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은 음력 정월 15일. 정월(음력) 대보름[중국은 上元節.元宵節]은 제천의식의 한형태로 日月神 중 月神을 숭배하며 소원을 비는 날.
I. 유교 경전인 禮記등으로 日月神 숭배를 살펴보고 역사적 과정을 알아봄.
1. 다음은 유교경전인 禮記에 나오는 祭法입니다. 이 문구에 달에 제사하는 문장이 후세 사람들의 귀감이 되어 한국에서는 정월대보름과 중추절등에 달맞이등을 하며 소원을 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와 달, 별, 장마와 가뭄, 사방에 제사지내는 부분입니다.
王宮祭日也 夜明祭月也 幽宗祭星也 雩宗祭水旱也 四坎壇祭四方也...
* 필자 주 1). 위에서 日月神에 제사하던 祭法은 殷나라때 생겨서 후대에 天子제도로 확고한 정착이 되기 이전에 생긴 제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 써 놓은 한문 문장(禮記 祭法)으로 보면 그 당시는 殷나라 天子가 아닌 殷仁으로, 周人으로 제사하던 祭天儀式, 日月神 숭배전통이 있었습니다. 이 제사가 변형 유지되어 중국 일부지방이나 殷나라 왕족 箕子의 후손으로 언급되는 箕準王의 선조 및 부여(殷正月의 曆法으로 祭天儀式인 영고를 지냄), 삼한(상달제.시월제), 고구려(동맹), 예(무천), 백제의 교천, 신라의 日月神 제사, 고려의 제천의식등으로 이어졌겠지요. 天子제도가 생긴 이후 중국 사람들이 보기에 고대 한국인들이 함부로 사당등을 지어 제사하는걸로 보여졌다면(당서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풍속에는 함부로 만든 사당이 많은바 라고 기록), 天子제도의 확고한 형성으로 天子의 제사와 諸侯의 제사, 士大夫 제사, 庶人의 제사를 구분하기 이전에 형성된 중국일부지방.한국일부지방의 풍속들이 그렇게 전승되니까 그 후에 생긴 天子부터 庶人까지의 제사법 구분으로 판단하여 함부로 사당을 짓는다고 기록했겠지만 그 당시는 중국이 고대 한국을 제지하고 그러던 시대는 아니었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원나라를 거치면서 국자감 개칭등 그런 天子國 주장이 강해졌고,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을 天子國으로 확실히 대우해 주면서 조선 초기에 제천의식이 폐지되고 고종때 부활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여하튼 역사적으로 부조리할수도 있는(후세 사람이 보기에) 관습이 허용되어도 중국 天子와 海東天子(한국의 天子)는 급이 다릅니다.
有虞氏禘黃帝而郊嚳 祖顓頊而宗堯
夏后氏亦禘黃帝而郊鯀 祖顓頊而宗禹
殷人禘嚳而郊冥 祖契而宗湯
周人禘嚳而郊稷 祖文王而宗武王.
燔柴於泰壇祭天也 瘞埋於泰折祭地也
...........
王宮祭日也 夜明祭月也
............
* 필자 주 2). 위의 祭法관련 작자인 전금과 후세 학자의 설에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어느 것이 결정적으로 옳은지에 대해 학자들간에 이론이 많다고 예기 譯解者(권오돈/발행처 홍신문화사/2003.10.30 발행)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 필자 주 3). 전금에 대한 설명. 중국 역대 인명사전(2010.1.20/이회문화사)에 의함.
展禽.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 대부(大夫)를 지냈다. 성은 전(展)씨고, 이름은 획(獲)이며, 자는 금(禽)이다. 유하(柳下)는 식읍(食邑)의 이름이고, 혜(惠)는 시호다.
* 필자 주 4). 殷周때 생긴 천자제도로 사람들을 강제하기전 일반 백성이 日月星辰을 우러르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日月星辰 숭배 풍속이 天子제도 확립후 생긴 새로운 숭배풍속이라 하면 그 신분에 따라 의관을 정제하고,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하는게 옳겠습니다. 그러나 天子제도의 강제전에 확립된 관습으로 月神을 바라보며 단지 소원을 비는것에 대해서는 祭法에 어긋난다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의 달맞이 풍속도 그렇게 형성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일반 백성들이 단지 달맞이라는 소원비는 의례로 달맞이 하는것은 그대로 전승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유교국 한국인들은 중단하지 말고 대보름과 추석때 달님에 소원비는 달맞이를 행해도 됩니다. 제천의식은 황사손이 별도로 하고 계시는데, 일반인들은 대보름과 추석때 달님에 소원비는 행사를 하는게 가장 옳고 일반적입니다.
일월성신을 民(백성)이 우러러보는 禮記 제법의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及夫日月星辰 民所瞻仰也 山林川谷丘陵
民所取財用也 非此族也 不在祀典....
2. 유교 경전인 禮記에 나오는 月令부분의 天子 제사[음력 正月의 元日에 제사]. 天子제도 확립 및 수용이후 생긴 제의므로 법도대로 따라야 함.
天子乃以元日 祈穀于上帝 乃擇元辰 天子親載耒耜 措之于參保介之御間
3. 한국의 천자나 왕이 거명되지 않고 殷曆 正月에 하늘에 제사하고 나라사람들이 크게 모여서 연일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던 부여의 영고(역사책에서 언급되는 부여의 제천의식인 영고에 대한 설명임).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조(三國志 魏書 東夷傳 夫餘條)기록.
以殷正月祭天 國中大會 連日飮食歌舞 名曰迎鼓 於是時 斷刑獄解囚徒
4. 음력 정월의 명절.
이념이 어떻든 국가가 어떻든, 수천년 유교국가들인 중국인과,한국인,중국화교들에게 생활의 일부로 체화된 유교명절 설날(春節,元日,元旦,元辰)기간의 祭天儀式이나(중국은 전통적인 天子國이라 立春때 祭天儀式, 元나라를 거쳐 明나라이후 주변국에 중국만이 天子國이라 압박해서 한국이 이를 확실히 받아들인 이후 중국에 있는 天壇은 중국이 확실한 천자국의 징표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함), 日月神 숭배(중국의 天子제도를 확실히 받아들인 나라의 경우, 天壇을 만들어 드리는 天子의 祭天儀式과 日月神 숭배의식은 다르다는걸 인지해두어야 함) 및 조상제사 전통이 낀 陰曆 正月!
설날이 지났고 곧 이어 대보름(上元)입니다.
황하문명의 유교 종주국 中國의 대표적 名節은 한국과 이렇게 명칭이 다릅니다. 春節(한국은 설.설날), 淸明節(한국은 한식), 端午節(한국은 단오라 함, 중국에서는 중오(重午) ·중오(重五) ·단양(端陽) ·오월절이라고도 함], 中秋節(한국은 추석, 仲秋節이라고도 함)등이 있습니다. 한국이나 베트남,대만,싱가포르등은 그 달의 상황에 맞게 유교 祭儀를 행하면 되겠지요.
5. 한국에서의 대보름의 유래(음력 정월의 설날명절과도 결부됨).
가). 한국에서의 설날의 유래는 三國史記에 백제와 신라의 사례가 나와 있습니다. 중국(元日.元旦등,현대 중국은 春節)과 한국의 元日(元旦,春節).설은 4대名節[중국의 경우 4대 名節로 春節(元日.元旦등),淸明節(한국은 한식), 端午節, 中秋節(한국은 秋夕.仲秋節로도 씀)]이거나 3대 名節(한국의 경우)입니다. 최근에는 며칠의 휴가를 주는 公休日 성격을 가졌습니다[한국의 경우 전통적인 3대 名節은 설.단오.추석].
그런데 公休日도 아니고 4대 名節.3대 名節도 아닌 上元節(元宵節, 한국은 대보름)의 성격은 독립적인 별도의 名節 개념이 아니라, 元日(元旦, 현대 중국의春節)부터 시작해서 장기적인 名節로 이어지는 陰曆 正月의 마지막 節日정도가 적당한 개념인것 같습니다.
나). 고대 한국의 백제에서 正月에 제사지낸 기록은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고기(古記)에 “온조왕(溫祚王) 20년(서기 2) 봄 2월에 단을 설치하여 천지신명에 제사를 지냈다. 온조왕 38년 겨울 10월, 다루왕(多婁王) 2년(서기 29) 봄 2월, 고이왕(古尒王) 5년(서기 238) 봄 1월과 10년 봄 1월 및 14년 봄 1월, 근초고왕(近肖古王) 2년(서기 347) 봄 1월, 아신왕(阿莘王) 2년(서기 393) 봄 1월, 전지왕(腆支王) 2년(서기 406) 봄 1월, 모대왕(牟大王) 11년(서기 489) 겨울 10월에 모두 위와 같이 제사 지냈다.
다루왕 2년 봄 1월에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하였으며 책계왕(責稽王) 2년(서기 287) 봄 1월, 분서왕(汾西王) 2년(서기 299) 봄 1월, 계왕(契王) 2년(서기 345) 여름 4월, 아신왕 2년 봄 1월, 전지왕 2년 봄 1월에도 모두 이와 같이 제사를 지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古記云 溫祚王二十年 春二月 設壇祠天地 三十八年 冬十月 多婁王二年 春二月 古尒王五年 春正月 十年 春正月 十四年 春正月 近肖古王二年 春正月 阿莘王二年 春正月 腆支王二年 春正月 牟大王十一年 冬十月 並如上行
多婁王二年 春正月 謁始祖東明廟 責稽王二年 春正月 汾西王二年 春正月 契王二年 夏四月 阿莘王二年 春正月 腆支王二年 春正月 並如上行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연관목차 (153/264)
.출처: 제사[祭祀]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8.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 필자 주 5). 위의 경우에는 殷나라 正月을 사용한 부여 영고의 祭天儀式을 답습한 것으로 연관지을수도 있겠습니다. 부여는 고구려 주몽이 태어난 나라며, 백제(비류왕,온조왕)는 고구려 주몽임금의 자손이 세운나라라 그렇습니다. 陰曆 正月의 제사라 하면 禮記에 나오는 元日(天子의 제사),立春(天子의 제사)이 대표적입니다. 부여의 영고처럼 장기적으로 이어진 제천의식을 이어받았다면, 天子제도의 확립이전에 시작되었고 禮記에도 나오는 殷人.周人의 제천의식을 이어받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음력 정월에 단을 설치하여 천지신명에 제사지낸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이왕(古尒王) 5년(서기 238) 봄 1월과 10년 봄 1월 및 14년 봄 1월, 근초고왕(近肖古王) 2년(서기 347) 봄 1월, 아신왕(阿莘王) 2년(서기 393) 봄 1월, 전지왕(腆支王) 2년(서기 406) 봄 1월.
* 필자 주 5-1). 백제가 지낸 天地에 대한 祭天儀式.山川祭祀는 禮記에 거론된 天子제도를 중국이 주변국에 강요하기전에 이루어진 原始的 權原의 국제법자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殷人의 후손인 箕子와 관련된 나라가 한국이기도 합니다(기자조선을 확실한 正史로 보지 않기도 하지만 先史時代의 정치인인 箕準王이 역사시대 인물인 위만에 멸망당한 사실을 볼 때 기준왕의 조상이 殷나라 王族 箕子일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周人에 망한 殷人들과 그에 영향받은 사람들이 天子제도의 한국에서의 확실한 정착(祭天儀式을 지내던 고려말 國子監의 개칭등에서 시작되어, 조선초에 제천의식 폐지과정 있음)전에 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삼한의 상달제(시월제), 예의 무천, 백제의 교천, 고려의 제천의식(조선초에 폐지되었다가, 고종때 부활)같은 原始的 權原에서 성립된 祭天儀式을 계승해왔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한국은 海東天子(중국 天子보다 격이 낮지만)의 나라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 출처: 제사[祭祀]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8.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 필자 주 5-2). 그런데 동명왕 사당에 배알(다루왕 2년 봄 1월, 조상제사는 유교 경전 禮記의 주요 祭儀중 하나)한 특성을 볼때 백제는 이 당시에 분명하게 조상제사를 행하였음을 확인해봅니다.
* 필자 주 5-3). 춘절이나 부여 영고의 장기적 축제성격(陰曆 正月의 長期的인 축제성격)을 볼때 漢나라때 시작되었다는 元宵節(상원절)은, 元宵節이란 구체적인 명칭을 붙이기전에는 장기적인(天子의 元日제사, 立春제사등) 陰曆 正月의 祭天儀式이었을수도 있는데, 漢나라때 陰曆 正月의 열닷새 쯤 마무리하는 祭天儀式의 節日로 추가된 것 같습니다(元宵節이란 구체적인 명칭을 붙여서...).
다). 신라에서 왕이 설날에, 日月神에 절하던 祭儀.
왕이 매년 설날 아침 일월신(日月神)에게 절을 하였다는 기록은 여러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서(隋書)』 권81 「열전(列傳)」46 신라(新羅)에는 “매년 정월 원단(元旦)에 서로 하례(賀禮)하는데, 왕은 이날 연회를 베풀어 뭇 관원의 노고를 치하한다. 또 이날에는 일신(日神)과 월신(月神)에게 제를 올린다(每正月元旦相賀 王設宴會 班賚羣官 其日拜日月神).”는 기록이 있으며, 『구당서(舊唐書)』 권199 「열전」149 신라에는 “원일(元日)을 중하게 여겨서 서로 경하하고 연회를 베푼다. 해마다 이날에 일월신에게 절을 한다(重元日 相慶賀燕饗 每以其日拜日月神).”는 기록이 있다. 또한 『신당서(新唐書)』 권220 「열전」145 신라에는 “원일에 서로 경하(慶賀)한다. 이날에 일월신에게 절을 한다(元日相慶 是日拜日月神).”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라). 유교 경전인 禮記 月令에 나오는 元日로 살펴봄(음력 正月의 元日에 제사).
天子乃以元日 祈穀于上帝
* 필자 주 6). 元日은 天子제도의 확립이후 天子가 上帝(유교 경전에 나오는 上帝, 五帝나 天帝와 어울려 비슷하게 통용되기도 함)께 기도하고 소원비는 의식을 가지는 날인데, 이 날 이후 이전부터 형성된 유교 祭天儀式의 여러가지 풍속과 節日(立春,人日,上元節.元宵節)을 합쳐 장기적 祭天儀式을 거행한다고 할 수 있음.
마). 春節로 살펴봄. 춘절에 대한 여러 자료의 설명을 보면 장기적인 춘절 성격과, 축제성격 및 祭天儀式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a). ...각종 오락 활동을 행하였으며 신을 맞이하고 조상에 제사를 지내며 날씨를 점치고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였으며[춘절[春节] (국가급 중국문화유산총람, 2010.8.1, 도서출판 황매희)]....
b). ...며칠씩 계속되고, 지역에 따라서는 보름 이상 계속되는 곳도 있다.또 집집마다 대문에 춘련(春聯)이라는 대구의 글귀(대련)를 써서 붙이고... 가장 일반적인 민속놀이는 사자탈춤(사자무)이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세뱃돈을 주는 풍습도 있다. 관공서를 비롯한 공공기관이나 기업체들의 평균 휴일은 6일이지만, 한 달 동안 가동을 중단하는 기업도 있다[두산백과 설명].
c). ...춘절은 3일 동안이 휴일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농촌에서는 음력 정월 보름까지 쉬면서 즐긴다. 이 기간에는 보통 대청소, 설빔준비, 춘련, 연화 붙이기, 세배, 폭죽놀이 등을 한다(시사 상식사전).
바). 위의 설명을 볼 때 한국에서의 대보름의 유래는, 중국 春節처럼 陰曆 正月의 長期的.祝祭的 성격[독립된 하루짜리 節日에서 출발한 게 아니고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陰曆 正月의 祭天儀式]을 가진 제천의식인 부여 영고와 백제의 正月 제사, 신라의 日月神 경배가 가장 타당성을 가집니다. 陰曆 正月의 元日(元旦,설날,春節)에서 시작하여 장기적으로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성격을 가진 부여의 祭天儀式 영고, 그리고 백제의 음력 정월 제사(天地제사, 祖上제사), 그리고 음력 正月에 日月神에 경배하던 신라의 풍속. 이 풍속들은 장기적 제천의식.축제의 시작인 설날(元日.春節)의 유래이기도 하지만, 중국 풍속에 영향을 받으면서, 설날~대보름으로 이어지는 또다른 祭天儀式으로 발전해 온것으로 여겨집니다. 중국 풍속에 영향을 받아 上元節.元宵節날의 祭天儀式(축제성격도 강함)을 기념하다가 한국의 陰曆 正月 대보름으로 중국과 비슷하게 발전해온 과정을 거쳤다고 여겨집니다. 고대 한국인들은 다음과 같이 禮記에 나오는대로 중국 殷나라(기자조선 가능성 여전히 존재)나 周나라의 영향을 받아 하늘[天(초월적 현상을 보이는 自然天의 모습으로도 고대 중국인들이 받아들였겠지만, 詩經에 나온대로 天生蒸民의 인간 창조주 天으로서, 天.日月.星辰.山川.祖上등 多神중에서 가장 높은 경배의 대상으로 수천년 이어져 온 최고신 天은 초월적.초자연적 自然天의 모습과 인간창조주 天의 모습을 함께 지녀오심]에 제사하고, 日月(神)을 숭배하고, 星辰(神), 水旱(장마와 가뭄의 神), 四方(四方神), 祖上(씨족이나 부족국가 초기의 지배자로 帝가 된 祖上神)에 제사하다가 중국 漢나라때 구체적으로 元宵節(上元節)로 이름붙여진 節日을 모방하여,기존 祭天儀式과 접합해서 이어졌을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6. 일본의 양력 대보름에 대한 견해.
陰曆 名節을 쇠지 않고 양력명절을 쇠게 된 불교적 일본신도(일본은 유교와 유교식 중국불교.한국불교를 혼합하여 일본신도와 일본 민중불교를 2중으로 같이 믿는데 공식적으로 유교국가는 아니며 유교전통에서 많은 부분이 변질된 나라임)의 일본. 그 일본이 중국.한국의 전통 4대 名節(한국은 전통적 3大 명절)과 달리 양력 대보름을 公休日(음력도 아니면서...)로 하는것은 좀 특이합니다.
非 公休日 대보름을 "일본에서는 소정월(小正月)이라 하여 공휴일로 정해 명절로 삼고 있다"고 두산백과에 나옵니다. 막부시대에 全 住民을 절에 등록시켜 기독교를 탄압한 이후, 불교국가화 된 일본이 중국이나 한국에서 받아들인 한자.유교.도교.중국불교를 변형시키면서 막부시대의 풍속에 따라 생존전략을 취하다보니 한국이 전해준 유교는 완전히 불교처럼 보이게 둔갑해 버린것 같고 실제로 그 이후의 일본인은 유교도가 절대 아니게 되었습니다. 불교국가화 된 일본 막부시대의 유교나 막부타도 이후 19세기에 일본 국교가 된 불교기반 일본 신도는 後發局地的으로 일본에만 머물렀으면 일본인의 생활에만 영향을 끼치며 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등을 이기고 느닷없이 軍事 强大國의 위치로 올라서게 되니까 대만지역을 얻게되고, 강제 을사조약이후 한일합병을 거치면서 일본적인 後發局地的 특이한 문화를 강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불교적 일본신도(일본 민중불교 포함)에 대만지역과 한국이 짧은기간에 전염병처럼 일본 풍속에 강제로 전염된 것 같습니다. 일본기준 양력중심 명절의 전파, 한국.대만지역 전통 유교에 불교적 특색의 강력한 혼합이 발생하여 지금까지 그 불교적 풍속들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일본발 전통문화 왜곡현상(유교를 유교로 보이지 않게 하고 불교로 보이게 하는 특이한 현상)은 그냥 방치해두면 대만과 한국에 남은 親日附倭輩등을 중심으로 대중언론이나 학술서적.영상물등을 통해 다른나라인 중국.베트남.싱가포르까지 불교적으로 전염시킬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陰曆이 아닌 일본 小正月은 의미가 없지만 유교국들의 짧은 陰曆 節日인 立春.人日.대보름(上元節,元宵節)의 전통은 公休日이 아니라해도 각각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의 불교적 특색을 경계하면서 일본 잔재를 벗겨내면 꾸준히 지켜온 유교의 짧은 節日임은 분명합니다. 특히 立春과 대보름(上元節.元宵節)은 그렇습니다.
7. 인일(人日)
가). 人日은 정월 초 이렛날에 月齡7일의 달의 위상이 형성되는 날로, 달이 上弦(First Quarter)상태며, 人日은 음력 正月 초이렛날의 節日임.
나). 人日에 대한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의 설명.
음력 정월 초이렛날로 절일(節日 : 한 철의 명절)의 하나.
내용
이날에는 특히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관습이 전해왔다. 정초에는 남의 집에 가서 유숙하지 않도록 되어 있지만, 특히 인일(人日)에는 밖에서 잠을 자지 않았다. 충청북도에서는 이날 객이 와서 묵고 가면 그해는 연중 불운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부득이 객이 와서 묵게 될 때에는, 주인과 객이 머리를 반대로 두고 거꾸로 자야만 액운을 막을 수가 있다고 한다. 『동국세시기』의 인일(人日)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작고 둥근 거울모양에 자루가 달리고 뒤에 신선이 새겨져 있는 동인승(銅人勝 : 거울 모양의 머리 꾸미개)을 각신(閣臣)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며, 또 과거를 실시하였다고 한다.
이 과거를 인일제(人日製)라 하여, 태학(太學)의 식당(食堂)에 참석한 지 30일이 되어 원점(圓點 : 시험 볼 자격 출석점)을 얻은 유생들에게 시험을 보도록 하였다고 한다. 성균관과 문묘에서 시행하기도 하고, 대궐 안에서 임금이 친히 시험하기도 하였으며, 지방의 유생도 불러 함께 보이기도 하였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다. 이 인일(人日)의 관습은 상대 중국의 세시기들에도 보이는 것으로, 그 유래가 오랜 것이다. 한편, 전라북도 지방에서는 간지가 신(申)인 날을 원숭이날이라고 부르지 않고 보통 사람날이라고 하여 쉬었다고 한다.
즉, “오늘은 사람 날이니까.” 하며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특별한 행사나 금기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경상북도 지방에서의 인일(人日)은 사람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며 질병을 예방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날이다.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정월 상인일(上寅日)에 일을 하지 않고 노는데, 이날을 사람날이라고도 한다. ‘인(寅)’과 ‘인(人)’은 그 음이 같기 때문이다. 또한, 옛날부터 인(寅)날에 일을 하면 호랑이가 나타난다고 하였다고도 한다.
경상남도 지방에서는 칠인팔곡(七人八穀)이라 하여 정월 초이렛날은 사람날이라고 하고 초여드렛날을 곡식날이라 한다. 이 지방에서도 인일에는 일하지 않고 놀며 ‘바느질하면 생손 앓는다.’, ‘칼질(혹은 연장질)하면 다친다.’는 금기가 전해오고 있다.
. 출처:인일[人日]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다). 인일하례(人日賀禮)
정초의 7일째 날인 사람날[人日]에 드리는 의례.
내용
서한시대 동방삭(東方朔)의 『점서(占書)』에서 말하기를 새해 후 첫째 날은 닭날[鷄日], 둘째 날은 개날[犬日], 셋째 날은 양날[羊日], 다섯째 날은 소날[牛日], 여섯째 날은 말날[馬日], 일곱째 날은 사람날[人日], 여덟째 날은 곡식일[穀日]이라 하며, 해당되는 날이 청명하면 그 동물이 잘 생육하고, 흐리면 재앙이 있을 것이라 하였다. 고대인들은 사람날의 청명(淸明)으로, 그해 사람들의 길흉 화복을 점쳤다. 또 해당되는 날의 짐승들이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하여 그 날에 해당되는 짐승들은 도살하지 않으며, 사람날에는 행형(行刑)하지 않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사람날에는 일곱 종류의 채소로 국을 끓여 먹었다.
중국 남북조시대 양(梁)나라 종름(宗懍)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정월 7일을 사람날이라 하여 일곱 가지 나물로 국을 끓여 먹고 비단이나 금박(金箔)으로 꽃과 인형을 만들어 병풍에 붙이거나 머리 위에 꽂는데, 인형을 인승면(人勝面), 꽃을 화승(花勝)이라 부른다.
그리고 『고려사(高麗史)』 권67 「지(志)」21 예(禮)9에는 인일하의(人日賀儀)라 하여 국가에서 의례를 행하였다고 전한다. 의례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당일에 전문외(殿門外)에 유사가 진설함을 의식과 같이 한다. 각문원(閣門員)이 먼저 동변(東邊)에 서고 지후(祗侯)가 양반(兩班)을 인도하여 중심을 머리로 하고 자리를 달리하여 행렬을 중복하고 북향하여 서며 시신(侍臣)은 품에 따라 서로 선다. 각사(閣使)가 나가 읍하고 문에 들어가 한 번 절하고 꿇어앉아 먼저 인승면을 꽂고 절하고 문을 나가서 자리에 나아가 읍하고 선(宣)을 받들었다고 하면, 사인(舍人)의 외침으로 양반이 재배한다. 각사가 또 “경 등에게 인승녹패(人勝鹿牌)를 사(賜)한다.”고 하면 사인의 외침으로 양반이 배무(拜舞)하고 절한다. 인승녹패를 나누어 주면 양반이 꿇어앉아 그 인승을 받는데 3품 이상은 지후가 나누어 주고 4품 이하는 태부인리(太府人吏)가 녹패를 나누어 올리고 판사(判事) 이상은 삼사판관(三師判官)이 나누어 주며 이하는 인리(人吏)가 나누어 올린다. 사인의 외침으로 양반이 재배하고 각각 지후가 인도하여 나간다. 각문이 횡행으로 가서 스스로의 외침으로 배무(拜舞)하고 절하며 각각 인승녹패 받기를 위에서와 같이하여 마치고 재배하며 읍하고 물러간다고 의식의 절차를 밝히고 있다. 또 『고려사』 권19 「세가(世家)」19 명종(明宗) 3년 정월 신미에 “신미일에 백관이 인일을 축하하니 왕이 그들에게 인승녹패를 주었다.”고 전한다.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에 의하면, 이날에 공조(工曹)에서는 화승을 올리고 또 구리로 둥근 원모양을 만들어 그 위에 사람의 형상을 새긴 이른바 동인승(銅人勝)을 각 궁전에 하나씩 진상한다고 하였다. 동인승이란 수나라 유진(劉瑧)이란 사람의 아내 진씨(陳氏)가 사람날에 동인승을 올렸는데, 비단실과 금박을 잘라서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작고 둥글며 자루가 달린 거울의 뒷면에 신선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 출처: 인일하례[人日賀禮]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 필자 주 7). 동방삭에 대한 설명.
동방삭((東方朔).
출생 - 사망
BC 161 추정 ~ BC 86 추정
자는 만천(曼晋)이며, 평원(平原) 염차(厭次 = 현 산동성(山東省) 양신현(陽信縣)) 사람이다. 무제 때에 태중대부(太中大夫), 중랑(中郞) 등을 지냈으며, 재담과 해학을 잘 하였다. 그리하여 무제는 그를 배우로 대우했다. 그는 궁정의 한 '농신(弄臣)'이었으나 정치적으로는 정의감이 있었다. 하지만 동방삭은 정치적으로 중용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답객난(答客難)」이란 산문부를 지어 스스로를 위로했다.
주인과 객의 문답 방식인 이 부는 무제 통일 시대에 비록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뜻을 펼 곳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어질고 불초함'의 구별이 없었고, "쓰인 즉 호랑이가 되고, 안 쓰인 즉 쥐가 된다"고 불평을 토로하였다.
. 출처: 동방삭[東方朔] (역사 따라 배우는 중국문학사,2010.3.24, 다락원)/저자 이 수웅
* 필자 주 7-1). 중국 전한시대 太中大夫를 지낸 사람으로 신배(申培)라는 인물이 있음. 두산백과에 의하면 신배는 "중국 전한(前漢)의 학자로 노(魯)나라의 문제(文帝) 때 초왕(楚王)의 태자 무(戊)의 스승이었으며 정치고문으로 태중대부(太中大夫)를 지냈다. 《시경》에 정통하였다"고 서술됨. 그건 그렇고 유교 경전인 易經은 占卜에 관한 내용도 들어있는 경전인데 周나라 文王이나 周公, 孔子님께서도 중시하셨던 경전으로 후세 사람들이 이를 그대로 계승하였던 측면을 보면, 동방삭의 占書도 곧 易經(周易이라고도 함)을 응용한 서적일것입니다. 위 본문중에 "고대인들은 사람날의 청명(淸明)으로, 그해 사람들의 길흉 화복을 점쳤다. 또 해당되는 날의 짐승들이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하여 그 날에 해당되는 짐승들은 도살하지 않으며, 사람날에는 행형(行刑)하지 않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사람날에는 일곱 종류의 채소로 국을 끓여 먹었다"고 나옵니다. 결국 유교 경전인 五經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세세한 내용이나 절차가 기록되지 않아도 결국은 유교 경전인 詩經.書經.易經.禮記.春秋등에 기반한 유교적 祭儀나 행동지침에 해당됩니다. 인류역사가 기껏해야 기원전 6천년, 기원전 5천년전부터 출발되고 그 이전에 숭배와 제사대상인 天(초월적인 自然天 개념과 形以上學的인 인간창조주 天. 太極과 결부시켜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함)과 우주의 본체인 太極(의미상으로는 天과 결부시켜야 함)이 어떤 피조물을 만드셨는지는 늦은 역사를 가진 우리 인간이 가히 짐작키 어렵습니다. 그러나 形以上學的인 개념의 합리성과 철학.자연과학적인 측면을 결부시켜서 이해하면 天과 결부된 太極의 세상창조(太極은 天처럼 적극적인 제사.숭배대상은 아니지만 그 초월성과 창조주기능을 볼때는,天의 창조과정이 없는 부분에서도 天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함)는 유교쪽의 해석을 빌어 설명할 필요도 있습니다. 어떤 순서로 세상을 창조하셨는지는 經典과 사후 유학자들의 해석에 따라야 할것이며, 수많은 形以上學的 학설이 추가로 필요되기도 합니다만, 天의 피조물인 인간의 능력으로 완전하게 추론해내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陰曆 正月의 春節이든지(설날), 立春이든지, 人日이든지, 上元(대보름)이든지 유교 경전인 역경,예기,시경,서경,춘추 및 사서(論語.中庸.大學.孟子)등의 내용에서 큰 틀을 형성하고 그 세부적인 행사나 방법은 그 당시 時流와 風俗에 맞게, 세계 4대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인더스문명 및 주변 문화와 교류하면서 변형.발전시켰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교권 국가들의 명절.제사.제의.언어.교육.풍속 및 여러가지 문화의 기본성격은 대체적으로 중국의 황하문명과 유교경전등에 기반하여 주변국가들에 보급된 황하문명적.유교적 문화라고 해야 적당합니다.
* 필자 주 7-2). 機智와 諧謔을 즐겼던 사람으로는 조선시대 오성(鰲城) 이 항복(李恒福)과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이 유명하지요.
1. 유교 경전 禮記의 개념으로는 하늘(天)에 제사하고 日月에 제사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殷周시대에 형성되어 그 이후에 확실하게 확립된 天子의 禮法으로 규제하기 전에 형성된 풍속도 있고, 天子제도의 강요이후 天子만의 祭法(이 祭法을 따르자면, 대체적으로는 환구단이나 원구단등의 국가적인 天壇이 적합할것)도 있을 것입니다. 여하튼 天子제도의 강요이전에 형성된 殷周시대 사람과 그 이전 사람들의 하늘에 대한 숭배,日月숭배는 유교경전인 禮記에 수록되어, 이 또한 天子제도 강요이전에 형성된 유교적 祭儀임은 부정할 수 없는 복잡한 특성을 가졌습니다. 전통적으로 황하문명의 고대 중국인들과 한국인등 유교권 국가 유교도들이 중요시 해온 달(日神처럼 중요한 月神 개념). 하늘에 소원비는 대상으로서 국가적인 天壇과 달리, 전통적으로 日神보다는 月神개념을 중심으로 陰曆절기로 생활해온 황하문명권과 유교국가 사람들! 陰曆 正月에는 春節(설날,元日,元旦,元辰등)다음에 入春, 그리고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는 上元節(元宵節.대보름)의 유교 세시풍속이 가장 일반적입니다(그러나, 음력 5월이 되면 단오절처럼 태양을 중요시하는 名日도 있음).
* 필자 주 8). 중국인들은 새해 들어 처음으로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이어서 상원절(上元節.元宵節)이라고 한다 합니다. 필자가 漢字로 풀이하면 이렇게 풀이됩니다. 上(위, 앞, 첫째), 元[으뜸.처음.시초, 우두머리.두목.임금, 첫째.첫째가 되는 해나 날, 기운(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오관으로 느껴지는 현상).천지의 큰 덕.만물을 형성하는 덕]. 그러므로 달을 기준으로 한다면 陰曆 새해들어 첫째(正月)달의 첫째되는 날(보름달로 첫째 되는 날)로 上元(上元節,대보름)이 해석되겠습니다.
2. 삼원(三元)이란 용어로 살펴봄. 조정과 역사서에서 上元(요즘은 대보름을 上元으로 통용)을 포함하는 용어인 三元을 거론한 사례. 이러한 사례를 보면 三元이란 용어를 도교나 불교쪽에서 임의적으로 끌어다 변형시키기는 무리가 따름.
음력 정월 초하루.. 원단(元旦)의 다른 말. 연(年)·월(月)·일(日)이 시
작되는 날이라는 뜻에서 유래.
내용
양나라 종름(宗懍)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정월 1일은 삼원의 날이다(正月一日是三元之日也).”라 하였고, 청나라 부찰돈숭(富察敦崇)의 『연경세시기(燕京歲時記)』에도 『옥촉보전(玉燭寶典)』을 인용하여 “정월 1일은 원일이며 역시 삼원이라고도 한다. 한 해의 시작이요, 때의 시작이며 월의 시작이다(正月一日爲元日 亦云三元 歲之元 時之元 月之元).”라 하였다. 그리고 “이날은 먼저 뜰 앞에 폭죽을 터뜨려 산조(山臊)라는 악귀를 피한다(正月一日 先於庭前 燃爆竹以避山臊惡鬼).”라 하였다. 그 외에 『자치통감(資治通鑑)』에도 『옥촉보전』을 인용하여 “정월은 단월이며 그 하루는 상일이다. 역시 삼원이라고도 한다.
한 해의 시작이요, 월의 시작이며 시의 시작이다(正月爲端月 其一日爲上日 亦云三元 謂歲之元 月之元 時之元也).”라 하였다. 한편 남조(南朝) 제(齊)나라 왕검(王儉)의 ‘양암친봉증상의(諒闇親奉烝嘗議)’라는 글에 “공경대부는 (이날) 천자께서 병풍을 등지고 친히 임하시며, 삼원의 시작됨을 고하니 만국의 조회를 받는다(公卿大夫 則負扆親臨 三元告始 則朝會萬國).”라 하였고, 당나라 반맹양(潘孟陽)의 ‘원일화포택(元日和布澤)’이라는 시에는 “흐르는 서기가 만물을 적셔주고 은택이 이 삼원날에 널리 퍼지도다(流輝霑萬物 布澤在三元).”라 하였다. 우리나라에도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32와 『동문선(東文選)』 권22에 ‘삼원’이라는 말을 정월 원단의 의미로 쓰인 예가 있다.
.출처: 국립 민속박물관 한국 세시 풍속사전, 국립 민속 박물관
3.한시어사전으로 上元(대보름)을 살펴봄.
① 정월(正月) 보름. 중원(中元)은 7월 보름, 하원(下元)은 10월 보름임.<통감通鑑 당희종기唐僖宗紀>
玉色臨軒命管絃 春風淡蕩上元天(옥색임헌명관현 춘풍담탕상원천 ; 옥색 어의御衣 입으신 임금님 난간에 납시어 음악 아뢰라 명하시니, 봄바람 화기로운 정월 대보름날일세.)<이인로李仁老 문기장자文機障子>
② 상원갑자(上元甲子). 술수가(術數家)에서 180년을 1주(周)로 하고, 3등분하여 상원 갑자, 중원 갑자, 하원 갑자라 했는데 그 중 첫 번째 갑자 60년이 상원 갑자임.
- .출처:상원[上元] (한시어사전, 2007.7.9, 국학자료원)/전관수
4. 시사 상식사전의 설명.
.정월대보름
음력 정월 15일인 '정월대보름'은 '상원일(上元節)'이라고도 하여 중원일(中元節:7월 15일 百中), 하원일(下元節: 10월 15일)과 함께 '三元節'이라고 했다.
■ 세시풍속
이날에는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많은 세시풍속이 전해진다. 우리나라 전체 세시풍속의 20%가량이 대보름날을 맞아 치러질 정도다.
예로부터 정월 대보름에 만들어 먹는 별식을 '상원절식'이라고도 하는데, 오곡밥·약식·귀밝이술·부럼·복쌈·진채식 등이 있다.
대보름날 새벽에는 땅콩이나 잣, 호두, 밤 등 부럼을 자기 나이 수대로 깨물며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호두, 잣, 밤, 땅콩 등의 견과를 껍데기 채 '오도독' 소리가 나게 깨무는 부럼은 부스럼 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또 일년 내내 기쁜 소식만 전해달라며 부녀자 애들 할 것 없이 귀밝이술(耳明酒)을 마신다.
전날 저녁에는 쌀, 팥, 콩, 조, 수수를 넣어 오곡밥을 지어 이웃과 나눠 먹고, 갖가지 나물들을 삶아서 기름에 볶아 먹기도 한다. 이런 '묵은 나물'을 진채라고 하며, 가을이 되면 호박고지·박고지·말린가지·말린버섯·고사리·고비·도라지·시래기·고구마순 등 적어도 9가지 나물들을 손질해서 겨울동안 잘 말렸다가 대보름 날 나물들을 삶아서 기름에 볶아 먹었다고 한다.
또 이 날은 세 집 이상의 남의 집 밥을 먹어야 그 해 운이 좋다고 하여 이웃간에 오곡밥을 나누어 먹는다.
배추잎이나 김, 혹은 참취나물 이파리를 넓게 펴서 쌈을 싸 먹는 복 쌈(복리:福裏)은 한 입 가득 복을 싸 먹으며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던 풍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편 더위먹지 않고 여름을 무사히 보내기 위해 보름날 이른 아침 친구에게 찾아가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라'고 말하는데 이를 더위팔기라고 한다.
농사가 잘되고 마을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며 마을 사람들이 모여 '지신(地神)밟기', '차전(車戰)놀이' 등을 벌이고, 한 해의 나쁜 액을 멀리 보내는 의미로 연줄을 끊어 하늘에 연을 날려 보낸다.
저녁에 대보름달이 솟아오르면 횃불을 땅에 꽂고 합장하여 저마다 소원을 빌고 논이나 밭의 두렁에 불을 질러 잡귀와 해충을 쫓는 '쥐불놀이'를 한다.
또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달집태우기'와 부녀자들만의 집단적 놀이인 '놋다리밟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집 근처의 다리로 나와 다리를밟고 건넘으로써 한해의 액을 막고 복을 불러들인다고 믿어지던 '다리밟기' 놀이를 한다.
.출처: 정월대보름(시사상식사전, 박문각)
5. 두산백과의 설명.
. 대보름
가장 큰 보름이라는 뜻의 음력 정월 보름인 1월 15일을 말함.
대보름날은 우리 민족의 밝음사상을 반영한 명절로 다채로운 민속이 전한다. 중국에서는 이 날을 상원(上元)이라 하는데 도교적인 명칭으로 천관(天官)이 복을 내리는 날이라 한다. 여기에 중원인 7월 15일, 하원인 10월 15일을 합하여 삼원이라 부른다. 이 밖에도 원소절(元宵節), 원석(元夕)이라 하며, 일본에서는 소정월(小正月)이라 하여 공휴일로 정해 명절로 삼고 있다.
대보름날의 각종 풍속은 전체 세시풍속 중 1/4이 넘을 정도로 풍부한데 설 풍속을 합치면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이것은 정초와 대보름 명절이 우리 민속에서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이들은 상호 유기성을 가지기 때문에 정월중에 많은 세시행사가 모여 있다. 정월에 드는 설과 대보름은 상호보완적으로 설날이 개인적 ·폐쇄적 ·수직적이고, 피붙이의 명절임에 반해 대보름은 개방적 ·집단적 ·수평적 ·적극적인 마을공동체 명절로 두 관념이 교차하며 달의 생성과 소멸주기에 따라 긴장과 이완, 어둠과 밝음, 나에서 우리로 교체 ·확장되는 일원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한국의 명절 중 정월 대보름의 예축의례와 상대적인 명절로 수확의례인 8월 한가위의 보름 역시 만월을 통한 풍요관념을 보여준다.
대보름은 상징적인 측면에서 달 ·여성 ·대지의 음성원리(陰性原理)에 의한 명절로 달은 곧 물의 여신이므로 대보름과 농경문화는 밀접하다. 땅과 달을 여성으로 여긴 것은 오랫동안 전해온 지모신(地母神)의 생산력 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태종실록》에 전하는 경기도 연안부의 용갈이, 용경(龍耕)풍속이나 《동국세시기》에 전하는 홍주의 용경과 용알뜨기 민속, 영동지방의 용물달기 등은 용신(龍神)신앙이 농경의례와 밀접함을 보여준다. 줄다리기 역시 용사(龍蛇) 신앙의 한 표현이다. 따라서 대보름 달빛은 어둠과 질병, 재액을 밀어내는 밝음 상징이므로 동제(洞祭)를 지내고 개인과 집단적 행사를 한다. 전하는 말에는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밝아야 좋다”든가 “중국 사람은 좀생이 별을 보고 농사짓고, 우리나라 사람은 달을 보고 농사짓는다”는 것은 한국과 중국의 문화유형이 다름을 말해준다. 개인적인 기복 행사로는 부럼깨물기, 더위팔기, 귀밝이술마시기, 시절음식인 복쌈이나 묵은 나물먹기와 달떡을 먹는 것이 있으며, 줄다리기 ·다리밟기 ·고싸움 ·돌싸움 ·쥐불놀이 ·탈놀이 ·별신굿 등은 집단의 이익을 위한 대보름 행사다.
.출처: 대보름(두산백과)
* 필자 주 9). 황하문명의 형성이후 五帝시대 및 요.순임금 시대를 거쳐 殷.周시대의 天子사상에 의거 형성된 始原儒敎. 그리고 유교 경전들과 始原 儒敎 전통. 이후 공자님이 유교경전과 始原유교를 계승시키시고 교육시키셔서 漢나라가 諸子百家 중 國敎로 채택한 儒敎. 이러한 맥락에서 이어진 陰曆正月의 설날(春節, 元日,元辰,元旦,元正등),入春,人日,上元(대보름)전통이기 때문에 上元(대보름)을 도교적인 해석이나 불교적 시각으로 재단하는건 옳은 방법이 아님. 특히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점은 중국의 4대 名節도 아니고, 한국의 3대 名節도 아니고, 公休日도 아닌 대보름에 너무 비중을 둘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수천년동안 이어진 유교의 日月(神) 숭배전통에 가장 의미가 있으며, 부차적으로 다른 세력들이 끌어다 쓸 수 있는(일본강점기에 日本의 사상이 대만.한국지역에 확산되어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여러가지 학술서나 대중언론등에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음. 일본이 양력 小正月을 공휴일로 하는 특이한 점이 있어서 그러함) 여러가지 하위 습속도 있습니다만, 유교 경전인 禮記에 나오는 日月숭배에서 생긴 날이라 하는게 옳습니다. 전통적인 4대 名節.3대 名節도 아니고, 公休日이 아닌 상태로 名日을 가진다면 그저 그렇게 형성된 세시풍속으로 여길 수 있는 그런 날같기도 합니다. 19세기 일본 神道가 國敎로 된 이후 일본의 강제적 영향을 받은 대만.한국에서 일본인 학자나 대만,한국의 학자 및 해당자들이 小正月의 양력 公休日에 아주 큰 의미를 부여하여, 본래의 습속보다 더 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날 같기도 함. 상당기간 관찰이 필요합니다.
6. 유교적인 전통 명절 대보름. 중국은 황하문명의 형성과 始原유교 형성부터 하느님[하늘天(太極과 연계된 인간창조주 하늘天. 天帝나 上帝는 하늘을 다스리는 지배자)]을 숭배하는 나라라 始原 유교 그 자체로 보면 될것이며, 도교로도 보지 말아야하고 특히 불교(부처가 창조주를 밑에서 가르치면서 인더스문명의 브라만에 대항한 후발 신앙)로 각색하지 않아야 됨. 중국이나 한국의 세시풍속은, 황하문명 그 자체의 특색외에 주변의 메소포타미아문명, 인더스문명등과 교류하며 다른 풍속등이 첨가되었을 가능성도 있음은 부정하기 어려움. 다만 유교의 본류는 하늘天(太極과 연계)숭배, 日月숭배, 山川숭배,祖上숭배,聖人임금(先聖)숭배 전통임. 上元,元宵節,上元節등의 漢字語를 따져보면 결국 음력 열 닷새날, 크게 뜨는 달을 기준으로 형성된 언어들이라 할 수 있으며 한국어인 대보름날(대보름)도 이런 漢字語에서 유래한 개념을 반영하고 있음.
a). 상원절(上元节)에 대한 중국어 사전의 정의.
원소절. 정월 대보름. 음력 정월 보름의 명절.
上元.
명일(名日)의 하나. 음력(陰曆) 정월(正月) 보름날
.출처: 오픈마인드[(주)오픈마인드인포테인먼트,Open mind infotainment, 대표자:배도운]
c). 위의 한자용어를 기본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는 한국의 대보름날도, 달(月)기준 陰曆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이 제공하는 대보름날의 개념은 아래와 같습니다. 근대와 현대를 거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국어사전 기준으로 할 때, 수천년 陰曆전통 기준이 너무 강해서, 일본처럼 陽曆기준이 분명 아닙니다. 중국은 天도 숭배하고 日月을 동시에 숭배하였지만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인지 관찰하기 용이한 太陰曆을 기준으로 하면서, 단오절처럼 태양기준 名節을 4대 주요 명절로 하여왔고, 한국도 단오절을 설날.추석과 더불어 전통 3대 名節로 하여왔습니다. 그러므로 일본의 양력개념 小正月이나 太陽曆, 기타 달(月)이 아닌 다른것에 주안점을 두어 上元節.元宵節.대보름날을 해석하면 않됩니다.
.대보름날
음력 정월 보름날을 명절로 이르는 말.
d). 다음부터는 베이징관광국 자료에 의함.
위안샤오제(元宵节,yuán xiāo jié,원소절,정월대보름) 소개
음력 정월 15일은 중국전통명절- 원소절이다.
1년 중에서 첫번째로 둥근달을 맞이하는 날이고 대지가 회춘하는 밤이라 중국인들은 음력설의 연속으로 이 날을 경축해왔다....
다음은 웹페이지 주소입니다(클릭해서 읽어보세요).
http://visitbeijing.or.kr/detail.php?number=725
.출처:베이징관광국 한글 공식사이트 최종수정일: 2012-12-18
* 필자 주 11). 위의 베이징관광국 설명으로 원소절을 설명할 때, "1년 중에서 첫번째로 둥근달을 맞이하는 날"은 禮記의 日月숭배 전통에서 유래한 유교풍속이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초월적인 절대자이신 하늘天(太極과 연계됨. 詩經에 나오는 天生蒸民의 인간창조주 하늘天이심)에 대한 숭배, 日月(神的 의미)숭배전통, 五帝기준 祖上神 숭배전통등은 인간의 文字가 형성되기 이전의 것일수도 있겠으며, 人間이 文字를 만들고나서 그 숭배전통이 유교 경전 禮記에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절차를 거치고나서 황하문명의 始原 儒敎에서 사용하던 陰曆기준 달(月) 숭배풍속이 전승되다가, 인간이 잘 모르던 神鳥를 죽이니까 天帝께서 노하셔서 불로 징벌하시려 할때 天帝의 딸이 인간을 불쌍히 여겨 알려준 정보에 의거하여 폭죽이나, 연기, 빨간 등의 처방법이 나와 그 풍속이 元宵節(上元節)로 형성되어 전승되어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필자 주 12). 베이징관광국에 나오는 "원소절의 전설"을 보니까 잘 모르던 神鳥를 죽여서 원래부터 중국인들이 숭배하던 天帝의 분노를 피하고자 폭죽,연기,빨간등을 활용하는 풍속을 알겠습니다.
* 필자 주 13). 元宵節 날 빨간 등을 거는 유래에 대해서 중국유교의 오랜 전통이 아니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어, 불교문화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는것 같은데, 이는 불교보다 오래전에 형성된 인더스문명의 브라만(나중에 힌두교로 전승됨)교 풍속이나 기원전 6천년경에 성립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형성된 조로아스터교(중국과 대륙으로 연결되어 고대 중국이 페르시아나 다른 중동국가들과 교류하다가 중국은 拜火敎.祆敎등으로 조로아스터교 신앙을 이해함) 풍속을 접하면서 형성된 부차적인 외래풍속으로 볼수도 있겠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 ─敎]는 두산백과에 의하면 漢字로는 배화교(拜火敎), 중국에서는 현교(祆敎)라고 하여 삼이교(三夷敎)의 하나로 꼽혔다고 합니다. 필자가 볼때 유일신 신앙을 가졌지만 그 이전의 세계 4대 문명(메소포타미아 문명, 황하문명, 인더스문명, 이집트지역 나일문명)이 가져온 多神敎전통을 떨쳐내지는 못하다가, 나중에 고대 유태인의 유일신사상(Hebraism)에 영향을 준것 같습니다.
유교는 五帝라는 神的인 임금들이 계셔서 上帝.天帝등이 인간의 모습과 생활처럼 비슷한 天人合一說이 있는 종교인데, 인간이 사는 지구의 五帝 개념이 아니라 하늘과 지구를 지배하시면서 인간의 특성도 가지셨지만, 초월적인 神의 능력을 가지신 분들이 五帝이시며 그런분들이 上帝나 天帝의 일부분 이십니다.
* 필자주 13-1). 빨간 등을 거는 풍속이 황하문명과 오제시대의 중국 고유 전통이 아니고 한나라때 형성된 풍속이라 하여 유교적 제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늘天(太極과 연계된 인간 창조주)숭배, 인간과 合一된 天(天帝,上帝의 모습)숭배, 日月숭배 전통에 등불거는 전통이 漢나라때 생겨서 수천년이라면 유교를 本流로 외래문명을 수용한 元宵節날의 유교 하위풍속이라고 해야 하지 다른 외래 종교의 풍속으로 보는것은 무리가 있습니다(儒敎的 本質은 바뀌지 않으면서, 주변국들과 교류가 왕성하던 漢나라통치기 중국에서 생긴 외래풍속 수용후 생겨난 전설 정도로 치부하면 될것. 모든 문명과 종교는 교차하는법입니다).
文明이 교차하는 특성을 가진다는 점을 인정할때, 메소포타미아문명에서 생긴 불에 대한 경배(유일신에 제사할 때, 숭배까지는 아니지만 불을 신성시하며 제사때 이용하는 조로아스터 敎의 일부 의식)나 인더스문명의 등불걸기 풍속[인더스문명의 브라만교.힌두교 풍속으로 보여지며 나중에 브라만교에 반기를 든 (창조주 경시) 부처의 불교의 등불걸기 풍속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움]등은 황하문명의 중국처럼 고대 문명을 가진 주변 국가들의 풍속으로 전통적인 중국 유교에 혼합된 외래 풍속일 가능성을 배제할수는 없습니다. 등불걸기가 수천년 황하문명과 殷周시대의 고유 풍속이 아니라고 한다면 漢나라때 외래풍속을 수용한것에 해당되며, 유교에 녹아서 수천년동안 유교화 된 부차적인 외래풍속이라고 보면 맞겠습니다.
* 필자 주 13-2). 조로아스터교
조로아스터(Zoroaster)가 이란 북동부에서 제창한 종교. 그 주신 아후라 마즈다의 이름을 따서 <마즈다교>, 또는 그 성화를 호지(護持)하는 의례의 특질에 의해서 <배화교(拜火敎)>라고도 하며 중국에서는 현교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조로아스터의 활약시기에 대해서는 기원전 2천년기 중엽부터 기원전 7~기원전 6세기라는 설이 있는데 정설은 없다....
조로아스터의 교설은 당시의 다신교를 아후라 마즈다를 최고신으로 하는 윤리적 일신교에 통합하려는 것이었다....
.출처: 조로아스터교(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 필자 주 13-3). 집집마다 양초나 등불을 켜놓고 불꽃놀이를 하는 힌두교의 불(light)의 축제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원소절의 전설"에서 생긴 폭죽, 연기, 빨간등전설도 있으므로, 이를 배제하지 말아야 할것입니다(天帝와 연결된 중국 고유의 오래된 전설이라 불교가 전해지면서 형성된 등불걸기 풍속에 비할바가 아닙니다). 황하문명 중국의 전통이 인도로 전파되었을 가능성도 있고, 인더스문명 인도의 등불걸기 풍속이 한나라로 흘러들었을 가능성이 모두 존재합니다.
.디왈리
디왈리(Diwali)는 겨울의 파종기를 맞이하는 제사로, 상인들에게는 신년의 제사이기도 하다. 집집마다 양초나 등불을 켜놓고 불꽃놀이를 하는 힌두교의 불(light)의 축제이며 선물을 교환하였다. 10월~11월 초승달이 뜨는 날에 행해진다....
.출처:인도의 주요 종교 축제(인도 개황, 2010.6, 외교부)
* 필자 주 13-4). 神的인 五帝시대이후 殷周시대와 春秋戰國시대를 거치며 더욱 체계화되고 漢나라때는 諸子百家(유교나 도교,음양가,법가등)중 중국의 國敎로 채택되어, 始原儒敎부터 시작해서 수천년동안 하늘天,日月,山川의 神, 祖上神,先聖(聖人 임금)을 모셔온 유교! 다른 4大문명처럼 多神敎 종교였는데, 중국전통이 워낙 강력해 부분적으로만 외래문명을 소화하고 始原儒敎의 多神敎(宇宙의 본체이신 太極과 연계된 인간창조주 하늘天을 최고신으로 하며 하위에 山川의 神, 祖上神등 여러 神이 있음)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선발 종교 유교이며, 4대문명의 多神敎에 이어 형성된 唯一神교는 후발로 형성된 사상임. 여하튼 종교적 본질에서 벗어나 漢나라나 그 이후에 생겼다는 등불달기등의 풍속으로 타 외래종교가 독자적으로 세를 형성할 수 있는것은 아님. 유교를 國敎로 하던 漢나라 명제당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인더스문명에서 형성된 주변국들의 문화.정치.종교.언어.군사력등에 서로 영향받으며 인더스문명에서 유래된 브라만교식(나중에는 힌두교로 됨).불교식으로 등불을 달았다고 하는 전설도 있지만, 불이나 폭죽.연기.등불같은 文物은 불교의 성립이전 황하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문명,인더스문명에서 형성되었던 사례가 있어서 등불달기 전설 하나만 가지고 불교관련 등불전설을 사실로 인정해 주기는 아주 어려움. 중국은 고유신앙인 天숭배(天帝,上帝등 의인화 된 天도 天人合一說로 보면 초월적 天의 일종이심)와 관련되어 神鳥를 죽인후 화를 피하려던 "원소절의 전설"이 전설중에서는 가장 중국적이며 天帝(上帝,天)를 숭배해오던 중국 유교전통에 맞는 유교적 전설이라 판단됨.
* 필자 주 13-5). 불과 관련된 중세 철학적.자연과학적 陰陽 五行說. 필자가 보기에는 기존의 유교 경전 위주 신앙체계와 약간 다르게 宋나라때 철학적.과학적으로 해석을 붙여 추가적으로 보완.형성된 이론으로 판단됨. 필자가 파악한 이 이론의 특징은 황하문명 유교의 오랜 숭배대상이신 초월적 하느님(天)과 종교적인 분리시 우주론.철학적.과학적인 해석이 가능한 이론이 될 수도 있는 이론임. 대략적으로 宇宙의 본체인 太極이 먼저고, 그 다음 陰陽(햇볕 기준)이 구분되고 陰陽에서 五行이 생기고, 陰陽五行이 만물을 만들어낸다고 파악하는 철학.과학론의 일종으로 보여짐. 철학.宇宙論.자연과학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다소 철학적인 이 후발이론에 치중하면 초월적 존재이시며 유교경전의 오랜 숭배대상이신 하느님(하늘天, 인간 창조주 天)의 일부분인 天空을 天으로 파악할수도 있으므로 상당히 주의해야 할것임.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의 설명대로 "의미상으로는 선진유학의 천(天) 개념과 연관성을 가진다"는 태극에 대한 설명을 염두에 두고 기존의 신앙체제를 이해하면 적절하다고 할 수 있음
아래 설명중 중국과학에서 불(火)은 五行의 하나로 오원소라고 할 수 있다 함.
...음과 양은 처음에는 언덕의 양지쪽과 음지쪽을 가리킨다는 말에서 나왔으며, 기원전 1세기 중반에 짝진 관계를 설명하기위한 이론적 장치로 만들어 졌다. 오행(五行, wu xing)은 금속(金), 나무(木), 물(水), 불(火), 흙(土)으로 구성이 된 것으로 오원소라고 할 있고, 오원소로 모든 사물관계분석을 하였으며, 물질의 기질(基質)로서도 대단히 강조하였다. 음양오행변화는 기원전 3세기의 오경의 하나인 서경(書經)에 언급되어있고, 기호적 이용이 기술되었다. 육경(六經, liu` ging)에서는 수비학적인 분류의 기준이 나와 있고, 팔괘(八卦, bà guà)는 점을 보는데 이용되었다....
.출처: 중국과학[Chinese science, 中國科學] (과학사사전, 2011.2.1, 이호중)
* 필자 주 13-5-a). 태극(太極)에 대한 설명.
≪주역≫ 계사(繫辭)의 “역(易)에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 : 음양)를 낳는다.”고 한 데서 유래했지만, 의미상으로는 선진유학의 천(天) 개념과 연관성을 가진다.
역의 우주관은 역에 태극이 있고 여기서 음양→4상(四象)→8괘(八卦)로 전개되는데...
진나라 이전의 시기
중국에서는 이 시기를 ‘선진 시기’(先秦時期)라고도 한다. 하(夏) (기원전 21세기 - 기원전 17세기)의 경우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으나, 대체로 실존했던 국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를 무너뜨리고 세운 상(商)은 은허로 수도를 옮긴 이후에 은(殷)이라고도 부르며, 한때 신화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은허의 유적 발굴 이후 실존했던 국가로 인정되었다....
우주의 본체(本體). 천지(天地)가 아직 열리지 않고 음양(陰陽)의 2기(二氣)가 나누어져 있지 않을 때 단 하나의 존재. 『역』(易)속에서 '태극→양의→사상→팔괘'(太極→兩儀→四象→八卦)라는 구조를 갖고 등장한 것이 최초이다. 송(宋)대의 주염계(周濂溪)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는 '태극→음양→오행→만물'(太極→陰陽→五行→萬物)이 되어 자연철학의 체계로 정리된 구조가 되었다....
- 출처: 태극[太極]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임석진 외
* 필자 주 13-5-d). 성리학의 태극설.
성리학의 태극설
태극이라는 말은 성리학 이전에도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데, 그것에 의하면 태극을 만물의 근원, 우주의 본체로 보고 “태극은 양의(兩儀:음양)를 낳고, 양의는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은 팔괘(八卦)를 낳고 팔괘에서 만물이 생긴다”고 하였다. 이 우주관을 계승하고 여기에 오행설(五行說)을 가하여 새로운 우주관을 수립한 것이 북송의 유학자 주돈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이다. 《태극도설》은 만물 생성의 과정을 ‘태극―음양―오행―만물’로 보고 또 태극의 본체를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란 말로 표현하였다. 그 본체는 무성무취(無聲無臭)한 것이므로 이를 무극이라 하는 동시에 우주 만물이 이에 조화(造化)하는 근원이므로 태극이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주자는 이것을 해석하여 태극 외에 무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여...
여기서 주자는 천지도 하나의 태극이요 만물 하나하나가 모두 태극이라 하였고, 이 태극에서 음양으로의 이행(移行)은 태극의 동정(動靜)에 의하는 것이며 동정은 곧 음양의 두 기운을 내포하고 있어, 만물의 근원적인 생성(生成)이 전개된다고 하였다.
. 출처: 성리학의 태극설(두산백과)
* 필자 주 13-5-e). 필자는 북송 주돈이의 태극도설을 중세시대 새로 생겨난 자연과학적.철학적 사유체계로 인정하지만, 주자가 "천지도 하나의 태극이요 만물 하나하나가 모두 태극이라 하였고"란 해석에서 보여지듯이 유교의 오랜 숭배대상인 天[인간창조주 天의 모습에, 유교 경전 곳곳에서 보여지는 제사.숭배대상인 초월적.自然天 성격의 天]과 太極은 분리대상이 아니라 연관지어서 이해해야 할 초월적 존재(인간 창조주시며 제사.숭배대상 天, 우주의 본체 太極)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天은 인간들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던 넓고 높게 펼쳐진 自然天(그러나 인간이전의 존재)의 모습과 후세의 인간들 대부분은 肉眼으로 확인할 수 없던 形以上學的인 인간창조주 天의 모습으로 우리들은 유교 경전에서 배우고 익혀왔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天의 존재는 先賢들의 가르침에서 시작하여 후세인들은 祭祀와 교육 경험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形以上學的 창조주의 모습이십니다. 이러한 창조주의 모습을 易經의 가르침인 太極(태극은 음양-->사상-->팔괘를 낳는다는 가르침)에서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데,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던 形以上學的인 창조주의 모습중 하나이십니다. 太極은 인간창조주 天의 형이상학적인 특징처럼 당장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던 특징을 가지셨지만, 후발로 창조된 인간이 유교경전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배우고 사유하고 경험하면 形以上學的으로 깨닫게 되는 창조주의 모습이심은 분명하게 다가옵니다. 이런 형이상학적인 창조주의 모습을 가지신 天과 太極은 결국 같은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할 형이상학적 창조주의 모습이십니다.
* 필자 주 13-6). 불과 연기에 관련된 유교의 祭天儀式인 燔祭. 禮記 祭法에 나옴. 有虞氏부터 시작되는 제사로, 夏后氏, 殷人, 周人이 거론됨. 有虞氏의 有는 별 의미가 없으며, 虞는 舜(순임금)의 나라이름이라고 禮記 譯解者 權五燉 선생은 설명. [新譯 禮記/홍신문화사/권오돈 역해/2003.10.30]의 463페이지 참조.
燔柴於泰壇祭天也.
나무를 단위에 쌓고 그 위에 옥과 생을 놓고서 함께 태워 그 기로 하여금 하늘에 이르게 함은, 天神을 제사지내는 법이다. 상기 新譯 禮記의 해석임.
* 필자 주 13-6-a). 禋祀
禋祀
희생물을 태워 연기로써 드리는 제사. ≪주례≫의 정현(鄭玄)의 주(注)에 따르면, 인은 연(煙)과 같은 의미로서 제사의 대상은 호천상제(昊天上帝)•일월성신•풍사•우사 등임. 이 제사는 동지에 원구단에서 천자가 하늘에 드리는 천자의 제사임. 제사방법은 땔나무를 쌓고 그 위에 희생물을 놓은데 희생으로 이용되는 것에는 소•옥•비단 등이 포함되었음. 인사는 주나라 사람들이 냄새를 숭상하여 연기로써 하늘에 제사한 것에서 유래하여, 이후 천자의 제천의식으로 정착됨. 연기로 하늘에 제향을 드리는 이유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물질이고, 또 하늘은 위에 있으므로 연기를 통해 하늘을 감응시킨다는 의미가 있음. 주나라 이전에 은나라 사람들은 냄새를 숭상하여 냄새를 가지고 하늘에 제사하였다 함. [유사어]번제(燔祭).
. 출처: 인사[禋祀]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3.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필자 주 13-6-b). 불과 연기로 제사하는 번제형태인 위의 禋祀 설명은 殷나라나 周나라 정도로 그 시기를 한정했는데, 有虞氏,夏后氏가 언급된 禮記 祭法 문구에 우선권을 두어야 할것임. 禮記에 나오는 始原儒敎의 燔祭는 이후 조로아스터교나 유태인의 유일신교.기독교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으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燔祭가 황하문명.유교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음.
중국이나 한국에서 天子제도의 수용이후에 祭天儀式을 지낸다면 국가차원 天壇을 쌓고 제사드리는 天子의 자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여야 할것(중국 天壇이 유교 세계에서는 최상의 자격). 그러나 天子 명칭이 없는 상태에서, 殷周시대 이전과 殷周시대 殷人.周人의 후예들이 형성한 燔祭가 있다면, 天壇을 쌓지 말고, 天子의 의관을 입지말고, 그 희생물도 天子와 같은것을 쓰지 말아야 하고, 祭文도 天子의 祭文을 쓰지 말아야 할것임. 다만 有虞氏,夏后氏.殷人.周人으로서 天子 명칭이 없는 原始的 權原 있다면 그 신분에 맞게 제사지내야 할것.
* 필자 주 13-6-c). 先史時代 인류의 불의 사용. 중국 전설에서 수인씨의 불사용
상식적으로는 나무를 마찰하여 불을 얻을때 연기가 발생하지요. 불과 관련 고대의 수인씨(燧人氏)에 대한 전설이 있습니다.
수인씨[[燧人氏]
- 출생-사망
? ~ ?
- 국적
고대 중국
... 수(燧)는 불을 얻는 도구로, 수인씨가 나무를 마찰하여 불을 얻어 음식물을 요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출처: 수인씨[燧人氏] (두산백과)
* 필자 주 13-6-d). 유교의 五經 중 하나인 예기에 대한 설명.
아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의 설명을 참조하시면서 이해바람. 春秋시대 말기 사람인 공자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戰國시대이후 공자님의 가르침, 학설, 스승과 나눈 대화등을 문자화시키면서 전승된 가르침을 漢나라때 전문적으로 예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나타나면서 鄭玄의 시대에 예기로 거론한게 처음이라 함. 禮記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 전에는 공자님의 제자들이 天(太極과 연계된).日月.星辰 및 帝에 대한 교육을 시키면서 戰國시대의 五帝설,그 이후 三皇설이 형성된 것 같음.
. 예기[禮記]
오경(五經)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예경(禮經)이라 하지 않고 ≪예기≫라고 한 것은 예(禮)에 대한 기록 또는 주석(註釋)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예기≫의 성립에 대해서는 그 설이 일정하지 않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공자는 삼대(三代 : 夏·殷·周) 이래의 문물 제도와 의례(儀禮)·예절 등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하는 것을 스스로의 책무로 삼았고, 제자들을 가르침에 있어서도 예를 익히고 실천하는 데에 역점을 두었다. 공자 사후 각 국으로 흩어져 공자의 가르침을 전파한 제자들에 의해 예에 대한 기록이 쌓여 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생전의 스승에게서 들은 이야기, 학설, 스승과 나눈 대화 등을 문자로 정착시켰고,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전해 주기도 하였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제자의 제자, 또는 그 문류(門流) 후학들에 의해 기록된 예설(禮說)들이 늘어나서 한(漢)나라에 이르러서는 200여 편이나 되었다.
그리고 이 때쯤에는 전문적으로 예학(禮學)을 연구하는 학자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대덕(戴德)·대성(戴聖)은 흩어져 있는 예설들을 수집, 편찬한 사람들이다. 대덕은 자를 연군(延君)이라 하는데 대대(大戴)라 일컬어지며, 대성은 자를 차군(次君)이라 하는데 소대(小戴)라 일컬어진다. 대덕과 대성은 숙질간으로 대덕이 대성의 작은아버지가 된다.
두 사람 모두 한나라의 선제(宣帝) 때 학자인 후창(后倉)의 학통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한나라의 뛰어난 학자인 정현(鄭玄)의 ≪육예론 六藝論≫에는 “지금 세상에서 행해지고 있는 예는 대덕과 대성의 학(學)이다. 대덕은 기(記) 85편을 전하였으니 곧 대대례(大戴禮)이고, 대성은 예 49편을 전하였으니 곧 이 예기(禮記)다.”라 하여, 예기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대덕의 85편은 대대례기, 대성의 49편은 소대례기로 일컬어졌다. 정현이라는 큰 학자가 나와 ≪주례 周禮≫·≪의례 儀禮≫와 함께 소대례기에 주석을 붙여 삼례(三禮)라 칭하게 된 후 소대례기가 ≪예기≫로 행세하게 된 것이다.
* 필자 주 13-6-e). 수인씨나 복희씨 및 기타 여러 인물관련, 三皇이론 형성이전에 이미 五帝설이 형성되었고 五帝는 유교 경전 禮記에 나오는 月令부분으로 형성된 학설입니다(물론 예기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전에는 공자님의 제자들이 여러가지 문서로 전승시켰겠지요). 공자님의 자료 전승과 가르침이후 후세의 문필가들이 五帝와 삼황설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모두 殷周시대이후의 春秋戰國시대이후에 비롯된 일입니다. 유교 경전이 五帝나 三皇이라 언급하지 않는한 오제와 삼황관련 여러가지 학설과 가설, 전설, 민화등은 어디까지나 경전말씀은 아닐것입니다. 五帝나 三皇에 대한 神的인 능력과 형상묘사등도 유교 경전과 관계없는 한 전설.가설.민화수준으로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나 유교의 先賢들이 나중에 해석해놓은 여러 이론은 後學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함은 맞습니다. 五帝.三皇관련 내용은 중국에서 출판된 유교 경전과 서적을 참고로 하여야 국내의 시각과 대조하면서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禮記 月令부분에 나오는 五帝(후세의 가설)는 사마천이 믿을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다시 정리한 五帝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禮記 月令으로 추정할 수 있는 五帝는 太皋, 炎帝, 黃帝, 少皋, 顓頊입니다. 五帝.三皇(삼황 오제)에 대한 견해는 견해들이 너무 다양하여 백과사전이나 사전등도 제 각각 다르고, 확정된 이론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도 아직 없는 상태입니다.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五帝와 三皇도 견해가 다른 상태이므로 특별히 확정된 이론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접근하면 좋겠습니다. 아래에 소개한 三皇五帝도 확정된 이론은 아니며, 다른 사전이나 서적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소개하기로 하면 제 각각 다른 五帝 三皇說(三皇 五帝說)이라 혼란스러울 지경이기 때문에 혼란스럽게 제기된 여러가지 假說로 이해해두시는편이 가장 적당합니다.
삼황오제
[ 三皇五帝 ]중국 고대 전설상의 8명의 제왕의 총칭. 삼황과 오제로 나뉘어진다. 전국시대 말에 전설적인 제왕을 3명 또는 5명으로 정리하는 생각이 있었으며, 천황ㆍ지황ㆍ인황(태황이라고도 한다)의 삼황설이 나타난다. 이는 천ㆍ지ㆍ인의 삼재로서 생각한 인위적 추상적인 것이다. 한대 말이 되면 수인, 복희, 신농, 여과 등에서 3명을 뽑아서 삼황으로 하였다는 설이 있다. 『백호통(白虎通)』이라는 서적에는 수인ㆍ복희ㆍ신농으로 하고, 『춘추원명포』에서는 복의ㆍ여과ㆍ신농으로 한다. 이들 삼황은 반인반수이며 또한 여과와 같은 여신도 포함하며 의약, 어로, 조리 등의 창시자라고 하는데, 윤리적인 덕이라는 점에서는 중시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한대 전반에는 이미 오제(五帝)에 대한 생각이 나타나, 덕에 중점이 놓여졌다. 가령 『사기』에는 황제ㆍ전욱ㆍ제곡ㆍ요ㆍ순을 오제라고 하고, 인간 역사의 모두에 둔다. 이 오제는 덕의 유무에 의해서 자리가 위양되며, 그 공적도 정치적이다. 삼황을 오제보다 오래된 시대로 보고, 오제 앞에 두고 역사를 구성하게 된 것은 삼국시대(3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이야기로서 정리된 것은 오제가 빠르다. 한대 전반에 정리되어서 하ㆍ은ㆍ주 3대 앞에 두고 역사에 흡수된 것에 반해서, 삼황은 거기에서 남은 전설이 별로 인위를 가하지 않고 정리된 것이다.
앞에 든 천황ㆍ지황ㆍ인황의 삼황설은 내용도 없으며 추상적으로, 수인이 오래된 전설을 잘 남기고 있다. 이들 수인 등의 설은 정통적인 유가의 고전에는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는데, 전한 말이 되면 신비사상이 성행하여 당시 지식인들이 오래된 전설에 남아 있는 반수반인의 기괴한 신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어, 동중서 등의 역사순환론인 삼통설ㆍ삼정설에 의거해서 3명으로 정리해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오제에는 오행설이 영향을 미쳤다. 삼황오제에 대한 생각은 물론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신화자료가 적은 중국에 있어서는 귀중한 자료이다.
* 필자 주 13-6-g).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불사용: 조로아스터교의 불사용 사례 참작할 것
* 필자 주 13-6-h). 인더스 문명의 불사용
....인더스는 메소포타미아의 말린 벽돌과는 달리 전 지역에서 불에 구운 벽돌을 사용했다
.출처: 인더스문명[Indus civilization] (고고학사전, 2001.12, 국립문화재연구소)
* 필자 주 13-6-i). 인류의 역사와 관련, 세계 4대 文明이나 에게문명만큼 학설로 확실하게 정립된 이론도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世界史的 문명형성에 대응하여 새롭게 일어난 학설도 있습니다. 先史時代에 일어난 추상적인 일을 추정하면서, 進化論을 차용하여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기타 인간의 진화론을 주장하는 새로운 학설도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先史時代의 알 수 없는 일을 추정한 이론으로 끝나야 할 것입니다. 인류는 이 진화론 이전에 너무 오랫동안 여러가지 문헌에 의하여 하늘天(하느님)의 인간창조(유교), 하느님의 인간창조(기독교)를 定論으로 교육시키고, 經典에 수록하여 제사(예배)하고, 교육시켜왔기 때문에,인간관련 여러가지 진화론적 假說은 수용해 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先史時代의 일을 假說로 추정하여 학설로 계승시키는 행위보다는 유교 경전이나 기독교 경전, 그리스.로마신화, 브라만교 경전(힌두교 경전)등을 기초로 창조주와 인간 및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를 가르쳐온 전통이 오히려 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것 같습니다. 인간은 形以上學이 있기 때문에 形以上學이란 합리성으로 초월적 神의 존재를 인지하고 제사하고(경배하고) 교육시켜왔습니다.
* 필자 주 13-7). 폭죽에 대한 중국 자료와 전설. 세계의 4대 발명품인 화약은 이렇게 폭죽에서 비롯된 듯 합니다.
폭죽[鞭饱]
...본래 폭죽은 말 그대로 대나무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종름(宗懍)이 쓴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따르면, 정월 1일 마당에서 대나무를 터뜨려 曝竹 산조(山噪)와 악귀를 쫓았다고 한다. 산조는 깊은 산 속에 사는 뿔이 넷 달린 괴수로서, 매번 춘절이면 나타나서 가축과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산조가 밝은 빛과 폭발음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안 사람들은, 대나무를 태워 빛과 폭발 소리를 내어 산조의 침입을 예방 하였다. 이후 춘절전야가 되면 폭죽을 터뜨리는 풍속이 생겨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폭죽은 당송대(唐宋代)를 거치면서 대나무통이나 종이통에 화약을 말아 넣고 터뜨리는 모양으로 변하였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각양각색의 폭죽으로 발전하였다. 한편 폭죽은 축하 분위기를 고취시킨다는 긍정적인 기능 이외에 환경 오염과 인명 피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 .출처: 폭죽[鞭饱] (중국, 중국인 그리고 중국문화, 2011.3.3, 다락원)/공상철
* 필자 주 13-8). 등불. 중국의 경우 촉대로 살펴봄.
촉대[燭台]
1. 옛날 중국에서는 등(鐙, 현재는 燈)이라고 썼다. 전국~한시대의 청동제 유품이 있다. 촛불용과 등유용의 두가지로 대별되고 다같이 작은 받침 아래 지주가 있다...
2. 서양에 있어서 등유용 조명기구의 역사는 오래되어, 신석기시대에는 돌이나 테라코타로 만든 접시모양의 램프가 각지에서 만들어졌다. 그리스 · 로마 시대에는 기름불을 밝히는 등잔이 실내장식품의 성격을 띠었으며, 청동제 칸델라브룸 등 예술적으로 뛰어난 것이 많은데 폼페이에서 출토된 것 중에 좋은 예가 있다. 중세 이후, 양초의 보급에 따라 양초를 세우고, 녹은 초를 받는 부분과 그것을 지탱하는 대, 또는 브래킷 (bracket[영])으로 된 여러가지 촉대의 기본형이 이루어졌다.
* 필자 주 13-9). 유럽쪽은 에게문명이 있습니다. 황하문명 中國에 殷周같은 체계적이고 강력한 고대국가가 있었다면, 서양은 로마제국이라는 강력한 국가가 있어서, 나일문명의 이집트지역,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영향받았을 서아시아 일부를 통치하며 지배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 . 출처: 촉대[燭台]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 필자 주 13-10). 다른문명도 있겠지만, 불이나 연기는 황하문명 중국의 역사와 전설,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물이며 중국적인 것이며, 폭죽도 그렇습니다. 燈의 경우 불을 바탕으로 戰國시대~漢시대의 청동제 유품이 있는걸로 보아서 後漢 明帝(유교를 國敎로 하던 漢 무제 이후, 후한 명제는 공자님의 옛 집까지 찾아가 공자님제사를 치르던 왕인데, 공자님 제사는 歷史입니다. 주변문물과 교류하던 漢나라 당시 불교를 믿었다는 전설도 있지만, 관심이 없었다는 의견이 있는데 전설은 전설로 끝나야 하지, 역사가 되어서는 않됩니다)시대 이전에 이미 戰國時代부터 등이 있었다고 역사는 밝히고 있습니다. 後漢 明帝시대 관련지어 등불전설하나 때문에 元宵節을 불교와 연관시키는것은 수긍하기 어렵고, 오히려 공자님의 옛 집까지 찾아가서 제사드리던 역사가 正史로서의 효력을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명제가 나중에 불교를 믿었다는 전설도 있지만, 전설일뿐 신빙성이 없습니다.
* 필자 주 13-11). 文廟제사는 釋奠이라고도 하는데 文宣王(先聖으로 추존되신 공자님에 대한 또다른 王 호칭. 文宣王 추증이전에 공자님은 先師의 위치에 계셨고 先聖은 그 이전의 聖人 임금들인 五帝나 요.순.우.탕.문.무.주공같은 聖人 임금일수도 있음. 周公만 공자님 이전의 先聖으로 볼수도 있음)이신 공자님과 四聖등에 대한 제사입니다. 上帝(神的 특징)나 聖人임금의 대명사인 요.순(약간 神的 특징)임금 및 우.탕.문.무.주공 같은 聖人임금들이 공자님 이전의 聖人 임금들이라 할 수 있으며, 어떤 임금은 神的 특징을 가지셨습니다. 교육적인 先聖이 아니라도 聖人 임금들의 선발자이시고 추앙되는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공자님은 이전의 초월적 존재이신 太極(宇宙의 본체)의 易經(문왕.무왕.공자님이 중요시하심)및 다른 경전과, 天(太極과 연계됨),上帝, 殷.周시대의 제사와 가르침을 전승시켜 주신 분이신데, 본인이 神的인 분이 아니며 후학들을 교육시키셔서 이 점 때문에,현대에 들어 세계의 4대 聖人으로 거론되기 시작하신 분이십니다. 이전에는 他 종교에도 이런 세계사 개념이 없었습니다. 현대에 들어 철학자인 야스퍼스가 일본의 사상도 참작하여 철학적인 4대 聖人을 언급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세계사와 종교적으로 보면 부처는 인더스문명의 브라만교에 대항해 일어난 후발 사상가로 창조주를 밑에서 가르치는 無神論的인 철학자.사상가에 가깝습니다. 부처의 창조주에 대한 도전사상은 잘 모르던 시절에는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전에 철학적.사상적 聖人으로 거론되기 시작했어도 초월적 절대자인 하느님(하늘天).神을 우선시하는 神을 숭배하는 종교적 입장으로 보면 無神論的 사상가라고 필자는 판단합니다.
* 필자 주 13-12). 그 때 하늘의 범천(梵天)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겠다는 생각을 알고,
. 출처: http://www.beophwa.com/bonmun/bonmun-002-(1).htm
* 필자 주 13-12-a). 하늘의 제석, 도리천왕이 부처님께 귀의하고 나귀 몸을 벗다...
. 출처
* 필자 주 13-12-b). 제석천이 부처 공양
.출처
* 필자 주 13-12-c). ...'삼계(三界) 가운데 인간의 고액(苦厄)을 구제하는 이는 오직 부처님만이 계실 뿐이다.'
제석천은 부처님께서 계신 처소로 갔다. 그 때 부처님께서도 좌선을 하면서 보제(普濟)삼매에 들어 있었다. 제석천은 예를 드리고는 땅에 부복해서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법·성중(聖衆)의 세 가지에 귀의하였는데,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그의 목숨이 홀연히 떠나면서 문득 도예공의 집에 이르러 당나귀 어미의 뱃속에 들어가 새끼가 되었다....
http://www.dochang.pe.kr/ymain/board.php?board=etc31&command=body&no=51
* 필자 주 13-13). 先聖에 대한 개념 및 출처.
선성[先聖]
①옛 성인(聖人). ②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아들인 주공(周公)을 일컫는 말. ③당(唐) 나라 태종 이후의 공자(孔子)를 일컫는 말.
.출처: 선성[先聖]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3.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필자 주 13-14). 야스퍼스의 세계 4대 성인 견해. 부처가 무신론적으로 창조주를 밑에서 가르친다는 내용을 서강대 종교학과 김승혜 교수(수녀이기도 함)가 발견하기 전에 거론된 철학자 야스퍼스의 4대 성인 이론임. 종교학측면과 철학적 측면은 다름
. 출처: http://blog.daum.net/macmaca/657
(필자가 써 놓은 글임)
* 필자 주 13-14-a). 세계 4대 성인의 이론 형성 제창자가 일본 이노우에 엔료라는 불교사상가의 견해라는 글. 엔하위키 미러에 나옴.
....4대 성인이라는 말의 기원에 대해서 몇가지 설이 있는데 일본의 이노우에 엔료(1858~1919)라는 불교사상가가 최초로 예수,붓다,공자,소크라테스를 가리켜 4대 성인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에 엔료가 뽑은 4대 성인에는 예수는 없고 대신 칸트가 있었다는 말도 있다. 이후 와츠지 테츠로(1889~1960)라는 윤리사상가에 의해 칸트가 예수로 교체되어 현재의 4대 성인으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한편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쓴 책 '위대한 사상가들Die Groben Philosophen'에 소개된 4명의 사상가가 바로 붓다,예수,공자,소크라테스라서 이 쪽이 기원이라는 말도 있다.....
. 출처: http://mirror.enha.kr/wiki/4%EB%8C%80%20%EC%84%B1%EC%9D%B8
* 출처 13-14-b). 일본의 불교사상가 이노우에 엔료(1858∼1919)는 그의 저서를 통해 예수·석가·공자·소크라테스를 일컬어 세계4대성인이라 칭했다. 하지만 그와 같이했던 일부 사상가들에 의하면 본래 엔료가 주장했던 4대 성인은 공자·석가·소크라테스·칸트였다고 한다. 예수가 빠진 것이다....
. 출처: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600337
* 필자 주 13-15). 시경.서경.역경 및 예기.춘추등에는 공자님 이전의 始原 儒敎와 공자님의 사상(편집)이 같이 기록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필자 주 13-16). 후한(後漢)의 명제(明帝:재위 57∼75)는 공자의 옛 집까지 가서 공자와 72제자를 제사한 기록이 있으며, 당(唐)나라에서는 628년 공자를 선성(先聖), 안회(顔回)를 선사(先師)라 해서 제사를 지냈다. 739년에는 공자에게 문선왕(文宣王)의 시호가 추증되었고, 명(明)나라 초기에는 대학에 묘(廟)를 설치하고 대성전(大成殿)이라 하였다.
* 필자 주 13-16-a). 위 부분 後漢 明帝의 공자님 제사는 歷史입니다.
* 필자 주 13-16-b). 두산백과에 실린 後漢 明帝의 기록입니다. 춘추.상서[* 필자 주 13-16-c). 尙書는 유교 경전인 書經의 이전 명칭입니다.두산백과에 의하면 한대(漢代)에는 《상서(尙書)》라 하였으며, 송대(宋代)에 와서 《서경(書經)》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에 통달하고 유학자를 고관에 임명하여 禮敎主義에 힘썼다고 나옵니다. "67년 꿈을 꾸고 불교에 귀의(歸依)하고, 서역에서 승려를 불러 뤄양[洛陽]에 사원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고 하는데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일뿐입니다. 여러 文明이 교차하던 대제국 漢나라시대의 일.
. 두산백과 기록
- 출생-사망
28 ~ 75
- 국적/왕조
중국 후한
- 재위기간
57년~75년
- 본명
유장(劉莊)
- 활동분야
정치
이름 유장(劉莊). 광무제(光武帝) ·음황후(陰皇后)의 넷째아들. 환영(桓榮)에게 사사(師事)하여 《춘추(春秋)》 《상서(尙書)》에 통달하였다. 즉위 뒤 유학자를 고관에 임명하여 예교주의(禮敎主義)에 힘쓰고 빈민구제, 농업진흥, 조부(租賦) ·형여자(刑餘者)의 감면에 힘쓰는 등 내정충실을 꾀하였다.
또 소당강(燒當羌)을 토벌하고 북흉노를 격퇴하는 등 외정에도 관심이 컸다. 반초(班超)에게 서역제국을 귀순시켜, 서역도호(西域都護) ·무기교위(戊己校尉)를 부활시켰다. 67년 꿈을 꾸고 불교에 귀의(歸依)하고, 서역에서 승려를 불러 뤄양[洛陽]에 사원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e). 시사 상식사전의 원소절 설명.
원소절
- 중화권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날을 '등불의 날' 혹은 '원소절(元宵節)'이라고 부른다.
중국, 대만, 홍콩 등 중화권에서는 불꽃놀이나 등불놀이와 함께 팥이나 깨같은 소를넣은 둥글고 작은 새알 같은 음식을 먹는 풍습이 보편화돼 있으며 춘절(구정) 직후의 최대 명절이다. '등불의 날' 행사는 통상 정월 대보름부터 며칠간씩 지속된다.
정월대보름인 음력 1월 15일로 보름달을 감상하고 등불놀이를 하며, 원소(元宵) 또는 탕원(汤圆)이라 불리는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다.
. 출처: 시사 상식사전(박문각)
. 중국 시사 문화사전, 이현국, 2008.2.20, 도서출판 인포차이나.
f). 한국 국가기록원의 대보름 설명
정월 대보름은 가장 큰 보름이라는 뜻으로 음력 정월 보름인 1월 15일을 말한다.
대보름날은 달 숭배와 관련된 것으로, 이 날에는 개인과 집단을 위한 기복 의식이 치러졌다. 개인적인 기복 행사로는 부럼깨기, 더위팔기, 귀밝이술마시기, 시절음식인 복쌈이나 묵은 나물먹기와 달떡 먹기 등이 있다. 줄다리기·고싸움·돌싸움·차전놀이·동제(洞祭) 등은 농사의 풍년을 비는 주술적인 행위로 집단 기복 의식이었다.
예전 농경사회에서는 설날부터 정월대보름까지 보름동안 동네 웃어른을 찾아뵙고 세배 드리며 한해 농사를 준비하는 기간으로 보냈다. 설날은 개인적이며 가족 중심의 피붙이 명절임에 반해 대보름은 집단적이고 개방적인 마을공동체 명절이었다.
줄다리기, 차전놀이, 고싸움, 쥐불놀이 등의 절기놀이는 실생활에서 거의 사라졌으며, 문화예술축제 및 경연대회에서만 행해지고 있다. 정월 대보름에 행하는 의식 중에는 오곡밥, 약밥, 부럼 등 절기 음식만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표사진보기
기록물 철 제목 | 제1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차전놀이(CET00519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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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 건 제목 | 제1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차전놀이 3(1975) |
g).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설명. 이 내용 말고 다른 내용관련, 어떤 부분은 필자와 맞고 어떤 부분은 맞지 않기도 하지만 대보름을 설명한 아래 사항은 도교나 불교로 덧칠하지 않아 인용함.
한국의 대표적인 세시명절의 하나.
상원(上元)이라고도 한다. 음력 1월 15일은 대보름, 음력 1월 14일은 작은 보름으로 불린다. 농사력(農事曆)으로 볼 때 이 시기는 대보름에 이르기까지 걸립(乞粒)을 다니면서 마을 전체가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이다가 농사철로 접어드는 때이며, 마을공동의 신격(神格)에 대한 대동의례·대동회의·대동놀이 등이 집중된 때이기도 하다.
작은 보름에는 수숫대의 껍질과 속대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잘라서 물감으로 채색한 뒤 벼·보리·밀·옥수수·콩·목화 등의 이삭 모양을 만들어 짚단에 꽂아 긴 장대 끝에 묶어서 집 옆에 세우거나 마구간 앞 거름더미에 꽂아놓는다. 이것은 낟가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해 오곡이 낟가리처럼 풍성하게 여물어줄 것을 바라면서 즐기는 행사였다. 이 행사는 그 유래가 매우 오래 되었으며 내농작(內農作)이라는 궁중의식으로 채용되기까지 했다. 음력 1월 15일 대보름에는 집집마다 약밥을 만들어 먹었으며 저녁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달맞이를 했다. 이날 밤 들판에 나가서 그해의 새싹이 잘 자라고 전답의 해충이 소멸되도록 쥐불을 놓았다. 아이들은 연띄우기·바람개비·꼬꼬대·실싸움·돈치기 등을 즐겼으며, 어른들은 다리밟기·편싸움·횃불싸움·줄다리기·동채싸움·놋다리밟기 등을 했다. 이와 같이 대보름날 밤에는 온 마을이, 때로는 마을과 마을이 대결하는 경기를 조직하여 집단적으로 즐겼다.
통명농요(通明農謠)가 전해지는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통명동 골마을의 1980년대 정월 대보름 행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보리기풍[麥祈風] :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보리 풍년을 위한 점치기이다. 각 가정마다 수수깡을 잘라서 보리 모양을 만든 뒤 이것을 거름 속에 꽂아두었다가 대보름 아침에 거두어 불사르며 거기서 나온 재를 모아둔다. 이 재를 봄보리 갈 때 뿌리면 보리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
② 보름밤 지키기:정월 열나흗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 하여 잠을 자지 않는다. 자는 아이가 있으면 눈썹에 쌀가루나 밀가루를 발라놓는다.
③ 찰밥과 묵은 나물:대보름날 새벽에 찰밥을 먹는다. 찰밥은 멥쌀·찹쌀·조·수수·보리 등 여러 가지 곡물을 넣어 지은 오곡밥인데, 찰밥에는 고사리·시래기·호박고지 등 묵은 나물과 콩나물 등의 나물이 곁들여진다. 대보름날 오곡밥을 지으면 먹기 전에 나물과 함께 성주·조왕·삼신·용단지 등 집의 주요 가신(家神)에게 먼저 떠올린다. 찰밥을 많이 먹을수록 좋다고 여겨 대보름날 '나무 아홉 짐과 찰밥 아홉 그릇 먹는다'는 말이 있다. 특히 자기집 찰밥뿐만 아니라 여러 집의 찰밥을 먹는 것이 좋다.
④ 부럼:대보름날 저녁에 부럼을 깬다. 밤과 같은 견과류를 딱 소리가 크게 나도록 깨문다. 부럼을 깨면 1년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고 치아가 튼튼해져서 건강한 한 해를 보낼 수 있다고 여겼다.
⑤ 귀밝이술:새벽에 찰밥을 먹은 뒤 맑은 술을 마신다. 아이들에게도 조금씩 마시게 하는데 이렇게 하면 귀가 밝아지고 눈이 잘 보인다고 믿는다.
⑥ 새쫓기와 모기날리기:농사철이 되면 참새 때문에 피해가 많으므로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새를 막기 위한 예방을 한다. 아이들이 논이나 들에 나가 "후여 후여" 하면서 새 쫓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집의 마당이나 논·들에 서서 모기 날리는 시늉도 한다.
⑦ 소밥주기[農占]:대보름날 아침에 찰밥과 나물을 키에 담아가지고 외양간에 가서 소에게 준다. 이때 소가 밥과 나물 중 어느 것을 먼저 먹는가에 따라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⑧ 달맞이:대보름날 저녁에 달맞이를 하기 위해 초저녁 달이 뜨기 전에 산이나 동산 등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이때 꽹과리·징·북 등 갖가지 악기를 동반한 농악패가 함께 올라간다. 보름달이 떠오르는 순간 농악대 중 상쇠가 악기를 울리면 달맞이하러 나온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숙이고 마음 속으로 소망을 빈다.
⑨ 달점[月占]:보름날 저녁에 떠오르는 달의 빛깔을 보고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달의 빛깔이 붉으면 가뭄으로 인해 흉년이 들고, 달이 허옇게 비추면 비가 많이 내려 풍년이 든다고 한다. 이밖에 달이 뜨는 위치에 따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
⑩ 불놀이:달맞이 하러 동산에 올라갔다가 불놀이를 한다. 깡통 속에 솔방울이나 관솔을 넣어 불을 지핀 뒤 깡통을 돌리면 불꽃이 원을 그리는 듯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⑪ 동제(洞祭)`: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제를 올린 후 크게 굿을 한다. 정월 대보름 밤이면 마을의 수호신인 골매기에도 제를 지낸다. 제를 지내기 전 골매기돌에 왼새끼 금줄을 치고 금줄 사이사이에 백지를 드문드문 끼워놓는다. 정월 대보름 낮에는 골매기 주변에서 농악을 울리며 한바탕 논다.
⑫ 귀신날:정월 열엿새를 귀신 달기날 또는 귀신날이라 한다. 이를 막기 위해 예방주술을 행한다.→ 명절
* 필자 주 14). 설날.대보름의 유래를, 고려 후반기 중 일연이 삼국사기(正史)를 모방.변작하여 지은 삼국유사(불교시각 野史)의 사금갑설화에서 찾는것은 아주 잘못된 견해들임.
. 사금갑설화 대체적 내용.
소지왕 10년(488) 정월 보름에 왕이 천천정(天泉亭)으로 행차하였다가 쥐가 사람의 말로 까마귀를 따라가라 하여, 기사(騎士)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하였다. 기사는 도중에서 돼지 싸움을 구경하다가 까마귀의 행방을 놓쳐 버렸다... 이런 설화임.
그러나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된 시기는 528년(법흥왕 15)으로 이 이전(488)에 일어난 유교나 도교, 음양가, 법가등 제자백가에서 비롯된 토착 신앙에서 생긴 설화를 고려 후기 중 일연이 정사인 삼국사기를 모방하면서 불교적 시각으로 변작한 내용일수도 있음.또는 설화 그대로를 기재하였다 하더라도,이 토착 설화를 나중에 불교인들이 중국 황하문명에서 파생된 유교 경전과 중국 역사서와 다른 견해의 후발 설화로 설날.대보름의 기원으로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에 등재하기는 무리가 따름. 신라시대는 외래신앙인 불교를 거부하며 이차돈의 죽음등이 있었음. 유교권의 큰 명절중 하나인 추석(중추절)을 보면 삼국사기에서 신라 제 3대 유리왕 때 시작되었다고 하니까, 추석등 유교명절의 정착은 한나라의 세계종교 유교가 동아시아에 널리퍼져서 추석도 유교 명절로 정착된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제천의식이나 일월신 숭배, 조상제사, 선성제사는 유교의 의식이지 불교와는 관계가 없는점도 참작하면 되겠습니다. 불교는 부처등과 그 주변인들을 섬기는 인도발 외래종교입니다. 한국에서의 설날 유래는 부여나 백제의 사례가 설날에 합당할것입니다. 신라는 隋書 권81 列傳 46에서 정월 元旦에 서로 하례하고 日神과 月神에게 제를 올리던 사례가 있습니다. 舊 唐書 권 199 열전 149에 신라는 元日을 중하게 여겨 서로 경하하고 연회를 베풀던 사례 및 日月神에 절하던 사례가 있습니다. 이런 역사에서 설날은 쉽게 일치시킬수 있고, 대보름도 비교적 정월의 日月神 숭배등에서 연관시킬 수 있습니다. 한국 正史에 나오지 않으면 중국의 원소절.상원절에서 대보름의 유래를 찾아서 한국에 대입시킬수 있을 것입니다. 정확히 용어가 일치하지 않아도 전후상황을 연관시켜 설명하면서 확신하지 않는 용어를 선택할수도 있겠습니다(이미 확신된 학술서를 인용하든지). 한국의 역사서들이 많이 소실되어 세계사적 개념으로 중국의 역사서를 참조하면 무난합니다(황하문명 중국 유교의 제천의식, 일월신 숭배, 조상제사). 그런데, 나중에 정사인 삼국사기를 모방하여 고려시대 후반에 부처와 그 주변인을 섬기는 불교 승려 일연이 쓴 야사인 삼국유사로 근거를 삼기는 힘들것입니다. 야사는 야사로 끝나야 합니다.
설날관련 불교인들의 시각은 중 일연의 삼국유사 설화에서 차용한 잘못된 견해들임. 이 오인은 아마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에 성균관대 출신및 .유교인 뿐 아니라, 일본 강점기 일본 민중불교인들이 개입한 불교학교 후신 동국대 출신이나, 불교적 일본 신도.민중불교 영향받은 서울대출신, 일본 유학파들도 상당수 참여하면서 기재된 의견 같음. 正史인 三國史記나, 그 이전의 중국 역사서와 달리 고려후기 중 일연이 삼국사기를 모방하여 불교설화적 시각으로 각색한 삼국유사 설화를 대대적으로 반영한데서 나온 불교설화적 잘못된 견해로 필자는 판단함. 불교인이나 일본 유학파 및 서울대 출신들의 견해가 옳고 그르고를 따지기보다 유교 경전이나 중국.한국 史書(正史)등과 비교하며 世界史的 견지에서 대조해 보아야 함. 창조주 브라만에 대항해 새로운 사상을 정립한 부처가 창조주보다 높아 창조주를 그의 밑에서 가르친다는 불교는 부처나 관련 인물에 불공드리는게 불교며 유교전통에 뿌리를 둔 변형 중국불교는 불교가 아니라고 하는 견해도 있음. 일본 신도나 일본 민중불교는 중국 漢字, 중국이나 한국의 祭天儀式, 山川祭祀, 祖上祭祀, 공자님제사, 유교교육, 冠婚喪祭, 중국.한국의 유교풍속등을 변형한 後發 局地的 신앙으로 유교도 아니고 불교도 아닌 일본만의 독특한 신앙이라고 판단됨.
III. 결론.
여하튼 정월 대보름은 陰曆을 사용하던 황하문명 중국에서 피어난 유교문명으로, 중국을 통해 한국에 전파된 유교경전 禮記의 日月(神) 숭배의식에 해당됩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황하문명을 가졌고, 유교종주국인 중국이, 유교의 본래 성격.세계성에 가장 큰 자격과 능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유교에 대해서는 중국만한 나라가 없습니다.
* 이 글은 논문이 아닙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로 일본 강점기로 왜곡된 한국 유교문화의 전통 명절 설날.대보름등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고자 자료들을 인용하였으니, 널리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종교인구 조사를 어떻게 해도, 응답자가 자기종교를 어떻게 표기해도 한국인은 모두 유교도임.
http://blog.daum.net/macmaca/348
2. 유교의 내세관(來世觀)과 기복신앙(祈福信仰) 측면에 대한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800
3. 유교국가의 전통적 특징중 하나는 호적(戶籍)제도 계승. 한국과 중국의 호적제도에 관하여!
http://blog.daum.net/macmaca/2492
4. 세계 4대 성인(聖人), 세계 4대 종교(宗敎)
http://blog.daum.net/macmaca/2537
5. 중국 한(漢)나라시절 세계종교 유교로 성립되어 동아시아국가들에 오랜동안 이어진 삼강오륜(三綱五倫).
http://blog.daum.net/macmaca/2528
6.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