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음력 9월[중양절(重陽節)의 명절(名節)풍속이 있음]의 국화에 대해 유교경전 예기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1]. 유교 경전(儒敎經典) 예기(禮記)에 나타나는 음력(陰曆) 9월(月)의 국화(菊花).
季秋之月....
鞠有黃華...
국유황화(鞠有黃華)
국화는 노란 꽃이 되고...
국은 菊과 통함. 오색 중 황은 중색(中色)으로서 귀하게 여기므로 특히 황화라고 했다.
. 출처:신역(新譯) 예기(禮記),역해자(譯解者):권오돈,발행처:홍신문화사,2003.10.30
. 필자 주 1). 음력(陰曆) 역법(曆法)으로 가을은 맹추지월(孟秋之月), 중추지월(仲秋之月), 계추지월(季秋之月)의 석달이 있는데, 季秋之月은 마지막 가을의 달로, 음력 9월을 말함.
. 필자 주 2). 之月의 용법과 관련하여, 예기에서는 음력 8월인 중추에 대해서는 仲秋之月로 쓰고 있는데, 예기 아닌 일반적 용법에서, 중추절이라 할때는 다음과 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a).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
중추절 仲秋節
b). 오픈마인드 한자사전
중추절 仲秋節
c). 한국 민족문화대백과
가배·가위·한가위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한다.
d). 두산백과
중추절 [zhong qiu jie, 中秋节]
e). 다락원
중추절[中秋節]
f). 중국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중한사전
秋节
1. [명사]중추절. 추석.
. 출처:중국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중한사전
八月节
. 필자 주 3). 학설이나 이론들이 일치하지 않을때는, 일반적으로 국가에서 발행하는 여러가지 교과서나, 기타의 검인정 교과서가 우선이 되겠습니다.(국사 편찬위의 국사, 다른 형태의 세계사, 국가의 公敎育인 삼강오륜 교육등 교과서 공교육이 우선). 그리고 용어에 관련하여서는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이 우선되고, 한자사전 및 중국어사전등도 병행하여서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유교관련용어로는 유교 경전인 오경(五經)과 사서(四書)가 중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용어나 학설에 관한 견해로는 국가에서 관여하는 국사교과서나 대통령령에 의해 발행되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학설(삼국사기는 正史, 삼국유사는 전통적으로 野史의 관례도 반영하여야 할것)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시야를 넓혀볼때는 세계사 교과서나 다른 교과서도 중요하게 반영하여야 할것입니다. 수천년 인류문화를 담는 학설이나 이론에 관하여는 중국이나 로마제국.교황청, 그리고 漢字나 라틴어가 언제든지 중요하며, 국가주권을 반영할때는 해당국가의 국내법을 우선적으로 하면서도 국제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2]. 이 날은 한국의 경우 남자들이 시를 짓는 날입니다(서울의 선비들에게 전해진 풍속이라 지금도 이런 분들이 몇 분이나 계실지 모르지만...). 또한 형편에 맞게 등고(登高)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각 가정에서는 화채(花菜)를 먹거나, 국화주, 국화전, 국화떡[꽃 설기떡(花糕)]을 먹습니다. 꽃 설기떡이 아니면 대추.밤 따위를 겉에 박은 떡을 먹습니다.
[2]. 한국의 사전류에 서술된 중양절(重陽節)
1]. 표준 국어대사전에 서술된 중양절.
중양-절 重陽節
민속 세시 명절의 하나로 음력 9월 9일을 이르는 말. 이날 남자들은 시를 짓고 각 가정에서는 국화전을 만들어 먹고 놀았다. ≒구일(九日)ㆍ중광(重光) ㆍ중구(重九)ㆍ중구일ㆍ중구절ㆍ중굿날ㆍ중양(重陽).
중양절에는 국화주, 밤단자 등을 즐겨 먹는다.
2].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중양절.
중양절
[ 重陽節 ]
- 요약 음력 9월 9일을 이르는 말.
중구(重九)라고도 한다. 9는 원래 양수(陽數)이기 때문에 양수가 겹쳤다는 뜻으로 중양이라 한다. 중양절은 제비가 강남(江南)으로 간다고 전하며, 이 때쯤 되면 제비를 볼 수 없다. 이 날은 유자(柚子)를 잘게 썰어 석류알, 잣과 함께 꿀물에 타서 마시는데 이것을 ‘화채(花菜)’라 하며 시식(時食)으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기도 한다. 또 이 날 서울의 선비들은 교외로 나가서 풍국(楓菊) 놀이를 하는데, 시인 ·묵객들은 주식을 마련하여 황국(黃菊)을 술잔에 띄워 마시며 시를 읊거나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즐겼다. 각 가정에서는 ‘국화전(菊花煎)’을 부쳐 먹는데 3월 3일에 진달래로 화전을 만드는 것과 같다.
.출처: 중양절 [重陽節] (두산백과).
3]. 한국 세시풍속사전에 나타나는 중양절.
중양절
[ 重陽節 ]
정의
음력 9월 9일을 가리키는 날로 날짜와 달의 숫자가 같은 중일(重日) 명절(名節)의 하나. 중일 명절은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 같이 홀수 곧 양수(陽數)가 겹치는 날에만 해당하므로 이날들이 모두 중양(重陽)이지만 특히 9월 9일을 가리켜 중양이라고 하며 중구(重九)라고도 한다. 또 ‘귈’이라고 부르는 지방도 있다. 음력 삼월 삼짇날 강남에서 온 제비가 이때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가을 하늘 높이 떠나가는 철새를 보며 한해의 수확을 마무리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유래
중양절은 중국에서 유래한 명절로, 그곳에서도 매년 음력 9월 9일에 행하는 한족의 전통 절일이다. 중양절은 중국에서는 한나라 이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당송(唐宋) 대에는 추석보다 더 큰 명절로 지켜졌다.
등고회(登高會)는 중양절의 중요한 행사인데 이날 우산(牛山)에 올라 눈물을 흘렸다는 제나라 경공(景公)에 대한 기록을 근거로 중국에서는 이미 전국시대부터 행해졌다고 주장한다. 또한 내려오는 전설에 동한(東漢) 때 앞날을 잘 맞추는 비장방(費長房)이라는 도인(道人)이 어느 날 학생인 항경[恒景, 桓景]에게 “자네 집은 9월 9일에 큰 난리를 만나게 될 터이니 집으로 돌아가 집사람들과 함께 수유(茱萸)를 담은 배낭을 메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면 재난을 면할 수 있네.”라고 하였다. 항경이 이날 그가 시킨 대로 가족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가 집에 돌아오자 집에서 키우는 가축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고 한다. 중양절에 수유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시며 높은 산에 올라가는 등고 풍속은 이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유 주머니를 차는 것은 나쁜 기운을 제거하기 위해서이고, 국화주를 마시는 것은 노화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기능적인 해석도 있다.
내용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이래로 군신들의 연례 모임이 이날 행해졌으며, 특히 고려 때는 국가적인 향연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선 세종 때에는 중삼 곧 3월 3일과 중구를 명절로 공인하고 중구를 무척 중요하게 여겨 늙은 대신들을 위한 잔치인 기로연(耆老宴)을 추석에서 중구로 옮겼으며, 또 중양절에 특별히 과거시험을 실시하여 이날을 기리기도 하였다.
중양절에는 여러 가지 행사가 벌어지는데, 국가에서는 고려 이래로 정조(正朝), 단오(端午), 추석(秋夕)과 함께 임금이 참석하는 제사를 올렸고, 사가(私家)에서도 제사를 지내거나 성묘(省墓)를 하였다. 또 양(陽)이 가득한 날이라고 하여 수유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시며 높은 산에 올라가 모자를 떨어뜨리는 등고의 풍속이 있었고 국화를 감상하는 상국(賞菊), 장수(長壽)에 좋다는 국화주를 마시거나 혹은 술잔에 국화를 띄우는 범국(泛菊) 또는 황화범주(黃花泛酒), 시를 짓고 술을 나누는 시주(詩酒)의 행사를 가졌다. 서울 사람들은 이날 남산과 북악에 올라가 음식을 먹으면서 재미있게 놀았다고 하는데, 이것도 등고하는 풍습을 따른 것이다.
중양절에는 이와 같이 제사, 성묘, 등고 또는 각종 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관리들에게 하루의 휴가를 허락하였다. 그래서 관리들이 자리에 없기도 하였지만 또한 명절이었으므로 이날은 형(刑) 집행을 금하는 금형(禁刑)의 날이기도 하였다.
한편 중양절은 농촌이 한창 바빠지는 때이기도 하다. 남자들은 그해 논농사를 결산하는 추수를 하고, 여자들은 마늘을 심거나 고구마를 수확한다. 퇴비만들기, 논물 빼기, 논 피사리 등은 남녀 공동작업이다. 지방에 따라서는 목화도 따야 하고, 또 콩, 팥, 조, 수수, 무, 배추 같은 밭작물의 파종과 수확이 겹친다. 그러므로 농촌에서는 중양절이라고 하여 특별한 행사를 벌이기보다는 평상 때와 똑같이 보내는 곳이 더 많다. 그러나 양수가 겹친 길일(吉日)이므로 여유가 있는 계층에서는 이날을 즐겼다. 등고 풍속이 그러하고 국화잎을 따서 찹쌀가루와 반죽하여 국화전을 만들어 먹는 것도 그 예가 된다.
추석 때 햇곡식으로 제사를 올리지 못한 집안에서는 뒤늦게 조상에게 천신(薦新)을 한다. 떡을 하고 집안의 으뜸신인 성주신에게 밥을 올려 차례를 지내는 곳도 있다. 전남 고흥의 한 지역에서는 이때 시제(時祭)를 지내는데, 이를 ‘귈제’라고 한다.
과거에는 각 마을마다 또는 두세 개 마을에 한 명씩 동네 단골무당이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연말에 이장에게 이세(里稅)를 내듯이 중양절이 되면 이들에게 시주를 하는데, 이것을 하지 않으면 다음에 탈이 있을 때 단골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중양절이 되면 나라에서 태학(太學)의 학생들에게 겨울옷을 하사하는 의식이 있었다. 중양절 무렵이 겨울을 준비하는 적절한 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중구절의 국화술은 중국의 시인인 도연명(陶淵明)과도 관련이 있다. 그가 이날 국화밭에 무료하게 앉아 있는데 흰옷을 정갈하게 입은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도연명의 친구가 보낸 술을 가지고 온 것이다. 연명은 국화꽃과 함께 온종일 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려 말의 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도 중양절에 술을 마시며 도연명의 운치를 깨달았는지 “우연히 울 밑의 국화를 대하니 낯이 붉어지네. 진짜 국화가 가짜 연명을 쏘아보는구나.”라는 글귀를 남겼다. 두목(杜牧)이 남긴 취미(翠微)의 시구에도 이날 좋은 안주와 술을 마련해놓고 친구들을 불러서 실솔시(蟋蟀詩)를 노래하고 무황계(無荒戒)를 익혔다고 한다.
의례
『고려사(高麗史)』에는 이날 중구연(重九宴) 또는 중양연(重陽宴)을 열었다는 기사가 있다. 국가가 규례를 정하여 내외의 신하들과 송나라, 탐라(耽羅), 흑수(黑水)의 외객들까지 축하연에 초대하였다. 조선에 들어와서도 임금이 사신(使臣)들에게 특별히 주연을 베풀었다. 또 탁주(濁酒)와 풍악을 기로(耆老)와 재추(宰樞)에게 내리고 보제원(普濟院)에 모여서 연회하게 하였다.
선조(宣祖) 때 예조에서 제향 절차에 대해 아뢰면서 중양이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는 속절(俗節)로 열거되어 있지 않지만, 이날 시식(時食)으로써 천신하는 것이 고례(古禮)이므로 속절에 해당하는 제사가 행해져야 한다고 하였다.
이언적(李彦迪)은 『봉선잡의(奉先雜儀)』에서 정조, 한식, 단오, 중추와 함께 중양을 속절로 여겨 아침 일찍 사당에 들러 천식(薦食)하고 이어 묘 앞에서 전배(奠拜)한다고 하였다. 이문건(李文楗)의 『묵재일기(黙齋日記)』를 보면 조선 중기까지 사가(私家)에서는 중양절은 등고 외에 간혹 간단한 천주과지례(薦酒果之禮) 곧 천신례가 있을 뿐 묘제를 행하는 한식에 비하면 속절로서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후기에 들어와 삼짇날과 중양일이 함께 또는 둘 중의 하나가 원래 중월(仲月)에 복일(卜日)하여 행하던 사시제(四時祭)의 한 축으로 설정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조선 전기까지는 시제(時祭)보다 기제(忌祭)를 중요하게 여기다가 중엽에 이르러 사대부들이 시제를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는데, 일년 4회의 시제가 부담되었으므로 이를 춘추(春秋) 2회로 줄여 봄에는 삼짇날에, 가을에는 중양절에 지내는 자가 많아졌다고 하였다.
중양절의 시제는 조선 후기 이후 특히 영남지방에서 부조묘(不祧廟)를 모신 집안들을 중심으로 행해져 왔다. 유교 제례에서는 사대봉사(四代奉祀)라고 하여 4대가 지나면 사당에 모시던 신주를 묘에 묻게 되어 있으며, 나라에서 부조(不祧), 즉 묘를 옮기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이 있어야 사당에 신주를 두고 계속 기제사로 모실 수 있다. 이 부조가 인정된 조상에 대한 시제는 각별히 중일을 택하여 삼월 삼짇날이나 구월 중양절에 제사를 지내는데, 특히 중양 때가 되어야 햇곡을 마련할 수 있었으므로 첫 수확물을 조상에게 드린다는 의미도 지닌다. 영남지방에는 중양절에 불천위제사를 지내거나 성묘를 하는 집안들이 간혹 있지만 날이 갈수록 더 귀해지고 있다.
절식
중양절은 국화가 만발할 때이므로 국화주, 국화전을 만들어 먹는다. 국화주는 꽃을 따서 술 한 말에 꽃 두 되 꼴로 베주머니에 넣어 술독에 담아 뚜껑을 덮어둔다. 약주에 국화꽃을 띄워 국화주를 즐길 수도 있다. 화전, 화채, 술에 모두 쓰이는 국화는 재래종인 감국(甘鞠)이어야 향기도 좋고 오랫동안 싱싱하다.
국화전은 노란 국화꽃잎을 따서 국화 찹쌀떡을 만드는데, 그 방법은 삼월 삼짇날의 진달래떡을 만드는 방법과 같으며, 이름도 화전(花煎)이라고 한다. 봄의 진달래 화전은 율무를 많이 쓰는 반면 가을의 국화전은 찹쌀가루를 많이 쓴다. 중국 양나라 사람 오균(吳均)이 지은 『서경잡기(西京雜記)』에 “한나라 무제(武帝) 때 궁녀 가패란(賈佩蘭)이 9일에 이(餌) 떡을 먹었다.”라고 했는데, 이(餌)란 경단[餻]을 말하는 것이다. 송나라 사람 맹원로(孟元老)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는 “도시 사람들이 중구(重九)에 가루로 떡을 쪄서 서로 선물한다.”라고 했다. 잘게 썬 배와 유자(柚子)와 석류(石榴)와 잣 등을 꿀물에 탄 것을 화채(花菜)라고 하는데, 이것들도 모두 중양절 음식으로 제사에 쓴다.
의의
추석이 햇곡으로 제사 지내기 이른 계절이 되어감에 따라 추수가 마무리되는 중양절에 중구차례를 지내는 등 논농사의 발전에 따라 조상을 위하는 날의 의미를 더해갔다. 조선시대에 이날 기로연을 베풀었다는 사실은 장수에 좋다는 국화주를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에서는 물론 민간에서도 이날을 경로(敬老)의 날로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출처: 중양절 [重陽節] (한국세시풍속사전).
[3]. 베이징 관광국에 나타난 중국의 충양제[중양절(重阳节, 重陽節), .
충양제[중양절(重阳节, 重陽節),
[4]. 중양절과 함께, 국화의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국화향기, 국화주, 국화주, 국화떡(또 다른 많은 중양떡), 登高
여러가지 신문이나 자료로 이를 살펴봅니다.
. 필자 주 4). 중국인들은 노란색과 붉은색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유교 경전 예기에 나타난 국화는 노란색인데, 중국 단풍등을 보면 붉은색도 함께 좋아하는걸 알 수 있습니다.
a. 신나는 어린이 중국어. <중국문화 속으로> 중국의 단풍명소/다락원/2018.9.11.
...중국은 대륙성 기후이기 때문에 겨울과 여름의 기온차인 연교차와 아침 저녁의 기온차인 일교차가 매우 심하답니다. 덕분에 중국 역시 아름다운 단풍 풍경을 자랑하지요.
또한 단풍 명소들이 넓은 지역에 걸쳐져 있어서 지역에 따라 9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단풍을 감상할 수 있답니다.
중국말로 단풍을 ‘红叶 hóngyè‘라고 해요. ‘红’은 붉은색을, ‘叶’는 나뭇잎을 뜻해요. 따라서 ‘红叶’는 붉은 잎을 뜻하는 것이지요.
. 필자 주 5). 红叶 은 홍엽이며, 단풍,홍엽을 의미합니다. 叶의 번체는 葉입니다.
중국에서 ‘红叶’로 유명한 지역은 어디인지 알아 볼까요?...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678894&memberNo=4753342
b. 색으로 보는 색다른 중국문화. by 문정아 중국어. Apr 22-2016
. 빨간색.
...중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색...
. 노란색.
... 고대 중국인들이 맨 처음으로 인지한 원시의 색 노란색...
https://brunch.co.kr/@no1hsk/50
c. 예스책꽃이.
베이징 특파원 중국문화를 말하다. 홍순도 등 저/서교출판사.
...중국인들은 색깔에 대단히 예민하다. 좋아하는 색과 싫어하는 색이 극단적으로 갈린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붉은색과 황색이다...
http://m.ch.yes24.com/Article/View/17758
2. KBS, 2016.09.15 , 김재현 기자 보도기사.
지금부터는 상항(上項)의 날과 속절(俗節)인 단오(端午)·중추(中秋)·중양(重陽) 등에는 모두 사형을 금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세종 21년 12월 4일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345529
3. 경기 도민일보
국화꽃 향기 가득한 중양절 세시행사수원광교박물관 앞마당 등지서
2016.10.04, 우영식 기자 보도기사
4. 비전성남, 구현주 기자, 2016/09/22 보도기사
축제는.... 한국의 전통 세시풍속인 중양절(음력 9월 9일)에 맞춰 10월 8·9일 진행된다. 축제는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한·중 요리배틀, 중양절 체험 이벤트, 다문화 이색 먹을거리 체험, 다문화 노래자랑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성공적인 축제를 위해 상인들은 온라인마케팅을 비롯해 골목환경개선을 위한 정화활동을 펼치고 ‘상점 이어주기 쿠폰’과 ‘맛집지도’를 제작해 손님 맞을 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http://snvision.seongnam.go.kr/sub_read.html?uid=5765
5. 뉴스웍스, 유광종 기자, 2016.09.21 보도기사
...중국에서는 국화의 꽃잎이 장수(長壽)에 도움을 준다고 해서 수객(壽客), 연령객(延齡客), 만절향(晩節香)으로도 부른다. 해의 정기가 모아져 역시 건강 유지에 효험이 있다고 해서 일정(日精)으로도 적었다. 음력 9월에 피는 꽃이라 해서 구화(九花)로도 부른다.
http://www.newswork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2345
6. 중국의 창. 2016-10-03 보도기사
...또 국경절 연휴 후 곧 맞이하게 될 노인절인 중양절의 영향을 받아 60세 이상의 노인 관광객도 대폭 늘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가정은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하고 있습니다. 상해 디즈니, 광주 장륭(長隆) 풍경구, 주해 장륭 해양세계 등 코스의 인기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도우관광사이트' 대외연락부 왕밀(王蜜) 여사의 소개에 따르면 서북과 서남의 가을철 관광도 국내 관광의 큰 특점으로 되고 있습니다.
http://korean.cri.cn/1620/2016/10/03/1s240715.htm
7. 중양절, 중국에서 유래한 명절이 한국의 전통 명절 된 유래는
일간스포츠, 2015.10.21 보도기사
8. “국화 핀 서리 아침, 떨어진 잎새 울리고 오는 가을바람…”
위클리 서울, 김초록 기자, 2016.09.30 보도기사
<김초록 에세이> 국화(菊花)를 위하여
http://www.weeklyseoul.net/news/articleView.html?idxno=34743
9. 국화전과 국화술, 중양절 ‘세시 풍속과 절기 음식’
뉴시스, 유상우 기자, 2013.10.12 보도기사 | ||||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31011_0012426356&cID=10201&pID=10200
10. 경남 함양 지리산국화주, 이번엔 산삼수 개발
세계일보, 창원 안원준 기자, 2016.09.01 보도기사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6/09/01/20160901000833.html
11. 중구날-단풍과 국화주술잔에 국화 띄워 시를 짓고…
음력 9월9일 단풍관광 시즌 알리는 날
조선시대 노인잔치로 경로사상 드높여
강원도민일보, 안광선 기자 2013.10.18,보도기사
12.전남도 2월 남도 전통술 '자희향 국화주'
무안 뉴시스 맹대환 기자, 2015.02.01 보도기사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0201_0013450868&cID=10809&pID=10800 | ||||
경남도민일보, 우귀화 기자, 2013.10.04 보도기사
14. '중양절 국화떡 맛보러 왔어요'
뉴시스, 박문호 기자, 2012.10.21 보도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4780978
15. 곳곳에서 국화 전시회가 열리고, 국화 술을 담그며, 재래시장에는 국화잎이 새겨진 하얀 국화떡 굽는 고소한 냄새가 정겹다
세계일보, 황종택의 新온고지신. 2015-10-07 보도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10/07/20151007003729.html?OutUrl=naver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이나 중국등지의 유교와 전통명절을 되돌아보고, 다방면으로 연구.검토하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1. 한국은 전통적인 세계종교 유교나라임. 불교는 한국 전통의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 일제강점기때 창조주에 저항하는 부처Monkey의 불교에 토대한 후발.국지적 불교 신도국가 일본이 Monkey 일본 신도와 Monkey 일본 불교를 한국에 강제 포교시킴.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 필자는 부모 모두 양반인 파평윤씨 양반가문 출신임[경반(京班)은 아니고 향반(鄕班)]. 성씨없는 마당쇠 일본 불교 신도(神道)의 천황이나 일제(日帝)가 세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 일본불교 잔재가 한국에 남아 한국사람들이 조계종 천민 승려의 불교나 주권없는 일본 불교를 믿으면서 덤비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는 문제가 발생함. 유교권 선교에 경험이 많은 가톨릭 예수회와 달리 조상제사를 거부하는 많은 기독교계파들이 일본 신도.일본 불교.일본 기독교의 일제 강점기 강제 포교종교를 믿으면서, 종교주권없이 유교나라 한국에 대항하고 있지만, 한국은 세계사 측면에서 한(漢)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를 믿어온 수천년 유교국가임은 변하지 않음.
http://blog.daum.net/macmaca/2746
2.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blog.daum.net/macmaca/2596
3.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179
4. 한국사와 세계사의 연계는 불가피함. 그 동안의 한국 공교육 전통을 감안하면, 지엽적인 마찰이 생겨도 수천년 인류역사를 담은 세계사와의 연계는 가장 옳은 정답에 해당됩니다. 한나라이후 세계종교로 동아시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아온 유교전통.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그리고 세계사를 반영하여 관습법적으로 교황윤허 서강대.
http://blog.daum.net/macmaca/2575
5. 유교의 내세관(來世觀)과 기복신앙(祈福信仰) 측면에 대한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800
6. 유교국가의 전통적 특징중 하나는 호적(戶籍)제도였음. 한국과 중국의 호적제도에 관하여!
http://blog.daum.net/macmaca/2492
7. 세계사로 볼때,한나라때 동아시아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은 이미 세계종교 유교가 자리잡았음. 위만조선.한사군때 유교가 한국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고려.조선시대는 기자조선도 인정했었음. 한자, 한문성씨사용,고인돌, 고대 부여 영고,고구려동맹, 예의 무천,삼한의 상달제등 제천의식이나 전통 유교풍속은 황하문명에서 피어난 상고시대 유교의 영향을 나타냄. 이후 삼국시대는 부여 및 삼한의 유교를 승계하여 난생신화같은 하늘의 아들 의식, 하늘숭배.조상숭배가 있는 설날.추석.단오.한식같은 유교 명절, 유교 교육, 한자의 사용, 한문성씨의 사용등이 있었고, 불교는 중국불교형태로 받아들였지만,거센 반발때문에, 신라의 경우 이차돈의 순교가 있고나서야 후발 외래 포교종교로 불교를 받아들임. 고려는 치국의 도가 유교, 수신의 도가 불교였는데, 유교의 각종 명절과 제사가 있었고, 교육기관으로 국자감이 있었음.
새롭게 종교인구 산출을 어떻게 해도,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8. 1954.10.1,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승만) 연설문. 우리나라의 종교인 유교를 강조, 유교의 교훈을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 아세아 동방 모든 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를 입었다고 하시며, 유교의 교훈을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 유교의 전통 가르침인 삼강오륜을 중시하는 연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