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올해 한자 '요(耀)'…국부 리콴유 타계 반영. 이를 보며 한자와 라틴어의 역사를 상기해봄.
뉴시스, 문예성 기자, 2015-12-16 보도기사.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1216_0010481144&cID=10101&pID=10100
1. 필자의견.
올해의 한자를 발표하는 문화는 싱가포르에도 사회적으로 형성되었군요. 최근에 보편화된 문화로도 보여지는데, 중국, 한국, 대만, 일본에 이렇게 "올해의 한자"를 발표하는 문화가 인지되었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많은 대중들이 인식하는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잡아, 한자문화권의 주요 연례행사로 백과사전이나 분야별 주요 사전에 등재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베트남에 아직 이런 문화가 확산되지 않은 걸 보면 고대부터 내려오는 유교문화권 공통의 국가적 행사는 아닌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부차원의 공식 행사는 아니라도 사회적으로는 최근에 중국.한국,대만,싱가포르 및 일본등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에 정착된 문화로 보여집니다.
한자문화권중 중국,한국,베트남,몽고는 한나라이후의 세계종교인 전통적 유교국이고, 2차대전후의 중국인들의 신생국가인 대만,싱가포르도 유교국입니다. 다만, 일본은 중세에 일본 막부가 全 住民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침투에 대항한 이후부터는 어찌되었든 自國의 정책으로 유교문화권에서 이탈하여 유교의 설날.단오.추석 및 대보름등의 전통명절을 음력 아닌 양력으로 쇠고,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누구나 제사주재자가 될 수 있던 조상제사도 절에서 지내는 복잡한 後發局地的 신도국가로 변형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 기독교나 불교는 조상제사에 대한 종교전통이 없음. 전통적으로 無君無父의 금수가 불교였음. 기독교도 조상제사 거부하여 조선 조정에서 조상도 몰라보는 금수라고 배척. 이런측면에서 한국은 여전히 유교국임(일본 총독부의 포교정책인 일본 신도.불교.기독교에 강제 포교를 당했지만, 을사늑약.경술국치가 무효라 그러함).
많은 일본인들이 막부시대 이전의 관습인 유교 조상제사를 절에서 치르는 편법으로 몰리게 되었는데, 이전의 조상제사 관습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 일본 局地的 日本史아닌 世界史 기준으로 보면 일본 불교도는 조상제사 지내는 경우 유교도일것.
한자(漢字)와 유교(儒敎)를 전해준 한국을 어버이나라로 섬기던 문화후발국 일본은, 이제 日本史的으로는 유교국이 아니며, 유교의 전통이나 漢字는 유지하되, 유교에 토대를 둔 하위문화인 중국불교나 한국불교를 변형시켜 일본문화에 접목한 신도국가가 맞습니다. 특히 서양인들도 지적하기 시작한 근친상간이나 근친결혼은 신도국가 일본이 유교권에서 이탈하였음을 의미하고, 오히려 절에서 조상제사 지내는 유교적 불교문화가 유교적 특성으로 이어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고종사촌.이종사촌등 사촌간 결혼이 인정되던 풍토는 서양 일부 풍속에서 유래된 것 같은데, 한국은 아닙니다. 이는 문화차이겠지만, 문화가 유교와 다른 근친상간을 서양인들도 지적하는 정도라면, 이는 아주 심각한 것이며, 그게 일본식 후발 국지적 종교관이라면 일본신도는 유교국이 될 수 없습니다. 서양 헬레니즘이 고대 그리스.로마신화의 신적 자격을 가진 존귀한 존재들을 숭배하면서,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던 원죄의식의 영역이며, 先史時代의 일부 사례로, 죄의식을 갖기이전에 행했던 근친결혼을 떠안는 종교적 풍토에서, 하느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원죄의식에서 해방되었다면 이는 엄청난 신의 축복입니다. 여하튼 서양인들도 현대에 지적하는 일본의 근친상간문화는, 일본만의 국지적인 천황이 인간선언을 하였으니, 철폐하여야 할 잘못된 유산이라고 판단합니다. 지금은 선사시대가 아닙니다. 윤리와 의식.교육이 너무 발전되어 버렸습니다.
한국이 전해주고 일본이 받아들인 유교 전통 명절중 양력으로 지내는 설날.단오.추석은 유교문화를 변형시킨 것입니다. 일본은 아주 복잡해졌고, 이런 後發 局地的 문화를 한국에 역수입시킨적이 있었는데, 문명을 전달받던 일본에 대해 어버이나라 한국은 일본의 근친상간 풍토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근친결혼도 방지하기까지 하면서, 가족을 중시하는 유교적 전통으로 대응해온것에 해당됩니다. 학교에서는 유교 교육인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가르치고, 국사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로 계승됨)을 가르치면서, 2중과세의 설날도 쇤적이 있었고, 추석은 대체적으로 공휴일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도국가 일본의 창씨개명 후유증에 대응하여, 미군정시대 유교가 국교였던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국교가 유교인 행정법적 특성을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1-1). '요(耀).
耀는, 대체적으로 밝게 빛나다. 밝게 비치다의 뜻을 가지며, 영광스럽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2. 사회적 현상으로 인식된 올해의 한자 발표 사례
1). 2014, 한국, 올해의 한자. 지록위마(指鹿爲馬)
올해의 한자성어 '지록위마'
한국일보, 이대혁 기자, 2014.12.21 보도기사
....교수들이 올해를 특징짓는 사자성어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다’는 뜻의 ‘지록위마(指鹿爲馬)’를 꼽았다.
2). 최근 보도기사. 중국, 일본, 대만이 사회적으로 연례행사를 가졌던 올해의 한자 발표사례.
아주경제, 김근정 기자. 2014-12-17 보도기사
중국 올해의 한자는 '法'?...일본은 '稅', 대만은 '黑'
중국 올해의 한자 19일 발표예정, 법치를 의미하는 '法' 유력...반부패, 사정바람 등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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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세금폭탄 우려해 세금 '稅', 대만은 정부의 대한 실망감 담아 까만 '黑'
3. 사전이나 학습서적등으로 규정된 한자문화권
1). 한국 민족문화대백과. 우리나라(한국), 일본, 만주(현재, 국제법적 의미에서 영토소재지는 중국),몽고,베트남을 한자문화권으로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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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선교사들은 중국에 상륙하여 중국의 역사적 전통과 높은 문화수준에 놀라게 되었다. 이런 문화세계에서 전도의 결실을 얻기 위해서는 한문을 익히고, 중국고전을 읽어 중국문화를 이해한 바탕 위에서 중국인들과 직접 교섭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한편, 중국인 협력자들의 도움을 얻어 많은 서학서를 간행하였다. 첫 한역서학서는 루지에리(Ruggieri,M., 羅明堅)의 ≪성교실록 聖敎實錄≫이고, 그 뒤에 리치의 ≪천주실의 天主實義≫가 간행되었다. 리치는 그 밖에도 20여 종의 저술을 간행하였고, ≪만국여도 萬國輿圖≫라는 세계지도도 작성하였다.
당시 중국에서 가톨릭 포교의 중심적인 축을 이루었던 예수교 선교사들은 1601년부터 1775년 교황령에 의하여 해산될 때까지의 약 170년 동안 약 500여 종의 서학서를 출간하였다. 그 밖의 다른 전교단체에서도 적지않은 수의 한역서학서를 저술, 간행하였다...
한역서학서는 서양문화의 모든 분야에 걸친 것이나 윤리·종교적인 내용의 이(理)의 측면과 과학·기술적 내용의 기(氣)의 측면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소개되고 있는 서양문화는 저자들이 성직자들이었기 때문에 중세 스콜라철학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과학기술을 내용으로 한 것이었다. 한역서학서의 영향은 중국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일본·만주·몽고·베트남 등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여러 나라에 미쳐서 새로운 문화활동을 자극하게 되었다.
한편, 서양 과학기술문물을 서양으로부터 가져온 기계·기구들이거나 중국왕실의 요청에 의하여 성직자들이 중국에서 제작한 기구·무기·지도 등으로, 이런 것으로 전해지는 서양 기술문명은 중국사회에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출처: [西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한자문화권. 중국,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를 한자문화권으로 규정.
한자는 중국에서 비롯된 글자예요. 하지만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지역의 여러 나라들은 수 천 년 동안 한자를 사용해 온 한자 문화권 국가들이에요. 그래서 상당수의 단어가 한자를 바탕으로 삼고 있지요.
한자가 우리 민족에게 소개된 것은 기원전 2세기부터예요. 삼국 시대인 6, 7세기경부터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해 조선 시대까지, 한자는 우리 겨레의 문자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답니다.
.출처: 고사성어와 한자(자신만만-고사성어, 2011., 미래엔)
3). 한자의 간략화, 2013 기준. 홍콩.마카오.대만은 여전히 번체자[현대 중국에서 간략화 이후의 한자를 ‘간화자(簡化字)’라고 부르고, 이에 대비되는 간략화 이전의 한자를 ‘번체자(繁體字)’라고 부른다] 사용중.
한자의 역사는 유구하고 사용된 지역도 광활하며 사용 인구도 많다. 이 때문에 한자로 기록한 전적의 수량도 많고 시간의 폭도 크다. 또한 문헌을 만들기 위해 새기거나 활자를 배치하고 교열하는 등의 여러 원인으로 한자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복잡하게 발전해왔다. 한자의 총 글자 수는 많고 이체자가 많으며 어떤 글자의 필획은 너무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자를 배우고 구별하여 쓰고 사용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이로 인하여 한자를 간략하게 할 필요가 생겨났다.
한자의 간략화는 한자 개혁 중의 하나이다. 여기에는 한자 필획을 줄이는 것과 한자 자수를 줄이는 두 가지를 포함하고 있다. 현대 중국에서 간략화 이후의 한자를 ‘간화자(簡化字)’라고 부르고, 이에 대비되는 간략화 이전의 한자를 ‘번체자(繁體字)’라고 부른다.
사실 갑골문과 금문에도 간략한 글자가 있었기에 한자 간략화의 역사는 상나라 시대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이후 거의 대부분의 시기에 간략한 글자체가 계속 생겨났다.
현대 한자의 간략화 작업은 20세기 초에 시작되었다. 전현동(錢玄同), 여금희(黎錦熙) 등의 학자는 이 방면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1949년 신중국이 성립된 후에 중국정부는 1950년에 중국문자개혁연구위원회를 세우고 한자간략화 문제를 중점적으로 연구하였다. 1964년 중국국무원은 〈간화자총표(簡化字總表)〉를 발표하였고, 1986년에는 수정을 거쳐 〈간화자총표〉를 다시 발표하였다.
현대 중국에서 한자를 간략화한 이후 사람들의 생활과 학습, 업무 등이 크게 편해졌다. 현재 중국대륙에서 표준 글자를 보급하면서, 고적의 출판이나 서예창작 등의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 정식의 간화자를 사용하고 과거의 번체자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홍콩이나 마카오, 대만 등에서는 현재까지 여전히 번체자를 사용하고 있다.
.출처: 한자의 간략화(중국문화와 한자, 2013. 3. 28., 도서출판 역락)
4). 한자의 확산.
한자는 중국 민족의 언어를 기록할 뿐만 아니라 중국 이외의 지역에까지 전파되어 다른 민족의 찬란한 문화를 반영하여 점차 한자문화권을 형성하였다. 한자문화권에는 중국,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가 포함된다.
.출처: 한자의 확산 (중국문화와 한자, 2013. 3. 28., 도서출판 역락)
5). 한자와 서법. 화교들이 몰려있는 동남아 지역에서 한자사용중.
한자(漢字)는 세계에서 사용인구가 가장 많은 문자일 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문자들 중에 남아 있는 유일한 표의문자(表意文字)에 속한다. 사용지역으로는 중국 대륙, 타이완, 홍콩의 중화권과 화교들이 몰려 있는 동남아 지역 외에도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한국과 일본에서도 여전히 문자로서의 기능을 잃지 않고 있다. 그리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중국에 대한 관심과 중국어 학습의 열풍으로 문자로서의 이미지가 폭넓게 각인되고 있는 추세이다.
.출처:한자와 서법(쉽게 이해하는 중국문화, 2011. 9. 7., 다락원)
6). 중국어[Chinese language, 中國語]. 한국어 ·일본어의 약 50∼55 %, 베트남어의 약 60 %가 한어적(漢語的)인 어휘로 이루어져있다고 설명됨.
- 중국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민족(漢民族)의 언어.
‘중국어’라는 명칭은 현대 중국어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될 우려가 있으므로 역사적으로 그것을 통틀어 일컬을 경우에는 한어(漢語)라고도 한다. 해외의 화교(華僑) 사이에서도 쓰이고, 한민족의 문화에 동화된 국내의 이민족(異民族)들도 모어(母語)로 삼고 있어서, 세계인구의 약 1/5이 사용하고 있는 대언어이다. 언어학상으로는 중국티베트어족(漢藏語族:Sino-Tibetan languages)에 속하여, 티베트어 ·버마어 ·타이어 등과 친족관계에 있다고 하나, 그 공통점은 음조(音調)의 체계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뿐, 기타의 유사성은 거의 인정하기 어렵다. 기록으로서 나타나기 이전의 중국어는 한민족의 기원과 마찬가지로 확실한 점을 알 수 없다. 한민족이 서아시아로부터 중부 아시아를 거쳐 황허강[黃河] 유역으로 이동하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자료는 아직까지 없다.
베이징 원인[北京原人]과 같은 화석인류(化石人類)의 고고학적 자료를 후세의 아시아 인류와 관련시키기에는 그것이 시간적으로 너무나 동떨어져 있으며, 따라서 중국의 언어와 직접 관련되는 발굴품으로서는 BC 18∼BC 12세기경의 은대(殷代)의 갑골문자(甲骨文字)가 가장 오래 된 것이다. 인류문화의 장구한 역사를 통해서 본다면 그다지 멀지 않은 시대라고도 할 수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3,000∼4,000년 전에 한민족은 이미 오늘의 한자와 거의 동일한 원리의 문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제사나 전쟁 ·수렵(狩獵) 등의 결과를 미리 점친 점괘(占卦)를 귀갑(龜甲)이나 짐승뼈에 새겨서 기록한 것으로, 글자의 모양은 만화적(漫畵的) ·상징적이다. ‘虎 ·鹿 ·龜 ·一 ·二 ·三’과 같이 하나의 한자(漢字)가 한 가지 의미만을 나타내고, ‘五十六’을 ‘五六’과 같이 쓰는 생략법도 사용된 이 갑골문자는 후대에 한문으로서 그 간결성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중국문자의 원류(源流)이다.
은(殷) 이후의 주(周) ·진(秦) 시대에는 전서(篆書), 한대(漢代)에는 예서(隸書) ·해서(楷書)의 자체(字體)가 이루어지고, 글자를 기록하는 재료도 대나무 ·나무(간혹 금속 ·돌도 사용했음)에서 종이로 바뀌었지만, 문자가 성립되던 초기에 굳혀진 생략의 습관과 상징성 등은 그대로 이어져서 그 문장은 마치 오늘날의 전보문(電報文)이나 암호처럼 간략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한문의 특징은 고전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기원전 수세기에 걸친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발달하여, 한대(漢代)에 무르익고 오늘날까지 전하는 고문헌(古文獻)들은 단어(單語)의 길이가 일정하고 어미변화(語尾變化)가 없다는 점에서 라틴어 문장보다도 간결하다. 또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후세의 사람이나 외국인에게도 공통적으로 이해되고 응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라틴어와 흡사하다. 현대의 중국인이 주대(周代)의 《시경(詩經)》을 감상하고, 한국인이 당시(唐詩)를 읊조릴 수 있는 것도 모두 한문의 이와 같은 특성 때문이다.
이렇듯, 당시의 발음(發音)을 알지 못하여도 그 의미가 완벽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부호화(符號化)되고 안정성을 지닌 문어(文語)는 달리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한문을 흔히 ‘동양의 에스페란토’라고 일컫기도 한다. 즉, 법칙에 따라서 단어나 문장을 쓰면 외국인과도 곧바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한문의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이와 같은 문어와 일상의 대화에서 쓰이는 구어(口語)가 별개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원성(二元性)은 또 그대로 중국어의 크나큰 난점이 되기도 한다. 한편, 중국어는 고대 이래로 주변의 여러 언어에 대하여 한자와 수많은 어휘를 이식(移植)하였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한국한자음 ·일본한자음 ·베트남한자음 등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한국어 ·일본어의 약 50∼55 %, 베트남어의 약 60 %가 한어적(漢語的)인 어휘로 이루어져 각각 그 민족의 언어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출처: 중국어 [Chinese language, 中國語] (두산백과)
4. 라틴어에 대한 설명들
1). 두산백과
라틴어[Latin language]
- 인도유럽어족(語族)의 이탈리아어파(語派)에 속하는 로마인의 언어.
BC 1세기 이후 고대 지중해 세계의 공용어 ·공통어로서 광범하게 통용되어 우수한 문학을 낳았고, 프랑스 ·이탈리아 ·에스파냐 ·포르투갈 ·루마니아 등 로망스제어(諸語)의 근원이 되었다.
.출처: 라틴어[Latin language, ─語] (두산백과)
2). 교회용어사전의 설명.
"라틴어는 근세기 초까지도 정치, 경제, 문화, 학문 등 여러 분야에서 중세유럽의 공용어처럼 사용되었다", "비록 라틴어의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오늘날까지도 가톨릭교회에서는 여전히 라틴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서술됨.
라티움(Latium)이라 불렸던 테베레 강 유역 주민의 언어. 주전 5세기경에 로마의 언어로 부각되었고, 로마가 지중해를 정복하면서 점차 지중해 주변 국가로 퍼져나갔다. 그 후 4세기 초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라틴어는 자연스럽게 교회 언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예배나 예전이 라틴어로 행해졌고, 교황의 조서(papal bull)나 칙령 등도 모두 라틴어로 기록되었다. 뿐만 아니라 라틴어는 근세기 초까지도 정치, 경제, 문화, 학문 등 여러 분야에서 중세 유럽의 공용어처럼 사용되었다. 비록 라틴어의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오늘날까지도 가톨릭교회에서는 여전히 라틴어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도 유럽 등지의 각급 학교에서는 고전 라틴어를 가르치며, 고전어 연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어 등 유럽 대부분의 언어는 모두 라틴어에서 파생되었다.
.출처: 라틴어[-語, Latin] (교회용어사전 : 교파 및 역사, 2013. 9. 16., 생명의말씀사)
3). 라틴어와 영어의 역사적 관계
라틴어법[Latinism]
- .출처: 라틴어법[Latinism] (두산백과)
나). 영어안에 많은 라틴어휘가 들어오게 된 과정.
고대의 영어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고대영어라고 해서 외국적인 요소가 전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앵글로색슨족들이 오기 전에 영국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켈트인(人)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앵글로색슨족들이 영국에 오기 훨씬 전에 영국에는 이미 켈트어(語)의 씨가 뿌려졌으며 이들이 영어를 형성하는 데 있어 어떠한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생각은 당연하다.
현재 쓰고 있는 잘 알려져 있는 지명에는 켈트어에서 온 것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Kent', 'York', 'London', 'Thames', 'Avon', 'Cumberland', 'Cornwall' 등이 있다. 그러나 앵글로색슨족들이 영국에 오기 전에 일어났던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로마제국의 영국정복이라는 획기적인 사건이다.
카이사르는 이미 BC 55년부터 영국을 침공하였으며, 그후에도 로마제국의 영국에 대한 침공 노력은 꾸준히 계속되어, 마침내 210년경에 이르러서는 북부 산악지대를 제외하고서는 영국 전토를 정복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로마제국의 영국정복은 410년경까지 계속 되었는데 이 시대의 영국을 '로마화한 영국(Romanized Britain)'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은 영국은 강력한 로마제국의 지배에 놓이게 되면서 영어 안에 많은 라틴어휘가 들어오게 되었다. 이러한 라틴어휘의 도입은 이미 앵글로색슨족들이 영국에 이주하기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지만 이들 어휘는 영국 땅에 깊숙히 뿌리를 내려 고대영어 안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출처: 고대의 영어(두산백과)
4). 라틴어와 독일어의 역사적 관계
가). 두산백과의 설명. ...각 제후(諸侯)나 도시가 종전까지 공용어(公用語)로 사용하던 라틴어 대신, 독일어를 관청용 독일어로 사용.
독일어[German language, 獨逸語]
...그리고 각 제후(諸侯)나 도시가 종전까지 공용어(公用語)로 사용하던 라틴어 대신, 독일어를 ‘관청용(官廳用) 독일어’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편, 독일민중에게 성서(聖書)를 이해시키기 위하여 성서의 독일어 번역을 계획하고 있던 M.루터는 방언의 차이가 없는 공통어를 써서 번역할 것을 꾀하였는데, 그는 교역로(交易路)의 발달로 비교적 정리된 형태를 가지게 되고, 또 상당히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던 작센의 관청용어에 착안하여, 그것을 모체로 독자적인 공통어를 발전시켜 독일어 성서 번역을 완성하였다(1522).
이 성서가 독일 각지로 널리 보급되어 가자 그것이 전국적인 공통어를 낳게 하는 자극제 구실을 하게 되었다.
.출처: 독일어[German language, 獨逸語] (두산백과)
나). 중세때의 공문서 용어는 전부 라틴어였기 때문, 그것과 구별하기 위한 표현으로, 독일어가 "민중의 언어"라는 뜻 가졌다는 역사 설명.
독일어를 뜻하는 Deutsch는 원래 ‘민중의 언어’라는 뜻이었다. 중세 때의 공문서 용어는 전부 라틴어였기 때문에, 그것과 구별하기 위한 표현이었다. 11세기경에 이르러, 이 용어는 독일의 국가나 사람에 대해서도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철자법이 확정된 것은 겨우 18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출처: 독일어와 Deutsch라는 말(두산 백과)
5. 2차대전이후, UN공용어는 영어,불어,중국어,스페인어,러시아어.
UN공용어
국제연합(유엔 UN) 공식언어
유엔 헌장에는 영어, 불어, 중국어, 스페인어, 러시아어가 유엔 공식언어로 규정되어 있으며 그뒤 아랍어가 총회, 안보리 및 경제사회이사회의 공용어로 추가되었다.
.출처: 국제연합(유엔 UN) 공식언어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파괴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패전국에 항복국가가 된 戰犯國(UN敵國) 일본이 왜곡시키고 단절시켰던, 한국의 유교와 교육등을 되돌아보고, 주권수호.상실주권 회복을 위해 다방면으로 연구.검토하고, 세계사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고 있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의 무효에 대한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1905
2. 역대 국사교과서에 나타나는 성균관. 개화기.대한제국기, 미군정기 및 교수요목기, 대한민국 수립후 1차 교육과정~7차 교육과정까지.
http://blog.daum.net/macmaca/1900
3. 한일합방과 을사 5조약이 원천무효라고 결의한 한국 국회결의. 그리고 한일합방건 일본정부 발표에대해 원천무효라고 밝힌 한국 외무부
http://blog.daum.net/macmaca/712
4. 일본강점기때 폐지.왜곡된 성균관. 해방후에 설립(재건승계)된 성균관대학교가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백과사전.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현대 한국사적 입장에 대한 학술적 고찰. 그리고 한국사의 성균관대(성균관에서 이어짐)와 세계사를 연계하여 해방이후 합법적으로 설립된 敎皇聖下 윤허대학인 예수회의 서강대와의 Royal.Imperial 특성의 공통점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733
5. 自然人에 대한 공평한 능력우대와 달리 法人體로볼때, 일본 강점기 잔재 경성제대.관립전문학교 후신 서울대등은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강점기 잔재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732
6. 2차대전 결과와 상관없이,세계사와 한국사를 바꾸지 못하면, 교과서(백과사전,학습서), 학술서적상의 기득권 대학 학벌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1812
7. 종교인구 조사를 어떻게 해도, 응답자가 자기종교를 어떻게 표기해도 한국인은 모두 유교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