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춘지월(孟春之月). 음력 1월로 양력 2021년 2월 12일(음력 1월 1일)부터 2021년 3월 12일(음력 1월 29일) 까지입니다.
1]. 맹춘(孟春)은 음력 1월을 달리 이르는 말입니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자료제공: 국립국어원의 (주)낱말 국어사전
영어로는 January of the lunar calendar, Early spring by lunar calendar.
독일어로는 Eismonat nachdem Mondkalender, Januar nachdem Mondkalender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2]. 유교 경전인 예기의 월령편에 나오는 맹춘지월(孟春之月). 음력 1월인 맹춘에 대해 예기 월령은 전체적으로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1. 예기(禮記) 월령(月令) 제 6
孟春之月 日在營室 昏參中 旦尾中 其日甲乙 其帝太皥 其神句芒 其蟲鱗
其音角 律中太蔟 其數八 其味酸 其臭羶 其祀戶 祭先脾
맹춘(孟春)의 달에는 진(辰)이 영실성(營室星)에 있다. 저녁에는 삼성(參星)이 남방의 중앙에 있고, 아침에는 미성(尾星)이 남방의 중앙에 있다.
그 날(日)은 갑을(甲乙)에 해당하고, 그 제(帝)는 태호(太皞), 그 신(神)은 구망(句芒), 그 동물은 인족(鱗族), 그 음(音)은 각조(角調), 그 율(律)은 태주(太簇), 그 수는 8, 그 맛은 산(酸), 그 냄새는 전(羶)에 해당한다. 그 제사는 호신(戶神)이며 제사지낼때는 희생의 비(脾:지라)를 먼저 바친다.
東風解凍 蟄蟲始振 魚上冰 獺祭魚 鴻鴈來 天子居靑陽左个 乘鸞路 駕倉龍
載靑旂 衣靑衣 服倉玉 食麥與羊 其器疏以達
동풍이 불어서 얼음이 풀리고, 칩거했던 벌레가 비로소 움직인다. 물고기가 얼음 위로 떠오르고, 수달(獺)이 물고기를 제사지내며, 기러기가 남쪽에서 온다. 천자는 명당 동쪽 방의 북실에 거처하고, 난로(鸞路)를 타고 푸른 빛의 말을 멍에하며, 푸른 기(旂:쌍용을 그린 기)를 세우고, 푸른 옷을 입으며, 창옥(蒼玉)을 차고 보리와 양고기를 먹는다. 그 쓰는 그릇은 조각이 성기고, 나무 결이 곧다.
是月也 以立春 先立春三日 大史謁之天子曰 某日立春 盛德在木 天子乃齊
立春之日 天子親帥三公 九卿諸侯大夫 以迎春於東郊 還反賞公卿諸侯大夫於朝
命相布德和令 行慶施惠 下及兆民 慶賜遂行 毋有不當 乃命大史 守典奉法
司天日月星辰之行 宿離不貸 毋失經紀以初爲常
이 달에 입춘이 있으므로 입춘 3일전에 태사(太史)가 천자를 뵙고 말하기를, "어느 날(某日)이 입춘입니다. 천지 생육(生育)의 성대한 덕이 목(木)에 있습니다"고 하면 천자는 곧 재계하고 있다가 입춘에 3공.9경.제후.대부를 거느리고 동교(東郊)에서 봄을 맞이한다[태호(太皞)와 구망(句芒)을 제사지낸다]. 그리고 조정으로 돌아와서 공경.대부에게 시상하고 재상에게 명하여 덕교(德敎)를 선포하고 금령(禁令)을 조정하며, 상을 주고 은혜를 베풀되 널리 백성에게까지 이르게 하여, 부당한 일이 없게 한다. 또 태사에게 명해서 전법(典法)을 지키고 하늘의 일월성신의 운행을 헤아려서 그것들의 머물고 떠나가는 시각을 어기지 않으며, 그 진퇴 지속의 도수를 잃는 일이 없게 한다. 이것을 정하는 데 있어 당초의 제도를 표준으로 한다.
. 필자 주 1). 백과사전에 나타나는 입춘(立春).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나타나는 입춘.
입춘(立春)
정의
24절기의 하나.
내용
음력 1월, 양력 2월 4일경이며, 태양의 황경이 315°에 와 있을 때이다. 봄으로 접어드는 절후로 음력으로는 섣달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하며,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들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재봉춘(再逢春)이라 한다. 정월은 새해에 첫번째 드는 달이고, 입춘은 대체로 정월에 첫번째로 드는 절기이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서, 이날 여러가지 민속적인 행사가 행해진다.
그 중 하나가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이는 일이다. 이것을 춘축(春祝)·입춘축(立春祝)이라고도 하며, 각 가정에서 대문기둥이나 대들보·천장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이는 것을 말한다.
한편, 옛날 대궐에서는 설날에 내전 기둥과 난간에다 문신들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서 좋은 것을 뽑아 써 붙였는데, 이것을 춘첩자(春帖子)라고 불렀다.
사대부집에서는 흔히 입춘첩을 새로 지어 붙이거나 옛날 사람들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쓴다. 제주도에서는 입춘일에 큰굿을 하는데, ‘입춘굿’이라고 한다. 입춘굿은 무당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수심방[首神房 : 큰무당]이 맡아서 하며, 많은 사람들이 굿을 구경하였다.
이 때에 농악대를 앞세우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걸립(乞粒)을 하고, 상주(上主)·옥황상제·토신·오방신(五方神)을 제사하는 의식이 있었다.
입춘일은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첫번째 절기이기 때문에 보리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흉풍을 가려보는 농사점을 행한다. 또,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서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한다.
. 출처: 입춘[立春]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필자 주 2). 입춘은 음력으로는 섣달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하며,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들기도 하는데, 올해는 음력 정월 이전의 섣달(음력 12월)인 양력 2019년 2월 4일(음력 12월 30일)에 입춘이 들었습니다.
是月也 天子乃以元日 祈穀于上帝 乃擇元辰天子親載耒耜 措之于參保介之御間
帥三公九卿諸侯大夫躬耕帝藉 天子三推 三公五推 卿諸侯九推 反執爵于大寢
三公九卿諸侯大夫皆御 命曰勞酒
이 달에 천자는 원일(元日)에 상제(上帝)께 오곡의 풍양을 빈다. 이어 원진(元辰)을 가려서 천자가 친히 쟁기(耒耜)를 수레에 싣는데
참승(參乘)의 보개(保介)와 어자(御者)의 사이에 둔다. 3공.9경.제후.대부를 거느리고 몸소 적전(籍田)을 간다. 천자는 세 번 쟁기를 밀고 3공은 다섯 번 밀며, 경과 제후는 아홉 번 민다. 밭가는 일을 끝내고 돌아와서 노침(路寢)에서 연례를 연다. 3공.9경.제후.대부가 모두 천자를 모시는데 이것을 노주(勞酒)라고 이른다.
是月也 天氣下降 地氣上騰 天地和同 草木萌動 王命布農事 命田舍東郊
皆修封疆 審端經術 善相丘陵阪險原隰土地所宜 五穀所殖 以敎道民 必躬親之
田事旣飭 先定準直 農乃不惑
이 달에 천기(天氣)는 밑으로 내려오고, 지기(地氣)는 위로 올라가서, 천지가 화동하여 초목이 싹튼다. 왕이 명하여 농사를 선도한다.
전준(田畯)에게 명하여, 동교(東郊)에 머무르면서 전지(田地)의 경계를 바로잡고 밭 사이의 소로와 도랑을 바르게 정리하며, 구릉.판험.습지의 땅에 오곡을 심기에 마땅한 곳을 잘 살펴서 백성에게 농사일을 교도하되, 반드시 몸소 행해서 보여준다. 이와 같이 전사(田事)의 정리를 이미 끝내고 먼저 심어 가꾸는 방법을 가르치면 농부는 의혹하지 않는다.
是月也 命樂正入學習舞 乃修祭典 名祀山林川澤 犧牲毋用牝 禁止伐木
毋覆巢 毋殺孩蟲胎夭飛鳥 毋麛毋卵 毋聚大衆 毋置城郭 掩骼埋胔 是月也
不可以稱兵 稱兵必天殃 兵戎不起 不可從我始 毋變天之道 毋絶地之理
毋亂人之紀
이 달에 악정(樂正)에게 명하여 국학(國學)에 들어가서 문.무(文武)의 춤을 가르쳐 익히게 한다. 이어서 제사지내는 전례를 수정하고, 명하여 산림.천택에 제사지내게 한다. 희생은 암컷을 쓰지 못하게 하고, 벌목을 금지하며, 둥우리를 뒤집어서 새를 잡지 못하게 하고, 애벌레. 새끼 밴 조수(鳥獸), 갓난 짐승, 처음으로 날으는 새를 죽이지 못하게 한다. 짐승의 새끼를 잡지 못하게 하고, 알을 꺼내지 못하게 한다.
공사를 일으켜서 민중을 모으지 못하게 하고 성곽을 쌓아서 백성을 노역에 부리는 일이 없게 하고, 사람의 시체가 노출되었을 때는, 묻어주게 한다. 또한 이 달에는 군대를 일으켜서는 안된다. 군대를 일으킨다면 반드시 하늘의 재앙이 있을 것이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할 수 없이, 이것을 막겠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스스로 시작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군사를 일으켜서, 하늘의 도리를 변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땅의 도리를 끊는 일이 없어야 하며, 사람의 기강(紀綱)을 어지럽히는 일이 없어야 한다.
. 필자 주 3). 악정(樂正)이 국학(國學)에 들어가서 문.무(文武)의 춤을 익히게 하는것은, 유교에서 음악과 신체로 표현하는 춤.연기예술등에 비중을 두었음을 의미합니다.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역해자(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2. 번역자가 해석한 음력 설날인 원일(元日)에 적전(籍田)을 가는것에 대한 이해자료.
1). 두산백과에서 설명하는 적전(籍田)
임금이 친히 경작하여 그 수확으로 신농씨(神農氏)·후직씨(后稷氏)를 제사지내던 토지.
고대 중국의 황실의식(皇室儀式)으로 시작된 것이 전해져 983년(성종 2)부터 시작되었으나 내용에 대하여는 알 길이 없다. 조선시대에 이에 관한 사항을 법으로 정하여, 적전은 임금이 경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주로 부근에 살고 있는 농민들로 하여금 경작·수확하게 하였는데, 민전(民田) 10결(結)에서 1명을 차출, 3명이 적전 1결을 경작하게 하였다.
이때 적전에 징용된 농민은 공부(貢賦) 외의 요역(徭役)을 면제받았다. 임금이 친히 경작하는 경우에는 정전법(井田法)에 따라 기장[黍]·피[稷]·벼·수수 등을 국가에 바쳐 제사에 사용토록 하였다.
. 출처: 적전[籍田] (두산백과)
2). 오픈마인드 한자사전에서 설명하는 적전(籍田)
임금이 몸소 농민(農民)을 두고 농사(農事)를 지어, 거두어 들인 곡식(穀食)으로 신에게 지사를 지내던 제전의 한 가지. 문헌(文獻)에 보이는 것은, 고려(高麗) 때부터이며 6대 성종(成宗) 2(983)년에 임금이 원구(園丘)에서 신에게 제사(祭祀) 지내고, 적전을 갈아 본을 보였으며, 조선조(朝鮮朝) 때에는 적전에 관(關)한 사항(事項)을 법전(法典)까지 규정(規定)했음
3).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에서 설명하는 적전(籍田)
고려·조선 시대 권농책으로 국왕이 농경의 시범을 보이기 위해 의례용(儀禮用)으로 설정한 토지.
내용
≪고려사≫에 의하면 983년(성종 2) 국왕이 친경(親耕)하는 의례를 시작했고, 인종 때에도 이를 실시한 기록이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태종 때 옛 서울 개성의 보정문(保定門) 밖에 서적전(西籍田) 약 300결(結)을 설치하였다.
이는 고려 말의 권신 임견미(林堅味)·염흥방(廉興邦) 등의 토지를 몰수한 것이었다. 또 한성의 흥인문(興仁門) 밖에 동적전(東籍田) 약 100결을 설정하였다.
그리고 이의 경영은 처음에 전농시(典農寺) 소속의 노비를 동원하였다. 그리고 그 수확으로 종묘(宗廟)·사직(社稷) 등의 자성(粢盛 : 나라의 큰 제사에 쓰이는 기장과 피를 지칭함)으로 삼았다.
그러나 차차 노비의 선상(選上)에 어려움이 있고 또 고역으로 노비의 도망이 잇따랐다. 이에 태종 때부터 서적전은 그 소재지 부근의 농민을 동원해 경작하게 하였다. 그리고 세종 때부터는 동적전 또한 그 소재지 부근의 농민을 동원하였다.
다시 세조 때에는 동적전은 양주(楊州), 서적전은 풍덕(豊德)의 농민 각각 100명과 200명을 농군(農軍)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경작지 10결당 1명을 차출하도록 하고 공부(貢賦) 외의 잡역을 면제해 경작에 전념하게 하였다.
그 뒤 동원되는 농군들의 고역이 문제되어 다시 양주·풍덕 지역 거주의 농민을 윤번으로 각각 100·200명씩 동원하도록 규정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경국대전≫ 호전(戶典) 적전조에 “적전은 그 부근의 농민에게 경작하게 하되 민전(民田) 10결 단위로 1부(夫)를 동원하고, 3부가 적전 1결을 경작하며 그들에게는 공부 이외의 잡요역(雜徭役)을 면제한다.”라고 규정하였다.
그런데 서적전은 그 관리가 허술해 태종 때 설치한 300결이 세종 때의 양전(量田)에서는 모두 관인(官人) 또는 개성 농민이 점유하고 불과 70결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전 기간을 통해 적전은 계속 존치되었으나 국왕의 의례적인 친경은 동적전에서만 거행되었다.
18세기의 ≪속대전≫에 의하면 국왕의 친경 때에는 정전(井田)의 제도를 본떠 활용하고, 기장[黍]·피[稷]·벼[稻]·조[梁]를 수확해 자성에 사용한다고 하였다.
. 출처: 적전[籍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4]. 불교는 하느님.창조신에 대항하는 무신론적 Monkey입니다. 실제로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대항하여 부처 Monkey가 만든 불교는 그 발상지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계급입니다. 오래 겪어보면 인간이나 침팬치과의 불교 Monkey가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1. 침팬치과의 Monkey부처는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계급 다음의 세속 신분으로,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옆길로 빠졌는데, 불교발상지 인도는 다시 불교를 배격하고 힌두교(브라만숭배)를 믿는 나라입니다. 왕의 칭호도 얻지 못한 배척받는 네팔출신 왕자태생이며, 인도는 불교신자를 가장 밑의 천민계급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교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령인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조선 국교인 유교의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하게 하여, 해방이후 한국인은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빠져, 세계사의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필자는 국사(성균관, 해방후의 성균관대)와 세계사(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귀족사제 이나시오의 예수회 산하 서강대.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를 병합하여 한국의 Royal.Imperial대학을 유지해왔으며 앞으로도 不變사항입니다. 패전국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원래 을사조약이 무효(국내법 우선시 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고, 2차대전 패전국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그 때부터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은 없어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으로도 한국에 주권이 없고, 1988년에 발효된 현행헌법으로 보면 임시정부 조항(을사조약.한일합방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의해 선전포고한 적국의 잔재로, 주권.자격.학벌없는 패전국 奴隸.賤民대학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나 국내법.국제법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데, 적산재산 국유화처럼 국립 서울대로 변신해, 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 및 사설 입시지등에서 그 뒤의 奴卑.下人카르텔을 형성해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항거해오고 있습니다.
2. 인도가 그렇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국도 조선시대에 조계종 승려(산속에 머물러야 하고, 시중에 나오면 않되며 혼자 살아야 함. 5,000만 유교성명 한국인 뒤의 존재들임)를 천민으로 만들어서, 필자는 그 역사적 사실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에 주권없는 일본 승려는 일본습속대로 결혼도 하고 절도 사고 팔고, 시중에 불교마크 달고 진출해 있습니다.
3. 다음은 인도의 오랜 불가촉 천민인 불교신자들에 대한 기사입니다. 물론 그후의 이슬람.기독교도 신분은 높지 않습니다만, 불교신자는 오랫동안 천민계급이 인도입니다. 출처는 불교평론 2002년 3월 10일. 기사작성자:이지은.
- 다 음 -
....인도는 비록 불교의 발상지이며 고대에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었으나, 마지막 불교 왕조인 굽타 왕조의 몰락과 힌두교의 재기, 뒤를 이은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으로 불교는 탄생의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불교 죽이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 불교로의 개종에 크게 동참하며 개종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 ‘달리뜨’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 중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수드라’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제5의 신분으로 그림자에만 닿아도 더러워진다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11월에 약 10만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수도인 뉴델리에서 불교로의 개종행사가 열렸고, 그 이후로도 주변의 우따르 쁘라데쉬 주와 비하르 주의 여러 마을에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개종식이 조용히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인도인들, 특히 기존 힌두교도들의 불교로의 개종은 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집단성’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러 명이 모여서 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스트 또는 몇몇 카스트 집단의 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개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개종을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 카스트 내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구성원의 건의로 마을 단위의 카스트 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개종을 결정한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다 보니, A마을의 X카스트가 개종을 한다면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X카스트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앞으로 X카스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불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에 동참하는 카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달리뜨에 속하는 카스트, 과거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인도의 전통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개종’이란 과거나 권위와의 절연을 의미하며 이를 결심하고 감행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신분제와 신분제의 타파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지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일어나고 있는 하층민들의 기독교, 이슬람교로의 개종 또는 힌두교 개혁종파의 창시 등도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북인도 지방에서의 불교 개종 움직임도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최근의 개종운동은 1956년 이래 마하라슈트라를 휩쓸었던 암베드까르 이후의 개종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악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과거의 카스트 제도나 온갖 불평등과 절연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인도의 종교였고, 더구나 고대 인도의 ‘황금기’에 널리 퍼져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종교이기도 했다. 암베드까르는 독특한 인도사 해석을 통하여 빛나는 불교의 전통을 달리뜨들과 연결시켰다.1)
그는 불가촉천민제의 기원을 4세기경 불교와 브라만교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던 당시, 끝까지 불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일부 부족민들에 두고 있다. 브라만들은 불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제의 권위로 더러운 직업을 강제적으로 부과하고 사회와 격리시켰다. 훗날 승려와 사찰이 점차 사라지고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이들도 힌두교화했지만 이미 대대로 이어지던 더러운 직업 때문에 이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베드까르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2)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잡아 그들이 조상들의 종교를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로 믿어진다.
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81
4. 중앙일보 2020.09,17 서 유진 기자 보도뉴스.
... "힌두교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도로 개종을 많이 하다 보니 최근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강제로 불교도를 힌두교로 '재개종'시키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중앙일보] “개도 먹는 우물물, 왜 못먹나” 인도 힌두교 천민들 개종 붐
5. 현대불교 2013.02.15. 우명주 박사(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이것은 단지 그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힌두교 신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신불교를 힌두교와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 인식시키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가촉천민을 무시하던 시선을 그대로 불교에 투영해 신불교를 천한 불가촉천민들이 믿는 천한 종교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불교도라는 것이 곧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6. 일본은 인도와 달리 동남아 패전국.약소국들인 태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처럼 불교국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대중언론에서 최근 유교가 도전받고 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일본 불교), 기독교의 주권이 없는 법리적 측면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7. 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가가 되어, 성씨없는 賤民 점쇠를 새롭게 일본 천황으로 옹립하여 불교국답게 점쇠賤民.불교 Monkey점쇠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하였습니다. 점쇠賤民.불교Monkey천황은 일제 강점기에 경성제대(그 후신이 마당쇠賤民.불교 Monkey서울대)를 설립하였고, 일제 강점기의 불교전문학교(동국대), 초급대(부산대,경북대,전남대,이리농림고 후신인 전북대 농대, 서울시립대등)와 전국 각지의 공립 중고등학교를 만들어서 주권.자격.학벌없이 서울대 뒤의 카르텔이 되어 대중언론에서 발호하여왔습니다. 서울대, 연세대(일본 강점기 연희전문 후신 연세대), 고려대(구한말 서민출신 이용익이 만든 사설 보성전문 후신. 보성전문은 이후 동학란을 일으킨 천도교 소속이다가, 해방후 친일파 김성수가 인수하여 대학교로 변경)의 대중언론 카르텔뒤에 새로 생긴 해방후의 대학들은 주권.자격.학벌없이 그 한참뒤에서 억눌려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국사 성균관 자격가진 해방후의 성균관대에 대항해, 대중언론에서 성균관대를 오도해왔습니다. 그러나 이 카르텔 및 왜구 잔재학교들은 현행헌법이나 조선.대한제국 관습으로 볼 때는 패전국 잔재로 한국영토에 남은 奴隸.賤民이며, 하느님을 부정하고 창조신에 항거하는 침팬치.Monkey류이거나 그 뒤의 奴卑.下人일 뿐입니다. 해방후에 새로생긴 대학들이나 중고등학교중 서울대가 가장 좋고 연세대.고려대가 그 다음이며 그 뒤에서 순번따지는 대학들은 대중언론.입시지의 주장을 믿고 현혹된 奴卑.下人입니다.
8. 불법.강제의 일제 강점기를 청산하지 못해, 대중언론.입시지.학원.학교교사들의 무지나 사기에 속아 살아온 분들을 구제하기는 해야합니다만, 대학학벌은 영원토록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를 최고대학으로 하면서, 세계사를 반영하여 교황윤허 서강대를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로 예우하는 방법을 지속시키겠습니다. 이러한 기만에 속은것을 인지하고 성황폐하, 서왕전하를 법으로 만드는 공로자들은 개인적으로 중용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는 서강대 출신 양희은님의 의견을 반영하여 성황폐하.서왕전하(두 칭호 모두 정신적인것)만 Royal학벌로 하면서, 이이제이식으로 그 뒤에서 주권.자격.학벌없이 최근 일반대 상위대인 한양대.중앙대.경희대.외국어대.건국대.인하대.이화여대.숙명여대.특목대 뒤에서 패전국 잔재 奴隸.賤民 서울대(100번), 국시 110브(연세대), 고려대(111번)의 개혁도 시도해보겠습니다. 일제강점기 잔재에 전염되거나 볼모로 잡힌 왕족.양반(명백한 족보,주민등록.호적.조상의 벼슬사실등 반영)들은 구제하면서 전주이씨,파평윤씨,안동권씨등 조선.대한제국 명문 문벌이나, 한국 성씨의 원류인 서씨.한씨같은 유교 한문성명들을 문벌(門閥)로 계승하는 방법도 병행해 보겠습니다.
5].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신(天生蒸民) 유교의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 이십니다. 가톨릭도 하느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점은 유교와 비슷한 세계종교입니다.
이런 과정때문에, 국사와 세계사를 병합하여 Royal성균관대(한국 최고대).Royal 서강대(교황윤허로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로 필자(성균관대 출신 윤 진한, 1983학번. 성균관대 경상대학 무역학과, 주간, 퇴계장학생. 문필가.유학자.사상가)는 규정하였습니다. 정신적으로는 성황폐하(윤 진한), 서왕전하(서강대 기록보존소 교수 서진교. 서강대 사학과 출신). 법으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필자는 그렇게 하였고, 후세의 성균관대 출신이나 서강대 출신이 이 지위를 법으로 이어받아야 할것입니다.
성균관대와 관련, 해방후 법적 측면은 이렇습니다. 미군정에서 성균관을 복구시키기로 법률이 발효되어 임시정부 요인들과 남북유림들이 성균관에 대자를 더붙여 성균관대 설립을 결의(고문:이승만.김구, 위원장:김창숙)하였고,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 성균관대는 성균관장(성균관대 초대 학장 겸임)이 성균관대신 성균관대를 미군정에 등록시켜, 그 때부터 성균관의 자격은 성균관대로 정통승계 된것입니다. 미군정에서 향교재단의 재산으로 성균관과 성균관대학의 유지법을 만들어 성균관대의 재정에 기여토록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것입니다. 이 뒤에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조선 국교 유교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한국인 모두. 그 뒤에 조계종 천민승려. 그 뒤에 주권.자격.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추종 카르텔 및 각종 왜놈학교(그 뒤에 새로생긴 신생 대학들).
1. 해방후 미군정당시부터 미군정 당국과 성균관, 전국 유림, 임시정부 요인들 입장은 국사에 나오는 성균관의 승계대학이 성균관대였음.
가). 1편
http://blog.daum.net/macmaca/1502
나). 2편
http://blog.daum.net/macmaca/1503
필자가 글을 써 놓은 상기 블로그를 읽어보십시오.
3. 미군정령 제 194호 6조(1948년)는, 향교재단의 재산으로 성균관과 성균관대학의 유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381
4. 영상역사관, 1954 대한뉴스 제46호,이승만대통령 내외분,문교부장관등 참석, 공자님탄생 기념식
http://blog.daum.net/macmaca/2367
5. 을사조약이후, 일본 불법 강점기에 대항해 온, 을사조약 무효 이론(국내법과 국제법)을 현행헌법과, 대통령령에 의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조선.대한제국의 성균관이 해방후의 사립 성균관대로 승계되어 600년 역사를 가짐)의 의견까지 연결해서 살펴봄.
http://blog.daum.net/macmaca/2026
6. 미군정당시 등록된 성균관대(교육기구)는 국사교육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과 같은 개념임. 성균관대(교육기구)는 국사교육 성균관의 정통성을 승계한 6백년 역사의 대학. 미군정당시 제사기구는 성균관으로 분리되어 현재까지 이름.
http://blog.daum.net/macmaca/2136
7. 역대 국사교과서에 나타나는 성균관. 개화기.대한제국기, 미군정기 및 교수요목기, 대한민국 수립후 1차 교육과정~7차 교육과정까지.
http://blog.daum.net/macmaca/1900
8.프랑스 공법학자 레이는 프랑스잡지≪국제공법≫1906년 2월호에쓴 특별기고에서 을사조약 무효 주장. 그리고 UN 국제법 위원회에서도 을사조약은 무효라 함.
http://blog.daum.net/macmaca/1772
9.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의 무효에 대한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1905
10. 自然人에 대한 공평한 능력우대와 달리 法人體로볼때, 일본 강점기 잔재 경성제대.관립전문학교 후신 서울대등은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강점기 잔재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732
11. 성균관에서 이어진 대학이 현재의 사립 성균관대라고 정부측 의견이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에 공식화 되어 있는데, 황사손(이원)에 대해서는 정부측 학술사전으로 아직 언급된 내용은 없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1774
12. 세계사.한국사 교과서(참고서),사전,학술서가 바뀌지 않는한 유구한 역사의 기득권들도 바뀌지 않음.
http://blog.daum.net/macmaca/1777
13.한국은 2차대전의 승전국 반열임을 상기시킴.
http://blog.daum.net/macmaca/1783
14. 교황청이 지속되고 서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가톨릭전통에 기독교국가라, 2차대전과 별개로 세계사를 바꾸고자 하는
세력은 없는것 같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1787
15. 국내법상 을사늑약이후의 역사적 해석은 승전국반열인 한국(對日 선전포고국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현행헌법에 반영)의 몫임. http://blog.daum.net/macmaca/1977
16. 최종결론. 세계사>UN. 수천년 인류문명과, 역사.전통이 크게 왜곡되지 않고 세계인이 공존하는 방법은, 세계사에 나타나는 사실을 바탕으로, 근대와 현대의 격변기에 대처하는게 적절한 방안 같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1981
17.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27
6]. 헌법이나 국제법,역사적 정론을 따르면 옳은 사회가 될것입니다
헌법(대한민국 임시정부 반영중)중심으로 해야함. 패전국 불교Monkey일본이 강점기에,유일무이 최고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로 복구)격하,폐지.해방후 성균관대로 복구. 강점기에 세계종교 유교국일원 한국유교[하느님(天), 공자나라]를 종교로 불인정.최근 다시 주권.자격.학벌없는 일제 강점기 잔재 패전국 奴隸.賤民,불교 Monkey서울대와 그 하인.奴卑들이 한국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대중언론에서 항거해온 습관으로 유교에도 도전중. 중국의 문화대혁명이후,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를 겪고 있지만, 교과서자격은 유효하므로 한국사와 세계사를 연계하여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유구한 역사를 계승하고, 세계 최초의 대학인 한나라 태학[그 이후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베이징대로 계승됨], 볼로냐.파리대학의 교과서 자격을 이어가면서, 교황성하 윤허의 서강대와 2인삼각체제로 정사인 한국사와 세계사를 연계하고자 함.
한국사와 세계사의 연계가 옳음.한나라이후 세계종교로 동아시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아온 유교전통.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일본항복후 한국에 주권없었음.현행헌법 임시정부 반영,을사조약.한일병합무효(그리고 대일선전포고)임.국사성균관자격 Royal성균관대(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교육기관 성균관승계,한국 最古.最高대).Royal서강대(세계사반영,교황윤허,성대다음예우)는 일류,명문.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항거해온 패전국奴隸.賤民불교Monkey서울대.주권,자격,학벌없는 서울대.추종세력 지속청산!
http://blog.daum.net/macmaca/733
http://blog.daum.net/macmaca/2967
7]. 세계사로 볼때,한나라때 동아시아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은 이미 세계종교 유교가 자리잡았음. 위만조선.한사군때 유교가 한국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고려.조선시대는 기자조선도 인정했었음. 한자, 한문성씨사용,고인돌, 고대 부여 영고,고구려동맹, 예의 무천,삼한의 상달제등 제천의식이나 전통 유교풍속은 황하문명에서 피어난 상고시대 유교의 영향을 나타냄. 이후 삼국시대는 부여 및 삼한의 유교를 승계하여 난생신화같은 하늘의 아들 의식, 하늘숭배.조상숭배가 있는 설날.추석.단오.한식같은 유교 명절, 유교 교육, 한자의 사용, 한문성씨의 사용등이 있었고, 불교는 중국불교형태로 받아들였지만,거센 반발때문에, 신라의 경우 이차돈의 순교가 있고나서야 후발 외래 포교종교로 불교를 받아들임. 고려는 치국의 도가 유교, 수신의 도가 불교였는데, 유교의 각종 명절과 제사가 있었고, 교육기관으로 국자감이 있었음.
유교는 최고신이신 하느님(天)을 중심으로 계절의 신, 산천의 신, 조상신등이 함께 하는 동아시아지역(중국,한국, 베트남,몽고)의 세계사적 수천년 세계종교(한나라 때 동아시아 지역에서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임)입니다. 세계각국의 종교를 판별하는데는 세계사가 우선이고 그 다음 수천년 종교관습이 우선되어야 제대로 판별가능합니다. 교과서와 달리 최근에 새로 생긴 여러가지 종교구별법은 교과서나 종교관습과는 다른 생경하고 특이한 신종 종교판별방식에 불과합니다.
세계사나 유교명절.한문성씨 사용등의 관습을 반영하지 않은 한국의 일부 시각과 달리 전통적인 유교도들인 중국인들이 2차대전이후 새로 만든 신생국가인 대만과 싱가포르도 춘절[春節, 전통적으로 원일(元日), 원단(元旦), 한국은 설날]과 중추절[仲秋節, 한국은 추석]을 쇠는 유교국들입니다. 중국 왕조시대의 영토였다 일본에 할양된후 2차대전후, 다시 중국에 반환된 대만은 공자님 제사(공자님제사는 왕조국가였던 나라들의 특징)를 치르고 있습니다. 대만은 한자(漢字)를 사용하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이슬람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독립된 중국 화교들의 인적 구성이 많은 나라인데, 중국어나 말레이어등을 공용어로 쓰고 있습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의 유교와 세계의 유교를 되돌아보고, 다방면으로 연구.검토하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고 있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27
2.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blog.daum.net/macmaca/2560
3.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blog.daum.net/macmaca/2967
4.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blog.daum.net/macmaca/2632
5.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blog.daum.net/macmaca/2803
6.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blog.daum.net/macmaca/3044
7.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179
8.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http://blog.daum.net/macmaca/3057
9.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blog.daum.net/macmaca/2632
10.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blog.daum.net/macmaca/2596
11. 한국에서는 Royal대인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 세계사를 반영시 관습법적으로 교황 윤허 Royal 서강대도 성대 다음 Royal대로 두 대학이 가장 학벌이 높고 좋음. 서울대는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같은 건 없음. 단지 마음대로 등록하던 여러 신문에 남아있던, 친일부왜배들이 성균관대에 도전하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나라에서 일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주권없고 학벌없는 대학임은 변치 않음. http://blog.daum.net/macmaca/2260
12. 유교의 내세관(來世觀)과 기복신앙(祈福信仰) 측면에 대한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800
13. 유교국가의 전통적 특징중 하나는 호적(戶籍)제도였음. 한국과 중국의 호적제도에 관하여! http://blog.daum.net/macmaca/2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