 받아 벼가 누렇게 익어야 하는 시기이다. 이 때부터 처서 무렵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아야 풍작을 기대할 수 있다. 또 바다에서는 달과 태양이 일직선상에 놓여 밀물과 썰물의 차가 가장 크게 벌어지는 사리 현상이 발생해 서남해안 지역의 저지대가 침수, 농작물이 해를 입기도 한다.

입추 무렵의 풍속으로는 '기청제()'가 있다. 예부터 입추 무렵은 벼가 한창 여무는 시기이기 때문에 비가 내리는 것을 가장 큰 재앙으로 여겼다. 해서 각 고을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고 맑은 날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하늘에 기청제를 지냈는데, 성문제()·천상제()라고도 한다. 즉 비가 닷새 또는 보름 동안 계속해서 내리면 조정이나 고을에서 비가 멈추게 해 달라고 제를 올렸던 것이다. 봄·여름에 가뭄이 계속되면서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을 때 비를 내려 달라고 지내는 기우제()와는 반대 성격의 제사이다.

 

. 출처: 입추 [立秋] (두산백과)

 

3]. 한국 세시 풍속사전에 나타나는 입추.

 

정의

태양의 황도()상의 위치로 정한 24절기 중 열세 번째 절기. 양력으로는 8월 8일 무렵이고, 음력으로는 7월인데, 태양의 황경()이 135도에 있을 때이다. 대서()와 처서()의 사이에 들어 있으며,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이다. 이날부터 입동() 전까지를 가을이라고 한다.

유래

『고려사()』 권50 지()4 역() 선명력() 상()에 “입추는 7월의 절기이다. 괘()는 리() 구사()이다. 초후()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차후()에 흰 이슬이 내린다. 말후()에 쓰르라미[]가 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입추가 지난 후의 계절의 변화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 『고려사』 권6 「세가()」 6 정종() 병자() 2년(1036)에는 “입하()부터 입추까지 백성들이 조정에 얼음을 진상하면 이를 대궐에서 쓰고, 조정 대신들에게도 나눠주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입추까지는 날씨가 무척 더웠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고려사』 권84「지()」38에 “입추에는 관리에게 하루 휴가를 준다.”라고 하였다.

내용

입추 무렵은 벼가 한창 익어가는 때여서 맑은 날씨가 계속되어야 한다. 조선 시대에는 입추가 지나서 비가 닷새 이상 계속되면 조정이나 각 고을에서는 비를 멎게 해달라는 기청제()를 올렸다 한다.
입추는 곡식이 여무는 시기이므로 이날 날씨를 보고 점친다. 입추에 하늘이 청명하면 만곡()이 풍년이라고 여기고, 이날 비가 조금만 내리면 길하고 많이 내리면 벼가 상한다고 여긴다. 또한 천둥이 치면 벼의 수확량이 적고 지진이 있으면 다음해 봄에 소와 염소가 죽는다고 점친다.
입추가 지난 뒤에는 어쩌다 늦더위가 있기도 하지만 밤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때부터 가을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특히 이때에 김장용 무와 배추를 심어 김장에 대비한다. 이 무렵에는 김매기도 끝나가고 농촌도 한가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이 거의 전국적으로 전해진다. 이 말은 5월이 모내기와 보리 수확으로 매우 바쁜 달임을 표현하는 “발등에 오줌 싼다.”와 좋은 대조를 이루는 말이다.

 

. 출처: 입추 [立秋] (한국세시풍속사전)

 

[3]. 한국의 초복,중복,말복의 보양식에 대한 필자의 의견.

 

1]. 복날에 동아시아 유교국가들이 보양식으로 먹어온 보신탕. 요즘은 삼계탕도 많이 먹습니다. 그런데, 아시아인종의 정체성은 대부분 사람들에 있어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세계화로 영.미문화에 노출된 아시아인. 여러분이 아무리 변신노력을 해도 아시아인종의 태생적 본질은 안바뀌는것으로 보여집니다. 영국, 미국이나 영.미문화권의 호주.캐나다.뉴질랜드등 신대륙 이민자의 나라에 살면서 개신교 믿고, 개신교인이라 주장해도, 영.미문화권 사람들에게는 그저 아시아인종으로만 보이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구대륙의 오랜 문명국인 동아시아 유교국들(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서유럽의 교황중심 이탈리아.프랑스.독일,스페인.포르투갈,폴란드등은, 현재의 기준으로는 판단이 불가능한 始原的 권리(Original Right, 원시적 권원)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여되었습니다. 동아시아는 황하문명, 은.주시대, 漢제국을 통하여 하느님(天).神明.조상신 숭배, 공자님,한자,유교문화가 태생적으로 부여되고 이를 체득해왔습니다. 서유럽은 헬레니즘문화와 로마제국을 통하여, 하느님과 예수님,라틴어,가톨릭문화가 그렇게 서유럽인들에게 스며들어왔습니다. 수천년동안 동아시아.서유럽은 그렇게 권리와 의무의 측면을 모두 가진 유교도로, 가톨릭교도로 살아왔습니다.

 

2]. 필자는 반려견문화에 대해서는 일부러 나서서 반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동물보호단체등을 중심으로 개고기 식용반대를 조직적으로 하는 단체행동이 수시로 나타나고, 이에 동조하는 수의사들도 있습니다. 관련산업 종사자들도 많아졌겠지요. 그러나 그 반대편 종사자들이 일방적으로 매도되고 생존권을 부정당해서도 않됩니다.

오래된 인류의 식문화전통을 부정하며,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온 인간의 존재방식을 부정하고,개고기 식용관련 종사자들을 궁지로 몰아넣는다면, 반려견의 배설물, 개의 위험성, 전염병 발생등의 모든 위험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공격하는 사람들도 생겨날 것입니다.

영.미문화에 경도된 소수의 적극적인 동물보호단체.수의사등의 주장은 알고 있습니다. 개는 사람을 물거나 죽이기도 하는 이중적인 야생동물의 본질도 있습니다. 사람이 먼저여야 합니다. 갑자기 이렇게 우리 조상들이나 인류 상당수가 먹어온 동물때문에, 조상들을 비하할수야 없습니다.

개식용관련 업종 종사자들의 의견. △가축이며 축산물인 식용개의 사육ㆍ 전기도축ㆍ유통ㆍ식용은 역사유래 지금까지도 여전히 합법이라고 말했다.

"'축산법' 개 품종 제외 대립각,'식용개-반려견 구분을” - 대한일보 (daehanilbo.co.kr)

* 한편, 오랜관습인 개고기 식용에 대해 합법이냐 불법이냐 판단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고, 개고기 판매와 식용이 불법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불법에 해당하지 않을것입니다.갑자기 영.미문화에 경도된 동물보호단체나 수의사 협회들의 반론은 알고 있습니다.

2017.,7,6, OBS 뉴스 고 영규 기자 보도기사

농림부 "개고기 금지 방안 검토하고 있지 않다"

농식품부는 오늘 개식용 금지방안에 대해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농식품부는 일부 언론의 '금지방안 검토' 기사에 대한 해명 자료를 내고 이같이 밝혔습니다.

농식품부는 "개식용 금지와 관련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으로 생산자와 영업자 동물보호단체 등 이해관계자와 식약처를 비롯한 관계부처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농식품부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영국 더 타임스"한국인들에게 개고기 먹지마라 할 권리 없다","히포크라테스는 강아지를 균형잡힌 건강식으로 권했었다"

필자가 판단해볼때, 유목민족이 아니면, 가축을 지키는 개의 중요성보다는 야생동물이던 개를 가축으로 길러 식용으로도 먹어온 전통이 오래되었다고 여겨집니다. 근대나 현대에 개를 작게 만들어 애완용으로 키운 영.미권의 문화는 아시아인들에게는 아주 낮선 풍경이어왔습니다. 애견국가인 영국의 일간지조차도 다른 나라 개 식용 문화를 존중하는데, 인류의 오래된 전통을 도외시하고, 개를 식용으로 먹어온 평범한 사람들과 관련산업 종사자들의 생계까지 위협할 정도로 오도하는것도 세계화시대의 예의는 아닙니다. 이 신문의 보도자료로 보면 스페인 사람들은 고양이 고기탕을 즐겼고, 스위스 사람들은 개고기 건포를 먹는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힘. 그리고 프랑스 사람들도 개고기를 먹었다고 보도함.

http://blog.daum.net/macmaca/3203

*호주서 생후 5주 아기, 반려견에 물려 숨져…지역사회 충격-국민일보 (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6049290&code=61132211&sid1=int

호주서 생후 5주 아기, 반려견에 물려 숨져…지역사회 충격-국민일보 (kmib.co.kr)

"제발 입마개 좀 해주세요" 잇단 개물림 사고 시민들 '분통' - 아시아경제 (asiae.co.kr)

 

[4]. 세계역사 변하지 않음.

 

1]. 세계 최초의 대학 중국 태학.국자감(베이징대로 계승),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 한국사 성균관(성균관대).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하느님,공자숭배),서유럽 세계종교 로마가톨릭(하느님, 예수숭배. 서유럽에서 중남미.필리핀에 걸쳐 더 광범위한 세계종교로 확장). 세계4대 발명품 중국의 종이,화약,나침판,인쇄술. 근대세계의 지배세력 서유럽.

 

 

2]. 미국이나 신대륙, 유럽등지에 이민하여 살고있는, 한국인이나 아시아인에 대한 학문적 결과는 한국에서 잘 정립되지 않아, 학문적으로는 뭐라 인용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대중언론을 통하여, 갑자기 아시아인.한국인들이 불법 폭행이나 권리 침해를 당하는것을 자주 보다 보니까, 급한대로 대충 정리하여 필자의 의견을 제시해봅니다. 근본적으로는 현지에 사시는 교민들의 지위는, 현지 교민들이 정립하고 가꾸어나가야 한다는 필자의 생각입니다. 이런 현지 적응은 현지 교민들이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미국은 다인종 국가의 용광로입니다. 신대륙을 개척해 이민자들이 이룩한 나라입니다. 유럽계 백인이 다수지만, 히스패닉.흑인 인구가 많습니다. 그리고 미국 현대사에서는, 백인보다 소득이 높고 학력수준이 높은 아시아인이, 범죄율이 적고 그래서 모범적 소수인종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꾸준한 인종화합 노력은 분명히 필요합니다.냉정한 현실로 보면, 미국은 막가파 흑인 하층민의 그동안 쌓인 울분이 소수인종 아시아인에 대한 불법 개인테러로 번질 가능성 있음. 여자, 노약자, 혼자 다니는 사람등 대상.

노숙자라면, 일부러 감옥가서 편하게 살려고 범행했을 가능성도 많음. 경제적 하층민들의 의식주 해결방법일수도 있음.노숙자도 많은 나라 미국. 이런 막가파 하층민들이 고학력.고수입 아시아 인들을 향해 불법 폭력 개인테러를 집중적으로 저지르는듯.

 

미국은 무분별한 총기사고 및, 경제적 하층민계층인 흑인등의 약탈이 수시로 일어나는 치안이 엉망인 나라. 최근 미국내에서 수입이 높은 이민자그룹인 아시아인들에 대한, 개인 테러형식의 불법 폭력을 자주 보고 있습니다. 미국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아시아나 유럽과 달리, 신분이 높지 않은 사람들이 이민자가 되어, 미국.호주(영국 범죄자들을 이주시킨 나라)는 품격높은 동아시아 유교문화나, 서유럽의 가톨릭 질서가 전혀 작동되지 않는 하급문화중심의 나라로 시작하였고,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하여 신대륙의 이민자들의 나라로 살아온 역사.문화가 그대로 답습된 나라입니다. 흑인노예를 수입해 흑인들이 핍박받다, 최근 흑인들을 풀어주니까, 소득이 낮은 흑인계층이 불법 폭력으로 아시아인에 대한 우위를 차지하려는 계산인지, 여성.노령자.혼자다니는 아시아인에 대한 개인 테러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 WHO에서 중국백신을 승인하였고,남미 국민백신은 중국백신이라함. 선동에 휘말린 사람들은 그만 유난 떨어야 합니다. 코로나가 어디서 발생했는지는, WHO등에서 정확히 자료제출한적 없음. 미국,중국,이탈리아라는 여러설이 있으나, 확정적 단서는 없음. 코로나이후 동아시아 유교국가(중국,한국,베트남,몽고 싱가포르,대만)들은 방역이 잘되고, 미국.서유럽환자가 많은걸 보면, 트럼프가 중국에 덮어씌우고, 미국.호주같은 나라가 유난을 떠는것 같음.

 

WHO에서는 코로나 발원지가 중국,미국,이탈리아라는 여러가지 가설에 대해서 분명한 입장표명이 없는 상태임. 코로나 환자도 동아시아 유교국들(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2차대전후의 신생 유교문화권인 싱가포르, 대만에 걸쳐 유럽,아메리카보다 통제도 잘되고 환자도 적음.WHO에서는 중국보고 뭐라 않는데, 트럼프가 미국이 환자 많으니까 중국한테 덮어씌우고, 그 뒤부터 중국 견제의식이 지속적으로 발동되어, 사사건건 중국탓만하고.코로나 환자보면 동아시아 유교국가들중 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싱가포르.대만 모두 크게 문제 없더군요. 오히려 미국이나 유럽이 환자가 더 많았지요.

 

3]. 미국내 소득수준높은 아시아인(백인보다 소득수준 높음). 소득낮은 흑인폭동대상이 한인상가였음.이건 요즘 코로나때문만도 아님.트럼프가 중국견제하다 중국에 코로나 덮어씌우며 미국 코로나 감춘데서 발단.아시아, 한국인 정체성이 더 절실해짐.

 

 

* 1993년 9월 11일. 연합뉴스 장영선 특파원 보도기사.최근 워싱턴일원에서 교포상점주인들이 잇달아 강도들에의해 피살되고 있어 교포 상인들이 극도로 불안해하며 방탄조끼구입등 자구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워싱턴=聯合) 張永燮특파원=최근 워싱턴일원에서 교포상점주인들이 잇달아 강도들에의해 피살되고 있어 교포 상인들이 극도로 불안해하며 방탄조끼구입등 자구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이에 따라 워싱턴한인회를 비롯한 아시아 소수민족지도자들은 10일 샤론.P. 켈리 워싱턴시장과 프레드 토마스 시경국장과 면담을 갖고 최근 한인교포상점을 비롯한 아시아계 상점들이 무장 강도들의 침입으로 주인이 피살되는등 영업활동을 하기가 어렵다고 지적, 강력한 방범대책을 세워줄 것을 촉구했다...

 

* 구글 직원 절반이 아시아인 등.

 

2021.06.27, 서울경제 박현익 기자 보도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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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연봉에 '스톡옵션' 혜택

구글 직원 절반이 아시아인 등

인종·성별 초월 다양성 중시도

 

4]. 미국내 아시아인 인구는 중국인이 가장 많습니다. 그리고 한국인보다 이민역사가 오래된 필리핀인,인도인, 월남패전후 대거 받아들인 베트남인, 한국인, 일본인등 많을것입니다.

2세 기준으로 보면 한국인들이 수입이 많아졌다고 합니다.아시아 현지국가 1인당 GDP와 비교하면 인도인이 의외인데, 여관등 숙박업 종사자가 많아 그런 측면도 있다고 보여집니다(이건 학설이나 교과서.사전적 정의를 인용한게 아니고, 미국에 살고 있는 현지인의 책을 보고 그렇게 판단한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중국인.한국인.일본인보다 소득이 높다면,인도내 자산가들이 이민해서 종자돈이 어느정도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내 고학력.고소득으로 백인보다 학력수준.소득수준 높은 모범적 소수인종. 미국이민자중 인원이 적고 소득수준이 높고, 학력이 높은 동양인(한국,중국인)들은 합법적인 경호회사를 설립해,신변안전을 자체도모해야 할 시기입니다. 여러분들의 경제력과 학력수준이 높아졌으니, 예상치 않게 벌어지는 아시아인에 대한 불법 테러와 약탈에, 합법적으로 물리력을 가진 경호회사를 많이 설립해 생업과 학업에 전념해야 할 때입니다. 아시아인 상부상조회사(노후연금, 병원비 지급, 주택보유 지원, 실업시 생계비 지원,경호회사 설립등. 오랜 갹출기간이 필요할것입니다)로 현지 적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모범적인 소수인종입니다. 한국인들은 교육수준이 높습니다. 그대신에 불법 테러나 폭력에는 취약합니다. 다른 나라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마음놓고 생업에 종사하고 학업에 전념하려면, 회비를 갹출해 합법적인 경호회사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인구가 적은 아시아 이민자는 평균소득이 백인보다도 높습니다.

 

 

* LA중앙일보 2016년 보도기사에 따르면, 아시아인중 중국인이 385만, 한국인이 160만명입니다. 일본인이나 인도인등은 집계에 잡히지 않아 잘 분간이 않됩니다. 경제적 하층민으로 추정되는 흑인 인구는 4,160만명, 멕시코계 3,520만명, 푸에르토리코인 510만명입니다.

 

 

미국에서 소득수준이 낮은 경제적 하층민들인 흑인이나, 히스패닉계 및 저학력.빈곤층 백인들이 불법적인 폭력으로 부유한 계층인 동양인들을 타겟으로 노약자,고령자,여성 또는 혼자 다니는 아시아인만을 골라 불법적이고 무자비한 개인 테러를 행하는 시기입니다.

 

 

미국내 손꼽히는 거부도 별로 없지만, 인종별 소득수준이나 학력수준으로 보면 아시아인이 가장 소득이 높고 학력도 높습니다. 그런데 아시아인에 대한 개인 테러를 행하는 계층은 인생을 포기하고 교도소에 다녀온 적 있는 경제적 하층민들인 흑인등이 많습니다. 더 이상 잃을것이 없는 하층민들이 인구수가 많은걸 무기로, 불법으로 아시아인에 대한 테러를 행하면 소득높고 학력높은 아시아인들이 목숨을 내던지고 총이나 무기로 맞서 싸우기도 싫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개인이 거부는 아니라도, 합법적인 경호회사를 많이 설립해, 생계와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소득수준에 맞는 회비를 내고, 그에 맞는 합당한 경호를 받아야 할 단계입니다. 고령자.여자.노약자등이 외출할때는 혼자 하지말고, 몇 몇이 함께하여 경호회사에 신변보호를 요청하고, 경호회사는 합법적으로 승인된 자위용 무기를 동원해 의뢰인들이 위험에 빠지면, 가스총이나 전기충격기등을 먼저 사용하고, 마지막 수단으로는 총기도 사용하는 방법으로, 가입회원들의 신변과 생명.재산을 보호해 주는 계약을 맺어야 합니다. 이 방법 아니고는 경제적 하층민 또는 저학력자인 사회불만층들에게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약탈.테러를 당할것입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87

 

특파원 칼럼 美 한인의 주택 보유율이 낮은 이유 | 한경닷컴 (hankyung.com)

 

5]. 필자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자 아시아인입니다. 교과서나 국제법 기준으로 보면 이런 개념이 성립됩니다.

 

국사 성균관(성균관대). 국사.헌법은 한국표준, 세계사,국제법은 세계표준.

​하느님(天)을 숭배하면서 天子가 제사하고, 설날.추석에 인구 대이동을 하고, 단오날(수릿날,天中節)은 높은 신이 오시는 날로 기풍제등의 소원을 빌고, 대보름.추석에 모든 국민들이 달님에 소원을 빌고, 유교문화 24절기를 가지며, 천자문을 배우고, 공자님.맹자님의 인의예지신과 삼강오륜을 수천년간 체화시켜온 동아시아 십수억명 유교신자들(중국,한국,베트남,몽고. 2차대전후의 싱가포르.대만 및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 화교등).

​사람은 주어진 소명에 따라, 열심히 해야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인간 스스로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하늘의 뜻에 따라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슷하게 적용하면 盡人事待天命이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모든일상이 天[하느님, 하늘(하느님)]과 결부된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수천년 관습입니다. 그러나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도전해 보는것 또한, 하늘(天)의 뜻에 맡겨보아야 합니다. 至誠能感天의 심정으로...

​하느님을 숭배하는 유교문화권인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2차대전후의 신생 유교문화권인 싱가포르.대만), 가톨릭문화권인 서유럽(중세이후 중남미도 가톨릭 국가가 됨)의 수천년 전통은 중요합니다. 가톨릭 국가들의 정신적 구심점인 교황성하를 중심으로 한 구대륙인 유럽과 아시아는 구대륙의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인류문화를 이끌어왔습니다.국사 성균관(성균관대)자격뒤에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극복은 서강대 학구파가유일.2차대전이전 세계지배세력 서유럽.교황윤허資格작용되면 가능한현실.국사자격 Royal성균관대, 서강대(세계사 교황 윤허 반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세계사의 태학.국자감(北京大),볼로냐.파리대資格상기.

​* 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 참석.

http://blog.daum.net/macmaca/1467

​*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성균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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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제(五帝)와 그 보좌신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나타나는 帝는 다음분들입니다.

 

1]. 春의 帝는 태호(太皞), 夏의 帝는 炎帝, 秋의 帝는 소호(少皞), 冬의 帝는 전욱(顓頊)

 이렇게 4계절의 帝만 나타내는 禮記 책도 있지만 季夏와 孟秋의 달에 中央의 帝를 집어넣어 그 帝를 黃帝로 하는 禮記 月令도 있습니다. 필자가 볼때는 이 예기 월령의 五帝를 근거로 오제설이 설립된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기 월령편이나 다른 경전에서 이 5제의 모습을 인간이나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전설적.신화적 형상으로 표현하는 구절은 필자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他 문명과 교류하면서 神話的인 모습의 동물들을 숭배하는 원시신앙에 영향받아 유교 경전 아닌 중국의 俗書에는 신화적인 동물모습의 3皇5帝 현상도 나타나고는 있습니다. 황하문명에서 파생된 유교도 그렇고 기독교도 그렇고 다른 신앙도 그렇고 인지능력이 발달하기 전에는 인간들이 잘 모르는 능력을 가졌다고 동물도 혼합하여 같이 숭배할 수 있었겠습니다. 이런 모습은 신화나 상상.또는 先史時代에 실재로 존재하던 강력한 존재였다고 추정되는데, 인간들이 점차 옷도 만들어 입고 말도 하고 집도 지을줄알고, 근친혼을 배제하고, 글을 쓰면서 더욱 문명화된 인간의 모습을 중시하여 신화적인 동물 모습은 유교 경전이나 기독교 경전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화나 전설로 밀려난 채로, 그런 신화적.전설적 형상의 神들은 그대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능력도 무한하시지만 하느님의 형상은 우리 인간이 쉽게 그려낼 수 없을것 같은데, 유교나 기독교가 인간중심으로 전승되면서 신화적.동물혼합적 지배자들의 모습을 인간의 형상중심으로 변화시키면서 經典에 반영했을 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인지능력이 발달하기전에 숭배하던 강력한 존재가 동물의 모습을 가졌다면 이 전통을 인정해주는것도 옳을것 같습니다.오래된 문명에서 뱀이나 소의 모습을 한 강력한 존재를 지속적으로 경배대상으로 하여 이를 융합하였을 수도 있었고, 지금도 타 문명권에서는 지속적으로 그 동물모습의 강력한 존재를 숭배대상으로 삼는다면  인정해야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유교권에서는 근친혼이 강하게 배제된 것 같고 8촌이내의 결혼도 기피하게 되었고, 근친혼을 인정할 수 있던 서양도 비극적인 연극을 통해 原罪意識을 가지게되고, 생물학적 개념으로 근친혼은 열성인자를 가진 후손을 낳는다고 교육시키면서 서양도 근친혼은 기피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리스.로마신화를 가진 로마제국이 새롭게 기독교를 國敎化시킨 원인도 근친혼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던 아득한 先史時代의 전설에 원죄의식을 가지게 되면서(카오스 상태에서 태어난 神의 근친혼적 성격, 오이디푸스 이야기등), 점차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 가을의 帝 소호의 보좌신 욕수에 대한 설명입니다.           

 예기 월령에서 가을(秋)의 帝인 소호(少皞)의 보좌신으로서 욕수(蓐收)가 나타납니다. 帝를 보좌하는 보좌신을 神이라고 표현한것은 上帝(天人合一說에 의해 하늘天의 일부 지배권을 이양받으신 하느님 五帝)를 보좌하는 신으로서, 여기서의 神은 보좌신의 의미로 神靈이나 鬼神정도의 하위신에 해당된다고 파악됩니다. 유교는 수천년의 전통에서 多神敎 전통이 변질되지 않은 종교중 하나입니다.

 소호는 소호금천(少皥金天氏)으로도 표현되는데 욕수(蓐收)는 소호금천의 아들입니다. 소호의 아들 욕수는 天人合一說에 의해 가을의 帝(가을의 上帝. 가을의 하느님)가 되신 소호를 돕고 있는 보좌신이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욕수(蓐收)는 소호(少皥)의  아들 해입니다.

 3]. 참고로 예기 월령에서 봄.여름.중앙.가을.겨울의 帝와 보좌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봄(春)

 其帝太皥(기제태호) 其神句芒(기신구망)

그 上帝는 태호(太皥), 그 보좌신은 구망(句芒)이라는 의미입니다.

구망(句芒)은 소호(少皥)의 아들 중입니다.

 2. 여름(夏)

 其帝炎帝(기제염제) 其神祝融(기신축융)

그 上帝는 염제(炎帝), 그 보좌신은 축융(祝融)이라는 의미입니다.

축융(祝融)은 전욱의 아들 여입니다. 

 3. 중앙(中央). 禮記 月令에서는 夏와 秋 사이에 나타남. 

 其帝黃帝(기제황제) 其神后土(기신후토)

그 上帝는 황제(黃帝), 그 보좌신은 후토(后土)라는 의미입니다.

후토(后土)는 공공씨의 아들 구룡입니다.

 4. 가을(秋)

 其帝少皥(기제소호) 其神蓐收(기신욕수)

그 上帝는 소호(少皥), 그 보좌신은 욕수(蓐收)라는 의미입니다.

욕수(蓐收)는 소호(少皥)의  아들 해입니다.

 5. 겨울(冬)

 其帝顓頊(기제전욱)) 其神玄冥(기신현명)

그 上帝는 顓頊(전욱), 그 보좌신은 현명(玄冥)이라는 의미입니다.

현명(玄冥)은 소호의 아들 수와 희입니다.

 . 필자 주 4). 보좌신들에 대한 출처

 오정(五正)

 행(五行)을 관장하는 다섯 우두머리. 곧 목(木)은 구망(句芒:소호의 아들인 중), 금(金)은 욕수(蓐收:소호의 아들 해), 화(火)는 축융(祝融:전욱의 아들 여), 수(水)는 현명(玄冥:소호의 아들 수와 희), 토(土)는 후토(后土:공공씨의 아들 구룡)임.

.출처: 오정[五正]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3.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4]. 순서상으로 볼때 尹씨는 중국의 소호(少皥)씨에서 유래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파평윤씨(坡平尹氏)입니다. 윤씨는 통일신라 말기에 태어나신 태사공[太師公,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하는 성씨인데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서 개국공신으로 三韓功臣이 되었습니다. 이후 고려의 명문 문벌로 살다가 조선시대에도 전주 이씨 다음으로 과거 급제자를 많이 배출하여 1천년 이상 한국의 명분문벌로 살아온 성씨입니다. 그런데 한국 정착은 늦은편 같습니다. 윤씨는 파평윤씨가 가장 많습니다. 

 5].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다음의 서적을 소개 하겠습니다.

 1. 조상성씨의 세계 내가만난

저자:김 문순/답게/2009.03.25

 위 책은 무송 윤씨와 칠원윤씨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1). 무송윤씨 

 원 성씨는 원래 소호(少皥)씨였으나, 소호 금천씨의 아들 선(船)이 옹주의 윤성에 봉해져 윤씨가 되었다. 후손인 경(鏡)이 병란을 피하여 무송(전북 고창)에 세거하여 이어져 오고 있다...

 2). 칠원윤씨

태종 무열왕때 태자 태사 역임.

 . 필자 주 5). 향토문화대전에 나타난 무송 윤씨의 시조와 칠원윤씨의 시조에 대한 설명입니다.

 3). 한국에서의 무송윤씨(茂松尹氏) 시조 윤양비(尹良庇)에 대한 설명.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설명편에 나옴.


[연원]
무송윤씨(茂松尹氏)의 시조 윤양비(尹良庇)는 고려 예종 때 현리(縣吏)로서 과거에 급제하여 보승낭장(保勝郎將)·호장동정(戸長同正)을 지냈다. 윤양비의 선계(先系)는 윤경(尹鏡)으로 후당(後唐)에서 오계(五季)의 난을 피하여 한반도로 건너와 무송(茂松)[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지방에 정착하면서 무송을 본관으로 삼았다. 이후 계대가 실전되어 윤양비를 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와 장령공파(掌令公派)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4). 한국에서의 칠원윤씨(漆原尹氏) 시조 윤시영(尹始榮)에 대한 설명.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상삼리 에 있는 칠원윤씨 上良齋

설명편에 나옴.

 [개설]

칠원윤씨 대언공파(代言公派) 양산 소문중(小門中)이 임진왜란 전에 남하하여 양산 상삼 및 양동에 세거의 터를 잡았는데 26세조 윤승원(尹承元)을 모시는 재사이다. 「상량재기」는 1997년 5월 18일 38세손 윤정삼(尹政三)이 근찬한 것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신라 태종무열왕 때 태사로서 고명원로(顧命元老)에 이른 윤시영(尹始榮)을 시조로 삼았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27세조 윤옥(尹沃)은 무과중추부사(武科中樞府事)였으며, 윤발(尹潑)은 무과에 급제한 만호(萬戶)였다. 두 사람은 임진왜란시에 형제가 창의(倡義)한 공으로『양산읍지』, 『양산향안』에 실렸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5). 한국에서의 파평윤씨((坡平尹氏) 시조 윤신달(尹莘達)에 대한 설명. 

 성씨의 역사

 파평윤씨의 시조는 윤신달(尹莘達)이다. 윤신달은 고려 태조를 도와 후삼국을 통일한 공으로 개국통합삼한벽상익찬공신(開國統合三韓壁上翊贊功臣) 2등에 책록되었고 관직은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에 이르렀으며 소양(昭襄)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조선씨족통보》와 《용연보감(龍淵寶鑑)》 등에 의하면 윤신달은 파주 파평산(坡平山) 서쪽 기슭에 있는 용연(龍淵)에서 옥함(玉函)이 물위에 떠오르면서 그 안에서 나왔다고 한다. 윤신달 이전의 자세한 세계(世系)는 알 수 없다.

.출처:파평윤씨[坡平尹氏] (성씨와 본관, 2011.1.14, 한국학중앙연구원)

 . 필자 주 6). 이로볼때 무송윤씨 시조 윤양비의 선계(先系)는 윤경(尹鏡)으로 후당(後唐)에서 오계(五季)의 난을 피하여 한반도로 건너와 무송(茂松)[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지방에 정착한것으로 판단됨.  칠원윤씨의 시조 윤시영(尹始榮)도 신라 태종무열왕 때 태사로서 고명원로(顧命元老)에 이른점을 보면, 태종무열왕재위시 중국을 통치하던 당나라 때 칠원윤씨가 한국에 정착한것으로 파악됨.

 결국 소호씨에서 유래된 중국 尹씨는 唐나라때와 後唐시대(역사적으로 923~936 존립) 한국에 정착한 성씨라 할 수 있음. 정착순서로 보면 칠원윤씨가 태종 무열왕때, 파평윤씨가 고려 건국(918년)에 참여한 전후시기에, 무송윤씨가 후당(923∼936)시대에 한국에 정착한 것이라 판단됨.    

 . 필자 주 7). 태종무열왕, 당나라, 후당(後唐)의 시대 설명.

 6).신라시대 태종무열왕의 출생.사망 및 재위기간

 가). 출생~사망: 603(진평왕 25)∼661(문무왕 1).

나). 재위기간: 재위 654∼661. 성은 김씨. 이름은 춘추(春秋). 신라 제29대왕.

 . 출처: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다). 당(唐)나라 존속기간

 618년 이연(李淵)이 건국하여 907년 애제(哀帝) 때 후량(後梁) 주전충(朱全忠)에게 멸망하기까지 290년간 20대의 황제에 의하여 통치되었다

 .출처: 당[唐] (두산백과)

 라). 당(唐)과 다른 후당(後唐)에 대한 설명

 중국 고대의 오대(五代) 중의 한 왕조(923∼936).

 통칭 후당(後唐)이라 한다. 돌궐(突厥) 사타부(沙陀部) 출신의 이극용(李克用)이 당(唐:618∼907)에 봉사(奉事)하며 황소(黃巢)의 난(875∼884) 진압에 공을 세워 895년 진왕(晉王)으로 훈봉(勳封)을 받았는데, 아들 이존욱(李存勖:재위 923∼926)은 923년 후량(後梁:907∼923)의 뒤를 이어 국호(國號)를 당(唐)이라 칭하고 뤄양[洛陽]에 도읍하였다...

.출처:당[唐] (두산백과)

 . 필자 주 8). 유교사회는 자손번성을 위해 부인을 여러명 두며 살아온게 역사적 현실인데, 이는 그대로 반영하여야 합니다. 왕족이나 양반은 대개 그렇게 여러명의 부인들 두고 一夫多妻制로 가문의 번영을 도모했습니다. 현대는 一夫一妻制지요. 

 . 필자 주 9). 五帝의 姓.

태호, 염제, 황제, 소호, 전욱은 하나의 칭호에 해당됩니다. 중국은 姓氏제도를 발달시켜 한국도 殷나라의 왕족출신 箕子조선의 출현이후 기자의 후손들이 성을 사용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조선부터 역사적 조선으로 보여지는데, 기자조선을 불명확한 시대로 보는 견해도 있음. 물론 아직까지 단군은 역사가 아닌 전설이나 野史로보고 그렇게 가르치고 배워왔음. 세계사 영역과는 맞지 않는 야사와 전설이 단군조선 이라 할 수있음. 최근에 급작스럽게 단군조선도 교과서에 넣기는 넣었지만 世界史.正史로서가 아니라 신화와 전설 차원으로 넣은것이라 이는 학계에서 많은 검토를 해야 함. 국어사전이나 한자사전에서 유사이래(有史以來)란 말은 있어도 단군이래라는 말이 등재되지 않은걸 보면 正史에 근거한 역사적 자격이 중요하기는 중요한 것 같음. 그런데 기자조선 기준(箕準)王은 분명한 正史시대의 위만이 멸망시켜 출생.사망이 부정확한 인물이면서 역사적 인물에 해당되기도 함.  

 . 필자 주 10). 준왕(準王), 즉 기준(箕準)은 출생.사망은 불명인데, 재위기간은 명확하고 정사시대 인물인 위만에 멸망당하는 역사에는 분명히 등장하고 있습니다. 

.준왕

재위기간: BC 3세기~BC 2세기.

 고조선의 왕. 중국의 진(秦)나라 말기와 한(漢)나라 초기에 걸치는 시대에 재위(在位)하였으며, 지금의 랴오둥[遼東]지방에서 도망해 온 위만(衛滿)을 받아들여 한씨조선의 서북변(西北邊) 지방을 지키게 하였다. BC 194년 위만이 왕검성(王儉城)을 공취(攻取)하자, 준왕은 마한(馬韓) 땅으로 도망하여 그 전에 이미 그 지역에 이주해 있던 유민(流民)을 수습하여 그들을 지배하면서 한왕(韓王)이 되었다.

 .출처:준왕[準王] (두산백과)

 . 필자 주 11). 기자조선의 실체를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인정하였다고 하는데, 최근에 부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필자는 성씨의 유래나 기준왕의 역사적 등장으로 볼때 기자조선을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근대와 현대 일부분 시기는 일본 강점기인데, 학술서나 백과사전.교과서 등 많은 학술서에서 유교 아닌 일본 신도.일본불교적 시각과 일본 기준 역사관이 강점기 한국에 작용한점을 염두에 두어 장기적 재검토가 필요한 분야라 생각합니다.   

 기자조선(箕子朝鮮)

 .요약:중국 은나라 말기에 기자(箕子)가 조선에 와서 단군조선에 이어 건국하였다고 전하는 나라.

 기자가 조선에 와서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하는 대표적인 역사책은 복생(伏生)의 《상서대전(尙書大傳)》, 사마천의 《사기(史記)》, 반고의 《한서(漢書)》 등인데, 사서마다 내용이 약간씩 다르다. 그 밖의 기자에 관한 기록들은 모두 이들 세 사서에 그 유래와 근거를 두고 있다.

《상서대전》에는 주(周)의 무왕(武王)이 은(殷)을 멸망시키고 감옥에 갇힌 기자를 석방하자, 그는 이를 탐탁치 않게 여겨 조선으로 달아났다. 무왕이 이 소식을 듣고 조선왕으로 봉하였다. 주의 책봉(冊封)을 받은 기자는 부득이 신하의 예를 차려야 하였으므로 BC 1100년경(무왕 13)에 주나라에 가서 무왕을 만났는데, 무왕은 그에게 홍범9주(洪範九疇)에 대해서 물었다고 한다.

또 《사기》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에는 무왕이 은을 정복한 뒤 기자를 방문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도를 묻자 홍범9주를 지어 바쳤다. 이에 무왕이 그를 조선왕으로 봉해주었으나, 기자는 신하의 예를 갖추지 않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한서》 지리지 연조(燕條)에는 은나라가 쇠하여지자 기자가 조선에 가서 그 백성에게 예의와 농사 ·양잠 ·베짜기 기술을 가르쳤더니, 낙랑조선(樂浪朝鮮) 사회에서는 범금팔조(犯禁八條)가 행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들을 근거로 《삼국지》에 인용된 《위략(魏略)》에서는 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긴 준왕(準王)을 기자의 후예로 기술하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기자조선의 실체를 인정하였지만, 최근에는 이를 부정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출처:기자조선[箕子朝鮮] (두산백과)

 6]. 여하튼 한국 성씨를 보면 기자조선의 후손들이 徐氏나 韓氏등으로 姓을 자연스럽게 적용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태고적에 성이란건 꼭 父의 성을 따르지 않고도 그 후손이 地名등을 활용해 姓을 사용하여 전승되어온 부분도 많습니다. 한국의 경우 기자조선 후손들은 姓을 사용해왔다고 할 수 있는데, 기자조선 후손이 아니면 자생적인 부족연맹체의 수장들이 姓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도 있어 나중에 추증형식으로라도 姓을 사용하며 확대시켜 온 나라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막부시대를 타도하며 하급무사들이 추대한 日王이 아직도 姓이 없는게 좀 특이합니다.  한국에서 漢字나 유교 및 도교.중국불교 여러 문물을 수입해간 나라가 일본이며 한국을 어버이 나라로 알던 나라가 일본인데 느닷없이 중국.한국이 모르고 인정치 않던 천황칭호를 강요하니까 해방후 한국은 日王이라고 호칭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필자 주 12). 유교 경전에서 보면 윤씨가 나오는점으로 보아 중국에서 발생한 姓인점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소호씨가 尹성을 사용한게 아니고 次妃(둘째 왕비)에게서 난 후손이 尹성을 사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른성씨는 몰라도 필자가 尹氏라 그 내용을 알고 있습니다. 위에서 예로든 책 [조상성씨의 세계 내가만난/김문순 저]에서 무송윤씨의 원래 성씨가 소호씨라고 한것은 칭호를 성씨로 혼동하여 그렇게 서술한 것 같기도 합니다. 상고시대의 일로, 좀 복잡해서 그런것 같습니다.  

 [6]. 유교 경전인 오경(五經)의 예기(禮記)에 나타나는, 五帝(태호, 염제, 황제, 소호, 전욱)의 세속의 姓氏등.

1]. 五帝의 姓을 밝혀주는 자료를 근거로 五帝의 姓을 살펴보겠습니다. 아주 오래된 태고시대의 인물들이라 여러가지 설이 많아 후세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혼란한 측면도 있으니까 이런점을 염두에 두면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가장 중요한것은, 세계종교로 성립된 유교(한나라때 동아시아 세계종교로 성립)나 가톨릭(로마제국때 서유럽과 서아시아 일부,북아프리카 일부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의 국교로 성립)이, 그 이전 태고적의 혼돈.未開化상태에 있던 중국의 속설이나, 그리스.로마신화와는 다른 종교라는 점입니다. 인류의 지능과 지식이 본격적으로 진보하여, 그 이전의 혼돈상태에서 믿어지던, 단순한 대자연 숭배나, 토테미즘이 개입된 동물혼합의 神을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유교나 가톨릭같은 세계종교는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한 하느님을 최고신으로 숭배하면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하면서, 발전을 해왔습니다. 유교는 주나라 때 성립된, 天을 최고신으로 하여,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이론과 경합하면서, 공자님의 儒家사상은 단순한 대자연 숭배.조상숭배와 달리,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만 백성을 창조하신 天(하느님)을 최고신으로 숭배해왔습니다. 제자백가와 경합하다가 한나라때 국교로 성립되어 동아시아의 세계종교로까지 발전된 유교입니다. 제자백가와 경합하던 당시, 공자님은 단지 스승.선생정도의 지위였다가, 점차, 위대한 스승, 성인임금, 하늘이 낳으신 성인으로 격상되신것입니다. 로마제국때는 이스라엘 부족신앙과 달리, 이스라엘지역에서 대접받지 못하던 예수(기독교문화 하느님의 독생자)를 매개로 하여, 초창기에는 로마제국에서도 그리스.로마신화의 神들에 눌려 박해받는 과정을 거치다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받으면서, 세계종교로 점차적 발전을 해온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도 인도를 중심으로 세계종교로 형성되었지만, 원래의 브라만교에 다시 눌려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고, 창조신을 부정하는 Monkey류 부처의 특성때문에 인도에서는 천 몇백년동안 탄압받아온 불교입니다.  

2]. 五帝나 三皇에 대한 설은 한국의 여러 백과사전이나 학술서적들도 아직, 통일된 의견을 보이지 않고 있어 제 각각 다양한 상황인데, 이는 현대 중국도 큰 차이가 없는것 같음. 그러나 유교종주국이자 발생지인 중국이 모든 내용들을 가장 잘 알것임. 필자의 견해로는 백과사전이나 중국.한국의 俗書보다, 유교 경전인 禮記 月令에서 五帝를 발견하는게 가장 正道라 판단함(아주 오래된 태고적의 신적.신화적 인물들이 이 분들이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밖에 없겠는데, 혼선을 빚기보다는 유교 경전을 통하여 통일된 오제의 모습을 판단해보는게 적절할 것 같음). 한국에서는 정보가 부족하므로 불가피하게 백과사전이나 중국 인물사전등을 통하여 五帝에 대해 알아보는게 옳을것 같습니다.   

1. 태호. 그 성씨는 風씨라고 함. 태호씨는 복희씨로도 인식되고 있음.

 * 복희씨(伏戱)

 동방의 천제, 복희씨

복희씨는 전설 속에서 상고시대 동이족의 유명한 수령으로 태호로 불리기도 한다. 성은 풍()으로 전한다. 성기(, 지금의 간쑤성 타이안현 북쪽)에서 출생하여 진(, 지금의 허난성 화이양현)에서 죽고 화이양성(, 지금의 허난성 화이양현 서남) 북쪽 3리 지점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150년간 재위했다.

전설 속에서 복희는 사람 머리에 뱀의 몸통(일설에는 용의 몸통)을 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이끌던 부족이 뱀이나 용을 숭배하는 토템을 가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동이는 모두 아홉 갈래로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에 ‘구이()’라고도 불렀고, 그는 최대 부족을 이끌던 공동 수령이자 동이족 상상 속의 선조로 받들어졌다.

복희씨는 음양변화의 이치에 근거하여 ‘팔괘()’를 만들었다고도 한다. 여덟 종류의 간단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부호를 사용하여 천지간의 사물을 개괄한 것이 8괘다. 그는 또 거미줄을 본떠 그물을 창조하여 백성에게 물고기 잡이와 목축을 가르쳤다. ‘슬()’이라는 악기도 만들고 악곡 ‘가변()’을 창작했다고도 한다. 이런 발명과 창작들은 당시 인류 문화생활의 서광으로 해석한다.

 .출처:복희씨[伏羲氏, fú xī shì] (중국인물사전, 한국인문고전연구소)

 . 필자 주 13). 복희씨의 모습은 감숙성 천수 복희묘에 나타난 바로는, 사람의 모습으로만 보이는데, 투루판 아스타나 무덤에서 출토된 복희와 여와의 모습은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해당지역의 토템신앙을 반영한 듯 뱀(필자가 보기에는 용으로도 보여짐)의 모습으로도 나타납니다. 유교 경전에서는 태호 복희씨의 모습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교 경전상으로는 온전한 사람의 모습이다, 또는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뱀의 모습도 부분적으로 복합되었다고 하는 설명이 없습니다.

중국 인물사전에 나타난 전통적인 복희 초상화로 판단하면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로 이르면 발은 사람의 발이고, 다리는 뱀의 얼룩무늬 가죽으로 치장한 형상으로 나타납니다. 토템신앙을 반영한 것으로 보면 사람이 뱀의 얼룩무늬 가죽으로 하의를 입은 모습으로도 보여집니다. 그런데, 복희의 초상화에서 나타난 발로 판단해보면, 선사시대 중국인들이 공룡류의 고생물을 경험하여 사람과 공룡의 복합적인 형상으로 토템신앙을 가져 복희씨의 모습을 형상화 시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필자가 추정하는 증거로는 중국의 북동부지방에 남아있는 공룡의 화석이 있습니다만, 신화적으로 추정만 할 수 있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음에 중국 북동부지방에 상당히 많이 나타난 공룡의 화석사례가 있습니다.

- 다 음 -

...중국의 북동부 지방에서는 소형이면서 2다리로 걸어다닌 열하공룡()의 발자국이 64m2에 4,000개 이상이 같은 방향을 향해 있어, 이들이 당시에 동쪽으로 대이동을 하였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미국의 애리조나주()나 유타주에서도 대형 공룡 발자국의 화석이 발견되었

한국에는 공룡시대인 중생대, 특히 쥐라기와 백악기의 지층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 출처: 공룡의 화석 (두산백과)  

필자가 신화나, 선사시대의 화석, 역사, 유교경전등을 종합하여 볼때, 고대의 신화적 인물인 복희씨의 모습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을 참고할 수 있겠지만, 아주 오래된 신적이고 신화적인 분이라 시중의 여러모습을 확정하지는 않으면서 유교경전에서 특정적 형상을 묘사하지 않는 상태로 받아들이는게 무난하다고 여겨집니다.    

. 필자 주 14). 복희씨의 여러가지 모습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842980&cid=56777&categoryId=56777

 2. 염제. 그 성씨는 姜씨라고 함. 

신농씨는 허베이성() 쑤이저우시() 열산() 사람으로 상고시대 부락연맹의 이름난 수령이다. 강수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성을 강()이라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진()에서 살다가 곡부(, 지금의 산둥성 취푸현 쪽)로 옮겼다는 설이 있다. 그는 중국 고대 전설시대에 불을 다스렸던 신으로 염제라고도 부른다. 적제, 열산씨(일설에는 여산씨)라고도 부른다.


황제와 더불어 중국인의 시조로 받들어진다. 의약(), 쟁기와 보습, 도기(), 활을 발명했고, 처음으로 시장을 열었다고 알려진다. 전설에 따르면 140년간 재위했다고 하며, 백성을 위해 수많은 약초를 맛보았는데 맹독 성분을 가진 단장초를 맛보다 중독되어 죽어서 다릉(, 지금의 후난성 차링현)에 장사지냈다.(이 역시 여러 설들 중 하나다.)

.출처: 신농씨[神農氏, shén nóng shi] - 의약과 농업의 창시자 (중국인물사전,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중국 인물사전에 나타난 전통적인 염제의 모습은 중화삼조당(허베이성 줘루현)내의 중화삼조상으로 보면 사람의 모습입니다. 중국인의 조상으로 불리는 염제와 황제상(허난성 정저우시 황하 풍경구)으로 보면 상체만 보이는데, 사람의 모습으로 보여지며, 머리부분에 뿔이 난 다른 속설의 형상이 아닙니다. 중국인물사전에 나타난 신농씨는 풀을 맛보고 있는 신농씨 초상화인데, 사람의 얼굴에 머리부분에 무언가 작은 관을 쓴 형상입니다. 토템신앙을 반영하면 소의 뿔모습형상으로 만든 작은 관 같기도 함.  

필자가 볼때, 고대의 신화적 인물인 염제 신농의 모습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을 참고할 수 있겠지만, 이 분도 역시 아주 오래된 신적이고 신화적인 분이라 시중의 여러모습을 확정하지는 않으면서 유교경전에서 특정적 형상을 묘사하지 않는 상태로 받아들이는게 무난하다고 여겨집니다.   

예기에 나타나는 오제(五帝) 중에서는 태호 복희씨와 염제 신농씨가 경전에서는 특정 형상이 없는데, 시중의 속설에서는 온전한 사람의 모습으로도 나타나고, 일부에서는 상고시대의 토템신앙을 반영하여 사람과 동물의 모습이 어느정도 복합된 형상으로도 서술됩니다.  

. 필자 주 15). 염제 신농씨의 모습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842982&cid=56777&categoryId=56777

 

3. 황제

황제는 염제 신농씨와 더불어 ‘염황’이란 용어로 중국인의 조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중국 상고사 전설시기의 가장 이른 조종신()이다. 황하 유역 일대에서 비교적 세력이 강했던 황제와 염제 부락을 중심으로 화하족()이 형성된 뒤로는 전 부족의 시조로 인식되고 있다. 본래 성은 공손(), 호는 헌원씨이다.

상고시대에 희수일대에 형성된 황제족이 바로 이 걸출한 시조 때문에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황제족은 강수일대의 강성() 염제족과 대대로 혼인관계를 맺어왔다.
 

그 뒤 황제족 후예의 한 갈래가 지금의 산시(西)성 남부로 진출하여 하() 문화를 창조하면서 마침내 하족()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하족은 중원에 들어와 중국 최초의 왕조 하()를 세웠다. 그 후 산시(西)성 경내에서 살았던 희()라는 성을 가진 주족()이 중국 두 번째 왕조 상()을 무너뜨리고 주 왕조를 세웠는데, 이 주족이 먼 조상 황제족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들의 성인 희()를 황제족에 갖다 붙였다.

황제족은 염제족과 더불어 하 · 주 두 시대와 기타 다른 종족들과의 충돌 · 교류 · 융합을 거치면서 각 방면의 융화와 발전을 통해 전국시대에 이르러 통일된 화하족을 형성하게 된다. 『세본()』 및 『대대례기()』의 ‘세계()’에 각 종족의 선조와 조종신을 황제의 갈래로 편성하여 완전한 혈연체계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로부터 황제와 염제는 함께 거론되었고 염 · 황에서 시작하여 여러 씨족의 통합을 거쳐 중국민족의 조상인 화하족이 된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 출처: 황제[黃帝, huáng dì] - 중국인의 시조 (중국인물사전, 한국인문고전연구소)

4. 소호

소호(), 소호(), 소호()라고도 불린다. 역사책에서는 청양씨(), 금천씨(), 궁상씨(), 운양씨() 혹은 주선(), 현효()로 일컬어진다. 황제()의 장자()이다. 상고시대 화화부족연맹()의 수령이자, 동시에 동이족()의 수령이기도 하다.

비록 고대 사람들을 그를 오제()의 한 사람으로 열거했지만 실제로 제왕()은 아니고 단지 중국인의 공동 조상() 중에 한 사람이다. 고대 중국의 신화 중에서는 서방대제(西)로 존숭된다. 기록에 따르면 그의 부족은 새를 토템으로 삼았는데, 원시 봉문화()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그의 자손은 여러 성씨()로 분화되었는데, 예컨대 영(), 상(), 진(), 담(), 서(), 황(), 강(), 이(), 조(), 소()씨 등이다.

 .출처: 소호 [少昊, shǎo hào] (중국역대인물 초상화, 한국인문고전연구소)

 5. 전욱

전설 속 염 · 황 연맹의 중요한 수령 중의 하나로, 고양씨라 부르며 이를 호로 칭하기도 한다. 

 ... 황제의 자손이라 전하며, 중국 서부 화하() 부족집단이 동방 동이() 부락집단과 융합한 뒤 형성된 전욱 부족의 수령이다. 아래로 8개 씨족을 거느리고 제구(, 허난성 푸양 서남쪽)를 거점으로 삼았다. 세력 쟁탈의 와중에 공공을 물리쳤다.

전욱은 10세 때 소호씨를 보좌했고, 12세에 머리를 묶었으며, 20세에 제위에 올라 재위 78년만인 98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동군() 복양() 돈구성() 밖 광양리(, 허난성 푸양 서남)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전욱은 사람과 일을 잘 다스리는데 중점을 두었고 농업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남정()의 중()과 화정()의 려로 하여금 하늘과 땅을 갈라 통하게 함으로써 인간과 신의 일을 나누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원시종교가 신권으로 넘어가는 표지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그는 여자가 길을 가다 남자를 만나면 한 쪽으로 비켜섰다가 남자가 먼저 지나간 다음 지나가게 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이를 어기면 황량한 땅으로 추방했다고 한다.

 .출처: 전욱 [顓頊, zhuān xū] (중국인물사전, 한국인문고전연구소)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의 24절기.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24절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는 몇해 되지 않으니,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정신적 유산인 이 24절기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발전.계승시켜야 하겠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73

 

2.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27

 

3.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blog.daum.net/macmaca/2560

 

4.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blog.daum.net/macmaca/2967

 

5.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blog.daum.net/macmaca/2632

6.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blog.daum.net/macmaca/2803

 

7.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blog.daum.net/macmaca/3044

 

8.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179

 

9.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http://blog.daum.net/macmaca/3057

 

10.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blog.daum.net/macmaca/2632

11.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blog.daum.net/macmaca/2596

 

12. 한국에서는 Royal대인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 세계사를 반영시 관습법적으로 교황 윤허 Royal 서강대도 성대 다음 Royal대로 두 대학이 가장 학벌이 높고 좋음. 서울대는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같은 건 없음. 단지 마음대로 등록하던 여러 신문에 남아있던, 친일부왜배들이 성균관대에 도전하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나라에서 일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주권없고 학벌없는 대학임은 변치 않음. http://blog.daum.net/macmaca/2260 

13. 유교의 내세관(來世觀)과 기복신앙(祈福信仰) 측면에 대한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800

 

14. 유교국가의 전통적 특징중 하나는 호적(戶籍)제도였음. 한국과 중국의 호적제도에 관하여! http://blog.daum.net/macmaca/2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