立春(양력 2018년 2월 4일, 음력 2017년 12월 19일). 입춘은 유교의 경전인 예기의 월령편에 설명되어 있습니다.대문이나 기둥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이나 건양다경(建陽多慶)등 좋은 글을 붙입니다. 종가집의 경우 입춘제(立春祭)를 하는 집도 있고, 입춘절식(立春節食)으로는 입춘일에 만들어 먹는 햇나물무침등이 있습니다.
[1]. 입춘(立春)은 양력을 받아들이기 이전 음력을 주로 써온 유교문화권 시각으로 이 날부터 봄이라고 하지만, 추위는 아직도 강합니다. 중국 역법은 전통적으로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 성격이 강한데, 이때 태양의 황경은 315°를 나타내고 있다고 합니다.
입춘이 되면 천자(天子)가 동교(東郊)에서 봄을 맞이하는 의식이 있는데, 예기에서는 "제사(祭祀)에 관해서는 교특생(郊特牲), 제법(祭法), 제의(祭義), 제통(祭統), 길례(吉禮)로는 투호(投壺), 향음주의(鄕飮酒義)이고, 길사(吉事)로는 관의(冠義), 혼의(昏義), 사의(射義), 연의(燕義), 빙의(聘義)이고"라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서술하고 있습니다. 유교는 넓게 보아 국가.학교.가정의 유교 교육과, 오랜동안 이어져 온 제도인 호적제도(한국은 주민등록법으로 교체됨).족보, 선산(先山)제도, 국가.단체.문중.가정의 제사, 명절이나 24절기를 맞아 행하는 제의나 행사등 아주 많습니다. 필자의 성인 윤씨는 5제중의 한 분이신 소호 금천의 후손으로, 유교 경전인 시경에 태사로 주나라를 지배하던 성씨인 윤씨성이며, 한국에서는 삼국시대에 태사로 보이기 시작하여, 고려시대 개국공신이 되신 윤신달(파평윤씨의 시조)공에서 비롯되어 고려.조선을 통하여 한국에서 1천년 넘게 귀족.양반 문벌을 형성해 온 성씨입니다. 한국에서는 한문성씨 사용자가 기준왕의 기씨나 기준왕에서 비롯된 서씨나 삼한시대 한씨로 판단됩니다. 이 성명과 본관을 아는것이 수천년 한국 유교에서는 족보로 연결되어 아주 중요한데, 호적.주민등록과 별도로 양반가문의 족보와 선산, 왕족.양반문중의 종친회, 관리직첩등과 연계되어야 전통적인 양반문벌로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일본강점기에도 경학원과 향교.서원등을 통하여(조선.대한제국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이 격하된 과정도 있었음) 양반문벌만은 이어져온 특성을 가졌는데, 해방이후 대한민국이 되면서 민주공화국이 되어 양반이 되는 길은 과거제가 폐지되어 성균관대를 4년동안 다니고 졸업해야 이 초보적인 양반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대 졸업생 본인의 경우에만 생원.진사 정도 또는 그 이상의 양반자격에 해당될것. 문벌로만 본다면 조선.대한제국 왕족은 현재 황사손(이 원)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조선시대 대표적인 양반가문은 전주이씨,파평윤씨.안동권씨.남양홍씨.밀양박씨.안동김씨등입니다. 성왕으로 자천하여 왕위에 오른 필자의 가문은 파평윤씨로 전북 남원부근 장수군 산서면에 토대를 둔 지방의 향반출신인데, 아버지.어머니 모두 양반가문이며, 양반족보, 선산이 있고, 조선.대한제국 시대 증조부께서 관리직첩을 하사받으신 관리 직첩도 있으며, 지방에서 인정되는 전통적인 양반가문입니다. 성왕에 자천하여 오르고 난후 근본없는 서인.쌍놈 출신들이 자기들 기준으로 필자의 가문과 가족을 매도하는 루머퍼뜨리기 작업도 하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이 때문에 정신적인 성왕으로 자처하면서도 유교의 보존과 복구를 위해 문벌을 중심으로 하여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를 주관하고 있는 황사손(이 원)의 종교적 구심점 역할과, 양반 문벌들인 전주이씨.파평윤씨.안동권씨.남양홍씨.밀양박씨.안동김씨의 종친회나 문중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막부시대 전 주민을 절에 등록시키고 불교국가화 된 일본 신도, 일본 불교, 일본 기독교[한국을 강점한 일본 강점기에도 이 일본 종교인 일본 신도.일본 불교.일본 기독교가 한국에 강제로 포교되어 지금까지 청산되지 않고 유교에 도전하고 있는데, 종교뿐만 아니라, 교육분야의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및 그 추종세력의 도전은 지속되고 있습니다]는 일본이 항복하면서 받아들인 포츠담선언등에 의해 한국영토에 종교주권이 없는채로 유교를 위험하게 하면서 각 부분에 잔존하여 유교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성씨없는 마당쇠격 불교수장 일본 천황과, 일본 불교, 그리고 마당쇠이미지의 일본 천황 밑에서 만들어진 돌쇠(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등 각종 왜놈학교)밑에서 살 수 밖에 없던 불교토대 일본 잔재 학교들과, 일본 불교, 일본기독교와 그 추종자들의 도전과 침략.반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순을 필자는 유교의 위기속에서 세계사를 통하여 수천년 황하문명.유교.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 에게문명.로마제국.교황.볼로냐.파리대학의 교과서적 정설로 극복하는 글을 써왔습니다만, 어떤분은 이 교과서 학설이 국가주권과 상충될때는 국내법을 우위에 두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맞는 의견입니다. 패전국 일본이 항복하면서 받아들인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에 의해 일본 강점기의 각종 포교종교들(일본 신도.일본 불교.일본 기독교) 주권은 한국영토에 없으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나 각종 왜놈학교 및 그 추종세력인 대중언론상의 서울대.연세대(일본 강점기 연희전문 후신 연세대).고려대(친일파 김성수가 보성전문 인수하여 고려대로 변경)의 침략.반란 카르텔은 국사 성균관 교육에 나오는 조선.대한제국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의 자격과 학벌을 극복할 수 없어왔습니다. 그리고 미군정때 조선성명복구령에 의해 모든 한국인은 유교가 국교인 조선.대한제국 성명과 본관을 의무적으로 행정관청에 등록하여 모든 한국인은 행정법상 유교도입니다. 이는 수천년 유교제도인 호적제도로 이어졌고, 호적제도는 다시 주민등록제도로 변경되었습니다. 해방후의 양반은 성균관대를 4년동안 다니고 졸업한 성균관대 출신들이 당사자 개인의 경우에 양반입니다. 얼마전 복구된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의 주관자인 황사손도 이구 공의 자격을 이어받은 공 정도의 자격에 해당됩니다.
10여년 이전부터 국사와 세계사를 국내법.국제법,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와 연계하여 필자는 한국의 Royal대로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6백년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음)와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로 글을 써왔습니다. 필자는 각종 교과서(국사,한문.윤리.세계사등)나 학교교육, 국내법(임시정부가 반영된 대한민국 헌법).국제법(일본이 항복하면서 받아들인 포츠담선언등),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법에 의해 전 국민이 행정법상 유교국인 한국인의 상태, 대통령령에 의한 한국민족문화 대백과등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방송이나 시중의 멘트, 대중언론의 보도기사들은 인정치 않겠습니다.
[2]. 조선시대 가문별 문과합격자, 왕비 배출가문 통계
조선시대 가문별 문과 합격자, 왕비 배출가문 통계 1]. 조선시대 가문별 문과 합격자 배출 통계 |
| 조회수 : 14898 등록일 : 2006-0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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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문은 대대로 정승 판서를 지낸 명문 가문이다"라고 부모가 자식들에게 자랑하는 것을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본다. 무엇을 근거로 이 같은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자식들에게 가문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려는 생각이 분명히 드러나는 말이다.
조선시대의 명문가문을 판단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이다. 정승과 판서의 배출여부, 왕비에 간택된 회수, 과거 합격자 수 등이 이러한 기준에 속한다. 이중에서도 과거 합격자 수는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과거 합격은 곧 관료로의 진출을 의미하며 국가 지도층으로 편입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 가장 많은 과거 합격자수를 기록한 가문은 어디일까?
더 말할 나위도 없이 과거 합격자에는 전주 이씨가 가장 많다. 조선왕조의 뿌리가 전주 이씨이니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전주 이씨 다음 순위를 기록하는 가문들이다. 전에는 이러한 통계를 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조선의 전 역사에 걸친 과거 합격자 기록을 연구하고 세밀히 통계를 내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컴퓨터 자료처리 기술의 발달로 이것이 가능해 지게 되었다. 이러한 것과 관련하여 한국학중앙연구원(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흥미있는 연구결과 두 가지를 내 놓았다. 조선조 문과방목과 사마방목의 합격자 통계를 전산화 한 것이다. 문과방목은 문과시험 합격자 명부이고 사마방목은 생원 진사시험 합격자 명부이다.
어쨌든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먼저 사마방목을 보면 전주이씨(2719명) 다음으로 가장 많은 합격자를 기록한 가문은 파평윤씨(934명), 안동권씨(909명), 남양홍씨(833명), 밀양박씨(755명), 안동김씨(716명) 순이다. 그리고 문과는 사마시를 치른 사람이 응시하여 그 중에서 우수한 자를 다시 걸러내는 것이므로 합격자 수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 결과를 기록한 국조문과방목을 보면 전주이씨(769명) 다음으로 파평윤씨(419명), 안동권씨(368명), 남양홍씨(326명), 안동김씨(318명) 순이다.
이것을 보면 문과합격자를 배출한 가문의 순위와 사마시 합격자 배출 가문의 순위가 거의 일치한다. 특히 안동김씨는 조선 후대로 오면서 합격자 수가 급증한다. 조선 후기에 안동김씨 가문이 세도정치를 하면서 자신의 혈족을 대거 합격시켰기 때문이다. 더욱이 흥미가 있는 것은 이 기록과 앞서 말한 왕비 배출가문 간에도 유사한 관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과거 합격 기록으로만 보면 조선의 명문 가문은 분명해진다. |
. 출처: 한국 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한국학 중앙연구원)
이 기준으로 하면 조선.대한제국 시대 주요 문벌(門閥)은 조선.대한제국의 왕가인 태조(이성계)의 전주이씨(왕족은 그 수가 적음)와 파평윤씨, 안동권씨, 남양홍씨,밀양박씨, 안동김씨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해방이후에는 조선성명 복구령(일본 강점기의 창씨개명압박에서 벗어나 남북한 모두 이런 복구조치가 있었음)에 의하여, 유교국인 조선식 성명으로 누구나 본관(本貫)과 성(姓), 이름을 정부에 등록하게 되었으므로, 한국은 행정법상 국교가 유교인 특성이 있습니다. 한국은 설날.추석 및 단오.한식과 같은 유교 전통 명절 및 많은 명절과 제사, 유교 교육기구가 있었고 지금도 교육기구나 제사기구 및 문중별.가족별 제사가 이어지는 유교가 국교였던 전통 유교국으로, 지금도 행정법이나 관습법.역사적으로는 유교국가입니다.
일본 강점기에 조선 총독부에 의하여 강제로 포교된 일본 신도, 일본 불교, 기독교(주로 개신교. 그리고 가톨릭 일부 성당)는 일본이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을 받아들여 항복하였고,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이므로, 한국에 종교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 헌법에는 국교가 없고 종교의 자유가 있으므로, 이 부분은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양반전통을 인정받으려면 과거 조상이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을 받은 직첩과, 문중에 등록된 족보, 고향 마을에서 오랫동안 인정되는 전통문벌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해방이후에는 국사 성균관 교육이 있었으므로, 성균관대에 입학하여 졸업한 학생들이, 조선시대 과거합격자와 같은 유일한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2]. 조선시대 왕비 배출 가문 통계 |
| 조회수 : 8878 등록일 : 2007-0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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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비는 총 39분입니다. 왕비 출신 가문을 보면, 정식으로 왕으로 등극하지 않고 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분들의 비를 제외하고 다음과 같습니다.
4명 : 여흥 민씨, 파평 윤씨, 청주 한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해평윤씨
태조 : 신의 왕후(안변 한씨), 신덕 왕후(곡산 강씨) 정종 : 정안 왕후(경주 김씨) 태종 : 원경 왕후(여흥 민씨) 세종 : 소헌 왕후(청송 심씨) 문종 : 현덕 왕후(안동 권씨) 단종 : 정순 왕후(여산 송씨) 세조 : 정희 왕후(파평 윤씨) 예종 : 장순 왕후(청주 한씨), 안순 왕후(청주 한씨) 성종 : 공혜 왕후(청주 한씨), 정현 왕후(파평 윤씨) 연산군 : 거창 신씨 중종 : 단경 왕후(거창 신씨), 장경 왕후(파평 윤씨), 문정 왕후(파평 윤씨) 인종 : 인성 왕후(반남 박씨) 명종 : 인순 왕후(청송 심씨) 선조 : 의인 왕후(반남 박씨), 인목 왕후(연안 김씨) 광해군 : 문화 유씨 인조 : 인열 왕후(청주 한씨), 장열 왕후(양주 조씨) 효종 : 인선 왕후(덕수 장씨) 현종 : 명성 왕후(청풍 김씨) 숙종 : 인경 왕후(광산 김씨), 인현 왕후(여흥 민씨), 인원 왕후(경주 김씨) 경종 : 단의 왕후(청송 심씨), 선의 왕후(함종 어씨) 영조 : 정성 왕후(달성 서씨), 정순 왕후(경주 김씨) 정조 : 효의 왕후(청풍 김씨) 순조 : 순원 왕후(안동 김씨) 헌종 : 효현 왕후(안동 김씨), 효정 왕후(남양 홍씨) 철종 : 철인 왕후(안동 김씨) 고종 : 명성 황후(여흥 민씨) 순종 : 순명 왕후(여흥 민씨), 순정효황후(해평윤씨) |
. 출처: 한국 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한국학 중앙연구원)
이 기준으로 보면, 조선.대한제국시대 왕비배출의 주요 가문은 왕비 4명 배출의 여흥 민씨, 파평 윤씨, 청주 한씨, 그리고 3명 배출의 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가 되겠습니다.
3]. 조선.대한제국의 지배문벌(門閥)인 전주이씨의 왕가 및 전주이씨, 파평윤씨가 일본강점기이후에 일본종교나 문화에 공략되어왔던것은 어쩔수 없는 현상이었으니, 이런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고, 일본이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을 받아들여 항복한이상, 한국의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은 성균관(교육기구측면에서는 해방이후 성균관대학으로 정통성이 승계됨)으로 복구된것이고, 유교의 국가제사는 선성(先聖)이시자 문선왕(文宣王)이신 공자님께 제사드리는 석전(釋奠)과, 이보다 늦게 복구된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여러가지 제사들[환구대제.사직대제.종묘대제]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교국의 오랜 전통인 성씨사용에 의한 부족.혈연집단 개념, 설날.추석.한식(중국은 청명절).단오와 여러가지 명절, 24절기, 문중.가족별 조상제사와, 유교 전통 교육기구[대학은 성균관, 중등학교(현재의 중.고교)는 향교.서원.사부학당 및 사숙(私塾), 초등학교는 서당]가 있었으며, 지금도 그 특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4]. 일본강점기 후유증으로 교육이나 종교적 혼란이 있던 와중에, 필자가 국사와 세계사, 한문.국민윤리.국어 고전의 삼강오륜 유교 교육이 이어지고 있는것을 발견(필자는 단지 교육적 측면에서 발견한것임)하여, 과분하게 궁 성균관대 임금(=어 서강대 임금)으로 세계적 매체들인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및 한국내 여러 블로그등을 통하여 10년이상 발표해 온것은 그대로 유효합니다. 한국은 행정법이나 관습법.역사적으로는 분명 유교국입니다. 필자는 파평윤씨로 宮 儒 윤 진한이며, 1962년생이고, 1981년에 전북 전주 신흥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1983년에 성균관대에 퇴계장학생으로 입학하였으며, 1988년에 졸업하였습니다. 대기업을 거쳐 사상가로 살아오고 있는데, 십 몇년전에 성균관대 유학대학 게시판과 성균관대 총학생회 게시판을 통하여 자칭 궁 성균관대 임금으로 입후보하여 백명 이상의 지지를 받고 궁 성균관대 임금이 되어, 궁 성균관대 임금(윤 진한), 어 서강대 임금(서진교. 필자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서강대 사학과 출신의 서강대 기록보존소 교수 서진교 교수)임을 세계적으로 알려왔습니다. 이런 와중에 스페인 국왕께서 한국을 형제국으로 느끼신다고 외교적 경로를 통해 한국정부에 전달받은 현상도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세계사와 한국사의 조합 및 국제법.국내법등을 혼합하여 세계의 주요 대학들을 규정하여왔습니다.
필자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유교의 침체기에 수천년 유교를 제도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사의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을 원용하였는데, 이는 관습법상 인정되는 역사적 제도입니다. 서유럽의 교황제도나 볼로냐.파리대학등도 관습법으로는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며 전통입니다. 유교와 중국의 대학제도, 찬란한 역사, 동아시아 유교국들의 유교를 이어가기 위하여 세계사를 반영하였으므로, 교황윤허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도 성균관대와 함께 한국의 Royal대며, 최근 십년 넘게 정신적인(법으로는 아직 아님) 궁 성균관대 임금, 어서강대 임금제도를 관습적으로 정착시켜오고 있으며, 세계와 한국의 지배자들도 이 카리스마적 현상을 인지해오고 있습니다. 궁 성균관대 임금, 어서강대 임금제도는 앞으로도 영구적이며, 법률적으로 왕정이 실현되면 궁 성균관대 임금은 성황폐하로 전 국토의 70%를, 어서강대 임금(전하 호칭)은 성황폐하 산하의 유일한 왕으로 유교를 국교로 하는 제도에서 별도의 자치왕국 수장이 되어 나머지 30% 영토를 지배하도록 필자가 제시해 둔 상태입니다. 두 임금의 자격은 새로 생길 황후나 왕비에 비해 초월적 군주의 위치며 여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력이나 통치권을 주지는 않겠습니다(수렴청정도 반대함). 성황의 황후도 어서강대 임금 전하의 지위 밑이 될것입니다. 후계자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는데, 별도의 성황 후계자 지정이 없으면 궁 성균관대 부원군 두명[성균관대 무역학과 출신 1983학번 전병희, 필자의 전주 신흥고 고등학교 1년 후배인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출신 손 재석]과 어서강대 임금(서강대 기록보존소 교수 서진교), 어서강대 부원군 두명[필자가 대리로 직장생활을 마감한 쌍용그룹 출신 서강대 경영학과 출신 신병호, 쌍용그룹 출신 서강대 신방과 출신 이중민]이 여러가지 형태로 개입.합의하여 황사손(이 원), 성균관대 총장.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성균관장의 의중을 반영하여 성대 입학후 4년 대학과정을 마치고 졸업에 합격한 성대 출신 유생을 성황후계자로 옹립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급적이면 파평윤씨 필자의 직계.방계 후손이나 전주이씨로 구 조선.대한제국 왕족.황족 후손중에서 선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황이나 어서강대 임금은 공석이 되어도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제도로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고 법으로 왕정이 실현되면 궁 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의 지침을 반영하여 별도의 법을 제정해 입헌군주국의 제도로 실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성황제도.어서강대 임금제도를 실현시키기 전에는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 성균관대의 Royal대 자격은 국내법과 국제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 교과서의 강행법 자격으로 보호받고, 서강대의 Royal대 자격은 세계사의 교황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습법 측면에서만 머물러야 합니다.
[3]. 유교 경전인 예기 월령(月令)에 나타나는 입춘(立春)
1]. 예기 월령(月令) 제 6
孟春之月(맹춘지월) 日在營室(일재영실) 昏參中(혼삼중) 旦尾中(단미중) 其日甲乙(기일갑을)
其帝大皥(기제대호) 其神句芒(기신구망) 其蟲鱗(기충린) 其音角(기음각) 律中大蔟(율중대족)
其數八(기수팔) 其味酸(기미산) 其臭羶(기취전) 其祀戶(기사호) 祭先脾(제선비)
東風解凍(동풍해동) 蟄蟲始振(칩충시진) 魚上冰(어상빙) 獺祭魚(달제어) 鴻鴈來(홍안래)
..........
是月也(시월야) 以立春(이립춘) 先立春三日(선입춘삼일) 大史謁之天子(대사알지천자)
曰某日立春(왈모일립춘) 盛德在木(성덕재목) 天子乃齊(천자내제) 立春之日(립춘지일)
天子親帥三公九卿(천자친수삼공구경) 諸侯大夫以迎春於東郊(제후대부이영춘어동교)
. 필자 주 1). 홍신문화사 간 신역(新譯) 예기(禮記)[역해자:권오돈(權五惇), 2003년 10월 30일 2판 5쇄 발행]에서 역자는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달에 입춘이 있으므로, 입춘 3일전에 太史가 천자를 뵙고 말하기를, "某日이 입춘입니다. 천지 생육의 성대한 덕이 木에 있습니다"고 하면, 천자는 곧 재계하고 있다가, 입춘에 3공.9경.제후.대부를 거느리고 東郊에서 봄을 맞이한다....
2]. 입춘인 양력 2018년 2월 4일(일)은 음력으로 2017년 12월 19일 입니다.
양력(陽歷. 사전적정의로 太陽歷으로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을 1년으로 정한 역법)으로는 아직 겨울이지만 음력(陰歷. 사전적 정의로 태음력으로 달이 지구를 한바퀴 도는 시간을 기준으로 만든 역법)을 쇠는 유교문화권에서는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4계절을 나누어서 봄에 들어서는 입춘이라고 합니다. 바깥기온보다도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4계절을 구분하여 봄에 들어선다고 하는것이기 때문에, 태양력을 기준으로 하는 사계절 분류와는 약간 달리, 실제 바깥 기온과는 약간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태음력을 많이 써왔지만, 태음태양력을 병행하고 있는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필자 주 2). 봄을 다스리는 春의 帝는 태호(太皞)인데, 여기서의 帝의 의미는 황제나 임금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유교 경전에서 쓰이는 帝로 五帝의 帝나,하늘의 아들인 天子로 인간을 다스리다가 승천하여 하늘天의 일부가 되어 하늘天(太極과 연계되는 하늘天)의 다스림 중 일부를 이양받은 天의 일부가 된 天子로 볼수 있습니다. 태고적에 天子로 살다가 초월적 하늘天과 天人合一된 上帝.하느님(太極과 연계된 하늘天에 天人合一된 하느님)의 의미로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4]. 백과사전에 나타나는 입춘(立春).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나타나는 입춘.
입춘(立春)
정의
24절기의 하나.
내용
음력 1월, 양력 2월 4일경이며, 태양의 황경이 315°에 와 있을 때이다. 봄으로 접어드는 절후로 음력으로는 섣달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하며,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들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재봉춘(再逢春)이라 한다. 정월은 새해에 첫번째 드는 달이고, 입춘은 대체로 정월에 첫번째로 드는 절기이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서, 이날 여러가지 민속적인 행사가 행해진다.
그 중 하나가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이는 일이다. 이것을 춘축(春祝)·입춘축(立春祝)이라고도 하며, 각 가정에서 대문기둥이나 대들보·천장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이는 것을 말한다.
한편, 옛날 대궐에서는 설날에 내전 기둥과 난간에다 문신들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서 좋은 것을 뽑아 써 붙였는데, 이것을 춘첩자(春帖子)라고 불렀다.
사대부집에서는 흔히 입춘첩을 새로 지어 붙이거나 옛날 사람들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쓴다. 제주도에서는 입춘일에 큰굿을 하는데, ‘입춘굿’이라고 한다. 입춘굿은 무당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수심방[首神房 : 큰무당]이 맡아서 하며, 많은 사람들이 굿을 구경하였다.
이 때에 농악대를 앞세우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걸립(乞粒)을 하고, 상주(上主)·옥황상제·토신·오방신(五方神)을 제사하는 의식이 있었다.
입춘일은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첫번째 절기이기 때문에 보리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흉풍을 가려보는 농사점을 행한다. 또,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서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한다.
. 출처: 입춘[立春]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입춘
입춘[立春]
- 요약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 음력으로 정월의 절기이고, 양력으로 2월 4일 경이다. 태양이 황경 315˚에 왔을 때를 일컬으며, 동양에서는 이 날부터 봄이라 한다. 입춘 전날을 철의 마지막이라는 '절분(節分)'이라 하며, 이날 밤을 '해넘이'라 불렀다. 따라서 입춘을 마치 연초(年初)처럼 본다.
양력 2월 4일경, 태양이 시황경 315°에 왔을 때를 입춘 입기일로 하여 이후 약 15일간이 입춘기간에 해당한다. 음력으로는 정월의 절기로, 동양에서는 이 날부터 봄이라고는 하지만 추위는 아직도 강하다.
입춘 전날이 '절분'인데, 이것은 철의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이날 밤을 '해넘이'라 부르고, 이때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 귀신을 쫓고 새해를 맞는다고 한다. 따라서 입춘을 마치 연초(年初)처럼 본다. 최근에도 행해지는 입춘의 풍습으로는 종이에 입춘을 송축하는 글을 써서 대문에 붙이는 일이다. 보통은 '입춘대길(立春大吉: 입춘에 크게 길하다)'이라고 적어 대문에 붙이며 이를 '입춘첩(立春帖)' 또는 '입춘축(立春祝)'이라고 불렀다. 옛날에는 설날이 되면 대궐에서 신하들이 연상시(延祥詩)를 지어 올렸는데 이때 잘 지어진 글을 기둥이나 난간에 붙였고, 이것을 춘첩자(春帖子)'라고 불렀다. 이것이 전래되어 양반집과 민가나 상가의 대문과 기둥에 글귀를 붙이는 풍습이 생겼다. 또한 입춘에는 한해의 액운(厄運)을 물리치고 재수(財數)를 기원하는 굿을 하기도 하는데 이를 '입춘굿'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글귀로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합니다.)',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부모는 천년을 장수하시고 자식은 만대까지 번영하라.)',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산처럼 오래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여라.)' 등이 있다.
옛날 중국에서는 입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갈라서, ① 동풍이 불어서 언땅을 녹이고, ② 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③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잡절(雜節)은 입춘날을 기준으로 하여 결정된다. 밭에 씨앗뿌리기가 시작되는 88야(夜), 태풍시기인 210일, 220일 등은 각각 입춘날로부터 88일, 210일, 220일째의 날이다.
. 출처: 입춘[立春] (두산백과)
[5]. 입춘때 붙이는 좋은 글
1].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입춘대길
[立春大吉]
한자 뜻과 음
설 립, 봄 춘, 큰 대, 길할 길.
풀이
立春(입춘)을 맞이하여 吉運(길운)을 기원하는 글. 建陽多慶(건양다경)과 짝을 이룸. 建陽多慶(건양다경: 좋은 일, 경사스런 일이 많이 생기라고 기원하는 글).
. 출처: 입춘대길[立春大吉] (한자성어•고사명언구사전, 2011. 2. 15., 이담북스)
2]. 입춘제
입춘제
[立春祭]
입춘날에 선조(先祖)에게 올리는 제사. ≪주자가례≫에 의하면 선조에게 제사할 수 있는 사람은 시조를 잇는 종자(宗子)와 고조를 잇는 종자로서, 시조를 잇는 종자는 시조 이하의 선조들에게, 고조를 잇는 종자는 고조 이하의 선조들에게 제사를 드릴 수 있음. 입춘제는 이때에 만물이 비로소 생장하기 때문에 이를 형상하여 선조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임. 제사의식은 여타의 시제와 대동소이함. [참고어]입춘하의(立春賀儀).
. 출처:입춘제 [立春祭]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3]. 입춘절식
입춘절식
[立春節食]
- 한국 고유의 절식으로, 입춘일에 만들어 먹는 햇나물무침.
- 입춘일에는 입춘대길(立春大吉) 등 좋은 뜻의 글씨를 붓으로 써서 대문에 붙이는 풍습이 있었고, 기협 6읍(畿峽六邑:경기에서 산이 많은 楊平·砥平·抱川·加平·朔寧·漣川의 여섯 고을)에서는 움파·멧갓·승검초 등 햇나물을 눈 밑에서 캐어 임금님께 진상하였으며, 궁중에서는 이것으로 겨자와 함께 무치는 생채 요리인 오신반(五辛盤)을 장만하여 수라상에 올렸다.
이것을 본보기로 민간에서는 입춘일에는 눈 밑에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 무쳐서 입춘절식으로 먹는 풍속이 생겼다.
- . 출처: 입춘절식[立春節食] (두산백과)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의 유교와 교육등을 되돌아보고, 연구.검토하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고 있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