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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대학.종교관련 의견은 교과서(한국사,세계사,윤리,한문등)와 참고서, 백과사전, 주요 사전, 학술서의 학설 및 의견을

필자의 대학.종교관련 의견은 교과서(한국사,세계사,윤리,한문등)와 참고서, 백과사전, 주요 사전, 학술서의 학설 및 의견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균관대와 성균관의 학설 및 의견도 반영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 및 세계의 주요 대학들에 대한 필자의 의견은 교과서나 참고서, 백과사전, 여러 사전, 학술서를 읽으면서 의견을 반영한 것입니다.    

 

일본강점기 이후 미군정을 거치면서 한국정부의 영향력이 작동하지 않을 때 발생한 대중언론(동아.조선 및 기타)의 기사내용은 교과서와는 많이 다른데, 이는 국권상실기를 거치며 미군정기까지는 한국 정부의 행정력이 전혀 미치지 않아서 그 대중언론의 이질적 기사들은 지금까지 상당히 많은 부분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특성이 있습니다. 해방당시 미군정기에 경성제대 및 일본강점기 전문학교들을 주축으로 국립 서울대를 만들려는 계획에 전국적인 반대가 있었음은 아시는 분은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 한국인의 자주정부가 출현하기 전이라 시기상조라는 의견 및, 식민지 노예교육의 연장을 두려워하는 분위기도 겹쳤을 것입니다.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그 당시 항복한 나라 일본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교육때문에 한국인들은 서로 싸울것이며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는 망언을 한 신문기사 내용은 수없이 많이 현재, 발견됩니다.    

 

 패전국 일본의 적산재산처리처럼 국립 서울대로 만들려는 계획(그 당시 미국은 사립대 Harvard등이 강한 나라라, 미군정 당시의 국립대 의미는 없으며 Royal대인 성균관의 전통은 그대로 유효한 상태였음)은 찬성받지 못하면서 미군정에 있던 일본학교 졸업자출신 친일파 유억겸이라는 한국인 중견관료가 밀어붙인것이고, 나중에 대한민국 정부 출범후에는 상층부가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시영, 국무총리 이범석, 국회의장 신익희등으로 독립운동가 출신들이 늦게나마 한국정부의 중요요직을 차지하여 교과서편찬은 어느정도 제대로 된 듯합니다. 신문기사 내용과는 다르게 국민들의 의식은 왜놈학교 후신 서울대나 연희전문 후신 연세(일본강점기에 형성됨. 강점기에 형성된 이질적인 외국인이 세운학교)나 보성전문후신 친일파 김성수의 고려대가 신문에 어떻게 나오든 대통령은 이승만, 부통령 이 시영, 국무총리 이범석, 성균관대 총장 김창숙 이렇게 형성되어, 나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5.16혁명이후 김창숙 선생의 병문안을 간 것이겠지요(김창숙 선생이 혁명에 찬성하는 표시는 하지 않으신채, 돌아가셨지요).  

 

서강대 출신 가수 양희은씨의 부친은 군인출신인데, 100번 서울대, 국시110브(일본 연희전문 후신 연세대로 파악됨)라는 양희은씨 의식은 부모나 선생님.선배.지인에게서 영향받은 의식으로 보입니다. 이 의식이 10년 넘게 한국 방송계를 풍미했지요. 나라를 빼앗겼거나 침략등으로 주권국의 어떤 전통문화가 왜곡되었을 때는 아주 효과적인 매체가 방송입니다. 신문보다 아주 위력적이지요. 그러나 방송은 한계가 있기때문에, 결국 주권회복된 한국은 교과서나 참고서 백과사전뿐 아니라, 신문.잡지등에서도 국사 성균관을 위주로 하여 협력자인 서강대와 같이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를 인식시켜야 할것입니다. 세계사의 漢나라 太學.國子監(국자감을 대체한 후신이 京師大學堂이며 북경대임), 중세 유럽에 세워진 볼로냐.파리대학의 학술적 정설은 바뀌지 않아왔고,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것 같기때문에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의 Royal대가 대중언론인 신문.잡지등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습니다.    

 

방송에서의 양희은씨 의견인 100번 서울, 국시 110브(일본 연희전문 후신 연세를 의미)는 왜놈학교.일본강점기에 들어온 이질적 외국계 선교사학교에 대한 인식의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의견은 다양한 법입니다.     

 

필자가 주안을 두는 법률이나 조약상으로는 경성제대와 일본 관립전문학교가 주축인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으며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데, 을사조약.한일병합 이전에는 없던 소위 왜놈학교입니다. 御서강대 임금님의 의견은 대중언론이 어떻든, 기독브이가 일본잔재 경성제대후신 서울대보다는 높다는 의견이지요. 그런데 해방후 대중언론에서 서울대뒤 연세대나 서울대.고려대의 신문기사가 오래되어 연세대가 서울대뒤의 연세대에 대한 유혹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왜놈 학교들은 대학뿐 아니라 중.고등 학교에도 많지요.   

 

여하튼 두번의 유림대회를 거치면서 성균관대는 복구.재건되었는데 전국 유림대회에서 고문에 이승만.김구, 위원장에 김창숙 선생을 추대하여 성균관대를 설치결의(복구 설치개념)하여 사립대 상태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이질적인 대중언론 및 이에서 파생된 입시지나 학원가의 의견은 어디까지나 한국의 국권상실기와 미군정기를 거치며 형성된 민간영역의 기사일뿐입니다. 교과서나 참고서, 백과사전, 여러가지 사전, 학술서의 내용이 正說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극명한 차이는 UN 국제법 위원회에서 을사조약을 무효라고 한 부분과, 현행 헌법에 한일합병무효(여러가지 불평등조약도 무효) 및 대일선전포고를 한 임시정부의 헌법특성으로 극복해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국사 성균관에서 이어진 대학이 성균관대라고 대통령명령에 의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그 법적 효력이 반영된 점을 활용하여야 하겠습니다.  

 

* 첨부자료

 

1.일본강점기때 폐지.왜곡된 성균관. 해방후에 설립(재건승계)된 성균관대학교가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백과사전.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현대 한국사적 입장에 대한 학술적 고찰. 그리고 한국사의 성균관대(성균관에서 이어짐)와 세계사를 연계하여 해방이후 합법적으로 설립된 敎皇聖下 윤허대학인 예수회의 서강대와의 Royal.Imperial 특성의 공통점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733       

 

2. 自然人에 대한 공평한 능력우대와 달리 法人體로볼때, 일본 강점기 잔재 경성제대.관립전문학교 후신 서울대등은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강점기 잔재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732

 

3. 2차대전 결과와 상관없이,세계사와 한국사를 바꾸지 못하면, 교과서(백과사전,학습서), 학술서적상의 기득권 대학 학벌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