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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문화권의 24절기인 대설(大雪). 2021년 12월 7일(음력 11월 4일)은 대설입니다. 대설후 15일 동안의 절기에는, 최고 하느님이신 천(天, 인간을 낳으신 하느님이심.시경:天生蒸民, 태극과 연계되..

유교문화권의 24절기인 대설(大雪). 2021년 12월 7일(음력 11월 4일)은 대설입니다. 대설후 15일 동안의 절기에는, 최고 하느님이신 천(天, 인간을 낳으신 하느님이심.시경:天生蒸民, 태극과 연계되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최고 하느님 天)다음의 하위신으로, 하늘로 승천하시어 계절을 다스리시는 오제[五帝, 天(최고 하느님) 다음의 하위 하느님들]중의 한분 신이시며, 겨울의 하느님이신,  전욱(顓頊)께서 다스리시는 절기입니다. 

 

대설은 겨울절기로, 이 절기 이후로 한국에서는 빙상놀이를 즐기기 시작하며, 몸보신을 위해 따뜻한 식사나, 따뜻한 음료, 만두.찐빵.군고구마같은 간식도 많이 먹는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력 10월인 맹동지월(孟冬之月)부터 거두어들이고 쌓아놓은(收藏,積聚) 곡물이나 식재료등으로 장아찌를 담그고, 고기를 절이고, 장(醬)도 담그고, 누룩을 빚고 술을 만드는데, 한국의 경우 김장도 마무리 되어가고, 대설즈음이면 콩과 여러가지 농작물로 메주를 쑤고 간장.된장.고추장등 여러가지 장(醬)을 담그는 때로 접어듭니다.   

  

이 시기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대설()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중국의 화북지방()의 상황을 반영하여 붙여진 것으로, 한국에서 꼭 이 시기에 적설량이 많다고는 볼 수 없다고 합니다.지구 온난화 현상도 있기 때문에, 특정일에 눈이 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전통적으로 중국 화북지방기준, 15일동안의 대설절기에 눈이 많이 내린 경험을 반영하여 대설(大雪)이라 이름붙인것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1]. 한국과 중국의 24절기 대설 전후의 풍속. 

 

1]. 대설(大雪). 한국에서는 이 날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을 난다는 믿음이 전해집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 날 눈이 많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는 음력의 겨울은 입동이후 소설.대설.동지.소한.대한까지를 겨울로 봅니다. 중국등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음력은 중국의 특정지방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북반구와 반대편에 위치한 남반구의 남아메리카 일부지방과 맞지 않고, 타 지역과도 다르게 나타나는 경향이 강합니다. 중국은 태음태양력을 사용하는 나라인데,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면 관찰하기 편하기 때문에 음력기준으로 역법을 발전시켜온 것으로 판단되며, 태양의 운행도 어느정도 반영하기는 합니다.   

 

음력 대설의 겨울절기에는 따뜻한 탕이나 찌개, 팥죽, 군고구마, 꿀차 및  여러가지 차종류, 쌍화탕등(요즘은 커피도 대중화 되었음)을 많이 찾게 됩니다. 시중 군것질 음식으로는 따끈한 만두, 호빵, 찐빵, 군고구마가 있습니다. 특이한 동짓달 절식으로 냉면()과 골동면(), 동치미, 장김치(-)가 있습니다. 냉면은 여름에 즐겨먹지만 동짓달에 냉면과 동치미도 별미입니다. 팥죽이나 음식에 동치미를 곁들여 먹는 맛도 일품입니다. 산업화이전 농경사회일때 일반 가정에서는 누룩으로 술 빚기, 메주쑤기, 장담그기를 겨울절기에 하였는데 요즘에는 전문 업체들이 많아서 이런 장면 보기가 흔치 않습니다. 겨울에는 따끈한 탕(설렁탕, 곰탕, 갈비탕, 육개장, 뼈해장국), 팥죽,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등을 다른 계절에 비해 많이 먹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따끈한 음식을 먹고 외출하면 몸보신에도 좋고 감기예방에도 좋을것입니다. 그리고 겨울 절기에는 야외에서 눈 썰매나, 스케이트, 스키, 얼음낚시등을 하게 됩니다. 외출시에는 항상 따뜻한 옷과 따뜻한 음식, 음료등으로 감기예방에 주의해야 할 때입니다. 

 

베이징관광국 자료에 나오는 중국인의 풍속에 보면 대설을 잘 보내면 1년 내내 추위를 잘 타지 않는다며 대설에 몸에 좋은 보신식품을 먹는다고 하는데,검은깨와 검은 모기버섯 등 검은색이나 쓴맛 식품을 많이 먹고, 양고기나 고구마, 구이위안(桂圆) 등의 따뜻한 식품을 많이 먹으면 좋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소설에 장아찌를 담그며 대설에 고기를 절인다’는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 필자주 1). 음력 11월, 동짓달 한국의 절식.

 

...동짓달 절식으로 냉면()과 골동면(), 동치미, 장김치(-)가 있다. 냉면은 메밀국수를 무김치, 배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섞은 것이고, 골동면은 잡채와 배, 밤, 쇠고기, 돼지고기 썬 것과 기름, 간장을 메밀국수에 섞은 것이다. 동치미는 소금물에 크기가 비교적 작은 무와 배, 풋고추를 넣어 삭인 물김치이고, 막김치는 새우로 젓을 담가 결이 삭은 뒤 무, 배추, 마늘, 생강, 고추, 청각, 전복, 소라, 굴, 조기, 소금으로 버무려 독에 넣어 오래 두었다가 먹는 김치이다. 한편 장김치는 무, 배추, 미나리, 생강, 고추로 담근 김치이다...

. 출처: 음력 11월 [十一月] (한국세시풍속사전)

 

 

필자 주 2). 중국의 구이위안(桂圆). 구이위안(계원)은 무환자나무과(Sapindaceae)에 속하는데, 한자어로 용안(龍眼)이라고도 하며, 자세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다 음 - 

 

가). 높이 10m 정도이다. 잎은 어긋나며 두껍고 긴 타원형으로서 길이 15∼45cm이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작은잎은 3∼6쌍이 달리고 길이 약 10cm이며 혁질(:가죽 같은 질감)이다.

꽃은 4월에 노란빛을 띤 흰색으로 피고 지름 3∼6mm로서 향기가 있으며 1,000여 개가 원추꽃차례에 달린다.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5개씩이고 수술은 6∼10개이며, 암술머리는 2개로 갈라진다. 열매는 7∼8월에 익으며 둥글고 지름 2∼3cm이다. 따뜻한 지역에서 잘 자란다. 번식은 종자·접붙이기·휘묻이 등으로 한다.

열매를 용안 또는 계원()이라 하며 식용한다. 과육같이 보이는 투명한 것은 가종피()이며 마르면 검은 갈색이 된다. 말린 것을 용안육 또는 복육()이라고 하여 한방에서 강장제·진정제로서 건망증과 불면증에 약용한다. 중국 남부 또는 인도 원산이며, 동남 아시아와 열대 아메리카에 널리 분포한다.

. 출처: 용안[longan, 龍眼] (두산백과)

 

나). 용안에 대한 표준 국어 대사전의 설명.

용안                

       

  1.

  • 식물 무환자나뭇과의 상록 교목. 높이는 13미터 정도이며, 잎은 어긋나고 두껍고  타원형이다. 4월에 황백색 꽃이 잎겨드랑이 또는 가지 끝에 원추() 화서로 피고 열매는 둥근 모양으로 7~8월에 익는데 강모() 많으며 씨에 붙은 용안육은 맛이 달아 식용하고 약용하기도 한다. 인도가 원산지로 동남아시아, 열대 아메리카에 분포한다. ≒ 여지노원안2. (Euphoria longana)()
  • 2.
  • 한의학 =용안육(용안의 열매를 한방에서 이르는 ).

  .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2]. 베이징관광국 한글 공식사이트에 나오는 대설 관련 자료.

‘대설(大雪)’절기 맞아 보양식품 인기

작은 절기들이 많은 중국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7일 ‘대설’을 맞아, 다오샹춘(稻香村) 진열대의 훙짜오가오(红枣糕,붉은대추 빵) 6만상자가 순식간에 동이나 버렸고, 화탕(华堂), 월마트(沃尔玛)등 대형마트의 양고기와 같은 보양식품들도 불티나게 팔렸다.

오전 10시, 다오샹춘 유안먼((右安门)점은 훙짜오가오를 사려는 손님들의 줄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에, 종업원은 “방금 문을 열었는데, 벌써 팔게 없을 정도이다. 특히 노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훙짜오가오는 흑밀과 흑향미(黑香米) 등 검은색 곡물 5가지를 주원료로, 대추소(枣泥)와 꿀, 호두 등을 섞어 만들어 노인들이 먹기에 딱 알맞다.

전문가는 대설을 잘 보내면 1년 내내 추위를 타지 않는다며, 검은깨와 검은 모기버섯 등 검은색이나 쓴맛 식품을 많이 먹고, 양고기나 고구마, 구이위안(桂圆) 등의 따뜻한 식품을 많이 먹으면 좋다고 조언했다.

많은 시민들이 몸보신에 나서면서, 마트들의 계절식품 판매도 덩달아 늘어날 예정이다. 집에서의 만찬을 준비하러 월마트 쉬안우먼(宣武门)점을 찾은 한 고객은 “절기가 하나 늘면, 가족들이 모여서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즐겁게 보낼 기회가 하나 더 늘어나는거지요.”라며, 쇼핑카트 한 가득 먹거리를 골랐다. 우메이(物美) 푸황위(蒲黄榆)점도 오늘따라 양고기가 특히 빨리 동이 나는 등 어육류 판매대의 매출이 괜찮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 출처: 베이징관광국 한글공식 사이트 최종수정일: 2010-12-08 13:40:50   

 

3]. 베이징 관광국 자료에나오는 24절기 대설의 뜻과 풍습. 

24절기 대설의 뜻과 풍습

 

대설은 24절기 가운데 스물한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다. 일 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시기로 알려져 있으며 올해는 12월 7일이다. 날씨가 급쌀쌀해지는 시기로 과거 농부들에게 있어서 일년을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농한기이기도 한다.

 

옛 중국에서는 대설로부터 동지까지의 기간을 다시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중후(中候)에는 범이 교미하여 새끼를 치며, 말후(末候)에는 여지(荔枝: 여주)가 돋아난다(一候鹃鸥不呜,二候虎始交,三候荔挺出)고 하였다.

 

* 고기 절임

중국에서는 ‘소설에 장아찌를 담그며 대설에 고기를 절인다’는 속담 있듯이 대설 시기에 집집마다 라로우(腊肉)를 절이고 말리기 시작한다.

소금과 산초 등 양념을 살짝 볶은 후에 생선이나 고기에 뿌인 다음 항아리에 담아 그늘 지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면 된다. 약 15일 정도 절인 고기를 꺼내 말리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 고구마죽

대설 지나면 날씨가 급쌀쌀해지면서 집에서 따뜻한 죽을 먹고 싶은 생각이 자주 난다. 고구마죽은 바로 쌀쌀한 겨울에 딱 맞는 음식이라 하며 닽콤하면서 소화에도 도움이 된다.

 

고구마죽은 씻어 말린 절간고구마에 물을 부어 푹 삷고,팥이나 각종 콩 종류도 푹 삷는다. 삶은 고구마,팥,콩을 같이 넣고 물을 많이 부어 다시 한번 끓이고, 밀가루를 물에 개어 넣으면서 젓고 소금이나 설탕으로 간을 맞추어 먹는다.

 

. 필자 주 3). 절간 고구마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절간(切干) 고구마를 얇게 썰어서 볕에 말린 고구마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단어에는 소리나는대로 한글

식으로 아무렇게나 해석하면 않되는 단어들이 대부분이라, 한자어나 역사.유래등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절간 고구마라고 절에서 만든 고구마가 아닙니다.

 

. 필자 주 4). 절미라는 단어도 주의해 보아야 합니다.  

절미1 

              

  • 1.낟알이 여러 개로 깨져서 토막  .
  • 2. 역사 조선 시대에, 공물 따위를 쌀로 환산하여 받던 .                                

.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 필자주 4-1). 절미하다라는 단어를 살펴봅니다.

 

절미하다 1 --        

 

동사. 역사 조선 시대에, 공물 따위를 쌀로 환산하여 받다 .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이처럼 한자나 역사.유래를 살펴보지 않고, 단순히 한글 발음대로 앞에 절자가 붙는다고 절에서 만든 쌀, 절에서 만든 음식 등등 쉽게 해석하면 않됩니다. 국어사전이나, 한국 민족문화대백과,두산백과에는 그 유래나 출처가 나오지않는데,한국 세시 풍속사전에 나온다고 그게 옳은 정설이냐 하면 그렇게 되지 않는경우가 많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겠습니다. 또한 유교경전이나 기독교 경전, 국어나 국사, 윤리, 세계사, 사회문화, 정치경제 및 철학 교과서(전문서적 포함)에 나오지 않는데, 특정 사전에 나온다고 교과서적 정설(定說)로 인정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적 황하문명과 세계 4대 발명품, 세계종교 유교를 가졌던 중국의 역사서나 사전, 유교경전, 국가차원의 발행서적등은 한국 자료와 대비하기 좋은 전문서들이 많습니다. 중세시대 지리상의 대발견 및 대학.산업의 발달로 중국의 침체기에 근대에 세계의 지배세력이 되었던 서유럽의 많은 교과서, 백과사전, 사전, 학술서등은 신학.법학.의학.철학,어학.역사학.수학.사회과학.자연과학.음악.미술 등 많은 분야에서 세계적 영향력을 가져왔고, 지금도 그 서유럽 학자들의 이론은 교과서나 전문서적에서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이런 자료들을 종합하여 살펴보아야 할 때가 아주 많습니다.   

 

다시 24절기 대설의 뜻과 풍습으로 돌아갑니다.  

       

* 얼어붙은 강가를 바라본다

 

대설 시기에 기온이 급히 떨어져서 강물이 얼은붙은 현상이 나타난다. 이 때가 되면 밖에서 나가 강가에서 이 독특한 풍경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진다. 본격적인 빙상 놀이의 계절이 돌아와서 아이들이 가장 기쁘죠. 주말에 가족들과 신나게 놀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 빙시

고대 중국에서는 겨울에 즐기는 스케이트 등 빙상놀이를 ‘빙시(冰嬉)’라고 한다. 빙시(冰嬉)는 얼음놀이란 뜻으로 고대 한족들의 얼음위에서 하던 운동을 총칭하며, 송나라때 이미 존재했다. 명나라때 궁궐의 체육활동으로 되었으며, 청나라에 이르러서는 빙시는 황실의 겨울철 소일거리로 되어,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 빙시는 현재 베이징 묘회의 하아라이트 얼음놀이이기도 한다.

 

* 겨울 몸보신

 

눈이 가장 내린다는 대설 전후에는 특별히 건강에 신경 써야 하는 시기다. 하지만 날씨가 추워서 영양가치가 아주 높은 음식만 많이 먹는 게 아나라 지역에 따라 자기 몸에 맞는 영양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 강남지역에는 북방 지역보다 기온이 좀 높아기에 겨울철에 오리나 생선 등을 먹으면 기력 회복에 도움이 된다. 북방 지역 사람들이 양고기나 소고기 등을 적당히 섭취하면 몸이 따뜻해지고 강 추위를 이겨낼 수 있다.

 

[2].대설(大雪)과 동지(冬至)가 낀 음력 11월 중동지월(仲冬之月)을 유교 경전 예기(禮記)에서 부분적으로 살펴봄.

 

1]. 예기에 나타나는 음력 11월, 중동지월의 현상. 

 

冰益壯 地始坼 鶡旦不鳴 虎始交 天子居玄堂大廟 
乘玄路 命有司曰 土事毋作 愼毋發蓋 毋發室屋及起大衆以固而閉 
地氣沮泄 是謂發天地之房諸蟄則死  民必疾疫又隨以喪 命之曰暢月 

 

얼음이 더욱 두터워지고 땅이 비로소 갈라지며(坼), 갈단(鶡旦:산새)은 울지 않는데, 호랑이는 비로소 교미한다. 천자는 유사에게 명하기를, "토목공사를 일으키는 일이 없게하고 삼가 창고를 여는 일이 없도록 하며, 실옥(室屋)을 개방시키거나 일을 일으켜 대중을 징발하는 일이 없게 하여 그 모든 폐장(閉藏)을 견고히 하라"고 한다.  

만일 천지의 방을 열어줌으로써 천지의 기운이 흩어지고 새나가게 할 때는 온갖 겨우살이 벌레는 죽게 되고 백성이 질병에 괴로워 하니, 사망의 재난이 따르게 된다. 그러므로 이 날을 이름지어 '창월'이라고 한다

 

. 필자 주 5). 중국의 특정 지방 기준 "얼음이 더욱 두터워지고 땅이 비로소 갈라지며"에서 보여지듯이, 겨울에 즐기는 얼음놀이, 즉 스케이트 등 빙상놀이인 ‘빙시(冰嬉)’를 즐기는 겨울 절기입니다. 한국에서는 스키장이나 눈썰매장등을 찾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2]. 예기에 나타나는 술 빚기.

 

乃命大酉 秫稻必齊 麴蘗必時 湛熾必絜 水泉必香 陶器必良 火齊必得 

兼用六物 大酉監之 毋有差貸

 

주관(酒官)의 우두머리에게 명하여, 술을 빚는데는 출도를 택하되 반드시 그 많고 적은 분량을 바르게 하고, 누룩은 반드시 시기를 놓치지 않게 하며, 쌀을 담가 씻거나 쪄내는 데는 반드시 깨끗이 하고, 물은 반드시 향기롭고 순수한 것을 택하며, 술 담그는 그릇은 반드시 견고하고 금이나 깨진곳이 없는 것을 택하고, 불의 정도는 반드시 그 중간을 택하도록 한다. 이상의 육물(六物)을 아울러 사용해서 술을 빚는 일에 종사할 때는 주관의 우두머리가 항상 이것을 감독하여 잘못이 없도록 한다.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譯解者(권오돈),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 필자 주 6). 음력 11월이 되면 곡식을 수확하여 저장하기 때문에 곡식과 저장물에 여유가 있어, 출도(秫稻:차조), 누룩, 쌀, 물, 그릇,불등을 이용하여 술을 담그고 이후 관혼상제(冠婚喪祭)나, 손님접대용, 가정내의 일상 소비용, 행사등에 사용해 온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하겠습니다. 

한국의 경우, 음력 10월인 맹동지월(孟冬之月)부터 거두어들이고 쌓아놓은(收藏,積聚) 콩과 여러가지 농작물로 메주를 쑤고 간장.된장.고추장등 여러가지 장(醬)을 담그는 때로 접어듭니다.   

 

. 필자 주 7). 출도(秫稻): 차조. 신역(新譯) 예기(禮記)[譯解者(권오돈),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에서 출도(秫稻)를 차조로 설명하고 있음.

 

. 필자 주 7-1). 차조란 농촌진흥청의 농업용어사전에 의하면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찰기가 있는 조. 열매가 메조보다 작고 빛깔이 훨씬 누르고 약간 파르스름 함. glutinous foxtail millet 

 

. 필자 주 8). 육물(六物): 상기 예기 월령에 나타난 육물(六物)을, 필자가 따져보면 출도(秫稻,차조), 누룩, 쌀, 물, 그릇,불이 되겠습니다. 

 

필자의 의견입니다.

 

술은 유교 관혼상제(冠婚喪祭) 및 일상생활에 빠지지 않는 종교적.역사적.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말연시를 맞아 친구나 직장 동료, 친.인척들과 회식이나 술자리가 많아지는 때입니다. 과음하여 문제를 발생시켜 법에 걸리지 않도록 지혜를 발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점잖게 주도(酒道)를 지키면서 자제하면 여러가지 행사나 모임에서 빠질 수 없는 술로 인하여 피해보는 일을 막아내고 오히려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하며, 정신적 위안을 주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3]. 장(醬)에 대한 고대 자료.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 다 음 -

 

장이라는 글자가 동양의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주례 ≫ 선부()로 장 120동이란 표현이 나온다. 또 ≪사물기원 ≫에서는 주공()이 장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조에서는 고구려 사람들이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고 하였다. 이것이 어떤 종류의 발효식품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그러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나오는 장(醬)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장(醬).

 

정의

콩을 주원료로 발효시켜 만든 조미료.

내용

장이라는 글자가 동양의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주례 ≫ 선부()로 장 120동이란 표현이 나온다. 또 ≪사물기원 ≫에서는 주공()이 장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장의 정체에 대하여 ≪주례≫의 주()에서 말하기는 “장에는 해()나 혜()가 있다.

해는 새고기·짐승고기·물고기 할 것 없이 어떤 고기라도 이것을 햇볕에 말려서 고운 가루로 하여 술에 담그고, 여기에 조로 만든 누룩과 소금을 넣어 잘 섞어 항아리에 넣고 밀폐하여 100일간 어두운 곳에서 숙성시켜 얻은 것이다. 혜는 재료가 해와 같으나 청매()의 즙을 넣어서 신맛이 나게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주례≫ 속의 장인 해와 혜는 분명히 육장()이다.

해는 소금으로 고기의 부패를 막으면서 발효에 의하여 단백질을 아미노산이나 펩타이드로 분해시킨다. 또 누룩에서 당분이 생성된다. 그리고 술을 넣었기 때문에 알코올과 생성된 산에 의하여 좋은 맛과 향기를 가지게 되는 것으로 중국 본래의 조미료이다.

우리 동이권()에서는 장을 콩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농학계에서는 콩의 원산지를 만주라 본다. 만주는 고구려의 옛 땅이므로 콩재배의 개발은 우리들의 조상에 의하여 이루어진 셈이다. 최근 한반도 내에서도 콩의 야생종과 재배종의 중간 종이 발견되었다.

중국의 앙소·용산의 농경문화의 유물에는 콩이 보이지 않는다. ≪관자 ≫에 의하면 서기전 7세기 초엽에 제()나라 환공()이 지금의 만주 남부인 산융()을 제압하고, 여기서 콩을 가져와서 융숙()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와같이, 우리들의 조상은 스스로 개발한 콩을 교묘하게 가공하여 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조에서는 고구려 사람들이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고 하였다. 이것이 어떤 종류의 발효식품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서기전 4세기경의 황해도 안악3호고분()의 벽화에 우물가에 발효식품을 갈무리한 듯한 독이 보인다.

≪해동역사 ≫에서 ≪신당서 ≫를 인용하여 발해의 명산물로서 책성()의 시(; 메주)를 들고 있다. 발해는 고구려의 유민이 세운 나라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에 대하여 ≪설문해자 ≫에서는 배염유숙()이라 하였다. 숙()이란 콩이고 유()는 ‘어둡다’ 뜻이니 어두운 곳에서 발효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에 소금을 섞으면 곧 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청국장에 해당하는 산국()이다.

콩을 개발하였고 일찍이 온돌의 원형인 갱()을 가지고 있었던 고구려 사람들이 이러한 발효식품을 만들게 된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시가 다음과 같은 문헌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춘추좌씨전≫의 소()에서는 “≪상서 ≫에서 국 끓이는 데 매실과 소금만을 쓴다고 하였다. 옛날의 조미료는 매실과 소금이고 시는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예기≫의 내칙()이나 ≪초사 ≫의 소혼()에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그렇듯 많이 나오는데도 시에 관한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한대()의 ≪급취편 ≫이라는 책에 비로소 염시()라는 말이 나온다. 이로 미루어 시는 진한대()부터 중국에 나타나게 된 것이라 하겠다.

시는 중국 자체에서 개발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진대()의 ≪박물지 ≫에서는 시를 외국원산이라 하였다. 송대()의 ≪학재점필 ≫에서도 구경() 속에 시라는 글자가 없고, 방언()에 시가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중국으로 보아서는 시란 외래품이라 하겠다.

≪사기≫의 화식전()에 의하면 일반 제조업자의 이윤이 10분의 2 정도인 데 비하여 시 제조업자의 이윤은 10분의 5에서 10분의 3 정도나 된다고 하였다.

시의 재료가 본디부터 알려진 것이라면 그렇게 많은 이윤이 있을 리 없다. 따라서, 시 제조업자는 외래의 시 제조의 비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윤이 커서 부자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

고구려사람이 발효식품을 잘 만들고, 발해의 명산물로서 시를 들고 있으며, 콩의 원산지가 동이권이고 중국사람 스스로 시를 외래품이라고 한 것을 생각하면 오늘날의 청국장에 해당하는 것이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이 땅의 북부에서 싹터 중국에 가서 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므로 본디의 중국의 장은 해란 이름의 육장이고, 우리의 장은 시란 이름의 두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인들이 두장을 시라 표현한 까닭은 ≪석명 ≫의 석음식()에 보면 “시()는 시( : 즐긴다는 뜻)와 같은 음이다.

오미()를 조화하는 데 시를 쓰면 그 맛을 즐길 수 있다. 따라서 제나라 사람들은 시()와 같은 음인 시()를 쓴다.”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500년 초엽의 ≪제민요술 ≫에 보면 구체적인 시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다. 즉, 콩을 삶아 익혀서 어두운 방에 놓아두면 곰팡이가 번식하여 황의()가 덮이게 되고 단백질이 분해된다.

이것을 씻어서 균사()를 제거하고 짚이 깔려 있는 움 속에 놓아두면 짚에 붙어 있는 낫도균 등에 의하여 콩성분이 더욱 분해되고 점질물()도 생성된다. 이것을 햇볕에 말린 다음에 물에 우려내어 조미료로 쓰기도 하고 건조시키지 않고 그대로 쓰기도 한다. 오늘날의 청국장과 매우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 삼국시대의 장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신라 본기 신문왕 3년(683)에, 왕이 김흠운()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는데 납채()로서 미()·주()·유()·밀()·장()·시()·포() 등 135수를 보냈다는 내용에 보인다. 여기에서는 시와 장을 구별하고 있다.

장은 무엇일까? 일본의 ≪다이호율령 ≫(701)의 대선직() 주장()에 보면 장은 장()·시()·말장()의 셋으로 정리되어 있고, ≪쇼소원문서 ≫ 덴페이 11년(739) 정세장()에도 말장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미소’라 읽고 있다.

이 미소라는 말의 어원에 대하여 아라이()는 그의 ≪도우가 ≫라는 책에서 고려의 장인 말장이 일본에 들어와서 그 나라 방언 그대로 ‘미소’라고 불렸다고 하였다.

일본에서 말장을 우리 나라의 방언 그대로 미소라고 하였다면 미소의 어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만주어로 장을 ‘미순(misun)’이라 하고, 또 ≪계림유사≫ 고려방언에서는 장왈밀조()라 하였으며, ≪이두고 ≫에서는 말장며조, 즉 훈조()라 하였으며, ≪증보산림경제≫에도 말장이라 적고 며조라 부르고 있다. 이것으로 미순→밀조→미소의 계열이 성립된다.

만주 남부에서 개발한 배염유숙은 오늘날의 청국장의 무리로서 중국에 가서 시라 불리게 되었다. 한편 만주 남부에서는 시 아닌 또 하나의 장이 개발되었으니 이것이 미소()이다.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의 말장은 어떤 것인지 당시의 일본 문헌을 통해서 정체를 잡기가 매우 애매하다.

무가이()가 1671년에 지은 ≪호쥬비요우와매이혼소 ≫에서는 일본 미소의 본래 모습을 잘 설명하고 있다.

곧 “요즘의 미소는 콩과 쌀누룩으로 만들지만 본래의 미소는 콩만을 써서 삶아 짓찧어 둥글거나 모난 떡같은 모양을 만들어 곰팡이가 핀 뒤에 건조한 장메주 이른바 병국()을 만들고, 이것을 부셔서 소금과 함께 통에 채워서 숙성시킨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산촌에서는 콩으로 만든 메주덩이로 된장을 만들고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메주덩이나 된장처럼 고체상태의 것을 말장이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일본의 간무왕() 호키() 2년(771)의 ≪호샤잇사이교쇼코쿠사쿠카이 ≫에서 “장 4말 2되는 콩 5말로 즙을 얻는다.”고 하였으니 당시의 장은 액체상태의 간장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일본에는 쌀이 풍부하므로 콩에다 쌀누룩을 섞은 된장을 만들어 미소라 하였고, 밀이 풍부한 중국에서 콩에다 밀을 섞어 간장을 만드니 감칠맛에 단맛이 더해진 것이다.

이와 같이 옛 고구려 땅에서 발상한 두 장은 중국과 일본에 전파되어 마침내 중국·한국·일본의 세 나라로 하여금 세계의 조미료 분포상으로 한계열의 두장권을 형성하게 한 것이다.

≪고려사≫ 식화지()에는 1018년(현종 9)에 거란의 침입으로 추위와 굶주림에 떠는 백성들에게 소금과 장을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과 1052년(문종 6)에 개경의 굶주린 백성 3만여 명에게 쌀·조·시()를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고려시대의 장과 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을까?

중국의 시에는 담시()와 함시()가 있다. 담시는 콩을 삶아 청국장을 만들 듯이 하여 건조한 것이고, 함시는 이에 소금·생강·천초·귤·차조기·회향·행인 등을 섞은 것이다.

우리 나라의 ≪임원경제지≫에서는 “담시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체를 잊어버리고 함시만이 간혹 약으로 쓰일 정도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시를 흔히 메주라고 풀이하게 되었다. 구황식품으로 시를 나누어주었다. 이것은 굶주린 사람들이 당장에 먹어야 하는 것이므로 시를 메주로 보기에는 조금 무리인 듯하다.”고 하였다.

이 때의 시는 된장이고 장은 간장인 것 같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메주에 의한 장이 주류를 이루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선시대의 구체적인 장담그기를 ≪증보산림경제≫ 동국장법()을 통하여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장독을 엎어놓고 작은 구멍이 있는지 없는지를 연기를 내어서 조사한다. 장독은 여러 해 쓰던 것이 좋다. 둘째, 소금을 몇 달 저장하여 간수를 흘러 내리게 한 것을 쓴다. 셋째, 물은 감천()이나 강심()의 물을 큰솥에 받아 끓이고 여기에 소금을 녹여서 식으면 밭쳐서 장담그기에 쓴다.

넷째, 메주만들기는 높고 마른 땅에 말밥통같이 긴 구덩이를 파놓는다. 콩을 무르도록 삶다 절구에 넣고 잘 찧어서 손으로 중간 크기의 수박만한 덩이를 만들고 큰칼로 쪼개어 두께가 한치 정도인 반달모양으로 한다. 이것을 구덩이 속에 매단다.

구덩이는 가마니나 풀 따위로 덮어주고, 다시 비·바람을 막도록 해놓는다. 메주덩이가 스스로 열을 내고 옷을 입게 되기를 기다려 뚜껑을 열어서 한 차례 이것을 뒤집어 준다. 8∼9차례 이와 같이 하면 수십 일에 이르러 거의 다 마르니 꺼내어 다시 바짝 말린 뒤에 장을 법대로 담그면 맛이 좋다는 것이다.

다섯째, 장담을 담글 때는 메주 1말, 소금 6∼7되, 물 1통으로 한다. 겨울과 가을에는 소금이 적어도 좋으나 봄과 여름에는 많은 편이 좋다.

여섯째, 숙성한 뒤에 장독 속을 우물처럼 파서 그 안에 괸 청장을 날마다 떠내어 따로 작은 항아리에 받아 낸다. 이와 같이 콩만으로 만든 메주를 써서 된장·간장을 얻는 방법이 조선시대 장의 주류를 이루었다.

1800년경의 ≪북학의 ≫에서는 당시의 메주만들기의 실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장메주 만드는 자는 메주 만드는 시기가 되면 원근 여러 지방의 콩을 모아 삶게 되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모두를 정하게 하지 못한다. 주는 사람도 가려서 주지 아니하고 받는 사람도 씻지 않아서 모래나 좀벌레가 섞여 있다.

그래도 그들은 예사로 알고 괴이쩍게 여기지 않는다. 그 장을 먹으려고 하면서 그 메주를 더럽게 취급하니 이것은 먹는 우물물에 똥을 넣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또 콩을 삶아서 파선()의 밑바닥에 쏟고는 옷을 걷어붙이고 맨발로 밟는다. 여러 사람이 오르내려서 더럽혀진 배의 바닥에서 밟는다. 그러나 그 뿐인가! 온몸에서 흐르는 땀이 다리를 타고 발 밑의 콩에까지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된장 속에서 발톱이나 머리카락이 발견된다.

강계()사람은 장메주 만들 때에 반드시 물에 걸러 일고 삶아서 익으면 망치로 쳐서 한 장씩 아주 반듯하게 만들어 낸다. 무릇 장메주는 이와 같이 만들어야 할 것이다.”고 하여 우리의 장이 매우 불결하다는 것이 지적되고 있다.

우리의 장맛은 집·지방마다 다르다. 이것은 삶은 콩덩이에 어떤 미생물의 포자가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곰팡이의 포자가 많이 떨어져야만 좋은 메주가 될 수 있으나 ‘봉사 돌 던지기’로는 품질이 균일해질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가 오히려 집집마다 독특한 장맛을 빚어내어 향수()의 맛을 낳게 해주기도 한다.

요즘은 삶은 콩에다 종국()을 섞어서 발효시키고 있다. 그러면 고린 냄새도 없고 며칠 만에 메주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을 개량메주라 한다. 개량메주로 만든 장은 콩의 단백질이 잘 분해되어 감칠맛이 한결 높아진다. 그러나 여러 가지 미생물에 의하여 만들어진 본래의 메주로 만든 것보다 맛이 단순하다.

또 본래의 메주는 단백질이 완전 분해되지 않고 펩타이드의 형태로 많이 남아 있다. 따라서 이것을 뚝배기에 넣고 끓이는 된장찌개는 끓이면 끓일수록 펩타이드가 아미노산까지 분해되어 맛이 좋아진다.

그러나 개량메주로 끓인 된장찌개는 오랫동안 끓이면 아미노산이 채소·고기·두부 등에 스며들고 국물은 담백해진다.

그래서 본래의 메주에다 개량메주를 섞어서 된장찌개를 끓이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요즘은 도시의 주택환경이 바뀌어 집에서 메주만들기가 어려워져 시골의 친척에 부탁하거나 공장제품의 메주를 사들이고 있다.

메주를 소금물에 담그는 일을 침장()이라 한다. ≪동국세시기≫에서는 침장()과 침장( : 김장)의 두 가지 일을 인가일년()의 2대행사라 하였다. 침장을 하고 40∼50일간 숙성시켜 액체를 퍼내어 달인 것이 간장이고 그 찌꺼기가 된장이 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도 된장 전용과 간장 전용의 메주가 있었다.

이 때 각각의 메주가 다른 것이 아니고 소금물의 양이 다를 뿐이다. 메주에 겨우 잠길 정도의 소금물만을 넣어서 숙성시키면 맛 좋은 된장이 되고, 소금물을 많이 넣으면 간장을 많이 떠낼 수 있는 것이다.

간장을 해마다 달이면서 몇 년간이나 저장시키면 빛깔과 맛이 진한 간장을 얻을 수 있으니 이것을 진장()이라 한다.

또 퍼낸 간장에 해마다 새로운 메주를 넣어 약주 만들 때의 덧술하듯이 숙성시켜 나가면 덧장이라 하여 매우 진하고 맛 좋은 간장을 얻을 수가 있다. 그런데 요즘의 이른바 왜간장이라는 것은 콩에다 밀을 섞어서 만든 간장메주를 소금물에 넣어 숙성시킨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도 공장생산물에 널리 쓰이고 있다.

1660년의 ≪구황보유방 ≫에 의하면 콩 한 말을 무르게 삶아내고 밀 5되를 볶아 가루 내어 콩과 잘 섞어 온돌에 펴서 띄운다. 황의()가 전체적으로 피면 볕에 내어 말린다. 이와 같이 하여 얻은 메주는 소금 6되를 푼 따뜻한 물에 넣고 양지바른 곳에 두어 자주 휘저어 주면서 숙성시킨다. 이것은 왜간장과 비슷하다.

왜된장은 콩 삶은 것에 쌀메주·소금을 섞어서 숙성시킨 것이다. ≪구황보유방≫에서는 콩 1말을 충분히 삶고 누룩 3되, 소금 4되를 섞어서 찧고 항아리에 넣어 단단히 봉하여 양지바른 곳에 두면 맛이 좋다고 한다. 이것 역시 왜된장과 비슷하다.

이와 같은 간장이나 된장 만들기는 일본의 독자적인 개발이 아니고, 원대() 초엽의 가정백과전서인 ≪거가필용 ≫에도 나와 있고, 조선시대 중엽에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우리 나라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이러한 종류의 장은 모습을 감추게 되었고, 고추장·즙장()·청국장 등 여러 가지 특수한 장을 개발하여 나름대로 즐겨왔다.

≪사시찬요 ≫나 ≪산림경제≫에서는 즙장 만들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콩 1말을 물에 충분히 불려서 밀기울 2말과 같이 곱게 찧어가지고, 삶아서 꼭꼭 뭉친 뒤 단자를 만들고 닥나무 잎으로 덮어서 옷을 입기를 기다려 햇볕에 말린다.

즙장을 담글 때는 메주가루 1말, 물 2되, 소금 3홉을 섞어서 항아리에 넣어 봉하여 말똥 속에 묻었다가 다시 7일 만에 겻불 속에 묻으면 14일 만에 먹을 수 있다.”고 하였다.

청국장은 일본에서는 발효된 것에 간장을 쳐서 그대로 먹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청국장에 소금·파·마늘·고추 등을 섞어 절구에 찧어서 된장찌개를 만든다.

우리 나라 특수장으로서 가장 이색적인 것은 역시 고추장이다. 잘 건조된 장메주를 가루내어 여기에 고춧가루와 소금물을 일정한 비율로 섞어서 3∼6주간 발효시켜서 만든다. 짠맛·매운맛·감칠맛이 조화되어 있다.

그러나 기호성의 변천에 따라 단맛마저 요구하게 되어 찹쌀가루를 떡으로 하여 장메줏가루와 함께 담그게 되었다. 고추장은 식욕을 돋우는 우리 나라의 가장 중요한 조미료의 하나이다.

≪증보산림경제≫에서는 장에 대하여, “장()은 장()이다. 모든 맛의 으뜸이요 인가의 장맛이 좋지 않으면 비록 좋은 채소나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좋은 요리가 될 수 없다. 촌야의 사람이 고기를 쉽게 얻지 못하여도 여러 가지 좋은 장이 있으면 반찬에 아무 걱정이 없다. 가장()은 모름지기 장 담기에 뜻을 두어 오래 묵혀 좋은 장을 얻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실제로 장맛이 좋아야 음식 맛이 좋음은 당연한 일이다. 장독대는 어느 집이고 극진히 위하였다. 해가 뜨면 뚜껑을 열어놓고 해가 지기 전에 덮었다. 장을 담그려면 우선 택일()을 하고 고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만일 장맛이 나빠지면 무언가 불길한 징조일 것이라고 보았으니 각 가정의 주부들은 장독대 관리에 정성을 다하였던 것이다.

장맛이 나빠지는 것은 귀신이 장을 먼저 먹기 때문이라 보고 이것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장독에 금줄을 치고 또 담근 장 위에 숯이나 고추를 띄웠다. 귀신이 숯의 구멍 속에 끼어 들어가 버린다고 보았던 것이며, 고추는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 빛깔이고 또 고추가 너무나 맵기 때문에 달아나버린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규합총서 ≫에서는 장담그기의 택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장 담그는 데에 좋은 날은 병인()·정묘()·제길신일()·정일()·우수일()·입동일()·황도일()이고, 삼복()에 장을 담그면 벌레가 안 꾀고 해돋기 전에 담그면 벌레가 없다는 것이다.

또 장담그기를 꺼리는 날인 수흔일( : 대월의 초일·초칠·십 일, 소월의 초삼·초칠·십이·이십육 일을 말한다.)에 담그면 가시가 꾀고 육신일()에 담그면 맛이 사납다는 것이다.

선조대 정유재란 때의 일이다. 어전회의에서 왕이 영변()으로 피난갈 것으로 정하고, 백관()이 몰려가려면 장을 미리 준비해야겠다고 했다. 남자안()이 “신공()을 합장사(使)로 삼아 영변 땅에 먼저 파견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한유천()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신공만은 안됩니다. 신이라는 성은 장담그기를 꺼리는 달인 신일()과 음이 같으니 신불합장()이라 좋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한다. 장의 중요성은 마침내 이러한 금기까지 낳게 한 것이다.

장의 재료는 콩이다. 콩에는 단백질이 38%나 있어서 곡물 가운데서 으뜸이다. 또, 콩속에 들어 있는 단백질의 질은 생물가() 78로서 동물성 단백질에 크게 손색이 없다. 한편, 콩에는 지방도 18%나 함유되어 있다.

특히, 콩속의 지방은 불포화지방산인 리놀산과 리놀렌산이 풍부하다. 이들 불포화지방산은 혈액 속의 콜레스테롤의 양이 늘어나는 것을 막는 동시에 동맥혈관의 벽에 달라붙은 콜레스테롤을 녹여내는 작용을 한다고 한다.

실제로 쇠고기만으로 사육한 개와 콩 단백질로 사육한 개에 대하여 서로 수영을 시켜본 결과, 콩 단백질로 사육된 개가 장거리 수영에서 이겼다고 한다.

대체로, 콩을 먹는 우리 나라 사람은 서양 사람에 비하여 단시간 동안에 힘을 내는 순발력은 모자라지만 내구력은 그들보다 크다. 이와 같이, 콩의 영양가로 미루어 장의 영양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메주는 ≪동의보감≫에 의하면 “두통한열()을 다스리고 땀을 내게 한다. 따라서, 메주와 파를 섞어 먹거나 메주·형개()·방풍()·상엽()을 함께 달여서 한 사발 마시고 이불을 덮고 있으면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이열치열의 원리에 의하여 열이 내리게 된다.”고 하였다.

이 밖에 “메주는 식체를 지우고 천식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장은 “모든 어육·채소·버섯의 독을 지우고 열상과 화독()을 다스린다. 또, 장은 흔히 콩과 밀로써도 만들지만, 그 약효가 두장에 미치지 못하며, 해()라고 하는 육장과 어장은 약에 넣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 출처: 장 [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한국의 사전류에서 설명하는 대설(大雪).

 

1]. 표준 국어대사전에서 설명하는 대설(大雪).

         

이십사절기의 하나. 소설과 동지 사이에 들며, 태양의 황경이 255도에 이른 때이다. 12 8일경이다.

 

2].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에서 설명하는 대설(大雪).

정의

24절기의 하나.

내용

소설()과 동지() 사이에 들며, 음력 11월, 양력 12월 7, 8일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225。에 도달한 때이다.

이 시기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대설()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은 원래 재래 역법의 발생지이며 기준지점인 중국의 화북지방()의 상황을 반영하여 붙여진 것이다. 그러므로 꼭 이 시기에 적설량이 많다고는 볼 수 없다.

중국에서는 대설로부터 동지까지의 기간을 다시 5일씩 삼후()로 나누어서, 초후()에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중후()에는 범이 교미하여 새끼치며, 말후()에는 여지( : 여주. 박과에 속하는 식물)가 돋아난다고 하였다. 한편, 이날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을 난다는 믿음이 전해진다.

 

. 출처: 대설 [大雪]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두산백과에서 설명하는 대설(大雪).

 

대설[  ]

 

요약 24절기의 하나로, 소설()과 동지() 사이다. 황경() 255˚에 위치할 때로 음력 10월 중이고, 양력으로는 12월 7일경 시작한다. 중국 화북지방을 기준으로 눈이 많이 내리는 시기이다.

 

24절기

 

소설() 15일 후, 동지() 전까지의 절기()로, 양력으로는 12월 7일경이 대설이 시작되는 날이다. 음력으로는 10월 중이다. 태양이 대략 황경() 255°에 도달한다. 눈이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이는 중국 화북지방의 기상()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도 이 시기에 반드시 적설량이 많다고 볼 수는 없다.

옛 중국에서는 대설 기간을 5일씩 3후()로 나눴는데, ① 제1후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② 범이 교미하여 새끼를 치며, ③ 여지()가 돋아난다고 하였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입동 이후, 소설·대설·동지·소한·대한까지를 겨울이라 보지만, 서양에서는 추분 이후 대설까지를 가을이라고 본다.

. 출처: 대설 [大雪] (두산백과)

 

4]. 한국 세시 풍속사전에서 설명하는 대설(大雪). 

정의

24절기 가운데 스물한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 소설()과 동지() 사이에 위치한다.

유래

소설에 이어 오는 대설()은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원래 재래 역법()의 발상지이며 기준 지점인 중국 화북지방()의 계절적 특징을 반영한 절기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 반드시 이 시기에 적설량()이 많다고 볼 수는 없다.

내용

일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절기인 대설은 시기적으로는 음력 11월, 양력으로는 12월 7일이나 8일 무렵에 해당하며 태양의 황경은 255도에 도달한 때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음력 10월에 드는 입동()과 소설, 음력 11월에 드는 대설과 동지 그리고 12월의 소한(), 대한()까지를 겨울이라 여기지만, 서양에서는 추분() 이후 대설까지를 가을이라 여긴다.

특히 24절기 중 대설이 있는 음력 11월은 동지와 함께 한겨울을 알리는 절기로 농부들에게 있어서 일년을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농한기()이기도 하다. 옛 중국에서는 대설로부터 동지까지의 기간을 다시 5일씩 삼후()로 나누어, 초후()에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중후()에는 범이 교미하여 새끼를 치며, 말후()에는 여지(: 여주)가 돋아난다고 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열두 달에 대한 절기와 농사일 및 풍속을 각각 7언 고시의 형식으로 기록한 19세기 중엽 소당() 김형수()의 ‘농가십이월속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때는 바야흐로 한겨울 11월이라()

대설과 동지 두 절기 있네()

이달에는 호랑이 교미하고 사슴뿔 빠지며()

갈단새(산새의 하나) 울지 않고 지렁이는 칩거하며()

염교(옛날 부추)는 싹이 나고 마른 샘이 움직이니() 

몸은 비록 한가하나 입은 궁금하네() 

……(하략)…… 

이 시기는 한겨울에 해당하며 농사일이 한가한 시기이고 가을 동안 수확한 피땀 어린 곡식들이 곳간에 가득 쌓여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풍성한 시기이다. 한편 이날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에 풍년이 들고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다는 믿음이 전해지지만 실제로 이날 눈이 많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 또 눈과 관련하여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눈이 많이 내리면 눈이 보리를 덮어 보온 역할을 하므로 동해()를 적게 입어 보리 풍년이 든다는 의미이다.

. 출처: 대설  [大雪] (한국세시풍속사전

 

 

[4]. 불교는 하느님.창조신에 대항하는 무신론적 Monkey입니다. 실제로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대항하여 부처 Monkey가 만든 불교는 그 발상지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계급입니다. 오래 겪어보면 인간이나 침팬치과의 불교 Monkey가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1]. 침팬치과의 Monkey부처는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계급 다음의 세속 신분으로,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옆길로 빠졌는데, 불교발상지 인도는 다시 불교를 배격하고 힌두교(브라만숭배)를 믿는 나라입니다. 왕의 칭호도 얻지 못한 배척받는 네팔출신 왕자태생이며, 인도는 불교신자를 가장 밑의 천민계급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교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령인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조선 국교인 유교의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하게 하여, 해방이후 한국인은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빠져, 세계사의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필자는 국사(성균관, 해방후의 성균관대)와 세계사(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귀족사제 이나시오의 예수회 산하 서강대.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를 병합하여 한국의 Royal.Imperial대학을 유지해왔으며 앞으로도 不變사항입니다. 패전국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원래 을사조약이 무효(국내법 우선시 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고, 2차대전 패전국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그 때부터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은 없어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으로도 한국에 주권이 없고, 1988년에 발효된 현행헌법으로 보면 임시정부 조항(을사조약.한일합방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의해 선전포고한 적국의 잔재로, 주권.자격.학벌없는 패전국 奴隸.賤民대학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나 국내법.국제법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데, 적산재산 국유화처럼 국립 서울대로 변신해, 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 및 사설 입시지등에서 그 뒤의 奴卑.下人카르텔을 형성해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항거해오고 있습니다. 

 

2]. 인도가 그렇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국도 조선시대에 조계종 승려(산속에 머물러야 하고, 시중에 나오면 않되며 혼자 살아야 함. 5,000만 유교성명 한국인 뒤의 존재들임)를 천민으로 만들어서, 필자는 그 역사적 사실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에 주권없는 일본 승려는 일본습속대로 결혼도 하고 절도 사고 팔고, 시중에 불교마크 달고 진출해 있습니다.

 

3]. 다음은 인도의 오랜 불가촉 천민인 불교신자들에 대한 기사입니다. 물론 그후의 이슬람.기독교도 신분은 높지 않습니다만, 불교신자는 오랫동안 천민계급이 인도입니다. 출처는 불교평론 2002년 3월 10일. 기사작성자:이지은. 

 

- 다 음 -

 

....인도는 비록 불교의 발상지이며 고대에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었으나, 마지막 불교 왕조인 굽타 왕조의 몰락과 힌두교의 재기, 뒤를 이은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으로 불교는 탄생의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불교 죽이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 불교로의 개종에 크게 동참하며 개종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 ‘달리뜨’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 중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수드라’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제5의 신분으로 그림자에만 닿아도 더러워진다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11월에 약 10만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수도인 뉴델리에서 불교로의 개종행사가 열렸고, 그 이후로도 주변의 우따르 쁘라데쉬 주와 비하르 주의 여러 마을에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개종식이 조용히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인도인들, 특히 기존 힌두교도들의 불교로의 개종은 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집단성’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러 명이 모여서 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스트 또는 몇몇 카스트 집단의 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개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개종을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 카스트 내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구성원의 건의로 마을 단위의 카스트 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개종을 결정한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다 보니, A마을의 X카스트가 개종을 한다면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X카스트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앞으로 X카스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불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에 동참하는 카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달리뜨에 속하는 카스트, 과거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인도의 전통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개종’이란 과거나 권위와의 절연을 의미하며 이를 결심하고 감행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신분제와 신분제의 타파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지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일어나고 있는 하층민들의 기독교, 이슬람교로의 개종 또는 힌두교 개혁종파의 창시 등도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북인도 지방에서의 불교 개종 움직임도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최근의 개종운동은 1956년 이래 마하라슈트라를 휩쓸었던 암베드까르 이후의 개종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악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과거의 카스트 제도나 온갖 불평등과 절연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인도의 종교였고, 더구나 고대 인도의 ‘황금기’에 널리 퍼져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종교이기도 했다. 암베드까르는 독특한 인도사 해석을 통하여 빛나는 불교의 전통을 달리뜨들과 연결시켰다.1)

 

그는 불가촉천민제의 기원을 4세기경 불교와 브라만교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던 당시, 끝까지 불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일부 부족민들에 두고 있다. 브라만들은 불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제의 권위로 더러운 직업을 강제적으로 부과하고 사회와 격리시켰다. 훗날 승려와 사찰이 점차 사라지고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이들도 힌두교화했지만 이미 대대로 이어지던 더러운 직업 때문에 이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베드까르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2)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잡아 그들이 조상들의 종교를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로 믿어진다.

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81

 

4]. 중앙일보 2020.09,17 서 유진 기자 보도뉴스.

 

... "힌두교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도로 개종을 많이 하다 보니 최근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강제로 불교도를 힌두교로 '재개종'시키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중앙일보] “개도 먹는 우물물, 왜 못먹나” 인도 힌두교 천민들 개종 붐

 

5]. 현대불교 2013.02.15. 우명주 박사(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이것은 단지 그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힌두교 신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신불교를 힌두교와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 인식시키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가촉천민을 무시하던 시선을 그대로 불교에 투영해 신불교를 천한 불가촉천민들이 믿는 천한 종교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불교도라는 것이 곧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6]. 일본은 인도와 달리 동남아 패전국.약소국들인 태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처럼 불교국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대중언론에서 최근 유교가 도전받고 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일본 불교), 기독교의 주권이 없는 법리적 측면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7]. 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가가 되어, 성씨없는 賤民 점쇠를 새롭게 일본 천황으로 옹립하여 불교국답게 점쇠賤民.불교 Monkey점쇠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하였습니다. 점쇠賤民.불교Monkey천황은 일제 강점기에 경성제대(그 후신이 마당쇠賤民.불교 Monkey서울대)를 설립하였고, 일제 강점기의 불교전문학교(동국대), 초급대(부산대,경북대,전남대,이리농림고 후신인 전북대 농대, 서울시립대등)와 전국 각지의 공립 중고등학교를 만들어서 주권.자격.학벌없이 서울대 뒤의 카르텔이 되어 대중언론에서 발호하여왔습니다. 서울대, 연세대(일본 강점기 연희전문 후신 연세대), 고려대(구한말 서민출신 이용익이 만든 사설 보성전문 후신. 보성전문은 이후 동학란을 일으킨 천도교 소속이다가, 해방후 친일파 김성수가 인수하여 대학교로 변경)의 대중언론 카르텔뒤에 새로 생긴 해방후의 대학들은 주권.자격.학벌없이 그 한참뒤에서 억눌려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국사 성균관 자격가진 해방후의 성균관대에 대항해, 대중언론에서 성균관대를 오도해왔습니다. 그러나 이 카르텔 및 왜구 잔재학교들은 현행헌법이나 조선.대한제국 관습으로 볼 때는 패전국 잔재로 한국영토에 남은 奴隸.賤民이며, 하느님을 부정하고 창조신에 항거하는 침팬치.Monkey류이거나 그 뒤의 奴卑.下人일 뿐입니다. 해방후에 새로생긴 대학들이나 중고등학교중 서울대가 가장 좋고 연세대.고려대가 그 다음이며 그 뒤에서 순번따지는 대학들은 대중언론.입시지의 주장을 믿고 현혹된  奴卑.下人입니다. 

 

8]. 불법.강제의 일제 강점기를 청산하지 못해, 대중언론.입시지.학원.학교교사들의 무지나 사기에 속아 살아온 분들을 구제하기는 해야합니다만, 대학학벌은 영원토록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를 최고대학으로 하면서, 세계사를 반영하여 교황윤허 서강대를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로 예우하는 방법을 지속시키겠습니다. 이러한 기만에 속은것을 인지하고 성황폐하, 서왕전하를 법으로 만드는 공로자들은 개인적으로 중용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는 서강대 출신 양희은님의 의견을 반영하여 성황폐하.서왕전하(두 칭호 모두 정신적인것)만 Royal학벌로 하면서, 이이제이식으로 그 뒤에서 주권.자격.학벌없이 여러 대학을 넣고, 패전국 잔재 奴隸.賤民 서울대(100번), 국시 110브(연세대), 고려대(111번)의 개혁도 시도해보겠습니다. 일제강점기 잔재에 전염되거나 볼모로 잡힌 왕족.양반(명백한 족보,주민등록.호적.조상의 벼슬사실등 반영)들은 구제하면서 전주이씨,파평윤씨,안동권씨등 조선.대한제국 명문 문벌이나, 한국 성씨의 원류인 서씨.한씨같은 유교 한문성명들을 문벌(門閥)로 계승하는 방법도 병행해 보겠습니다. 

 

* 법이나 교과서자격이 없으면, 입시점수!. 왜구잔재대학은 주권.자격.학벌이 없음.

헌법 임시정부가 중요함. 주권.자격.학벌없는 패전국 奴隸.賤民 서울대뒤 추종세력들이 헌법(임시정부 반영. 을사조약.한일병합 무효, 대일선전포고), 국사(성균관, 성균관대), 국제법[2차대전때 일본 항복,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 받아들여 일본의 주권은 한국영토에 없었으며,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없이 임시정부가 대일선전포고한 적국 일본의 적산재산형태였는데, 적산재산 국유화형태로 국립 서울대가 되어, 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입시계를 통하여 추종세력을 만들어 항전해옴], 세계사에 도전해옴. 교과서자격 Royal성균관대(국사 성균관자격 정통승계,한국 최고대), 서강대(세계사 반영. 국제관습법상 교황성하 윤허 적용, Royal 성균관대 다음 Royal 서강대로 예우)에 덤비는 대중언론.입시계의 도전을 막기위해 이런 개념을 적용함.

Royal성균관대(국사 성균관 자격, 한국최고대)와 서강대(성대다음 Royal대 예우)는일류,명문끝. 

 

* 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Royal 성균관대. 세계사 교황 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패전국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어왔음. 대중언론에서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에 침략.도전해옴. Royal성균관대(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교육기관 성균관승계,한국 最古.最高대).Royal서강대(세계사반영,교황윤허,성대다음예우)는 일류,명문.헌법(을사조약.한일병합 무효, 대일선전포고),국제법, 교과서(국사,세계사)를 기준으로, 일제강점기 잔재를 청산해야함.패전국奴隸.賤民불교Monkey서울대.주권,자격,학벌없는 서울대.추종세력 지속청산!

http://blog.daum.net/macmaca/733

 

[5]. 필자의 당부사항.

 

필자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유교의 침체기에 수천년 유교를 제도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사의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을 원용하였는데, 이는 관습법상 인정되는 역사적 제도입니다. 서유럽의 교황제도나 볼로냐.파리대학등도 관습법으로는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며 전통입니다. 필자는 유교와 중국의 대학제도, 찬란한 역사, 동아시아 유교국들의 유교를 이어가기 위하여 세계사를 반영하여 왔습니다. 교황윤허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도 성균관대와 함께 한국의 Royal대며, 최근 십년 넘게 정신적인(법으로는 아직 아님) 궁 성균관대 임금(성황폐하), 가칭 御어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제도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두 임금의 자격은 새로 생길 황후나 왕비에 비해 초월적 군주의 위치며 여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력이나 통치권을 주지는 않겠습니다(수렴청정도 반대함). 그리고 두 대학의 임금은 남자로만 이어져야 합니다. 

 

성황이나 어서강대 임금은 공석이 되어도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제도로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고 법으로 군주정이 실현되면 궁 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의 지침을 반영하여 별도의 법을 제정해 입헌군주국의 제도로 실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성황제도.어서강대 임금제도를 실현시키기 전에는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 성균관대의 Royal대 자격은 국내법과 국제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 교과서의 강행법 자격으로 보호받고, 서강대의 Royal대 자격은 세계사의 교황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습법 측면에서만 머물러야 합니다.

 

대학과 유교교육의 구심점은 성균관대, 한국 종교의 구심점은 황사손(이 원).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Royal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임.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균관대 다음 Royal대 예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http://blog.daum.net/macmaca/2575

 

. 필자의견: 차후 황사손(이 원)의 자손들이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방계 후손중, 황사손의 지정에 따라, 황사손의 자격을 얻게되는 후손이 생겨날 것입니다. 황사손의 자손이나 방계 후손이 성균관대에 입학하고 4년 공부하여 졸업한 뒤, 황사손으로 지정되면, 그 후손을 성황(폐하)로 추대하시기 바랍니다. 성황폐하가 법으로 확정되면, 황사손의 자손들이 의무적으로 성균관대를 입학하여 4년동안 다닌후, 졸업하게 제도를 만들고, 황사손으로 지정된 후계자는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의 제사장 권한과 아울러, 성황폐하의 자격으로 성균관의 석전대제(선성이시며, 성인임금이신 공자님에 대한 제사인 석전대제의 초헌관)를 주재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경연등도 부활하면 좋겠습니다.   

 

입헌군주국 형태의 군주정을 펼치려면, 위 내용을 근거로 Royal대로 국내와 세계에 알려온 궁(宮) 성균관대 임금을 성황 폐하로 하고, 어(御) 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을 자치왕국의 수장(통치영역은 서강대 학내의 명예직으로 함)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황사손에게는 아직까지 자칭.타칭 임금자격이 없습니다. 반드시 성대 입학.졸업자만 성황이 되어야 합니다. 성황폐하가 국가의 임금으로 옹립되면, 유교를 국교로 복구하고(어서강대의 학내 종교주권은 인정하고 주권없는 일제강점기 잔재종교는 종교의 자유는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 및 국가원수로서, 최고제사장의 권한 및, 軍 통수권과 외교권, 총리 및 각료임명권등을 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유교 경전상의 중국 天子의 지위는 결코 사용할 수 없으며, 한국만의 황상폐하로 하면서, 외국의 Great King(King of Kings)으로 번역되는 수준으로 한정하겠습니다. 현대세계는 황제칭호를 가진 나라가 없고, 한국의 전통 역사가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마지못해 황제칭호를 가지게 된 사정을 참작하여, 한국내의 황상폐하 칭호로 한정하겠습니다.

 

성황(성황폐하, 宮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와 어서강대 임금(서왕전하)의 사후에도 정신적인 성황과 어서강대 임금의 자격은 누군가에게 계승시켜, 차후의 황정복구에 대비해야 합니다.

 

서강대 임금은 서강대에 맡겨놓으면 적절합니다.   

 

유교의 최고 제사장으로는, 황사손(이 원)이 가장 준비가 충분하므로, 독신에 후사가 없는 필자(성황)는 당대에 성황(법률상은 아니지만, 자천하여 등극한 상징적 성왕 폐하)으로 살아갈것입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가지는 입헌군주국으로 하면서, 탄핵대상이 아니라는 점도(다만, 정당방위 아닌 살인을 저지를 경우, 의무적으로 스스로 하야하여야 합니다) 법률로 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역성혁명은 원칙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며, 법률위반의 정도가 심해 의회에서 투표를 거쳐 이의제기를 하면,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를 거쳐, 반드시 직무정지를 시키고, 새로운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결의하면, 의회에서 승인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중차대한 범법자가 발생하는 경우, 새로운 황상폐하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에 의해, 선출하도록 하고, 의회는 거부권 없이 승인해주는 절차를 거쳐야 하겠습니다. 성황폐하와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남자에 한정합니다. 황제가 없는 현대에, 한국이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한皇國(대한제국 아님) 황상(皇上)폐하로 하고 황제칭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왕들을 皇上폐하로 추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또한 성균관대 입학후 4년 공부후 졸업자만 成皇폐하로 하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추대로 성균관대 이외의 졸업자를 황상폐하로 추대하면, 무효로 하고, 그 즉시 대한황국 성황폐하로 제도를 변경하여야 합니다. 황상폐하 추대위와 성황폐하(성균관대 졸업자로 구성된 여러 성씨의 복합단체) 추대위는 다른 기구로 존재하여야 합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가 國皇으로 존재해도, 군통수권은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통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법제도를 정비하여야 합니다.국방상과 합참의장.육군 참모총장,경찰총수는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임명하고, 성황폐하 추대위 출신의 추천을 받은 성균관대 출신만 임명하여야 하겠습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황상폐하를 성균관대 출신이 아닌 타대출신으로 옹립하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결정으로, 그 즉시 역성혁명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출신이 아닌 새로운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가급적 추대하지 않되, 위의 사례처럼 성황폐하의 지위를 무력화시키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합의로, 타성출신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미래의 황정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 성격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내몽고는 청나라때 중국영토가 되었음)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의 24절기.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24절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는 몇해 되지 않으니,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정신적 유산인 이 24절기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발전.계승시켜야 하겠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73

 

2.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27

 

3.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blog.daum.net/macmaca/2560

 

4.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blog.daum.net/macmaca/2967

 

5.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blog.daum.net/macmaca/2632

6.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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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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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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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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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blog.daum.net/macmaca/2632

11.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blog.daum.net/macmaca/2596

 

12. 한국에서는 Royal대인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 세계사를 반영시 관습법적으로 교황 윤허 Royal 서강대도 성대 다음 Royal대로 두 대학이 가장 학벌이 높고 좋음. 서울대는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같은 건 없음. 단지 마음대로 등록하던 여러 신문에 남아있던, 친일부왜배들이 성균관대에 도전하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나라에서 일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주권없고 학벌없는 대학임은 변치 않음. http://blog.daum.net/macmaca/2260 

13. 유교의 내세관(來世觀)과 기복신앙(祈福信仰) 측면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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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유교국가의 전통적 특징중 하나는 호적(戶籍)제도였음. 한국과 중국의 호적제도에 관하여! http://blog.daum.net/macmaca/2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