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문화권의 24절기인 동지(冬至). 양력 2019년 12월 22일(음력 11월 26일)은 동지입니다.
과거 역사를 보면 동지날에 관상감에서 달력을 만들어 벼슬아치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인지 현재 한국에서는 동지 전후로 새 해 달력 선물을 많이 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 다 음 -
...고대인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축제를 벌여 태양신에 대한 제사를 올렸다"고 합니다.
중국 주(周)나라에서 동지를 설로 삼은 것도 이 날을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며, 역경의 복괘(復卦)를 11월, 즉 자월(子月)이라 해서 동짓달부터 시작한 것도 동지와 부활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필자 주 1). 동지날 팥죽을 먹어야 나이 한 살 더 먹는날로 인식된 것은, 중국 주(周)나라에서 동지를 설로 삼은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동지는 음력 11월입니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중국 주나라 이전 은나라가 있었는데 은정월이라 하여 지금의 음력 12월을 정월로 삼은 적도 있었습니다.
은정월
[ 殷正月 ]
은정(殷正)은 은나라 때의 정월을 가리키는 말인데, 전(轉)하여 은나라의 달력을 지칭하게 되었음. 은정월은 지금의 음력 12월에 해당됨.
용례
- 은정월에 제사 지내는 국중대회는 날마다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는데, 그 이름을 영고라고 하였다. ; 以殷正月祭天 國中大會 連日飮食歌舞 名曰迎鼓 [삼국지 권제30, 21장 뒤쪽, 위서 30 오환선비동이전 부여]
. 출처: 은정월 [殷正月]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필자 주 3). 한국 고대 국가에서 행하던 제천의식 중 부여 영고는 현재의 음력 12월,
[2]. 유교 경전인 예기에 나타난 동지
1].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은 동지(冬至)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郊之用辛也,周之始郊日以至
교사(郊祀)에 신일(辛日)을 택하는것은 주나라 왕실에서 처음으로 교제(郊祭)를 행한것이 우연히 동짓날(日以至)이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2]. 필자가 가지고 있는 예기 설명서와 달리, 다른 예기책에는 더 많은 설명이 있습니다.
중국 Baidu(百度) 백과는 예기 월령과 관련하여 동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礼记·月令》:{仲冬之月} 日短至,则伐木取竹箭
설명하면
{仲冬之月. 음력 11월}
日短至(동지가 되면),则伐木取竹箭(나무를 벌채하고 죽전을 채취한다).
. 필자 주 4). 则은 번체로 則입니다.
[3]. 한국의 사전류에 나타나는 동지(冬至).
1]. 표준국어대사전에 설명된 동지(冬至).
이십사절기의 하나. 대설(大雪)과 소한(小寒) 사이에 들며 태양이 동지점을 통과하는 때인 12월 22일이나 23일경이다. 북반구에서는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 동지에는 음기가 극성한 가운데 양기가 새로 생겨나는 때이므로 일 년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이날 각 가정에서는 팥죽을 쑤어 먹으며 관상감에서는 달력을 만들어 벼슬아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아세1(亞歲)ㆍ이신4(履新)ㆍ이신지경ㆍ이장11(履長)ㆍ이장지경.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설명된 동지(冬至).
정의
24절기의 하나.
내용
대설과 소한 사이에 있으며 음력 11월 중, 양력 12월 22일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270°위치에 있을 때이다. 일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하지로부터 차츰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여 동짓날에 이르러 극에 도달하고, 다음날부터는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고대인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축제를 벌여 태양신에 대한 제사를 올렸다.
중국 주(周)나라에서 동지를 설로 삼은 것도 이 날을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며, 역경의 복괘(復卦)를 11월, 즉 자월(子月)이라 해서 동짓달부터 시작한 것도 동지와 부활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동짓날에 천지신과 조상의 영을 제사하고 신하의 조하(朝賀)를 받고 군신의 연예(宴禮)를 받기도 하였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했고, 민간에서는 흔히 ‘작은 설’이라 하였다고 한다. 태양의 부활을 뜻하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설 다음 가는 작은 설의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 유풍은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을 하고 있다.
동짓날에는 동지팥죽 또는 동지두죽(冬至豆粥)·동지시식(冬至時食)이라는 오랜 관습이 있는데,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團子)를 만들어 넣어 끓인다.
단자는 새알만한 크기로 하기 때문에 ‘새알심’이라 부른다. 팥죽을 다 만들면 먼저 사당(祀堂)에 올리고 각 방과 장독·헛간 등 집안의 여러 곳에 담아 놓았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는다.
동짓날의 팥죽은 시절식(時節食)의 하나이면서 신앙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즉, 팥죽에는 축귀(逐鬼)하는 기능이 있다고 보았으니, 집안의 여러 곳에 놓는 것은 집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내기 위한 것이고,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薦新)의 뜻이 있다.
팥은 색이 붉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陰鬼)를 쫓는 데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으며 민속적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다.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 것 역시 악귀를 쫓는 축귀 주술행위의 일종이다.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도 팥죽·팥떡·팥밥을 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짓날에도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동짓달에 동지가 초승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동지팥죽은 이웃에 돌려가며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한다.
동짓날 팥죽을 쑤게 된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신(疫神)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 것이다.
동짓날 궁 안에 있는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소의 다리를 고아, 여기에 백강(白薑)·정향(丁香)·계심(桂心)·청밀(淸蜜) 등을 넣어서 약을 만들어 올렸다. 이 약은 악귀를 물리치고 추위에 몸을 보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동짓날에는 관상감(觀象監)에서 새해의 달력을 만들어 궁에 바치면 나라에서는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어새(御璽 : 옥새)를 찍어 백관에게 나누어 주었다.
각사(各司)의 관리들은 서로 달력을 선물하였으며, 이조(吏曹)에서는 지방 수령들에게 표지가 파란 달력을 선사하였다. 동짓날이 부흥을 뜻하고 이 날부터 태양이 점점 오래 머물게 되어 날이 길어지므로 한 해의 시작으로 보고 새 달력을 만들어 가졌던 것이다. 매년 동지 무렵이 되면 제주목사는 특산물로서 귤을 상감에게 진상하였다.
궁에서는 진상 받은 귤을 대묘(大廟)에 올린 다음에 여러 신하에게 나누어주었고, 멀리에서 바다를 건너 귤을 가지고 상경한 섬사람에게는 그 공로를 위로하는 사찬(賜餐 : 임금이 음식을 내려줌)이 있었으며, 또 포백(布帛 : 베와 비단) 등을 하사하였다.
멀리에서 왕은에 감화되어 진기한 과일을 가져온 것을 기쁘게 여겨 임시로 과거를 실시해서 사람을 등용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황감제(黃柑製)라 하였다.
그 밖에 민간에서는 동짓날 부적으로 악귀를 쫓고, 뱀 ‘蛇(사)’자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여 뱀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풍습이 있다. 또 동짓날 일기가 온화하면 다음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이 죽는다고 하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전한다.
. 출처: 동지[冬至]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두산백과에 설명된 동지.
동지
[ 冬至 ]
- 요약 24절기 가운데 하나로, 대설(大雪)과 소한(小寒) 사이이다. 음력 11월 중기(中氣)이고 양력 12월 22일경이 절기의 시작일이다. 북반구에서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낮아서 밤이 가장 긴 날이며, 같은 시간에 남반구에서는 이와 반대인 하지가 된다. 동지를 기점으로 낮의 길이가 길어지므로 종교적으로 혹은 풍속적으로 축제로 삼았다.
24절기
대설(大雪) 15일 후, 소한(小寒) 전까지의 절기로, 양력 12월 22일경이 절기의 시작일이다. 음력으로는 11월 중기(中氣)이다.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이 적도 이남 23.5°의 동지선(冬至線:南回歸線)과 황경(黃經) 270°에 도달하는 12월 22일 또는 23일을 가리킨다. 동양의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에서 역(曆)의 기산점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동지는 북반구에서는 태양이 가장 남쪽에 이르는 남지일(南至日)이며, 태양의 남중고도가 1년 중 제일 낮아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반대로 남반구에서는 낮이 가장 길고 밤이 제일 짧은 하지가 된다. 이때를 기하여 태양이 하루하루 북으로 올라와 낮이 길어지기 때문에 옛날에는 동지를 중요한 축제일로 삼았으며, 특히 태양신을 숭배하던 페르시아의 미드라교에서는 12월 25일을 ‘태양탄생일’로 정하여 축하하였다. 이 미드라교의 동지제가 로마로 넘어가 크게 유행하였고, 4세기경부터 현재 기독교의 크리스마스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도 동지를 ‘다음 해가 되는 날(亞歲)’, 또는 ‘작은 설’이라 해서 크게 축하하는 풍속이 있었다. 궁중에서는 이 날을 원단(元旦)과 함께 으뜸되는 축일로 여겨 군신과 왕세자가 모여 ‘회례연(會禮宴)’을 베풀었으며, 해마다 중국에 예물을 갖추어 동지사(冬至使)를 파견하였다. 또 지방에 있는 관원들은 국왕에게 전문(箋文)을 올려 진하(陳賀)하였다. 민가에서는 붉은 팥으로 죽을 쑤는데 죽 속에 찹쌀로 새알심을 만들어 넣는다. 이 새알심은 맛을 좋게 하기 위해 꿀에 재기도 하고, 시절 음식으로 삼아 제사에 쓰기도 한다. 팥죽 국물은 역귀(疫鬼)를 쫓는다 하여 벽이나 문짝에 뿌리기도 한다. 한편, 궁중에서는 관상감에서 만들어 올린 달력을 ‘동문지보(同文之寶)’란 어새(御璽)를 찍어서 모든 관원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이 달력은 황장력(黃粧曆)·청장력·백력 등의 구분이 있었고, 관원들은 이를 다시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러한 풍속은 여름에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과 아울러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였다. 또한,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전약(煎藥)이라 하여 쇠가죽을 진하게 고아 관계(官桂)·생강·정향(丁香)·후추·꿀 등을 섞어 기름에 엉기게 하여 굳힌 후 임금에게 진상하여 별미로 들게 하였다. 그 밖에 고려 ·조선 초기의 동짓날에는 어려운 백성들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 출처: 동지 [冬至] (두산백과)
. 필자 주 5). 필자가 볼 때, 문명이 교차하면서, 황하문명을 가진 중국의 하느님(天)숭배와 하느님 아들(天子) 숭배는 고대 페르시아문화에 영향을 주고, 이는 다시 동방박사 세 사람과 관계 깊은 예수의 탄생에도 영향을 주어, 기독교에서 예수가 하느님의 유일한 독생자로 정립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 같기도 합니다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 구체적인 사실로 확정하기는 힘듭니다. 유교 경전인 예기에 보면 해,달,별들을 숭배하는 문구가 있는데, 고대 중국에서 해와 달을 연구하고 별을 연구하던 문화가 고대 페르시아 문화권에 전파되었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동지와 연관되어 중국의 고대 의식이 발전하여 지금까지 이어지는데, 이러한 동지 제사등이 페르시아 문화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 필자 주 5-1). 바벨론이나 아라비아로 추정되는 고대 페르시아 문화권의 동방박사.
동방 박사
[ 東方博士 , Magi ]
특이사항 | 성경적 단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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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동쪽에서부터 온 이방 출신 현인(賢人). 혹은 별을 연구하는 점성가(마 2:1, 2, 7, 9, 10). 여기서 ‘동방’은 바벨론이나 바사 혹은 아라비아로 추정되고 있다. 그 지역들은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 점성술이 특히 발달된 곳이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동방을 신비로운 곳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많았다. 이렇게 볼 때 동방 박사들 역시 점성술이나 점, 해몽 등에 능한 자들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 박사들의 숫자에 대해 성경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으나 이들이 가져온 선물이 세 가지인 것으로 볼 때 세 사람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승에 의하면, 이들 세 사람은 ‘멜카이어’(Melchior), ‘벨사사르’(Balthasar), ‘카스파’(Caspar)이며, 아기 예수를 만난 오랜 후에 예수님의 제자 도마로부터 세례를 받았으며, 유골은 세인트 헬레나에서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사원으로 운구된 뒤 다시 밀란을 거쳐 쾰른 대성당에 안치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 진위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W. Hendriksen).
. 출처: 동방 박사 [東方博士, Magi]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가스펠서브)
4. 종교학대사전에 설명된 동지.
동지
[ 冬至 ]
태양의 동지점을 통과하는 시각으로, 태양의 시황경(視黃經)이 270˚에 이르는 때를 말한다. 적위는 -23˚ 27' 이고 한국ㆍ중국의 태음태양력에서 역을 계산하는 기산점(起算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나, 오늘날의 천문력(天文曆) 계산은 춘분점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한국ㆍ중국의 역(曆)으로는 24절기의 하나로 11월 중에 있고, 태양력으로는 12월 22일경에 있다. 1년 중 일출이 제일 늦고 일몰이 제일 빠른 날이 시태양시에서는 동지이지만, 우리들이 일상 사용하는 평균태양시에서는 평균태양시가 시태양시로부터 균시차(均時差)를 뺀 까닭에 동짓날보다 일출이 더 늦거나 일몰이 더 빠른 날은 동지 부근이 된다.
태양은 이 때 가장 남쪽에 기울어져서 정오 태양의 고도는 1년 중 가장 낮다. 따라서 태양의 출몰 방향도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지며, 북쪽으로 갈수록 그 도는 심하여 북극지방에서는 수일 또는 수개월 동안 태양이 전혀 지평선 위에 나타나지 않는 곳이 있다. 그리고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이 1년 중 가장 짧고 열량도 가장 작으며, 밤이 길고 낮이 짧다. 그러나 이때가 1년 중에 가장 추운 때는 아닌데 지면이 하루 중에 방산(放散)하는 열량이 태양에서 받는 열량보다 많고, 지면이 점차 냉각되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추운 때는 지면이 완전히 냉각한 때이다. 옛날에는 동지를 설날로 삼은 때도 있었는데, 이는 동지를 기하여 태양이 다시 원기를 회복한다는 태양신을 숭배했던 당시에 행해졌다.
. 출처: 동지 [冬至]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5]. 한국 세시풍속사전에 설명된 동지.
동지
[ 冬至 ]
분야 | 절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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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 겨울(음력 11월) |
날짜 | 양력 12월 22~23일경 |
시절음식 | 동지팥죽, 전약(煎藥) |
다른이름 | 수세(11월)(首歲), 원정동지(元正冬至), 작은설, 아세(亞歲), 이장(履長), 지일(至日), 호랑이장가가는날 |
관련정일 | 애동지, 중동지(中冬至), 노동지(老冬至) |
관련속담 | 동지가 지나면 푸성귀도 새 마음 든다, 동지 때 개딸기, 동지 지나 열흘이면 해가 노루꼬리만큼씩 길어진다, 배꼽은 작아도 동지팥죽은 잘 먹는다., 범이 불알을 동지에 얼구고 입춘에 녹인다, 새알 수제비 든 동지팥죽이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 동지섣달 해는 노루꼬리만 하다 |
관련풍속 | 동지첨치(冬至添齒), 동지고사(冬至告祀), 동지불공(冬至佛供), 동지하례(冬至賀禮), 동지헌말(冬至獻襪), 동지부적(冬至符籍), 동지책력(冬至冊曆), 유천동산신제(柳川洞山神祭), 팥죽뿌리기, 새알심점 |
정의
24절후의 스물두 번째 절기. 일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개관
동지(冬至)는 태양이 적도 이남 23.5도의 동지선(남회귀선) 곧 황경(黃經) 270도의 위치에 있을 때이다. 그래서 양력 12월 22일이나 23일 무렵에 든다. 양력으로 동지가 음력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 그믐 무렵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태양력인 동지에다가 태음력을 잇대어 태음태양력으로 세시풍속을 형성시켜 의미를 부여하였다.
민간에서는 동지를 흔히 아세(亞歲) 또는 작은설이라 하였다. 태양의 부활이라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설 다음가는 작은설로 대접 하는 것이다. 이 관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라는 말처럼 동지첨치(冬至添齒)의 풍속으로 전하고 있다. 또 동지는 날씨가 춥고 밤이 길어 호랑이가 교미한다고 하여 ‘호랑이장가가는날’이라고도 부른다.
중국 주나라에서는 이날 생명력과 광명이 부활한다고 생각하여 동지를 설로 삼았다. 당나라 역법서(曆法書)인 선명력(宣明曆)에도 동지를 역(曆)의 시작으로 보았다. 『역경(易經)』에도 복괘(復卦)에 해당하는 11월을 자월(子月)이라 해서 동짓달을 일년의 시작으로 삼았다. 동지와 부활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신라에 이어 고려시대에도 당(唐)의 선명력을 그대로 썼으며, 충선왕 원년(1309)에 와서 원(元)의 수시력(授時曆)으로 바뀔 때까지 선명력을 사용하였다. 이로 보아 충선왕 이전까지는 동지를 설로 지낸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구미(歐美) 각국의 성탄절(크리스마스)도 초기 기독교가 페르시아의 미트라교(Mithraism)의 동지 축제일이나 태양 숭배의 풍속을 이용해서 예수 탄생을 기념하게 한 것이다. 신약성서에도 예수의 탄생 날짜 기록은 없다. 농경민족인 로마인의 농업신인 새턴(Saturn)의 새턴네리아 축제가 12월 21일부터 31일까지 성했고, 그 중 25일이 특히 동지 뒤 태양 부활일로 기념된 날이었다.
궁중풍속
궁중에서는 원단(元旦)과 동지를 가장 으뜸 되는 축일로 생각하여 동짓날 군신(君臣)과 왕세자(王世子)가 모여 잔치를 하는 회례연(會禮宴)을 베풀었다. 해마다 중국에 예물을 갖추어 동지사(冬至使)를 파견하여 이날을 축하하였고, 지방의 관원(官員)들은 임금에게 전문(箋文)을 올려 진하(陳賀)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새해의 달력을 만들어 궁에 바친다. 나라에서는 이 책에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어새를 찍어 백관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달력은 황장력(黃粧曆), 청장력(靑粧曆), 백장력(白粧曆)의 구분이 있고, 관원들은 이를 친지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것을 단오에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과 아울러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였다. 이조(吏曹)에서는 지방 수령들에게 표지가 파란 청장력을 선사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달력은 내용이나 효용도에 따라서 많이 다르다. 특히 옛날에는 농경 본위의 사회였던 만큼 24절기 등 때에 맞추어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달력이 요긴하였고, 기재 내용도 그에 맞게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요즈음에도 동지 무렵의 연말연시가 되면 새해 달력을 주고받는 풍속은 여전하다.
황감제(黃柑製)라는 임시 과거를 실시하여 인재를 등용하기도 하였는데,『동국세시기』11월조에 제주목에서 귤, 유자, 귤감을 진상하는 일을 적고 있다. 이 귤들을 종묘에 진상하고 신하들에게도 나누어준다. 옛날 탐라의 성주가 이를 바칠 때 치하하는 의미에서 과거를 설치했다. 조선시대에도 이를 답습하여 성균관과 사학(四學)의 유생들에게 시험을 보이고 귤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 과거의 이름을 감제(柑製)라 했다. 내의원에서는 소의 다리를 고고 여기에 백강(白薑), 정향(丁香), 계심(桂心), 청밀(淸密) 등을 넣어서 전약(煎藥)을 만들어 진상하였는데, 각 관청에 이를 나누어 주었다. 이 약은 악귀를 물리치고 추위에 몸을 보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동지가 되면 동지하례(冬至賀禮)를 행하며 버선을 선물하는데 이를 동지헌말(冬至獻襪)이라고 한다. 또 종묘에 청어(靑魚)를 천신하는데 경사대부(卿士大夫)의 집에서도 이를 행하였다고 한다.
민간풍속
동짓날이 되어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연못의 수면이 얼어붙어 얼음의 모양이 쟁기로 밭을 갈아놓은 것처럼 된다. 이것을 용갈이[龍耕]이라고 한다. 『동국세시기』 11월 월내조에는 “충청도 홍주 합덕지에 매년 겨울이 되면 얼음의 모양이 용이 땅을 간 것 같이 되는 이상한 변이 있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언덕 가까운 쪽으로 세로 갈아나간 자취가 있으면 이듬해는 풍년이 들고,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복판을 횡단하여 갈아나가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혹 갈아나간 흔적이 동서남북 아무 데로나 종횡으로 가지런하지 않으면 평년작이 된다고 한다. 농사꾼들은 이것으로 이듬해의 농사일을 징험한다. 경남 밀양 남지에서도 용이 땅을 갈아 이듬해의 농사일을 징험한다고 한다(湖西洪州合德池 每年冬 有龍耕之異 自南而北 縱而薄岸則歲穰 自西而東 徑斷其腹則荒 或西或東或南或北 橫縱不整則荒穰半 農人推之來歲輒驗 嶺南密陽南池 亦有龍耕 以驗年事).”는 내용이 있다.
또 이날은 동지부적(冬至符籍)이라 하여 뱀 ‘사(蛇)’자를 써서 거꾸로 붙여 잡귀를 막는 속신(俗信)이 있으며, 팥죽을 쑤어먹지 않으면 쉬이 늙고 잔병이 생기며 잡귀가 성행한다는 속신이 있다. 동짓날 일기(日氣)가 온화하면 이듬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이 많이 죽는다고 하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여긴다. 또 동짓날이 추우면 해충이 적으며 호랑이가 많다는 믿음이 있다.
예부터 동짓날이 되면 백성들은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겼다. 또 일가친척이나 이웃간에는 서로 화합하고 어려운 일은 서로 마음을 열고 풀어 해결하였다. 오늘날 연말이면 불우이웃 돕기를 펼치는 것도 동짓날의 전통이 이어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시절음식
동지에는 동지팥죽을 먹는다.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를 만들어 넣어 끓이는데, 단자는 새알만한 크기로 하기 때문에 새알심이라 부른다.
팥죽을 다 만들면 먼저 사당에 올려 동지고사(冬至告祀)를 지내고, 각 방과 장독, 헛간 같은 집안의 여러 곳에 놓아두었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는다.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의 뜻이고 집안 곳곳에 놓는 것은 축귀의 뜻이어서 이로써 집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낸다고 믿었다. 이것은 팥의 붉은색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붉은 팥은 옛날부터 벽사(辟邪)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 모든 잡귀를 쫓는 데 사용되었다. 『동국세시기』에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에게 바보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 귀신이 되어 붉은 팥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서 그를 물리친다.”라고 적혀 있다.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 것 역시 악귀를 쫓는 주술 행위의 일종이다. 그러나 동짓날이라도 동지가 음력 11월 10일 안에 들면 애동지라 하여 아이들에게 나쁘다고 해서 팥죽을 쑤지 않는다. 또 그 집안에 괴질로 죽은 사람이 있어도 팥죽을 쑤어먹지 않는다고 한다.
경기도에서는 사당에 팥죽으로 차례를 지낸 다음 방, 마루, 장광 등에 한 그릇씩 놓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는다. 경상도에서는 동지에 팥죽을 쑤어 솔가지에 적셔 집안 대문을 비롯하여 담벼락이나 마당에도 뿌리며 마을 입구에 큰 고목에도 뿌려 잡귀들의 동네 침입을 막는다. 강원도에서는 팥죽의 새알심으로 찹쌀이나 수수쌀로 만든 ‘옹심’을 넣어 나이 수대로 먹는다. 일꾼들은 이날 팥죽 아홉 그릇을 먹고 나무 아홉 짐을 져야 한다고 한다. 날씨가 더워서 팥죽이 쉬면 이듬해 농사가 풍년이라고 여긴다. 충남 연기에서는 동짓날 동지불공(冬至佛供)을 드리러 절에 다녀오며, 집에서 팥죽을 쑤어먹는다고 한다. 또 애기동지에는 팥시루떡을 해먹고 노동지에는 팥죽을 쑤어먹는다. 그리고 중동지는 떡이나 팥죽 중 하나를 해서 먹는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喪家)에 보내는 관습이 있다. 이것은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다. 팥죽은 동지에만 쑤어먹는 것이 아니고 이웃이 상(喪)을 당하였을 때 쑤어 부조하기도 한다.
우리 조상들은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는 팥죽, 팥밥, 팥떡을 해서 먹는 풍습이 있었다. 요즈음도 이러한 풍습이 이어져 고사를 지낼 때에는 팥떡을 해서 고사를 지내고 있다. 고사의 목적은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이 번성하기를 기원하고, 공사를 하는 사람은 공사가 아무런 사고 없이 완공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이처럼 팥이 들어가는 음식은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믿었지만, 그 사실 여부를 떠나 팥이 지닌 여러 가지 효능으로 보아 건강식품임에는 틀림없다. 팥은 피부가 붉게 붓고 열이 나고 쑤시고 아픈 단독에 특효가 있으며, 젖을 잘 나오게 하고 설사, 해열, 유종, 각기, 종기, 임질, 산전산후통, 수종, 진통에도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출처: 동지[冬至] (한국세시풍속사전)
[4]. 중국의 동지.
1]. 중국인들은 동지에 뭘 먹을까? 북방은 '만두', 남방은 '탕위안'
. 필자 주 6). 탕위안은 찹쌀떡탕(湯圓)임.
2. 중국의 동지때 행해진 동지제천대전(冬至祭天大典).
동짓날 유래와 풍습
동지(冬至)는24절후의 스물두 번째 절기. 일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고대에 동지는 새해와도 같은 의미였으며, 동지를 작은 설이라고도 표현한다.
문헌기재에 따르면, 일찍이 한무제(汉武帝) 원정5년(元鼎)에 동지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동지제천 풍습이 있었으며, 후에 역대 왕조를 거치며 점차적으로 제도화되었다.
. 출처: 베이징관광국 한글 공식사이트.
http://www.visitbeijing.or.kr/special/0/88b4ca5543e4cdc0b00b0dc465d89b1a703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의 유교와 세계의 유교를 되돌아보고, 다방면으로 연구.검토하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고 있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
http://blog.daum.net/macmaca/2524
2.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
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blog.daum.net/macmaca/2560
3.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
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
http://blog.daum.net/macmaca/2632
4. 한국사와 세계사의 연계는 불가피함. 그 동안의 한국 공교육 전통을 감안하면, 지엽적인 마찰이 생겨도 수천년 인류역사를 담은 세계사와의 연계는 가장 옳은 정답에 해당됩니다. 한나라이후 세계종교로 동아시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아온 유교전통.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 http://blog.daum.net/macmaca/2575
5.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blog.daum.net/macmaca/2596
6.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179
7.한국에서는 Royal대인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 세계사를 반영시 관습법적으로 교황 윤허 Royal 서강대도 성대 다음 Royal대로 두 대학이 가장 학벌이 높고 좋음. 서울대는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같은 건 없음. 단지 마음대로 등록하던 여러 신문에 남아있던, 친일부왜배들이 성균관대에 도전하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나라에서 일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주권없고 학벌없는 대학임은 변치 않음.
http://blog.daum.net/macmaca/2260
8. 유교의 내세관(來世觀)과 기복신앙(祈福信仰) 측면에 대한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800
9. 유교국가의 전통적 특징중 하나는 호적(戶籍)제도였음. 한국과 중국의 호적제도에 관하여!
http://blog.daum.net/macmaca/2492
10. 세계사로 볼때,한나라때 동아시아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은 이미 세계종교 유교가 자리잡았음. 위만조선.한사군때 유교가 한국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고려.조선시대는 기자조선도 인정했었음. 한자, 한문성씨사용,고인돌, 고대 부여 영고,고구려동맹, 예의 무천,삼한의 상달제등 제천의식이나 전통 유교풍속은 황하문명에서 피어난 상고시대 유교의 영향을 나타냄. 이후 삼국시대는 부여 및 삼한의 유교를 승계하여 난생신화같은 하늘의 아들 의식, 하늘숭배.조상숭배가 있는 설날.추석.단오.한식같은 유교 명절, 유교 교육, 한자의 사용, 한문성씨의 사용등이 있었고, 불교는 중국불교형태로 받아들였지만,거센 반발때문에, 신라의 경우 이차돈의 순교가 있고나서야 후발 외래 포교종교로 불교를 받아들임. 고려는 치국의 도가 유교, 수신의 도가 불교였는데, 유교의 각종 명절과 제사가 있었고, 교육기관으로 국자감이 있었음.
새롭게 종교인구 산출을 어떻게 해도,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