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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설(중국은 춘절)을 쇠는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국(중국,한국,베트남,몽고)등의 제사, 의식

음력 설(중국은 춘절)을 쇠는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국(중국,한국,베트남,몽고)등의 제사, 의식

 

중국의 경우 이렇습니다.

 

오늘날의 춘절은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시작하는데, 보통 정월보름(정월대보름)이 돼서야 새해를 다 보냈다고 계산한다. 전통적인 의미의 춘절은 음력 12월부터 납제(腊祭)혹은 제조(祭灶)를 시작으로 줄곧 정월 십구까지 지속된다.

춘절을 맞이하는 경축 행사에는 조상(신)에게 제사 지내기, 옛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세우기, 복을 맞이하기, 풍년을 기원하기가 주요 내용이고, 행사의 형식은 풍부하고 다양하며, 각 민족의 짙은 특색을 띄고 있다. 사람들은 춘절에는 가능한 집에 돌아가 친척들과 한자리에 모여, 앞으로 다가올 한 해를 열렬히 기대하고 새로운 한 해의 아름다운 생활을 축복한다.[출처: Ministry of Culture and Tourism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중화 인민 공화국 문화 관광부)].

 

 

춘절날 조상제를 지내 조상을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을 격려한다. 정월 초하루날 조상의 위패를 정당에 모시거나 조사을 상징하는 종이로 만든 신마(神馬)를 걸고 그 앞에 제물을 놓고 촛불을 켠다. 정당이나 사당에서 조상제를 지낼 수도 있고 묘지에 가서 묘제를 지낼 수도 있다. 묘 앞에 향불을 피우고 제물를 놓고 절을 한다.지금은 일반적으로 친인의 묘지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네거리에서 종이를 태우며 제사를 지낸다. 네거리 옆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제사지낼 사람의 이름을 쓴 명전(冥錢)을 동그라미 안에 넣어 대운다. 그러면서 '돈을 드리는 바입니다'고 푸념한다.

조상제를 지낸 후 역서에 제시한 상서롭다는 방향을 향해 초롱불을 켜고 폭죽을 울리며 집을 나서 걸으며 희신(喜神)을 영접한다. 따라서 희신의 방향을 따라 걷다가 묘를 지날 때면 향불을 피우고 절을 하여 한 해의 길함을 기원한다. 희신에게 차린 제물은 대개 단 음식인바 대추,호박, 땅콩, 사탕, 과자 등이다. 춘절은 대길한 날이므로 옛 지방의 관리들은 황제에게 지방의 토산물--'영초가화(靈草嘉禾)'를 헌납한다. 민간에는 깻짚을 꽂는 풍습이 있다.[(출처:중화인민공화국 광주총영사관 자료)].

 

 

[1]. KBS 보도자료. 중국 춘절, 베트남 뗏, 몽고 차강샤르

 

설날은 우리나라 최대 명절로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 그동안 못했던 얘기들은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흔히들 설날 하면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쉽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우리의 설날과 같은 명절이 엄연히 존재한다.

설날을 맞아 다양한 의미를 지닌 각 나라의 설날 명절에 대해 알아봤다.

▲ 중국 춘절




■ 중국의 춘절(春節)

중국은 음력설을 ‘춘절’이라고 부르는데 음력 1월1일이다. 우리의 설날에 해당하는 중국 최대의 명절이다. 중국에서 춘절을 보내는 것을 과년(過年)이라고 하는데,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뜻이다.

중국에서 봄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데, (천지신명과 조상들에게) 지난해의 풍요로운 가을걷이에 대해 감사하고 올해의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기 위해 생긴 명절이 바로 춘절이다. 이번 중국의 춘절은 2월6일부터 13일까지로 이 기간에 약 29억 명이 고향을 찾을 것으로 중국 언론은 예상하고 있다.

설날 중국에서는 우리가 먹는 떡국 대신 만두의 일종인 ‘자오쯔(餃子)’를 먹는다.‘자오쯔’는 곡물반죽으로 만든 피로 각종 고기와 야채소를 싸서 찌거나 구워서 만드는 중국 전통 만두다. 해가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交子(교자,자오쯔)’와 발음이 같은 데서 유래한 풍습이다. 중국인들은 이 음식을 먹으면 귀와 입이 열려 복이 몸속으로 들어온다고 믿는다.

대표적인 설 풍습으로는 폭죽놀이를 꼽을 수 있다. 중국사람들은 시곗바늘이 새해 자정을 가리키면 전통 의상인 치파오를 입고 푹죽을 터트린다. 악한 귀신을 물리친다는 의미가 담긴 행동이다. 또 여럿이 함께 어울려 사자탈춤을 추기도 한다.

춘절 아침에는 일찌감치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 사람들이 친지나 가까운 사람을 찾아다니며 세배(拜年)를 한다. 물론 축하와 덕담이 오가고 세뱃돈(壓歲錢)을 주는 것은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 홍바오[紅包]라고 불리는 세뱃돈 봉투를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설날 선물로는 붉은색 내복, 양말, 허리띠 등이 인기다.

춘절 기간에는 집집마다 연화(年畫)를 사서 실내에 붙인다. 봄을 맞이하는 기쁨을 표현하고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진 연화는 사악한 귀신을 쫓는 신의 모습, 복이나 행운을 기원하는 내용, 신화·고사나 풍속을 그린 것 등 소재가 매우 다양하며, 최근에는 영화배우나 풍경화 등도 많아지고 있다.

또한 춘련(春聯)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붉은 종이에 검은색이나 황금색으로 길상이나 축복의 말을 적어서 대문에 붙이는 것을 가리킨다. 붉은 종이에 복(福)이나 춘(春)을 써서 실내에 거꾸로 붙이는 경우도 있는데, 중국인의 가정에서 자주 목격되는 장면이다.

▲ 베트남 설날




■ 베트남 ‘뗏’

베트남에서 음력 1월1일을 ‘뗏’(Tet)이라 부른다. 베트남에서 가장 큰 명절이고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명절이다.

베트남의 명절 풍습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조상이나 신(神)에게 제사를 지낸 뒤 친척이나 주변 이웃들을 방문해 서로 덕담을 나누고 복을 기원하며, 어린이들에게는 세뱃돈을 주는 풍습이 있다.

베트남의 대표적인 설 음식은 ‘바인쯩’ 이라고 부르는 찹쌀떡이다. ‘바인’은 ‘빵’, ‘쯩’은 ‘자박자박한 물에 찌다’라는 뜻이다.

'바인쯩’은 바나나 잎으로 감싼 사각형의 찹쌀떡 안에 돼지고기와 녹두를 같이 넣어 먹는 것이 특징이다. 약한 불에 3시간 이상 쪄내야 하는 대표적인 슬로푸드로, 한 해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바람을 담아 정성스럽게 만든다.

▲ 몽골 설날




■ 몽골 ‘차강사르’

몽골의 음력설 명칭은 ‘차강사르(Tsagaan Sar, 하얀 달)'. '차강사르'는 몽골어로 직역하면 '하얀 달'이라는 뜻인데 몽골에서는 흰색을 평화, 순수 등을 상징하는 가장 좋은 색으로 여겨서 이날이 몽골 최대의 길일이다.

몽골인들은 새해 첫날 행운을 비는 의식으로 산에 올라 돌탑 주변을 시계방향으로 돌며 새해를 시작한다고 한다.

몽골인들은 또 설날이 되면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고 어른들에게 세배를 올리는데 우리의 절 대신 덕담을 주고 받으며 뺨을 대는 정도라고 한다.

이날 몽골인들은 양고기로 속을 채운 만두(보쯔)나 우유로 만든 차갈릭이란 음식을 먹는다. 명절 때 인기 있는 선물은 사탕으로, 단 음식을 귀하게 여기는 풍습이 있기 때문이다.

장장식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설날은 아시아 국가마다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지만, 가족 및 이웃들과 정을 나누고 음식을 함께 나누는 의미는 비슷하다”며 “가족들이 모여 건강과 덕담을 나누는 것은 가족을 중시하는 아시아 국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2]. 경향신문 보도기사. 중국 설날 춘절맞이 모습.

 

중국 설날 춘절맞이 모습

홍인표 전 경향신문 국제에디터·중국전문기자

2015.02.17 보도자료. 

 

음력 정월 초하루는 중국의 최대 명절인 춘절이다. 한 해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봄의 시작을 예고하는 축제이다.

춘절이 되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민족 대이동이 펼쳐진다. 올해 춘절에는 연인원 28억명이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기차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오토바이나 카풀을 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이미 베이징, 상하이와 같은 대도시는 고향으로 돌아간 외지인 덕분에 텅텅 비어있다. 지난 일년 동안 밤낮없이 외지에서 일했던 중국 사람들은 춘절을 맞아 고향에 돌아가 가족이 한데 모여 식사를 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

춘절은 중국인들에게 단순한 명절이 아니다. 조상을 기리고 가족이라는 커다란 울타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이다.

일부 직장인들은 춘절 연휴를 즐기기 위해 아예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다. 연휴를 마치고 와서 다시 일자리를 구하면 된다는 식이다.

다만 올해 춘절은 불경기에다 시진핑 주석이 추진하고 있는 반부패 정풍운동의 영향으로 어느때보다 썰렁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직장인 60%가 춘절 상여금은 커녕 선물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선물을 받아도 사탕 한봉지나 대파 한 단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중국 지도자들도 춘절을 앞두고는 반드시 농촌을 찾아가 농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것은 농민의 아들, 인민의 아들임을 강조하려는 정치적

행보로 해석된다. 시진핑 주석도 올해 춘절을 앞두고 본인이 문화혁명 시기 7년 동안 힘든 시절을 보냈던 서북지방의 마을을 찾았다.

춘절의 역사는 4천년이 넘는다. 요순시대 순임금이 천자가 되면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 효시로 알려져 있다.

청나라가 망한 뒤 국민당 정부는 양력 설을 도입하는 대신 춘절을 없애려고 했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에게 워낙 깊이 뿌리박힌 춘절을 없애지는 못했다.

 

[3]. 티티엘 뉴스 보도기사. 춘절 시작 알린 중국 현지 모습.

 

2018, 02, 14, 티티엘 뉴스 김종윤 기자 보도자료.

 

춘절 시작 알린 중국 현지 모습

 

 

중국의 춘절(음력 1월1일) 준비로 한창이다.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거리엔 춘절을 보내기 위한 준비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교통 대혼란도 벌써부터 빚어지고 있다. 대도시로 일을 떠난 사람들은 고향에서 명절을 즐기기 위해 대이동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춘절은 중국에서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이다. 춘절은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다가온다'는 의미이다. 이 기간 중국인은 신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오곡이 풍성하고 만사가 뜻대로 되기를 기원한다. 정부에서는 3일간 휴일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보통 도시는 4일, 지방은 음력 정월 보름까지 쉬면서 명절을 즐긴다.
 

춘절에는 만두, 두포(팥빵), 연고(설떡), 미주, 두부, 전퇴(전병), 유각(튀김과자) 등을 즐겨 먹는다.

 

[4]. 중화인민공화국 광주총영사관 자료.

 

중국전통명절--춘절(春節)(2)
2010/06/07

설맞이

그믐날에는 망년과 새해 영접을 주로 한다. 이날 민간에는 문신(門神)과 부절을 붙이며 괘첨(掛簽)을 거는 풍속이 있다. 조상의 위패 앞에 제물을 놓고 촛불을 겨고 향을 태운다. 사람들은 새 옷을 입고 폭죽을 마련한다. 아녀자는 음식을 갖춘다.

그믐날에는 제야밥을 먹는다. 식전에 폭죽을 터뜨리며 식후에는 노인들이 후배들에게 세뱃돈을 준다. 제야밥은 온 집안사람이 다 모여야 한다. 그믐 전에는 외출한 사람도 돌아와야 하는데 돌아오지 않아도 그의 묷으로 수저를 놓아 그가 돌아왔다는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야 한다. 다음은 음식이 풍성해야 한다. 주식은 쌀밥, 빵 떡 등이며 부식에는 생선, 고기, 닭, 베이컨, 완자, 채소부침 등이 있다. 그 중 생선은 보기만 하고 먹지 않거나 다 먹으면 안 된다. '유어(有魚:고기가 있다)'와 '유여(有餘: 유여가 있다)'의 음이 같으므로 해마다 여유가 있고 끼마다 못 다 먹음을 상징하기 위해서이다. 채소무침은 십향채(十香菜) 또는 한소채(寒素菜)라고도 하는데 완두, 땅콩, 콩나물, 목이버섯, 가는 버섯에 말린 두부, 홍당무, 절인 배추, 생강을 가늘게 썰어서 섞은 후 참기름과 조미료를 넣어 만든 것이다. 이 외에 만두도 먹는다. 만두는 작은 떡 갱년 교자(餃子)라고도 부르는데 금은괴 즉 원보(元寶)를 상징한다. 온 나라가 그믐날 만두를 먹으므로 '천하통식'을 상징한다. 상인들은 만두를 끓일 때 한두 개 터치며 '벌었다'라고 고함친다. 이로써 내년 장사가 잘되고 재물에 흥하기를 기원한다. 셋째는 음식 자체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다. 이를테면 복건과 대만에서 먹는 생선 완자는 가정의 단합을 상징한다. 무를 '채두(菜頭:야채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채두(彩頭:좋은 행운)'를 상징한다. 통닭은 금계로 시작함을, 안다조개는 횡재를, 생선완자, 새우완자, 고기완자는 '삼월급제' 등등을 상징한다. 이런 음식들은 모두 그믐밤과 초하루에 먹는다.

새해맞이 활동은 섣달 초여드레부터 벌써 시작된다. 설 물건 사기, 주련쓰기, 떡 만들기 등등이다. 설을 맞건,희사를 경축하건 모두 부귀와 편안, 그리고 한 데 모임을 기원한다. 춘절도 예외가 아니다. 외출한 사람들이 돌아오고 집집마다 모임밥을 먹고 도소주를 마시어 가정의 단합, 화목과 친절한 관계를 나타낸다.

춘절날 조상제를 지내 조상을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을 격려한다. 정월 초하루날 조상의 위패를 정당에 모시거나 조사을 상징하는 종이로 만든 신마(神馬)를 걸고 그 앞에 제물을 놓고 촛불을 켠다. 정당이나 사당에서 조상제를 지낼 수도 있고 묘지에 가서 묘제를 지낼 수도 있다. 묘 앞에 향불을 피우고 제물를 놓고 절을 한다.지금은 일반적으로 친인의 묘지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네거리에서 종이를 태우며 제사를 지낸다. 네거리 옆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제사지낼 사람의 이름을 쓴 명전(冥錢)을 동그라미 안에 넣어 대운다. 그러면서 '돈을 드리는 바입니다'고 푸념한다.

조상제를 지낸 후 역서에 제시한 상서롭다는 방향을 향해 초롱불을 켜고 폭죽을 울리며 집을 나서 걸으며 희신(喜神)을 영접한다. 따라서 희신의 방향을 따라 걷다가 묘를 지날 때면 향불을 피우고 절을 하여 한 해의 길함을 기원한다. 희신에게 차린 제물은 대개 단 음식인바 대추,호박, 땅콩, 사탕, 과자 등이다. 춘절은 대길한 날이므로 옛 지방의 관리들은 황제에게 지방의 토산물--'영초가화(靈草嘉禾)'를 헌납한다. 민간에는 깻짚을 꽂는 풍습이 있다.

그믐 전날에는 문신(門神)을 붙이는 습관이 있다. 문신은 그 유래가 오래며 초창기에는 문 자체의 신이었으나 한나라 이후부터는 인격화한 문신으로 변했다. 처음에는 용사 성경(成慶)이었고 후에는 진시황을 암살하러 갔던 형가(荊軻)를 그려 문신으로 모셨다. 당나라 때 두 장군이 추가되었는바 진숙보(秦叔宝)와 위지경덕(尉遲敬德)이다. 이 두 사람은 본래 당나라 궁전의 경위관이었는데 그들이 너무 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어 당태종이 화사더러 이들의 초상화를 그려 문 옆에 걸게 하여 후세에 문신으로 되었다. 오대부터는 종규(鐘馗)를 문신으로 되었다. 송대에 문신은 예와 같았지만 장식을 위한 문신이 새로이 생겼다. 문신 외에 양식 창고에 신농씨를, 객실과 침실에 복록수삼성(福祿壽三星)을, 또는 만신도(萬神圖), 삼보불(三寶佛) 등을 부쳤다.

주련도 문신처럼 액을 피하려는 용도로부터 변신된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귀신이 복숭아나무를 두려워한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복송아나무 널판을 문에 걸었다. 후에는 그 널판에 신도와 울뢰를 그렸다. 오대 때 촉나라 임금 맹창(孟昶)은 그믐날 한림학사 신인손(辛寅遜)더러 널판에 글을 쓰게 했는데 쓴 글이 마음에 안 들어 스스로 '신년납여경(新年納餘慶), 가절호장춘(嘉節號長春)'이라는 글을 썼다. 이것이 중국 최초의 주련이다. 주련을 붙이는 풍속은 명나라 때부터 민간에 보급되었으며 많은 상서로운 말로 그 내용이 엮어졌다.

주련 외에도 창문에 꽃그림이나 세화를 붙이고 쾌첨도 건다. 세화는 역사, 산수, 팔선(八仙), 인물, 액막이매, 인도호(人頭虎), '부귀유여(富貴有餘)', '세세평안(歲歲平安)' 등 상서로운 도안이며 전지(剪紙)에는 '학과 사슴이 같이 봄을 즐기다', '희열에 찬 아기', '기린이 아기를 보내주다' 등이 있다.

그믐날 밤에는 온 집 사람이 불을 켜고 날을 밝히며 새해를 맞이한다. 이를 '수세(守歲)'라 일컫는다. 수세 때 우선 제야밥을 먹는다. 만두, 떡, 과일, 술 등이 그것이다. 먹는 음식의 이름은 모두 상서로운 말과 관계된다. 사과 이름 '苹(平)果'는 '平安'을, 대추 이름 枣(早)는 봄이 일찍이 옴을, 곶감 이름의 '柿(事)餅'은 사사여의를, 살구 씨 이름의 杏(幸)仁은 행복을 땅콩의 별명 장생과는 장생불로를, 떡 이름 '年糕(高)'는 해마다 높이 올라가다' 등을 의미한다.

또한 방안에서 많은 놀이를 한다. 옛날부터 놀아온 종목으로는 박희(搏戲), 쌍륙(雙陸), 바둑, 장기, 카드, 과이즈, 주사위, 골패, 마작, 승관도(昇官圖) 등이다. 날이 저물 때 어린이들은 죽마를 타거나 팽이를 친다. 또는 매 닭잡기, 소경 사람 더듬기, 주색(走索:공중에 매 단 끈 우에서 재주피우는 것), 잡기 연출 등을 본다.

수세 때 또 한 가지 놀이는 '장구(藏驅)'란 한다. 온 집 사람을 두 개 팀으로 나누어 무슨 고리나 반지, 골무 따위를 찾는다. 한 팀이 감추고 다른 팀이 찾는다. 새해의 순조로움을 빌기 위해서이다. 자정이 다가오면 세대주는 태세(太歲)가 위치한 방향을 향하여 제사를 지내여 희신을 영접한다. 이는 그믐날의 활동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희신을 맞이할 때는 이미 자정이 넘어 정월 초하루이다. 궁정에서는 초하루날 희신유희를 연출한다. 남녀 다섯이 희신 역을 담당하고 그들은 또 팔방신, 화합신 두 신과 만난다. 인간세상에 강림한 후 화합신은 희신에게 짝을 지어준다. 이때 천정에서 '희'자가 떨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하늘에서 희가 내려오다(喜從天降)'이다. 이런 연후에 세배를 하고 만두를 먹고 어린이들은 폭죽 터뜨리고 등롱을 피운다. 이런 과정을 '촌사영년(村社迎年)'이라고 한다.

춘절을 쇨 때는 폭죽을 터뜨린다. 폭죽은 그 역사가 유구하다. 본래는 마디가 있는 대나무를 불에 태워 소리를 내어 액을 쫓아버리는 뜻에서 행해진 것이다. 폭죽은 한 방짜리, 두 방짜리, 여러 방짜리, 줄포, 용포, 쥐포,원앙포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또한 액운을 쫓아버리는 것에서 시작하여 낡은 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이하는 의미가 첨가되었으며 심지어 평안을 기원하고 설 분위기를 들끓게 하는 것으로 되었다.

 

. 출처:중화인민공화국 광주총영사관 자료.

 

[5]. 국가급 중국문화유산총람에 나타난 중국 춘절.

춘절

[  ]

문화유산지정일시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
IX-1, 2006년

춘절()은 중국 민간 전통명절로 음력 정월 초하루를 일컫는 용어이며 일 년 중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한(), 좡(), 부이(), 둥(), 조선(), 흘료(), 야오(), 쉐(), 징(), 다우르() 등 민족은 모두 춘절을 쇠고 있다. 춘절의 역사는 유구하여 은상() 시기 연말연시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활동에서 기원되었으며 관련된 전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한무제가 음력을 사용한 이래 중국은 대대로 24절기중의 입춘일()을 춘절로 삼았으며 음력 정월 초하루를 신년이라고 하였다. 입춘()은 가장 빠른 제천()으로 농업신과 봄의 신에 제사지내고 소를 채찍질하며 풍년을 빌던 날짜였다.

사기(), 한서()에서는 정월 초하루를 사시() 즉 새해의 시작인 세지시(), 시간이 시작되는 시지시(), 하루가 시작되는 일지시(), 한달이 시작되는 월지시() 및 삼조() 즉 세지조(), 월지조(), 일지조()라고 칭하였다. 고인들은 이날을 경축하여 각종 오락 활동을 행하였으며 신을 맞이하고 조상에 제사를 지내며 날씨를 점치고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였으며 후대로 접어들면서 점차 풍부한 신춘가절()의 명절이 되었다.

신해혁명에 의한 중화민국 성립 후 정부는 전통적인 음력을 폐지하고 양력을 채택하며 신년의 경축활동을 금지시켰으나 민간에서는 이를 계속 지켜왔다. 위안스카이(, 원세개)의 집권기간 그레고리력에 의한 양력 1월 1일을 신년 원단()으로 정하며 음력 정월 초하루는 춘절이 되었으며 문화혁명 기간 중에는 춘절기간의 휴가를 억제하기도 하였으나 1980년 다시 휴일로 지정되었으며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출처: 춘절 [春节] (국가급 중국문화유산총람, 2010. 8. 1., 황매희 편집부)

 

[6]. 학습백과 zum에 서술된 베트남의 뗏과 중국의 춘절.

 

베트남의 뗏과 중국의 춘절

1]. 베트남의 뗏.

 

1. 베트남.

 

  • 베트남은 한국에서 남서쪽 방향에 있는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하며,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나라로 수도는 하노이임.
  • 베트남 국기는 '금성홍기'이며, 전통 의상은 긴 옷이란 뜻의 '아오자이'와 야자 잎 모자인 '논'이 있음.

2. 베트남의 설 '뗏'.

 

  • 베트남 사람들은 설 전날에 한 해 동안 일어난 불행을 모두 털어버린다는 의미로 청소를 하고 밤에는 불꽃놀이를 함.
  • 설에는 오전 중에 떡과 술, 과일, 닭고기 등으로 음식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냄.
  • 베트남 어린이들은 설에 우리나라 어린이들처럼 세뱃돈을 받는데 행운과 부를 상징하는 붉은색 봉투에 받음.
  • 설날 첫 손님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어 이름에 복(福), 덕(德) 자가 들어간 사람이나 인품이 좋은 사람을 초대함.

2]. 중국의 춘절.

 

1. 중국.

 

  • 중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나라로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음.
  • 중국의 국기는 '오성홍기'이며, 전통 의상은 '치파오' 임.

2. 중국의 춘절

 

  • 중국의 춘절은 음력 1월 1일이며, 중국에서 가장 큰 명절임.
  • 춘절이 되면 중국 사람들은 고향을 방문해 제사를 지내고 풍년과 가족의 행복을 빎.
  • 춘절에는 각 가정마다 집 안을 청소하고 그림을 붙임. 그림은 풍년과 행운을 빌기 위한 것으로 여러 가지 모습으로 표현됨.

3. 중국의 춘절 행사

 

  • 춘절 행사는 지난해 섣달그믐에 밤을 지새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됨.
  • 이날 밤이 되면 중국 사람들은 가족이 모두 모여 만두를 만들며 밤을 지새움.
  • 아침 해가 솟으면 폭죽을 터뜨리며 집안에 있는 귀신을 쫓음.
  • 가장 대표적인 민속놀이는 사자놀이임.

. 출처: 베트남의 뗏과 중국의 춘절, 학습백과 zum.

 

 

[7]. 중화 인민 공화국 문화 관광부에 서술된 중국의 춘절.

 

춘지에(春节 춘절, 설날)

풍년을 기원하며, 경축하고, 놀이활동이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 축제 “춘절”은 오늘날까지 이미 40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화민족의 가장 성대한 명절이다.
오늘날의 춘절은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시작하는데, 보통 정월보름(정월대보름)이 돼서야 새해를 다 보냈다고 계산한다. 전통적인 의미의 춘절은 음력 12월부터 납제(腊祭)혹은 제조(祭灶)를 시작으로 줄곧 정월 십구까지 지속된다.

춘절을 맞이하는 경축 행사에는 조상(신)에게 제사 지내기, 옛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세우기, 복을 맞이하기, 풍년을 기원하기가 주요 내용이고, 행사의 형식은 풍부하고 다양하며, 각 민족의 짙은 특색을 띄고 있다. 사람들은 춘절에는 가능한 집에 돌아가 친척들과 한자리에 모여, 앞으로 다가올 한 해를 열렬히 기대하고 새로운 한 해의 아름다운 생활을 축복한다.

명절 활동

  • 쇼우쑤이(守岁 수세)

  • 빠이니엔(拜年 세배)

  • 티에춘리엔(贴春联 춘련 붙이기)

  • 빠오주(爆竹 폭죽)

  • 세뱃돈(发压岁钱)

  • 사오천(扫尘 대청소)

명절 음식

교자는 중국에서 꽤나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는 전통 밀가루 음식이다. 중국 북방에서는 제야 음식을 먹을 때 교자를 먹는 전통이 있으며, 각지 교자를 먹는 풍습에는 차이가 있다. 교자를 먹는 것은, 사람들이 옛 것을 버리고 새것을 취하며, 복을 기원하며 길하길 희망하는 특유의 방식이다.

 

.출처: Ministry of Culture and Tourism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중화 인민 공화국 문화 관광부)

 

 

[8]. 현대중국어학원(씨엔타이 중국어학원 대전 둔산 캠퍼스)에 나타난 중국의 춘절.

 

춘절은 음력 1월 1일로서, 우리의 설날에 해당하는 중국 최대의 명절이다. 춘절을 보내는 것을 과년(過年)이라고 하는데,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뜻이다. 전통적으로 농업사회인 중국에서 봄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를 택하여 천지신명과 조상들에게 지난해의 풍요로운 가을걷이에 대해 감사하고, 올해의 풍성한 수확을 기 원하기 위하여 발생한 명절이 바로 춘절이다.

서양에서 매년 12월이 되면 일찌감치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술렁이듯이, 중국에서도 12월에 들어서면서부터 춘절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한다. 우선 음력 12월 8일에는 납팔죽(臘八粥)을 먹는다. 납팔죽은 오곡이 풍성하여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라오서(老舍) 『뤄튀샹즈(駱駝祥子)』의 "새해가 가까웠군. 어느덧 납팔일이니.(年節越來越近了, ᅳ晃兒已是臘八.)"에서 보듯이, 춘절의 분위기는 납팔죽을 먹으면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이어서 음력 12월 23일에는 조왕신(竈神)에게 제사를 지낸다. 엿이나 단 음식을 제사 음식으로 올리는 것은 조왕신이 달게 먹고 옥황상제에게 좋은 말을 해서 집안에 복을 내려주기를 기원하기 때문이다. 춘절의 전날 밤인 음력 12월 30일, 즉 제석(除夕)에는 온 가족이 모두 모여서 연야반(年夜飯)을 먹는다.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가족이 있다면, 그의 밥그릇과 젓가락을 함께 준비하여 모든 가족의 단란함을 표시하기도 한다. 연야반을 먹은 다음에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환담을 나누거나 TV 및 오락을 즐기면서 밤을 지새는데, 이것을 수세(守歲)라고 한다.

바야흐로 새해로 넘어가는 순간인 자정이 되면, 천지를 뒤흔드는 폭죽(鞭炮) 소리가 춘절을 알린다. 요란한 폭죽 소리는 사악한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를 넘어서, 명절 분위기를 한껏 고취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폭죽이 공기를 오염시키고 화재를 유발하며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등 폐해가 커짐에 따라, 베이징 등의 대도시에서는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드디어 춘절 아침, 일찌감치 조상에게 차례(祭祖)를 지낸 사람들이 친지나 가까운 사람을 찾아다니며 세배(拜年)를 한다. 물론 축하와 덕담이 오가고 세뱃돈(壓歲錢)을 주는 것은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 한편 춘절 기간에는 집집마다 연화(年畫)를 사서 실내에 붙인다. 봄을 맞이하는 기쁨을 표현하고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진 연화는 사악한 귀신을 쫓는 신의 모습, 복이나 행운을 기원하는 내용, 신화·고사나 풍속을 그린 것 등 소재가 매우 다양하며, 최근에는 영화배우나 풍경화 등도 많아지고 있다.

또한 춘련(存聯)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붉은 종이에 검은색이나 황금색으로 길상이나 축복의 말을 적어서 대문에 붙이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춘련으로는 붉은 종이에 복(福)이나 춘(春)을 써서 실내에 거꾸로 붙이는 경우도 있는데, 중국인의 가정에서 자주 목격되는 장면이다.

이렇듯 다양한 풍속과 행사로 진행되는 춘절은 현대 중국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 전통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느낌이다. 납팔죽이 캔으로 만들어져서 판매되고, 손으로 빗던 교자(胶子)가 냉동 교자로 대체되며, 세배는 전화, 호출기 및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는가 하면, 연하장(賀年片) 역시 인터넷 사이트에서 수백 종을 찾을 수 있는 등 춘절의 풍속도가 변해가고 있다. 변하는 시대 흐름 속에서 변하는 명절 분위기는 당연한 풍경인가 보다.

 

.출처: 현대중국어학원(씨엔타이 중국어학원 대전 둔산 캠퍼스). 주소:대전시 서구 둔산동 1091번지 밀레니엄프라자 6F

 

[9]. 불교는 하느님.창조신에 대항하는 무신론적 Monkey입니다. 실제로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대항하여 부처 Monkey가 만든 불교는 그 발상지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계급입니다. 오래 겪어보면 인간이나 침팬치과의 불교 Monkey가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1. 침팬치과의 Monkey부처는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계급 다음의 세속 신분으로,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옆길로 빠졌는데, 불교발상지 인도는 다시 불교를 배격하고 힌두교(브라만숭배)를 믿는 나라입니다. 왕의 칭호도 얻지 못한 배척받는 네팔출신 왕자태생이며, 인도는 불교신자를 가장 밑의 천민계급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교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령인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조선 국교인 유교의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하게 하여, 해방이후 한국인은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빠져, 세계사의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필자는 국사(성균관, 해방후의 성균관대)와 세계사(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귀족사제 이나시오의 예수회 산하 서강대.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를 병합하여 한국의 Royal.Imperial대학을 유지해왔으며 앞으로도 不變사항입니다. 패전국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원래 을사조약이 무효(국내법 우선시 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고, 2차대전 패전국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그 때부터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은 없어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으로도 한국에 주권이 없고, 1988년에 발효된 현행헌법으로 보면 임시정부 조항(을사조약.한일합방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의해 선전포고한 적국의 잔재로, 주권.자격.학벌없는 패전국 奴隸.賤民대학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나 국내법.국제법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데, 적산재산 국유화처럼 국립 서울대로 변신해, 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 및 사설 입시지등에서 그 뒤의 奴卑.下人카르텔을 형성해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항거해오고 있습니다. 

 

2. 인도가 그렇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국도 조선시대에 조계종 승려(산속에 머물러야 하고, 시중에 나오면 않되며 혼자 살아야 함. 5,000만 유교성명 한국인 뒤의 존재들임)를 천민으로 만들어서, 필자는 그 역사적 사실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에 주권없는 일본 승려는 일본습속대로 결혼도 하고 절도 사고 팔고, 시중에 불교마크 달고 진출해 있습니다.

 

3. 다음은 인도의 오랜 불가촉 천민인 불교신자들에 대한 기사입니다. 물론 그후의 이슬람.기독교도 신분은 높지 않습니다만, 불교신자는 오랫동안 천민계급이 인도입니다. 출처는 불교평론 2002년 3월 10일. 기사작성자:이지은. 

 

- 다 음 -

 

....인도는 비록 불교의 발상지이며 고대에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었으나, 마지막 불교 왕조인 굽타 왕조의 몰락과 힌두교의 재기, 뒤를 이은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으로 불교는 탄생의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불교 죽이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 불교로의 개종에 크게 동참하며 개종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 ‘달리뜨’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 중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수드라’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제5의 신분으로 그림자에만 닿아도 더러워진다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11월에 약 10만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수도인 뉴델리에서 불교로의 개종행사가 열렸고, 그 이후로도 주변의 우따르 쁘라데쉬 주와 비하르 주의 여러 마을에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개종식이 조용히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인도인들, 특히 기존 힌두교도들의 불교로의 개종은 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집단성’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러 명이 모여서 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스트 또는 몇몇 카스트 집단의 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개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개종을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 카스트 내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구성원의 건의로 마을 단위의 카스트 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개종을 결정한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다 보니, A마을의 X카스트가 개종을 한다면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X카스트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앞으로 X카스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불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에 동참하는 카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달리뜨에 속하는 카스트, 과거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인도의 전통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개종’이란 과거나 권위와의 절연을 의미하며 이를 결심하고 감행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신분제와 신분제의 타파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지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일어나고 있는 하층민들의 기독교, 이슬람교로의 개종 또는 힌두교 개혁종파의 창시 등도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북인도 지방에서의 불교 개종 움직임도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최근의 개종운동은 1956년 이래 마하라슈트라를 휩쓸었던 암베드까르 이후의 개종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악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과거의 카스트 제도나 온갖 불평등과 절연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인도의 종교였고, 더구나 고대 인도의 ‘황금기’에 널리 퍼져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종교이기도 했다. 암베드까르는 독특한 인도사 해석을 통하여 빛나는 불교의 전통을 달리뜨들과 연결시켰다.1)

 

그는 불가촉천민제의 기원을 4세기경 불교와 브라만교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던 당시, 끝까지 불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일부 부족민들에 두고 있다. 브라만들은 불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제의 권위로 더러운 직업을 강제적으로 부과하고 사회와 격리시켰다. 훗날 승려와 사찰이 점차 사라지고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이들도 힌두교화했지만 이미 대대로 이어지던 더러운 직업 때문에 이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베드까르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2)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잡아 그들이 조상들의 종교를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로 믿어진다.

 

 

4. 중앙일보 2020.09,17 서 유진 기자 보도뉴스.

 

... "힌두교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도로 개종을 많이 하다 보니 최근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강제로 불교도를 힌두교로 '재개종'시키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중앙일보] “개도 먹는 우물물, 왜 못먹나” 인도 힌두교 천민들 개종 붐

 

5. 현대불교 2013.02.15. 우명주 박사(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이것은 단지 그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힌두교 신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신불교를 힌두교와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 인식시키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가촉천민을 무시하던 시선을 그대로 불교에 투영해 신불교를 천한 불가촉천민들이 믿는 천한 종교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불교도라는 것이 곧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

 

6. 일본은 인도와 달리 동남아 패전국.약소국들인 태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처럼 불교국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대중언론에서 최근 유교가 도전받고 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일본 불교), 기독교의 주권이 없는 법리적 측면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7. 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가가 되어, 성씨없는 賤民 점쇠를 새롭게 일본 천황으로 옹립하여 불교국답게 점쇠賤民.불교 Monkey점쇠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하였습니다. 점쇠賤民.불교Monkey천황은 일제 강점기에 경성제대(그 후신이 마당쇠賤民.불교 Monkey서울대)를 설립하였고, 일제 강점기의 불교전문학교(동국대), 초급대(부산대,경북대,전남대,이리농림고 후신인 전북대 농대, 서울시립대등)와 전국 각지의 공립 중고등학교를 만들어서 주권.자격.학벌없이 서울대 뒤의 카르텔이 되어 대중언론에서 발호하여왔습니다. 서울대, 연세대(일본 강점기 연희전문 후신 연세대), 고려대(구한말 서민출신 이용익이 만든 사설 보성전문 후신. 보성전문은 이후 동학란을 일으킨 천도교 소속이다가, 해방후 친일파 김성수가 인수하여 대학교로 변경)의 대중언론 카르텔뒤에 새로 생긴 해방후의 대학들은 주권.자격.학벌없이 그 한참뒤에서 억눌려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국사 성균관 자격가진 해방후의 성균관대에 대항해, 대중언론에서 성균관대를 오도해왔습니다. 그러나 이 카르텔 및 왜구 잔재학교들은 현행헌법이나 조선.대한제국 관습으로 볼 때는 패전국 잔재로 한국영토에 남은 奴隸.賤民이며, 하느님을 부정하고 창조신에 항거하는 침팬치.Monkey류이거나 그 뒤의 奴卑.下人일 뿐입니다. 해방후에 새로생긴 대학들이나 중고등학교중 서울대가 가장 좋고 연세대.고려대가 그 다음이며 그 뒤에서 순번따지는 대학들은 대중언론.입시지의 주장을 믿고 현혹된  奴卑.下人입니다. 

 

8. 불법.강제의 일제 강점기를 청산하지 못해, 대중언론.입시지.학원.학교교사들의 무지나 사기에 속아 살아온 분들을 구제하기는 해야합니다만, 대학학벌은 영원토록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를 최고대학으로 하면서, 세계사를 반영하여 교황윤허 서강대를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로 예우하는 방법을 지속시키겠습니다. 이러한 기만에 속은것을 인지하고 성황폐하, 서왕전하를 법으로 만드는 공로자들은 개인적으로 중용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잔재에 전염되거나 볼모로 잡힌 왕족.양반(명백한 족보,주민등록.호적.조상의 벼슬사실등 반영)들은 구제하면서 전주이씨,파평윤씨,안동권씨등 조선.대한제국 명문 문벌이나, 한국 성씨의 원류인 서씨.한씨같은 유교 한문성명들을 문벌(門閥)로 계승하는 방법도 병행해 보겠습니다. 

 

 

[10].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신(天生蒸民) 유교의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 이십니다. 가톨릭도 하느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점은 유교와 비슷한 세계종교입니다. 

 

이런 과정때문에, 국사와 세계사를 병합하여 Royal성균관대(한국 최고대).Royal 서강대(교황윤허로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로 필자(성균관대 출신 윤 진한, 1983학번. 성균관대 경상대학 무역학과, 주간, 퇴계장학생. 문필가.유학자.사상가)는 규정하였습니다. 정신적으로는 성황폐하(윤 진한), 서왕전하(서강대 기록보존소 교수 서진교. 서강대 사학과 출신). 법으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필자는 그렇게 하였고, 후세의 성균관대 출신이나 서강대 출신이 이 지위를 법으로 이어받아야 할것입니다.   

 

성균관대와 관련, 해방후 법적 측면은 이렇습니다. 미군정에서 성균관을 복구시키기로 법률이 발효되어 임시정부 요인들과 남북유림들이 성균관에 대자를 더붙여 성균관대 설립을 결의(고문:이승만.김구, 위원장:김창숙)하였고,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 성균관대는 성균관장(성균관대 초대 학장 겸임)이 성균관대신 성균관대를 미군정에 등록시켜, 그 때부터 성균관의 자격은 성균관대로 정통승계 된것입니다. 미군정에서 향교재단의 재산으로 성균관과 성균관대학의 유지법을 만들어 성균관대의 재정에 기여토록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것입니다. 이 뒤에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조선 국교 유교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한국인 모두. 그 뒤에 조계종 천민승려. 그 뒤에 주권.자격.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추종 카르텔 및 각종 왜놈학교(그 뒤에 새로생긴 신생 대학들).  

 

1. 해방후 미군정당시부터 미군정 당국과 성균관, 전국 유림, 임시정부 요인들 입장은 국사에 나오는 성균관의 승계대학이 성균관대였음.

가). 1편

http://blog.daum.net/macmaca/1502

 

나). 2편

http://blog.daum.net/macmaca/1503

필자가 글을 써 놓은 상기 블로그를 읽어보십시오.

 

3. 미군정령 제 194호 6조(1948년)는, 향교재단의 재산으로 성균관과 성균관대학의 유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381

 

4. 영상역사관, 1954 대한뉴스 제46호,이승만대통령 내외분,문교부장관등 참석, 공자님탄생 기념식

http://blog.daum.net/macmaca/2367

 

5. 을사조약이후, 일본 불법 강점기에 대항해 온, 을사조약 무효 이론(국내법과 국제법)을 현행헌법과, 대통령령에 의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조선.대한제국의 성균관이 해방후의 사립 성균관대로 승계되어 600년 역사를 가짐)의 의견까지 연결해서 살펴봄.   

http://blog.daum.net/macmaca/2026

 

6. 미군정당시 등록된 성균관대(교육기구)는 국사교육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과 같은 개념임. 성균관대(교육기구)는 국사교육 성균관의 정통성을 승계한 6백년 역사의 대학. 미군정당시 제사기구는 성균관으로 분리되어 현재까지 이름.

http://blog.daum.net/macmaca/2136  

 

7. 역대 국사교과서에 나타나는 성균관. 개화기.대한제국기, 미군정기 및 교수요목기, 대한민국 수립후 1차 교육과정~7차 교육과정까지.

http://blog.daum.net/macmaca/1900

8.프랑스 공법학자 레이는 프랑스잡지≪국제공법≫1906년 2월호에쓴 특별기고에서 을사조약 무효 주장. 그리고 UN 국제법 위원회에서도 을사조약은 무효라 함. 

http://blog.daum.net/macmaca/1772

 

9.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의 무효에 대한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1905

10. 自然人에 대한 공평한 능력우대와 달리 法人體로볼때, 일본 강점기 잔재 경성제대.관립전문학교 후신 서울대등은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강점기 잔재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732

 

11. 성균관에서 이어진 대학이 현재의 사립 성균관대라고 정부측 의견이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에 공식화 되어 있는데, 황사손(이원)에 대해서는 정부측 학술사전으로 아직 언급된 내용은 없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1774

 

12. 세계사.한국사 교과서(참고서),사전,학술서가 바뀌지 않는한 유구한 역사의 기득권들도 바뀌지 않음.

http://blog.daum.net/macmaca/1777     

13.한국은 2차대전의 승전국 반열임을 상기시킴.  
http://blog.daum.net/macmaca/1783

14. 교황청이 지속되고 서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가톨릭전통에 기독교국가라, 2차대전과 별개로 세계사를 바꾸고자 하는

세력은 없는것 같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1787
15. 국내법상 을사늑약이후의 역사적 해석은 승전국반열인 한국(對日 선전포고국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현행헌법에 반영)의 몫임. http://blog.daum.net/macmaca/1977

16. 최종결론. 세계사>UN. 수천년 인류문명과, 역사.전통이 크게 왜곡되지 않고 세계인이 공존하는 방법은, 세계사에 나타나는 사실을 바탕으로, 근대와 현대의 격변기에 대처하는게 적절한 방안 같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1981

17.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27

 

[11]. 헌법이나 국제법,역사적 정론을 따르면 옳은 사회가 될것입니다

헌법(대한민국 임시정부 반영중)중심으로 해야함. 패전국 불교Monkey일본이 강점기에,유일무이 최고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로 복구)격하,폐지.해방후 성균관대로 복구. 강점기에 세계종교 유교국일원 한국유교[하느님(天), 공자나라]를 종교로 불인정.최근 다시 주권.자격.학벌없는 일제 강점기 잔재 패전국 奴隸.賤民,불교 Monkey서울대와 그 하인.奴卑들이 한국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대중언론에서 항거해온 습관으로 유교에도 도전중. 중국의 문화대혁명이후,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를 겪고 있지만, 교과서자격은 유효하므로 한국사와 세계사를 연계하여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유구한 역사를 계승하고, 세계 최초의 대학인 한나라 태학[그 이후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베이징대로 계승됨], 볼로냐.파리대학의 교과서 자격을 이어가면서, 교황성하 윤허의 서강대와 2인삼각체제로 정사인 한국사와 세계사를 연계하고자 함.

한국사와 세계사의 연계가 옳음.한나라이후 세계종교로 동아시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아온 유교전통.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일본항복후 한국에 주권없었음.현행헌법 임시정부 반영,을사조약.한일병합무효(그리고 대일선전포고)임.국사성균관자격 Royal성균관대(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교육기관 성균관승계,한국 最古.最高대).Royal서강대(세계사반영,교황윤허,성대다음예우)는 일류,명문.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항거해온 패전국奴隸.賤民불교Monkey서울대.주권,자격,학벌없는 서울대.추종세력 지속청산!

http://blog.daum.net/macmaca/733

 

http://blog.daum.net/macmaca/2967

 

[12]. 세계사로 볼때,한나라때 동아시아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은 이미 세계종교 유교가 자리잡았음. 위만조선.한사군때 유교가 한국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고려.조선시대는 기자조선도 인정했었음. 한자, 한문성씨사용,고인돌, 고대 부여 영고,고구려동맹, 예의 무천,삼한의 상달제등 제천의식이나 전통 유교풍속은 황하문명에서 피어난 상고시대 유교의 영향을 나타냄. 이후 삼국시대는 부여 및 삼한의 유교를 승계하여 난생신화같은 하늘의 아들 의식, 하늘숭배.조상숭배가 있는 설날.추석.단오.한식같은 유교 명절, 유교 교육, 한자의 사용, 한문성씨의 사용등이 있었고, 불교는  중국불교형태로 받아들였지만,거센 반발때문에, 신라의 경우 이차돈의 순교가 있고나서야 후발 외래 포교종교로 불교를 받아들임. 고려는 치국의 도가 유교, 수신의 도가 불교였는데, 유교의 각종 명절과 제사가 있었고, 교육기관으로 국자감이 있었음.

 

유교는 최고신이신 하느님(天)을 중심으로 계절의 신, 산천의 신, 조상신등이 함께 하는 동아시아지역(중국,한국, 베트남,몽고)의 세계사적 수천년 세계종교(한나라 때 동아시아 지역에서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임)입니다. 세계각국의 종교를 판별하는데는 세계사가 우선이고 그 다음 수천년 종교관습이 우선되어야 제대로 판별가능합니다. 교과서와 달리 최근에 새로 생긴 여러가지 종교구별법은 교과서나 종교관습과는 다른 생경하고 특이한 신종 종교판별방식에 불과합니다. 

세계사나 유교명절.한문성씨 사용등의 관습을 반영하지 않은 한국의 일부 시각과 달리 전통적인 유교도들인 중국인들이 2차대전이후 새로 만든 신생국가인 대만과 싱가포르도 춘절[春節, 전통적으로 원일(元日), 원단(元旦), 한국은 설날]과 중추절[仲秋節, 한국은 추석]을 쇠는 유교국들입니다. 중국 왕조시대의 영토였다 일본에 할양된후 2차대전후, 다시 중국에 반환된 대만은 공자님 제사(공자님제사는 왕조국가였던 나라들의 특징)를 치르고 있습니다. 대만은 한자(漢字)를 사용하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이슬람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독립된 중국 화교들의 인적 구성이 많은 나라인데, 중국어나 말레이어등을 공용어로 쓰고 있습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의 유교와 세계의 유교를 되돌아보고, 다방면으로 연구.검토하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고 있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27

 

2.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blog.daum.net/macmaca/2560

 

3.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blog.daum.net/macmaca/2967

 

4.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blog.daum.net/macmaca/2632

5.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blog.daum.net/macmaca/2803

 

6.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blog.daum.net/macmaca/3044

 

7.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179

 

8.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http://blog.daum.net/macmaca/3057

 

 

9.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blog.daum.net/macmaca/2632

10.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blog.daum.net/macmaca/2596

 

11. 한국에서는 Royal대인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 세계사를 반영시 관습법적으로 교황 윤허 Royal 서강대도 성대 다음 Royal대로 두 대학이 가장 학벌이 높고 좋음. 서울대는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같은 건 없음. 단지 마음대로 등록하던 여러 신문에 남아있던, 친일부왜배들이 성균관대에 도전하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나라에서 일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주권없고 학벌없는 대학임은 변치 않음. http://blog.daum.net/macmaca/2260 

12. 유교의 내세관(來世觀)과 기복신앙(祈福信仰) 측면에 대한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800

 

13. 유교국가의 전통적 특징중 하나는 호적(戶籍)제도였음. 한국과 중국의 호적제도에 관하여! http://blog.daum.net/macmaca/2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