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 11월 7일은 음력 24절기중의 입동(立冬)임.
1. 양력 2017년 11월 7일은 음력으로 9월 19일(보통 음력 10월에 입동이 드는데, 금년은 윤달이 끼어서 음력 9월)이며 입동입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태음태양력을 쓰고 있는 나라입니다. 물론 현대는 양력을 많이 쓰지만, 중국.한국.베트남.몽고의 전통 유교국 및 2차대전후의 신생 유교국가인 대만.싱가포르, 전 세계 중국화교는 태음태양력에 의해 음력으로, 설날(춘절)같은 전통 명절을 쇠고 있습니다.
음력은 양력과 달리, 주로 달의 운행에 맞추어 사용한 역법이라, 밤에 달이 운행할 때, 계절이나 24절기를 적용해야 들어맞는 역법입니다. 태양이 활동하는 낮과는 다소 계절 차이가 발생합니다.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입동(立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입동(立冬)
정의
24절기의 하나.
내용
상강과 소설 사이에 들며, 음력 10월, 양력 11월 8일경으로, 태양의 황경이 225°에 이를 때이다. 입동을 특별히 절일(節日)로 여기지는 않지만 우리의 겨울생활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
겨울 동안의 김치를 장만하는 김장은 입동을 기준해서 하기 때문이다. 김장은 입동 전 혹은 입동 직후에 하여야 제맛이 난다. 입동이 지난 지가 오래면 얼어붙고, 싱싱한 재료가 없으며, 일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 때가 되면 시장에는 무·배추가 가득 쌓이고, 또한 옛날에는 냇가에서 부녀자들의 무·배추 씻는 풍경이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다. 전라남도지방에서는 입동의 날씨를 보아 그해 겨울 날씨를 점친다.
즉, 입동날 추우면 그해 겨울은 몹시 춥다고 한다. 경상남도 도서지방에서는 입동에 갈가마귀가 날아온다고 하며, 밀양지방에서는 갈가마귀의 배에 흰색의 부분이 보이면 이듬해에 목화가 잘된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입동날씨점을 본다. 즉, 입동에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바람이 독하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이른바 고사를 지낸다.
그해의 새 곡식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토광·터줏단지·씨나락섬에 가져다 놓았다가 먹고, 농사에 애쓴 소에게도 가져다주며, 이웃집과도 나누어 먹는다.
. 출처: 입동[立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유교 경전인 예기에서는 겨울로 접어드는 음력 10월을 맹동지월(孟冬之月)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맹동(孟冬)이란 음력 10월의 초겨울을 의미합니다.
. 한편, 예기(禮記)에서 설명하는 입동(立冬)에 대한 내용입니다.
是月也,以立冬。先立冬三日,太史謁之天子曰:「某日立冬,盛德在水。」天子乃齊。立冬之日,天子親帥三公、九卿、大夫以迎冬於北郊,還反,賞死事,恤孤寡。
이 달에는 입동이 있으므로 입동 3일전에 태사가 천자를 뵙고 말하기를, "모일(某日)은 입동입니다. 천지의 성덕이 수위(水位)에 있습니다."고 한다. 천자는 곧 재계한다. 입동에는 천자가 몸소 3공.9경.대부를 거느리고 북쪽 교외에서 겨울을 맞이하고(전욱 및 현명을 제사지낸다), 돌아와서 나라일을 위해 죽은자를 상주고
그 고아와 과부를 구휼(救恤)한다.
4. 태음태양력[ lunisolar calendar , 太陰太陽曆 ]
- 요약
- 달의 삭망에 기준을 두면서, 계절에도 맞춘 역법이다. 30일 큰달과 29일 작은 달을 번갈아 두며 12개월 또는 13개월을 1년으로 한다. 평년에는 354일과 355일, 윤년에는 383일과 384일의 4가지 1년이 있다. 치윤법으로 19년에 7회 윤달을 두는 메톤법이 채용되었다.
큰달(30일)과 작은달(29일)을 조합하여 12개월(平年) 또는 13개월(閏年)을 1년으로 하는데, 평년에는 354일과 355일, 윤년에는 383일과 384일의 네 가지 1년이 있다....
태음태양력은 달의 차고 기울기를 주로 하면서 태양의 운행에 맞춰보려고 노력한 역법이다. 이 역법은 달과 태양의 두 운행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므로 매우 복잡하게 되기는 하지만, 실지로는 고대의 여러 나라와 여러 민족이 이 역법을 채택하였다. 물론 1태양년이 12삭망월과 정확히 일치한다면 태음력·태양력·태음태양력의 구분이 없게 되겠지만, 실제로는 태양년과 삭망월과의 비는 12.36827(=365.24220÷29.53059)이다.
이 일수 6940일을 중국에서는 장(章)이라고 하여, 이미 BC 600년경인 춘추시대의 중엽에 발견한 주기이고, 그리스에서는 BC 432년경에 메톤주기라고 하여 아테네의 메톤에 의하여 발견된 주기이다. 그리하여 19년 동안에 윤달을 7회 넣는 방법이라 하여 19년 7윤법(十九年七閏法)이라고 하였다. 태음태양력에는 바빌로니아력, 유대력, 그리스력, 인도력, 중국력, 한국에서의 음력(陰曆) 등이 있다.
한국은 중국 문화권 내에 속해 있어서 역에서도 중국력을 수입하여, 이것을 그대로, 또는 약간의 손질을 하여 우리의 역으로 써왔다. 그 중 백제에서는 중국에서 들여온 역법을 다시 일본에게 전달해 준 일도 있었다. 이들의 모든 역이 태음태양력이다.
각 시대별로 채택된 역법을 간단히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신라시대 674년(문무 14)에 대나마덕복(大奈麻德福)이 당나라에서 역술(曆術)을 배워와서 역서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역은 이순풍(李淳風)의 인덕력(麟德曆)일 것이라고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적혀 있다.
인덕력은 당나라가 665년에 반포하여 그후 64년간 쓰였던 역인데 1태양년을 489428/1340, 1태음월을 39571/1340이라는 일수를 주고 있다. 당시에는 소수(小數)를 다룰 줄을 몰라 이와같이 분수로 표현했는데 년과 월의 분모가 과거의 역에서는 달랐지만, 인덕력부터는 같은 값을 취하였다....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 서문(序文)에는 신라에서 대연력(大衍曆)도 쓰였다고 한다. 이 역은 인덕력의 일식예언이 맞지 않아 729년에 일행(一行)이라는 중이 엮었는데, 태양운동의 부등속을 나타내는 주요항인 중심차(中心差)를 밝혔다. 대연력은 729년 동안이나 채택된, 당의 대표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후주서(後周書)》와 《수서(隋書)》의 각 <열전(列傳)>에 백제는 송나라의 원가력(元嘉曆)을 썼고 인월(寅月)을 연초로 한다고 적혀 있다. 백제의 기록과 《니혼쇼키[日本書紀]》에는 일본에게 역박사를 보내어 역법을 알려준 후, 일본에 원가력이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백제가 원가력을 썼다는 증거이다. 원가력의 흔적은 무령왕릉(武寧王陵)의 지석에 있다. 원가력은 송나라 때 하승천(何承天)이 만들어서 445년 이래 65년간 송나라에서 채택되고 백제에서는 건국 초부터 계속 이 역을 썼다. 1일의 시작은 밤중이 되고, 갑자삭 오전 0시, 우수(雨水) 입기시각을 1년의 시작으로 하였다. 원가력에서는 평기법과 평삭법이 쓰였다.
고려 태조 때 고려에서는 당의 선명력을 이어받아 썼다고 하는데 이것은 나당(羅唐) 사이의 국교로 보아 830년경에는 신라에서도 선명력이 사용되었으리라고 믿어진다. 선명력에서는 태음시차(太陰視差)를 고려하여 일월식 계산에 약간의 진보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특별한 과학사상이 새로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선명력은 고려시대에도 건국 이래 충선왕까지 근 500년간 쓰였다.
중국에서는 당(唐)·송(宋)이 자주 개력하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 말기부터 고려 말기에 이르는 약 500년간 선명력을 계속 써왔다. 그러나 이 역법에 오차가 생겼을 때 고려에서는 해결하려고 매우 애썼을 것이다.
그후 1281년(충렬 7) 원나라 사신 왕통(王通)이 수시력(授時曆)을 가져왔었고, 이어 충선왕(재위 1309∼14) 때에 최성지(崔城之)가 왕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수시력을 얻어와 이것을 준용하게 하였다. 원나라에서는 이 역을 1280년부터 88년간 채택하였다. 수시력은 곽수경(郭守敬)·허형(許衡)·왕순(王恂) 등이 여러 관측기계를 제작하여 면밀한 관측과 정밀한 계산을 하여 엮은 역법인데 중국력으로서 최선의 역이라고 알려져 있다. 역원(曆元)을 너무 멀리 잡지 않고, 소수를 활용하여 1년의 길이가 점점 줄어든다는 소장법(消長法)을 채택하였다.
대통력은 이 수시력의 소장법을 없앤 것인데 1370년(공민왕 19)에 성준득(成准得)이 명나라에서 얻어왔다. 그러므로 대통력은 수시력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대까지 합치면 중국에서의 수시력의 수명은 근 500년이나 되며, 한반도에서는 1370~1652년(효종 3)의 약 350년간 쓴 셈이 된다.
1653년(효종 4)에 서양역법인 시헌력이 흘러들어오게 되었다. 시헌력에서는 처음으로 정기법(定氣法)이 채택되었고, 삼각함수에 의한 수식계산을 하였으며 천체운동에 관하여는 처음에는 이심원(離心圓:複合圓)의 사상을, 나중에는 타원궤도의 사상으로 전진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1896년 태양력의 실시까지 쓰였다.
. 출처: 태음태양력[lunisolar calendar, 太陰太陽曆] (두산백과)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의 유교와 세계의 유교를 되돌아보고, 다방면으로 연구.검토하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고 있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