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문화권의 24절기인 대설(大雪). 양력 2019년 12월 7일(음력 11월 11일)은 대설입니다.
대설은 음력 11월의 겨울절기로, 이날을 전후로 한국에서는 빙상놀이를 즐기기 시작하며, 몸보신을 위해 따뜻한 식사나, 따뜻한 음료, 만두.찐빵.군고구마같은 간식도 많이 먹는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력 10월인 맹동지월(孟冬之月)부터 거두어들이고 쌓아놓은(收藏,積聚) 곡물이나 식재료등으로 장아찌를 담그고, 고기를 절이고, 장(醬)도 담그고, 누룩을 빚고 술을 만드는데, 한국의 경우 김장도 마무리 되어가고, 대설즈음이면 콩과 여러가지 농작물로 메주를 쑤고 간장.된장.고추장등 여러가지 장(醬)을 담그는 때로 접어듭니다.
이 시기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대설(大雪)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중국의 화북지방(華北地方)의 상황을 반영하여 붙여진 것으로, 한국에서 꼭 이 시기에 적설량이 많다고는 볼 수 없다고 합니다.
[1]. 한국과 중국의 24절기 대설 전후의 풍속.
1]. 대설(大雪). 한국에서는 이 날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을 난다는 믿음이 전해집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 날 눈이 많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는 음력의 겨울은 입동이후 소설.대설.동지.소한.대한까지를 겨울로 봅니다. 중국등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음력은 중국의 특정지방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북반구와 반대편에 위치한 남반구의 남아메리카 일부지방과 맞지 않고, 타 지역과도 다르게 나타나는 경향이 강합니다. 중국은 태음태양력을 사용하는 나라인데,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면 관찰하기 편하기 때문에 음력기준으로 역법을 발전시켜온 것으로 판단되며, 태양의 운행도 어느정도 반영하기는 합니다.
2019년 대설(大雪)은 음력 동짓달인 11월 11일인데, 음력 겨울절기에는 따뜻한 탕이나 찌개, 팥죽, 군고구마, 꿀차 및 여러가지 차종류, 쌍화탕등(요즘은 커피도 대중화 되었음)을 많이 찾게 됩니다. 시중 군것질 음식으로는 따끈한 만두, 호빵, 찐빵, 군고구마가 있습니다. 특이한 동짓달 절식으로 냉면(冷麵)과 골동면(骨董麵), 동치미, 장김치(醬菹-)가 있습니다. 냉면은 여름에 즐겨먹지만 동짓달에 냉면과 동치미도 별미입니다. 팥죽이나 음식에 동치미를 곁들여 먹는 맛도 일품입니다. 산업화이전 농경사회일때 일반 가정에서는 누룩으로 술 빚기, 메주쑤기, 장담그기를 겨울절기에 하였는데 요즘에는 전문 업체들이 많아서 이런 장면 보기가 흔치 않습니다. 겨울에는 따끈한 탕(설렁탕, 곰탕, 갈비탕, 육개장, 뼈해장국), 팥죽,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등을 다른 계절에 비해 많이 먹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따끈한 음식을 먹고 외출하면 몸보신에도 좋고 감기예방에도 좋을것입니다. 그리고 겨울 절기에는 야외에서 눈 썰매나, 스케이트, 스키, 얼음낚시등을 하게 됩니다. 외출시에는 항상 따뜻한 옷과 따뜻한 음식, 음료등으로 감기예방에 주의해야 할 때입니다.
베이징관광국 자료에 나오는 중국인의 풍속에 보면 대설을 잘 보내면 1년 내내 추위를 잘 타지 않는다며 대설에 몸에 좋은 보신식품을 먹는다고 하는데,검은깨와 검은 모기버섯 등 검은색이나 쓴맛 식품을 많이 먹고, 양고기나 고구마, 구이위안(桂圆) 등의 따뜻한 식품을 많이 먹으면 좋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소설에 장아찌를 담그며 대설에 고기를 절인다’는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 필자주 1). 음력 11월, 동짓달 한국의 절식.
...동짓달 절식으로 냉면(冷麵)과 골동면(骨董麵), 동치미, 장김치(醬菹-)가 있다. 냉면은 메밀국수를 무김치, 배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섞은 것이고, 골동면은 잡채와 배, 밤, 쇠고기, 돼지고기 썬 것과 기름, 간장을 메밀국수에 섞은 것이다. 동치미는 소금물에 크기가 비교적 작은 무와 배, 풋고추를 넣어 삭인 물김치이고, 막김치는 새우로 젓을 담가 결이 삭은 뒤 무, 배추, 마늘, 생강, 고추, 청각, 전복, 소라, 굴, 조기, 소금으로 버무려 독에 넣어 오래 두었다가 먹는 김치이다. 한편 장김치는 무, 배추, 미나리, 생강, 고추로 담근 김치이다...
. 출처: 음력 11월 [十一月] (한국세시풍속사전)
필자 주 2). 중국의 구이위안(桂圆). 구이위안(계원)은 무환자나무과(Sapindaceae)에 속하는데, 한자어로 용안(龍眼)이라고도 하며, 자세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다 음 -
가). 높이 10m 정도이다. 잎은 어긋나며 두껍고 긴 타원형으로서 길이 15∼45cm이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작은잎은 3∼6쌍이 달리고 길이 약 10cm이며 혁질(革質:가죽 같은 질감)이다.
꽃은 4월에 노란빛을 띤 흰색으로 피고 지름 3∼6mm로서 향기가 있으며 1,000여 개가 원추꽃차례에 달린다.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5개씩이고 수술은 6∼10개이며, 암술머리는 2개로 갈라진다. 열매는 7∼8월에 익으며 둥글고 지름 2∼3cm이다. 따뜻한 지역에서 잘 자란다. 번식은 종자·접붙이기·휘묻이 등으로 한다.
열매를 용안 또는 계원(桂圓)이라 하며 식용한다. 과육같이 보이는 투명한 것은 가종피(假種皮)이며 마르면 검은 갈색이 된다. 말린 것을 용안육 또는 복육(福肉)이라고 하여 한방에서 강장제·진정제로서 건망증과 불면증에 약용한다. 중국 남부 또는 인도 원산이며, 동남 아시아와 열대 아메리카에 널리 분포한다.
. 출처: 용안[longan, 龍眼] (두산백과)
나). 용안에 대한 표준 국어 대사전의 설명.
용안 龍眼
- 1.
식물 무환자나뭇과의 상록 교목. 높이는 13미터 정도이며, 잎은 어긋나고 두껍고 긴 타원형이다. 4월에 황백색 꽃이 잎겨드랑이 또는 가지 끝에 원추(圓錐) 화서로 피고 열매는 둥근 모양으로 7~8월에 익는데 강모(剛毛)가 많으며 씨에 붙은 용안육은 맛이 달아 식용하고 약용하기도 한다. 인도가 원산지로 동남아시아, 열대 아메리카에 분포한다. ≒ 여지노ㆍ원안2. (Euphoria longana)(圓眼)
- 2.
한의학 =용안육(용안의 열매를 한방에서 이르는 말).
2]. 베이징관광국 한글 공식사이트에 나오는 대설 관련 자료.
‘대설(大雪)’절기 맞아 보양식품 인기
작은 절기들이 많은 중국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7일 ‘대설’을 맞아, 다오샹춘(稻香村) 진열대의 훙짜오가오(红枣糕,붉은대추 빵) 6만상자가 순식간에 동이나 버렸고, 화탕(华堂), 월마트(沃尔玛)등 대형마트의 양고기와 같은 보양식품들도 불티나게 팔렸다.
오전 10시, 다오샹춘 유안먼((右安门)점은 훙짜오가오를 사려는 손님들의 줄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에, 종업원은 “방금 문을 열었는데, 벌써 팔게 없을 정도이다. 특히 노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훙짜오가오는 흑밀과 흑향미(黑香米) 등 검은색 곡물 5가지를 주원료로, 대추소(枣泥)와 꿀, 호두 등을 섞어 만들어 노인들이 먹기에 딱 알맞다.
전문가는 대설을 잘 보내면 1년 내내 추위를 타지 않는다며, 검은깨와 검은 모기버섯 등 검은색이나 쓴맛 식품을 많이 먹고, 양고기나 고구마, 구이위안(桂圆) 등의 따뜻한 식품을 많이 먹으면 좋다고 조언했다.
많은 시민들이 몸보신에 나서면서, 마트들의 계절식품 판매도 덩달아 늘어날 예정이다. 집에서의 만찬을 준비하러 월마트 쉬안우먼(宣武门)점을 찾은 한 고객은 “절기가 하나 늘면, 가족들이 모여서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즐겁게 보낼 기회가 하나 더 늘어나는거지요.”라며, 쇼핑카트 한 가득 먹거리를 골랐다. 우메이(物美) 푸황위(蒲黄榆)점도 오늘따라 양고기가 특히 빨리 동이 나는 등 어육류 판매대의 매출이 괜찮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24절기 대설의 뜻과 풍습
대설은 24절기 가운데 스물한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다. 일 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시기로 알려져 있으며 올해는 12월 7일이다. 날씨가 급쌀쌀해지는 시기로 과거 농부들에게 있어서 일년을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농한기이기도 한다.
옛 중국에서는 대설로부터 동지까지의 기간을 다시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중후(中候)에는 범이 교미하여 새끼를 치며, 말후(末候)에는 여지(荔枝: 여주)가 돋아난다(一候鹃鸥不呜,二候虎始交,三候荔挺出)고 하였다.
* 고기 절임
중국에서는 ‘소설에 장아찌를 담그며 대설에 고기를 절인다’는 속담 있듯이 대설 시기에 집집마다 라로우(腊肉)를 절이고 말리기 시작한다.
소금과 산초 등 양념을 살짝 볶은 후에 생선이나 고기에 뿌인 다음 항아리에 담아 그늘 지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면 된다. 약 15일 정도 절인 고기를 꺼내 말리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 고구마죽
대설 지나면 날씨가 급쌀쌀해지면서 집에서 따뜻한 죽을 먹고 싶은 생각이 자주 난다. 고구마죽은 바로 쌀쌀한 겨울에 딱 맞는 음식이라 하며 닽콤하면서 소화에도 도움이 된다.
고구마죽은 씻어 말린 절간고구마에 물을 부어 푹 삷고,팥이나 각종 콩 종류도 푹 삷는다. 삶은 고구마,팥,콩을 같이 넣고 물을 많이 부어 다시 한번 끓이고, 밀가루를 물에 개어 넣으면서 젓고 소금이나 설탕으로 간을 맞추어 먹는다.
. 필자 주 3). 절간 고구마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절간(切干) 고구마를 얇게 썰어서 볕에 말린 고구마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단어에는 소리나는대로 한글
식으로 아무렇게나 해석하면 않되는 단어들이 대부분이라, 한자어나 역사.유래등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절간 고구마라고 절에서 만든 고구마가 아닙니다.
. 필자 주 4). 절미라는 단어도 주의해 보아야 합니다.
. 절미1 折米
1.낟알이 여러 개로 깨져서 토막 난 쌀.
2. 역사 조선 시대에, 공물 따위를 쌀로 환산하여 받던 일.
동사 역사 조선 시대에, 공물 따위를 쌀로 환산하여 받다. .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이처럼 한자나 역사.유래를 살펴보지 않고, 단순히 한글 발음대로 앞에 절자가 붙는다고 절에서 만든 쌀, 절에서 만든 음식 등등 쉽게 해석하면 않됩니다. 국어사전이나, 한국 민족문화대백과,두산백과에는 그 유래나 출처가 나오지않는데,한국 세시 풍속사전에 나온다고 그게 옳은 정설이냐 하면 그렇게 되지 않는경우가 많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겠습니다. 또한 유교경전이나 기독교 경전, 국어나 국사, 윤리, 세계사, 사회문화, 정치경제 및 철학 교과서(전문서적 포함)에 나오지 않는데, 특정 사전에 나온다고 교과서적 정설(定說)로 인정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적 황하문명과 세계 4대 발명품, 세계종교 유교를 가졌던 중국의 역사서나 사전, 유교경전, 국가차원의 발행서적등은 한국 자료와 대비하기 좋은 전문서들이 많습니다. 중세시대 지리상의 대발견 및 대학.산업의 발달로 중국의 침체기에 근대에 세계의 지배세력이 되었던 서유럽의 많은 교과서, 백과사전, 사전, 학술서등은 신학.법학.의학.철학,어학.역사학.수학.사회과학.자연과학.음악.미술 등 많은 분야에서 세계적 영향력을 가져왔고, 지금도 그 서유럽 학자들의 이론은 교과서나 전문서적에서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이런 자료들을 종합하여 살펴보아야 할 때가 아주 많습니다.
다시 24절기 대설의 뜻과 풍습으로 돌아갑니다.
* 얼어붙은 강가를 바라본다
대설 시기에 기온이 급히 떨어져서 강물이 얼은붙은 현상이 나타난다. 이 때가 되면 밖에서 나가 강가에서 이 독특한 풍경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진다. 본격적인 빙상 놀이의 계절이 돌아와서 아이들이 가장 기쁘죠. 주말에 가족들과 신나게 놀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 빙시
고대 중국에서는 겨울에 즐기는 스케이트 등 빙상놀이를 ‘빙시(冰嬉)’라고 한다. 빙시(冰嬉)는 얼음놀이란 뜻으로 고대 한족들의 얼음위에서 하던 운동을 총칭하며, 송나라때 이미 존재했다. 명나라때 궁궐의 체육활동으로 되었으며, 청나라에 이르러서는 빙시는 황실의 겨울철 소일거리로 되어,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 빙시는 현재 베이징 묘회의 하아라이트 얼음놀이이기도 한다.
* 겨울 몸보신
눈이 가장 내린다는 대설 전후에는 특별히 건강에 신경 써야 하는 시기다. 하지만 날씨가 추워서 영양가치가 아주 높은 음식만 많이 먹는 게 아나라 지역에 따라 자기 몸에 맞는 영양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 강남지역에는 북방 지역보다 기온이 좀 높아기에 겨울철에 오리나 생선 등을 먹으면 기력 회복에 도움이 된다. 북방 지역 사람들이 양고기나 소고기 등을 적당히 섭취하면 몸이 따뜻해지고 강 추위를 이겨낼 수 있다.
[2].대설(大雪)과 동지(冬至)가 낀 음력 11월 중동지월(仲冬之月)을 유교 경전 예기(禮記)에서 부분적으로 살펴봄.
1]. 예기에 나타나는 음력 11월, 중동지월의 현상.
冰益壯 地始坼 鶡旦不鳴 虎始交 天子居玄堂大廟
乘玄路 命有司曰 土事毋作 愼毋發蓋 毋發室屋及起大衆以固而閉
地氣沮泄 是謂發天地之房諸蟄則死 民必疾疫又隨以喪 命之曰暢月
얼음이 더욱 두터워지고 땅이 비로소 갈라지며(坼), 갈단(鶡旦:산새)은 울지 않는데, 호랑이는 비로소 교미한다. 천자는 유사에게 명하기를, "토목공사를 일으키는 일이 없게하고 삼가 창고를 여는 일이 없도록 하며, 실옥(室屋)을 개방시키거나 일을 일으켜 대중을 징발하는 일이 없게 하여 그 모든 폐장(閉藏)을 견고히 하라"고 한다.
만일 천지의 방을 열어줌으로써 천지의 기운이 흩어지고 새나가게 할 때는 온갖 겨우살이 벌레는 죽게 되고 백성이 질병에 괴로워 하니, 사망의 재난이 따르게 된다. 그러므로 이 날을 이름지어 '창월'이라고 한다
. 필자 주 5). 중국의 특정 지방 기준 "얼음이 더욱 두터워지고 땅이 비로소 갈라지며"에서 보여지듯이, 겨울에 즐기는 얼음놀이, 즉 스케이트 등 빙상놀이인 ‘빙시(冰嬉)’를 즐기는 겨울 절기입니다. 한국에서는 스키장이나 눈썰매장등을 찾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2]. 예기에 나타나는 술 빚기.
乃命大酉 秫稻必齊 麴蘗必時 湛熾必絜 水泉必香 陶器必良 火齊必得
兼用六物 大酉監之 毋有差貸
주관(酒官)의 우두머리에게 명하여, 술을 빚는데는 출도를 택하되 반드시 그 많고 적은 분량을 바르게 하고, 누룩은 반드시 시기를 놓치지 않게 하며, 쌀을 담가 씻거나 쪄내는 데는 반드시 깨끗이 하고, 물은 반드시 향기롭고 순수한 것을 택하며, 술 담그는 그릇은 반드시 견고하고 금이나 깨진곳이 없는 것을 택하고, 불의 정도는 반드시 그 중간을 택하도록 한다. 이상의 육물(六物)을 아울러 사용해서 술을 빚는 일에 종사할 때는 주관의 우두머리가 항상 이것을 감독하여 잘못이 없도록 한다.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譯解者(권오돈),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 필자 주 6). 음력 11월이 되면 곡식을 수확하여 저장하기 때문에 곡식과 저장물에 여유가 있어, 출도(秫稻:차조), 누룩, 쌀, 물, 그릇,불등을 이용하여 술을 담그고 이후 관혼상제(冠婚喪祭)나, 손님접대용, 가정내의 일상 소비용, 행사등에 사용해 온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하겠습니다.
한국의 경우, 음력 10월인 맹동지월(孟冬之月)부터 거두어들이고 쌓아놓은(收藏,積聚) 콩과 여러가지 농작물로 메주를 쑤고 간장.된장.고추장등 여러가지 장(醬)을 담그는 때로 접어듭니다.
. 필자 주 7). 출도(秫稻): 차조. 신역(新譯) 예기(禮記)[譯解者(권오돈),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에서 출도(秫稻)를 차조로 설명하고 있음.
. 필자 주 7-1). 차조란 농촌진흥청의 농업용어사전에 의하면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찰기가 있는 조. 열매가 메조보다 작고 빛깔이 훨씬 누르고 약간 파르스름 함. glutinous foxtail millet
. 필자 주 8). 육물(六物): 상기 예기 월령에 나타난 육물(六物)을, 필자가 따져보면 출도(秫稻,차조), 누룩, 쌀, 물, 그릇,불이 되겠습니다.
필자의 의견입니다.
술은 유교 관혼상제(冠婚喪祭) 및 일상생활에 빠지지 않는 종교적.역사적.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말연시를 맞아 친구나 직장 동료, 친.인척들과 회식이나 술자리가 많아지는 때입니다. 과음하여 문제를 발생시켜 법에 걸리지 않도록 지혜를 발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점잖게 주도(酒道)를 지키면서 자제하면 여러가지 행사나 모임에서 빠질 수 없는 술로 인하여 피해보는 일을 막아내고 오히려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하며, 정신적 위안을 주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3]. 장(醬)에 대한 고대 자료.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 다 음 -
장이라는 글자가 동양의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주례 周禮≫ 선부(膳夫)로 장 120동이란 표현이 나온다. 또 ≪사물기원 事物紀原≫에서는 주공(周公)이 장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조에서는 고구려 사람들이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고 하였다. 이것이 어떤 종류의 발효식품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그러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나오는 장(醬)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장(醬).
정의
콩을 주원료로 발효시켜 만든 조미료.
내용
장이라는 글자가 동양의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주례 周禮≫ 선부(膳夫)로 장 120동이란 표현이 나온다. 또 ≪사물기원 事物紀原≫에서는 주공(周公)이 장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장의 정체에 대하여 ≪주례≫의 주(註)에서 말하기는 “장에는 해(醢)나 혜(醯)가 있다.
해는 새고기·짐승고기·물고기 할 것 없이 어떤 고기라도 이것을 햇볕에 말려서 고운 가루로 하여 술에 담그고, 여기에 조로 만든 누룩과 소금을 넣어 잘 섞어 항아리에 넣고 밀폐하여 100일간 어두운 곳에서 숙성시켜 얻은 것이다. 혜는 재료가 해와 같으나 청매(靑梅)의 즙을 넣어서 신맛이 나게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주례≫ 속의 장인 해와 혜는 분명히 육장(肉醬)이다.
해는 소금으로 고기의 부패를 막으면서 발효에 의하여 단백질을 아미노산이나 펩타이드로 분해시킨다. 또 누룩에서 당분이 생성된다. 그리고 술을 넣었기 때문에 알코올과 생성된 산에 의하여 좋은 맛과 향기를 가지게 되는 것으로 중국 본래의 조미료이다.
우리 동이권(東夷圈)에서는 장을 콩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농학계에서는 콩의 원산지를 만주라 본다. 만주는 고구려의 옛 땅이므로 콩재배의 개발은 우리들의 조상에 의하여 이루어진 셈이다. 최근 한반도 내에서도 콩의 야생종과 재배종의 중간 종이 발견되었다.
중국의 앙소·용산의 농경문화의 유물에는 콩이 보이지 않는다. ≪관자 管子≫에 의하면 서기전 7세기 초엽에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지금의 만주 남부인 산융(山戎)을 제압하고, 여기서 콩을 가져와서 융숙(戎菽)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와같이, 우리들의 조상은 스스로 개발한 콩을 교묘하게 가공하여 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조에서는 고구려 사람들이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고 하였다. 이것이 어떤 종류의 발효식품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서기전 4세기경의 황해도 안악3호고분(安岳三號古墳)의 벽화에 우물가에 발효식품을 갈무리한 듯한 독이 보인다.
≪해동역사 海東繹史≫에서 ≪신당서 新唐書≫를 인용하여 발해의 명산물로서 책성(柵城)의 시(豉; 메주)를 들고 있다. 발해는 고구려의 유민이 세운 나라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에 대하여 ≪설문해자 說文解字≫에서는 배염유숙(配鹽幽菽)이라 하였다. 숙(菽)이란 콩이고 유(幽)는 ‘어둡다’ 뜻이니 어두운 곳에서 발효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에 소금을 섞으면 곧 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청국장에 해당하는 산국(散麴)이다.
콩을 개발하였고 일찍이 온돌의 원형인 갱(坑)을 가지고 있었던 고구려 사람들이 이러한 발효식품을 만들게 된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시가 다음과 같은 문헌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춘추좌씨전≫의 소(疏)에서는 “≪상서 尙書≫에서 국 끓이는 데 매실과 소금만을 쓴다고 하였다. 옛날의 조미료는 매실과 소금이고 시는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예기≫의 내칙(內則)이나 ≪초사 楚辭≫의 소혼(招魂)에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그렇듯 많이 나오는데도 시에 관한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한대(漢代)의 ≪급취편 急就篇≫이라는 책에 비로소 염시(鹽豉)라는 말이 나온다. 이로 미루어 시는 진한대(秦漢代)부터 중국에 나타나게 된 것이라 하겠다.
시는 중국 자체에서 개발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진대(晋代)의 ≪박물지 博物誌≫에서는 시를 외국원산이라 하였다. 송대(宋代)의 ≪학재점필 學齋佔畢≫에서도 구경(九經) 속에 시라는 글자가 없고, 방언(方言)에 시가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중국으로 보아서는 시란 외래품이라 하겠다.
≪사기≫의 화식전(貨植傳)에 의하면 일반 제조업자의 이윤이 10분의 2 정도인 데 비하여 시 제조업자의 이윤은 10분의 5에서 10분의 3 정도나 된다고 하였다.
시의 재료가 본디부터 알려진 것이라면 그렇게 많은 이윤이 있을 리 없다. 따라서, 시 제조업자는 외래의 시 제조의 비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윤이 커서 부자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
고구려사람이 발효식품을 잘 만들고, 발해의 명산물로서 시를 들고 있으며, 콩의 원산지가 동이권이고 중국사람 스스로 시를 외래품이라고 한 것을 생각하면 오늘날의 청국장에 해당하는 것이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이 땅의 북부에서 싹터 중국에 가서 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므로 본디의 중국의 장은 해란 이름의 육장이고, 우리의 장은 시란 이름의 두장(豆醬)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인들이 두장을 시라 표현한 까닭은 ≪석명 釋名≫의 석음식(釋飮食)에 보면 “시(豉)는 시(嗜 : 즐긴다는 뜻)와 같은 음이다.
오미(五味)를 조화하는 데 시를 쓰면 그 맛을 즐길 수 있다. 따라서 제나라 사람들은 시(嗜)와 같은 음인 시(豉)를 쓴다.”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500년 초엽의 ≪제민요술 齊民要術≫에 보면 구체적인 시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다. 즉, 콩을 삶아 익혀서 어두운 방에 놓아두면 곰팡이가 번식하여 황의(黃衣)가 덮이게 되고 단백질이 분해된다.
이것을 씻어서 균사(菌絲)를 제거하고 짚이 깔려 있는 움 속에 놓아두면 짚에 붙어 있는 낫도균 등에 의하여 콩성분이 더욱 분해되고 점질물(粘質物)도 생성된다. 이것을 햇볕에 말린 다음에 물에 우려내어 조미료로 쓰기도 하고 건조시키지 않고 그대로 쓰기도 한다. 오늘날의 청국장과 매우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 삼국시대의 장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신라 본기 신문왕 3년(683)에, 왕이 김흠운(金欽運)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는데 납채(納采)로서 미(米)·주(酒)·유(油)·밀(蜜)·장(醬)·시(豉)·포(脯) 등 135수를 보냈다는 내용에 보인다. 여기에서는 시와 장을 구별하고 있다.
장은 무엇일까? 일본의 ≪다이호율령 大寶律令≫(701)의 대선직(大膳職) 주장(主醬)에 보면 장은 장(醬)·시(豉)·말장(末醬)의 셋으로 정리되어 있고, ≪쇼소원문서 正倉院文書≫ 덴페이 11년(739) 정세장(正稅帳)에도 말장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미소’라 읽고 있다.
이 미소라는 말의 어원에 대하여 아라이(新井白石)는 그의 ≪도우가 東雅≫라는 책에서 고려의 장인 말장이 일본에 들어와서 그 나라 방언 그대로 ‘미소’라고 불렸다고 하였다.
일본에서 말장을 우리 나라의 방언 그대로 미소라고 하였다면 미소의 어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만주어로 장을 ‘미순(misun)’이라 하고, 또 ≪계림유사≫ 고려방언에서는 장왈밀조(醬曰密祖)라 하였으며, ≪이두고 吏頭考≫에서는 말장며조, 즉 훈조(燻造)라 하였으며, ≪증보산림경제≫에도 말장이라 적고 며조라 부르고 있다. 이것으로 미순→밀조→미소의 계열이 성립된다.
만주 남부에서 개발한 배염유숙은 오늘날의 청국장의 무리로서 중국에 가서 시라 불리게 되었다. 한편 만주 남부에서는 시 아닌 또 하나의 장이 개발되었으니 이것이 미소(末醬)이다.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의 말장은 어떤 것인지 당시의 일본 문헌을 통해서 정체를 잡기가 매우 애매하다.
무가이(向井之升)가 1671년에 지은 ≪호쥬비요우와매이혼소 庖厨備用倭名本草≫에서는 일본 미소의 본래 모습을 잘 설명하고 있다.
곧 “요즘의 미소는 콩과 쌀누룩으로 만들지만 본래의 미소는 콩만을 써서 삶아 짓찧어 둥글거나 모난 떡같은 모양을 만들어 곰팡이가 핀 뒤에 건조한 장메주 이른바 병국(餠麴)을 만들고, 이것을 부셔서 소금과 함께 통에 채워서 숙성시킨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산촌에서는 콩으로 만든 메주덩이로 된장을 만들고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메주덩이나 된장처럼 고체상태의 것을 말장이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일본의 간무왕(桓武王) 호키(寶龜) 2년(771)의 ≪호샤잇사이교쇼코쿠사쿠카이 奉寫一切經所告朔解≫에서 “장 4말 2되는 콩 5말로 즙을 얻는다.”고 하였으니 당시의 장은 액체상태의 간장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일본에는 쌀이 풍부하므로 콩에다 쌀누룩을 섞은 된장을 만들어 미소라 하였고, 밀이 풍부한 중국에서 콩에다 밀을 섞어 간장을 만드니 감칠맛에 단맛이 더해진 것이다.
이와 같이 옛 고구려 땅에서 발상한 두 장은 중국과 일본에 전파되어 마침내 중국·한국·일본의 세 나라로 하여금 세계의 조미료 분포상으로 한계열의 두장권을 형성하게 한 것이다.
≪고려사≫ 식화지(食貨志)에는 1018년(현종 9)에 거란의 침입으로 추위와 굶주림에 떠는 백성들에게 소금과 장을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과 1052년(문종 6)에 개경의 굶주린 백성 3만여 명에게 쌀·조·시(豉)를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고려시대의 장과 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을까?
중국의 시에는 담시(淡豉)와 함시(醎豉)가 있다. 담시는 콩을 삶아 청국장을 만들 듯이 하여 건조한 것이고, 함시는 이에 소금·생강·천초·귤·차조기·회향·행인 등을 섞은 것이다.
우리 나라의 ≪임원경제지≫에서는 “담시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체를 잊어버리고 함시만이 간혹 약으로 쓰일 정도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시를 흔히 메주라고 풀이하게 되었다. 구황식품으로 시를 나누어주었다. 이것은 굶주린 사람들이 당장에 먹어야 하는 것이므로 시를 메주로 보기에는 조금 무리인 듯하다.”고 하였다.
이 때의 시는 된장이고 장은 간장인 것 같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메주에 의한 장이 주류를 이루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선시대의 구체적인 장담그기를 ≪증보산림경제≫ 동국장법(東國醬法)을 통하여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장독을 엎어놓고 작은 구멍이 있는지 없는지를 연기를 내어서 조사한다. 장독은 여러 해 쓰던 것이 좋다. 둘째, 소금을 몇 달 저장하여 간수를 흘러 내리게 한 것을 쓴다. 셋째, 물은 감천(甘泉)이나 강심(江心)의 물을 큰솥에 받아 끓이고 여기에 소금을 녹여서 식으면 밭쳐서 장담그기에 쓴다.
넷째, 메주만들기는 높고 마른 땅에 말밥통같이 긴 구덩이를 파놓는다. 콩을 무르도록 삶다 절구에 넣고 잘 찧어서 손으로 중간 크기의 수박만한 덩이를 만들고 큰칼로 쪼개어 두께가 한치 정도인 반달모양으로 한다. 이것을 구덩이 속에 매단다.
구덩이는 가마니나 풀 따위로 덮어주고, 다시 비·바람을 막도록 해놓는다. 메주덩이가 스스로 열을 내고 옷을 입게 되기를 기다려 뚜껑을 열어서 한 차례 이것을 뒤집어 준다. 8∼9차례 이와 같이 하면 수십 일에 이르러 거의 다 마르니 꺼내어 다시 바짝 말린 뒤에 장을 법대로 담그면 맛이 좋다는 것이다.
다섯째, 장담을 담글 때는 메주 1말, 소금 6∼7되, 물 1통으로 한다. 겨울과 가을에는 소금이 적어도 좋으나 봄과 여름에는 많은 편이 좋다.
여섯째, 숙성한 뒤에 장독 속을 우물처럼 파서 그 안에 괸 청장을 날마다 떠내어 따로 작은 항아리에 받아 낸다. 이와 같이 콩만으로 만든 메주를 써서 된장·간장을 얻는 방법이 조선시대 장의 주류를 이루었다.
1800년경의 ≪북학의 北學議≫에서는 당시의 메주만들기의 실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장메주 만드는 자는 메주 만드는 시기가 되면 원근 여러 지방의 콩을 모아 삶게 되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모두를 정하게 하지 못한다. 주는 사람도 가려서 주지 아니하고 받는 사람도 씻지 않아서 모래나 좀벌레가 섞여 있다.
그래도 그들은 예사로 알고 괴이쩍게 여기지 않는다. 그 장을 먹으려고 하면서 그 메주를 더럽게 취급하니 이것은 먹는 우물물에 똥을 넣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또 콩을 삶아서 파선(破船)의 밑바닥에 쏟고는 옷을 걷어붙이고 맨발로 밟는다. 여러 사람이 오르내려서 더럽혀진 배의 바닥에서 밟는다. 그러나 그 뿐인가! 온몸에서 흐르는 땀이 다리를 타고 발 밑의 콩에까지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된장 속에서 발톱이나 머리카락이 발견된다.
강계(江界)사람은 장메주 만들 때에 반드시 물에 걸러 일고 삶아서 익으면 망치로 쳐서 한 장씩 아주 반듯하게 만들어 낸다. 무릇 장메주는 이와 같이 만들어야 할 것이다.”고 하여 우리의 장이 매우 불결하다는 것이 지적되고 있다.
우리의 장맛은 집·지방마다 다르다. 이것은 삶은 콩덩이에 어떤 미생물의 포자가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곰팡이의 포자가 많이 떨어져야만 좋은 메주가 될 수 있으나 ‘봉사 돌 던지기’로는 품질이 균일해질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가 오히려 집집마다 독특한 장맛을 빚어내어 향수(鄕愁)의 맛을 낳게 해주기도 한다.
요즘은 삶은 콩에다 종국(種麴)을 섞어서 발효시키고 있다. 그러면 고린 냄새도 없고 며칠 만에 메주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을 개량메주라 한다. 개량메주로 만든 장은 콩의 단백질이 잘 분해되어 감칠맛이 한결 높아진다. 그러나 여러 가지 미생물에 의하여 만들어진 본래의 메주로 만든 것보다 맛이 단순하다.
또 본래의 메주는 단백질이 완전 분해되지 않고 펩타이드의 형태로 많이 남아 있다. 따라서 이것을 뚝배기에 넣고 끓이는 된장찌개는 끓이면 끓일수록 펩타이드가 아미노산까지 분해되어 맛이 좋아진다.
그러나 개량메주로 끓인 된장찌개는 오랫동안 끓이면 아미노산이 채소·고기·두부 등에 스며들고 국물은 담백해진다.
그래서 본래의 메주에다 개량메주를 섞어서 된장찌개를 끓이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요즘은 도시의 주택환경이 바뀌어 집에서 메주만들기가 어려워져 시골의 친척에 부탁하거나 공장제품의 메주를 사들이고 있다.
메주를 소금물에 담그는 일을 침장(沈醬)이라 한다. ≪동국세시기≫에서는 침장(沈醬)과 침장(沈藏 : 김장)의 두 가지 일을 인가일년(人家一年)의 2대행사라 하였다. 침장을 하고 40∼50일간 숙성시켜 액체를 퍼내어 달인 것이 간장이고 그 찌꺼기가 된장이 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도 된장 전용과 간장 전용의 메주가 있었다.
이 때 각각의 메주가 다른 것이 아니고 소금물의 양이 다를 뿐이다. 메주에 겨우 잠길 정도의 소금물만을 넣어서 숙성시키면 맛 좋은 된장이 되고, 소금물을 많이 넣으면 간장을 많이 떠낼 수 있는 것이다.
간장을 해마다 달이면서 몇 년간이나 저장시키면 빛깔과 맛이 진한 간장을 얻을 수 있으니 이것을 진장(陳醬)이라 한다.
또 퍼낸 간장에 해마다 새로운 메주를 넣어 약주 만들 때의 덧술하듯이 숙성시켜 나가면 덧장이라 하여 매우 진하고 맛 좋은 간장을 얻을 수가 있다. 그런데 요즘의 이른바 왜간장이라는 것은 콩에다 밀을 섞어서 만든 간장메주를 소금물에 넣어 숙성시킨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도 공장생산물에 널리 쓰이고 있다.
1660년의 ≪구황보유방 救荒補遺方≫에 의하면 콩 한 말을 무르게 삶아내고 밀 5되를 볶아 가루 내어 콩과 잘 섞어 온돌에 펴서 띄운다. 황의(黃衣)가 전체적으로 피면 볕에 내어 말린다. 이와 같이 하여 얻은 메주는 소금 6되를 푼 따뜻한 물에 넣고 양지바른 곳에 두어 자주 휘저어 주면서 숙성시킨다. 이것은 왜간장과 비슷하다.
왜된장은 콩 삶은 것에 쌀메주·소금을 섞어서 숙성시킨 것이다. ≪구황보유방≫에서는 콩 1말을 충분히 삶고 누룩 3되, 소금 4되를 섞어서 찧고 항아리에 넣어 단단히 봉하여 양지바른 곳에 두면 맛이 좋다고 한다. 이것 역시 왜된장과 비슷하다.
이와 같은 간장이나 된장 만들기는 일본의 독자적인 개발이 아니고, 원대(元代) 초엽의 가정백과전서인 ≪거가필용 居家必用≫에도 나와 있고, 조선시대 중엽에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우리 나라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이러한 종류의 장은 모습을 감추게 되었고, 고추장·즙장(汁醬)·청국장 등 여러 가지 특수한 장을 개발하여 나름대로 즐겨왔다.
≪사시찬요 四時纂要≫나 ≪산림경제≫에서는 즙장 만들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콩 1말을 물에 충분히 불려서 밀기울 2말과 같이 곱게 찧어가지고, 삶아서 꼭꼭 뭉친 뒤 단자를 만들고 닥나무 잎으로 덮어서 옷을 입기를 기다려 햇볕에 말린다.
즙장을 담글 때는 메주가루 1말, 물 2되, 소금 3홉을 섞어서 항아리에 넣어 봉하여 말똥 속에 묻었다가 다시 7일 만에 겻불 속에 묻으면 14일 만에 먹을 수 있다.”고 하였다.
청국장은 일본에서는 발효된 것에 간장을 쳐서 그대로 먹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청국장에 소금·파·마늘·고추 등을 섞어 절구에 찧어서 된장찌개를 만든다.
우리 나라 특수장으로서 가장 이색적인 것은 역시 고추장이다. 잘 건조된 장메주를 가루내어 여기에 고춧가루와 소금물을 일정한 비율로 섞어서 3∼6주간 발효시켜서 만든다. 짠맛·매운맛·감칠맛이 조화되어 있다.
그러나 기호성의 변천에 따라 단맛마저 요구하게 되어 찹쌀가루를 떡으로 하여 장메줏가루와 함께 담그게 되었다. 고추장은 식욕을 돋우는 우리 나라의 가장 중요한 조미료의 하나이다.
≪증보산림경제≫에서는 장에 대하여, “장(醬)은 장(將)이다. 모든 맛의 으뜸이요 인가의 장맛이 좋지 않으면 비록 좋은 채소나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좋은 요리가 될 수 없다. 촌야의 사람이 고기를 쉽게 얻지 못하여도 여러 가지 좋은 장이 있으면 반찬에 아무 걱정이 없다. 가장(家長)은 모름지기 장 담기에 뜻을 두어 오래 묵혀 좋은 장을 얻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실제로 장맛이 좋아야 음식 맛이 좋음은 당연한 일이다. 장독대는 어느 집이고 극진히 위하였다. 해가 뜨면 뚜껑을 열어놓고 해가 지기 전에 덮었다. 장을 담그려면 우선 택일(擇日)을 하고 고사(告祀)를 지내기도 하였다.
만일 장맛이 나빠지면 무언가 불길한 징조일 것이라고 보았으니 각 가정의 주부들은 장독대 관리에 정성을 다하였던 것이다.
장맛이 나빠지는 것은 귀신이 장을 먼저 먹기 때문이라 보고 이것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장독에 금줄을 치고 또 담근 장 위에 숯이나 고추를 띄웠다. 귀신이 숯의 구멍 속에 끼어 들어가 버린다고 보았던 것이며, 고추는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 빛깔이고 또 고추가 너무나 맵기 때문에 달아나버린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규합총서 閨閤叢書≫에서는 장담그기의 택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장 담그는 데에 좋은 날은 병인(丙寅)·정묘(丁卯)·제길신일(諸吉神日)·정일(正日)·우수일(雨水日)·입동일(立冬日)·황도일(黃道日)이고, 삼복(三伏日)에 장을 담그면 벌레가 안 꾀고 해돋기 전에 담그면 벌레가 없다는 것이다.
또 장담그기를 꺼리는 날인 수흔일(水痕日 : 대월의 초일·초칠·십 일, 소월의 초삼·초칠·십이·이십육 일을 말한다.)에 담그면 가시가 꾀고 육신일(六辛日)에 담그면 맛이 사납다는 것이다.
선조대 정유재란 때의 일이다. 어전회의에서 왕이 영변(寧邊)으로 피난갈 것으로 정하고, 백관(百官)이 몰려가려면 장을 미리 준비해야겠다고 했다. 남자안(南子安)이 “신공(申公)을 합장사(合醬使)로 삼아 영변 땅에 먼저 파견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한유천(韓柳川)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신공만은 안됩니다. 신이라는 성은 장담그기를 꺼리는 달인 신일(辛日)과 음이 같으니 신불합장(申不合醬)이라 좋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한다. 장의 중요성은 마침내 이러한 금기까지 낳게 한 것이다.
장의 재료는 콩이다. 콩에는 단백질이 38%나 있어서 곡물 가운데서 으뜸이다. 또, 콩속에 들어 있는 단백질의 질은 생물가(生物價) 78로서 동물성 단백질에 크게 손색이 없다. 한편, 콩에는 지방도 18%나 함유되어 있다.
특히, 콩속의 지방은 불포화지방산인 리놀산과 리놀렌산이 풍부하다. 이들 불포화지방산은 혈액 속의 콜레스테롤의 양이 늘어나는 것을 막는 동시에 동맥혈관의 벽에 달라붙은 콜레스테롤을 녹여내는 작용을 한다고 한다.
실제로 쇠고기만으로 사육한 개와 콩 단백질로 사육한 개에 대하여 서로 수영을 시켜본 결과, 콩 단백질로 사육된 개가 장거리 수영에서 이겼다고 한다.
대체로, 콩을 먹는 우리 나라 사람은 서양 사람에 비하여 단시간 동안에 힘을 내는 순발력은 모자라지만 내구력은 그들보다 크다. 이와 같이, 콩의 영양가로 미루어 장의 영양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메주는 ≪동의보감≫에 의하면 “두통한열(頭痛寒熱)을 다스리고 땀을 내게 한다. 따라서, 메주와 파를 섞어 먹거나 메주·형개(荊芥)·방풍(防風)·상엽(桑葉)을 함께 달여서 한 사발 마시고 이불을 덮고 있으면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이열치열의 원리에 의하여 열이 내리게 된다.”고 하였다.
이 밖에 “메주는 식체를 지우고 천식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장은 “모든 어육·채소·버섯의 독을 지우고 열상과 화독(火毒)을 다스린다. 또, 장은 흔히 콩과 밀로써도 만들지만, 그 약효가 두장에 미치지 못하며, 해(醢)라고 하는 육장과 어장은 약에 넣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 출처: 장 [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한국의 사전류에서 설명하는 대설(大雪).
1]. 표준 국어대사전에서 설명하는 대설(大雪).
이십사절기의 하나. 소설과 동지 사이에 들며, 태양의 황경이 255도에 이른 때이다. 12월 8일경이다.
2].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에서 설명하는 대설(大雪).
정의
24절기의 하나.
내용
소설(小雪)과 동지(冬至) 사이에 들며, 음력 11월, 양력 12월 7, 8일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225。에 도달한 때이다.
이 시기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대설(大雪)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은 원래 재래 역법의 발생지이며 기준지점인 중국의 화북지방(華北地方)의 상황을 반영하여 붙여진 것이다. 그러므로 꼭 이 시기에 적설량이 많다고는 볼 수 없다.
중국에서는 대설로부터 동지까지의 기간을 다시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서, 초후(初候)에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중후(中候)에는 범이 교미하여 새끼치며, 말후(末候)에는 여지(荔枝 : 여주. 박과에 속하는 식물)가 돋아난다고 하였다. 한편, 이날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을 난다는 믿음이 전해진다.
. 출처: 대설 [大雪]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두산백과에서 설명하는 대설(大雪).
대설[ 大雪 ]
요약 24절기의 하나로, 소설(小雪)과 동지(冬至) 사이다. 황경(黃經) 255˚에 위치할 때로 음력 10월 중이고, 양력으로는 12월 7일경 시작한다. 중국 화북지방을 기준으로 눈이 많이 내리는 시기이다.
24절기
옛 중국에서는 대설 기간을 5일씩 3후(三候)로 나눴는데, ① 제1후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② 범이 교미하여 새끼를 치며, ③ 여지(荔枝)가 돋아난다고 하였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입동 이후, 소설·대설·동지·소한·대한까지를 겨울이라 보지만, 서양에서는 추분 이후 대설까지를 가을이라고 본다.
. 출처: 대설 [大雪] (두산백과)
4]. 한국 세시 풍속사전에서 설명하는 대설(大雪).
정의
24절기 가운데 스물한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 소설(小雪)과 동지(冬至) 사이에 위치한다.
유래
소설에 이어 오는 대설(大雪)은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원래 재래 역법(曆法)의 발상지이며 기준 지점인 중국 화북지방(華北地方)의 계절적 특징을 반영한 절기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 반드시 이 시기에 적설량(積雪量)이 많다고 볼 수는 없다.
내용
일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절기인 대설은 시기적으로는 음력 11월, 양력으로는 12월 7일이나 8일 무렵에 해당하며 태양의 황경은 255도에 도달한 때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음력 10월에 드는 입동(立冬)과 소설, 음력 11월에 드는 대설과 동지 그리고 12월의 소한(小寒), 대한(大寒)까지를 겨울이라 여기지만, 서양에서는 추분(秋分) 이후 대설까지를 가을이라 여긴다.
특히 24절기 중 대설이 있는 음력 11월은 동지와 함께 한겨울을 알리는 절기로 농부들에게 있어서 일년을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농한기(農閑期)이기도 하다. 옛 중국에서는 대설로부터 동지까지의 기간을 다시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중후(中候)에는 범이 교미하여 새끼를 치며, 말후(末候)에는 여지(荔枝: 여주)가 돋아난다고 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열두 달에 대한 절기와 농사일 및 풍속을 각각 7언 고시의 형식으로 기록한 19세기 중엽 소당(嘯堂) 김형수(金逈洙)의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때는 바야흐로 한겨울 11월이라(時維仲冬爲暢月)
대설과 동지 두 절기 있네(大雪冬至是二節)
이달에는 호랑이 교미하고 사슴뿔 빠지며(六候虎交麋角解)
갈단새(산새의 하나) 울지 않고 지렁이는 칩거하며(鶡鴠不鳴蚯蚓結)
염교(옛날 부추)는 싹이 나고 마른 샘이 움직이니(荔乃挺出水泉動)
몸은 비록 한가하나 입은 궁금하네(身是雖閒口是累)
……(하략)……
이 시기는 한겨울에 해당하며 농사일이 한가한 시기이고 가을 동안 수확한 피땀 어린 곡식들이 곳간에 가득 쌓여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풍성한 시기이다. 한편 이날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에 풍년이 들고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다는 믿음이 전해지지만 실제로 이날 눈이 많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 또 눈과 관련하여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눈이 많이 내리면 눈이 보리를 덮어 보온 역할을 하므로 동해(凍害)를 적게 입어 보리 풍년이 든다는 의미이다.
. 출처: 대설 [大雪] (한국세시풍속사전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의 유교와 세계의 유교를 되돌아보고, 다방면으로 연구.검토하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고 있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
http://blog.daum.net/macmaca/2524
2.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
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blog.daum.net/macmaca/2560
3.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
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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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국사와 세계사의 연계는 불가피함. 그 동안의 한국 공교육 전통을 감안하면, 지엽적인 마찰이 생겨도 수천년 인류역사를 담은 세계사와의 연계는 가장 옳은 정답에 해당됩니다. 한나라이후 세계종교로 동아시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아온 유교전통.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 http://blog.daum.net/macmaca/2575
5.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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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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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한국에서는 Royal대인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 세계사를 반영시 관습법적으로 교황 윤허 Royal 서강대도 성대 다음 Royal대로 두 대학이 가장 학벌이 높고 좋음. 서울대는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같은 건 없음. 단지 마음대로 등록하던 여러 신문에 남아있던, 친일부왜배들이 성균관대에 도전하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나라에서 일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주권없고 학벌없는 대학임은 변치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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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유교의 내세관(來世觀)과 기복신앙(祈福信仰) 측면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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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유교국가의 전통적 특징중 하나는 호적(戶籍)제도였음. 한국과 중국의 호적제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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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세계사로 볼때,한나라때 동아시아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은 이미 세계종교 유교가 자리잡았음. 위만조선.한사군때 유교가 한국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고려.조선시대는 기자조선도 인정했었음. 한자, 한문성씨사용,고인돌, 고대 부여 영고,고구려동맹, 예의 무천,삼한의 상달제등 제천의식이나 전통 유교풍속은 황하문명에서 피어난 상고시대 유교의 영향을 나타냄. 이후 삼국시대는 부여 및 삼한의 유교를 승계하여 난생신화같은 하늘의 아들 의식, 하늘숭배.조상숭배가 있는 설날.추석.단오.한식같은 유교 명절, 유교 교육, 한자의 사용, 한문성씨의 사용등이 있었고, 불교는 중국불교형태로 받아들였지만,거센 반발때문에, 신라의 경우 이차돈의 순교가 있고나서야 후발 외래 포교종교로 불교를 받아들임. 고려는 치국의 도가 유교, 수신의 도가 불교였는데, 유교의 각종 명절과 제사가 있었고, 교육기관으로 국자감이 있었음.
새롭게 종교인구 산출을 어떻게 해도,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