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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天)을 숭배하는 유교. 2022년 2월 15일은 음력 1월 15일로 대보름입니다. 중국은 원소절(元宵節)이라 합니다. 대보름은 최고신이신 하느님(天)을 중심으로, 그 하위신 개념의 일월성신(日..

하느님(天)을 숭배하는 유교. 2022년 2월 15일은 음력 1월 15일로 정월 대보름입니다. 중국은  원소절(元宵節)이라 합니다. 정월 대보름은 최고신이신 하느님(天)을 중심으로, 그 하위신 개념의 일월성신(日月星辰) 중 月神을 숭배하며 소원을 비는 날. 온국민이 참여하는 제천의식의 날 중 하나. 

 

 

하느님(天)을 숭배하는 유교. 대보름은  최고신이신 하느님[유교의 天(하늘.하느님. 태극과 연계되신 최고신 하느님 天이심)은 우주만물을 낳으시고, 하느님의 기품과 땅의 형상을 가장 완벽하게 부여받은 중간적 존재인 인간을 창조하신(시경:天生蒸民) 초월적.형이상학적 절대자이십니다]을 중심으로,그 하위신 개념의 日月星辰[자연天 형태로 보이는 여러 하위신(인간이 신성성을 느껴 오랫동안 숭배해 왔으며 인격天의 하위신 개념도 동시에 가짐) 중 月神을 숭배하며 소원을 비는 날입니다. 온 국민이 참여하는 제천의식의 날 중 하나가 유교명절인 정월 대보름입니다. 

 

[1]. 대보름 명절은 유교에서 최고신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 다음의 하위신이신 오제[五帝. 다신교 전통의 유교에서 조상신 계열로 승천하여 최고신 하느님(天)다음의 하위신이 되심]중의 한분이신 봄의 신[춘(春)의 제(帝)] 태호(太皥)께서 다스리는 봄철의 명절입니다.

 

양력 2022년 2월 15일은 음력 1월 15일로 정월 대보름입니다. 정월(음력) 대보름[중국은 元宵節]은 추석(仲秋節)처럼 온국민이 참여하는 제천의식의 날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대보름날 이른 아침에 여러가지 부럼(잣, 날밤, 호두, 은행, 땅콩등의 견과류)중 하나를 먹고, "일년 열두달 무사태평하고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하고 축수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월대보름날은 그 해의 곡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오곡밥과 나물을 먹습니다. 오곡밥이 없으면, 떡집에서 약밥을 미리 구입하고, 나물은 집에서 만들거나, 구입하시면 될것입니다.    

 

대보름날 달님에 소원비는 기복행위는 전국 어디서나 누구든지, 달님을 향해, 음식없이도 기도형식으로 개인적으로 소원을 빌 수 있습니다. 대보름날, 왕이나 최고 제사장이 없이도, 한국 유교도들에게 허용된 전통적인 특전입니다. 

 

그리고 대보름날 아침, 찰밥을 지어 성주신께 바칠때 올리는 귀밝이 술, 성주신께 한해의 안녕과 무병을 기원하며 부럼을 까먹는 전통적인 의식등은, 유교에서 특별히 강제하지도 않고 제지하지도 않은 전통적인 신령숭배에 해당됩니다. 일부 지역에서 굿이나 푸닥거리라는 명칭으로 대보름 신령숭배 전통이 나타나도, 이를 무속신앙이라 하지는 마십시오. 유교 경전 논

어 팔일(八佾)에서는 공자님이전부터 섬겨온 아랫목 신(안방신), 부엌신등을 섬기는 전통도 수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통적인 신명 섬기기에 대해서, 공자님도 오래된 관습으로, 논어 "향당(鄕黨)"편에서, 관습을 존중하는 예를 표하셨습니다. 신명(神明)모시기 전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대보름날, 농촌지역과 달리, 대도시에 살면서, 집단적인 기복행위에 참여할 수 없는, 현대 도시인들은, 대보름날 아침, 굳이 유교제법으로 강제하지 않는 귀밝이술, 부럼깨기 의식을 행할 수 없는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으며, 성주신을 모시지 않는 도시 가정이 많아졌기 때문에, 집안의 家神성격인 성주님을 마음속에 상상하며, 부럼깨기 의식을 행할수도 있는 법입니다. 중요한 건, 강제되지 않은 성주신 모시기가 아니고, 신령을 모셔온 전통을 받아들이는 전통에 대한 존중과, 다신교 전통을 가진 유교의 여러 신명(神明)에 대한 숭배의식일 것입니다. 조상제사 말고 개인들의 기복행위를 허용해주는 특혜를 베풀어 온, 대보름날이니까, 마음가짐이라도 정갈하게 하여, 개인 기복행위에 해당하는 찰밥 제사(귀밝이 술도 올려야 함), 부럼깨기등에 대해, 가정과 개인의 형편에 맞게 제사하고 소원비는 의식을 행하면 적당하다고 필자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도시에 살면서, 성주신을 모시지 않는 가정은, 성주단지가 없을것이므로, 찰밥제사(귀밝이술과 함께), 부럼깨기등의 전통적인 神明 모시기를 행하기보다는, 관습을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오곡밥(약밥)과 귀밝이술을 먹고, 부럼깨기를 하면 적절할것입니다.        

 

참고로 예기(禮記) 월령(月令)의 오제(五帝)는 다음분들입니다.

 

춘(春)의 제(帝)는 태호(太皥), 하(夏)의 제(帝)는 염제(炎帝), 추(秋)의 제(帝)는 소호(少皥), 동(冬)의 제(帝)는 전욱(顓頊). 그리고 계하(季夏)의 달인 음력 6월에는 중앙에 황제(黃帝)를 넣고 있습니다. 

 

 

[2]. 유교 경전인 예기(禮記)의 월령(月令)편에 나오는 맹춘지월(孟春之月)과 대중언론의 관련 내용들.

 

1]. 예기(禮記) 월령(月令). 

 
東風解凍 蟄蟲始振  魚上冰  獺祭魚 鴻鴈來 天子居靑陽左个 乘鸞路 駕倉龍
載靑旂  衣靑衣  服倉玉  食麥與羊 其器疏以達

 

동풍이 불어서 얼음이 풀리고, 칩거했던 벌레가 비로소 움직인다. 물고기가 얼음 위로 떠오르고, 수달(獺)이 물고기를 제사지내며, 기러기가 남쪽에서 온다. 천자는 명당 동쪽 방의 북실에 거처하고, 난로(鸞路)를 타고 푸른 빛의 말을 멍에하며,  푸른 기(旂:쌍용을 그린 기)를 세우고, 푸른 옷을 입으며, 창옥(蒼玉)을 차고 보리와 양고기를 먹는다. 그 쓰는 그릇은 조각이 성기고, 나무 결이 곧다...   

 

是月也  天氣下降  地氣上騰 天地和同  草木萌動... 

이 달에 천기(天氣)는 밑으로 내려오고, 지기(地氣)는 위로 올라가서, 천지가 화동하여 초목이 싹튼다...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역해자(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 필자 주 1). 東風解凍(동풍이 불어서 얼음이 풀리고): 동풍이 불어 얼음이 풀리는 것은, 봄바람(東風)때문에 대기권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눈이 녹고 얼음이 풀리면서, 눈과 얼음이 비나 눈이 되어 추위에서 벗어나,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는것을 의미합니다. 대보름날은 동풍이 해동작용을 하여, 어느 정도 꽃샘추위가 발생해도, 한겨울같은 강추위는 없는 때입니다. 

 

2]. 봄철 동풍과 관련한 대한민국 기상청의 생활속 기상이야기와 연합뉴스 보도.

 

1). 대한민국 기상청의 생활 속 기상이야기.

 

* 속담으로 풀어보는 기상이야기. - 바람 -

 

a. 동풍은 추위를 녹인다: 겨울에서 봄이 되면, 이동성 고기압이 빈번히 통과하여, 북쪽으로 물러나고 그 후면에 들게 될 때, 동쪽 고기압으로부터 비교적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추위가 풀린다는 뜻이다. 

 

.b. 북동풍은 맑음: 봄, 가을 이동성 고기압 통과시 그 전면에서 지방에 따라서는 북동풍이 분다.  

 

. 출처: 대한민국 기상청 대표 블로그:생기발랄. 

 

2). 연합뉴스 보도자료. 

 

2019, 3, 7, 연합뉴스 김하윤 기상캐스터 보도자료.

 

[날씨트리] 동풍의 순 우리말은 '샛바람'

 

...먼지가 완전하게 걷히지 않았는데도 군데군데 보이는 하늘의 파란빛이 가슴 설레게 합니다.

 

곧 따스한 봄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데요.

 

오늘은 바람, 특히 봄바람으로 불리는 동풍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밤사이 강원 산지에는 동풍의 영향으로 많은 양의 눈이 내려 쌓였습니다.

 

습윤한 바람이 태백산맥을 타고 올라가면서 기온이 떨어지게 되고요.

 

공기 중에 수증기가 물방울로 바뀌어 구름이 형성돼 비나 눈이 내리게 되는 건데요.

 

이 상태에서 공기가 산을 타고 내려오게 되면 건조하고 또 기온이 높아지게 됩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잘 아는 푄 현상입니다.

 

동풍의 순우리말은 바로 이 샛바람입니다...

 

 

[3]. 유교 경전인 禮記등으로 日月神 숭배를 살펴보고 역사적 과정을 알아봄.

 

1. 다음은 유교경전인 禮記에 나오는 祭法입니다. 이 문구에 달에 제사하는 문장이 후세 사람들의 귀감이 되어 한국에서는 정월대보름과 중추절등에 달맞이등을 하며 소원을 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와 달, 별, 장마와 가뭄, 사방에 제사지내는 부분입니다. 

王宮祭日也  夜明祭月也  幽宗祭星也 雩宗祭水旱也  四坎壇祭四方也...

 

* 필자 주 2). 위에서 日月神에 제사하던 祭法은 殷나라때 생겨서 후대에 天子제도로 확고한 정착이 되기 이전에 생긴 제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 써 놓은 한문 문장(禮記 祭法)으로 보면 그  당시는 殷나라 天子가 아닌 殷仁으로, 周人으로 제사하던 祭天儀式, 日月神 숭배전통이 있었습니다. 이 제사가 변형 유지되어 중국 일부지방이나 殷나라 왕족 箕子의 후손으로 언급되는 箕準王의 선조 및 부여(殷正月의 曆法으로 祭天儀式인 영고를 지냄), 삼한(상달제.시월제), 고구려(동맹), 예(무천), 백제의 교천, 신라의 日月神 제사, 고려의 제천의식등으로 이어졌겠지요. 天子제도가 생긴 이후 중국 사람들이 보기에 고대 한국인들이 함부로 사당등을 지어 제사하는걸로 보여졌다면(당서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풍속에는 함부로 만든 사당이 많은바 라고 기록), 天子제도의 확고한 형성으로 天子의 제사와 諸侯의 제사, 士大夫 제사, 庶人의 제사를 구분하기 이전에 형성된 중국일부지방.한국일부지방의 풍속들이 그렇게 전승되니까 그 후에 생긴 天子부터 庶人까지의 제사법 구분으로 판단하여 함부로 사당을 짓는다고 기록했겠지만 그 당시는 중국이 고대 한국을 제지하고 그러던 시대는 아니었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원나라를 거치면서 국자감 개칭등 그런 天子國 주장이 강해졌고,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을 天子國으로 확실히 대우해 주면서 조선 초기에 제천의식이 폐지되고 고종때 부활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여하튼 역사적으로 부조리할수도 있는(후세 사람이 보기에) 관습이 허용되어도 중국 天子와 海東天子(한국의 天子)는 급이 다릅니다.     

 

 

有虞氏禘黃帝而郊嚳  祖顓頊而宗堯 

夏后氏亦禘黃帝而郊鯀  祖顓頊而宗禹

殷人禘嚳而郊冥  祖契而宗湯

周人禘嚳而郊稷  祖文王而宗武王.

 

燔柴於泰壇祭天也   瘞埋於泰折祭地也

...........

王宮祭日也   夜明祭月也

............ 

 

 

* 필자 주 3). 위의 祭法관련 작자인 전금과 후세 학자의 설에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어느 것이 결정적으로 옳은지에 대해 학자들간에 이론이 많다고 예기 譯解者(권오돈/발행처 홍신문화사/2003.10.30 발행)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 필자 주 4). 전금에 대한 설명. 중국 역대 인명사전(2010.1.20/이회문화사)에 의함.

 

展禽.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 대부(大夫)를 지냈다. 성은 전(展)씨고, 이름은 획(獲)이며, 자는 금(禽)이다. 유하(柳下)는 식읍(食邑)의 이름이고, 혜(惠)는 시호다.

 

 

* 필자 주 5). 殷周때 생긴 천자제도로 사람들을 강제하기전 일반 백성이 日月星辰을 우러르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日月星辰 숭배 풍속이 天子제도 확립후 생긴 새로운 숭배풍속이라 하면 그 신분에 따라 의관을 정제하고,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하는게 옳겠습니다. 그러나 天子제도의 강제전에 확립된 관습으로 月神을 바라보며 단지 소원을 비는것에 대해서는 祭法에 어긋난다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의 달맞이 풍속도 그렇게 형성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일반 백성들이 단지 달맞이라는 소원비는 의례로 달맞이 하는것은 그대로 전승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유교국 한국인들은 중단하지 말고 대보름과 추석때 달님에 소원비는 달맞이를 행해도 됩니다. 제천의식은 황사손이 별도로 하고 계시는데, 일반인들은 대보름과 추석때 달님에 소원비는 행사를 하는게 가장 옳고 일반적입니다.         

 

     

일월성신을 民(백성)이 우러러보는 禮記 제법의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及夫日月星辰  民所瞻仰也  山林川谷丘陵

民所取財用也  非此族也  不在祀典....

 

2. 유교 경전인 禮記에 나오는 月令부분의 天子 제사[음력 正月의 元日에 제사]. 天子제도 확립 및 수용이후 생긴 제의므로 법도대로 따라야 함.  

 

天子乃以元日 祈穀于上帝 乃擇元辰 天子親載耒耜 措之于參保介之御間

 

3. 한국의 천자나 왕이 거명되지 않고 殷曆 正月에 하늘에 제사하고 나라사람들이 크게 모여서 연일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던 부여의 영고(역사책에서 언급되는 부여의 제천의식인 영고에 대한 설명임).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조(三國志 魏書 東夷傳 夫餘條)기록.

 

以殷正月祭天 國中大會 連日飮食歌舞 名曰迎鼓 於是時 斷刑獄解囚徒

 

 

4. 음력 정월의 명절.  

 

 

이념이 어떻든 국가가 어떻든, 수천년 유교국가들인 중국인과,한국인,중국화교들에게 생활의 일부로 체화된 유교명절 설날(春節,元日,元旦,元辰)기간의 祭天儀式이나(중국은 전통적인 天子國이라 立春때 祭天儀式, 元나라를 거쳐 明나라이후 주변국에 중국만이 天子國이라 압박해서 한국이 이를 확실히 받아들인 이후 중국에 있는 天壇은 중국이 확실한 천자국의 징표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함), 日月神 숭배(중국의 天子제도를 확실히 받아들인 나라의 경우, 天壇을 만들어 드리는 天子의 祭天儀式과 日月神 숭배의식은 다르다는걸 인지해두어야 함) 및 조상제사 전통이 낀 陰曆 正月! 

 

설날이 지났고 곧 이어 대보름입니다.중국은 원소절(元宵節).

 

 황하문명의 유교 종주국 中國의 대표적 名節은 한국과 이렇게 명칭이 다릅니다. 春節(한국은 설.설날), 淸明節(한국은 한식), 端午節(한국은 단오라 함, 중국에서는 중오(重午) ·중오(重五) ·단양(端陽) ·오월절이라고도 함], 中秋節(한국은 추석, 仲秋節이라고도 함)등이 있습니다.  한국이나 베트남,대만,싱가포르등은 그 달의 상황에 맞게 유교 祭儀를 행하면 되겠지요.  

 

5. 한국에서의 대보름의 유래(음력 정월의 설날명절과도 결부됨).

 

가). 한국에서의 설날의 유래는 三國史記에 백제와 신라의 사례가 나와 있습니다. 중국(元日.元旦등,현대 중국은 春節)과 한국의 元日(元旦,春節).설은 4대名節[중국의 경우 4대 名節로 春節(元日.元旦등),淸明節(한국은 한식), 端午節, 中秋節(한국은 秋夕.仲秋節로도 씀)]이거나 3대 名節(한국의 경우)입니다. 최근에는 며칠의 휴가를 주는 公休日 성격을 가졌습니다[한국의 경우 전통적인 3대 名節은 설.단오.추석].

 

그런데 公休日도 아니고 4대 名節.3대 名節도 아닌 上元節(元宵節, 한국은 대보름)의 성격은 독립적인 별도의 名節 개념이 아니라, 元日(元旦, 현대 중국의春節)부터 시작해서 장기적인 名節로 이어지는 陰曆 正月의 마지막 節日정도가 적당한 개념인것 같습니다. 

 

나). 고대 한국의 백제에서 正月에 제사지낸 기록은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고기(古記)에 “온조왕(溫祚王) 20년(서기 2) 봄 2월에 단을 설치하여 천지신명에 제사를 지냈다. 온조왕 38년 겨울 10월, 다루왕(多婁王) 2년(서기 29) 봄 2월, 고이왕(古尒王) 5년(서기 238) 봄 1월과 10년 봄 1월 및 14년 봄 1월, 근초고왕(近肖古王) 2년(서기 347) 봄 1월, 아신왕(阿莘王) 2년(서기 393) 봄 1월, 전지왕(腆支王) 2년(서기 406) 봄 1월, 모대왕(牟大王) 11년(서기 489) 겨울 10월에 모두 위와 같이 제사 지냈다. 

다루왕 2년 봄 1월에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하였으며 책계왕(責稽王) 2년(서기 287) 봄 1월, 분서왕(汾西王) 2년(서기 299) 봄 1월, 계왕(契王) 2년(서기 345) 여름 4월, 아신왕 2년 봄 1월, 전지왕 2년 봄 1월에도 모두 이와 같이 제사를 지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古記云 溫祚王二十年 春二月 設壇祠天地 三十八年 冬十月 多婁王二年 春二月 古尒王五年 春正月 十年 春正月 十四年 春正月 近肖古王二年 春正月 阿莘王二年 春正月 腆支王二年 春正月 牟大王十一年 冬十月 並如上行

多婁王二年 春正月 謁始祖東明廟 責稽王二年 春正月 汾西王二年 春正月 契王二年 夏四月 阿莘王二年 春正月 腆支王二年 春正月 並如上行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연관목차 (153/264)

.출처: 제사[祭祀]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8.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 필자 주 6). 위의 경우에는 殷나라 正月을 사용한 부여 영고의 祭天儀式을 답습한 것으로 연관지을수도 있겠습니다. 부여는 고구려 주몽이 태어난 나라며, 백제(비류왕,온조왕)는 고구려 주몽임금의 자손이 세운나라라 그렇습니다. 陰曆 正月의 제사라 하면 禮記에 나오는 元日(天子의 제사),立春(天子의 제사)이 대표적입니다. 부여의 영고처럼 장기적으로 이어진 제천의식을 이어받았다면, 天子제도의 확립이전에 시작되었고 禮記에도 나오는 殷人.周人의 제천의식을 이어받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음력 정월에 단을 설치하여 천지신명에 제사지낸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이왕(古尒王) 5년(서기 238) 봄 1월과 10년 봄 1월 및 14년 봄 1월, 근초고왕(近肖古王) 2년(서기 347) 봄 1월, 아신왕(阿莘王) 2년(서기 393) 봄 1월, 전지왕(腆支王) 2년(서기 406) 봄 1월.

* 필자 주 6-1). 백제가 지낸 天地에 대한 祭天儀式.山川祭祀는 禮記에 거론된 天子제도를 중국이 주변국에  강요하기전에 이루어진 原始的 權原의 국제법자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殷人의 후손인 箕子와 관련된 나라가 한국이기도 합니다(일본강점기 잔재때문에 기자조선을 확실한 正史로 보지 않기도 하지만 先史時代의 정치인인 箕準王이 역사시대 인물인 위만에 멸망당한 사실을 볼 때 기준왕의 조상이 殷나라 王族 箕子일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고려.조선시대는 인정하던 기자조선의 역사였고, 국사는 고조선을 가르치고 있기때문에, 백과사전이나 일부 학설의 기자조선 부정은 합의되기 어렵습니다. 단군조선은 원래부터 야사였고, 야사로 가르쳐왔기 때문에 야사로 머물러야 할것입니다.). 周人에 망한 殷人들과 그에 영향받은 사람들이 天子제도의 한국에서의 확실한 정착(祭天儀式을 지내던 고려말 國子監의 개칭등에서 시작되어, 조선초에 제천의식 폐지과정 있음)전에 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삼한의 상달제(시월제), 예의 무천, 백제의 교천, 고려의 제천의식(조선초에 폐지되었다가, 고종때 부활)같은 原始的 權原에서 성립된 祭天儀式을 계승해왔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한국은 海東天子(중국 天子보다 격이 낮지만)의 나라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 출처: 제사[祭祀]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8.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 필자 주 6-2). 그런데 동명왕 사당에 배알(다루왕 2년 봄 1월, 조상제사는 유교 경전 禮記의 주요 祭儀중 하나)한 특성을 볼때 백제는 이 당시에 분명하게 조상제사를 행하였음을 확인해봅니다.  

* 필자 주 6-3). 춘절이나 부여 영고의 장기적 축제성격(陰曆 正月의 長期的인 축제성격)을 볼때 漢나라때 시작되었다는 元宵節(상원절)은, 元宵節이란 구체적인 명칭을 붙이기전에는 장기적인(天子의 元日제사, 立春제사등) 陰曆 正月의 祭天儀式이었을수도 있는데, 漢나라때 陰曆 正月의 열닷새 쯤 마무리하는 祭天儀式의 節日로 추가된 것 같습니다(元宵節이란 구체적인 명칭을 붙여서...). 

  

다). 신라에서 왕이 설날에, 日月神에 절하던 祭儀.  

 

왕이 매년 설날 아침 일월신(日月神)에게 절을 하였다는 기록은 여러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서(隋書)』 권81 「열전(列傳)」46 신라(新羅)에는 “매년 정월 원단(元旦)에 서로 하례(賀禮)하는데, 왕은 이날 연회를 베풀어 뭇 관원의 노고를 치하한다. 또 이날에는 일신(日神)과 월신(月神)에게 제를 올린다(每正月元旦相賀 王設宴會 班賚羣官 其日拜日月神).”는 기록이 있으며, 『구당서(舊唐書)』 권199 「열전」149 신라에는 “원일(元日)을 중하게 여겨서 서로 경하하고 연회를 베푼다. 해마다 이날에 일월신에게 절을 한다(重元日 相慶賀燕饗 每以其日拜日月神).”는 기록이 있다. 또한 『신당서(新唐書)』 권220 「열전」145 신라에는 “원일에 서로 경하(慶賀)한다. 이날에 일월신에게 절을 한다(元日相慶 是日拜日月神).”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라). 유교 경전인 禮記 月令에 나오는 元日로 살펴봄(음력 正月의 元日에 제사).   

 

天子乃以元日 祈穀于上帝

 

* 필자 주 7). 元日은 天子제도의 확립이후 天子가 上帝(유교 경전에 나오는 上帝, 五帝나 天帝와 어울려 비슷하게 통용되기도 함)께 기도하고 소원비는 의식을 가지는 날인데, 이 날 이후 이전부터 형성된 유교 祭天儀式의 여러가지 풍속과 節日(立春,人日,上元節.元宵節)을 합쳐 장기적 祭天儀式을 거행한다고 할 수 있음. 

 

마). 春節로 살펴봄. 춘절에 대한 여러 자료의 설명을 보면 장기적인 춘절 성격과, 축제성격 및 祭天儀式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a). ...각종 오락 활동을 행하였으며 신을 맞이하고 조상에 제사를 지내며 날씨를 점치고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였으며[춘절[春节] (국가급 중국문화유산총람, 2010.8.1, 도서출판 황매희)].... 

 

b). ...며칠씩 계속되고, 지역에 따라서는 보름 이상 계속되는 곳도 있다.또 집집마다 대문에 춘련(春聯)이라는 대구의 글귀(대련)를 써서 붙이고... 가장 일반적인 민속놀이는 사자탈춤(사자무)이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세뱃돈을 주는 풍습도 있다. 관공서를 비롯한 공공기관이나 기업체들의 평균 휴일은 6일이지만, 한 달 동안 가동을 중단하는 기업도 있다[두산백과 설명].

 

c). ...춘절은 3일 동안이 휴일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농촌에서는 음력 정월 보름까지 쉬면서 즐긴다. 이 기간에는 보통 대청소, 설빔준비, 춘련, 연화 붙이기, 세배, 폭죽놀이 등을 한다(시사 상식사전).

바). 위의 설명을 볼 때 한국에서의 대보름의 유래는, 중국 春節처럼 陰曆 正月의 長期的.祝祭的 성격[독립된 하루짜리 節日에서 출발한 게 아니고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陰曆 正月의 祭天儀式]을 가진 제천의식인 부여 영고와 백제의 正月 제사, 신라의 日月神 경배가 가장 타당성을 가집니다. 陰曆 正月의 元日(元旦,설날,春節)에서 시작하여 장기적으로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성격을 가진 부여의 祭天儀式 영고, 그리고 백제의 음력 정월 제사(天地제사, 祖上제사), 그리고 음력 正月에 日月神에 경배하던 신라의 풍속. 이 풍속들은 장기적 제천의식.축제의 시작인 설날(元日.春節)의 유래이기도 하지만, 중국 풍속에 영향을 받으면서, 설날~대보름으로 이어지는 또다른 祭天儀式으로 발전해 온것으로 여겨집니다. 중국 풍속에 영향을 받아 上元節.元宵節날의 祭天儀式(축제성격도 강함)을 기념하다가 한국의 陰曆 正月 대보름으로 중국과 비슷하게 발전해온 과정을 거쳤다고 여겨집니다.   고대 한국인들은 다음과 같이 禮記에 나오는대로 중국 殷나라(기자조선 가능성 여전히 존재)나 周나라의 영향을 받아 하늘[天(초월적 현상을 보이는 自然天의 모습으로도 고대 중국인들이 받아들였겠지만, 詩經에 나온대로 天生蒸民의 인간 창조주 天으로서, 天.日月.星辰.山川.祖上등 多神중에서 가장 높은 경배의 대상으로 수천년 이어져 온  최고신 天은 초월적.초자연적 自然天의 모습과 인간창조주 天의 모습을 함께 지녀오심]에 제사하고, 日月(神)을 숭배하고, 星辰(神), 水旱(장마와 가뭄의 神), 四方(四方神), 祖上(씨족이나 부족국가 초기의 지배자로 帝가 된 祖上神)에 제사하다가 중국 漢나라때 구체적으로 元宵節(上元節)로 이름붙여진 節日을 모방하여,기존 祭天儀式과 접합해서 이어졌을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6. 일본의 양력 대보름에 대한 견해.

 

陰曆 名節을 쇠지 않고 양력명절을 쇠게 된 불교적 일본신도(일본은 유교와 유교식 중국불교.한국불교를 혼합하여 일본신도와 일본 민중불교를 2중으로 같이 믿는데 공식적으로 유교국가는 아니며 유교전통에서 많은 부분이 변질된 나라임)의 일본. 그 일본이 중국.한국의 전통 4대 名節(한국은 전통적 3大 명절)과 달리 양력 대보름을 公休日(음력도 아니면서...)로 하는것은 좀 특이합니다.

 

非 公休日 대보름을 "일본에서는 소정월(小正月)이라 하여 공휴일로 정해 명절로 삼고 있다"고 두산백과에 나옵니다. 막부시대에 全 住民을 절에 등록시켜 기독교를 탄압한 이후, 불교국가화 된 일본이 중국이나 한국에서 받아들인 한자.유교.도교.중국불교를 변형시키면서 막부시대의 풍속에 따라 생존전략을 취하다보니 한국이 전해준 유교는 완전히 불교처럼 보이게 둔갑해 버린것 같고 실제로 그 이후의 일본인은 유교도가 절대 아니게 되었습니다. 불교국가화 된 일본 막부시대의 유교나 막부타도 이후 19세기에 일본 국교가 된 불교기반 일본 신도는 後發局地的으로 일본에만 머물렀으면 일본인의 생활에만 영향을 끼치며 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등을 이기고 느닷없이 軍事 强大國의 위치로 올라서게 되니까 대만지역을 얻게되고, 강제 을사조약이후 한일합병을 거치면서 일본적인 後發局地的 특이한 문화를 강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불교적 일본신도(일본 민중불교 포함)에 대만지역과 한국이 짧은기간에 전염병처럼 일본 풍속에 강제로 전염된 것 같습니다. 일본기준 양력중심 명절의 전파, 한국.대만지역 전통 유교에 불교적 특색의 강력한 혼합이 발생하여 지금까지 그 불교적 풍속들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일본발 전통문화 왜곡현상(유교를 유교로 보이지 않게 하고 불교로 보이게 하는 특이한 현상)은 그냥 방치해두면 대만과 한국에 남은 親日附倭輩등을 중심으로 대중언론이나 학술서적.영상물등을 통해 다른나라인 중국.베트남.싱가포르까지 불교적으로 전염시킬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陰曆이 아닌 일본 小正月은 의미가 없지만 유교국들의 짧은 陰曆 節日인 立春.人日.대보름(上元節,元宵節)의 전통은 公休日이 아니라해도 각각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의 불교적 특색을 경계하면서 일본 잔재를 벗겨내면 꾸준히 지켜온 유교의 짧은 節日임은 분명합니다. 특히 立春과 대보름(上元節.元宵節)은 그렇습니다.        

 

 

7. 인일(人日)

 

가). 人日은 정월 초 이렛날에 月齡7일의 달의 위상이 형성되는 날로, 달이 上弦(First Quarter)상태며, 人日은 음력 正月 초이렛날의 節日임.

 

나). 人日에 대한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의 설명.

 

음력 정월 초이렛날로 절일(節日 : 한 철의 명절)의 하나.

내용

이날에는 특히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관습이 전해왔다. 정초에는 남의 집에 가서 유숙하지 않도록 되어 있지만, 특히 인일(人日)에는 밖에서 잠을 자지 않았다. 충청북도에서는 이날 객이 와서 묵고 가면 그해는 연중 불운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부득이 객이 와서 묵게 될 때에는, 주인과 객이 머리를 반대로 두고 거꾸로 자야만 액운을 막을 수가 있다고 한다. 『동국세시기』의 인일(人日)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작고 둥근 거울모양에 자루가 달리고 뒤에 신선이 새겨져 있는 동인승(銅人勝 : 거울 모양의 머리 꾸미개)을 각신(閣臣)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며, 또 과거를 실시하였다고 한다.

이 과거를 인일제(人日製)라 하여, 태학(太學)의 식당(食堂)에 참석한 지 30일이 되어 원점(圓點 : 시험 볼 자격 출석점)을 얻은 유생들에게 시험을 보도록 하였다고 한다. 성균관과 문묘에서 시행하기도 하고, 대궐 안에서 임금이 친히 시험하기도 하였으며, 지방의 유생도 불러 함께 보이기도 하였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다. 이 인일(人日)의 관습은 상대 중국의 세시기들에도 보이는 것으로, 그 유래가 오랜 것이다. 한편, 전라북도 지방에서는 간지가 신(申)인 날을 원숭이날이라고 부르지 않고 보통 사람날이라고 하여 쉬었다고 한다.

즉, “오늘은 사람 날이니까.” 하며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특별한 행사나 금기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경상북도 지방에서의 인일(人日)은 사람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며 질병을 예방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날이다.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정월 상인일(上寅日)에 일을 하지 않고 노는데, 이날을 사람날이라고도 한다. ‘인(寅)’과 ‘인(人)’은 그 음이 같기 때문이다. 또한, 옛날부터 인(寅)날에 일을 하면 호랑이가 나타난다고 하였다고도 한다.

경상남도 지방에서는 칠인팔곡(七人八穀)이라 하여 정월 초이렛날은 사람날이라고 하고 초여드렛날을 곡식날이라 한다. 이 지방에서도 인일에는 일하지 않고 놀며 ‘바느질하면 생손 앓는다.’, ‘칼질(혹은 연장질)하면 다친다.’는 금기가 전해오고 있다.

 

. 출처:인일[人日]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다). 인일하례(人日賀禮)

 

정초의 7일째 날인 사람날[人日]에 드리는 의례.

 

내용

서한시대 동방삭(東方朔)의 『점서(占書)』에서 말하기를 새해 후 첫째 날은 닭날[鷄日], 둘째 날은 개날[犬日], 셋째 날은 양날[羊日], 다섯째 날은 소날[牛日], 여섯째 날은 말날[馬日], 일곱째 날은 사람날[人日], 여덟째 날은 곡식일[穀日]이라 하며, 해당되는 날이 청명하면 그 동물이 잘 생육하고, 흐리면 재앙이 있을 것이라 하였다. 고대인들은 사람날의 청명(淸明)으로, 그해 사람들의 길흉 화복을 점쳤다. 또 해당되는 날의 짐승들이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하여 그 날에 해당되는 짐승들은 도살하지 않으며, 사람날에는 행형(行刑)하지 않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사람날에는 일곱 종류의 채소로 국을 끓여 먹었다.

중국 남북조시대 양(梁)나라 종름(宗懍)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정월 7일을 사람날이라 하여 일곱 가지 나물로 국을 끓여 먹고 비단이나 금박(金箔)으로 꽃과 인형을 만들어 병풍에 붙이거나 머리 위에 꽂는데, 인형을 인승면(人勝面), 꽃을 화승(花勝)이라 부른다.

그리고 『고려사(高麗史)』 권67 「지(志)」21 예(禮)9에는 인일하의(人日賀儀)라 하여 국가에서 의례를 행하였다고 전한다. 의례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당일에 전문외(殿門外)에 유사가 진설함을 의식과 같이 한다. 각문원(閣門員)이 먼저 동변(東邊)에 서고 지후(祗侯)가 양반(兩班)을 인도하여 중심을 머리로 하고 자리를 달리하여 행렬을 중복하고 북향하여 서며 시신(侍臣)은 품에 따라 서로 선다. 각사(閣使)가 나가 읍하고 문에 들어가 한 번 절하고 꿇어앉아 먼저 인승면을 꽂고 절하고 문을 나가서 자리에 나아가 읍하고 선(宣)을 받들었다고 하면, 사인(舍人)의 외침으로 양반이 재배한다. 각사가 또 “경 등에게 인승녹패(人勝鹿牌)를 사(賜)한다.”고 하면 사인의 외침으로 양반이 배무(拜舞)하고 절한다. 인승녹패를 나누어 주면 양반이 꿇어앉아 그 인승을 받는데 3품 이상은 지후가 나누어 주고 4품 이하는 태부인리(太府人吏)가 녹패를 나누어 올리고 판사(判事) 이상은 삼사판관(三師判官)이 나누어 주며 이하는 인리(人吏)가 나누어 올린다. 사인의 외침으로 양반이 재배하고 각각 지후가 인도하여 나간다. 각문이 횡행으로 가서 스스로의 외침으로 배무(拜舞)하고 절하며 각각 인승녹패 받기를 위에서와 같이하여 마치고 재배하며 읍하고 물러간다고 의식의 절차를 밝히고 있다. 또 『고려사』 권19 「세가(世家)」19 명종(明宗) 3년 정월 신미에 “신미일에 백관이 인일을 축하하니 왕이 그들에게 인승녹패를 주었다.”고 전한다.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에 의하면, 이날에 공조(工曹)에서는 화승을 올리고 또 구리로 둥근 원모양을 만들어 그 위에 사람의 형상을 새긴 이른바 동인승(銅人勝)을 각 궁전에 하나씩 진상한다고 하였다. 동인승이란 수나라 유진(劉瑧)이란 사람의 아내 진씨(陳氏)가 사람날에 동인승을 올렸는데, 비단실과 금박을 잘라서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작고 둥글며 자루가 달린 거울의 뒷면에 신선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 출처: 인일하례[人日賀禮]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 필자 주 8). 동방삭에 대한 설명.

 

동방삭((東方朔).

 

출생 - 사망

BC 161 추정 ~ BC 86 추정

 

 

동방삭

자는 만천(曼晋)이며, 평원(平原) 염차(厭次 = 현 산동성(山東省) 양신현(陽信縣)) 사람이다. 무제 때에 태중대부(太中大夫), 중랑(中郞) 등을 지냈으며, 재담과 해학을 잘 하였다. 그리하여 무제는 그를 배우로 대우했다. 그는 궁정의 한 '농신(弄臣)'이었으나 정치적으로는 정의감이 있었다. 하지만 동방삭은 정치적으로 중용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답객난(答客難)」이란 산문부를 지어 스스로를 위로했다.

주인과 객의 문답 방식인 이 부는 무제 통일 시대에 비록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뜻을 펼 곳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어질고 불초함'의 구별이 없었고, "쓰인 즉 호랑이가 되고, 안 쓰인 즉 쥐가 된다"고 불평을 토로하였다.

 

. 출처: 동방삭[東方朔] (역사 따라 배우는 중국문학사,2010.3.24, 다락원)/저자 이 수웅

 

* 필자 주 8-1). 중국 전한시대 太中大夫를 지낸 사람으로 신배(申培)라는 인물이 있음. 두산백과에 의하면 신배는 "중국 전한(前漢)의 학자로 노(魯)나라의 문제(文帝) 때 초왕(楚王)의 태자 무(戊)의 스승이었으며 정치고문으로 태중대부(太中大夫)를 지냈다. 《시경》에 정통하였다"고 서술됨. 그건 그렇고 유교 경전인 易經은 占卜에 관한 내용도 들어있는 경전인데 周나라 文王이나 周公, 孔子님께서도 중시하셨던 경전으로  후세 사람들이 이를 그대로 계승하였던 측면을 보면, 동방삭의 占書도 곧 易經(周易이라고도 함)을 응용한 서적일것입니다. 위 본문중에 "고대인들은 사람날의 청명(淸明)으로, 그해 사람들의 길흉 화복을 점쳤다. 또 해당되는 날의 짐승들이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하여 그 날에 해당되는 짐승들은 도살하지 않으며, 사람날에는 행형(行刑)하지 않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사람날에는 일곱 종류의 채소로 국을 끓여 먹었다"고 나옵니다. 결국 유교 경전인 五經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세세한 내용이나 절차가 기록되지 않아도 결국은 유교 경전인 詩經.書經.易經.禮記.春秋등에 기반한 유교적 祭儀나 행동지침에 해당됩니다. 인류역사가 기껏해야 기원전 6천년, 기원전 5천년전부터 출발되고 그 이전에 숭배와 제사대상인 天(초월적인 自然天 개념과 形以上學的인 인간창조주 天. 太極과 결부시켜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함)과 우주의 본체인 太極(의미상으로는 天과 결부시켜야 함)이 어떤 피조물을 만드셨는지는 늦은 역사를 가진 우리 인간이 가히 짐작키 어렵습니다. 그러나 形以上學的인 개념의 합리성과 철학.자연과학적인 측면을 결부시켜서 이해하면 天과 결부된 太極의 세상창조(太極은 天처럼 적극적인 제사.숭배대상은 아니지만 그 초월성과 창조주기능을 볼때는,天의 창조과정이 없는 부분에서도 天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함)는 유교쪽의 해석을 빌어 설명할 필요도 있습니다. 어떤 순서로 세상을 창조하셨는지는 經典과 사후 유학자들의 해석에 따라야 할것이며, 수많은 形以上學的 학설이 추가로 필요되기도 합니다만, 天의 피조물인 인간의 능력으로 완전하게 추론해내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陰曆 正月의 春節이든지(설날), 立春이든지, 人日이든지, 上元(대보름)이든지 유교 경전인 역경,예기,시경,서경,춘추 및 사서(論語.中庸.大學.孟子)등의 내용에서 큰 틀을 형성하고 그 세부적인 행사나 방법은 그 당시 時流와 風俗에 맞게, 세계 4대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인더스문명 및 주변 문화와 교류하면서 변형.발전시켰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교권 국가들의 명절.제사.제의.언어.교육.풍속 및 여러가지 문화의 기본성격은 대체적으로 중국의 황하문명과 유교경전등에 기반하여 주변국가들에 보급된 황하문명적.유교적 문화라고 해야 적당합니다.    

 

* 필자 주 8-2). 機智와 諧謔을 즐겼던 사람으로는 조선시대 오성(鰲城) 이 항복(李恒福)과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이 유명하지요.  

 

II. 대보름에 대한 자세한 설명

1. 유교 경전 禮記의 개념으로는 하늘(天)에 제사하고 日月에 제사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殷周시대에 형성되어 그 이후에 확실하게 확립된 天子의 禮法으로 규제하기 전에 형성된 풍속도 있고, 天子제도의 강요이후 天子만의 祭法(이 祭法을 따르자면, 대체적으로는 환구단이나 원구단등의 국가적인 天壇이 적합할것)도 있을 것입니다. 여하튼 天子제도의 강요이전에 형성된 殷周시대 사람과 그 이전 사람들의 하늘에 대한 숭배,日月숭배는 유교경전인 禮記에 수록되어, 이 또한 天子제도 강요이전에 형성된 유교적 祭儀임은 부정할 수 없는 복잡한 특성을 가졌습니다. 전통적으로 황하문명의 고대 중국인들과 한국인등 유교권 국가 유교도들이 중요시 해온 달(日神처럼 중요한 月神 개념). 하늘에 소원비는 대상으로서 국가적인 天壇과 달리, 전통적으로 日神보다는 月神개념을 중심으로 陰曆절기로 생활해온 황하문명권과 유교국가 사람들! 陰曆 正月에는 春節(설날,元日,元旦,元辰등)다음에 入春, 그리고 원소절(元宵節, 한국은 대보름)의 유교 세시풍속이 가장 일반적입니다(그러나, 음력 5월이 되면 단오절처럼 태양을 중요시하는 名日도 있음).

 

* 필자 주 9). 중국인들은 새해 들어 처음으로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이어서 상원절(上元節.元宵節)이라고도 한다 합니다. 필자가 漢字로 풀이하면 이렇게 풀이됩니다. 上(위, 앞, 첫째), 元[으뜸.처음.시초, 우두머리.두목.임금, 첫째.첫째가 되는 해나 날, 기운(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오관으로 느껴지는 현상).천지의 큰 덕.만물을 형성하는 덕]. 그러므로 달을 기준으로 한다면 陰曆 새해들어 첫째(正月)달의 첫째되는 날(보름달로 첫째 되는 날)로 上元(上元節,대보름)이 해석되겠습니다. 

 

 

2. 삼원(三元)이란 용어로 살펴봄. 조정과 역사서에서 上元(요즘은 대보름을 上元으로 통용)을 포함하는 용어인 三元을 거론한 사례.  이러한 사례를 보면 三元이란 용어를 도교나 불교쪽에서 임의적으로 끌어다 변형시키기는 무리가 따름.  

음력 정월 초하루.. 원단(元旦)의 다른 말. 연(年)·월(月)·일(日)이 시

작되는 날이라는 뜻에서 유래.

내용

양나라 종름(宗懍)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정월 1일은 삼원의 날이다(正月一日是三元之日也).”라 하였고, 청나라 부찰돈숭(富察敦崇)의 『연경세시기(燕京歲時記)』에도 『옥촉보전(玉燭寶典)』을 인용하여 “정월 1일은 원일이며 역시 삼원이라고도 한다. 한 해의 시작이요, 때의 시작이며 월의 시작이다(正月一日爲元日 亦云三元 歲之元 時之元 月之元).”라 하였다. 그리고 “이날은 먼저 뜰 앞에 폭죽을 터뜨려 산조(山臊)라는 악귀를 피한다(正月一日 先於庭前 燃爆竹以避山臊惡鬼).”라 하였다. 그 외에 『자치통감(資治通鑑)』에도 『옥촉보전』을 인용하여 “정월은 단월이며 그 하루는 상일이다. 역시 삼원이라고도 한다. 
한 해의 시작이요, 월의 시작이며 시의 시작이다(正月爲端月 其一日爲上日 亦云三元 謂歲之元 月之元 時之元也).”라 하였다. 한편 남조(南朝) 제(齊)나라 왕검(王儉)의 ‘양암친봉증상의(諒闇親奉烝嘗議)’라는 글에 “공경대부는 (이날) 천자께서 병풍을 등지고 친히 임하시며, 삼원의 시작됨을 고하니 만국의 조회를 받는다(公卿大夫 則負扆親臨 三元告始 則朝會萬國).”라 하였고, 당나라 반맹양(潘孟陽)의 ‘원일화포택(元日和布澤)’이라는 시에는 “흐르는 서기가 만물을 적셔주고 은택이 이 삼원날에 널리 퍼지도다(流輝霑萬物 布澤在三元).”라 하였다. 우리나라에도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32와 『동문선(東文選)』 권22에 ‘삼원’이라는 말을 정월 원단의 의미로 쓰인 예가 있다.

.출처: 국립 민속박물관 한국 세시 풍속사전, 국립 민속 박물관

 

 

3.한시어사전으로 上元(대보름)을 살펴봄. 

 

① 정월(正月) 보름. 중원(中元)은 7월 보름, 하원(下元)은 10월 보름임.<통감通鑑 당희종기唐僖宗紀>

玉色臨軒命管絃 春風淡蕩上元天(옥색임헌명관현 춘풍담탕상원천 ; 옥색 어의御衣 입으신 임금님 난간에 납시어 음악 아뢰라 명하시니, 봄바람 화기로운 정월 대보름날일세.)<이인로李仁老 문기장자文機障子>

② 상원갑자(上元甲子). 술수가(術數家)에서 180년을 1주(周)로 하고, 3등분하여 상원 갑자, 중원 갑자, 하원 갑자라 했는데 그 중 첫 번째 갑자 60년이 상원 갑자임.

.출처:상원[上元] (한시어사전, 2007.7.9, 국학자료원)/전관수

 

4. 시사 상식사전의 설명.

 

.정월대보름

 

 

음력 정월 15일인 '정월대보름'은 '상원일(上元節)'이라고도 하여 중원일(中元節:7월 15일 百中), 하원일(下元節: 10월 15일)과 함께 '三元節'이라고 했다. 


■ 세시풍속

이날에는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많은 세시풍속이 전해진다. 우리나라 전체 세시풍속의 20%가량이 대보름날을 맞아 치러질 정도다. 

예로부터 정월 대보름에 만들어 먹는 별식을 '상원절식'이라고도 하는데, 오곡밥·약식·귀밝이술·부럼·복쌈·진채식 등이 있다. 

대보름날 새벽에는 땅콩이나 잣, 호두, 밤 등 부럼을 자기 나이 수대로 깨물며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호두, 잣, 밤, 땅콩 등의 견과를 껍데기 채 '오도독' 소리가 나게 깨무는 부럼은 부스럼 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또 일년 내내 기쁜 소식만 전해달라며 부녀자 애들 할 것 없이 귀밝이술(耳明酒)을 마신다. 

전날 저녁에는 쌀, 팥, 콩, 조, 수수를 넣어 오곡밥을 지어 이웃과 나눠 먹고, 갖가지 나물들을 삶아서 기름에 볶아 먹기도 한다. 이런 '묵은 나물'을 진채라고 하며, 가을이 되면 호박고지·박고지·말린가지·말린버섯·고사리·고비·도라지·시래기·고구마순 등 적어도 9가지 나물들을 손질해서 겨울동안 잘 말렸다가 대보름 날 나물들을 삶아서 기름에 볶아 먹었다고 한다. 

또 이 날은 세 집 이상의 남의 집 밥을 먹어야 그 해 운이 좋다고 하여 이웃간에 오곡밥을 나누어 먹는다. 

배추잎이나 김, 혹은 참취나물 이파리를 넓게 펴서 쌈을 싸 먹는 복 쌈(복리:福裏)은 한 입 가득 복을 싸 먹으며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던 풍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편 더위먹지 않고 여름을 무사히 보내기 위해 보름날 이른 아침 친구에게 찾아가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라'고 말하는데 이를 더위팔기라고 한다.

농사가 잘되고 마을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며 마을 사람들이 모여 '지신(地神)밟기', '차전(車戰)놀이' 등을 벌이고, 한 해의 나쁜 액을 멀리 보내는 의미로 연줄을 끊어 하늘에 연을 날려 보낸다. 

저녁에 대보름달이 솟아오르면 횃불을 땅에 꽂고 합장하여 저마다 소원을 빌고 논이나 밭의 두렁에 불을 질러 잡귀와 해충을 쫓는 '쥐불놀이'를 한다. 

또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달집태우기'와 부녀자들만의 집단적 놀이인 '놋다리밟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집 근처의 다리로 나와 다리를밟고 건넘으로써 한해의 액을 막고 복을 불러들인다고 믿어지던 '다리밟기' 놀이를 한다.

 

.출처:  정월대보름(시사상식사전, 박문각)

 

5. 두산백과의 설명.

 

. 대보름

가장 큰 보름이라는 뜻의 음력 정월 보름인 1월 15일을 말함.

 

대보름날은 우리 민족의 밝음사상을 반영한 명절로 다채로운 민속이 전한다. 중국에서는 이 날을 상원(上元)이라 하는데 도교적인 명칭으로 천관(天官)이 복을 내리는 날이라 한다. 여기에 중원인 7월 15일, 하원인 10월 15일을 합하여 삼원이라 부른다. 이 밖에도 원소절(元宵節), 원석(元夕)이라 하며, 일본에서는 소정월(小正月)이라 하여 공휴일로 정해 명절로 삼고 있다. 
대보름날의 각종 풍속은 전체 세시풍속 중 1/4이 넘을 정도로 풍부한데 설 풍속을 합치면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이것은 정초와 대보름 명절이 우리 민속에서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이들은 상호 유기성을 가지기 때문에 정월중에 많은 세시행사가 모여 있다. 정월에 드는 설과 대보름은 상호보완적으로 설날이 개인적 ·폐쇄적 ·수직적이고, 피붙이의 명절임에 반해 대보름은 개방적 ·집단적 ·수평적 ·적극적인 마을공동체 명절로 두 관념이 교차하며 달의 생성과 소멸주기에 따라 긴장과 이완, 어둠과 밝음, 나에서 우리로 교체 ·확장되는 일원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한국의 명절 중 정월 대보름의 예축의례와 상대적인 명절로 수확의례인 8월 한가위의 보름 역시 만월을 통한 풍요관념을 보여준다. 
대보름은 상징적인 측면에서 달 ·여성 ·대지의 음성원리(陰性原理)에 의한 명절로 달은 곧 물의 여신이므로 대보름과 농경문화는 밀접하다. 땅과 달을 여성으로 여긴 것은 오랫동안 전해온 지모신(地母神)의 생산력 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태종실록》에 전하는 경기도 연안부의 용갈이, 용경(龍耕)풍속이나 《동국세시기》에 전하는 홍주의 용경과 용알뜨기 민속, 영동지방의 용물달기 등은 용신(龍神)신앙이 농경의례와 밀접함을 보여준다. 줄다리기 역시 용사(龍蛇) 신앙의 한 표현이다. 따라서 대보름 달빛은 어둠과 질병, 재액을 밀어내는 밝음 상징이므로 동제(洞祭)를 지내고 개인과 집단적 행사를 한다. 전하는 말에는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밝아야 좋다”든가 “중국 사람은 좀생이 별을 보고 농사짓고, 우리나라 사람은 달을 보고 농사짓는다”는 것은 한국과 중국의 문화유형이 다름을 말해준다. 개인적인 기복 행사로는 부럼깨물기, 더위팔기, 귀밝이술마시기, 시절음식인 복쌈이나 묵은 나물먹기와 달떡을 먹는 것이 있으며, 줄다리기 ·다리밟기 ·고싸움 ·돌싸움 ·쥐불놀이 ·탈놀이 ·별신굿 등은 집단의 이익을 위한 대보름 행사다.

 

 

.출처:  대보름(두산백과)

 

* 필자 주 10). 황하문명의 형성이후 五帝시대 및 요.순임금 시대를 거쳐 殷.周시대의 天子사상에 의거 형성된 始原儒敎. 그리고 유교 경전들과 始原 儒敎 전통. 이후 공자님이 유교경전과 始原유교를 계승시키시고 교육시키셔서 漢나라가 諸子百家 중 國敎로 채택한 儒敎. 이러한 맥락에서 이어진 陰曆正月의 설날(春節, 元日,元辰,元旦,元正등),入春,人日,上元(대보름)전통이기 때문에 上元(대보름)을 도교적인 해석이나 불교적 시각으로 재단하는건 옳은 방법이 아님. 원소절(元宵節)이나 상원절(上元節)의 명칭을 혼용해온 중국. 수천년동안 이어진 유교의 日月(神) 숭배전통에 가장 의미가 있으며, 부차적으로 다른 세력들이 끌어다 쓸 수 있는 여러가지 하위 습속도 있습니다만, 유교 경전인 禮記에 나오는 日月숭배에서 생긴 날이라 하는게 옳습니다. 

 

6. 유교적인 전통 명절 대보름. 중국은 황하문명의 형성과 始原유교 형성부터 하느님[하늘天(太極과 연계된 인간창조주 하늘天. 天帝나 上帝는 하늘을 다스리는 지배자)]을 숭배하는 나라라 始原 유교 그 자체로 보면 될것이며, 도교로도 보지 말아야하고 특히 불교(부처가 창조주를 밑에서 가르치면서 인더스문명의 브라만에 대항한 후발 신앙)로 각색하지 않아야 됨. 중국이나 한국의 세시풍속은, 황하문명 그 자체의 특색외에 주변의 메소포타미아문명, 인더스문명등과 교류하며 다른 풍속등이 첨가되었을 가능성도 있음은 부정하기 어려움. 다만 유교의 본류는 하늘天(太極과 연계)숭배, 日月숭배, 山川숭배,祖上숭배,聖人임금(先聖)숭배 전통임. 上元,元宵節,上元節등의 漢字語를 따져보면 결국 음력 열 닷새날, 크게 뜨는 달을 기준으로 형성된 언어들이라 할 수 있으며 한국어인 대보름날(대보름)도 이런 漢字語에서 유래한 개념을 반영하고 있음.     

 

a). 원소절(元宵节)에 대한 중국어 사전의 정의 

 

元宵节

[명사] 원소절. 정월 대보름. 음력 정월 보름의 명절. 

.출처:교학사 중한사전 (박영종 저)

 

. 소(宵)의 의미. 중국어로 元宵节이라 할 때 여기서의 宵는 밤 소자임. 

 

 

1.[명사] 밤.

 

.출처:교학사 중한사전 (박영종 저)

 

* 필자 주 11). 절(节)은 중국어 簡體字로 본래의 복잡한 한자는 繁體字라고 구분하고 있음. 节의 繁體字는 節임. 

 

 

* 필자 주 11-1). 고대의 중국인들이 생각하기에 밤에 있는 초자연적 숭배대상은 禮記에 나온바대로 세상을 널리 밝혀주는 달(月)임. 따라서 필자가 주관적으로 元宵节을 해석해보면 陰曆을 일상화 하던 고대 중국인들 기준으로, 陰曆 새해에 달이 가장 크게 떠 오르는 첫째가 되는 날(元)의 밤(宵) 명절(节)은 음력 正月 열닷새 날의 元宵節 밤임. 달(月) 기준으로 그렇게 元宵節 명칭을 붙인것 같음. 

 

한편 앞에서 거론한 上元節에 대한 필자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上(위, 앞, 첫째), 元[으뜸.처음.시초, 우두머리.두목.임금, 첫째.첫째가 되는 해나 날, 기운(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오관으로 느껴지는 현상).천지의 큰 덕.만물을 형성하는 덕]. 그러므로 달을 기준으로 한다면 陰曆 새해들어 첫째(正月)달의 첫째되는 날(보름달로 첫째 되는 날)로 上元(上元節,대보름)이 해석되겠습니다.

 

 b). 상원(上元)에 대한 漢字사전의 정의.

 

  上元.

 

  명일(名日)의 하나. 음력(陰曆) 정월(正月) 보름날

 

 .출처: 오픈마인드[(주)오픈마인드인포테인먼트,Open mind infotainment]

 

c). 위의 한자용어를 기본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는 한국의 대보름날도, 달(月)기준 陰曆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이 제공하는 대보름날의 개념은 아래와 같습니다. 근대와 현대를 거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국어사전 기준으로 할 때, 수천년 陰曆전통 기준이 너무 강해서, 일본처럼 陽曆기준이 분명 아닙니다. 중국은 天도 숭배하고 日月을 동시에 숭배하였지만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인지 관찰하기 용이한 太陰曆을 기준으로 하면서, 단오절처럼 태양기준 名節을 4대 주요 명절로 하여왔고, 한국도 단오절을 설날.추석과 더불어 전통 3대 名節로 하여왔습니다.

 

.대보름날

 

음력 정월 보름날을 명절로 이르는 말. 

 

d). 다음부터는 베이징관광국 자료에 의함.

 

  위안샤오제(元宵节,yuán xiāo jié,원소절,정월대보름) 소개

음력 정월 15일은 중국전통명절- 원소절이다.

1년 중에서 첫번째로 둥근달을 맞이하는 날이고 대지가 회춘하는 밤이라 중국인들은 음력설의 연속으로 이 날을 경축해왔다....

 

다음은 웹페이지 주소입니다(클릭해서 읽어보세요).

 

http://visitbeijing.or.kr/detail.php?number=725

 

.출처:베이징관광국 한글 공식사이트    최종수정일: 2012-12-18   

 

* 필자 주 12). 위의 베이징관광국 설명으로 원소절을 설명할 때, "1년 중에서 첫번째로 둥근달을 맞이하는 날"은 禮記의 日月숭배 전통에서 유래한 유교풍속이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초월적인 절대자이신 하늘天(太極과 연계됨. 詩經에 나오는 天生蒸民의 인간창조주 하늘天이심)에 대한 숭배, 日月(神的 의미)숭배전통, 五帝기준 祖上神 숭배전통등은 인간의 文字가 형성되기 이전의 것일수도 있겠으며, 人間이 文字를 만들고나서 그 숭배전통이 유교 경전 禮記에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절차를 거치고나서 황하문명의 始原 儒敎에서 사용하던 陰曆기준 달(月) 숭배풍속이 전승되다가, 인간이 잘 모르던 神鳥를 죽이니까 天帝께서 노하셔서 불로 징벌하시려 할때 天帝의 딸이 인간을 불쌍히 여겨 알려준 정보에 의거하여 폭죽이나, 연기, 빨간 등의 처방법이 나와 그 풍속이 元宵節(上元節)로 형성되어 전승되어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필자 주 13). 베이징관광국에 나오는 "원소절의 전설"을 보니까 잘 모르던 神鳥를 죽여서 원래부터 중국인들이 숭배하던 天帝의 분노를 피하고자 폭죽,연기,빨간등을 활용하는 풍속을 알겠습니다.  

 

* 필자 주 14). 元宵節 날 빨간 등을 거는 유래에 대해서 중국유교의 오랜 전통이 아니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어, 불교문화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는것 같은데, 이는 불교보다 오래전에 형성된 인더스문명의 브라만(나중에 힌두교로 전승됨)교 풍속이나 기원전 6천년경에 성립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형성된 조로아스터교(중국과 대륙으로 연결되어 고대 중국이 페르시아나 다른 중동국가들과 교류하다가 중국은 拜火敎.祆敎등으로 조로아스터교 신앙을 이해함) 풍속을 접하면서 형성된 부차적인 외래풍속으로 볼수도 있겠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 ─敎]는 두산백과에 의하면 漢字로는 배화교(拜火敎), 중국에서는 현교(祆敎)라고 하여 삼이교(三夷敎)의 하나로 꼽혔다고 합니다. 필자가 볼때 유일신 신앙을 가졌지만 그 이전의 세계 4대 문명(메소포타미아 문명, 황하문명, 인더스문명, 이집트지역 나일문명)이 가져온 多神敎전통을 떨쳐내지는 못하다가, 나중에 고대 유태인의 유일신사상(Hebraism)에 영향을 준것 같습니다.    

유교는 五帝라는 神的인 임금들이 계셔서 上帝.天帝등이 인간의 모습과 생활처럼 비슷한 天人合一說이 있는 종교인데, 인간이 사는 지구의 五帝 개념이 아니라 하늘과 지구를 지배하시면서 인간의 특성도 가지셨지만, 초월적인 神의 능력을 가지신 분들이 五帝이시며 그런분들이 上帝나 天帝의 일부분 이십니다.    

 

* 필자주 14-1). 빨간 등을 거는 풍속이 황하문명과 오제시대의 중국 고유 전통이 아니고 한나라때 형성된 풍속이라 하여 유교적 제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늘天(太極과 연계된 인간 창조주)숭배, 인간과 合一된 天(天帝,上帝의 모습)숭배, 日月숭배 전통에 등불거는 전통이 漢나라때 생겨서 수천년이라면 유교를 本流로 외래문명을 수용한 元宵節날의 유교 하위풍속이라고 해야 하지 다른 외래 종교의 풍속으로 보는것은 무리가 있습니다(儒敎的 本質은 바뀌지 않으면서, 주변국들과 교류가 왕성하던 漢나라통치기 중국에서 생긴 외래풍속 수용후 생겨난 전설 정도로 치부하면 될것. 모든 문명과 종교는 교차하는법입니다).

 

文明이 교차하는 특성을 가진다는 점을 인정할때, 메소포타미아문명에서 생긴 불에 대한 경배(유일신에 제사할 때, 숭배까지는 아니지만 불을 신성시하며 제사때 이용하는 조로아스터 敎의 일부 의식)나 인더스문명의 등불걸기 풍속[인더스문명의 브라만교.힌두교 풍속으로 보여지며 나중에 브라만교에 반기를 든 (창조주 경시) 부처의 불교의 등불걸기 풍속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움]등은 황하문명의 중국처럼 고대 문명을 가진 주변 국가들의 풍속으로 전통적인 중국 유교에 혼합된 외래 풍속일 가능성을 배제할수는 없습니다. 등불걸기가 수천년 황하문명과 殷周시대의 고유 풍속이 아니라고 한다면 漢나라때 외래풍속을 수용한것에 해당되며, 유교에 녹아서 수천년동안 유교화 된 부차적인 외래풍속이라고 보면 맞겠습니다.    

 

* 필자 주 14-2). 조로아스터교

 

조로아스터(Zoroaster)가 이란 북동부에서 제창한 종교. 그 주신 아후라 마즈다의 이름을 따서 <마즈다교>, 또는 그 성화를 호지(護持)하는 의례의 특질에 의해서 <배화교(拜火敎)>라고도 하며 중국에서는 현교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조로아스터의 활약시기에 대해서는 기원전 2천년기 중엽부터 기원전 7~기원전 6세기라는 설이 있는데 정설은 없다.... 
조로아스터의 교설은 당시의 다신교를 아후라 마즈다를 최고신으로 하는 윤리적 일신교에 통합하려는 것이었다....

 

.출처: 조로아스터교(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 필자 주 14-3). 집집마다 양초나 등불을 켜놓고 불꽃놀이를 하는 힌두교의 불(light)의 축제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원소절의 전설"에서 생긴 폭죽, 연기, 빨간등전설도 있으므로, 이를 배제하지 말아야 할것입니다(天帝와 연결된 중국 고유의 오래된 전설이라 불교가 전해지면서 형성된 등불걸기 풍속에 비할바가 아닙니다). 황하문명 중국의 전통이 인도로 전파되었을 가능성도 있고, 인더스문명 인도의 등불걸기 풍속이 한나라로 흘러들었을 가능성이 모두 존재합니다.   

 

.디왈리

 

디왈리(Diwali)는 겨울의 파종기를 맞이하는 제사로, 상인들에게는 신년의 제사이기도 하다. 집집마다 양초나 등불을 켜놓고 불꽃놀이를 하는 힌두교의 불(light)의 축제이며 선물을 교환하였다. 10월~11월 초승달이 뜨는 날에 행해진다....

 

.출처:인도의 주요 종교 축제(인도 개황, 2010.6, 외교부)

 

* 필자 주 14-4). 神的인 五帝시대이후 殷周시대와 春秋戰國시대를 거치며 더욱 체계화되고 漢나라때는 諸子百家(유교나 도교,음양가,법가등)중 중국의 國敎로 채택되어, 始原儒敎부터 시작해서 수천년동안 하늘天,日月,山川의 神, 祖上神,先聖(聖人 임금)을 모셔온 유교! 다른 4大문명처럼 多神敎 종교였는데, 중국전통이 워낙 강력해 부분적으로만 외래문명을 소화하고 始原儒敎의 多神敎(宇宙의 본체이신 太極과 연계된 인간창조주 하늘天을 최고신으로 하며 하위에 山川의 神, 祖上神등 여러 神이 있음)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선발 종교 유교이며, 4대문명의 多神敎에 이어 형성된 唯一神교는 후발로 형성된 사상임. 여하튼 종교적 본질에서 벗어나 漢나라나 그 이후에 생겼다는 등불달기등의 풍속으로 타 외래종교가 독자적으로 세를 형성할 수 있는것은 아님. 유교를 國敎로 하던 漢나라 명제당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인더스문명에서 형성된 주변국들의 문화.정치.종교.언어.군사력등에 서로 영향받으며 인더스문명에서 유래된 브라만교식(나중에는 힌두교로 됨).불교식으로 등불을 달았다고 하는 전설도 있지만, 불이나 폭죽.연기.등불같은 文物은 불교의 성립이전 황하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문명,인더스문명에서 형성되었던 사례가 있어서 등불달기 전설 하나만 가지고 불교관련 등불전설을 사실로 인정해 주기는 아주 어려움. 중국은 고유신앙인 天숭배(天帝,上帝등 의인화 된 天도 天人合一說로 보면 초월적 天의 일종이심)와 관련되어 神鳥를 죽인후 화를 피하려던 "원소절의 전설"이 전설중에서는 가장 중국적이며 天帝(上帝,天)를 숭배해오던 중국 유교전통에 맞는 유교적 전설이라 판단됨.

 

* 필자 주 14-5). 불과 관련된 중세 철학적.자연과학적 陰陽 五行說. 필자가 보기에는 기존의 유교 경전 위주 신앙체계와 약간 다르게 宋나라때 철학적.과학적으로 해석을 붙여 추가적으로 보완.형성된 이론으로 판단됨.  필자가 파악한 이 이론의 특징은 황하문명 유교의 오랜 숭배대상이신 초월적 하느님(天)과 종교적인 분리시 우주론.철학적.과학적인 해석이 가능한 이론이 될 수도 있는 이론임. 대략적으로 宇宙의 본체인 太極이 먼저고, 그 다음 陰陽(햇볕 기준)이 구분되고 陰陽에서 五行이 생기고, 陰陽五行이 만물을 만들어낸다고 파악하는 철학.과학론의 일종으로 보여짐. 철학.宇宙論.자연과학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다소 철학적인 이 후발이론에 치중하면 초월적 존재이시며 유교경전의 오랜 숭배대상이신 하느님(하늘天, 인간 창조주 天)의 일부분인 天空을 天으로 파악할수도 있으므로  상당히 주의해야 할것임.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의 설명대로 "의미상으로는 선진유학의 천(天) 개념과 연관성을 가진다"는 태극에 대한 설명을 염두에 두고 기존의 신앙체제를 이해하면 적절하다고 할 수 있음

 

아래 설명중 중국과학에서 불(火)은 五行의 하나로 오원소라고 할 수 있다 함.      

 

...음과 양은 처음에는 언덕의 양지쪽과 음지쪽을 가리킨다는 말에서 나왔으며, 기원전 1세기 중반에 짝진 관계를 설명하기위한 이론적 장치로 만들어 졌다. 오행(五行, wu xing)은 금속(金), 나무(木), 물(水), 불(火), 흙(土)으로 구성이 된 것으로 오원소라고 할 있고, 오원소로 모든 사물관계분석을 하였으며, 물질의 기질(基質)로서도 대단히 강조하였다. 음양오행변화는 기원전 3세기의 오경의 하나인 서경(書經)에 언급되어있고, 기호적 이용이 기술되었다. 육경(六經, liu` ging)에서는 수비학적인 분류의 기준이 나와 있고, 팔괘(八卦, bà guà)는 점을 보는데 이용되었다....

 

.출처: 중국과학[Chinese science, 中國科學] (과학사사전, 2011.2.1, 이호중)

 

* 필자 주 14-5-a). 태극(太極)에 대한 설명.

 

≪주역≫ 계사(繫辭)의 “역(易)에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 : 음양)를 낳는다.”고 한 데서 유래했지만, 의미상으로는 선진유학의 천(天) 개념과 연관성을 가진다.

역의 우주관은 역에 태극이 있고 여기서 음양→4상(四象)→8괘(八卦)로 전개되는데... 

 

. 출처: 태극[太極]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필자 주 14-5-b) 선진유학에서의 선진의 의미.

 

先秦. 문자상으로 보면 진나라 이전인데, 역사적으로는 殷(商)나라부터 秦나라 이전까지로 해석됨. 夏나라는 잘 발달된 중앙집권적 국가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없는 시기라 애매함. 표준 국어대사전에서는 선진(先秦)시대를 다음과 같이 보고 있음.

 

- 다 음 -

 

춘추 전국 시대 달리 이르는 진나라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 이전의 시대라는 뜻이다.

 

 

* 필자 주 14-5-c). 태극과 음양 오행과의 철학적 관계.

 

태극.

 

우주의 본체(本體). 천지(天地)가 아직 열리지 않고 음양(陰陽)의 2기(二氣)가 나누어져 있지 않을 때 단 하나의 존재. 『역』(易)속에서 '태극→양의→사상→팔괘'(太極→兩儀→四象→八卦)라는 구조를 갖고 등장한 것이 최초이다. 송(宋)대의 주염계(周濂溪)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는 '태극→음양→오행→만물'(太極→陰陽→五行→萬物)이 되어 자연철학의 체계로 정리된 구조가 되었다....

출처:  태극[太極]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임석진 외

 

* 필자 주 14-5-d). 성리학의 태극설.

 

성리학의 태극설

 

태극이라는 말은 성리학 이전에도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데, 그것에 의하면 태극을 만물의 근원, 우주의 본체로 보고 “태극은 양의(兩儀:음양)를 낳고, 양의는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은 팔괘(八卦)를 낳고 팔괘에서 만물이 생긴다”고 하였다. 이 우주관을 계승하고 여기에 오행설(五行說)을 가하여 새로운 우주관을 수립한 것이 북송의 유학자 주돈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이다. 《태극도설》은 만물 생성의 과정을 ‘태극―음양―오행―만물’로 보고 또 태극의 본체를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란 말로 표현하였다. 그 본체는 무성무취(無聲無臭)한 것이므로 이를 무극이라 하는 동시에 우주 만물이 이에 조화(造化)하는 근원이므로 태극이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주자는 이것을 해석하여 태극 외에 무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여...

 

여기서 주자는 천지도 하나의 태극이요 만물 하나하나가 모두 태극이라 하였고, 이 태극에서 음양으로의 이행(移行)은 태극의 동정(動靜)에 의하는 것이며 동정은 곧 음양의 두 기운을 내포하고 있어, 만물의 근원적인 생성(生成)이 전개된다고 하였다.

 

. 출처:  성리학의 태극설(두산백과) 

 

. 필자의 의견입니다.

성리학 이전에도, 예기(禮記)의 예운편(禮運篇)에는 예의 근원을 대일(大一)에 있다 하고, 이 대일에서 천지·음양·사시(四時)가 생성한다고 하였습니다. 경전의 大一은 합성하면 天이 됩니다. 천지.음양.사시의 생성전에 인격天의 최고 하느님으로서 天(大一)이 계셨고, 예의 근원이신 하느님(天)께서는, 자연天개념의 태극과 연계되어, 시경(詩經)에서 만물의 영장이 되기위한 조건으로서 禮를 배워야 되는 만 백성을 창조(天生蒸民)하셨습니다. 그 후에 공자님을 선택하시어, 天命.天德을 공자님이 부여받으셨다고 스스로 밝히게 하시고, 하늘에 죄 지으면 빌곳이 없다고 가르치시게 하여, 하느님(天)의 예(禮)를 벗어난 인간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유교경전 예기 예운편에 나오는 대일(大一)은 天의 합성으로 연결되는 모습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천(天)’이라는 글자 속에 이미 ‘대(大)’라는 사람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서술하고 있습니다. 모든 서술이 필자와 동일한 사상인것은 아니지만, 해당부분에 대해 필자도 동감하고 있습니다. 

 

한편, 시경(詩經)에서는 천생증민(天生蒸民:하늘은 만백성을 낳으시고)을 통하여, 하느님(天)의 초월적 권위가 인간에게 내재함으로써 인간과의 관련성이 분명하게, 경전적 해석으로 드러납니다. 공자님이 유교 경전에서 강조하신 예(禮)는 하느님(天)이 공자님에게 부여하신 천명(天命), 덕(天德), 하늘에 죄 지으면 빌곳이 없다는 공자님의 경외심을 기반으로, 공자님이 가르치신 인의예지신등의 형태로, 동아시아 유교인들이 걸어야 할 의무를 부과하신 것입니다. 공자님은 시경(詩經)을 편집하셨는데, 이전부터 전해지던 天生蒸民을 객관적으로 전승하셨습니다. 동아시아 유교인들은 수천년동안, 초월적 절대자이신 하느님(天)이 창조하신(天生蒸民) 피조물인 인간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인간이 아닌 미물이 되지 않기 위해), 하느님(天)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며, 공자님도 숭배해야 하는 제사장[역대 중국 天子들이 제천의식 최고 제사장임. 대한제국의 경우 한국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 이 원처럼 제천의식 주관자가 제천의식의 최고 제사장임. 대보름.중추절때는 모든 유교도들이 직접 月神같은 하위신에 기도하는 특전도 있음]과 유학자[한국의 경우 天과 공자님 말씀을 가르치는 태학.국자감.성균관.성균관대 출신 정통 유학자]의 교육을 따라, 禮에 근거한 인간의 도리를 다해야 하는 책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길에서 벗어나 하느님께 대들거나 의심하고, 공자님께 불경하며, 여러가지 제천의식, 지신제사, 산천제사,조상제사, 부엌신 제사등의 신성성을 회피하는 금수.미물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동아시아 십수억명 유교도들은 여러 학교교육과 여러가지 명절.24절기,제사등을 통해 군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체험하게 됩니다만 쉽지 않은 길입니다. 평범한 유교도로만 살아도 인간의 길은 걷게 되는데,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하며, 명절.제사.24절기등의 의식, 학교교육의 원칙을 지키면 유교도로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고, 유교의 가르침대로 유교제사와 예법을 행하면서, 선한 삶을 살아왔다면, 죽어서는 혼이 하늘로 올라갑니다.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성립된 공자님의 유교가 수천년동안 동아시아 국가들의 보편적.객관적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해오고 있는데, 하느님(天)과 공자님의 禮를 거부하고 다른 길을 찾거나, 거부하며 대든다면, 그 때부터 그 피조물은 하느님(天)과 예(禮)에서 벗어나게 되어, 인격天께서 부여하신 하느님의 기품이 상실된 피조물로, 하늘(天)로 그 혼이 승천할 자격을 잃게 됩니다. 인격天의 피조물자격을 상실당하고, 인격天보다 하위개념의 창조자인 태극이 창조한 기품없는, 비인격적인, 피조물이 되어 허공을 떠돌게 됩니다. 한국은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가톨릭, 개신교)가 있는데, 일본이 항복하여 종교주권은 없어진 상태입니다. 미군정때 조선성명 복구령을 발효하여, 모든 한국인은 주민등록.호적에 유교국가 조선의  유교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해야 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으로 복구되었습니다. 불교국가 일본이나 불교는 원래부터 하느님.창조신에 대들어야 되는 Chimpanzee과의 부처를 받들어야 되기 때문에, 유교나 인도 힌두교(브라만교)는 불교를 배격하게 되었습니다. 불교는 원래부터 無君無父의 금수로 유교국에서 배척받았는데, 불교는 조상제사의 종교도 아닙니다. 다만 서유럽.중남미의 세계종교인 가톨릭은 유교의 하느님(天)이나, 天子개념(하느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 비슷하기 때문에, 하느님(天)에 대한 불경죄는 지을수 없는 외래종교임을 감안하여, 유교의 틀안에서, 유교도로 살면서, 종교주권이 없는채로 종교의 자유는 가질 권리는 있다고 판단합니다(가톨릭이 유교처럼 하느님族인건 알겠다는 의미입니다).  

 

 

* 필자 주 14-5-e). 필자는 북송 주돈이의 태극도설을 중세시대 새로 생겨난 자연과학적.철학적 사유체계로 인정하지만, 주자가 "천지도 하나의 태극이요 만물 하나하나가 모두 태극이라 하였고"란 해석에서 보여지듯이 유교의 오랜 숭배대상인 天[인간창조주 天의 모습에, 유교 경전 곳곳에서 보여지는 제사.숭배대상인 초월적.自然天 성격의 天]과 太極은 분리대상이 아니라 연관지어서 이해해야 할 초월적 존재(인간 창조주시며 제사.숭배대상 天, 우주의 본체 太極)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天은 인간들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던 넓고 높게 펼쳐진 自然天(그러나 인간이전의 존재)의 모습과 후세의 인간들 대부분은 肉眼으로 확인할 수 없던 形以上學的인 인간창조주 天의 모습으로 우리들은 유교 경전에서 배우고 익혀왔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天의 존재는 先賢들의 가르침에서 시작하여 후세인들은 祭祀와 교육 경험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形以上學的 창조주의 모습이십니다. 이러한 창조주의 모습을 易經의 가르침인 太極(태극은 음양-->사상-->팔괘를 낳는다는 가르침)에서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데,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던 形以上學的인 창조자(天의 하위개념으로 연계됨, 인간과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天보다 무언가 창조능력이 모자라는 天다음의 창조자)의 모습중 하나입니다. 太極(天의 하위개념으로 天과 연계됨)은 인간창조주 天의 형이상학적인 특징처럼 당장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던 특징을 가졌지만, 후발로 창조된 인간이 유교경전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배우고 사유하고 경험하면 形以上學的으로 깨닫게 되는 창조자(인간을 구체적으로 창조하신 天은, 大一의 형태로 태극의 형태로, 천지.음양.사시의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기도 함)임은 분명하게 다가옵니다. 이런 형이상학적인 창조주의 모습을 가지신 최고 하느님 天(태극과 연계, 인격天의 형이상학적 기품과 함께, 천지.음양.사시를 통해 우주만물을 창조하심)과 太極(天과 연계, 天과 같은 의미의 大一에 비해 인격天의 존재감은 구체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天다음의 초월적 존재)은 결국 같은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할 형이상학적 창조자의 모습이십니다.     

  

 

* 필자 주 14-6). 불과 연기에 관련된 유교의 祭天儀式인 燔祭. 禮記 祭法에 나옴. 有虞氏부터 시작되는 제사로, 夏后氏, 殷人, 周人이 거론됨. 有虞氏의 有는 별 의미가 없으며, 虞는 舜(순임금)의 나라이름이라고 禮記 譯解者 權五燉 선생은 설명. [新譯 禮記/홍신문화사/권오돈 역해/2003.10.30]의 463페이지 참조.

 

燔柴於泰壇祭天也.

 

나무를 단위에 쌓고 그 위에 옥과 생을 놓고서 함께 태워 그 기로 하여금 하늘에 이르게 함은, 天神을 제사지내는 법이다. 상기 新譯 禮記의 해석임.   

 

* 필자 주 14-6-a).  禋祀

 

禋祀

 

희생물을 태워 연기로써 드리는 제사. ≪주례≫의 정현(鄭玄)의 주(注)에 따르면, 인은 연(煙)과 같은 의미로서 제사의 대상은 호천상제(昊天上帝)•일월성신•풍사•우사 등임. 이 제사는 동지에 원구단에서 천자가 하늘에 드리는 천자의 제사임. 제사방법은 땔나무를 쌓고 그 위에 희생물을 놓은데 희생으로 이용되는 것에는 소•옥•비단 등이 포함되었음. 인사는 주나라 사람들이 냄새를 숭상하여 연기로써 하늘에 제사한 것에서 유래하여, 이후 천자의 제천의식으로 정착됨. 연기로 하늘에 제향을 드리는 이유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물질이고, 또 하늘은 위에 있으므로 연기를 통해 하늘을 감응시킨다는 의미가 있음. 주나라 이전에 은나라 사람들은 냄새를 숭상하여 냄새를 가지고 하늘에 제사하였다 함. [유사어]번제(燔祭).

 

. 출처: 인사[禋祀]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3.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필자 주 14-6-b). 불과 연기로 제사하는 번제형태인 위의 禋祀 설명은 殷나라나 周나라 정도로 그 시기를 한정했는데, 有虞氏,夏后氏가 언급된 禮記 祭法 문구에 우선권을 두어야 할것임. 禮記에 나오는 始原儒敎의 燔祭는 이후 조로아스터교나 유태인의 유일신교.기독교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으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燔祭가 황하문명.유교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음.    

 

중국이나 한국에서 天子제도의 수용이후에 祭天儀式을 지낸다면 국가차원 天壇을 쌓고 제사드리는 天子의 자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여야 할것(중국 天壇이 유교 세계에서는 최상의 자격). 그러나 天子 명칭이 없는 상태에서, 殷周시대 이전과 殷周시대 殷人.周人의 후예들이 형성한 燔祭가 있다면, 天壇을 쌓지 말고, 天子의 의관을 입지말고, 그 희생물도 天子와 같은것을 쓰지 말아야 하고, 祭文도 天子의 祭文을 쓰지 말아야 할것임. 다만 有虞氏,夏后氏.殷人.周人으로서 天子 명칭이 없는 原始的 權原 있다면 그 신분에 맞게 제사지내야 할것.  

 

* 필자 주 14-6-c). 先史時代 인류의 불의 사용. 중국 전설에서 수인씨의 불사용 

 

 

상식적으로는 나무를 마찰하여 불을 얻을때 연기가 발생하지요. 불과 관련 고대의 수인씨(燧人氏)에 대한 전설이 있습니다. 

 

수인씨[[燧人氏]

  • 출생-사망? ~ ?
  • 국적고대 중국

... 수(燧)는 불을 얻는 도구로, 수인씨가 나무를 마찰하여 불을 얻어 음식물을 요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출처: 수인씨[燧人氏] (두산백과)

 

* 필자 주 14-6-d). 유교의 五經 중 하나인 예기에 대한 설명.

 

아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의 설명을 참조하시면서 이해바람. 春秋시대 말기 사람인 공자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戰國시대이후 공자님의 가르침, 학설, 스승과 나눈 대화등을 문자화시키면서 전승된 가르침을 漢나라때 전문적으로 예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나타나면서 鄭玄의 시대에 예기로 거론한게 처음이라 함. 禮記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 전에는 공자님의 제자들이 天(太極과 연계된).日月.星辰 및 帝에 대한 교육을 시키면서 戰國시대의 五帝설,그 이후 三皇설이 형성된 것 같음.    

 

. 예기[禮記]

 

오경(五經)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예경(禮經)이라 하지 않고 ≪예기≫라고 한 것은 예(禮)에 대한 기록 또는 주석(註釋)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예기≫의 성립에 대해서는 그 설이 일정하지 않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공자는 삼대(三代 : 夏·殷·周) 이래의 문물 제도와 의례(儀禮)·예절 등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하는 것을 스스로의 책무로 삼았고, 제자들을 가르침에 있어서도 예를 익히고 실천하는 데에 역점을 두었다. 공자 사후 각 국으로 흩어져 공자의 가르침을 전파한 제자들에 의해 예에 대한 기록이 쌓여 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생전의 스승에게서 들은 이야기, 학설, 스승과 나눈 대화 등을 문자로 정착시켰고,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전해 주기도 하였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제자의 제자, 또는 그 문류(門流) 후학들에 의해 기록된 예설(禮說)들이 늘어나서 한(漢)나라에 이르러서는 200여 편이나 되었다.

그리고 이 때쯤에는 전문적으로 예학(禮學)을 연구하는 학자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대덕(戴德)·대성(戴聖)은 흩어져 있는 예설들을 수집, 편찬한 사람들이다. 대덕은 자를 연군(延君)이라 하는데 대대(大戴)라 일컬어지며, 대성은 자를 차군(次君)이라 하는데 소대(小戴)라 일컬어진다. 대덕과 대성은 숙질간으로 대덕이 대성의 작은아버지가 된다.

두 사람 모두 한나라의 선제(宣帝) 때 학자인 후창(后倉)의 학통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한나라의 뛰어난 학자인 정현(鄭玄)의 ≪육예론 六藝論≫에는 “지금 세상에서 행해지고 있는 예는 대덕과 대성의 학(學)이다. 대덕은 기(記) 85편을 전하였으니 곧 대대례(大戴禮)이고, 대성은 예 49편을 전하였으니 곧 이 예기(禮記)다.”라 하여, 예기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대덕의 85편은 대대례기, 대성의 49편은 소대례기로 일컬어졌다. 정현이라는 큰 학자가 나와 ≪주례 周禮≫·≪의례 儀禮≫와 함께 소대례기에 주석을 붙여 삼례(三禮)라 칭하게 된 후 소대례기가 ≪예기≫로 행세하게 된 것이다.

 

.출처:  예기[禮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필자 주 14-6-e). 수인씨나 복희씨 및 기타 여러 인물관련, 三皇이론 형성이전에 이미 五帝설이 형성되었고 五帝는 유교 경전 禮記에 나오는 月令부분으로 형성된 학설입니다(물론 예기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전에는 공자님의 제자들이 여러가지 문서로 전승시켰겠지요). 공자님의 자료 전승과 가르침이후 후세의 문필가들이 五帝와 삼황설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모두 殷周시대이후의 春秋戰國시대이후에 비롯된 일입니다. 유교 경전이 五帝나 三皇이라 언급하지 않는한 오제와 삼황관련 여러가지 학설과 가설, 전설, 민화등은 어디까지나 경전말씀은 아닐것입니다. 五帝나 三皇에 대한 神的인 능력과 형상묘사등도 유교 경전과 관계없는 한 전설.가설.민화수준으로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나 유교의 先賢들이 나중에 해석해놓은 여러 이론은 後學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함은 맞습니다. 五帝.三皇관련 내용은 중국에서 출판된 유교 경전과 서적을 참고로 하여야 국내의 시각과 대조하면서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禮記 月令부분에 나오는 五帝(후세의 가설)는 사마천이 믿을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다시 정리한 五帝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禮記 月令으로 추정할 수 있는 五帝는 太皋, 炎帝, 黃帝, 少皋, 顓頊입니다. 五帝.三皇(삼황 오제)에 대한 견해는 견해들이 너무 다양하여 백과사전이나 사전등도 제 각각 다르고, 확정된 이론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도 아직 없는 상태인데, 유교경전 예기의 오제가 가장 정확하다고 판단합니다.

 

* 필자 주 14-6-f). 유교 경전인 시경.서경.역경.예기.춘추의 내용과 달리 史家, 전설을 만들어낸 시중의 서적, 이런 전설을 신봉하여 믿는 후세의 여러 문필가들에 의하여 五帝와 三皇의 내용은 완전히 다르게 변형된 부분도 있기때문에 유교 경전을 기본으로 하고, 후세의 유학자들이 해석한 해설서등을 참고자료로 하면 좋겠습니다.  원래 이 전설은 다양한 신화 ·전설이 혼입된 것이라고 합니다. 五帝와 三皇說보다 먼저였고 중요한 제사대상은 유교 경전인 禮記로 보면 天(太極과 의미가 통하는 形以上學的 인간창조자), 日月, 星辰같은 自然天(초월성 가짐)및 自然天과 결부되는 인간창조주 하늘天이십니다.   

     

 

* 필자 주 14-6-g).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불사용: 조로아스터교의 불사용 사례 참작할 것

 

* 필자 주 14-6-h). 인더스 문명의 불사용

....인더스는 메소포타미아의 말린 벽돌과는 달리 전 지역에서 불에 구운 벽돌을 사용했다

 

.출처: 인더스문명[Indus civilization] (고고학사전, 2001.12, 국립문화재연구소)

 

 

* 필자 주 14-6-i). 인류의 역사와 관련, 세계 4대 文明이나 에게문명만큼 학설로 확실하게 정립된 이론도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世界史的 문명형성에 대응하여 새롭게 일어난 학설도 있습니다. 先史時代에 일어난 추상적인 일을 추정하면서, 進化論을 차용하여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기타 인간의 진화론을 주장하는 새로운 학설도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先史時代의 알 수 없는 일을 추정한 이론으로 끝나야 할 것입니다. 인류는 이 진화론 이전에 너무 오랫동안 여러가지 문헌에 의하여 하늘天(하느님)의 인간창조(유교), 하느님의 인간창조(기독교)를 定論으로 교육시키고, 經典에 수록하여 제사(예배)하고, 교육시켜왔기 때문에,인간관련 여러가지 진화론적 假說은 수용해 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先史時代의 일을 假說로 추정하여 학설로 계승시키는 행위보다는 유교 경전이나 기독교 경전, 그리스.로마신화, 브라만교 경전(힌두교 경전)등을 기초로 창조주와 인간 및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를 가르쳐온 전통이 오히려 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것 같습니다. 인간은 形以上學이 있기 때문에 形以上學이란 합리성으로 초월적 神의 존재를 인지하고 제사하고(경배하고) 교육시켜왔습니다.    

 

 

* 필자 주 14-7). 폭죽에 대한 중국 자료와 전설. 세계의 4대 발명품인 화약은 이렇게 폭죽에서 비롯된 듯 합니다.

 

폭죽[鞭饱]

 

...본래 폭죽은 말 그대로 대나무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종름(宗懍)이 쓴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따르면, 정월 1일 마당에서 대나무를 터뜨려 曝竹 산조(山噪)와 악귀를 쫓았다고 한다. 산조는 깊은 산 속에 사는 뿔이 넷 달린 괴수로서, 매번 춘절이면 나타나서 가축과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산조가 밝은 빛과 폭발음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안 사람들은, 대나무를 태워 빛과 폭발 소리를 내어 산조의 침입을 예방 하였다. 이후 춘절전야가 되면 폭죽을 터뜨리는 풍속이 생겨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폭죽은 당송대(唐宋代)를 거치면서 대나무통이나 종이통에 화약을 말아 넣고 터뜨리는 모양으로 변하였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각양각색의 폭죽으로 발전하였다. 한편 폭죽은 축하 분위기를 고취시킨다는 긍정적인 기능 이외에 환경 오염과 인명 피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출처: 폭죽[鞭饱] (중국, 중국인 그리고 중국문화, 2011.3.3, 다락원)/공상철

 

* 필자 주 14-8). 등불. 중국의 경우 촉대로 살펴봄.

 

촉대[燭台]

 

1. 옛날 중국에서는 등(鐙, 현재는 燈)이라고 썼다. 전국~한시대의 청동제 유품이 있다. 촛불용과 등유용의 두가지로 대별되고 다같이 작은 받침 아래 지주가 있다...

 

2. 서양에 있어서 등유용 조명기구의 역사는 오래되어, 신석기시대에는 돌이나 테라코타로 만든 접시모양의 램프가 각지에서 만들어졌다. 그리스 · 로마 시대에는 기름불을 밝히는 등잔이 실내장식품의 성격을 띠었으며, 청동제 칸델라브룸 등 예술적으로 뛰어난 것이 많은데 폼페이에서 출토된 것 중에 좋은 예가 있다. 중세 이후, 양초의 보급에 따라 양초를 세우고, 녹은 초를 받는 부분과 그것을 지탱하는 대, 또는 브래킷 (bracket[영])으로 된 여러가지 촉대의 기본형이 이루어졌다. 

 

* 필자 주 14-9). 유럽쪽은 에게문명이 있습니다. 황하문명 中國에 殷周같은 체계적이고 강력한 고대국가가 있었다면, 서양은 로마제국이라는 강력한 국가가 있어서, 나일문명의 이집트지역,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영향받았을 서아시아 일부를 통치하며 지배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 출처: 촉대[燭台]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 필자 주 14-10). 다른문명도 있겠지만, 불이나 연기는 황하문명 중국의 역사와 전설,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물이며 중국적인 것이며, 폭죽도 그렇습니다. 燈의 경우 불을 바탕으로 戰國시대~漢시대의 청동제 유품이 있는걸로 보아서 後漢 明帝(유교를 國敎로 하던 漢 무제 이후, 후한 명제는 공자님의 옛 집까지 찾아가 공자님제사를 치르던 황제인데, 공자님 제사는 歷史입니다. 주변문물과 교류하던 漢나라 당시 불교를 믿었다는 전설도 있지만, 관심이 없었다는 의견이 있는데 전설은 전설로 끝나야 하지, 역사가 되어서는 않됩니다)시대 이전에 이미 戰國時代부터 등이 있었다고 역사는 밝히고 있습니다. 後漢 明帝시대 관련지어 등불전설하나 때문에 元宵節을 불교와 연관시키는것은 수긍하기 어렵고, 오히려 공자님의 옛 집까지 찾아가서 제사드리던 역사가 正史로서의 효력을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명제가 나중에 불교를 믿었다는 전설도 있지만, 전설일뿐  신빙성이 없습니다.     

 

* 필자 주 14-11). 文廟제사는 釋奠이라고도 하는데 文宣王(先聖으로 추존되신 공자님에 대한 또다른 王 호칭. 文宣王 추증이전에 공자님은 先師의 위치에 계셨고 先聖은 그 이전의 聖人 임금들인 五帝나 요.순.우.탕.문.무.주공같은 聖人 임금일수도 있음. 周公만 공자님 이전의 先聖으로 볼수도 있음)이신 공자님과 四聖등에 대한  제사입니다. 上帝(神的 특징)나 聖人임금의 대명사인 요.순(약간 神的 특징)임금 및 우.탕.문.무.주공 같은 聖人임금들이 공자님 이전의 聖人 임금들이라 할 수 있으며, 어떤 임금은 神的 특징을 가지셨습니다. 교육적인 先聖이 아니라도 聖人 임금들의 선발자이시고 추앙되는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공자님은 이전의 초월적 존재이신 太極(宇宙의 본체)의 易經(문왕.무왕.공자님이 중요시하심)및 다른 경전과, 天(太極과 연계됨),上帝, 殷.周시대의 제사와 가르침을 전승시켜 주신 분이신데, 본인이 神的인 분이 아니며 후학들을 교육시키셔서 이 점 때문에,현대에 들어 세계의 4대 聖人으로 거론되기 시작하신 분이십니다. 이전에는 他 종교에도 이런 세계사 개념이 없었습니다. 현대에 들어 철학자인 야스퍼스가 일본의 사상도 참작하여 철학적인 4대 聖人을 언급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세계사와 종교적으로 보면 부처는 인더스문명의 브라만교에 대항해 일어난 후발 사상가로 창조주를 밑에서 가르치는 無神論的인 철학자.사상가에 가깝습니다. 부처의 창조주에 대한 도전사상은 잘 모르던 시절에는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전에 철학적.사상적 聖人으로 거론되기 시작했어도 초월적 절대자인 하느님(하늘天).神을 우선시하는 神을 숭배하는 종교적 입장으로 보면 無神論的 사상가라고 필자는 판단합니다. 

 

 

 

* 필자 주 14-12). 그 때 하늘의 범천(梵天)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겠다는 생각을 알고,

<아! 이 세상은 이제 멸망하겠구나.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智)--- --대정각(大正覺)을 여신 부처님의 마음은, 중생에게 가르치심을 설하는 일에 뜻이 없구나!> 라고 생각하고, 얼른 부처님 앞에 나타나서 무릎을 땅에 대고 꿇어 앉아 지극정성으로 부처님께 합장하고 간청하였습니다.

 --높으신 세존이시여 ! 원하오니 가르치심을 설하시옵소서. 선서(善逝)이시여, 가르치심을 설하시옵소서. 이 세간에는 티끌에 더렵혀진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이 가르침을 듣지 못한다면 쇠퇴하고 멸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간에는 가르치심을 이해하는 많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갈타국에는 부정한 자에 의하여 펴진 부정한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이제 부처님께서는 아무쪼록 그 감로(甘露)의 가르치심을 열어 주시옵소서--라고 앙청하였습니다.

 

. 출처: http://www.beophwa.com/bonmun/bonmun-002-(1).htm

 

* 필자 주 14-12-a). 하늘의 제석, 도리천왕이 부처님께 귀의하고 나귀 몸을 벗다...

 

. 출처

http://www.mahazen.org/technote6/cokd4.php/data/board/freeboard/file/1/b324334e_%E9%97%82%E5%82%99%E8%83%B6%E9%8D%98%D1%87%E6%82%BA%E9%8A%8A%E3%83%83%E5%93%84%EE%9D%9C%E9%88%A7%EE%84%84%E5%B9%83%E5%A7%97%E2%82%AC%E5%AE%95%E5%A0%95%E5%A6%B8%E9%94%9D%E5%8B%AD%E6%B3%8A%E7%BC%82%E4%BD%BA%E5%81%93%E9%8D%8E%E6%8A%BD%EE%94%96%E9%8D%9B%EE%86%BE%E7%8F%B6%E9%96%B8%E6%84%B5%E4%BA%9E%E5%A6%AB%EE%88%9E%E6%9F%A1%E6%BE%B6%E5%BA%A1%E5%8A%B5%E9%90%8E%E6%B0%AD%E5%A3%86%E7%BB%B1%E6%92%B3%EE%85%BC%E9%8D%9B%EE%88%98%E2%82%AC%E5%B2%B2M.doc?board=cokd4&page=1&sort=comment&shwhere=subject&command=body&no=152

 

* 필자 주 14-12-b). 제석천이 부처 공양

 

.출처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4&cp_code=cp0433&index_id=cp04330490&content_id=cp043304900001&search_left_menu=2

 

* 필자 주 14-12-c). ...'삼계(三界) 가운데 인간의 고액(苦厄)을 구제하는 이는 오직 부처님만이 계실 뿐이다.' 
  제석천은 부처님께서 계신 처소로 갔다. 그 때 부처님께서도 좌선을 하면서 보제(普濟)삼매에 들어 있었다. 제석천은 예를 드리고는 땅에 부복해서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법·성중(聖衆)의 세 가지에 귀의하였는데,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그의 목숨이 홀연히 떠나면서 문득 도예공의 집에 이르러 당나귀 어미의 뱃속에 들어가 새끼가 되었다.... 

 

http://www.dochang.pe.kr/ymain/board.php?board=etc31&command=body&no=51

 

 

* 필자 주 14-13). 先聖에 대한 개념 및 출처.

 

선성[先聖]

 

①옛 성인(聖人). ②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아들인 주공(周公)을 일컫는 말. ③당(唐) 나라 태종 이후의 공자(孔子)를 일컫는 말.

 

.출처: 선성[先聖]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3.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필자 주 14-14). 시경.서경.역경 및 예기.춘추등에는 공자님 이전의 始原 儒敎와 공자님의 사상(편집)이 같이 기록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필자 주 14-15). 후한(後漢)의 명제(明帝:재위 57∼75)는 공자의 옛 집까지 가서 공자와 72제자를 제사한 기록이 있으며, 당(唐)나라에서는 628년 공자를 선성(先聖), 안회(顔回)를 선사(先師)라 해서 제사를 지냈다. 739년에는 공자에게 문선왕(文宣王)의 시호가 추증되었고, 명(明)나라 초기에는 대학에 묘(廟)를 설치하고 대성전(大成殿)이라 하였다.

.출처: 석전[釋奠] (두산백과)

 

* 필자 주 14-16). 위 부분 後漢 明帝의 공자님 제사는 歷史입니다.  

 

e). 시사 상식사전의 원소절 설명.

 

원소절

  • 중화권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날을 '등불의 날' 혹은 '원소절(元宵節)'이라고 부른다. 

    중국, 대만, 홍콩 등 중화권에서는 불꽃놀이나 등불놀이와 함께 팥이나 깨같은 소를넣은 둥글고 작은 새알 같은 음식을 먹는 풍습이 보편화돼 있으며 춘절(구정) 직후의 최대 명절이다. '등불의 날' 행사는 통상 정월 대보름부터 며칠간씩 지속된다.

출처 중국시사문화사전 | 원소절

 

 정월대보름인 음력 1월 15일로 보름달을 감상하고 등불놀이를 하며, 원소(元宵) 또는 탕원(汤圆)이라   불리는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다.

 

. 출처: 시사 상식사전(박문각)

. 중국 시사 문화사전, 이현국, 2008.2.20, 도서출판 인포차이나.

 

 

f). 한국 국가기록원의 대보름 설명

 

정월 대보름은 가장 큰 보름이라는 뜻으로 음력 정월 보름인 1월 15일을 말한다.

대보름날은 달 숭배와 관련된 것으로, 이 날에는 개인과 집단을 위한 기복 의식이 치러졌다. 개인적인 기복 행사로는 부럼깨기, 더위팔기, 귀밝이술마시기, 시절음식인 복쌈이나 묵은 나물먹기와 달떡 먹기 등이 있다. 줄다리기·고싸움·돌싸움·차전놀이·동제(洞祭) 등은 농사의 풍년을 비는 주술적인 행위로 집단 기복 의식이었다.

예전 농경사회에서는 설날부터 정월대보름까지 보름동안 동네 웃어른을 찾아뵙고 세배 드리며 한해 농사를 준비하는 기간으로 보냈다. 설날은 개인적이며 가족 중심의 피붙이 명절임에 반해 대보름은 집단적이고 개방적인 마을공동체 명절이었다.

줄다리기, 차전놀이, 고싸움, 쥐불놀이 등의 절기놀이는 실생활에서 거의 사라졌으며, 문화예술축제 및 경연대회에서만 행해지고 있다. 정월 대보름에 행하는 의식 중에는 오곡밥, 약밥, 부럼 등 절기 음식만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g).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설명. 이 내용 말고 다른 내용관련, 어떤 부분은 필자와 맞고 어떤 부분은 맞지 않기도 하지만 대보름을 설명한 아래 사항은 도교나 불교로 덧칠하지 않아 인용함.

 

한국의 대표적인 세시명절의 하나.

 

상원(上元)이라고도 한다. 음력 1월 15일은 대보름, 음력 1월 14일은 작은 보름으로 불린다. 농사력(農事曆)으로 볼 때 이 시기는 대보름에 이르기까지 걸립(乞粒)을 다니면서 마을 전체가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이다가 농사철로 접어드는 때이며, 마을공동의 신격(神格)에 대한 대동의례·대동회의·대동놀이 등이 집중된 때이기도 하다.

작은 보름에는 수숫대의 껍질과 속대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잘라서 물감으로 채색한 뒤 벼·보리·밀·옥수수·콩·목화 등의 이삭 모양을 만들어 짚단에 꽂아 긴 장대 끝에 묶어서 집 옆에 세우거나 마구간 앞 거름더미에 꽂아놓는다. 이것은 낟가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해 오곡이 낟가리처럼 풍성하게 여물어줄 것을 바라면서 즐기는 행사였다. 이 행사는 그 유래가 매우 오래 되었으며 내농작(內農作)이라는 궁중의식으로 채용되기까지 했다. 음력 1월 15일 대보름에는 집집마다 약밥을 만들어 먹었으며 저녁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달맞이를 했다. 이날 밤 들판에 나가서 그해의 새싹이 잘 자라고 전답의 해충이 소멸되도록 쥐불을 놓았다. 아이들은 연띄우기·바람개비·꼬꼬대·실싸움·돈치기 등을 즐겼으며, 어른들은 다리밟기·편싸움·횃불싸움·줄다리기·동채싸움·놋다리밟기 등을 했다. 이와 같이 대보름날 밤에는 온 마을이, 때로는 마을과 마을이 대결하는 경기를 조직하여 집단적으로 즐겼다.

통명농요(通明農謠)가 전해지는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통명동 골마을의 1980년대 정월 대보름 행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보리기풍[麥祈風] :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보리 풍년을 위한 점치기이다. 각 가정마다 수수깡을 잘라서 보리 모양을 만든 뒤 이것을 거름 속에 꽂아두었다가 대보름 아침에 거두어 불사르며 거기서 나온 재를 모아둔다. 이 재를 봄보리 갈 때 뿌리면 보리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

② 보름밤 지키기:정월 열나흗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 하여 잠을 자지 않는다. 자는 아이가 있으면 눈썹에 쌀가루나 밀가루를 발라놓는다.

③ 찰밥과 묵은 나물:대보름날 새벽에 찰밥을 먹는다. 찰밥은 멥쌀·찹쌀·조·수수·보리 등 여러 가지 곡물을 넣어 지은 오곡밥인데, 찰밥에는 고사리·시래기·호박고지 등 묵은 나물과 콩나물 등의 나물이 곁들여진다. 대보름날 오곡밥을 지으면 먹기 전에 나물과 함께 성주·조왕·삼신·용단지 등 집의 주요 가신(家神)에게 먼저 떠올린다. 찰밥을 많이 먹을수록 좋다고 여겨 대보름날 '나무 아홉 짐과 찰밥 아홉 그릇 먹는다'는 말이 있다. 특히 자기집 찰밥뿐만 아니라 여러 집의 찰밥을 먹는 것이 좋다.

④ 부럼:대보름날 저녁에 부럼을 깬다. 밤과 같은 견과류를 딱 소리가 크게 나도록 깨문다. 부럼을 깨면 1년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고 치아가 튼튼해져서 건강한 한 해를 보낼 수 있다고 여겼다.

⑤ 귀밝이술:새벽에 찰밥을 먹은 뒤 맑은 술을 마신다. 아이들에게도 조금씩 마시게 하는데 이렇게 하면 귀가 밝아지고 눈이 잘 보인다고 믿는다.

⑥ 새쫓기와 모기날리기:농사철이 되면 참새 때문에 피해가 많으므로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새를 막기 위한 예방을 한다. 아이들이 논이나 들에 나가 "후여 후여" 하면서 새 쫓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집의 마당이나 논·들에 서서 모기 날리는 시늉도 한다.

⑦ 소밥주기[農占]:대보름날 아침에 찰밥과 나물을 키에 담아가지고 외양간에 가서 소에게 준다. 이때 소가 밥과 나물 중 어느 것을 먼저 먹는가에 따라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⑧ 달맞이:대보름날 저녁에 달맞이를 하기 위해 초저녁 달이 뜨기 전에 산이나 동산 등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이때 꽹과리·징·북 등 갖가지 악기를 동반한 농악패가 함께 올라간다. 보름달이 떠오르는 순간 농악대 중 상쇠가 악기를 울리면 달맞이하러 나온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숙이고 마음 속으로 소망을 빈다.

⑨ 달점[月占]:보름날 저녁에 떠오르는 달의 빛깔을 보고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달의 빛깔이 붉으면 가뭄으로 인해 흉년이 들고, 달이 허옇게 비추면 비가 많이 내려 풍년이 든다고 한다. 이밖에 달이 뜨는 위치에 따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

⑩ 불놀이:달맞이 하러 동산에 올라갔다가 불놀이를 한다. 깡통 속에 솔방울이나 관솔을 넣어 불을 지핀 뒤 깡통을 돌리면 불꽃이 원을 그리는 듯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⑪ 동제(洞祭)`: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제를 올린 후 크게 굿을 한다. 정월 대보름 밤이면 마을의 수호신인 골매기에도 제를 지낸다. 제를 지내기 전 골매기돌에 왼새끼 금줄을 치고 금줄 사이사이에 백지를 드문드문 끼워놓는다. 정월 대보름 낮에는 골매기 주변에서 농악을 울리며 한바탕 논다.

⑫ 귀신날:정월 열엿새를 귀신 달기날 또는 귀신날이라 한다. 이를 막기 위해 예방주술을 행한다.→ 명절

 

* 필자 주 15). 설날.대보름의 유래를, 고려 후반기 중 일연이 삼국사기(正史)를 모방.변작하여 지은 삼국유사(불교시각 野史)의 사금갑설화에서 찾는것은 아주 잘못된 견해들임.

 

. 사금갑설화 대체적 내용.

 

소지왕 10년(488) 정월 보름에 왕이 천천정(天泉亭)으로 행차하였다가 쥐가 사람의 말로 까마귀를 따라가라 하여, 기사(騎士)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하였다. 기사는 도중에서 돼지 싸움을 구경하다가 까마귀의 행방을 놓쳐 버렸다... 이런 설화임.

 

그러나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된 시기는  528년(법흥왕 15)으로 이 이전(488)에 일어난 유교나 도교, 음양가, 법가등 제자백가에서 비롯된 토착 신앙에서 생긴 설화를 고려 후기 중 일연이 정사인 삼국사기를 모방하면서 불교적 시각으로 변작한 내용일수도 있음.또는 설화 그대로를 기재하였다 하더라도,이 토착 설화를 나중에 불교인들이 중국 황하문명에서 파생된 유교 경전과 중국 역사서와 다른 견해의 후발 설화로 설날.대보름의 기원으로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에 등재하기는 무리가 따름. 신라시대는 외래신앙인 불교를 거부하며 이차돈의 죽음등이 있었음. 유교권의 큰 명절중 하나인 추석(중추절)을 보면 삼국사기에서 신라 제 3대 유리왕 때 시작되었다고 하니까, 추석등 유교명절의 정착은 한나라의 세계종교 유교가 동아시아에 널리퍼져서 추석도 유교 명절로 정착된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제천의식이나 일월신 숭배, 조상제사, 선성제사는 유교의 의식이지 불교와는 관계가 없는점도 참작하면 되겠습니다. 불교는 부처등과 그 주변인들을 섬기는 인도발  외래종교입니다. 한국에서의 설날 유래는 부여나 백제의 사례가 설날에 합당할것입니다. 신라는 隋書 권81 列傳 46에서 정월 元旦에 서로 하례하고 日神과 月神에게 제를 올리던 사례가 있습니다. 舊 唐書 권 199 열전 149에 신라는 元日을 중하게 여겨 서로 경하하고 연회를 베풀던 사례 및 日月神에 절하던 사례가 있습니다. 이런 역사에서 설날은 쉽게 일치시킬수 있고, 대보름도 비교적 정월의 日月神 숭배등에서 연관시킬 수 있습니다. 한국 正史에 나오지 않으면 중국의 원소절.상원절에서 대보름의 유래를 찾아서 한국에 대입시킬수 있을 것입니다. 정확히 용어가 일치하지 않아도 전후상황을 연관시켜 설명하면서 확신하지 않는 용어를 선택할수도 있겠습니다(이미 확신된 학술서를 인용하든지). 한국의 역사서들이 많이 소실되어 세계사적 개념으로 중국의 역사서를 참조하면 무난합니다(황하문명 중국 유교의 제천의식, 일월신 숭배, 조상제사). 그런데, 나중에 정사인 삼국사기를 모방하여 고려시대 후반에 부처와 그 주변인을 섬기는 불교 승려 일연이 쓴 야사인 삼국유사로 근거를 삼기는 힘들것입니다. 야사는 야사로 끝나야 합니다. 

 

 

설날관련 불교인들의 시각은 중 일연의 삼국유사 설화에서 차용한 잘못된 견해들임. 이 오인은 아마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에 성균관대 출신및 .유교인 뿐 아니라, 일본 강점기 일본 민중불교인들이 개입한 불교학교 후신 동국대 출신이나, 불교적 일본 신도.민중불교 영향받은 서울대출신, 일본 유학파들도 상당수 참여하면서 기재된 의견 같음. 正史인 三國史記나, 그 이전의 중국 역사서와 달리 고려후기 중 일연이 삼국사기를 모방하여 불교설화적 시각으로 각색한 삼국유사 설화를 대대적으로 반영한데서 나온 불교설화적 잘못된 견해로 필자는 판단함. 불교인이나 일본 유학파 및 서울대 출신들의 견해가 옳고 그르고를 따지기보다 유교 경전이나 중국.한국 史書(正史)등과 비교하며 世界史的 견지에서 대조해 보아야 함. 창조주 브라만에 대항해 새로운 사상을 정립한 부처가 창조주보다 높아 창조주를 그의 밑에서 가르친다는 불교는 부처나 관련 인물에 불공드리는게 불교며 유교전통에 뿌리를 둔 변형 중국불교는 불교가 아니라고 하는 견해도 있음. 일본 신도나 일본 민중불교는 중국 漢字, 중국이나 한국의 祭天儀式, 山川祭祀, 祖上祭祀, 공자님제사, 유교교육, 冠婚喪祭, 중국.한국의 유교풍속등을 변형한 後發 局地的 신앙으로 유교도 아니고 불교도 아닌 일본만의 독특한 신앙이라고 판단됨.   

 

[4].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의 자격은 중국이 있어야 지속됨.

 

수천년 역사로 이어져 온 중국, 황하문명과 유교종주국인 중국이 있어서, 십수억명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가 유지되는것입니다. 중국이 유교 4대명절(춘절,청명절,단오절,중추절)을 공휴일로 하고, 대보름등의 전통 유교명절을 지속시키는 한 한나라이후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 유교자격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지속되는것입니다. 

 

여하튼 정월 대보름은 陰曆을 사용하던 황하문명 중국에서 피어난 유교문명으로, 중국을 통해 한국에 전파된 유교경전 禮記의 日月(神) 숭배의식에 해당됩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황하문명을 가졌고, 유교종주국인 중국이, 유교의 본래 성격.세계성에 가장 큰 자격과 능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유교에 대해서는 중국만한 나라가 없습니다. 중국이 문화대혁명때문에, 봉건잔재라 하여 그 당시 왕정치하에서 옳은 방법을 제시하셨던 공자님(공자님의 세계종교 유교는 수천년동안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객관적.보편적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해옴)을 멀리하고, 프롤레타리아 중심의 관점으로, 수천년 전통의 유교가 위기를 겪었지만, 이 때문에, 모택동 주석도 비판받고 중국은 개혁.개방의 길을 택해, 다시 죽의 장막을 걷어내고, 이전처럼 세계의 중심국역할을 분담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서유럽.교황청과 더불어 세계의 전통 문명국가로 이어져야 하고, 그럴만한 전통과 현재의 능력(경제대국으로의 재부상, 위안화의 기축통화 자격 획득)이 충분히 있는 수천년 전통 문명국입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의 유교와 세계의 유교를 되돌아보고, 다방면으로 연구.검토하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고 있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27

 

2.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blog.daum.net/macmaca/2560

 

3.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blog.daum.net/macmaca/2967

 

4.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blog.daum.net/macmaca/2632

5.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blog.daum.net/macmaca/2803

 

6.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blog.daum.net/macmaca/3044

 

7.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179

 

8.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http://blog.daum.net/macmaca/3057

 

9.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blog.daum.net/macmaca/2632
 

10.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blog.daum.net/macmaca/2596 

 

11. 한국에서는 Royal대인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 세계사를 반영시 관습법적으로 교황 윤허 Royal 서강대도 성대 다음 Royal대로 두 대학이 가장 학벌이 높고 좋음. 서울대는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같은 건 없음. 단지 마음대로 등록하던 여러 신문에 남아있던, 친일부왜배들이 성균관대에 도전하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나라에서 일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주권없고 학벌없는 대학임은 변치 않음. http://blog.daum.net/macmaca/2260 

12. 유교의 내세관(來世觀)과 기복신앙(祈福信仰) 측면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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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유교국가의 전통적 특징중 하나는 호적(戶籍)제도였음. 한국과 중국의 호적제도에 관하여! http://blog.daum.net/macmaca/2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