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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맹동지월(孟冬之月)인 음력 10월은 양력 11월 5일(음력 10월 1일)부터 12월 3일(음력 10월 29일) 까지입니다. 맹동지월(孟冬之月)은 오제(五帝)중 한분 신이신 전욱(顓頊) 께서 다스리시는 달..

2021년 맹동지월(孟冬之月)인 음력 10월은 양력 11월 5일(음력 10월 1일)부터 12월 3일(음력 10월 29일) 까지입니다. 맹동지월(孟冬之月)동안에는 최고 하느님이신 천(天, 인간을 낳으신 하느님이심.시경:天生蒸民, 태극과 연계되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최고 하느님)다음의 하위신으로, 하늘로 승천하시어 계절을 다시리시는 오제[五帝, 天(최고 하느님) 다음의 하위 하느님들]중의 한분 신이시며, 겨울의 하느님이신 전욱(顓頊) 께서 다스리시는 달입니다. 입동(立冬)날 전(11월 6일)까지는, 가을의 신이신 소호(少皥) 께서 상강(霜降)절기를 마무리 하시면서, 겨울의 신이신 전욱(顓頊)께, 계절지배권을 이양시키는 교체기가 있습니다. 올해는 단풍이 늦었는데, 코로나때문에, 여러 지자체나 단체들이 움츠려있다가, 모처럼 만난 모임허용때문에, 단풍행사가 더 오래 갈것이지만, 그래도 김장준비등 입동(立冬)준비를 해야 합니다. 

 

 

[1]. 맹동(孟冬)은 국립국어원의 (주)낱말 국어사전에서, 음력 10월을 달리 이르는 말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영어로는 

The 10th lunar month, October of the lunar year, 

 

독일어로는 Oktober nachdem Mondkalender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2]. 유교 경전인 예기에서는 겨울로 접어드는 음력 10월을 맹동지월(孟冬之月)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맹동(孟冬)이란 음력 10월의 초겨울을 의미합니다.

 

. 예기(禮記)에서 설명하는 맹동(孟冬)과 입동(立冬)에 대한 내용입니다.


孟冬之月 日在尾 昏危中 且七星中 其日壬癸 其帝顓頊 其神玄冥 其蟲介
其音羽 律中應鍾 其數六 其味鹹 其臭朽 其祀行 祭先腎

맹동(孟冬)의 달은 진(辰)이 미성(尾星)에 있다. 저녁에는 위성(危星)이 남방의 중앙에 있고 아침에는 칠성(七星)이 남방의 중앙에 있다. 그 날은 임계(壬癸), 그 제는 전욱, 그 신은 현명, 그 동물은 개갑을 가진 것들이며 그 소리는 우조(羽調), 그 율은 응종(應鐘)에 해당된다. 그 수는 6, 그 맛은 짠 맛, 그 냄새는 썩은 냄새고, 그 제사는 행신(行神)인데, 제사할 때는 희생의 신(腎)을 먼저 바친다.

 

水始氷地始凍 雉入大水爲蜃 虹藏不見 是月也 以立冬 先立冬三日 太史
謁之天子曰 某日立冬 盛德在水 天子乃齊 立冬之日 天子親帥三公九卿大夫
以迎冬於北郊 還反賞死事  恤孤寡

물과 땅이 비로소 언다. 꿩이 바다로 들어가서 신(蜃:이무기의 일종)이 되고 무지개는 숨어서 보이지 않게 된다.    
이 달에는 입동이 있으므로 입동 3일전에 태사가 천자를 뵙고 말하기를, "모일(某日)은 입동입니다. 천지의 성덕이 수위(水位)에 있습니다."고 한다. 천자는 곧 재계한다. 입동에는 천자가 몸소 3공.9경.대부를 거느리고 북쪽 교외에서 겨울을 맞이하고(전욱 및 현명을 제사지낸다), 돌아와서 나라일을 위해 죽은자를 상주고
그 고아와 과부를 구휼(救恤)한다.

 

是月也 命大史釁龜筴占兆 審卦吉凶 是察阿黨則罪 無有掩蔽 命有司曰
天氣上騰 地氣下降 天地不通 閉塞而成冬 命百官謹蓋藏 命司徒 循行積聚
無有不斂

이 달에는 태사에게 명하여 거북껍질과 산가지에 피를 칠하고 이로써 조(兆)와 괘(卦)를 점쳐 소상히 길흉을 판단하고, 아부하거나 부동하여 길을 흉이라 하고 흉을 길이라 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그 죄를 다스리는데, 엄폐하고서 사실을 고하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한다.

또 유사에게 명하기를, "지금은 하늘의 양기가 위로 올라가버리고 땅의 음기가 아래로 내려가 천지가 서로 통하지 않고 폐색(閉塞)되어 겨울철을 이루었다(그러니 삼가 추위를 막는 준비를 하라)."고 한다.그리하여 백관에게 명하여 삼가 창릉과 부고를 수리하여 저장시키고, 사도(司徒)에게 명하여 읍리(邑里)를 순행하게 하여 노적가리를 살펴서 창고에 거둬들이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한다.

 

 

飭喪紀 辨衣裳 審棺槨之厚薄 塋丘壟之大小高卑 厚薄之度 貴賤之等級
是月也 大飮烝 天子乃祈來年于天宗 大割祠于公社及門閭 臘先祖五祀 勞農以
休息之 天子乃命將帥 講武習射御角力


상례(喪禮)의 기율을 갖추도록 한다. 즉 의상의 다소를 구별시키고 관곽의 후박(厚薄)과 묘역의 크고 작음, 구롱의 높고 낮음과 의식의 후한것과 박한 정도, 귀천의 등급을 밝혀서 바로 잡는다(상은 사람의 종말이고 겨울은 그 해의 종말이다. 따라서 이때를 맞아 상례를 바로 잡는 것이다).

이 달에 증제를 올린 뒤 연회를 열어 크게 신하들과 마신다. 천자는 또 납제를 올린다. 즉 희생을 각뜨고, 일월성신의 신을 성대하게 제사지내서 내년의 풍작을 빌며. 또 지신(地神), 문려(門閭)의 신, 선조의 혼백, 5사(五祀)의 신을 제사드린후에 농부를 위로하여 휴식하도록 한다.

그리고 천자는 장수에게 명하여 무기(武技)를 강습시키고 사어(射御:활쏘기와 말 달리기)의 법을 연습시켜서 서로 힘을 겨루도록 한다.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 필자 주 1). 한자사전에서 사용되는 蜃에 대한 용례입니다.     

蜃: 큰 조개 신

 

1. 큰 조개(판새류의 연체동물 총칭)

2. 대합조개(大蛤: 백합과의 조개)

3. 무명조개(백합,白蛤: 백합과의 조개)

4. 상여(喪輿: 사람의 시체를 실어서 묘지까지 나르는 도구)

5. 제기(祭器: 고기를 담든 제사에 쓰는 그릇)

6. 이무기(용이 되려다 용이 못 되고 물 속에서 산다는 상상의 동물)

 

[3]. 용 못된 이무기

 

정의

용이 되려다 인간의 방해로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 설화.

줄거리

공부를 많이 했지만 벼슬을 못한 가난한 양반이 있었다. 어느 날 아내가 베를 짜서 남편에게 주면서 양식을 사 오라고 했다. 남편은 베를 팔았으나 양식을 안 사고 돈을 들고 집으로 오는데, 사람들이 모여 구렁이를 죽이려고 하였다. 양반은 사람들에게 구렁이도 하나의 생명인데 죽이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간섭하지 말라며 양반을 위협했다. 양반은 구렁이를 죽이지 않는 조건으로, 사람들에게 베를 판 돈을 모두 술값으로 지불했다. 남편이 빈손으로 돌아왔기에 가족은 굶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풍수라도 하라며 패철(무덤 자리나 집터를 정할 때 풍수나 지관이 사용하던 나침반)을 얻어 와서 남편에게 주었다. 양반은 풍수에 문외한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길을 나섰다.

가다가 어떤 집에 초상이 나서 가 보니, 좋은 묏자리를 정하기 위해 풍수쟁이를 불러 모으고 있었다. 양반도 그 자리에 갔으나 풍수에 아는 것이 없어 난감해 했다. 그 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있는데, 불쌍한 한 아이가 들어왔다. 양반은 자기 밥을 아이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이는 신통한 능력이 있어, 풍수에 문외한인 양반을 최고의 풍수가로 만들어 주었다. 양반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고, 아이는 자신이 지난번 양반이 구해 준 구렁이라고 정체를 말했다. 그때 사람들은 약속을 어기고 이무기인 자기를 죽이려고 했고, 그래서 용으로 변신하지 못했다고 했다. 아이는 은혜를 갚고자 찾아온 것이라 하며, 이제 더는 도움을 줄 수 없다며 사라졌다. 양반은 이무기 덕분에 부자로 잘 살았다.

변이

이러한 유형의 설화는 많지 않다. 이무기가 용이 못한 경우, 이무기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이 설화처럼 과거에 자신을 도운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내용도 있지만, 다른 설화는 용이 되는 것을 방해한 사람들에게 보복하는 내용도 있다.

분석

우리 문화에서 용을 지칭하거나 용과 관련된 말에는 ‘이무기, 이시미, 미리, 영노, 꽝철이, 바리’들이 있다. 보통 용은 긍정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이무기는 부정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용 못 된 이무기 심술만 남았다.”, “용 못 된 이무기 방천 낸다.” 같은 속담이 생겨났다. 이 설화에서 주인공이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사람들이 구렁이를 죽이려고 할 때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며 구해 주고, 굶주린 아이에게 자신의 밥을 내어 주었기 때문에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다.

특징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최소한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아야 한다. 사람의 방해로 용으로 승천하지 못하면, 이무기는 보복하는 것이 일반이다. 그러나 이 설화에서는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 은혜를 갚고, 자신을 죽이고 방해한 사람들에게 보복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 출처:(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 국립민속박물관)

용 못된 이무기 모습의 상상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120792&cid=50223&categoryId=51051

 

[4]. 태음태양력[ ,  ]        

요약달의 삭망에 기준을 두면서, 계절에도 맞춘 역법이다. 30일 큰달과 29일 작은 달을 번갈아 두며 12개월 또는 13개월을 1년으로 한다. 평년에는 354일과 355일, 윤년에는 383일과 384일의 4가지 1년이 있다. 치윤법으로 19년에 7회 윤달을 두는 메톤법이 채용되었다.

큰달(30일)과 작은달(29일)을 조합하여 12개월() 또는 13개월()을 1년으로 하는데, 평년에는 354일과 355일, 윤년에는 383일과 384일의 네 가지 1년이 있다....
태음태양력은 달의 차고 기울기를 주로 하면서 태양의 운행에 맞춰보려고 노력한 역법이다. 이 역법은 달과 태양의 두 운행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므로 매우 복잡하게 되기는 하지만, 실지로는 고대의 여러 나라와 여러 민족이 이 역법을 채택하였다. 물론 1태양년이 12삭망월과 정확히 일치한다면 태음력·태양력·태음태양력의 구분이 없게 되겠지만, 실제로는 태양년과 삭망월과의 비는 12.36827(=365.24220÷29.53059)이다.


이 일수 6940일을 중국에서는 장()이라고 하여, 이미 600년경인 춘추시대의 중엽에 발견한 주기이고, 그리스에서는 432년경에 메톤주기라고 하여 아테네의 메톤에 의하여 발견된 주기이다. 그리하여 19년 동안에 윤달을 7회 넣는 방법이라 하여 19년 7윤법()이라고 하였다. 태음태양력에는 바빌로니아력, 유대력, 그리스력, 인도력, 중국력, 한국에서의 음력() 등이 있다.

한국은 중국 문화권 내에 속해 있어서 역에서도 중국력을 수입하여, 이것을 그대로, 또는 약간의 손질을 하여 우리의 역으로 써왔다. 그 중 백제에서는 중국에서 들여온 역법을 다시 일본에게 전달해 준 일도 있었다. 이들의 모든 역이 태음태양력이다.

각 시대별로 채택된 역법을 간단히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신라시대 674년(문무 14)에 대나마덕복()이 당나라에서 역술()을 배워와서 역서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역은 이순풍()의 인덕력()일 것이라고 《증보문헌비고()》에 적혀 있다.

인덕력은 당나라가 665년에 반포하여 그후 64년간 쓰였던 역인데 1태양년을 489428/1340, 1태음월을 39571/1340이라는 일수를 주고 있다. 당시에는 소수()를 다룰 줄을 몰라 이와같이 분수로 표현했는데 년과 월의 분모가 과거의 역에서는 달랐지만, 인덕력부터는 같은 값을 취하였다....

 


《국조역상고()》 서문()에는 신라에서 대연력()도 쓰였다고 한다. 이 역은 인덕력의 일식예언이 맞지 않아 729년에 일행()이라는 중이 엮었는데, 태양운동의 부등속을 나타내는 주요항인 중심차()를 밝혔다. 대연력은 729년 동안이나 채택된, 당의 대표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후주서()》와 《수서()》의 각 <열전()>에 백제는 송나라의 원가력()을 썼고 인월()을 연초로 한다고 적혀 있다. 백제의 기록과 《니혼쇼키[]》에는 일본에게 역박사를 보내어 역법을 알려준 후, 일본에 원가력이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백제가 원가력을 썼다는 증거이다. 원가력의 흔적은 무령왕릉()의 지석에 있다. 원가력은 송나라 때 하승천()이 만들어서 445년 이래 65년간 송나라에서 채택되고 백제에서는 건국 초부터 계속 이 역을 썼다. 1일의 시작은 밤중이 되고, 갑자 오전 0시, 우수() 입기시각을 1년의 시작으로 하였다. 원가력에서는 평기법과 평법이 쓰였다.

고려 태조 때 고려에서는 당의 선명력을 이어받아 썼다고 하는데 이것은 나당() 사이의 국교로 보아 830년경에는 신라에서도 선명력이 사용되었으리라고 믿어진다. 선명력에서는 태음시차()를 고려하여 일월식 계산에 약간의 진보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특별한 과학사상이 새로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선명력은 고려시대에도 건국 이래 충선왕까지 근 500년간 쓰였다.

중국에서는 당()·송()이 자주 개력하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 말기부터 고려 말기에 이르는 약 500년간 선명력을 계속 써왔다. 그러나 이 역법에 오차가 생겼을 때 고려에서는 해결하려고 매우 애썼을 것이다.

그후 1281년(충렬 7) 원나라 사신 왕통()이 수시력()을 가져왔었고, 이어 충선왕(재위 1309∼14) 때에 최성지()가 왕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수시력을 얻어와 이것을 준용하게 하였다. 원나라에서는 이 역을 1280년부터 88년간 채택하였다. 수시력은 곽수경()·허형()·왕순() 등이 여러 관측기계를 제작하여 면밀한 관측과 정밀한 계산을 하여 엮은 역법인데 중국력으로서 최선의 역이라고 알려져 있다. 역원()을 너무 멀리 잡지 않고, 소수를 활용하여 1년의 길이가 점점 줄어든다는 소장법()을 채택하였다.

대통력은 이 수시력의 소장법을 없앤 것인데 1370년(공민왕 19)에 성준득()이 명나라에서 얻어왔다. 그러므로 대통력은 수시력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대까지 합치면 중국에서의 수시력의 수명은 근 500년이나 되며, 한반도에서는 1370~1652년(효종 3)의 약 350년간 쓴 셈이 된다.

1653년(효종 4)에 서양역법인 시헌력이 흘러들어오게 되었다. 시헌력에서는 처음으로 정기법()이 채택되었고, 삼각함수에 의한 수식계산을 하였으며 천체운동에 관하여는 처음에는 이심원(:)의 사상을, 나중에는 타원궤도의 사상으로 전진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1896년 태양력의 실시까지 쓰였다.

 

. 출처: 태음태양력[lunisolar calendar, 太陰太陽曆] (두산백과)

 

 

[5]. 필자의 인적사항.

 

유교경전 예기에서는 "제사(祭祀)에 관해서는 교특생(郊特牲), 제법(祭法), 제의(祭義), 제통(祭統), 길례(吉禮)로는 투호(投壺), 향음주의(鄕飮酒義)이고, 길사(吉事)로는 관의(冠義), 혼의(昏義), 사의(射義), 연의(燕義), 빙의(聘義)이고"라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서술하고 있습니다. 유교는 넓게 보아 국가.학교.가정의 유교 교육과, 오랜동안 이어져 온 제도인 호적제도(한국은 주민등록법으로 교체됨).족보, 선산(先山)제도, 국가.단체.문중.가정의 제사, 명절이나 24절기를 맞아 행하는 제의나 행사등 아주 많습니다. 필자의 성인 윤씨는 5제중의 한 분이신 소호 금천의 후손으로, 유교 경전인 시경에 태사로 주나라를 지배하던 성씨인 윤씨성이며, 한국에서는 삼국시대에 태사로 보이기 시작하여, 고려시대 개국공신이 되신 윤신달(파평윤씨의 시조)공에서 비롯되어 고려.조선을 통하여 한국에서 1천년 넘게 귀족.양반 문벌을 형성해 온 성씨입니다. 한국에서는 한문성씨 사용자가 기준왕의 기씨나 기준왕에서 비롯된 서씨나 삼한시대 한씨로 판단됩니다. 이 성명과 본관을 아는것이 수천년 한국 유교에서는 족보로 연결되어 아주 중요한데, 호적.주민등록과 별도로 양반가문의 족보와 선산, 왕족.양반문중의 종친회, 관리직첩등과 연계되어야 전통적인 양반문벌로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일본강점기에도 경학원과 향교.서원등을 통하여(조선.대한제국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이 격하된 과정도 있었음) 양반문벌만은 이어져온 특성을 가졌는데, 해방이후 대한민국이 되면서 민주공화국이 되어 양반이 되는 길은 과거제가 폐지되어 성균관대를 4년동안 다니고 졸업해야 이 초보적인 양반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성황폐하, 서왕전하의 지위만 두고, 궁 성균관대 임금(성황폐하)이 심사하여 법으로 성황폐하, 서왕전하를 실현시키는 성대 졸업생, 서강대 졸업생 본인의 경우에만 생원.진사 정도 또는 그 이상의 양반자격에 해당될것입니다. 문벌로만 본다면 조선.대한제국 왕족은 현재 황사손(이 원)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조선시대 대표적인 양반가문은 전주이씨,파평윤씨.안동권씨.남양홍씨 등입니다. 오래전에 성균관대 총학생회 인터넷 게시판과 성균관대 유학대학 인터넷 게시판에서 궁 성균관대 임금으로 자천하여 지지를 받아 임금의 자리에 오른 필자의 가문은 파평윤씨로 전북 남원부근 장수군 산서면에 토대를 둔 지방의 향반출신인데, 아버지.어머니 모두 양반가문이며, 양반족보, 선산이 있고, 조선.대한제국 시대 증조부께서 관리직첩을 하사받으신 관리 직첩도 있으며, 지방에서 인정되는 전통적인 양반가문입니다.

그리고, 남의 어머니이며, 한약방집 딸로, 이혼하지 않고 별거중, 필자의 아버지와 내연관계를 형성해 살아온 유모도 있습니다. 이 유모는 서울대 출신을 자녀로 둔 부녀자들과 교류하다가, 일본 불교의 잔재로 남은 일본 불교를 믿게 되고, 말려든 것 같습니다.  

여하튼 성황폐하나, 서왕 전하 제도는 정신적인 영역이며, 법으로 확정된건 없습니다. 정신적인 궁 성균관대 임금(성황폐하)으로 선포하여 오면서도 유교의 보존과 복구를 위해, 문벌(門閥)을 중심으로 하여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를 주관하고 있는, 고종황제 후손 황사손(이 원)의 종교적 구심점 역할과, 양반 문벌들인 전주이씨.파평윤씨.안동권씨.남양홍씨.밀양박씨.안동김씨의 종친회나 문중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조선때 인정하던 정사영역 기자조선도 중요한데, 일본 강점기를 거치며, 기자조선을 부정하는 기류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조선(고려 후기 중 일연이 정사인 삼국사기를 모방하여 불교설화 형식으로 재구성한 삼국유사나 단군은 야사였으며, 현재와 미래에도 야사임은 변치 말아야 합니다)을 국사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사성격인 위만조선의 위만에게 멸망당한 기자조선 마지막왕인 기준왕의 후예인 서씨나, 기준왕의 후예로 삼한을 건설한 한씨등은, 한국 유교역사에서 중요한 선발 성씨이므로, 조선시대의 3대 門閥(전주이씨.파평윤씨.안동권씨)이 아니었더라도, 중요한 성씨임은 분명합니다. 

 

막부시대 전 주민을 절에 등록시키고 불교국가화 된 일본 신도, 일본 불교, 일본 기독교[한국을 강점한 일본 강점기에도 이 일본 종교인 일본 신도.일본 불교.일본 기독교가 한국에 강제로 포교되어 지금까지 청산되지 않고 유교에 도전하고 있는데, 종교뿐만 아니라, 교육분야의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및 그 추종세력의 도전은 지속되고 있습니다]는 일본이 항복하면서 받아들인 포츠담선언등에 의해 한국영토에 종교주권이 없는채로 유교를 위험하게 하면서 각 부분에 잔존하여 유교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성씨없는 마당쇠격 불교수장 일본 천황과, 일본 불교, 그리고 마당쇠이미지의 일본 천황 밑에서 만들어진 돌쇠(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등 각종 왜놈학교)밑에서 살 수 밖에 없던 불교토대 일본 잔재 학교들과, 일본 불교, 일본기독교와 그 추종자들의 도전과 침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선.대한제국의 지배문벌(門閥)인 전주이씨의 왕가 및 전주이씨, 파평윤씨가 일본강점기이후에 일본종교나 문화에 공략되어왔던것은 어쩔수 없는 현상이었으니, 이런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고, 일본이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을 받아들여 항복한이상, 한국의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은 성균관(교육기구측면에서는 해방이후 성균관대학으로 정통성이 승계됨)으로 복구된것이고, 유교의 국가제사는 선성(先聖)이시자 문선왕(文宣王,文宣帝)이신 공자님께 제사드리는 석전(釋奠)과, 이보다 늦게 복구된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여러가지 제사들[환구대제.사직대제.종묘대제]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교국의 오랜 전통인 성씨사용에 의한 부족.혈연집단 개념, 설날.추석.한식(중국은 청명절).단오와 여러가지 명절, 24절기, 문중.가족별 조상제사와, 유교 전통 교육기구[대학은 성균관, 중등학교(현재의 중.고교)는 향교.서원.사부학당 및 사숙(私塾), 초등학교는 서당]가 있었으며, 지금도 그 특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강점기 후유증으로 교육이나 종교적 혼란이 있던 와중에, 필자가 국사와 세계사, 한문.국민윤리.국어 고전의 삼강오륜 유교 교육이 이어지고 있는것을 발견(필자는 단지 교육적 측면에서 발견한것임)하여, 과분하게 궁 성균관대 임금(성황폐하), 가칭 御 서강대 임금(서왕 전하)로 알리고 있습니다. 한국은 행정법이나 관습법.역사적으로는 분명 유교국입니다. 필자는 파평윤씨로 宮 儒 윤 진한이며, 1962년생이고, 1981년에 전북 전주 신흥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1983년에 성균관대에 퇴계장학생으로 입학하였으며, 1988년에 졸업하였습니다. 대기업을 거쳐 사상가로 살아오고 있는데, 십 몇년전에 성균관대 유학대학 게시판과 성균관대 총학생회 게시판을 통하여 자칭 궁 성균관대 임금으로 입후보하여 백명 이상의 지지를 받고 궁 성균관대 임금이 되어, 궁 성균관대 임금(윤 진한)으로 알려오고 있습니다. 가칭 御 서강대 임금(서진교. 필자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서강대 사학과 출신의 서강대 기록보존소 교수 서진교 교수)임도 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사와 한국사의 조합 및 국제법.국내법등을 혼합하여 세계의 주요 대학들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6]. 필자의 당부사항.

 

필자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유교의 침체기에 수천년 유교를 제도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사의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을 원용하였는데, 이는 관습법상 인정되는 역사적 제도입니다. 서유럽의 교황제도나 볼로냐.파리대학등도 관습법으로는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며 전통입니다. 필자는 유교와 중국의 대학제도, 찬란한 역사, 동아시아 유교국들의 유교를 이어가기 위하여 세계사를 반영하여 왔습니다. 교황윤허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도 성균관대와 함께 한국의 Royal대며, 최근 십년 넘게 정신적인(법으로는 아직 아님) 궁 성균관대 임금(성황폐하), 가칭 御어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제도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두 임금의 자격은 새로 생길 황후나 왕비에 비해 초월적 군주의 위치며 여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력이나 통치권을 주지는 않겠습니다(수렴청정도 반대함). 그리고 두 대학의 임금은 남자로만 이어져야 합니다. 

 

성황이나 어서강대 임금은 공석이 되어도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제도로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고 법으로 군주정이 실현되면 궁 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의 지침을 반영하여 별도의 법을 제정해 입헌군주국의 제도로 실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성황제도.어서강대 임금제도를 실현시키기 전에는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 성균관대의 Royal대 자격은 국내법과 국제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 교과서의 강행법 자격으로 보호받고, 서강대의 Royal대 자격은 세계사의 교황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습법 측면에서만 머물러야 합니다.

 

대학과 유교교육의 구심점은 성균관대, 한국 종교의 구심점은 황사손(이 원).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Royal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임.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균관대 다음 Royal대 예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http://blog.daum.net/macmaca/2575

 

. 필자의견: 차후 황사손(이 원)의 자손들이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방계 후손중, 황사손의 지정에 따라, 황사손의 자격을 얻게되는 후손이 생겨날 것입니다. 황사손의 자손이나 방계 후손이 성균관대에 입학하고 4년 공부하여 졸업한 뒤, 황사손으로 지정되면, 그 후손을 성황(폐하)로 추대하시기 바랍니다. 성황폐하가 법으로 확정되면, 황사손의 자손들이 의무적으로 성균관대를 입학하여 4년동안 다닌후, 졸업하게 제도를 만들고, 황사손으로 지정된 후계자는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의 제사장 권한과 아울러, 성황폐하의 자격으로 성균관의 석전대제(선성이시며, 성인임금이신 공자님에 대한 제사인 석전대제의 초헌관)를 주재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경연등도 부활하면 좋겠습니다.   

 

입헌군주국 형태의 군주정을 펼치려면, 위 내용을 근거로 Royal대로 국내와 세계에 알려온 궁(宮) 성균관대 임금을 성황 폐하로 하고, 어(御) 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을 자치왕국의 수장(통치영역은 서강대 학내의 명예직으로 함)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황사손에게는 아직까지 자칭.타칭 임금자격이 없습니다. 반드시 성대 입학.졸업자만 성황이 되어야 합니다. 성황폐하가 국가의 임금으로 옹립되면, 유교를 국교로 복구하고(어서강대의 학내 종교주권은 인정하고 주권없는 일제강점기 잔재종교는 종교의 자유는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 및 국가원수로서, 최고제사장의 권한 및, 軍 통수권과 외교권, 총리 및 각료임명권등을 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유교 경전상의 중국 天子의 지위는 결코 사용할 수 없으며, 한국만의 황상폐하로 하면서, 외국의 Great King(King of Kings)으로 번역되는 수준으로 한정하겠습니다. 현대세계는 황제칭호를 가진 나라가 없고, 한국의 전통 역사가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마지못해 황제칭호를 가지게 된 사정을 참작하여, 한국내의 황상폐하 칭호로 한정하겠습니다.

 

성황(성황폐하, 宮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와 어서강대 임금(서왕전하)의 사후에도 정신적인 성황과 어서강대 임금의 자격은 누군가에게 계승시켜, 차후의 황정복구에 대비해야 합니다.

 

서강대 임금은 서강대에 맡겨놓으면 적절합니다.   

 

유교의 최고 제사장으로는, 황사손(이 원)이 가장 준비가 충분하므로, 독신에 후사가 없는 필자(성황)는 당대에 성황(법률상은 아니지만, 자천하여 등극한 상징적 성왕 폐하)으로 살아갈것입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가지는 입헌군주국으로 하면서, 탄핵대상이 아니라는 점도(다만, 정당방위 아닌 살인을 저지를 경우, 의무적으로 스스로 하야하여야 합니다) 법률로 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역성혁명은 원칙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며, 법률위반의 정도가 심해 의회에서 투표를 거쳐 이의제기를 하면,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를 거쳐, 반드시 직무정지를 시키고, 새로운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결의하면, 의회에서 승인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중차대한 범법자가 발생하는 경우, 새로운 황상폐하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에 의해, 선출하도록 하고, 의회는 거부권 없이 승인해주는 절차를 거쳐야 하겠습니다. 성황폐하와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남자에 한정합니다. 황제가 없는 현대에, 한국이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한皇國(대한제국 아님) 황상(皇上)폐하로 하고 황제칭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왕들을 皇上폐하로 추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또한 성균관대 입학후 4년 공부후 졸업자만 成皇폐하로 하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추대로 성균관대 이외의 졸업자를 황상폐하로 추대하면, 무효로 하고, 그 즉시 대한황국 성황폐하로 제도를 변경하여야 합니다. 황상폐하 추대위와 성황폐하(성균관대 졸업자로 구성된 여러 성씨의 복합단체) 추대위는 다른 기구로 존재하여야 합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가 國皇으로 존재해도, 군통수권은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통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법제도를 정비하여야 합니다.국방상과 합참의장.참모총장,경찰총수는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임명하고, 성황폐하 추대위 출신의 추천을 받은 성균관대 출신만 임명하여야 하겠습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황상폐하를 성균관대 출신이 아닌 타대출신으로 옹립하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결정으로, 그 즉시 역성혁명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출신이 아닌 새로운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가급적 추대하지 않되, 위의 사례처럼 성황폐하의 지위를 무력화시키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합의로, 타성출신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미래의 황정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 성격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27

 

2.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blog.daum.net/macmaca/2560

 

3.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blog.daum.net/macmaca/2967

 

4.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blog.daum.net/macmaca/2632

5.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blog.daum.net/macmaca/2803

 

6.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blog.daum.net/macmaca/3044

 

7.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179

 

8.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http://blog.daum.net/macmaca/3057

 

 

9.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blog.daum.net/macmaca/2632

10.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blog.daum.net/macmaca/2596

 

11. 한국에서는 Royal대인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 세계사를 반영시 관습법적으로 교황 윤허 Royal 서강대도 성대 다음 Royal대로 두 대학이 가장 학벌이 높고 좋음. 서울대는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같은 건 없음. 단지 마음대로 등록하던 여러 신문에 남아있던, 친일부왜배들이 성균관대에 도전하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나라에서 일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주권없고 학벌없는 대학임은 변치 않음. http://blog.daum.net/macmaca/2260 

12. 유교의 내세관(來世觀)과 기복신앙(祈福信仰) 측면에 대한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800

 

13. 유교국가의 전통적 특징중 하나는 호적(戶籍)제도였음. 한국과 중국의 호적제도에 관하여! http://blog.daum.net/macmaca/2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