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9.9, 베리타스 알파, 김 하연기자 보도뉴스.
성균관대는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한글을 통해 세계인과 소통하며 한국의 고유한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10년 넘게 중국, 동유럽,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각 지역에서 성균한글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만 11번째 개최되는 유라시아 성균한글백일장은 학생들이 한국어 실력을 뽐내는 것은 물론 나아가 우리나라로 유학을 오기 위한 하나의 관문으로 널리 알려진 대회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에서 개최된 이번 대회에는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하여 불가리아,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카라칼팍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터키 총 8개 국가 24개 대학 59명의 학생이 참여하였다. 학생들은 각 지역에서 예선을 치러 선발되었으며, 이날 주어진 제시어를 주제로 한국어 실력을 겨뤘다.
대회위원장인 성재호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인사말에서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라는 노래에 ‘I want something stronger’라는 가사가 있다. 여러분들도 한국어를 공부하고 백일장을 준비하는 동안 이미 한층 더 성장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 그 실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 성균관대의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 대중언론이나 사설 입시학원의 자료를 이용하여 매일 덤벼도,조선 성균관=성균관대였었고, 성대 6백년 역사는 정부의 학술적 정설(定說)로 보강까지 되어, 앞으로도 바뀔 사유가 없습니다.
대중언론이나 사설 입시학원의 자료를 이용하여 매일 덤벼도,조선 성균관=성균관대였었고, 성대 6백년 역사는 정부의 학술적 정설(定說)로 보강까지 되어, 성균관대의 최고(最古,最高)학벌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변할 사유가 없습니다. 대학은 Royal대인 성균관대나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드물게 교황 윤허 대학중 하나. 세계사를 반영시 성균관대처럼 관습법적으로 Royal대 학벌)학벌이 가장 높고 좋으며, 세계적인 영향력이 있습니다.
대학.종교관련, 한국에서는 한국사.세계사의 정설(定說)을 대체할 이론이 없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세계사는 가장 보편적인 정설(定說)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교과서적 정설이 해당국가에 맞지 않으면, 국가주권이라는 개념을 적용하여, 해당국가만 별도의 이론을 교육시키는 방법도 가능하겠습니다.
대학.종교관련, 확실하다고 인용할 수 있는 이론은 교과서(참고서포함), 백과사전, 전문사전, 오랜동안 애독되어온 전문 학술서등이 가장 신뢰대상인 것 같습니다.
이런 定說에 바탕하지 않거나 위배되는 새로운 이론은, 세계사나, 그나라 국사 및 정부입장과 대조하면서, 定說로는 채택하기 어려운, 새로운 논문.主義등으로 간주하는게 적절한 것 같습니다(학자가 아니면서 문필가.사상가 영역에서 활동하는 필자를 포함하여 누구의 이론이나 주장.主義든간에...).
대학관련, 대중언론이나, 사설 입시학원들의 자료, 시중의 광고용 홍보는 定說이나 학술이론으로 채택해 줄 수 없는 특정집단의 홍보자료로 간주하면 적절한 것 같습니다. 현대에 들어 대중언론과 광고의 범람으로, 오랜 권위를 인정받아온 교과서나, 정부 간행물, 역사서, 경전(유교나 가톨릭등)등의 권위가 훼손될수도 있겠는데, 대중언론과 대중문화는 한계가 있는 매체임은 분명하니까, 상업적으로 돈을 버는데 유리한 측면은 인정하면서도, 오랜 역사와 전통의 대학.학술.문화.종교등의 기득권은 보호되어야 하겠습니다.
한국의 경우 국가기관이며 국책연구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해온 국사의 내용을 학교교육에 반영하고, 이전의 예비고사.학력고사나 현재의 수능에 적용하지 않을 수 없을것입니다. 고등고시, 공무원시험, 경찰시험등에서도, 국사편찬위의 발행내용에 크게 벗어나지 않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학설 그대로 반영하여 출제해 온 특성이 강하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公敎育에서 오랫동안 다음과 같이 교육을 시켜왔습니다.
- 다 음 -
1. 한국사 성균관(해방후에 성균관대로 계승되어 600년 역사를 인정받고 있음),
2. 윤리나 한문(또는 국어의 고전)수업에서 가르치는 유교교육 삼강오륜(공자님과 맹자님의 가르침).
3. 세계사 교육:세계사는 서유럽과 교황청의 영향력이 강하게 반영되었다고 판단됨. 그리고 학술적으로 중국의 황하문명이나 한나라 태학. 유교등도 기득권을 중요하게 인정해온 경향
1). 황하문명, 유교, 중국 한나라 태학(그 이후의 국자감. 국자감은 청나라때 경사대학당이 되고 이후 북경대로 계승됨)
2). 에게문명, 로마 가톨릭, 중세유럽의 대학인 볼로냐 대학, 파리대학등
구한말 國外에서 외국세력의 힘과, 한국내에서 유교와의 마찰에 놀란 대원군이 쇄국 정책을 펴고, 서양의 발전된 과학기술 수용까지 거부하면서 유교를 지킨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계화시대가 되었으므로, 근대 중국의 침체기 및 한국의 수난기에, 세계사의 주도세력으로 여러 학자들 이름이 거론되는 서유럽과 교황청의 전통과 자격을 감안하여, 유교나 한국에 필요한 가톨릭 예수회(서강대)임을 강하게 느껴, 宮 성균관대(국사교육에서 가르치는 유일무이의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성을 승계한 최고대학으로 600년의 역사를 한국정부로부터 인정받고 있음)=御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 중 하나)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대중언론이나 사설 입시학원의 자료를 이용하여 매일 덤벼도 국사 성균관=성균관대(6백년 역사)가 정부의 학술적 정설(定說)이기 때문에, 성균관대의 최고(最古,最高)학벌은 바뀌지 않아왔고, 현재도 그렇습니다.
한국의 정부체제.국가체제(국가기관.국책연구기관인 국사 편찬위의 국사 성균관 서술, 교육기구로는 성균관=성균관대)는 바뀌지 않아왔고, 현재도 그렇습니다. 국사 성균관=성균관대이며 6백년 역사의 성균관대.
6백년전부터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의 최고 교육기관이던 성균관(성균관의 정통성은 해방후 미군정부터 국사교육을 통하여 성균관.성균관대가 유지.계승시켜옴)같은 유서깊고 정통성있는 Royal대인 성균관대.
@ 서울대는 경성제대 후신으로 을사조약이 무효고(따라서 국내법 우위의 전통 법이론으로 보면 한일병합도 무효), 일본이 항복하면서 받아들인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에 의해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이 없어왔습니다. 그 추종세력인 연세대.고려대도 당연히 그런 주권없고 학벌없는 일본 강점기 잔재에 편승한 저항세력. 연세대는 일본 강점기의 연희전문에서 비롯되어, 해방후 대학이 되었습니다. 고려대는 양반아닌 서민[필자 주). 여기서 서민이라 하면 경제적 측면보다 신분이 높지 않은 계층에 적용되는 말]출신 이 용익이 개인적으로 세운 보성전문에서 출발하여, 해방후 대학이 되었는데, 친일파로 일컬어지는 김성수가 인수하여 대학으로 만들었습니다.
1.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에 보면 이 용익에 대하여 이렇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 용익
정의
1854(철종 5)∼1907. 조선 말기의 정치가.
생애 및 활동사항
함경북도 명천 출신이다. 서민의 아들로 태어나 소년 시절에 서당에서 수학하였다. 그 뒤 고향을 떠나 한때 보부상(褓負商)으로 행상하여 자금을 모았고, 함경남도 단천에 와서 금광에 투자, 거부가 되었다.
재화를 얻게 되자 큰 뜻을 품고 한성에 올라와 민영익(閔泳翊)의 집에 기거하면서 금광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충주로 피신한 민비(閔妃)와 민영익 사이를 발빠르게 오가며 비밀연락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민영익의 천거로 고종의 신임을 얻어 출세의 길을 잡았다.
...그 뒤 민족의 역량을 배육하고자 자비로 보성소학(普成小學)과 중학 그리고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의 전신)를 설립하여 장차 국가의 동량이 될 인재를 키워내기에 힘썼다...
. 출처: 이용익[李容翊]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서민(庶民 )에 대하여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서민 庶民
1. 아무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을 갖지 못한 일반 사람. ≒서인2(庶人)ㆍ인서1(人庶)ㆍ하민(下民).
2. 경제적으로 중류 이하의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 ≒범민.
@ 포츠담선언 및 , 한일 기본조약뿐만 아니라, 한국의 현행헌법(1988년부터 시행)에 보장된 임시정부 법통때문에,이론상으로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강행법측면에서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이 없습니다.
한국의 역사적.교과서적.국가적 차원의 최고(最古,最高) 대학학벌은, 조선,대한제국과 마찬가지로, 해방후 미군정부터 현재까지 성균관의 정통성을 승계한 6백년 역사의 성균관대입니다.
한편 세계사를 저술한 것으로 판단되는[대부분 서유럽 학자들의 이름만 나옴. 이는 2차대전 이전 근대에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역사가 그렇게 만든것 같음] 서유럽.교황청의 영향력은 지금도 세계사나 여러가지 교과서(참고서 포함).백과사전.학술서적등을 통하여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서강대는 교황윤허로 대통령령에 의해 발행된 한국 민족문화대백과가 그렇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Royal대학은 성균관대(국사 성균관의 정통성 승계로 6백년 역사)와, 교황윤허의 서강대 뿐입니다. 다른 대학들은 비신분제 대학으로, Royal대에 대한 충성도를 보아, 개인적으로 조금씩 중용해 나가면 될것입니다.
서울대는 한국에 주권없고 학벌없는 패전국 잔재임. 한국에서는 국사에 나온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가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학벌이며 Royal대임. 한국에서 Royal대는 성균관대와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 윤허 대학중 하나)밖에 없음. 다른 대학들은 비신분제 대학들임.
일본항복후,포츠담선언문 8항에 의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의 한국내 주권이나 학벌은 없어왔음.
http://blog.daum.net/macmaca/2375
대학은 Royal대인 성대나 서강대(교황윤허)가 좋습니다. 중요한건 해방이후 현재까지 성대가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이어 왔다는 것.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내 Royal대학들인 성균관대나 서강대에 대한 국사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세계사도 참조)등, 정부자료를 위주로, 자료인용을 하면서, 청산하지 않은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說)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성균관대.
http://blog.daum.net/macmaca/2325
2. 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 참석.
http://blog.daum.net/macmaca/1467
3. 한일합방과 을사 5조약이 원천무효라고 결의한 한국 국회결의. 그리고 한일합방건 일본정부 발표에대해 원천무효라고 밝힌 한국 외무부
http://blog.daum.net/macmaca/712
4. 2차대전 결과와 상관없이,세계사와 한국사를 바꾸지 못하면, 교과서(백과사전,학습서), 학술서적상의 기득권 대학 학벌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1812
5.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으로, 한국에 주권없는 패전국 일본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 왜놈학교 잔재를 청산하여야 함. 그리고 임시정부 대일선전포고문등도 같이 활용해야 함.
http://blog.daum.net/macmaca/2637
6. 한국은 유교나라임. 불교는 한국 전통의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blog.daum.net/macmaca/2632
7. 세계사로 볼때,한나라때 동아시아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은 이미 세계종교 유교가 자리잡았음. 위만조선.한사군때 유교가 한국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고려.조선시대는 기자조선도 인정했었음. 한자, 한문성씨사용,고인돌, 고대 부여 영고,고구려동맹, 예의 무천,삼한의 상달제등 제천의식이나 전통 유교풍속은 황하문명에서 피어난 상고시대 유교의 영향을 나타냄. 이후 삼국시대는 부여 및 삼한의 유교를 승계하여 난생신화같은 하늘의 아들 의식, 하늘숭배.조상숭배가 있는 설날.추석.단오.한식같은 유교 명절, 유교 교육, 한자의 사용, 한문성씨의 사용등이 있었고, 불교는 중국불교형태로 받아들였지만,거센 반발때문에, 신라의 경우 이차돈의 순교가 있고나서야 후발 외래 포교종교로 불교를 받아들임. 고려는 치국의 도가 유교, 수신의 도가 불교였는데, 유교의 각종 명절과 제사가 있었고, 교육기관으로 국자감이 있었음.
새롭게 종교인구 산출을 어떻게 해도,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