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께 올리던 완주 곶감. 곶감은 유교 명절이나 제사때 쓰던 저장식품으로, 겨울철 건강식품중 하나.
1]. 완주 곶감 소개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소개된 완주군의 곶감생산
1). ...다른 농업지역과 마찬가지로 주요 농산물은 쌀·콩·보리 등 식량작물이다. 그러나 노령산지가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군의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 식량작물 외에도 산간지대에서 밤·감·대추·곶감 등이 많이 생산된다.
. 출처: 완주군[完州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특히, 동상면은 감·곶감의 주산지이며 표고버섯도 많이 재배하고, 경천면은 대추의 주산지이다...
. 출처: 완주군[完州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농촌진흥청 완주군편에 소개된 완주 곶감
완주곶감 : 조선중엽이후 임금님께 올리던 진상품으로 고종임금에 이르러 고종시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진 동상곶감은 씨가 거의 없고 해발 500~600m의 깊은 골짜기에서 생산된 감을 자연 건조하여 만듦.
. 출처: 완주군(지역별 대표 농특산물 모음집, 농촌진흥청)
. 자세한 형태를 보려면 다음 블로그를 참조하십시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406774&cid=58387&categoryId=58387
2]. 명절이나 제사때 쓰는 과일의 하나로,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 곶감
곶감은 명절이나 제사 때 쓰는 과일의 하나이다.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 것으로, ‘건시(乾枾)’라고도 한다. 감은 ≪향약구급방≫에 기록되어 있어 고려시대부터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감를 말린 곶감은 문헌에 보이지 않고 있다.
곶감은 조선시대에 많이 애용된 듯하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1682년(숙종 8) 중국에 보낸 예물목록 중에 보인다. 19세기 초의 문헌 ≪주영편 晝永編≫에는 종묘제사 때 바치던 계절식료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규합총서≫·≪진연의궤≫·≪진찬의궤≫ 등에도 기록이 있다. .
감에는 껍질이 두꺼운 것과 얇은 것이 있다. 곶감용으로는 껍질이 얇고 육질이 치밀하며 당분이 많은 봉옥(峰屋)·미농(美濃) 등의 품종이 좋다. 그리고 완숙하기 전에 채취한 떫은 감이 좋다. ≪도문대작≫에서는 지리산의 오시(烏枾)가 곶감 만드는 데 좋다고 하였다.
. 출처: 곶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감기예방에 좋고, 설사를 멎게하고 고혈압을 예방한다는 곶감.
곶감은 앞에서 언급한 『본초비요』나 「임 효자 전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효능이 한약재로도 쓰일 만큼 탁월하다. 곶감에는 비타민 A와 C가 풍부하여 겨울철 건강 보조 식품으로 감기 예방에 좋으며, 타닌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설사를 멎게 하고 모세 혈관을 튼튼하게 하여 고혈압을 예방할 수 있다고 전한다. 또한 곶감 표면에 형성되는 하얀 가루는 기침을 많이 하거나 가래가 생기는 등 만성 기관지염 치료에 쓰이며, 음주 전후 곶감 달인 물을 마시면 숙취 해소에도 효과적이다.
. 출처: 나라님께 진상한 파수 곶감[- 進上- 巴水-]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4]. 완주군의 전통적 교육 문화. 고산향교, 구호서원, 호산서원, 봉강서원등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고산향교(高山鄕校)가 있다. 이 향교는 고산면 읍내리에 1397년(태조 6)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1년(선조 34) 현재의 자리에 중건되었다.
서원으로는 1730년(영조 6) 봉동읍 구미리에 창건되어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1904년 다시 구호단(龜湖壇)을 만들고 1970년 사당을 세운 구호서원을 비롯하여, 호산서원(湖山書院)이 삼례읍 후정리에 설립되어 정몽주(鄭夢周)·송시열(宋時烈)·김수항(金壽恒) 등을 배향하였다. 1754년(영조 30) 봉강서원(鳳岡書院)이 봉동읍 구만리에 창건되어 이방간(李芳幹)·이헌구(李憲球)를 배향하였다.
학천사(鶴川祠)는 1768년 구이면 원기리에 정수홍(鄭守弘)·정곤(鄭坤)·정달서(鄭達恕)·정임(鄭任) 등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양곡사(洋谷祠)는 1668년(현종 9) 비봉면 수선리에 건립되어 담양국씨(潭陽鞠氏)를 배향하였다. 고산면 삼기리의 백현사(柏峴祠)는 구영(具瑩)을 배향하였다. 이들 서원들은 1868년 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그 뒤 각각 복설되었다.
. 출처: 완주군[完州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5]. 필자에 대한 간략한 언급
필자는 윤진한 이라고 합니다. 성대 경상대학 무역학과 1983학번입니다. 宮 儒. 성균관대 출신임.
1983년 성균관대 퇴계장학생으로 입학하여, 1988년 졸업. 대기업을 거치고, 현재는 돈버는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문필가.사상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니까, 반대편에 선 적들[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全) 주민을 절에 등록시키며 기독교에 대항해 온 일본 불교적 토대에서 새로 생겨난 성씨없는 일본 천황(후발 국지적으로 새로 생겨난 일본 신도수장), 성씨없는 일본 승려계열 천황이 만든 경성제국대학(한국 개념으로는 성씨없는 마당쇠가 만든 돌쇠학교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 각종 왜놈학교 잔재)]이 임의적으로 루머를 퍼뜨리기도 하는데, 필자의 아버지(윤 기섭)와 어머니(송 계순) 두 분 다 양반 출신입니다. 성씨가 없으면 유교사회에서는 미개한 종족이나 비천한 신분으로 치부 하는데, 성씨없는 마당쇠.돌쇠는 한국개념으로는 천민입니다.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파괴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패전국에 항복국가가 된 戰犯國(UN敵國) 일본에 어떻게 대처하는것이 승전국과 해방국의 권익을 지키는 방법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 44조 제2항 및 제 71조 제 3호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179
2. 1983년 사설 기업인 한국 갤럽의 종교인구 표본조사(1,946명)이후, 전염병으로 번진 패전국에 전범국가 일본 강점기 포교종교(일본 신도, 일본 불교, 개신교.가톨릭)식 종교관에 의한 통계조사 방법에 대하여!
http://blog.daum.net/macmaca/1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