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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세계사 교과서와 국내법.국제법, 사전,학술서의 정통자료를 기준으로 하는게 법이나 학술적으로 맞습니다.

국사.세계사 교과서와 국내법.국제법, 사전,학술서의 정통자료를 기준으로 하는게 법이나 학술적으로 맞습니다.

 

 

 

 

 

 

# 국사.세계사 교과서와 국내법.국제법, 사전,학술서의 정통자료를 기준으로 하는게 법이나 학술적으로 맞습니다. 필자(성대출신 윤진한. 1983학번. 성균관대 퇴계장학생)는 아버지(윤기섭) 어머니(송계순) 모두 양반가문 출신이며, 필자의 가문이 속한 파평윤씨 양반가문은 전북 남원과 남원 부근 전북 장수군 산서면에서 오랫동안 양반 문벌로 입지를 굳혀온 가문입니다. 아버지 집안이야 분명히 전통적인 파평윤씨 양반가문인 족보나 선산, 지역에서의 파평윤씨 문중의 확고한 전통적인 입지구축[파평윤씨 종친회 모임과 국민학교 선생님의 멘트(우리반에서는 윤진한이 가장 양반집안이다.고모님이 시집가신 산서면 면장출신의 사돈집안인 안동권씨 집안의 어른이 호적에 등록되었으면 필자가 자기보다 높다는 의견)]로 어릴때부터 양반인정을 받아온 사람입니다. 해방이후에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결혼하셨는데 양반인 아버지와 결혼하셨으니 어머니도 당연히 양반집안으로 생각해 왔습니다만, 설사 몰락양반 후손이라 해도 양반과 결혼했으니 양반 부인으로 양반이라 생각해 왔습니다. 루머로 본인 어머니를 어떻게 소문내도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친구나 지인들이 접하는 집안내력은 보통 피상적인 것인데, 한국은 가족관계에서 법으로 이전의 호적제도로 가족을 파악해 온 나라입니다. 그리고 현재는 주민등록제도로 법으로 파악합니다.  

 

지역에서의 필자의 가문은 전통적으로 유교집안이며, 형님이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유교명절 및 유교 조상제사 기일에 아버지.작은아버지들이 모두 모여 유교제사를 행하며 필자는 성대출신 유생입니다. 정신적으로 성대임금(필자가 정신적으로 성대임금.서강대 임금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옴)으로 자천하여 오래전에 성대 총학생회 게시판에서 수백명 이상의 투표지지를 얻고, 유학대학 게시판에도 많은 지지표를 얻음).  



@ 신문.잡지같은 대중언론이나 TV, Radio, 공중파, 여러가지 멘트로는 너무나 부정확하고, 미흡하고, 불특정 다수가 국사.세계사, 백과사전, 국내법.국제법, 사전.학술서등의 오래된 정통 자료를 무시하고 수천년 기득권을 일거에 파괴하고, 새로운 대중언론 기준으로 모든걸 재단하려 하기 때문에, 인정해 줄 수 없습니다. 국사 성균관이나, 고대부터의 한국유교(오래된 유교교육 및 위만조선.한사군이후의 여러형태 유교 및 고려.조선시대에 인정되던 기자조선에서 파생된 유교), 세계사의 황하문명, 유교, 한나라 태학, 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북경대로 계승됨) 및 에게문명, 로마제국, 교황과 로마가톨릭, 볼로냐.파리대학등 중세 유럽에 생겨난 대학들은 한국인이나 인류가 아직까지 극복할 수 없는 역사와 전통이며 정사(正史)입니다.     




@ 일본강점기로 인한 대학.종교문제는 기존에 Royal대로 세계에 알려온 궁 성균관대와 교황윤허 서강대가 전적으로 알아서 할테니까, 필자가 새롭게 필요로 한다고 거론한 대학들이 방송이나 대중언론에 개입하는 일이 없기 바랍니다. 변경시키기 어려운 국사와 세계사교육이 한국 학교교육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대중언론의 도전때문에 문제가 발생해도 장기관찰하며 교정하는 방법을 택하겠습니다. 일본의 항복이후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 소위 왜놈학교들의 주권은 한국영토에 없어졌는데, 다시 국가원수들이 발표한 상위법인 포츠담선언과 배치되어 미군정의 하위법령으로 경성제대가 서울대가 되고, 적산재산 형태의 서울대가 다시 국립대로 전환되면서 미군정당시 수많은 반대와 갈등을 겪었습니다.


미군정당시 공자묘경학원이 다시 성균관으로 환원복구되면서 성균관의 교육기능을 해방후의 성균관대로 정통승계시키면서, 국립이 되지 않고 사립대로 머물게 되면서 이전처럼 유일무이의 최고 교육기관으로 절대적 존중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패전국에 항복국가가 된 일본(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어짐)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중심으로 기존 총독부에 근무하던 관리들의 영향력이 작용하였습니다. 포츠담선언을 받아들여 항복하여 주권없고 학벌이 없는채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가 대중언론에서 추종세력을 만들어 성균관대에 대대적으로 도전하면서 문제는 꼬여왔었습니다.      


 한편, 향교관련 법률등으로 성균관대가 성균관의 교육기능을 승계한걸 보호하여왔고, 제사기능만 담당하게 된 성균관은 전국 유림대회 결의를 준수하여 성균관대 이외의 대학을 새로 설립하지 않아서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승계대학은 성균관대로 이어져왔습니다.  


십몇년정도 되는 기간에 걸쳐 필자는 궁 성균관대=어 서강대로 세계에 알려왔었습니다. 요즘 임시정부 요인들이 개입하여 설립한 국민대와 인하대,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조선경비사관학교에서 4년제 대학이 된 Power Elite 육사를 필요로 한다고 발표하였지만, 궁 성균관대.어서강대 Royal대 체제의 비신분제 대학들로 필요로 하는것이며, 차후 필요한 인원만 주요 요직에 등용시키는 방법으로 머물수도 있습니다. 혼선을 원하지 않으니까 어떤 권력이 있더라도 궁 성균관대.어서강대 Royal대 체제의 허락없이 임의적으로 방송하거나 멘트하거나, 대중언론에 개입하거나 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 한국 임시정부는 일본에 선전포고하였고,일본은 항복하지 않았는데,이 선전포고는 영속적으로 유효합니다.   



2차대전때 일본이 항복하면서 받아들인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에 의해 일본의 주권은 한국영토 어디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일본 항복후 한국 영토에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각종 왜놈학교(일본 불교학교 후신 동국대, 서울시립대, 전남대.경북대 및 부산대 일부), 일본 강점기 포교종교(일본 신도, 일본 불교, 일본 기독교)들의 주권은 없는 상태입니다.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각종 왜놈학교들, 일본 강점기 포교종교(일본 신도, 일본 불교, 일본 기독교)들을 축출하기 위해 한국은 필자가 세계에 Royal대로 알려온 성균관대(한국사에서 가르치는 조선.대한제국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하여 6백년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음)와 서강대 외에 임시정부 요인들이 설립에 개입한 비신분제 대학들인 국민대와 인하대, 그리고 Power Elite인 육사등 협조자들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 법적 원칙.서울대는 한국에 주권없는 패전국 잔재.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학벌이며 Royal대임.






일본 강점기 잔재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나 그 추종세력들이 시중 사설 입시기관이나 대중언론에서 아무리 덤벼도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은 성균관의 정통성을 승계한 성균관대입니다. 대학은 과에 상관없이 Royal대인 성균관대나 서강대로 가는게 좋습니다.




다음자료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다 음 -


@  사설 입시학원 점수가 어떻게 대중언론에서 나타나도, 교육부에서 확인된 사항이 아니면, 전부 사설 입시기관의 가상 시나리오에 의한 예측치에 불과합니다. 교육부는 이런걸 발표하지 않는데, 전부 사설 입시학원 예상점수만 축적해 이를 입결이라고 활용하는건 문제입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 대학입시는 수시가 대세입니다.   



국제법상 상위법인 포츠담선언. 국제법상 하위법인 미군정령으로 주권없는 패전국 일본잔재 경성제대가 서울대가 되고 전국적인 반대를 겪으면서 적산재산의 국유화처럼 국립대가 되었는데... 


@ 국제법은 국내법과 다릅니다. 고종당시부터 을사조약은 무효였기 때문에 국내법 우위로 보면 을사조약.한일병합은 무효였고, 박정희 대통령때 체결한 한일 기본조약으로도 을사조약.한일합병은 한국측 입장으로는 원천 무효입니다. 또한 현행헌법 전문의 임시정부 법통계승으로 보아도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나 각종 왜놈학교들의 주권이나 학벌은 한국영토에 없어왔으며, 그 추종세력들의 자격도 없었습니다.     


대중언론이나 사설 입시학원의 자료를 이용하여 매일 덤벼도, 미군정 당시부터 현재까지 국사 성균관[해방후의 성균관대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하여 성대 6백년 역사가 정부의 학술적 정설(定說] 교육이 이어져왔기 때문에, 성균관대의 최고(最古,最高)학벌은 바뀌지 않아왔고, 현재도 그렇습니다. 


한국의 정부체제.국가체제중의 하나인 국사편찬위는 국가기관.국책연구기관입니다. 


6백년전부터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의 최고 교육기관이던 성균관(성균관의 정통성은 해방후 미군정부터 국사교육을 통하여 성균관.성균관대가 유지.계승시켜옴)같은 유서깊고 정통성있는 Royal대인 성균관대.



@ 한국에 주권없는 패전국 일본과 한국내 잔재(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및 추종세력)세력의 처리에 대해!


[1]. 법이나 교과서.백과사전등뿐 아니라, 대중언론등 전방위적으로 성균관대와 유교의 위상회복이 중요함.


1]. 우선 성균관대학과 유교의 안정적 복구를 위하여 협력자들이 필요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강력한 자기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하고, 2차대전때, 연합국측 강대국들의 포츠담선언과 카이로선언에 의해 독립이 언급되고, 미군정의 과도통치가 있었기 때문,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얽히고 설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군정령은 하위법이고 그 상위법은 국가원수들이 모여서 발표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 포츠담선언은 미국.영국.중국 3개국 수뇌회담의 결과로 발표되고 나중에 소련공산당서기장 스탈린도 함께 서명)이기 때문에, 포츠담선언을 받아들여 항복한 일본 잔재 경성제대(그 후신이 서울대)의 한국내 주권은 2차대전 항복과 더불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포츠담선언에 대한 요약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다 음 -


포츠담선언

[Potsdam Declaration음성듣기]

요약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인 1945년 7월 26일 독일의 포츠담에서 열린 미국·영국·중국 3개국 수뇌회담의 결과로 발표된 공동선언.

일본에 대해서 항복을 권고하고 제 2차 세계대전후의 대일처리방침을 표명한 것이다. 처음에는 미국 대통령 트루먼, 영국 총리 처칠, 중국 총통 장제스[]가 회담에 참가하였으나, 얄타회담때의 약속에 따라 소련이 대일선전포고를 하게 되어 소련공산당 서기장 스탈린도 8월 이 회담에 참가하고 이 선언문에 함께 서명하였다.

이 선언은 모두 13개 항목으로 되어 제1∼5항은 전문()으로 일본의 무모한 군국주의자들이 세계인류와 일본국민에 지은 죄를 뉘우치고 이 선언을 즉각 수락할 것을 요구하였다.

제6항은 군국주의의 배제, 제7항은 일본영토의 보장점령, 제8항은 카이로선언의 실행과 일본영토의 한정, 제9항은 일본군대의 무장해제, 제10항은 전쟁범죄자의 처벌, 민주주의의 부활 강화, 언론·종교·사상의 자유 및 기본적 인권존중의 확립, 제11항은 군수산업의 금지와 평화산업유지의 허가, 제12항은 민주주의 정부수립과 동시에 점령군의 철수, 제13항은 일본군대의 무조건항복을 각각 규정하였다.

특히 제8항에서는 “카이로선언의 모든조항은 이행되어야 하며, 일본의 주권은 혼슈[]·홋카이도[]·규슈[]·시코쿠[]와 연합국이 결정하는 작은 섬들에 국한될 것이다”라고 명시하여 카이로선언에서 결정한 한국의 독립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이 선언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고 소련도 8월 9일 참전하여, 10일 일본은 이 선언을 수락, 14일 제 2차 세계대전은 완전히 끝났다.


. 출처: 포츠담선언[Potsdam Declaration] (두산백과)



일본의 항복부터 지금까지 주권이나 학벌없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그 추종세력이 일본 강점기 연희전문 후신 연세대, 친일파 김성수가 보성전문을 인수하여 세운 고려대등)나 각종 왜놈학교(전문대나 초급대 수준에서 대학이 된 동국대,경북대.전남대.부산대.서울시립대등. 그리고 전국 각지의 각종 공립 중.고등학교등)들이 오늘에 이른것입니다.      



그래서 국사에 나오는 조선.대한제국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해 온 성균관대를 중심으로, 세계사에 나오는 교황의 위상을 반영하여 교황윤허 서강대를 국제관습법 형태의 Royal대학 동조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서유럽 학자들의 이론은 세계사 뿐 아니라, 수학, 사회문화.국토지리.세계지리,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음악.미술등 학교교육 전반에 걸쳐 교육되고 있습니다.  


세계사에서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승계됨)의 학교교육은 고구려 태학.고려 국자감.조선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로 정통 승계되어 오늘에 이름)과 조선.대한제국 국교인 유교를 가르치는 한국 국사교육에 이론적 지지.동조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세계사로 보면 한국 유교는 한사군부터 시작되어 수천년에 걸쳐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국적인 판단으로는 고려.조선시대에 인정하던 기자조선도 유교의 전래에 일정 역할을 하였다고 판단되는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위만조선부터 유교가 전래되었다고도  서술하고 있습니다.    



2]. Royal대인 성균관대나 서강대 가면 한국에서 최고 높은 Royal대 학벌에,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는 최고 학벌을 얻게 됩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는 비신분제 대학들로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거나 낮은 대학들입니다. 


조선 성균관의 정통을 성균관대가 승계해왔는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를 통하여 성대 6백년 역사는 정부의 학술적 정설(定說)로 보강까지 되어, 성균관대의 최고(最古,最高)학벌은 바뀌지 않아왔고, 현재도 그렇습니다. 대학은 Royal대인 성균관대나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드물게 교황 윤허 대학중 하나)학벌이 가장 높고 좋으며, 세계적인 영향력이 있습니다. 



대학.종교관련, 한국에서는 한국사.세계사의 정설(定說)을 대체할 이론이 없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세계사는 가장 보편적인 정설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교과서적 정설이 해당국가에 맞지 않으면, 국가주권이라는 개념을 적용하여, 해당국가만 별도의 이론을 교육시키는 방법도 가능하겠습니다.   



대학.종교관련, 확실하다고 인용할 수 있는 이론은 교과서(참고서포함), 백과사전, 전문사전, 오랜동안 애독되어온 전문 학술서등이 가장 신뢰대상인 것 같습니다.


이런 定說에 바탕하지 않거나 위배되는 새로운 이론은, 세계사나, 그나라 국사 및 정부입장과 대조하면서, 定說로는 채택하기 어려운, 새로운 논문.主義등으로 간주하는게 적절한 것 같습니다(학자가 아니면서 문필가.사상가 영역에서 활동하는 필자를 포함하여 누구의 이론이나 주장.主義든간에...).


대학관련, 대중언론이나, 사설 입시학원들의 자료, 시중의 광고용 홍보는 定說이나 학술이론으로 채택해 줄 수 없는 특정집단의 홍보자료로 간주하면 적절한 것 같습니다.  현대에 들어 대중언론과 광고의 범람으로, 오랜 권위를 인정받아온 교과서나, 정부 간행물, 역사서, 경전(유교나 가톨릭등)등의 권위가 훼손될수도 있겠는데, 대중언론과 대중문화는 한계가 있는 매체임은 분명하니까, 상업적으로 돈을 버는데 유리한 측면은 인정하면서도, 오랜 역사와 전통의 대학.학술.문화.종교등의 기득권은 보호되어야 하겠습니다.   


한국의 경우 국가기관이며 국책연구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해온 국사의 내용을 학교교육에 반영하고, 이전의 예비고사.학력고사나 현재의 수능에 적용하지 않을 수 없을것입니다. 고등고시, 공무원시험, 경찰시험등에서도, 국사편찬위의 발행내용에 크게 벗어나지 않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학설 그대로 반영하여 출제해 온 특성이 강하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公敎育에서 오랫동안 다음과 같이 교육을 시켜왔습니다.


- 다 음 -


1. 한국사 성균관(해방후에 성균관대로 계승되어 600년 역사를 인정받고 있음),

2. 윤리나 한문(또는 국어의 고전)수업에서 가르치는 유교교육 삼강오륜(공자님과 맹자님의 가르침).

 3. 세계사 교육:세계사는 서유럽과 교황청의 영향력이 강하게 반영되었다고 판단됨. 그리고 학술적으로 중국의 황하문명이나 한나라 태학. 유교등도 기득권을 중요하게 인정해온 경향


   1). 황하문명, 유교, 중국 한나라 태학(그 이후의 국자감. 국자감은 청나라때 경사대학당이 되고 이후 북경대로 계승됨)

   2). 에게문명, 로마 가톨릭, 중세유럽의 대학인 볼로냐 대학, 파리대학등  


 구한말 國外에서 외국세력의 힘과, 한국내에서 유교와의 마찰에 놀란 대원군이 쇄국 정책을 펴고, 서양의 발전된 과학기술 수용까지 거부하면서 유교를 지킨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계화시대가 되었으므로, 근대 중국의 침체기 및 한국의 수난기에, 세계사의 주도세력으로 여러 학자들 이름이 거론되는 서유럽과 교황청의 전통과 자격을 감안하여, 유교나 한국에 필요한 가톨릭 예수회(서강대)임을 강하게 느껴, 宮 성균관대(국사교육에서 가르치는 유일무이의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성을 승계한 최고대학으로 600년의 역사를 한국정부로부터 인정받고 있음)=御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 중 하나)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6백년전부터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의 최고 교육기관이던 성균관(성균관의 정통성은 해방후 미군정부터 국사교육을 통하여 성균관.성균관대가 유지.계승시켜옴)같은 유서깊고 정통성있는 Royal대인 성균관대.



서울대는 경성제대 후신으로 을사조약이 무효고(따라서 국내법 우위의 전통 법이론으로 보면 한일병합도 무효), 일본이 항복하면서 받아들인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에 의해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이 없어왔습니다. 그 추종세력인 서울대.연세대.고려대도 당연히 그런 주권없고 학벌없는 일본 강점기 잔재 서울대의 대주언론 동조자 세력.


한국의 현행헌법(1988년부터 시행)에 보장된 임시정부 법통때문에,이론상으로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강행법측면에서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이 없습니다.    


한국의 역사적.교과서적.국가적 차원의 최고(最古,最高) 대학학벌은, 조선,대한제국과 마찬가지로, 해방후 미군정부터 현재까지 성균관의 정통성을 승계한 6백년 역사의 성균관대입니다.


한편 세계사를 저술한 것으로 판단되는[대부분 서유럽 학자들의 이름만 나옴. 이는 2차대전 이전 근대에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역사가 그렇게 만든것 같음] 서유럽.교황청의 영향력은 지금도 세계사나 여러가지 교과서(참고서 포함).백과사전.학술서적등을 통하여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서강대는 교황윤허로 대통령령에 의해 발행된 한국 민족문화대백과가 그렇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한국에 유교 문화가 전승된 시기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음.

- 다 음 -

이미 고조선시대 즉 위만시대와 한사군이 설치되었던 시기부터 중국문화와 유교사상이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3]. 기자조선에 대한 필자의견. 두산백과의 서술을 인용함.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기자조선의 실체를 인정하였지만, 최근에는 이를 부정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먼저 문헌상으로 기자가 조선에 와서 왕이 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 필자 주 1). 고려.조선이 인정하던 기자조선이기 때문에, 최근에 부정하는 이론이 지배적이 되었어도, 위만조선에 멸망당한 기준(箕準) 왕이라는 기자의 후손이 역사적으로 존재하므로, 고려.조선이 인정한 기자조선에 대하여는 일본강점기 이후의 부정적인 견해에 의해 그렇게 부정당한 측면이 있는지등도 검토하여야 할 것 같음.

. 필자 주 2). 기준 [箕準]에 대한 민중서관의 설명. 

기자 조선 최후의 왕. 기부()의 아들. 기자의 41대손이라고도 한다. 즉위 후, 중국의 연()ㆍ제()ㆍ조()로부터 많은 사람이 피난해 왔다. 연의 위만이 망명하여 온 후, 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금마( 지금의 전북 익산군)에 남천, 한왕()이라 하여 마한()의 시조가 되었다.

. 출처: 기준 [箕準] (인명사전, 2002. 1. 10., 민중서관)


. 첨부자료


1.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 44조 제2항 및 제 71조 제 3호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179


2. 세계사의 正史 개념으로 보면, 제자백가이후,漢나라때 국교로 성립된 유교는,이후 동아시아의 주요이념으로 세계종교화. 

http://blog.daum.net/macmaca/2441

 

#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는 한국의 교과서에 대해 오랜동안의 유교교육을 밝히고 있습니다. 


4]. 임시정부가 반영된 한국의 최고대학은 성균관대(서강대와 공조), 종교수장역할은 황사손(이 원)으로 하여

일본 강점기로 빚어진 여러가지 피해를 복구하는게 적절하다고 판단합니다.



1. Royal대학은 성균관대(宮 성균관대, 조선.대한제국 최고 교육기구인 성균관의 정통승계)와 서강대(御 서강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 윤허 대학 중 하나)밖에 없습니다. 비신분제 대학들중 임시정부 관련법으로 후발로 그 개인들을 중용해야 할 대학들로는 독립투사들이 개입한 국민대와 인하대 및, 대통령 집권기에 임시정부를 헌법에 반영하게 하는데 제동을 걸지 않던 육사로 합니다. 육사출신 박정희 대통령때부터 시작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역할도 알고 있음.

새롭게 필요로 하는 비신분제 대학들에게 Royal학벌을 줄 수는 없고, 비신분제 대학으로 하면서 궁 성균관대.어서강대의 필요에 따라 개인적으로 점차 요직에 중용하는 방법이 적절합니다.  

  


2. 2차대전때, 항복하면서 포츠담선언(카이로 선언 포함)을 받아들인 일본이라,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의 주권이나 학벌은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위법령인 미군정법령(상위법은 국가 원수들이 모여서 발표한 포츠담선언)이나 대중언론등에서 성균관대(국사에 나오는 성균관의 정통승계대학)에 침략.반란형태로 도전하는 습성을 가지게 되어 문제가 아주 심각해왔지만, 여러나라에 항복한 일본이라 일본 강점기에 설립된 일본계 잔재 학교들은 여전히 한국영토에 주권이나 학벌이 없습니다.    


한국에 주권없는 패전국 일본과 한국내 잔재(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및 추종세력). 그 연합세력이, 뛰어난 뇌과학등을 이용하여 특수지역에서 이상한 사건을 일으켜도 이는 패전국의 마지막 몸부림으로만 간주하고, 2차대전 승전국[중국.프랑스,러시아,영국,미국.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군사적 측면에서 판단했는지 2차대전이전에 서유럽이 가지던 세계의 지배력이 미국과 구소련으로 옮겨졌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역사나 종교.문화.경제로 보면 어렵지만 군사적으로만 본다면 맞는 의견입니다]의 승전으로 얻어진 여러가지 지배적권리는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주기 바랍니다. 지배적 우위를 확보하면서 패전국잔재들의 기득권이 세계사등에  남아있으면 세계사에 한해서만 부분적으로 인정해주는 방법을 적용해야, 새롭게 강자의 위치에 올라선 나라들의 여러가지 지위가 영구히 보장됩니다. 교과서에 남아있는 패전국등의 구 기득권은 부분적으로만 인정하고 국가주권 영역에서부터 승전국들의 이익을 지속적으로 반영시키는 방법이 좋다고 경험적 원칙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교황제도나 파리대학,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국자감은 경사대학당에서 베이징대로 승계됨)등은 세계사의 정사(正史)며 볼로냐 대학도 패전국 이탈리아 소재 대학이지만 세계사에서 삭제하기전에는 교과서.학술적 자격에서는 유효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자의 경우 이탈리아.독일에 대한 강력한 원한등은 없지만, 일본은 현재까지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나 그 추종세력(일본 강점기에 들어온 연희전문 후신 연세대, 보성전문을 인수하여 해방후 친일파 김성수가 고려대로 만든 고려대등) 및 소위 왜놈학교 중.고등학교, 일본 강점기에 형성되어 해방후 대학으로 변신한 여러 대학들, 일본 강점기 포교종교[일본 신도, 일본 불교, 기독교(주로 개신교, 가톨릭 몇 몇 성당)]의 도전에, 대중언론등에서 강하게 시달리고 있는 나라입니다. 


일본이나 독일은 전쟁범죄로 재판받은 나라니까 전과 가중처벌제도등을 적용하여 은밀하게 승전국이나 해방국등을 상대로 패전국의 불리함을 없애거나, 승전국.한국같은 대일선전포고국(임시정부가 추축국 여러나라에 선전포고하여 국가권력을 확보하지 못한 미군정당시부터 성균관의 정통승계 성균관대나 유교가 많은 불이익을 받아온것에 해당됨)의 교육.종교등 여러가지 권리등을 이기려는 시도를 하는경우 이를 봉쇄하는 노력을 해 나가야 합니다.      


한국은 이렇게 해야 포츠담선언을 받아들여 항복한 일본의 모든 주권이 한국영토에 없게 됩니다.그리고 2차대전 당시 대일선전포고를 하여, 프랑스.구소련.폴란드등에 인정받은 임시정부의 권리를 유지시켜야 하는데, 임시정부 법통은 현행 한국헌법에 보장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현행헌법에 추가된 임시정부 법통을 활용하여 국가주권 확보노력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할 나라입니다.   


3. 대학부분으로 본다면 이렇습니다.  


법적 원칙.서울대는 한국에 주권없는 패전국 잔재.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학벌이며 Royal대임.



합격시켜 준다면 무슨과든지 Royal대인 성균관대(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구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하여 국내외에서 6백년 역사를 인정받고 있음),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 윤허 대학 중 하나)로 가시면 한국에서 최고 높은 Royal대 학벌에, 국제법이나 국내법상 합법적인 최고 학벌에, 교과서나 백과사전.학술자료 측면에서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는 세계적인 대학의 일원이 됩니다.


서울대는 한국에 주권없고 학벌없는 패전국 잔재임. 한국에서는 국사에 나온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가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학벌이며 Royal대임. 한국에서 Royal대는 성균관대와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 윤허 대학중 하나)밖에 없음. 다른 대학들은 비신분제 대학들임.  


일본항복후,포츠담선언문 8항에 의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의 한국내 주권이나 학벌은 없어왔음.

http://blog.daum.net/macmaca/2375


 대학은 Royal대인 성대나 서강대(교황윤허)가 좋습니다. 중요한건 해방이후 현재까지 성대가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이어 왔다는 것.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성균관대. http://blog.daum.net/macmaca/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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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한국의 학교교육에 의거, 한국사,세계사, 한문.국민윤리(삼강오륜이나 인의예지신, 충효등 유교교육 위주)및, 국내법.국제법등을 종합하여 한국과 세계의 대학 및 종교들을 판단해왔음. 따라서 한국사는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로 정통승계), 세계사는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 베이징대로 승계됨), 중세유럽에 형성된 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학을 교과서.학술서적의 기득권 대학으로 인정해주면 학술적으로 무리가 없다고 판단함(그러나 강행법 성격의 주권은 국가주권 개념을 가진 나라에는 없음).


종교로는 황하문명을 이어받은 중국 한나라시대 세계종교로 성립된 유교(한나라시절 이미 중국.한국.베트남.몽고등에 걸쳐 세계종교화 된 이후, 중국 화교들이 진출한 아시아의 다른나라 일부지역 및 대만.싱가포르가 유교권 국가나 지역들임)가 세계종교화 되었던 적이 있어서 지금까지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음. 


그리고 원래는 에게문명에서 비롯된 헬레니즘문화를 가진 로마제국이었는데, 로마제국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세계종교화 된 교황중심 서유럽의 로마가톨릭(특히 대항해시대 이후 서유럽국가들이 아메리카,오세아니아등 신대륙등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로마가톨릭의 교세가 확산되어왔음)이었음. 중국.러시아.한국(한국의 경우 한국을 어버이나라로 섬기던 오랜 문명후발국 일본에 의해 일본 강점기를 겪음).일본.태국등을 제외한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을 식민지화하는 서유럽의 지배시기를 거치면서 로마가톨릭은 더욱 더 큰 세계종교로 발돋움하였음.  


. 세계사와 한국의 대학들에 대한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다 음 -


. 정사(正史)인 세계사의 볼로냐.파리대학에 대한 강력한 배척이나 삭제 및 이론(異論)은 없어왔음. 한편 세계사는 한국에 강행법적인 주권은 없음. 지역적으로 한국사의 경우, 성균관에 대(大)자를 더붙인 성균관대가 법으로 이의없이 최종 확정되는데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어왔음. 물론 국사에 나오는 성균관의 정통승계대학이 해방후의 성균관대였던건 분명한 사실이며, 향교관련 법률등에 의거 성균관대가 성균관.향교와 같이 보호되는 과정도 있어서, 한국에 주권없고 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추종세력들과 대중언론의 거센 도전에도 불구하고 해방이후 성균관대가 조선.성균관의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정통승계대학인것은 관습적.사회적으로는 맞으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발간이후에 형성된 성균관대의 자격(대통령령에 의해 조선.대한제국 성균관의 정통 승계)처럼 강력한 보호는 받지 못해왔었음. 그러함에도 2차대전 당시 일본이 항복하면서 받아들인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등에 의거 일본 강점기 잔재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의 한국내 주권이나 학벌은 없어왔기에 대중언론에서 서울대.연세대(일본 강점기 연희전문 후신 연세대).고려대(보성전문을 인수하여 친일파 김성수가 고려대로 변경)의 카르텔은,한국영토에 주권없고 학벌없는 일본강점기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침략.반란 형태의 도전자들에 불과해왔음.    


 

한국 대통령령에 의해 발행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성균관의 정통 승계대학이 해방후의 성균관대로 법적으로 최종 확정되는것은, 그리

순탄하지 않아왔음. 볼로냐.파리대학처럼 원래 이름 그대로 유지하여 오는 대학의 경우에는 큰 문제가 없었음. 그러나, 승전국이나 한국 임시정부처럼 일본.독일.이태리등의 추축국에 선전포고한 강력한 국가주권개념을 가진 나라들의 경우에는, 추축국과 동조세력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세계사는 해당국에서 강행법성격의 주권을 형성할 수는 없으며, 단지 학술적 개념 정도에 해당됨.  

 

한국의 경우, 국내법과 국제관습법상 받아들여 지지 않던 을사조약(강제.불법의 을사조약이 무효라, 국내법상 한일병합도 무효. 국제법으로도 그렇다고 할 수 있음)이후, 일본에 나라를 강점당한 한국의 성균관이 경학원 및 명륜전문학교등으로 강등되는 고난의 과정이 있었음.

 

또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한 일본의 주권이 한국영토에 없는게 상위법인 포츠담선언 8항의 내용인데[포츠담 선언 8항. 8) 카이로선언의 조항은 이행될 것이며 또 일본국의 주권은 本州, 北海道, 九州, 四國 及 我等이 決定할 諸 小島에 국한됨],

하위법인 미군정령으로 경성제대가 서울대가 되고, 다시 서울대를 국립대로 하면서, 대중언론등에서 주권없고 학벌없는 패전국 잔재 일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그리고 서울대의 추종세력들)이 다양하게 국사 성균관의 정통승계대학인 성균관대에 도전해 왔지만, 조선.대한제국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의 자격은 국사교육에 나오는 성균관의 자격에 연계된 특성이 있어서, 대중언론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해방이후 지금까지 한국 최고대학은 성균관대였음.      

 

상위법이 포츠담선언이고, 하위법이 미군정령이라 미군정령에 의해 서울대가 되고 국립대가 된 서울대는, 상위법인 포츠담선언 8항의 내용대로, 항복당시의 기준대로, 적용되어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고 학벌이 없어야 옳음[일본국의 주권은  本州, 北海道, 九州, 四國 及 我等이 決定할 諸 小島에 국한됨].

 

 

따라서 을사조약 무효나 한일병합무효(을사조약이 무효라)의 대한제국 국내법기준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 선전포고(한일병합 무효. 불평등조약인 을사조약의 무효등 선언)와 더불어, 일본이 항복하면서 받아들인 포츠담선언에 의해, 일본강점기 당시에 형성된 경성제대등은 기존에 한국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그 정통승계대학이 해방후의 성균관대)의 최고대학자격을 훼손하지 않아야 됨.  

  

 

해방후 미군정령으로 공자묘 경학원을 성균관으로 환원시키기로 한 이후, 한국 유림[유림(儒林)은 그 당시 한국에서 가장 전통신분이 높던 계층.조선 대한제국은 황제.왕부터 기본적으로는 유생(儒生)임]들이 전국 유림대회에서 성균관의 정통승계 차원에서 성균관대를 설립키로 하여, 향교관련 법률등으로 성균관(제사를 전담하는 기구로 됨)과 성균관대(대학교육 전담)의 특성을 구분하여 온게 있었음.

 

성균관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여 성균관의 최고대학 자격을 승계해왔다면, 큰 무리가 없었을텐데, 성균관에 대자를 더 붙여 약간 복잡하게

되어온 과정도 있었음.

 

미군정 법령이 공자묘 경학원에서 성균관으로 환원한 성균관의 대학자격에서는, 해방당시 전국 유림대회 결의대로, 성균관대를 미군정에 대학으로 등록하고 성균관은 제사만 전담하여 온 관례를, 제사전담기구인 성균관이 깨뜨리지 않아왔음(그래서 미군정이 환원시킨 성균관의 자격은, 대학교육에서는 성균관대, 제사는 성균관으로 분리해온 관례를 따라왔다고 할 수 있음). 

 

그러다가 대통령령에 의해 발행된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에서 성균관의 정통승계 대학이 성균관대이고, 6백년 역사를 법으로 인정받으며, 국내외에서 다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것.   

 

 

. 필자 주 3). 한국사나 세계사의 정사(正史)는 옳기때문, 그대로 기득권을 인정해주면 적당함. 세계사의 경우 강행법적 주권은 한국 영토에 없으며, 단지 학술적 의견정도에 해당됨.  그런데, 교과서(참고서 포함)는 학교의 공교육에서 가르치는 내용이라, 기준되는 학설이 있으면 계속 다시 가르친면서, 시험문제도 내고, 예습.복습을 통하여 모듬 사람들의 가장 신뢰도 있고 일반적인 기준이 됩니다.  

 

 

[6]. 필자는 한국의 국내법(대통령령에 의해 발간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해 서술된 성균관대(국사교육에 나오는 성균관의 정통 승계. 국내외에서 6백년 역사 인정)와 서강대(교황제도의 오랜 자격과 전통. 서강대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의 자격을 한국사나 세계사의 학설(교황제도의 오랜 자격과 전통)과 연관시켜 Royal.Imperial대로 알려왔습니다.   


1]. 1991년에 전권이 출간되었다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규정하는 성균관대. 두산백과에서 규정하는 성균관대. 그리고 서강대(교황윤허에서 시작됨). 


1. 미군정기 이후의 한국정부에서 조치한 내용(대통령령에 의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발간)으로, 정부입장을 알려드립니다.


가. 정부출연 연구기관 자료에 나타나는 성균관대학교에 대한 학술적 서술내용.

1).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대한 설명.

a. 한국학 중앙연구원(韓國學 中央硏究院).

한국문화 및 한국학 제분야에 관한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는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의 설명자료임.

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韓國民族文化 大百科辭典).

........
발간된 경위를 보면, 1979년 9월 25일 대통령령 제 9628호로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 편찬사업 추진위원회 규정>을 공포하였고, 동 규정에 근거하여 1980년 3월 18일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편찬사업 담당부서를 두었으며, 1980년 4월 10일 제 1차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편찬사업 추진위원회의 개최를 시작으로, 1991년까지 12년의 기간동안 3백여명의 편집진과 3천 8백여명의 집필자가 참여하였다.  


...1988년부터 시안본을 검토 수정하여 1991년에 전권이 출간되었고, 1995년에는 보유편이 28권으로 나왔으며, 일부 개정증보를 거쳐 2001년에 CD-ROM 개정증보판이 발간되었다. 2005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은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개년에 걸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인터넷에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다...

 



2.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 나타나는 성균관대학교.


이칭별칭

성균관대, 성대

  • 유형

단체

  • 시대

현대

  • 성격

대학교, 사립종합대학교

  • 설립일시

1398년

  • 설립자

김창숙(金昌淑)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개설

성균관대학교의 연원은 1398년(태조 7) 국립고등교육기관으로 설립된 성균관에서 시작된다. 성균관은 조선 최고의 국립교육기관으로서 국가에 필요한 유능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전통적인 유학 교육을 실시하였다.

연원 및 변천

갑오경장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1895년 성균관에 설치된 3년제 경학과()가 성균관대학교의 근대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시작이다. 성균관은 제향 기능을, 경학과는 교육 기능을 담당하여 유학 경전을 위주로 교육이 이루어졌으나 역사학·지리학·수학 등 근대적인 교과목도 부과되었다.

그 밖에 교육의 목적, 교육과정의 운영, 입·퇴학 절차, 각종 시험 및 학생의 특전, 학기제 채택 등 전통적 교육기관에서 근대학교로의 제도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국권상실 뒤 일제에 의하여 경학원()으로 개편되어,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주로 문묘()의 제향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의 기능만 수행하게 되었다.

1930년 경학원에 로 교명을 회복하였다.

1946년 유림대회()가 개최되어 성균관의 정통을 계승할 대학 설립을 위한 성균관대학기성회가 조직되고 독지가 이석구()가 재단법인 학린사()의 토지를 희사하였다. 이에 김창숙()의 주도로 종전의 명륜전문학교의 재단을 병합한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이 발족하면서 같은 해 9월 정규 단과대학인 성균관대학이 인가되었다. 문학부와 정경학부를 설치하고, 초대 학장에 김창숙이 취임하였다.

1953년 2월 종합대학인 성균관대학교로 승격되어 문리과대학·법정대학·약학대학의 3개 단과대학과 1개 대학원의 편제를 갖추었고, 같은 해 6월 각 도의 향교재단()에서 재산을 기부함에 따라 재단법인을 성균관으로 확대해 개편하였다.

1958년 야간대학을 설치하였으며, 1963년 재단법인을 학교법인 성균관대학으로 개편하였다. 1965년 삼성문화재단이 대학의 운영권을 인수하였다가 1979년 1월 다시 봉명재단()이 학교의 운영을 맡게 되었고, 경기도 수원시 천천동에 자연과학캠퍼스을 신축하였다.

1981년 8월 자연과학캠퍼스에 이과대학·공과대학·농과대학·약학대학 등을 설치하였고, 같은 해 11월 교육대학원을 신설하였다. 1983년 11월 경영행정대학원을 경영대학원과 행정대학원으로 분리하고, 1987년 11월 유학대학원, 1990년 2월 산업과학대학원을 신설하였다.

1997년 3월 의과대학, 9월 의학연구소, 10월 디자인대학원, 12월 경영대학원을 신설하였으며, 1998년 1월 건학 600주년 공식기 게양 및 현판 제막식 행사를 거행하고, 도봉선수촌 신관을 준공하였다. 같은 해 4월 북한 고려성균관과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하고, 6월 교수업적 평가제를 도입하였으며. 8월 도서관 100만 장서 확보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9월에는 건학 60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였으며, 기념행사로 세계총장학술회의, 조선시대 성균관 재현행사, 동양학 학술회의, 연극공연, KBS 열린음악회 등을 개최하고, 『성균관대학교 600년사』를 발간하였다. 1999년 3월 자연과학캠퍼스에 의과대학 건물을 준공하고, 5월 법학도서관을 개관하였다....

                  

.출처:성균관대학교[SUNGKYUNKWAN University, 成均館大學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출판사들이 편찬하는 백과사전류에 나타난 성균관대학교에 대한 학술적 서술내용들.

1). 두산백과사전에 나타나는 성균관대학교.

成均館大學校


  • 사립

  • 특성

    종합대학

  • 개교일

    1398년

  •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25-2(인문사회과학캠퍼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서부로 2066(자연과학캠퍼스)

  • 교목

    은행나무

  • 면적(㎡)

    627,025

  • 홈페이지

    www.skku.ac.kr


성균관은 고려 때부터 있었지만 조선 개국 후 1398년(조선 태조 7)에 현 명륜동 캠퍼스에 설립된 국립 최고학부 성균관의 전통을 계승하여,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1895년 칙령으로 3년제 경학과(經學科)를 설치한 것이 그 시초이다. 경학과는 유학 경전을 위주로 교육하되 역사·지리·수학 등 근대적인 교과목을 부과하여 근대 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국권피탈 후 일제의 탄압으로 교육기능을 박탈당하고 경학원(經學院)으로 축소되었다. 1930년 민족의 교육열 고조로 일제는 부득이 명륜학원을 설립하였고, 1939년 명륜전문학교로 승격시켰다. 

8.15광복이 되자 1946년 재단법인(현재는 학교법인) 성균관대학을 설립하고 정규 단과대학으로 발족하였으며, 초대학장으로 김창숙(金昌淑)이 취임하였다. 교훈은 인·의·예·지이다. 1953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고, 1979년 수원에 자연과학캠퍼스를 신축하였다. 1996년 11월에 삼성재단이 성균관대학교 재단을 인수하고 운영해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하 생략.... 



그리고 교육학사전이나, 종교학사전, 학습사전도 성균관대가 성균관에서 이어진 대학이라고 학술적의견을 가지고 있고, 성균관대와 제사기구인 성균관도 그렇게 일치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서강대는 교황윤허 대학으로 그 Royal대 역사가 인정되고 있습니다.


....

1960년 2월 재단법인 한국예수회에서 서강대학으로 설립인가를 받아 같은 해 4월 개교하였다. 1948년 한국 가톨릭교회의 발의와 교황 비오(Pio) 12세의 윤허로 대학 설립이 기획되었고, 예수회 게페르트(Theodor Geppert) 신부의 주도로 1956년 재단법인 한국예수회가 발족되면서 대학의 설립에 이르게 되었다.

초대 학장에 킬로렌(K. E. Killoren) 신부가 취임하였으며, 영어영문학과·사학과·철학과·수학과·물리학과·경제학과를 두었다. 1963년 독어독문학과·생물학과·경영학과를 신설하였다. 1964년 국어국문학과·화학과를 설치하고 제1회 졸업생 62명을 배출하였으며, 같은 해 4월 「사립학교법」에 따라 재단법인 한국예수회가 학교법인 서강대학으로 개편되었다.


.출처:서강대학교[Sogang University, 西江大學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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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공산화되고 문화대혁명을 겪었어도, 세계사의 황하문명.유교는 그대로 가르쳐왔기 때문에, 이와 병행 대조해보면 중국 국교였던 수천년 유교의 계승은 1949년부터의 중화인민공화국 호적제도로 계승되어 온것에 해당됩니다.  이는 24절기나 각종 명절,제사, 유교 교육, 학교제도등과 별개문제입니다. 조선.대한제국 국교였던 유교의 계승은 미군정기 조선성명 복구령이후의 호적제도,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 호적법폐지]및 주민등록법등에 반영되어 수천년 유교문화를 계승해 온것에 해당됩니다. 다만, 공산화된 중국과 달리(강행법 아닌 관습법으로는 태학.국자감의 정통을 승계한 베이징대를 입학.졸업해야 역사적 귀족.유생이 될 것 같음),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한국에서는 양반전통이 그대로 유지되므로 족보나 선산, 문중의 합동제사, 해당 지역에서의 오래된 양반문벌로 지배해온 역사등이 인정되어야 관습적으로 문벌(門閥)측면의 양반대접을 받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문벌이 좋은 양반 출신 가족이나 문중(門中)이라 해도 과거급제가 오래동안 끊어지면 몰락양반을 거쳐 중인, 그리고 더 심하면 평민정도로도 격하됩니다. 해방이후의 양반은 과거제가 폐지되어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입학및 4년정도의 대학공부를 마친후 졸업에 성공해야 과거급제한 양반 유생의 자격을 얻어온것에 해당됩니다. 


필자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유교의 침체기에 수천년 유교를 제도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사의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을 원용하였는데, 이는 관습법상 인정되는 역사적 제도입니다. 서유럽의 교황제도나 볼로냐.파리대학등도 관습법으로는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며 전통입니다. 유교와 중국의 대학제도, 찬란한 역사, 동아시아 유교국들의 유교를 이어가기 위하여 세계사를 반영하였으므로, 교황윤허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도 성균관대와 함께 한국의 Royal대.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 성균관대의 Royal대 자격은 국내법과 국제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 교과서의 강행법 자격으로 보호받고, 서강대의 Royal대 자격은  세계사의 교황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습법 측면에서만 머물러야 합니다.       



TV나 Radio및 다른 경로의 전파나 구두발언등은 모든걸 인정해 줄 수 없습니다. 패전국 잔재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나 그 추종세력등의 의견이 횡행하는데, 이는 더더욱 인정해 줄 수 없음. 불교적 일본신도 및 일본 불교, 그 뒤로 들어온 기독교등 아주 복잡한 종교적 상황이 있는데(그런데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한 유교나 기독교와 달리 불교는 부처가 창조주 범천보다 높은 무신론적 Monkey측면이 있음), 대학(필자가 주안점을 두어온 분야)이나 학교등 일본 잔재세력의 도발이 있거나, 위험한 경우에는,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으로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학벌없는 패전국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을 응징하는것에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정체불명의 세력들이 방송으로 도발하며 성대나 유교를 위험하게 해왔기때문에, 누가 주도권을 가졌는지 판단이 서지 않아왔고, 방송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다가 역공을 당할까봐 방송에 의한 일본잔재 응징에는 지금도 크게 동조하지 않고 있습니다. 너무 방송을 무시하다가 역공을 당하는 현상도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진단하기 어렵습니다.       



 국사나, 세계사, 대통령령에 의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내법, 국제법, 백과사전(두산백과나 법률용어사전, 정부 발행 사전, 신뢰성이 입증된 사전등을 인정함. 위키백과, 위키트리등 책임당사자로 인정되는 학자나 전문가 집단없이 서술되는 자의성이 너무 많은 자료는 제외), 국내외에서 확고하게 인정되는 학술서적과 논문등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문제들을 판단하고 선택하면 좋겠습니다.            


# 한국에 왕정이 실현되면 ROYAL대인 궁(궁. 泮宮.學宮의 성균관임) 성균관대는 성황폐하, 교황윤허 서강대(필자가 인정해준 가칭 御 서강대)는 성황폐하 휘하의 어서강 전하로 폐하 한명의 사회 안전을 유지하는게 가장 옳습니다. 다시 국교였던 유교를 전 국민이 믿어야 하고(이전에는 행정법상 호적제도에 등록되는 성씨와 본관이 한국인을 유교도로 공식화하던 제도였으며, 지금은 주민등록법에 이런게 등록됩니다. 그러면서, 기준왕의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 삼한(三韓), 부여,예,가야,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조선.대한제국까지의 유교교육과, 수천년 유교명절, 유교의 본산지인 중국의 24절기(24절기는 불교와 관계없음), 한국 최초의 대학인 고구려 태학, 신라의 국학, 고려 국자감(말기에 성균관으로 개칭됨), 조선.대한제국 성균관의 유교 대학제도를 가져온 한국입니다. 현재는 한국의 학교교육이 유교의 하늘천(天), 공자님.맹자님 가르침인 유교의 삼강오륜과, 유교의 인(仁).의(義).예(禮).지(知).신(信), 그리고 유교의 충(忠).효(孝)교육등을 많이 가르칩니다. 법으로 왕정이 실현되면  성황폐하의 전국적인 유교 통치하에, 30% 정도의 영토는 어(御. 교황윤허의 서강대임. 성대와 서강대만 한국의 ROYAL대임.어 서강대는 가칭인데, 필자가 서강대 의견을 수용해서 이 용어를 계속 사용해 옴)서강대 임금이 자치정부 형태로 다스리자고 필자가 의견을 제시해 왔습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제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