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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17년 8월 16일 오전 03:49

필자는 윤진한 이라고 합니다. 성대 경상대학 무역학과 1983학번입니다. 宮 儒. 성균관대 출신임.


1983년 성균관대 퇴계장학생으로 입학하여, 1988년 졸업. 대기업을 거치고, 현재는 돈버는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문필가.사상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윤 기섭)와 어머니(송 계순) 두 분 다 양반 출신입니다.



어릴때부터 파평윤가 양반으로 살아왔는데, 이 양반자격은 한약방집 딸인 유모(법률상으로는 아버지의 정실부인이 아니고, 이전남편과 이혼신고를 하지 않고 아버지를 만나서 필자와 동생을 낳음)가 필자의 법률상 어머니가 아닌 유모임을 주장하여 얻어진  양반자격입니다. 한약방집 딸이라 아버지(선거등에 출마하느라 선거 빛이 많은 상태로 살아오신 것 같음)에 비해서 돈이 많은 유모(유모 아버지가 유모에게 기와집도 사주고 그랬으며, 외부에서 곡마단등이 오면 필자의 집에 단체로 숙박할 정도로 집이 컸음)였는데, 그 당시 수편물 기구도 여러대 가지고 고용인들을 데리고 있었음. 유모는 돈을 많이 벌게 되면서, 집안에 운전사나 자가용을 굴리는 정도로 재력이 향상된 시절에 아버지와 필자의 법륭상 어머니가 이혼해 달라고 요구한적이 있었으나, 결국 무산되었음(아버지가 장남이라 작은 아버지들이 필자의 법률상 어머니와 큰 형님.형님들이 사시는 집으로 제사를 지내러 명절에 모이는 관습이 있었기에, 제사때문에 결국 이혼을 거부한 것 같음). 필자의 고모가 시집간 고모부 집안 어른의 견해로는 필자가 국민학교 3학년 즈음 호적에 등록되었는지 궁금하였고, 호적에 등록되었다면 자기보다 높다는 의견이었습니다. 필자가 국민학교 3학년 즈음 양치질을 하기 위해 소금을 가지고 가서 마을의 시냇물에 가서 양치질을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주변에 살던 한의사는 어린 나이라도 필자가 양반이라, 부담스럽다며 필자가 양치질 하던 냇가의 상류에 있다가도 다시 하류로 내려가서 양치질을 하였습니다. 여하튼 파평윤씨들이 많이 사는 전북 남원부근 장수군 산서면 고향마을 국민학교(전북 장수 산서 국민학교)선생의 견해는 반에서 필자가 가장 양반이라는 견해였습니다.      

1983년 성대 입학전, 1981년 모 지방 국립대 법학과에 입학해서 1학년을 마치고 2학년 초까지 다닌적이 있었으며, 한국나이 스물한살 시절이던 1982년 병역이 면제되었으며, 한국나이 스물두살인 1983년 성균관대학교 무역학과(주간)에 퇴계장학생으로 입학하여, 1988년에 졸업하였습니다. 대학다닐때는 전공공부도 많이 하였지만, 문학이나 역사.유교 경전 말씀 및 법학과목도 같이 수강하였습니다. 대기업을 거치고, 현재는 돈버는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문필가.사상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필자의 부친은 파평윤씨 양반이며, 어머니도 양반가 출신입니다.


병역면제탓에 추천장의 위력이 약해져 여러군데 면접에서 탈락, 평범하게 입학하고 병역을 마친 다른 동기들이 다들 재벌기업.대기업에 입사확정되던 시기에, 입사 미확정 상태로 살다가, 작은 광고회사등에 입사확정되어 출근한적도 있지만, 며칠 다니다 그만두고 1988년 2월 성균관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미도파 백화점을 가진 대농그룹에도 다니고 그러다가, 1988년 8월경 지금은 LG그룹으로 변한 럭키금성그룹의 금성전선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여 근무한적이 있었습니다.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 졸업즈음 전주 신흥고 교문을 나서면서 전라고.서강대 출신 영매를 처음 만났고, 이 분을 통하여 여러 지도자들의 무의식과 접하는 뇌과학의 정신세계를 경험하였다고 판단됩니다. 1989년 금성전선에 다닐때 옆 부서에 서강대 영문과 출신 부장이 조달부장으로 있었는데, 이 분을 영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필자는 아마 이시기에 교황(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임시기임)성하나, 한국문화와 맞지 않고 이질적인 특성이 많은 일본천황의 무의식도 접하게 된 것 같습니다.  


히로히토 천황의 재임시 일본 천황이 필자가문에 뇌과학 상태로 개입되었다고 판단됩니다. 일본잔재를 청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 불교적 특성이 경성제대 후신인 서울대나, 일본 불교,  다른 왜놈학교들을 통하여 필자 가문에 부정적 영향력을 끼친것 같습니다. 그래도 필자의 법률상 아버지.어머니가 양반이고 형님들이 파평윤씨 양반가문 후손(일본 강점기 이전 필자의 증조부가 조선.대한제국의 벼슬을 얻았음. 조선.대한제국은 전주이씨나 파평윤씨에게 많은 특혜를 준 나라임)이라, 필자의 양반자격은 유효하며, 호적과 주민등록에 기반하여 이 양반 상태에서 宮 성균관대 임금(=御 서강대 임금)으로 자천하여 등극(성대 총학생회 게시판과 유학대학에서 인터넷으로 백명 정도의 동의를 얻음)한 것인데, 성왕으로 인정되는 필자의 자격은 이렇게 형성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싫어하는 일본의 수장이기는 하지만, 일본 천황의 지위는 분명하게 맞습니다. 필자의 가문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놓았어도 그 부정적 영향을 받은 필자가문의 해당자(왜놈학교등에 진학)는 일본 천황의 볼모정도로 신분은 높게 책정된 상태에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는 필자가 다시 정리하여 나갈 것이며, 한국의 제도권에 편입시키지는 않고, 그 피해자가 자연사 할때까지 놔두다가 자연사하면 그 주권이 없는 상태에서 자연사 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 재임시, 1998년에 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에,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이 참석하였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성하 재임시 필자가 궁 성균관대 임금으로 자천하여 왕위에 올라(궁 성균관대 임금=어 서강대 임금), 트위터나 페이스북, 국내의 Portal사 블로그등에 십 몇년 넘게 알려왔습니다.


국내의 집권자들인 역대 대통령들도 필자에게 관여한  상태에서 얻어진 宮 성균관대 임금(= 御 서강대 임금, 법적인 자격이 아니고 정신적인 자격임)자격이지만, 이미 관습적으로 정착되는 단계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포고문이 한일합방을 무효로 하였기 때문에, 이런 내용들을 종합하여 성왕(成王)에 오른 필자의 임금자격은 대한제국 후손인 황사손(이 원. 이구公의 후계자 자격으로 公정도의 지위에 해당될것)보다 높은 상태입니다. 이런점을 충분히 숙지하시기 바랍니다(한일합방을 강행법으로 부정할 수 없던 대한제국 문벌가지고 쓸 데 없이 쿠데타.혁명 일으키면 않됨). 일본 강점기를 부정하며, 국가적 정설로 조선.대한제국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하였다고  행정법(대통령 령인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의 공식 견해)상 인정되는 성균관대 자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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