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세계사 정리로 살펴보는 중국 한나라 태학과 국자감, 중세유럽의 대학. 볼로냐,파리대학, 그리고 한국사 성균관.
I. 중국의 대학
1. 한나라 태학.
가). 학생백과 자료.
한무제:한(漢)나라의 황제로, 흔히 ‘한무제’라고 부른다....동중서의 건의에 따라 태학과 5경 박사를 설치하여 유학을 진흥하였다.
나). 수능관련 세계사. Google에서 발췌.
[PDF]세계사
. 필자 주 1). 내공의 힘 정답과 해설. 이런 용어를 쓰는 고등학교 세계사 교육자료.
2. 국자감. 이는 Google에서 자료 발췌.
EBS 수능특강 사회탐구영역 동아시아사 (2014년) - Google 도서 검색결과
3. 국자감. 이는 Google에서 자료 발췌.
:: 수능 세계사 정리 6 : 중국사 4 / 명(明), 청(淸)
4. 경향신문 홍인표의 차이나 투데이 2011.4.26 보도기사임. 홍인표는 베이징 특파원을 지낸 경향신문 기자임.
베이징대가 태학, 국자감의 전통을 이어받은 국립대학이다...
5. 두산백과에 나오는 베이징 대학교 설명.
1898년, 원·명·청 시대에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국자감(國子監)을 대체하여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으로 창설하였다. 1902년 경사대학당의 교육학원이 오늘날의 베이징사범대학교로 떨어져 나갔고 1912년 중화민국 성립에 수반하여 국립 베이징대학으로 개칭되었다. 1917년 학장으로 취임한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개혁으로 신문화운동의 중심이 되어 근대 학술연구와 토론의 자유 학풍을 확립하였고, 특히 1919년의 5·4운동이 재학생들에 의해서 추진된 이후 학생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20년 난징대학교에 이어 중국에서 2번째로 여학생 입학을 받아들였다. 중일전쟁 중인 1937년에 국민정부가 칭화대학, 난카이[南開]대학과 함께 후난성 창사[長沙]의 오지(奧地)로 모아서 합병하여 창샤임시대학교로 만들었다가 1938년 다시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으로 옮겨 시난[西南]연합대학을 조직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6년 연합대학은 해산되어 각각의 학교로 분리되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1952년의 대학 재편성에 의하여 옌징[燕京]대학을 합병하고 칭화[淸華]대학과의 조정이 단행되어 문·이과계의 기초이론을 중심으로 한 종합대학으로 개편되었다....
.출처: 베이징대학교 [Peking University, 北京大學(북경대학)] (두산백과)
II. 중세유럽의 대학. 볼로냐,파리대학
1. Google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BS는 한국에서 수능대비 교육방송을 해 줍니다.
[HWP]2 - EBSi
2. 이 내용도 역시 Google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16강 중세 서유럽의 문화와 비잔티움 세계 ① --- ?카노사의 ...
3. Google에서 발췌함. 교보문고 자료
유럽을 만든 대학들 볼로냐대학부터 유럽대학원 ... - 교보문고
III. 성균관(해방이후 성균관대로 이어짐)에 대한 교과서나 수능 자료.
1. 최태성의 중급 수능 한국사. Google에서 발췌
큰별쌤 최태성의 중급 수능 한국사 (구석기~조선전기)
. 필자 주 2). 개성에 있는 성균관은 고려말에 원나라의 압력을 받아 고려 국자감을 성균감.성균관으로 개칭하고, 조선초기에는 이 성균관 명칭을 그대로 답습한 것입니다. 고려왕조를 멸망시킨 조선시대에 개성에 있던 성균관은 고등학교격인 향교의 위치가 되었지요. 한양에 있던 성균관만이 유일무이의 최고대학.
. 필자 주 3). 다음은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에 나오는 성균관에 대한 설명입니다.
우리 나라 최고학부의 명칭으로 ‘성균(成均)’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298년(충렬왕 24)에 국학(국자감을 개칭한 것)을 성균감(成均監)이라 개칭한 데서 비롯된다. 그 뒤 1308년에 충렬왕이 죽고 충선왕이 즉위하면서 성균감을 성균관이라 개칭하였다.
1356년(공민왕 5)에는 배원정책(排元政策)에 따른 관제의 복구로 국자감으로 환원되었다가, 1362년 다시 성균관으로 복구되었다. 한편 공민왕 즉위초에는 종래까지 성균관(국자감)에 유교학부(儒敎學部)와 함께 설치되어온 율학(律學)·서학(書學)·산학(算學) 등의 기술학부를 완전히 분리시켜 따로 교육시키게 함으로써, 성균관은 명실공히 유학교육만을 전담하는 최고학부가 되었다.
이와 같은 성균관은 조선 왕조가 들어선 뒤에도 그대로 존치되었다. 조선왕조의 한양천도(漢陽遷都)에 따라 새 도읍지의 동북부지역인 숭교방(崇敎坊) 부근(지금의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구내)에 터가 정해져서 1395년(태조 4)부터 건축공사가 시작되어 3년 만에 대성전(大聖殿 : 단종 때 大成殿으로 개칭됨.)과 동무(東廡)·서무(西廡)의 문묘(文廟)를 비롯하여 명륜당(明倫堂)·동재(東齋)·서재(西齋)·정록소(正錄所)·식당·양현고(養賢庫) 등의 건물이 완성됨으로써 새로운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출처: 성균관[成均館]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필자 주 4). 국자감이 원나라 간섭기에 국학, 성균관이라 바뀌는 과정.
국자감의 명칭은 원나라 간섭기에 국학으로 개칭되었으며, 충선왕이 개혁을 추진할 때 성균관이라 고쳐 불렀다. 공민왕 때 다시 국자감으로 했다가 1362년 성균관으로 개칭되었다. 국자감의 학부편성은 유학학부인 국자학(國子學)·태학(太學)·사문학(四門學)과 기술학부인 율학(律學)·서학(書學)·산학(算學)으로 구성되었다. 입학자격은, 유학학부는 귀족자제를 대상으로 하여 국자학은 문무관 3품 이상, 태학은 5품 이상, 사문학은 7품 이상의 자제가 입학하도록 규정했으며, 기술학부는 8품 이하의 자제와 서인(庶人)이라고 되어 있어, 신분이 중요한 요건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교과과정은 유학학부에 있어서는 <논어>와 <효경>을 교양필수과목으로 하고, 전공과목은 <주역>과 <상서> <주례> <예기> <의례> <모시> <좌전> <공양전> <곡량전>의 9경으로 되어 있고, 그 밖에 산술과 시무책을 익히고 매일 습자를 하도록 했다. 각 과목에 이수연한이 규정되어 있는데, 이는 최장의 연한을 말하는 것으로 능력에 따라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으며, 유생으로 9년, 율생으로 6년을 재학하여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고 성업(成業)의 가망도 없는 자는 퇴학시켰다. 학관으로 유학부에는 박사·조교를 두어 각 경서를 가르치도록 했으며, 기술학부에도 각기 박사를 두어 전공분야를 담당케 했다.
.출처:국자감[國子監] (한국고중세사사전, 2007. 3. 30., 가람기획)
2. 수능 한국사 해설지. Google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PDF]2016 수능 명쾌한 한국사 개념완성 - 해설지.pdf
IV. 한국은 국사 성균관에서 이어진 성균관대의 600년 역사와 정통성을 정부와 민간 백과사전, 학습사전, 성균관, 성균관대등에서 공통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조선왕조(대한제국 황실) 후손인 황사손(이 원)의 유교 국가제사(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 주관)도 다시 복구되었습니다. 일본 강점기때문에 피해를 보아온 성균관(성균관대)의 위상회복을 위하여 대응하던 중, 세계사의 전통 지배세력인 교황청 산하 예수회의 御 서강대 분들과 연결되어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 임금으로 세계적인 매체들에 발표해와서 국제법상 그 부분은 앞으로도 이어가겠습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학문과 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교육적 측면에서 자료인용을 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은 고등학교때 이렇게 한나라 태학이나,국자감, 중세 유럽의 볼로냐.파리대학을 배우고 문제풀이하고 그런 나라임을 알리고자 학술적.교육적으로 자료를 인용한 것입니다. 한국 문화적 특성으로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첨부자료
1. 한일합방과 을사 5조약이 원천무효라고 결의한 한국 국회결의. 그리고 한일합방건 일본정부 발표에대해 원천무효라고 밝힌 한국 외무부
http://blog.daum.net/macmaca/712
2. 일본강점기때 폐지.왜곡된 성균관. 해방후에 설립(재건승계)된 성균관대학교가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백과사전.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현대 한국사적 입장에 대한 학술적 고찰. 그리고 한국사의 성균관대(성균관에서 이어짐)와 세계사를 연계하여 해방이후 합법적으로 설립된 敎皇聖下 윤허대학인 예수회의 서강대와의 Royal.Imperial 특성의 공통점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733
3. 自然人에 대한 공평한 능력우대와 달리 法人體로볼때, 일본 강점기 잔재 경성제대.관립전문학교 후신 서울대등은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강점기 잔재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732
4. 2차대전 결과와 상관없이,세계사와 한국사를 바꾸지 못하면, 교과서(백과사전,학습서), 학술서적상의 기득권 대학 학벌들은 바뀌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