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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음력 4월이 윤달로, 음력 4월이 한 번 더 있습니다.2020년 5월 23일(윤달 4월1일)부터, 6월 20일(윤달 4월 29일)까지 윤달 4월입니다.

올해는 음력 4월이 윤달로, 음력 4월이 한 번 더 있습니다. 2020년 5월 23일(윤달 4월1일)부터, 6월 20일(윤달 4월 29일)까지 윤달 4월입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윤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천문』 윤년에 드는 달. 달력의 계절과 실제 계절과의 차이를 조절하기 위하여, 1년 중의 달수가 어느 해보다 많은 달을 이른다. 즉, 태양력에서는 4년마다 한 번 2월을 29일로 하고, 태음력에서는 19년에 일곱 번, 5년에 두 번의 비율로 한 달을 더하여 윤달을 만든다.

 

1]. 윤달에 대한 두산백과사전의 설명.

 

[ leap month ]

요약 1삭망월은 29.53059일로서, 음력 12달은 1태양년보다 약 11일 짧다. 따라서 계절과 너무 어긋나는 것을 막기 위해 간간이 넣은 달을 윤달이라고 한다.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19년 7윤법으로서, 19태양년에 7개월의 윤달을 둔다.

1삭망월()은 29.53059일이고, 1태양년은 365.2422일이므로 음력 12달은 1태양년보다 약 11일이 짧다. 그러므로 3년에 한 달, 또는 8년에 석 달의 윤달을 넣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음력에서 윤달을 전혀 넣지 않으면 17년 후에는 5, 6월에 눈이 내리고 동지.섣달에 더위로 고통을 받게 된다.

예로부터 윤달을 두는 방법이 여러 가지로 고안되었다. 그 중 19태양년에 7개월의 윤달을 두는 방법을 19년 7윤법()이라 하여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이에 의하면 19태양년이 235태음월과 같은 일수가 된다.

19태양년=365.2422일×19=6939.6018일 235삭망월=29.53059일×235=6939.6887일 차이 0.0869일=2.09시간 여기에서 6939일을 동양에서는 장()이라고 하여 BC 600년경인 중국의 춘추시대에 발견되었고, 서양에서는 메톤주기라고 하여 BC 433년에 그리스의 메톤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장주기, 즉 메톤주기는 계절과 월상()이 먼저대로 복귀되는 주기이다.

예로부터 윤달은 '썩은 달'이라고 하여, "하늘과 땅의 신()이 사람들에 대한 감시를 쉬는 기간으로 그때는 불경스러운 행동도 신의 벌을 피할 수 있다"고 널리 알려졌다. 이 때문에 윤달에는 이장()을 하거나 수의()를 하는 풍습이 전해 내려왔다.

. 출처: 윤달 [leap month] (두산백과)

 

2]. 필자의견 1.

 두산백과의 서술로 보면 윤달은 황하문명에서 피어난 유교문화를 가진 고대 중국에서 BC600년경에 발견된게 있고, 헬레니즘문화를 가진 서유럽의 그리스시대(BC 433년)에 메톤에 의하여 발견된 두가지가 공식적인 발견입니다. 서양인은 두가지 정신적인 축이 헬레니즘과 기독교사상의 헤브라이즘인데, 헬레니즘시대는 아직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정착되기 전입니다. 중국의 경우 BC600년(춘추시대)이라 하면, 공자님(B.C. 551 ~ B.C. 479 )이 태어나시기 이전 시대입니다. 한나라시대 공자님의 유가(儒家)사상이 제자 백가중 국교로 정착되기 이전에는, 은(殷)나라의 상제(上帝), 주(周)나라의 天(하느님)숭배와 하느님 아들(天子)사상을 이어받은 시대로, 필자가 용어를 적용해보면 시원(始原)유교(儒敎)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두산백과의 서술에 의하면 윤달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다 음 -

 

윤달은 "하늘과 땅의 신()이 사람들에 대한 감시를 쉬는 기간으로 그때는 불경스러운 행동도 신의 벌을 피할 수 있다"고 널리 알려졌다. 이 때문에 윤달에는 이장()을 하거나 수의()를 하는 풍습이 전해 내려왔다. 

 

필자가 다시 정리해 봅니다. 유교의 하늘과 땅의 신이 사람들에 대한 감시를 쉬는 기간이라, 윤달에는 이장()을 하거나 수의()를 하는 풍습이 전해 내려왔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하늘숭배와 땅의 신 숭배는 동양에서 유교의 전매특허입니다. 유교의 매장풍습에서 생겨난 묘를 이장(移葬)을 하는 풍습이 윤달의 특성중 하나고, 다른 하나는 수의()를 하는 유교풍습입니다. 수의()는 염습()할 때 시신에게 입히는 옷인데, 우리나라의 염습제도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다 음 -

 

우리 나라의 염습제도는 3∼4세기에 도입된 중국의 유교사상에 의하여 ≪예기≫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지만 고려말 주자학의 도입이후 14세기부터 주희의 ≪가례≫가 본격적인 조선시대의 예의 기준이 되었다.

 

. 출처: 수의 [壽衣]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필자의견 2.

 

유교가 한국에 언제 유입되었느냐를 따져보면 세계사로 보는 방법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로 보는 방법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세계사로 보는 방법: 세계사로는 한나라 때 한사군시대에 한국에 세계종교 유교가 유입되었다고 보는게 옳습니다.

 

@ 중등역사에 나타나는 세계종교 유교.

1. 중등역사 7단원 통일제국의 형성과 세계 종교의 등장(고대 중국의 통일과 유교의 성립).

 

세계종교 관련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으로 유교, 불교, 기독교등 세계종교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지침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 - 한국검인정교과서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 교육과정 적용을 위한 중학교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 교육과학기술부

 

15 Page에 이런 지침이 나옵니다

 

⑺ 통일 제국의 등장 고대 문명의 형성 이후 세계 여러 지역에서 등장한 통일 제국의 정치적 변천과 그 특징을 다룬다. 지역별로 통일 제국이 성립되어 확대되는 모습을 살피고, 이어 제도의 정비 내용 및 문화적 특징을 이해한다. 아울러 각 지역 의 문화 발전이 유교, 불교, 기독교 등 세계 종교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과정 을 파악한다. ➀ 춘추ㆍ전국시대, 진, 한에 이르는 정치ㆍ문화적 변화에 대한 이해를 바 탕으로 진ㆍ한 제국이 이후 중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파악한다. 춘추․전국 시대에 제후국들 간의 경쟁으로 인해 사회․경제적으로 발전하였 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며, 당시 활약했던 주요 학자와 그들의 활동을 찾 아보게 한다. 진은 중국 영역을 통일하였으며 한 제국은 진이 세운 중앙 집 권 정치체제를 계승하여 통일 제국을 안정시켰음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진․한 제국이 이후 중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춘추․전국시대를 혼란의 시대로 규정하기 보다는 변혁의 시대라는데 유의 한다. 한 고조 시대의 과도적 제도에 관한 서술로 인해 한나라가 진나라와 다른 정치제도를 채택하였다는 혼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유의한다.

 

https://www.ktbook.com/edata/download.asp?BoardName=PDS_Auth&num...

 

2. 위 지침에 의거한 듯 교학사 자료는 다음 자료 Ⅶ. 통일 제국의 등장 1. 중국의 통일 제국과 유교에서 유교가 오랫동안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사상이 되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 다 음 -

통일 제국의 등장

 

www.kyohak.co.kr/2013textbook/history/data/01.../역사.../역사-1권-07단원.pdf

 

 

Ⅶ. 통일 제국의 등장 1. 중국의 통일 제국과 유교. 

 

...유가 사상은 한나라 때 유교로 발전하여 오랫동안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사상이 되었다...

 

. 필자 주 1). 고대 세계의 세계종교로 성립한 유교, 불교, 기독교 중 인도의 브라만에 대항해 새로 일어난 무신론적 부처의 불교는, 그 때는 강력한 세계종교였지만, 다시 인도라는 거대한 나라에서 배척받게 되어, 동남아시아 약소국과, 중국.한국.베트남.몽고등에서 단순 포교 종교로 머물며, 제대로 된 교육기관도 없이,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고 배척당하기도 하는등 외래 포교종교상태가 길었음. 고려시대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한국 국사 교육은 가르치고 있음. 이씨 조선당시의 한국에서는 갈수록 승려가 천민이었음. 결혼하지 않고 산속에 머물러야 되는 조계종 승려가 이에 해당됨. 이에 비해 막부시대 전 주민을 절에 등록시켜 기독교에 대항해 온 일본은 제도적으로 불교국가화 되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일본 신도도 불교에 토대한 후발 국지적 신흥종교인데,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는 무신론적 Monkey의 불교사상으로 한국 강점기에 기독교를 배척한 것으로 보아(일본이 유교 국가였다면 외래종교나 이교도로 배척하거나, 조선 조정처럼 조상도 몰라보는 금수로 유교적 배척을 해야 정상임), 창조주 범천을 부정하던 습성의 불교에 토대하니까 나약한 일본 마당쇠(성씨없는 일본 천황이라 한국개념으로 마당쇠.돌쇠임. 부처 Monkey행태를 보이면서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는 일본 부처 Monkey는 유명함)가 일본 천황이 되어 그렇게 하느님보다 높은게 일본 천황이라고 기독교를 탄압한 것 같음. 결혼하는 Monkey 승려가 일본 천황등 그 이하 일본 신도 추종 계급들이고, 또 다른 Monkey가 일본 불교임. 여하튼 일본 강점기에 일본이 일본 신도(일본 신도는 일본 불교에 토대한 후발 국지적 신흥 종교의 하나임), 일본 불교, 극소수 일본 기독교를 강제로 포교하여, 2차대전 패전후에 종교 주권도 없는채로 현재까지 한국 유교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주권이 없는 강제 포교종교로 들어왔기 때문에, 주권없고 학벌없이 대중언론에서 성균관대에 대항하면서 살고 있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추종세력들(왜놈학교 후신들 포함)과 똑같이 한국에서 축출되어야 마땅합니다. 다만, 세계종교 유교로 수천년을 타 종교가 범접치 못하게 굳건하게 지켜오던 중국 유교가 문화대혁명으로 중국 종교 전부가 수난기를 겪었는데, 이 때문에, 그 후유증이 너무 커서 필자는 세계사의 기득권을 이용하여 중국 유교와 다른 공산국가 유교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중국은 서유럽인들이 저술한 것으로 판단되는 세계사에서 참 대단한 혜택을 본 나라입니다. 세계 4대 문명인 황하문명, 세계 종교 유교, 한나라 태학.그 이후의 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 세계 4대 발명품(종이.화약.나침판.인쇄술). 여하튼 근세는 서유럽이 세계의 지배세력이었고 중국은 아편전쟁이후 절대적 군사력 열세로 반 식민지 상태였고, 인도는 분명한 영국 식민지로 존재했었습니다. 그런데, 세계사의 오래된 기득권들인 종교나 대학제도에 대한 역사는 변하지 않고 똑같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종교로는 세계종교 유교.불교.기독교, 대학으로는 중국의 태학.국자감, 볼로냐.파리대학. 그래서 필자는 세계사 뿐 아니라, 여러 과목의 학술적 이론을 제공해온 서유럽 학자들의 학설은 앞으로도 지속되리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부처는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면서 브라만교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임은 맞습니다.

 

 

3. (주)지학사 발행. 하이라이트 핵심 세계사에 나오는 내용.

 

* (주)지학사 발행. 하이라이트 핵심 세계사.

지은이: 장종근, 박현준, 최태선

발행일:2003년 1월 10일(초판 1쇄),2011년 12월 10일(9판 1쇄)

 

 

. 필자 주 2). 인용 도서에 나타나는 수자의 형상과 필자가 사용한 수자의 형상은 100% 동일하지 않습니다. 이 점 미리 참작해 주십시오.

 

역사와 인간 ~Ⅱ 도시 문명의 성립과 지역 문화의 형성

 

01. 인류 문화의 기원과 문명의 발생

02. 고대 동아시아 세계

03. 고대 인도.동남아시아.서아시아 세계

04. 고대 지중해 세계

 

Page 22.

 

02. 고대 동아시아 세계

 

탄탄 정리

 

3]. 중국 문화의 기틀을 마련한 한

 

1. 한의 건국과 발전

 

(1). 건국: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장안을 수도로 중국 재통일(기원전 202)...

 

(2). 한고조(유방): 군현제와 봉건제를 절충한 군국제 실시

 

(3). 한 무제의 정치

 

① 중앙 집권 체제 확립:군현제 실시,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채택

 

② 영토 확장: 흉노 정벌, 대월지에 장건 파견(비단길 개척), 고조선.남월 정복

 

③ 경제 정책:소금.철 전매제, 균수법.평준법, 상인에 중과세, 오수전 주조

 

(4) 멸망: 무제 사후 외척과 환관의 권력 투쟁→왕망이 한을 무너뜨리고 신 건국(8)

 

2. 후한의 성립과 발전

 

(1) 배경: 왕망의 급진 정책(토지의 국유화, 노비 매매 금지)→농민 반란으로 신 멸망

(2) 성립: 광무제가 호족의 지원을 받아 뤄양을 도읍으로 건국(25)

(3) 발전: 전한의 정치제도 부활, 유학 존중

(4) 멸망: 환관과 외척의 횡포, 관료들 사이의 당쟁→황건적의 난(184)으로 멸망

 

3. 한의 경제와 사회

 

(1) 경제: 철제 농기구 보급, 농업 기술의 발달→농업 생산력 증가, 토지 사유화 진전

(2) 사회: 빈부 격차 심화→대토지를 소유한 호족의 등장

① 농민 지배: 대토지와 노비 소유→사회 지배 계층으로 성장

② 정치 장악: 향거리선제를 통해 관료로 진출→중앙 정치 주도

 

* 위 본문 중 3. 한의 경제와 사회, (2)사회, ② 정치 장악: 향거리선제를 통해 관료로 진출관련 사항입니다. 편의상 (주)지학사 발행, 하이라이트 핵심 세계사에서 보충설명하는 내용 그대로만 표기하겠습니다.

 

✣ 향거리선제: 지방장관이 여론을 참작하여 지방의 덕망있는 인재를 중앙에 천거하는 관료 선발제도이다. 유학을 공부한 호족들이 선거를 독점하여 지방과 중앙의 관료로 진출함으로써 호족 세력의 성장을 가져왔다.

 

4. 한의 문화

 

(1) 유교의 국교화: 유가사상이 황제와 지배층의 권익을 옹호하는 유교로 발전

① 유학 교육: 수도에 태학 설치, 오경박사 제도 마련

② 관리 선발: 유학의 수준을 평가하여 선발

③ 학문 발전: 유교 경전의 해석과 주석에 주력하는 훈고학 발달

(2) 도가 사상: 신선 사상과 결합→태평도, 오두미도와 같은 민간 신앙으로 발전

(3) 불교 수용: 후한 때 비단길(사막길)을 통해 전래

(4) 역사서 편찬: "사기"(사마천), "한서"(반고)→기전체 방식의 역사 서술 확립

(5) 제지술 발달:채륜이 종이 만드는 법 개량→학문과 사상의 발달 촉진

 

* 위 본문 중 4. 한의 문화 (1) 유교의 국교화 관련 사항입니다. 편의상 (주)지학사 발행, 하이라이트 핵심 세계사에서 보충설명하는 내용 그대로만 표기하겠습니다.

 

✣ 유교의 국교화: 한 무제는 제자백가중에서 유학만을 관학으로 인정하였다. 이에 따라 학문과 정치가 일치되면서 학자가 정치가이고 정치가가 곧 학자라는 정치.교육 일치주의가 이때부터 비롯되었다.

 

* (주)지학사 발행, 하이라이트 핵심 세계사 별책 부록 "정답과 해설"에 나타나는 자료.

 

별책 부록 "정답과 해설" Page 7

 

#자료분석#

 

.유가: 유가는 마음에 우러나오는 "인"과 "예"를 바탕으로 도덕 정치를 할 것을 강조하였다. 한 무제에 의해 통치 이념으로 채택되어 동아시아의정치에도 영향을 미쳤다.

 

 

. 필자 주 3). 위 본문 중 1. 한의 건국과 발전, (3) 한 무제의 정치, ② 영토 확장: 흉노 정벌, 대월지에 장건 파견(비단길 개척), 고조선.남월 정복 관련 사항입니다.

 

흉노는 현대의 몽고지역 일부도 포함되며, 중앙아시아 국가의 일대까지 포함됨. 고조선은 현대의 한국 지역 일부, 남월은 현대의 베트남 일부 지역임.

 

 

4. 오래전 필자가 발췌한 역사교사의 중등역사 블로그 내용.

 

 

중등역사

 

 

7단원 통일제국의 형성과 세계 종교의 등장

 

 

1. 고대 중국의 통일과 유교의 성립

1) 춘추 전국 시대

① 시기 : 주의 동천부터 진에 의한 중국 통일까지의 시대

(기원전 770 ~ 기원전 221 )

② 정치 : 주 왕실의 약화 → 봉건제 붕괴 → 제후들의 독립과 세력 다툼

(춘추 5패, 전국 7웅)

③ 사회 ․ 경제 : 철기의 보급

* 철제 농기구 사용 → 농업 생산력 증가 → 상공업 발전 → 시장, 화폐, 도시

* 철제 무기 사용 → 전투력 향상 → 정복 전쟁 활발

제자백가의 출현

* 부국강병을 위해 각국이 능력 위주로 인재 등용 → 다양한 사상 출현

* 유가 : 공자, 맹자 → 인, 예 강조, 도덕 정치

* 도가 : 노자, 장자 → 무위자연

* 법가 : 한비자, 상앙 → 엄격한 법에 의한 통치 → 진의 통일에 기여

 

2)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 진(秦)

시황제의 통일 정책

* 정치 : ‘황제’ 칭호 사용 → 모든 권력을 황제에게 집중 (중앙집권 통치)

군현제 실시 → 지방관 파견

* 사상 : 법가 사상 채택, 분서갱유 (사상 탄압, 유가 사상가 생매장)

* 사회 ․ 경제 : 화폐, 도량형, 문자 통일

* 만리장성 축조 : 흉노 침입 대비

② 멸망 : 지나친 토목 공사 (만리장성, 아방궁, 진시황릉)와 가혹한 통치

→ 진승 ․ 오광의 난으로 멸망 (기원전 206)

 

3) 한(漢)의 발전과 유교 사회의 형성

① 한의 유방(한 고조)이 항우를 물리치고 수립, 장안에 도읍 (기원전202)

② 한의 성장과 발전

* 고조의 정치

- 군국제 실시 : 중앙은 군현제, 지방은 봉건제로 다스림

* 무제의 정치

- 중앙 집권 체제 강화 : 군현제의 전국적 실시, 유학을 국가 이념으로 채택

- 영토 확장 : 베트남, 흉노, 고조선 정복

- 국가 재정 강화 : 소금, 철 전매제도

- 비단길 개척 : 흉노 격퇴를 위해 장건을 대월지에 파견함, 대월지와의 동맹은

성립되지 않았지만 비단길(실크로드)이 개척됨

③ 신(新) (8~23) : 한 무제 이후 외척인 왕망이 한을 멸망시키고 신을 건국

④ 후한 (25~220)

* 건국 : 왕망에게 빼앗겼던 한을 광무제(유수)가 다시 찾아 부흥시킴

* 쇠퇴 : 환관과 외척의 횡포 극심 → 농민 생활의 어려움

→ 황건적의 난 + 지방 호족들의 자립 → 위 ․ 촉 ․ 오 삼국으로 분열

 

⑤ 한의 경제 : 농업 생산력 증대, 수공업 발달 (질 좋은 비단, 칠기, 옥제품 생산)

 

⑥ 한의 사회와 문화

* 사회 : 호족 중심 사회 → 향촌 질서 유지, 교육 담당, 대토지 소유, 관리로 진출

* 문화 : 중국 전통 문화의 기틀 마련

- 한자 정리 : 오늘날의 형태로 정리됨

- 역사학 : 사마천의 ‘사기’ (기전체), 반고의 ‘한서’

- 지동의 발명 : 후한 때 장형이 발명한 세계 최초의 지진 관측 기구

- 종이 발명 : 후한 때 채륜이 제지법 개량 → 학문과 사상의 발달 촉진

- 불교 전래 : 후한 대에 비단길을 통하여 불교가 전래됨

 

⑦ 유교의 발전과 확산

* 유교의 국교화 : 한 무제가 동중서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교를 국교로 삼음

- 유학 교육 장려 : 수도에 태학 설치, 지방에 오경박사 파견 → 인재 양성

- 유학의 생활화 : 학문의 중심, 관리 선발과 일상생활의 기준이 됨

- 유학의 주요 경전 : 시경, 서경, 역경, 춘추, 예기

- 훈고학의 발전 : 유교 경전의 정리와 해석을 중시함

* 유교의 확산 : 동아시아 국가에서 정치생활과 사회생활의 기본 원리로 자리 잡음

 

 

​위 자료외에 구글에서 통일제국의 형성과 세계 종교의 등장(고대 중국의 통일과 유교의 성립) 자료를 검색해보시면 됩니다.

 

https://www.google.co.kr/search?newwindow=1&source=hp&ei=9yW4XNHjM6GvmAWV86C4Aw&q=%ED%86%B5%EC%9D%BC%EC%A0%9C%EA%B5%AD%EC%9D%98+%ED%98%95%EC%84%B1%EA%B3%BC+%EC%84%B8%EA%B3%84%EC%A2%85%EA%B5%90%EC%9D%98+%EB%93%B1%EC%9E%A5&oq=&gs_l=psy-ab.1.1.35i39l6.0.0..4790...1.0..0.154.154.0j1......0......gws-wiz.....6.LK8LP_GHrRo

 

통일제국의 형성과 세계종교의 등장 - Google 검색

농경민과 유목민의 경계를 상징한다. 계 여러 지역에서는 통일 제국이 형성되어 발전해 나갔. 으며, 오늘날 세계 종교로 발돋움한 불교, 유교, 크리스트교. 등이 등장  ...

www.google.co.kr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로 보는 방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한국에 유교 문화가 전승된 시기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음.

 

- 다 음 -

 

이미 고조선시대 즉 위만시대와 한사군이 설치되었던 시기부터 중국문화와 유교사상이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첨부자료.

다른 종교도 그렇지만, 세계종교 유교는 세계사로 학술적 접근을 해야 적절합니다. 중국 한(漢)나라때 동아시아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서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 그리고 한국 유교.

http://blog.daum.net/macmaca/2888

 

4]. 필자의견 3.

 

한국민족문화 대백과로 볼 때, 우리나라 유교의 도입시기가 고조선시대 즉 위만시대와 한사군이 설치되었던 시기부터라는 설이 있기 때문에, 염습제도를 설명하면서 나타난 3~4세기라는 말은 유교경전인 예기의 적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지지만, 정확하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 참고로 한사군 시대는 두산백과로 볼 때 다음과 같이 BC 108~BC 107년입니다.

 

- 다 음 -

한사군

[ ]

요약 BC 108∼BC 107년 전한()의 무제()가 위만조선(滿)을 멸망시키고 그 고지()에 설치한 4개의 행정구역.

.출처: 한사군[漢四郡] (두산백과)

 

5]. 국사 편찬위원회에 나타나는 윤달.

 

음력, 양력, 절기, 윤달 - 우리역사넷 - 국사편찬위원회

이에 3년마다 한 번씩 윤달 하나를 두면 음력과 양력 날짜가 거의 비슷해진다. ... 절기라는 것도 확고하게 쓰이지 않았던 고대 중국에서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이전 ...

 

한국문화사

 

전용훈

이제 벽에 있는 달력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큰 글씨의 날짜 아래 조그만 글씨로 또 하나의 월일이 표기되어 있다. 또한, 우수니 경칩이니 춘분이니 하는 글씨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2004년 3월의 달력을 예로 들어 보면, 1일 아래에 2월 11일이라고 조그맣게 표시되어 있고, 5일 아래에는 2월 15일, 20일에는 춘분, 21일에는 윤2월 1일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큰 글씨의 숫자는 양력(陽曆) 날짜이고, 조그만 글씨의 2월 11일, 2월 15일, 윤2월 1일 등은 음력(陰曆) 날짜이다.

‘윤2월 1일’이라는 날짜는 음력을 따를 때 나타나는 달과 날짜이다. 양력과 음력은 날짜 표기를 태양을 기준으로 하느냐, 달을 기준으로 하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양력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이 365.2422일이므로 이 날수를 12개월로 나누어 배열한 것이다. 그래서 30일과 31일을 번갈아 주면서 1년의 총 날수가 365일이 되도록 맞추었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남는 우수리 0.2422일은 맞출 수가 없어서 4년간 모았다가 그 해의 2월에 하루를 더해 준다. 이런 해는 총 날짜 수가 366일이 되며 이를 ‘윤년’이라고 부른다. 윤년은 음력이 아니라 양력에서 날짜가 366일인 해인 것이다. 그런데 실은 우수리가 0.25가 아니라 0.2422이므로 4년에 하 루를 더 주면 조금 남게 되어 100년째에는 하루를 더 주지 않는다. 이런 규칙은 유럽에서 1582년에 만든 그레고리력에서 채용한 것인데,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양력이 이 규칙을 이어받고 있다. 서양에서는 그레고리력 이전에 로마시대에 만든 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을 써 왔다. 이 역법에서는 규칙적으로 4년에 한 번씩 윤년을 배치하였다. 이 역법에서는 1년을 365.25일로 보는 것이니 실제의 수치 365.2422일과 거의 차이가 없다. 그래서 개력을 한 당시에는 태양의 운행과 상당히 잘 맞았다. 그러나 오랜 기간 사용하다 보니 0.2422일과 0.25일의 차이는 매년 쌓여서 실제 운행과 차이가 났다. 급기야 그레고리력으로 개력할 무렵에는 약 11일이나 차이가 나서 도저히 개력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음력은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초승달에서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다시 그믐달로 변하는 주기를 날짜 표기에 사용한 것이다. 이 주기는 29.53일이므로 음력에서는 29일인 달과 30일인 달을 번갈아 두어 날짜와 달의 모양이 잘 맞도록 한다. 물론 이렇게 해도 우수리 0.03일이 남으므로 33개월간 이를 모았다가 하루가 쌓이면 29일인 달에 하루를 더 주어 30일을 만들어 주었다. 음력에서는 1년에 12달을 두는데, 총 날짜 수가 354일밖에 되지 않아 양력보다 약 11일 정도 짧다. 때문에 음력을 사용하는 이슬람교도는 33년이면 양력을 사용하는 사람보다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다.

음력과 양력 모두 사용하는 사람들의 편의에 맞게 날짜를 나타낸 것이므로 어느 것이 더 낫고, 어느 것이 더 못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농경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순수한 음력만 사용하면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없다는 것은 큰 문제였다. 매년 11일씩이나 양력과 차이가 나므로 시간이 흐르면 4월이 겨울이 되고, 12월이 여름이 되어 달의 이름과 계절이 뒤죽박죽된다. 이런 데 신경 쓰지 않고 음력을 지키려는 종교적 신념이나 문화의 뿌리가 깊은 이슬람권에서는 음력만을 쓰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달의 움직임을 달력에 반영시키면 서도 농사를 짓는 생활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였으므로 어떻게든 음력과 양력을 결합시키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 때문에 고안된 것이 바로 윤달과 절기(節氣)이다.103)절기와 윤달의 관계, 그리고 윤달의 배치법에 대해서는 전용훈, 「17∼18세기 서양 과학의 도입과 갈등」, 『동방학지』 117,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02, 1∼50쪽 참조.

음력이 양력보다 약 11일이 적으므로 3년이면 33일이 모자란다. 이에 3년마다 한 번씩 윤달 하나를 두면 음력과 양력의 날짜가 거의 비슷해진다. 윤달을 둔 해는 한 달이 더 있으므로 13개월이 있고, 총 날짜 수는 383일(혹은 384일)이 된다. 원래 음력에서 한 해에는 12개의 달만 두기로 하였으므로 전통시대 사람들은 윤달은 덤으로 덧붙여진 달일 뿐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 달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윤달에는 어떤 나쁜 운명이나 기운이 개입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윤달에 장례에 사용할 수의를 미리 만들어 두는 풍습은 윤달에 길흉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음력과 양력의 1년의 길이를 비교해서 약 11일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하였지만, 좀 더 정확하게 음력과 양력을 일치시키려면 정교한 수학적 계산이 필요하다. 전통시대에 가장 편리하면서 널리 쓰인 방식이 19년에 7회의 윤달을 넣는 것으로, 이 주기는 고대부터 역법에 채용되어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윤달의 규칙이 되었다.

그렇다면 19년에 7회의 윤달을 만드는데, 과연 어느 달 뒤에 윤달을 넣어야 할까? 방법은 여러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역법에 관한 지식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고, 절기라는 것도 확고하게 쓰이지 않았던 고대 중국에서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이전까지 음력으로 12개월을 모두 지낸 다음 12월의 뒤에 윤달을 두었다. 이런 방식의 윤달 배치 규칙을 그 해의 끝에 윤달을 둔다고 하여 ‘세종윤(歲終閏)’이라고 한다. 이것은 단지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고 합의한 규칙일 뿐이므로 달리 약속을 하면 윤달을 매번 6월을 지내고 7월이 되기 전에 둘 수도 있고, 아니면 9월과 10월 사이에 두기로 약속할 수도 있다.

전국시대 이후부터 윤달을 두는 규칙이 새롭게 확립되었는데, 이것을 무중치윤법(無中置閏法)이라고 부른다. 이 규칙은 이십사절기라는, 태양의 운동에 따른 24개의 기준점이 확립되고 난 다음에 성립한 것이다. 흔히 입춘, 우수, 경칩 등 절기는 오랜 옛날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것이라서 음력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절기는 태양의 운동에 따른 기준점이므로 음력이 아니라 양력이다. 흔히 이십사절기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들은 표 ‘절기와 중기’에 나타낸 것처럼 12개의 절기와 12개의 중기(中氣)로 구성되어 있다. 절기를 생각해 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대체로 생활의 편리를 위해 태양의 운동에 따른 계절 변화의 패턴을 24개의 기준점으로 나타내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다. 절기의 이름을 보면 이것을 잘 알 수 있는데, 입춘(立春, 봄이 완전히 왔음), 우수(雨水, 눈이 녹아 물이 됨), 경칩(驚蟄, 겨울잠 자던 곤충들이 깨어남), 춘분(春分, 봄을 가르는 중간), 청명(淸明, 맑은 바람이 붐), 곡우(穀雨, 비가 와서 곡식을 파종함) 등의 계절 변화의 모습을 반영한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중치윤법에서 절기와 윤달의 관계가 맺어지는 출발점은 ‘달의 이름을 중기가 결정한다’는 원칙에 있다. 표 ‘절기와 중기’에 나타나 있듯이 전통시대의 역법에서는 우수가 있는 달을 1월, 춘분이 있는 달을 2월이라고 아예 규정하였다. 그러면 중기가 없는 달은 몇 월이라고 불러야 할까? 바로 이 달에는 중기가 없으니 이름을 붙일 수 없고, 그래서 ‘제대로 되지 않은 달’이란 뜻으로 ‘윤달’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절기는 1년에 24개를 두었으므로 1년의 길이를 24로 나누면 절기의 간격은 15.2일 정도 된다. 두 절기 간격을 합치면 30.4일이므로 음력의 한 달에는 대략 하나의 절기와 하나의 중기가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음력 한 달은 29일이나 30일이므로 두 절기의 간격이 이보다 조금 더 넓다. 이 차이가 33개월 동안 쌓인다면, 중기점의 위치가 전달의 맨 뒷부분과 한 달을 건너뛴 다음 달의 맨 앞부분에 위치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결국 이 중간에 끼인 달은 ‘중기가 없는 달’, 즉 무중월(無中月)이 되는 것이다. 그 달을 몇 월로 불러야 하는지는 그 달의 중기에 의해 결정되므로 이 무중월은 ‘몇 월’이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이것이 달의 이름을 제대로 규정할 수 없는 ‘윤달’이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윤달을 배치하는 것을 ‘중기가 없는 달로 윤달을 삼는다’는 뜻으로 ‘무중치윤법’이라고 부른다. 무중치윤법은 전국시대 이후 중국 역법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확립되었는데, 지금도 음력에서 윤달을 넣을 때는 이 원칙을 따르고 있다.

흔히 전통시대의 달력을 음력이라고 부르듯이 많은 사람이 우리 조상들이 쓰던 달력을 음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 조상들이 쓰던 전통시대의 달력은 음력과 양력이 혼합된 태음태양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오늘날 태양력을 쓰면서도 각 날짜에 음력 날짜를 표기해 주어 음력도 함께 쓰는 방식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절기와 중기

  중기
입춘(立春) 우수(雨水, 우수가 있는 달이 1월)
경칩(驚蟄) 춘분(春分, 춘분이 있는 달이 2월)
청명(淸明) 곡우(穀雨, 곡우가 있는 달이 3월)
입하(立夏) 소만(小滿, 소만이 있는 달이 4월)
망종(芒種) 하지(夏至, 하지가 있는 달이 5월)
소서(小暑) 대서(大暑, 대서가 있는 달이 6월)
입추(立秋) 처서(處暑, 처서가 있는 달이 7월)
백로(白露) 추분(秋分, 추분이 있는 달이 8월)
한로(寒露) 상강(霜降, 상강이 있는 달이 9월)
입동(立冬) 소설(小雪, 소설이 있는 달이 10월)
대설(大雪) 동지(冬至, 동지가 있는 달이 11월)
소한(小寒) 대한(大寒, 대한이 있는 달이 12월)

우리나라의 옛날 달력에서 날짜 표기는 모두 음력으로 하였으므로, 옛날 달력을 지금 양력 달력과 똑같은 구조로 만들면 음력 날짜는 크게 쓰고, 양력 날짜는 작은 글씨로 써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옛날 달력에서 큰 글씨의 음력 날짜 아래에 써넣은 작은 양력 날짜는 무엇일까? 바로 이십사절기이다. 이십사절기는 태양의 운동에 따른 계절의 변화를 지시하는 날짜들이므로 이것이 바로 전통시대의 달력에서 양력 날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전통시대의 달력에서는 음력 날짜를 써넣은 칸에 매일 매일 양력 날짜를 표기하는 대신 1년 중 24개의 양력 날짜만 표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 예로 조선시대의 달력에 ‘갑신년 윤2월 15일’이라고 적힌 칸에 조그맣게 ‘청명’이라고 표기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원숭이해 윤달인 2월 15일이 양력으로 ‘청명(4월 4일)’에 해당한다는 것을 표시해 준 것이다. 물론 절기 날짜는 때에 따라 하루 정도 차이가 날 수는 있지만 거의 양력 날짜에 고정되어 있다. 절기는 음력에 덧붙여 표기된 양력 날짜이다. 그러므로 전통시대에 썼던 달력은 음력이 아니라 양력과 음력 날짜가 동시에 표기된 태음태양력인 것이다.

 

6]. 천자문으로 보는 윤달.

 

윤여성세(閏餘成歲)  율려조양(律呂調陽) 운등치우(雲騰致雨) 노결위상(路結爲霜)

 

남은 윤달로 한 해를 이루었고, 율려로 음양을 고른다. 구름이 올라가 비가 되고, 이슬이 맺혀 서리가 온다.

 

 

달력을 보면 한 달이 30로 되어있지만, 28일이나 31일인 달도 있다. 대체 왜 그런것일까? 그것은 1년의 주기를 해와 달의 운행에 맞추기 위해서 역법으로 날짜를 조절했기 때문이다. 이 역법을 이해하려면 우선 윤달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음력 윤년이나 윤달이 생일이 끼어 있어서 평생 몇 차례 밖에 생일을 쇠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것이 바로 윤달의 짓궂은 장난(?)이다. 윤여閏餘는 '여분의 달', 즉 윤달을 말한다. 윤달은 달의 주기 오차로 인해 발생하는 계절의 혼란을 매끄럽게 중화시켜 주기 위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달이다.

 

해와 달의 운행에 의해 계절이 구분되자, 게절이 한 바퀴를 돌아 제 자리를 찾아오기까지의 과정을 1년으로 정했다. 그런데 1년은 해의 주기로는 365일, 달의 주기로는 365일이어서 10일이나 차이가 있다. 이런 점은 파종과 수확에 적합한 날짜를 정하는데 매우 큰 혼란을 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역법을 만들어 이 날짜를 조절해 이용했던 것이다.

 

고대 중국의 성군으로 알려진 요임금은 희씨와 화씨라는 신하에게 한 해의 날짜를 일정한 법칙에 의해 맞추도록 명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두 사람은 일년동안의 오차인 열흘을 삼년간 모아 윤달을 만드는 벙법을 고안해 냈는데 이것이 바로 역법曆法의 시초라고 알려졌다.   

 

. 출처: 천자문 서당을 뛰쳐나오다!  이상각 2007 초판인쇄발행일 2007년 8월 27일. 지은이 : 이상각, 펴낸이: 윤은숙, 책임편집:신문수, 펴낸곳:그림같은 세상.  

 

7]. 현대의 화장(火葬)에 대하여!

 

1. 유교나 기독교는 화장(火葬)하지 않았는데, 인구가 증가하면서, 종교와 무관하게 전세계적으로 화장이 대세인 시대입니다. 인도에 기원을 둔 화장(火葬)이 꼭 불교적인 것은 아니며, 인더스문명을 가진 인도에 기원을 둔 것인데, 브라만교(힌두교로 이어짐)의 화장풍습이 불교로 전해지고, 인도가 다시 불교를 배척했지만, 브라만교(힌두교로 이어짐)의 화장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한국도 종교와 무관하게 토지의 부족때문에 유럽.미국처럼 화장을 하는 인구가 대세입니다.    

 

유교는 혼(魂)이 하늘로 올라가고 백(魄)은 땅으로 내려가서,백(魄)을 땅에 매장하여왔음. 火葬은 불교의식이라기보다,브라만교 가진 고대 인더스문명에서 발생한 관습에 해당함.현대 유교는 땅이 부족해서,魂만 하늘로 올라가고, 땅으로 흩어지는 魄의처리는 화장,납골당,수목장등 모두가능.

 

2. 사전으로 살펴보는 인도와 브라만교, 힌두교의 화장.

 

1). 프레타

 

[ preta ]

고대 인도의 종교에 나타나는 사자령(). <사라진 자>, <사자>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로, 브라만교에서는 특히 사망한 후에 1년간, 즉 화장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의례와 마지막으로 행하여지는 사핀디 카라나(합령제)에 의해서 피트리(pirt, 조령)의 대열에 들어갈 때까지의 사자령을 가리키는데 제사의 대상이 되는 조령()으로 승격하기 전의 부정한 사자령이다. 그런데 사자에 대해서 위에서 언급한 일련의 의례가 자손이 끊어져 버리는 등의 이유로 행하여지지 않는 경우, 사자령은 부정한 채로, 나아가서 공격적이 되어서 방황하게 되었으며 후대에는 이런 망자()를 가리켜서도 이용되고 있다. 또한 이런 의례에 의한 공물이 끊겨진 영은 기갈에 시달려 형편없는 음식을 먹어 비참한 모습을 한다고 생각하였는데 푸라나에 나타나는 이 프레타의 모습은 불전에 보이는 프레타(아귀)의 모습과 같다. 단, 힌두교의 프레타는 제사가 끊겨진 자인 것에 대해서, 불교는 전세에서 음식물에 대한 탐욕이 강한 자가 아귀도에 떨어진다고 하듯이, 업과 윤회의 세계관에서 합리화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출처:프레타 [preta]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2). 공희

공희 [sacrifice, 供犧]

전형적인 것은 동물을 바치는 것이지만 불길에 공양물을 바치는 호마(護摩)나 힌두교화장, 머리카락 등 신체의 일부를 바치는 행위 등도 광의의 제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단, 유포되어 있는 제물론은 모스...

.출처: 21세기 정치학대사전

 

3. 인도에 기원을 둔 화장.

화장

사체를 불로 태우는 장례법. 사체 처리방법으로서의 화장에는 하나의 특징이 있는데 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사체를 철저하게 파괴, 소멸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화장을 행하는 동기는 이 특징에 관련되어 있다. 인도에 기원을 둔 화장은 사체의 소멸에 의한 혼의 신속한 정화룰 동기로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 외에도 가령 적이나 요술사의 위해로부터 유체를 지키기 위해서 이동민 사이에서 보존에 편리하도록 재만을 남기기 위해서, 또는 망자의 해력()을 제거하기 위해서 화장이 행하여진다. 도시에서의 화장의 보급도 묘지 확보의 곤란함이나 위생학적 견지가 이유이기는 하지만, 화장의 특질에 의거한 점에는 변함이 없다. 유럽에서는 청동기 시대에 널리 행하여졌다. 동남아시아 도서부에서 산발적으로 보이는 화장은 인도에서 받은 영향이다. 이외에 북미, 중미 대부분의 인디언에서 화장은 상당히 빈번하게 행하여졌다고 알려져 있다.

. 출처: 화장(종교학대사전, 1998. 8. 20.)

 

 

4.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화장(火葬).

화장

[ ]

요약 죽은 사람의 시체를 불에 태워서 처리하는 장법().

화장뼈를 추려 항아리나 상자에 넣어서 땅에 묻기도 하고, 가루로 만들어 강이나 산에 뿌리기도 한다.

유럽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있던 장법이며, 일반적으로 서유럽켈트족은 토장()을 하고, 튜튼사람은 화장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BC 1000년경에는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도시에서도 토장과 화장이 병행되었다. 그 후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어 그리스도교의 유체 정화와 부활의 사상에 따라 화장 풍습이 사라졌다. 그러나 교회 묘지의 수용 증대와 묘지의 거주지역 접근 등이 동기가 되어 19세기 말경부터 화장하는 예가 생기기 시작하여 유럽과 미국 각지에서 화장이 증가하고 있다.

동양에서는 불교의 진원지인 인도에서 예로부터 불교의 장법인 화장이 유행되어 오늘에 이른다. 고대 중국에서는 화장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나 후한() 명제() 때에는 서역(西)에서 불교가 전해지면서부터 화장이 생긴 것 같으며, 송대()에는 그 수가 많아진 것으로 보이나 명말청초()에는 점차 쇠퇴하였고 지금은 중국에서 화장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

한국에도 삼국시대에 불교가 중국에서 전래된 뒤부터 다비()라 하여 승려가 죽으면 화장하는 풍습이 있었으나 일반인들은 거의 토장의 풍습을 따랐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12년 ‘묘지 ·화장 ·화장장에 관한 취체규칙’이 제정된 후부터는 일제의 강요, 묘지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화장을 따르는 예가 있었으나, 오랜 전통적 풍습과 관념을 일시에 변혁시킬 수는 없었고 대부분이 계속 토장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인구 팽창에 따른 거주 지역의 확장, 농지와 임야 면적의 확보 등으로 묘지의 절대 면적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며 따라서 화장을 하는 예가 특히 대도시를 중심으로 늘고 있다.

. 출처:화장 [火葬] (두산백과)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나타나는 화장(火葬).

화장이 주춤하는 사이 매장은 다시 증가하였다. 1970년 화장률은 10.7%에 불과하였고, 1981년 13.7%, 1991년 17.8%에 머물렀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점차 화장율이 증가하여 2001년에는 38.3%에 이르렀고, 화장율 증가 추세가 지속되면서 2009년에는 65%에까지 이르렀다.

1990년대부터 화장이 급속도로 증가는 정부의 화장 장려 정책과 묘지 부족 및 관리의 어려움, 화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감소 등에서 기인한다. 저출산과 고령화 현상이 지속되는 경향을 고려하면, 이런 화장의 보편화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출처:화장[火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첨부자료.

 

1. 대학은 배치표가 아니고, 점수발표가 꾸준해야, 배치표도 인정되는데,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가 점수발표가 꾸준한 대학이 아님. 대학학벌이나 역사파악은 국사나 세계사(참고서 포함), 국내법.국제법, 정부간행 백과사전, 여러가지 백과사전, 학술서적등이 가장 좋은 자료임. 그래서 국민들이 쉽게 접할수 있는 입시전문지 베리타스 알파 상위 15개대를 이렇게 정리함. Royal 성균관대와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서강대는 일류.명문대>그 뒤의 입시점수 상위대학들로는 주권없고 학벌없는 패전국 일본 잔재와 그 밑 대학들.

 

왜구억제시스템. ROYAL 성균관대(한국최고대)와 서강대(성대 다음)는 일류.명문대학. 주권.자격.학벌없이 순서없이 한양대,중앙대,경희대,외국어대,건국대,인하대,이화여대,숙명여대,연세대,고려대, 왜구 동국대,시립대,서울대는 300년 정도 이이제이를 거쳐 그 지위를 가늠할것. 학벌은 교과서 자격 국사 성균관(성균관대)이 최고.

http://blog.daum.net/macmaca/2926

 

 

2. 다른 종교도 그렇지만, 세계종교 유교는 세계사로 학술적 접근을 해야 적절합니다. 중국 한(漢)나라때 동아시아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서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 그리고 한국 유교.

http://blog.daum.net/macmaca/2888

 

3. 지역사나 세계사의 定說로 하면,위기발생시 그 기득권을 마지막까지 지키려는 국가는 동아시아 중국(한국등포함), 서유럽 교황청.이탈리아(프랑스등)가 될 것 같습니다.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교과서의 자격을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예외가 되겠지만, 세계사나 다른 이론들을 만들어 교육시켜온 서유럽[근대에 세계지배세력으로 학자들이 많은 나라들(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스페인등)]의 다방면에 걸친 오랜 기득권도 특별히 변할것 같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894

 

 

4.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가 유교도임. 주민등록에 조선성명인 한문성씨와 본관을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하는 나라. 중요한것은 동아시아 유교국가(중국,한국,베트남,몽고. 그리고 2차대전이후의 대만.싱가포르 및 전세계 화교들)에는 하느님(天),계절의 신,산천의 신,조상신,공맹숭배,한문성씨.본관, 한자,삼강오륜,인의예지신,충효,관혼상제,한자,명절이 수천년 체화된것.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

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

http://blog.daum.net/macmaca/2632

 

한국사와 세계사의 연계가 옳음.한나라이후 세계종교로 동아시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아온 유교전통.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 http://blog.daum.net/macmaca/2575

 

 

5.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http://blog.daum.net/macmaca/2560

 

 

6.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179

 

7.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가,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575

 

8. 유교의 내세관(來世觀)과 기복신앙(祈福信仰) 측면에 대한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800

 

9. 유교국가의 전통적 특징중 하나는 호적(戶籍)제도였음. 한국과 중국의 호적제도에 관하여!

http://blog.daum.net/macmaca/2492

 

10. 중국 한(漢)나라시절 세계종교 유교로 성립되어 동아시아국가들에 오랜동안 이어진 삼강오륜(三綱五倫).

http://blog.daum.net/macmaca/2528

 

11.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

http://blog.daum.net/macmaca/2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