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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계하(季夏, 음력 6월)는, 양력으로 2017년 7월 23일(음력 6월 1일)부터 2017년 8월 21일(음력 6월 30일)까지입니다.

1]. 2017년 계하(季夏, 음력 6월)는, 양력으로 2017년 7월 23일(음력 6월 1일)부터 2017년 8월 21일(음력 6월 30일)까지입니다.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는 음력으로만 구분하면 그렇게 음력 여름이 끝나지만, 태양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는 양력으로 보면 땅에 태양열이 축적되어 지열이 높아졌기 때문에, 양력 8월 말까지는 어느정도 무더위가 지속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음력 6월(季夏). 예기에서는 계하(季夏)의 제(帝)를 염제(炎帝)로 서술하고 있으며, 황천상제(皇天上帝), 명산 대천 및 사방의 신, 종묘사직의 신령을 제사지내는 달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딧불이를 언급하고, 땅에 습기가 있고, 무더우며 때때로 큰 비가 내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 계하(季夏)의 달. 季夏之月로 음력 6월.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여 4계절을 분류하면 하(夏. 음력 4월~6월)의 마지막달에 해당됨.

 

 

이 달은 음력으로 여름에 해당됩니다. 음력 여름의 달인 맹하(孟夏),중하(仲夏),계하(季夏)의 달을 다스리는 제는 염제(炎帝)이지만, 계하의 달에는 오제(五帝)중의 한 분인 황제(黃帝))를 제사지내는 달이기도 합니다.  황제(黃帝)는 황천상제(皇天上帝)로도 불리는 분입니다. 참고로 예기(禮記) 월령(月令)의 오제(五帝)는 다음분들입니다.

 

춘(春)의 제(帝)는 태호(太皥), 하(夏)의 제(帝)는 염제(炎帝), 추(秋)의 제(帝)는 소호(少皥), 동(冬)의 제(帝)는 전욱(顓頊). 그리고 계하(季夏)의 달인 음력 6월에는 중앙에 황제(黃帝)를 넣고 있습니다.


3]. 계하(季夏)는 국립국어원의 (주)낱말 국어사전에서 "음력 6월을 달리 이르는 말"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계하(季夏)는

영어로는 The sixth lunar month, June of the lunar year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독일어로는 Juni nachdem Mondkalender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4]. 계하(季夏)에 대해서는 유교경전인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 필자 주 1). 필자가 인용하고 있는 예기 해석서는 예기 원본의 전체 내용을 수록하지는 않고 있으니, 이 점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季夏之月 日在柳 昏火中 旦奉中 其日丙丁 其帝炎帝 其神祝融 其蟲羽
其音徵 律中林鍾 其數七 其味苦 其臭焦 其祀竈 祭先肺 


계하(季夏)의 달은 진(辰)이 유성(柳星)에 있는데, 저녁에는 화성(火星)이 남방의 중앙에 있고, 아침에는 규성(奎星)이 남방의 중앙에 있다. 그 날은 병정(丙丁)에 해당되고 그 제는 염제, 그 신은 축융, 그 동물은 조류, 그 음은 치조(徵調), 그 율은 임종(林鍾), 그 수는 7, 그 맛은 쓴맛, 그 냄새는 누린내이고, 그 제사는 부뚜막 신으로서 제사지낼때는 희생의 폐(肺)를 먼저 바친다.

 

. 필자 주 2). 상기 예기 월령 본문에 나오는 其祀竈 祭先肺의 조(竈)에 대한 설명
조(竈)
 
고대 중국의 궁중에서 칠사(七祀)의 하나로 섬기던 부엌 귀신(鬼神). 음식에 관한 일을 주관하는 귀신임. 삼한(三韓)시대 때 변한()에서는 집집마다 부엌 귀신을 섬겼다고 함

. 출처: 조[竈]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溫風始至 蟋蟀居壁 鷹乃學習 腐草爲螢 命漁師 伐蛟取鼉登龜取黿
命澤人納材葦

 

온풍이 비로소 불어오고 귀뚜라미가 벽을 기어다닌다. 매는 하늘을 날아 다른 새를 움켜잡는 법을 배우고 썩은 풀이 변해서 반딧불이 된다.

어부에게 명하여 이무기를 치고 자라와 거북을 잡고 큰 자라를 잡게 하며, 택인으로 하여금 갈대를 납품하게 한다. 

 

. 필자 주 3). "썩은 풀이 변해서 반딧불이 된다"에 대한 설명.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부산광역시 편)에서, 반딧불이는 두엄.썩은 풀더미, 퇴비를 쌓아둔 곳에서 발생하여 서식하는 특성을 가진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옛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썩은 풀이 변해서 반딧불이 된다고 인식하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반딧불이는 농사를 많이 짓던 시절에는, 시골의 논등에서 많이 발견되었었는데, 현대는 잘 볼 수 없는 곤충이 되었습니다.     


다음은 한국 향토문화대전의 설명입니다.


- 다 음 -

반딧불이는 반디 또는 반딧불, 개똥벌레라고도 한다. 두엄과 썩은 풀 더미, 논 가장자리 퇴비를 쌓아 둔 곳 등지에서 발생하여 서식하는 특성 때문에 개똥벌레라는 이름이 붙었다.

. 출처:반딧불이(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부산광역시


. 필자 주 4). 다음은 반딧불이에 대한 두산백과의 설명입니다.  


개똥벌레라고도 한다. 몸빛깔은 검은색이다. 앞가슴등판은 오렌지빛이 도는 붉은색이며 한가운뎃선은 검은색이고 중앙부 양쪽이 튀어나와 있다. 배마디 배면 끝에서 2∼3째마디는 연한 노란색이며 빛을 내는 기관이 있다. 머리는 뒤쪽이 앞가슴 밑에 숨겨져 있고, 겹눈은 큰 편이며 작은 점무늬가 촘촘히 나 있다. 딱지날개(굳은날개)에는 4개의 세로줄이 있고 그 사이에는 점무늬와 갈색의 짧은 털이 있다.

....


6월경에는 어른벌레가 되어 빛을 내며 밤에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어른벌레는 암컷이 크고 수컷이 조금 작다. 수명은 2주 정도로 이슬을 먹고 사는데, 알을 낳고 11∼13일 뒤에는 자연적으로 죽는다. 어른벌레뿐만 아니라 알, 애벌레, 번데기도 빛을 낸다. 빛을 내는 원리는 루시페린이 루시페라아제에 의해서 산소와 반응해 일어나는 것이다. 빛은 보통 노란색 또는 황록색이며, 파장은 500∼600nm(나노미터)이다. 한국에서는 환경오염 등으로 거의 사라져 쉽게 볼 수 없다.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남대천 일대가 서식지인데 이곳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출처: 반딧불이 (두산백과)

 

是月也 命四監 大合百縣之秩芻 以養犧牲 令民無不咸出其力 以其皇天上帝
名山大川四方之神 以祠宗廟社稷之靈 以爲民祈福

이 달에는 산우.택우.임형.천형의 사감에게 명하여 크게 백현의 백성을 징발하고 그 힘을 합쳐서 말먹이 풀을 베어 저장하였다가 희생으로 쓸

가축들을 기른다. 이 때 백성에게 영하기를, "게으르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한다. 이로써 황천의 상제를 비롯한 명산 대천 및 사방의 신을 제사지내고 또 종묘사직의 신령을 제사지내며, 그리하여 백성을 위해 복을 비는 것이다.    

 

 

是月也 命婦官染采 黼黻文章必以法故 無或差貸 黑黃倉赤莫不質良

毋敢詐僞 以給郊廟祭祀之服 以爲旗章 以別貴賤等給之度 

이 달에는 염직을 다스리는 관리에게 명하여 누에를 쳐서 얻은 비단을 오색으로 물들이게 한다. 보.불.문.장의 색(色)은 반드시 옛날 법칙대로

물들이고 바느질하여 어긋나는 일이 없어야 하며, 흑.황.창.적색은 그 물감의 질이 좋지 않으면 안되니 감히 속이는 일이 없도록 한다. 이로써

교묘제사의 의복감으로 공급하여 또 정기(旌旗)를 만들어 귀천의 등급을 나누는것이다.  

 

 

是月也 樹木方盛 乃命虞人入山行木 毋有斬伐 不可以興土功 不可以合諸侯 
不可以起兵動衆 毋擧大事以搖養氣 毋發令而待以妨神農之事也 
水潦盛昌神農將持功 擧大事 則有天殃

 

 

이 달에는 수목이 무성해지므로 우인(虞人)에게 명하여 산에 들어가 나무를 순시하고 참벌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그리고 토목공사를 일으켜서는

안되고 제후의 모임을 가져서도 안되며, 군대를 일으켜 뭇사람을 동원시켜서도 안된다. 이렇듯 큰 일을 일으켜 장양(長養)하는 기운을 흩뜨리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미리 소역(召役)의 영을 발하여 시기를 기다리게 함으로써 그 농사를 방해해서도 안된다. 이는 비가 내리고 물이 요성(潦盛:크게 많아지는것)하여 신농이 바야흐로 크게 가색(稼穡:농작물을 심는것과 거둬들이는 것)의 공을 이룩하려는 때이므로, 큰 일을 일으켜 그 뜻을 거스릴때는 하늘의 재앙이 있을것이다.  

 

 


是月也 土潤溽暑 大雨時行 燒薙行水 利以殺草如以熟湯 可以糞田疇 
可以美土彊 

 

 

이 달에는 땅에 습기가 있고 무더우며 때때로 큰 비가 내린다. 밭의 풀을 깎아 말린 다음 불태우면 비가 내려도 자라지 않고, 또한 괸물이 뜨거운 햇볕에 쬐이므로 마치 끓는 물과 같아서 풀뿌리에 닿으면 말라죽는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풀은 썩어서 좋은 거름이 되니 전답을 비옥하게 하고 토지를 기름지게 할 것이다.  

 

 

. 출처: 新譯 禮記/권오돈 譯解/홍신문화사/2003.10.30 발행의  월령(月令)편.

 

 

5]. 필자가 보유한 예기 월령에는 나오지 않지만 다른 책에 나오는 예기 월령에는 황제(黃帝)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中央土 其日戊已 其帝黃帝 其神后土 其蟲倮 其音宮 律中黃鍾之宮
其數五 其味甘 其臭香 其祀中霤 祭先心 

6]. 황제(黃帝)에 대한 자세한 설명입니다.

1. 이회문화사 출판자료. 

 

신화에 나오는 제왕. 성은 공손() 또는 희수()에 살아 희()라 했으며, 헌원의 언덕에서 살아 헌원씨()라고도 한다. 또 유웅()에 국도를 정한 까닭에 유웅씨()로도 일컬어진다. 소전()의 아들이다. 염제() 때 제후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자 병사들에게 무기 사용법을 가르쳐 판천()들에서 함귀()를 물리쳐 해결했고, 배와 수레를 고안하여 교통을 편리하게 했다. 당시 지남거()를 만들어 탁록(涿鹿)의 벌판에서 치우()를 쳐서 평정하자, 제후들이 천자로 받들어 신농씨() 뒤를 잇게 되었다. 토덕()의 서기()가 있다고 해서 황제로 일컬어진다. 세상 사람들에게 집을 짓고 배와 수레를 만들며, 양잠과 직면(綿)을 가르쳤고, 간지법()과 역산(), 문자를 발명하고, 음률을 제정하며, 의약품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중국 각 민족의 공동 조상으로 받들리고 있다.

 

. 출처: 황제[黃帝]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1. 20., 이회문화사)

 

2. 중국인물사전(한국인문고전연구소 간행자료)

 

 

 

1. 화하족의 형성

벽돌 그림에 묘사된 황제 모습

벽돌 그림에 묘사된 황제 모습

황제는 염제 신농씨와 더불어 ‘염황’이란 용어로 중국인의 조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중국 상고사 전설시기의 가장 이른 조종신()이다. 황하 유역 일대에서 비교적 세력이 강했던 황제와 염제 부락을 중심으로 화하족()이 형성된 뒤로는 전 부족의 시조로 인식되고 있다. 본래 성은 공손(), 호는 헌원씨이다.

상고시대에 희수1)일대에 형성된 황제족이 바로 이 걸출한 시조 때문에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황제족은 강수2)일대의 강성() 염제족과 대대로 혼인관계를 맺어왔다.

그 뒤 황제족 후예의 한 갈래가 지금의 산시(西)성 남부로 진출하여 하() 문화를 창조하면서 마침내 하족()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하족은 중원에 들어와 중국 최초의 왕조 하()를 세웠다. 그 후 산시(西)성 경내에서 살았던 희()라는 성을 가진 주족()이 중국 두 번째 왕조 상()을 무너뜨리고 주 왕조를 세웠는데, 이 주족이 먼 조상 황제족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들의 성인 희()를 황제족에 갖다 붙였다.

황제족은 염제족과 더불어 하 · 주 두 시대와 기타 다른 종족들과의 충돌 · 교류 · 융합을 거치면서 각 방면의 융화와 발전을 통해 전국시대에 이르러 통일된 화하족을 형성하게 된다. 『세본()』 및 『대대례기()』의 ‘세계()’에 각 종족의 선조와 조종신을 황제의 갈래로 편성하여 완전한 혈연체계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로부터 황제와 염제는 함께 거론되었고 염 · 황에서 시작하여 여러 씨족의 통합을 거쳐 중국민족의 조상인 화하족이 된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국어()』 「진어()」 및 『세본』 · 『대대례기』 중에 보이는 ‘제계()’에는 모두 황제가 소전3)의 아들로 되어 있다. 『사기』 「오제본기」에는 황제가 “성은 공손이고 이름은 헌원()이며, 나라 이름은 유웅()”이라고 되어있다. 이에 대해 최술()은 『보상고신록()』에서 “공손은 공의 손자란 뜻이지 상고시대에 이런 성은 없었고”, ‘헌원’은 황제가 살았던 헌원 언덕을 가리키는 것으로 살던 지역을 가지고 이름으로 삼은 것이지 황제의 이름이 아니며, ‘유웅’이란 이름은 기록에 보이지 않으므로 ‘제계’의 기록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술의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신화인 이상 그 시비를 지나치게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역』 「계사」편, 『세본』 「작편()」편 등 각종 문헌에서 모두 황제 시기에 많은 발명과 창조가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산기술 방면으로는 우물, 절구, 활, 승마복, 수레, 배 등이 있고, 물질생활에서는 의상, 털모자, 신발 등의 발명이 있었다. 정신문화 방면에서는 달력, 산수, 악기, 율려(), 의약, 문자 등의 발명이 있었다. 물론 그 중 적지 않은 부분이 황제 이후의 발명과 창조이겠지만, 부분적으로는 황제와 그 부족이 이룬 성과를 반영하고 있다는 설이다.

황제의 고향으로 알려진 하남성 신정시 황제사당 앞의 황제상

황제의 고향으로 알려진 하남성 신정시 황제사당 앞의 황제상중국인들이 절을 하고 있다.

2. 황제의 전투

문헌에 기록된 황제와 관련된 주요 고사는 치우와의 탁록(涿鹿) 전투 및 북방 훈죽(, 또는 훈육)과의 투쟁이 있고, 또 염제(적제, )와의 판천() 전투가 와전되어 내려온다.

『전국책』 「진책()」에서 유세가 소진은 “황제가 탁록을 정벌하여 치우를 잡았다”는 사건을 요가 환두()를 정벌하고, 순이 삼묘()를 정벌하고, 우가 공공을 정벌하고, 탕()이 하()를 정벌하고, 무왕이 주()를 정벌한 것과 나란히 거론하고 있는데, 이는 탁록 전투를 황제 일생의 중요한 전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황제의 무덤이 소재하고 있는 섬서성 황릉현의 황제릉 입구의 모습

황제의 무덤이 소재하고 있는 섬서성 황릉현의 황제릉 입구의 모습

『산해경』 기록에 따르면 황제와 치우는 일찍이 기주() 들판에서 전투를 벌인 적이 있는데, 황제는 응용()과 여발()을 시켜 치우를 죽였다고 한다. 『일주서()』 「상맥편()」에는 중기()에서 치우를 죽였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중기나 기주는 탁록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황제 본문 이미지 1

섬서성 황릉현 황제릉은 옷을 묻은 의관() 무덤으로 전한다.

황제와 치우의 탁록 전투는 『상서()』 「여형()」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이런 것들로 미루어볼 때 탁록 전투가 역사적 배경을 가진, 그 유래가 오래된 역사전설이라고 하겠다. 『사기』 「오제본기」에는 “북으로 훈족을 내쫓았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황제가 기주에 진입한 뒤 거주지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취한 필요한 행동이었을 것으로 본다.

한편, 황제와 염제의 판천 전투는 탁록 전투에 대한 전설이 갈라져 나간 결과로 본다. 양옥승은 『사기질의()』에서 “헌원이 군대를 동원한 판천 전투는 탁록 전투를 가리킨 것이지 각각의 사건이 아니다. 그래서 『일주서』 「사기해()」에서 치우를 판천씨라 했고, 그것은 정확한 지적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수경』4)「유수주()」에 “탁수는 탁록산에서 흘러나오며 … 동북에서 판천으로 합쳐진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위토지기()』에는 “하락성() 동남 60리에 탁록성이 있고, 성 동쪽 1리 지점에 판천이 있으며, 판천 위에 황제 사당이 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로 볼 때 판천과 탁록이 사실은 한 곳이며 치우는 곧 판천씨로, 판천 전투가 곧 탁록 전투임을 뜻한다.

중화삼조당(허베이성 줘루현) 내의 중화 삼조상(오른쪽이 염제, 가운데 황제, 왼쪽 치우)

중화삼조당(허베이성 줘루현) 내의 중화 삼조상(오른쪽이 염제, 가운데 황제, 왼쪽 치우)

3. 관련 유적

황제와 관련한 유적으로는 산시(西)성 황링현()에 소재하는 황제릉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여러 곳이 남아 있다.(아래 참고자료의 일람표) 매년 청명절 전후로 황링현 황제릉에서는 황제에 대한 제사가 거행되는데, 국내는 물론 전국 각지의 화교들까지 참석하는 성대한 제사로써 공자에 대한 제사, 사마천에 대한 제사와 함께 중국 3대 제사 중 가장 큰 규모의 제사이다.

 

. 출처: 황제[黃帝, huáng dì] - 중국인의 시조 (중국인물사전, 한국인문고전연구소)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과 세계의 유교에 대해 되돌아보고, 더 잘 이해하고, 연구.검토하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