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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문화연대는 정부기관.국책연구기관도 아니고 백과사전에도 등록되지 않은 생경한 시민단체일 뿐인데, 이 단체도 이상한 주장을 하네요. 새로 만

한글 문화연대는 정부기관.국책연구기관도 아니고 백과사전에도 등록되지 않은 생경한 시민단체일 뿐인데, 이 단체도 이상한 주장을 하네요. 새로 만든 당신들 주장도 학교에서 못가르칩니다.


@ 한글창제는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연구결과라는게 정설. 한국은 역사적 기자조선(고려.조선시대에는 기자조선 인정)을 거쳐, 지금도 정사인 위만조선.한사군 이후 수천년 유교나라임.



.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 창제에 기여한 사실.


* 집현전의 학자들은 한글 창제에 큰 기여를 하였고, 팔도지리지, 농사직설, 고려사, 국조오례의 등의 수많은 책을 편찬했어요. 

.출처: 천재학습백과 초등 사회 용어사전


* 조선 세종 때 설치한 학문 연구 기관. 가장 중요한 임무는 학문 연구를 통한 왕의 자문 역할이다. 경연, 서연을 담당하였고, 사관(史官)의 일도 맡아보았다. 세종 때 한글 창제 등에 많은 일을 맡아 처리하기도 하였다.


. 출처: 집현전(Basic 고교생을 위한 국사 용어사전, 2001. 12. 10., 황병석)


* 특히 훈민정음의 창제와 이에 관련된 편찬 사업인 『운회언역()』·『용비어천가주해()』·『훈민정음해례()』·『동국정운()』·『사서언해()』 등은 우리 나라의 문화 유산으로서 귀중한 것이라 하겠다. 집현전의 이 같은 고제 연구와 편찬 사업은 세종대의 황금시대를 이룩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 출처: 집현전[集賢殿]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집현전의 업적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의 협력한 일과 《훈민정음 해례》 편찬이었지만, 이 밖에도 《고려사()》, 《농사직설()》, 《오례의()》, 《팔도지리지()》, 《삼강행실()》, 《치평요람()》, 《동국정운 ()》, 《용비어천가()》 ,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의방유취()》 등의 서적을 편찬 간행하여, 우리나라 문화사상 황금기를 이루게 하였다.


. 출처: 집현전[集賢殿]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 12. 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특히 훈민정음의 창제와 이에 관련된 편찬사업인 《운회언역()》 · 《용비어천가주해()》 · 《훈민정음해례()》 · 《동국정운()》 · 사서언해()》 등은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으로서 귀중한 것이라 하겠다. 집현전의 이 같은 고제연구와 편찬사업은 세종대의 황금시대를 이룩하는 데 원동력이 되었다.


출처: 집현전 [集賢殿] (국어국문학자료사전, 1998., 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 한국어

한국어[ Korean language , ]    

요약 한국인이 사용하는 언어이며, 주로 한반도 전역과 제주도를 위시한 한반도 주변의 섬에서 사용한다.
          

한국인이 사용하는 언어로 중화권 국가에서는 조선어로 부르기도 한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여 전 세계에서 약 7700만 명(2010)이 사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어의 어휘체계는 순수한 고유의 말과 한자어() 그리고 차용어()로 구성되어 있다. 순수한 고유의 한국어 속에 침투되어 있는 한자어는 고대로부터 이미 중국과의 문화 접촉으로 말미암아 그 영향이 언어에도 미친 결과이며 현재 한국 언어재()의 절반 이상(약 60%)이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다.

삼국시대(고구려·백제·신라)에 이미 한문이 삼국의 문자생활의 기반이었고 이와 같은 상태는 19세기 말 근대화 이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한국민족은 말은 국어로 하면서 쓰기는 한문으로 하는, 구어()와 문어()의 불일치()에서 오는 2중 체제의 기형적 상태를 오랫동안 경험하게 되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한문적 요소가 대량으로 국어 속에 침투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15세기 중엽에 독창적인 고유의 문자를 제정한 이래 전해 내려오는 상당한 수의 국어 문헌에서 이와 같이 국어 속에 한문 요소가 침투된 실상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차용어는 각 시대에 따라 문화 접촉의 양상을 반영해 주고 있거니와 고려시대에는 몽골어에서, 조선시대에는 주로 중국어를 차용하였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근대화 과정 이래 구미어()가 차용어의 주류를 이루었다.


. 출처: 한국어 [Korean language, 韓國語] (두산백과)



* 훈민정음


훈민정음

[ ]

요약 1443년에 창제된 훈민정음에 대한 한문해설서.《훈민정음예의본()》과 《훈민정음해례본()》이 있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다. 목판본으로 2권 2책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책으로서의 훈민정음에는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니…"라고 한 《훈민정음예의본》과, 글자를 지은 뜻과 사용법 등을 풀이한 《훈민정음해례본》이 있다.

전자에 대해서는 《세종실록》과 《월인석보()》 첫권에 같은 내용이 실려 있어 널리 알려졌으나, 후자에 대하여는 1940년 발견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한글의 형체에 대하여 고대글자 모방설, 고전() 기원설, 범자() 기원설, 몽골문자 기원설, 심지어는 창살 모양의 기원설까지 나올 정도로 구구한 억설이 있었으나, 이 책의 출현으로 모두 일소되고 발음기관 상형설()이 제자원리()였음이 밝혀졌다.

후자는 예의()·해례()·정인지 서문 등 3부분 33장으로 되었는데,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었고, 해례는 정인지()·박팽년()·신숙주()·성삼문()·최항()·강희안()·이개()·이선로() 등 집현전(殿) 학사가 집필하였다. 정인지가 대표로 쓴 서문에는 1446년 9월 상순으로 발간일을 명시하고 있어, 후일 한글날 제정의 바탕이 되었다.

1940년까지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주하동() 이한걸가()에 소장되었던 해례본은 그의 선조 이천()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세종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었다. 이 책이 발견되어 간송미술관에 소장되기까지에는 김태준()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발견 당시 예의본의 앞부분 두 장이 낙장되어 있었던 것을 이한걸의 셋째 아들 용준()의 글씨로 보완하였다. 용준은 안평대군체()에 조예가 깊었으며, 선전()에 입선한 서예가였다.

낙장된 이유는 연산군의 언문책을 가진 자를 처벌하는 언문정책 때문에 부득이 앞의 두 장을 찢어내고 보관하였다고 하며, 이를 입수한 전형필은 6·25전쟁 때 이 한 권만을 오동상자에 넣고 피란을 떠났으며, 잘 때에도 베개 삼아 베고 잤다는 일화가 전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출처: 훈민정음  [訓民正音] (두산백과

  


. 첨부자료

@ 불교는 한국 전통의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며,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 http://blog.daum.net/macmaca/2632


@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 세계사를 반영시 Roylal대인 성균관대와 더불어 교황 윤허 서강대도 관습법적으로 Royal대.blog.daum.net/macmaca/2575


@ 세계사로 볼때,한나라때 동아시아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은 이미 세계종교 유교가 자리잡았음. 위만조선.한사군때 유교가 한국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고려.조선시대는 기자조선도 인정했었음. 한자, 한문성씨사용,고인돌, 고대 부여 영고,고구려동맹, 예의 무천,삼한의 상달제등 제천의식이나 전통 유교풍속은 황하문명에서 피어난 상고시대 유교의 영향을 나타냄. 이후 삼국시대는 부여 및 삼한의 유교를 승계하여 난생신화같은 하늘의 아들 의식, 하늘숭배.조상숭배가 있는 설날.추석.단오.한식같은 유교 명절, 유교 교육, 한자의 사용, 한문성씨의 사용등이 있었고, 불교는  중국불교형태로 받아들였지만,거센 반발때문에, 신라의 경우 이차돈의 순교가 있고나서야 후발 외래 포교종교로 불교를 받아들임. 고려는 치국의 도가 유교, 수신의 도가 불교였는데, 유교의 각종 명절과 제사가 있었고, 교육기관으로 국자감이 있었음.

 새롭게 종교인구 산출을 어떻게 해도,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561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학문적 정설(定說)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필자도 학자는 아니며, 부족한 사상으로 무언가를 주장할때도 있습니다. 학설이나 정설로 채택되지 않는 문필가요 사상가적 측면이 강한사람입니다만, 가급적 교과서, 국내법.국제법, 백과사전, 정설(定說).정사(正史)로 여겨질만한 학술서적에 등재된 내용을 위주로 사상을 전개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학문적 견지로 보면 필자의 사상을 교과서로 가르치기는 힘들다고 인정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