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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最古, 最高) 대학 성균관대 주최 ‘제4회 중-동유럽 성균 한글 백일장’ 비엔나에서 열려

한국 최고(最古, 最高) 대학 성균관대 주최 ‘제4회 중-동유럽 성균 한글 백일장’ 비엔나에서 열려

 

[I]. 재외 동포신문 보도자료.

 

‘제4회 중-동유럽 성균 한글 백일장’ 비엔나에서 열려

 

헝가리, 체코, 러시아, 터키 등 11개국 28명 참여… 비엔나 국립대학교의 밀레나 노비 학생 금상 수상.

 

재외 동포신문 김운하 해외편집위원. 2018.11.16 보도자료 

 

 

성균관대학교가 주최하는 ‘제4회 중-동유럽 성균한글백일장’ 대회가 11월 9일 오전 10시부터 비엔나 한인문화회관에서 열렸다.

한국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올바른 이해와 관심을 유도하고 한국어에 대한 지속적인 글로벌 홍보를 위해 성균관대학교가 개최하고 있는 이 행사에는 중-동유럽 11개국에서 한국어학과 또는 한국학과가 있는 14개 대학 재학생 28명이 참가했다.
 

 

이하생략.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웹주소 참조 요망.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취지의 글로, 신문 보도 내용을 인용하였으니, 이 점 양 해 바랍니다.   

 

http://www.dongpo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8304

 

 

[2]. 국사에서 가르치는 조선.대한제국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을 계승한 성균관대에 대항하여 미군정 시대에 자유롭게 등록하여 자유롭게 글을 써온 대중언론에서는 일본 경성제대 후신으로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이 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2차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이 항복하면서 받아들인 포츠담선언에 의해 일본의 주권은 한국영토에 없어왔습니다)를 중심으로 다른 카르텔을 만들어 성대에 대항해오고 있지만, 한국의 국사 교육은 조선.대한제국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을 정설(定說)로 하여 교육시켜오고 있습니다.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에서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는 일본인지라, 미군정령에서 경성제대가 서울대가 되고 국립대가 되었어도, 적산재산의 국유화정도로 자격이 제한된다 할 수 있습니다. 을사조약.한일병합이후 설립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의 주권이나 학벌은 대중언론에서의 발호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토에 없는점을 분명하게 인지해 두셔야 합니다. 참고로 하면 해방후 성균관대가 성균관의 최고(最古)교육기관  역사와 유일무이 최고(最高) 교육기관 성균관 지위를 승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국의 최고대학 학벌은 성균관대입니다. 국사에 나오는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6백년 역사의 성균관대와 교황윤허 서강대(서강대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가 한국에서는 가장 학벌이 높고, 세계적인 영향력과 인지도가 있는 Royal대입니다. 다른 대학들은 비신분제 대학들일 뿐입니다.

 

 

일본항복후,포츠담선언문 8항에 의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기타 동국대,전남대.경북대.부산대.서울시립대)의 한국내 주권이나 학벌은 없어왔음. 한편 국제관습법상 세계사의 정설(定說)은 그대로 존중해 주어야 함.

 

[3]. 국사 편찬위에 나오는 포츠담선언 8항과 이에 대한 필자의 해석

 

1. 국사편찬위원회 자료

. 자료대한민국사 제 1권     

. 1945년 7월 26일
. 3대 연합국(미,영,중)의 포츠담선언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권   >   1945년   >   3대 연합국(미,영,중)의 포츠담선언문

제목 3대 연합국(미,영,중)의 포츠담선언문   
연월일 1945년 07월 26일  
출전 선언문 1945년 07월 26일  
3대 연합국(미,영,중)의 포츠담선언문
미국대통령 트루만 중화민국주석 蔣介石 及 영국수상 처칠은 7月 26日 포츠담에서 일본에 대하여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美, 中, 英 三國宣言을 결정 발표하다.
 
◊ 포츠담宣言
 
8) 카이로선언의 조항은 이행될 것이며 또 일본국의 주권은 本州, 北海道, 九州, 四國 及 我等이 決定할 諸 小島에 국한됨.
 

선언문 1945년 07월 26일
 
2. 포츠담선언 8항의 일본국 주권에 대한 필자 해석
 
 

 카이로선언이나 포츠담선언에 대해 을사조약 무효의 국내법.국제법이론을 가져온 대한제국 자격상, 전체적으로 동의할수는 없겠지만, 한국관련 "카이로선언의 조항은 이행될 것이며 또 일본국의 주권은 本州, 北海道, 九州, 四國 及 我等이 決定할 諸 小島에 국한됨"구절은 동의의 대상입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면 전통적인 국내법우위론과, 기존의 국제법(프란시스 레이교수의 국제관습법 의견, 국제연맹의 국제법)을 우선으로 하면서도, 미.영.중의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에 대해서는 대한제국의 기득권을 훼손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여 마찰을 해소하는게 좋을것입니다. 

 

"카이로선언의 조항은 이행될 것이며 또 일본국의 주권은 本州, 北海道, 九州, 四國 及 我等이 決定할 諸 小島에 국한됨"은 일본의 항복서명이 있었으므로, 일본도 항복서명 이후부터는 이에 따라야 하겠습니다. 포츠담선언의 이 부분을 수용한 항복시점부터 일본의 주권은 한국영토에 없어졌으며, 일본이 대한제국 영토에 설립한 경성제대(그 후신이 서울대)나 기타 다른 일본 강점기 학교들(일본 불교인들에 영향받아 세워진 불교학교 후신 동국대, 기타 일본 관립전문학교 후신인 전남대.경북대.부산대 초기부분, 서울시립대) 및 여타의 초.중.고교 및 기타 총독부가 강제로 포교한 종교[일본 신도, 일본 불교, 기독교(주로 개신교. 그리고 가톨릭 일부]들은 포츠담선언에 의하면 한국 영토에서 학교주권이나 지위가 없어진것이며, 강제 포교종교들도 주권이나 자격이 없어진 것입니다. 일본의 입장은 포츠담선언 수락 이후부터 따르는 것이 될수도 있지만, 한국의 국내법 기준은 을사조약.한일병합(경술국치)이 원천무효입니다. 프란시스 레이교수의 국제법의견이나, 국제연맹의 을사조약 무효로 보아도 원천무효라고 필자는 국제법을 그렇게 해석합니다. 일본도 결국은 한국 영토에서는 을사조약.한일병합(경술국치)이 원천무효였다고 한국과 합의해야 할 것 입니다.  

 

[4]. 대학관련, 확실하다고 인용할 수 있는 이론은 교과서(참고서포함), 백과사전, 전문사전, 오랜동안 애독되어온 전문 학술서등이 가장 신뢰대상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정설(定說)에 바탕하지 않거나 위배되는 새로운 이론은, 세계사나, 그나라 국사 및 정부입장과 대조하면서, 정설(定說)로는 채택하기 어려운, 새로운 논문.主義등으로 간주하는게 적절한 것 같습니다(학자가 아니면서 문필가.사상가 영역에서 활동하는 필자를 포함하여 누구의 이론이나 주장.主義든간에...).

 

대학관련, 대중언론이나 시중의 광고용 홍보는 定說이나 학술이론으로 채택해 줄 수 없는 특정집단의 홍보자료로 간주하면 적절한 것 같습니다.  현대에 들어 대중언론과 광고의 범람으로, 오랜 권위를 인정받아온 교과서나, 정부 간행물, 역사서, 경전(유교나 가톨릭등)등의 권위가 훼손될수도 있겠는데, 대중언론과 대중문화는 한계가 있는 매체임은 분명하니까, 상업적으로 돈을 버는데 유리한 측면은 인정하면서도, 오랜 역사와 전통의 대학.학술.문화.종교등의 기득권은 보호되어야 하겠습니다.   

 

한국은 公敎育에서 오랫동안 다음과 같이 교육을 시켜왔습니다.

- 다 음 -

1. 한국사 성균관(해방후에 성균관대로 계승되어 600년 역사를 인정받고 있음),

 

2. 윤리나 한문(또는 국어의 고전)수업에서 가르치는 유교교육.

 

삼강오륜(공자님과 맹자님의 가르침)등의 유교교육이 흔하고, 특히 한(漢)나라이후 세계종교가 된 유교(중국, 한국, 베트남,몽고지역에 걸쳐 일찍부터 세계종교가 된 유교)는 중국에서 들어온 한자나, 설날.단오.추석(한국의 경우 설날.단오.추석등의 명칭이 한국적으로 잘 통용됨)등의 명절을 통하여 수천년동안 동양의 종교.교육.윤리에 체화되어 학교교육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학교 유교교육에서는 하느님(하늘天)을 중시하여 가장 절대적인 원리인 동시에 도덕적인 원리까지 포함하는 존재로 가르치고 있습니다.유교의 인간관은 인간에 대해 만물의 영장이며, 하늘의 기품과 땅의 형상을 가장 완벽하게 부여받은 중간적 존재며, 우주 만물의 이치를 선천적으로 구비하였다는 종교관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리고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五常)으로 인격완성을 위한 노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 세계사 교육:세계사는 서유럽과 교황청의 영향력이 강하게 반영되었다고 판단됨. 그리고 학술적으로 중국의 황하문명이나 한나라 태학. 유교등도 기득권을 중요하게 인정해온 경향

   1). 황하문명, 유교, 중국 한나라 태학(그 이후의 국자감. 국자감은 청나라때 경사대학당이 되고 이후 북경대로 계승됨)

   2). 에게문명, 로마 가톨릭, 중세유럽의 대학인 볼로냐 대학, 파리대학등 

    

. 구한말 國外에서 외국세력의 힘과, 한국내에서 유교와의 마찰에 놀란 대원군이 쇄국 정책을 펴고, 서양의 발전된 과학기술 수용까지 거부하면서 유교를 지킨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계화시대가 되었으므로, 근대 중국의 침체기 및 한국의 수난기에, 세계사의 주도세력으로 여러 학자들 이름이 거론되는 서유럽과 교황청의 전통과 자격을 감안하여, 유교나 한국에 필요한 가톨릭 예수회(서강대)임을 강하게 느껴,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5]. 대통령령으로 발행된 한국 민족문화대백과가 규정하는 성균관대와 서강대.

 

1. 대통령령과 관련된 한국 민족문화대백과

 

1979년 9월 25일 대통령령 제9628호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사업 추진위원회 규정」을 공포하였고, 동 규정에 근거하여 1980년 3월 18일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편찬사업 담당부서를 두었으며, 1980년 4월 10일 제1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사업 추진위원회의 개최를 시작으로 1991년까지 12년의 기간 동안 3백여 명의 편집진과 3,800여 명의 집필자가 참여하였다. 27권에 총면수 2만 4748면이고 항목은 6만 5천여 개이고 도판은 4만여 종을 수록하였다.

1988년부터 시안본을 검토 수정하여 1991년에 전권이 출간되었고, 1995년에는 보유편이 28권으로 나왔으며, 일부 개정증보를 거쳐 2001년에CD-ROM 개정증보판이 발간되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韓國民族文化大百科事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서술된 성균관대학교와 서강대.

 

성균관대학교

[ SUNGKYUNKWAN University , ]

 

 

이칭별칭 성균관대, 성대
유형 단체
시대 현대
성격 대학교, 사립종합대학교
설립일시 1398년
설립자 김창숙()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개설

성균관대학교의 연원은 1398년(태조 7) 국립고등교육기관으로 설립된 성균관에서 시작된다. 성균관은 조선 최고의 국립교육기관으로서 국가에 필요한 유능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전통적인 유학 교육을 실시하였다.

연원 및 변천

갑오경장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1895년 성균관에 설치된 3년제 경학과()가 성균관대학교의 근대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시작이다. 성균관은 제향 기능을, 경학과는 교육 기능을 담당하여 유학 경전을 위주로 교육이 이루어졌으나 역사학·지리학·수학 등 근대적인 교과목도 부과되었다.

그 밖에 교육의 목적, 교육과정의 운영, 입·퇴학 절차, 각종 시험 및 학생의 특전, 학기제 채택 등 전통적 교육기관에서 근대학교로의 제도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국권상실 뒤 일제에 의하여 경학원()으로 개편되어,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주로 문묘()의 제향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의 기능만 수행하게 되었다.

1930년 경학원에 로 교명을 회복하였다.

1946년 유림대회()가 개최되어 성균관의 정통을 계승할 대학 설립을 위한 성균관대학기성회가 조직되고 독지가 이석구()가 재단법인 학린사()의 토지를 희사하였다. 이에 김창숙()의 주도로 종전의 명륜전문학교의 재단을 병합한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이 발족하면서 같은 해 9월 정규 단과대학인 성균관대학이 인가되었다. 문학부와 정경학부를 설치하고, 초대 학장에 김창숙이 취임하였다.

.출처: 성균관대학교 [SUNGKYUNKWAN University, 成均館大學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서강대학교

[ Sogang University , 西 ]

 

 
 
이칭별칭 서강대
유형 단체
시대 현대
성격 대학교, 사립종합대학교
설립일시 1960년 4월
설립자 게페르트(Theodor Geppert)

정의

서울특별시 마포구 백범로(신수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연원 및 변천

1960년 2월 재단법인 한국예수회에서 서강대학으로 설립인가를 받아 같은 해 4월 개교하였다. 1948년 한국 가톨릭교회의 발의와 교황 비오(Pio) 12세의 윤허로 대학 설립이 기획되었고, 예수회 게페르트(Theodor Geppert) 신부의 주도로 1956년 재단법인 한국예수회가 발족되면서 대학의 설립에 이르게 되었다.

초대 학장에 킬로렌(K. E. Killoren) 신부가 취임하였으며, 영어영문학과·사학과·철학과·수학과·물리학과·경제학과를 두었다. 1963년 독어독문학과·생물학과·경영학과를 신설하였다. 1964년 국어국문학과·화학과를 설치하고 제1회 졸업생 62명을 배출하였으며, 같은 해 4월 「사립학교법」에 따라 재단법인 한국예수회가 학교법인 서강대학으로 개편되었다...

. 출처: 서강대학교[Sogang University, 西江大學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필자 주 1). 성균관은 조선.대한제국시대의 Royal대(泮宮, 學宮의 별칭가짐)이자 역사적 대학(太學의 별칭가짐)인 성균관에 대한 교육은 해방후 미군정 당시부터 이루어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대통령령에 의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조선.대한제국의 성균관이 해방후의 사립 성균관대로 계승되었다고 규정하기 이전에는 이전부터의 한국 국내 자료,을사조약.한일병합 무효의 대한제국 국내법과, 프란시스 레이교수의 국제법의견, 국제연맹의 의견, 성균관장이 미군정에 성균관대신 성균관대를 대학으로 등록한 사실,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면서 인정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을사조약 무효.한일병합 무효, 대일선전포고)의 자격,1963년 UN국제법위원회의 의견, 한일 기본조약에서 한국측의 의견, 현행헌법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등으로 可視的인 부분과 非可視的인 부분들이 연결되어 그 600년 역사와 전통을 국사 교과서의 성균관 자격을 법으로, 법으로 명확하기 보호받지 못하던 시기에는 관습적으로 계승하여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필자 주 2). 필자가 국사교과서(참고서 포함), 대통령령에 의해 발행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를 바탕으로, 서유럽 학자들의 이름이 주로 나타나는 세계사에서 교황성하의 지위가 아주 높은점등을 반영하여, 최근 10년간 국사 성균관의 계승대학인 성균관대와 동등하게 서강대를 Royal대로 반영해 온 사유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교황 비오 12세의 윤허로 서강대학 설립이 기획되었다고 발견해서입니다. 국사 성균관의 자격을 바탕으로 성균관대의 자격이 계승되어 온것인데, 대중언론에서는 성균관대에 대한 왜곡과 도전이 너무 거세서, 서강대의 자격은 세계사에 대한 예우처럼 성균관대다음의 Royal대(교황성하 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귀족계파 예수회산하의 대학)로 영구적 예우는 하되, 대중언론 및 전방위적으로 왜곡된 해방후의 사립 성균관대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는 대학은 아니었을수도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고통분담과 최고(最古, 最高)대학으로서 성균관대의 전방위적 정착에 많은 이해와 협조가 요구되어지는 대학이기도 합니다.

 

 

6]. 마무리

 

강제.무효의 을사조약(을사늑약)과 한일병합(경술국치)이후, 조선.대한제국의 최고 교육기관이던 성균관은, 일본 강점기에 공자묘 경학원등으로 왜곡되다가, 미군정기에 성균관으로 다시 명칭이 복구되었습니다. 유도회 총본부 위원장이자 성균관장의 위치에 있던 김창숙 성균관장이 전국 유림대회의 결의에 따라, 성균관대를 과거 성균관의 정통성을 승계하는 최고 교육기관으로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군정에 등록하여 인가받아서 그 때부터는 국사교육에서 가르치는 조선.대한제국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교육기능은 성균관대가 승계하여 현재에 이르면서 600년 역사를 법으로, 법이 미흡할때는 관습적으로 인정받아오고 있습니다. 필자는 전통적인 국내법 우위론에 따라 국가주권을 우선으로 하여 국사 성균관(해방후의 성균관대)을 역사와 전통의 최고 교육기관으로 교육하는 공교육의 방침과 전통에따라, 성균관대를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으로 하는 미군정이후의 성균관 방침과, 대통령령에 의해 발행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기준(조선.대한제국의 성균관이 해방후의 성균관대로 계승됨)이 국가적인 법적 기준임은 분명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국사와 아울러 세계사도 고등학교 문과교육에서 시행하고 있는바, 세계사영역에서 가르치는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북경대로 계승됨), 중세유럽의 대학인 볼로냐.파리대학의 세계사적 대학은 국제관습법 측면에서 상당한 예우를 해야 한다고 판단하여 글을 써 왔습니다. 그러나 국가주권이 침해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세계사의 대학들은 강행법차원의 주권은 인정해 줄 수 없으며, 단지 학술적 이론으로는 세계사 교과서(참고서 포함)의 대학들이 가장 존중되고 인정되어야 한다는 견해는 바뀔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교황 비오 12세의 윤허로 대학설립이 기획되었다고 서술되는 서강대의 경우는, 한국에서 국사 성균관(성균관대)과 같은 국내법적 자격이나 역사와 전통은 아직 획득하지 못하였지만, 필자가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를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으로 하고 서강대는 성대 다음 Royal대로 하였는데, 대중언론에서 주권.자격.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및 그 산하카르텔들의 거센 공략에 시달려와서, 동등한 예우는 못해주는걸 아쉽게 생각합니다. 근대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과 교황청관련 국가.대학.주요 단체.주요 인물들의 많은 도움을 받는걸 간접적으로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서유럽 학자들의 이름이 많이 나오고, 수천년 인류역사를 담은 현행 세계사 내용은, 과거와 비슷하게 교육되고 있는데, 과거처럼 현재도 거의 같고, 앞으로도 변경시킬 수 없는 국제관습법적 자격을 가지고 있는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내 Royal대학들인 성균관대나 서강대에 대한 국사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세계사도 참조)등, 정부자료를 위주로, 자료인용을 하면서, 청산하지 않은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說)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성균관대.     

http://blog.daum.net/macmaca/2325     

 

 

2. 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 참석. 

   

http://blog.daum.net/macmaca/1467

 

3. 한일합방과 을사 5조약이 원천무효라고 결의한 한국 국회결의. 그리고 한일합방건 일본정부 발표에대해 원천무효라고 밝힌 한국 외무부

http://blog.daum.net/macmaca/712

 

4. 일본강점기때 폐지.왜곡된 성균관. 해방후에 설립(재건승계)된 성균관대학교가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백과사전.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현대 한국사적 입장에 대한 학술적 고찰. 그리고 한국사의 성균관대(성균관에서 이어짐)와 세계사를 연계하여 해방이후 합법적으로 설립된 敎皇聖下 윤허대학인 예수회의 서강대와의 Royal.Imperial 특성의 공통점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733  

     

5. 自然人에 대한 공평한 능력우대와 달리 法人體로볼때, 일본 강점기 잔재 경성제대.관립전문학교 후신 서울대등은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강점기 잔재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732

 

6. 2차대전 결과와 상관없이,세계사와 한국사를 바꾸지 못하면, 교과서(백과사전,학습서), 학술서적상의 기득권 대학 학벌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