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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성균관(宮성균관대=御 서강대), 중.고등학교는 향교.서원.사부학당의 역사성에 해방후 경성제대 후신 국립 서울대설치에 반대하던 학교들

대학은 성균관(宮 성균관대=御 서강대), 중.고등학교는 향교.서원.사부학당의 역사성에 해방후 경성제대 후신 국립 서울대설치에 반대하던 학교들이 적당할 것. 



1. 한국의 Royal.Imperial대인 성균관대(宮성균관대) 와 서강대(御 서강대)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중.고등학교들


1). 대학: 조선(대한제국 시대)시대 유일무이의 대학이던 성균관(필자는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로 영구적 협력관계로 정형화시켜옴).  


가). 궁 성균관대 학벌위원 명단


궁 성균관대 임금: 윤 진한(궁 유 윤진한, 1981 전주 신흥고 졸업, 1983년 성균관대 경상대학 무역학과 퇴계장학생 입학, 1988년졸업. 이후 대기업 근무하고 현재는 Sales Man, 문필가의 길을 걷고 있음)

궁 성균관대 감찰: 전병희(성균관대 경상대학 무역학과 졸업. 기존의 법학과 출신 최운인에서 새로 교체 임몀함), 손재석(성균관대 유학대학 한국철학과 졸업)


나). 어 서강대 학벌위원 명단


어 서강대 임금: 서 진교(1981 전주 신흥고 졸업, 1981 서강대 사학과 입학하여 졸업. 서강대 기록보존소 교수. 로욜라 도서관 기록보존소에서 연구교수로 서강사료 기록/보존 업무를 맡고 있다고 나옴)

어 서강대 감찰: 신병호(서강대 경영학과 졸업), 이중민(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궁 성균관대 임금이나 어 서강대 임금은 門閥의 세습직은 아닙니다. 헌법에 반영될지 않될지 잘 모르지만,이전처럼 정신적 통치권은 계속 유효할 것입니다. 임금들의 후계자 문제는 때가 되면 차후에 언급하겠습니다. 감찰들도 영구적 지위는 아니고 세습직도 아닙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공무원과 같은 경직된 자세는 갖지 않을 것입니다.  


2). 중.고등학교: 향교.서원.사부학당의 역사성을 기반으로 함. 그리고 해방후 미군정시대에 일본 강점기 잔재인 경성제대 후신들을 국립 서울대로 강행추진하던 정책에 반대하던 학교들을 중심으로 해야 타당함.


조선일보 1947.2.9 보도기사에 나온 국립 서울대안에 반대하던 학교들.


@ 교육계 위기에 직면. 중학교 맹휴선풍. 유억겸 문교부장...



국립 서울대학안을 에워싼 학생들의 맹휴사건은 널리 중학교에까지 파급되었다는 그 당시 보도가 있습니다.


7일 현재 동맹휴학(맹휴)에 들어간 중등학교는 다음과 같다.


. 朝工 야간부, 漢城中學, 東明高女, 大東상업, 東星中學, 배재중학, 경기공업, 경복중학, 휘문중학, 京東중학, 中東중학.


* 필자 주 1). 위에서 경복중고나 경동중고는 일본 강점기에 설립되어 불법.강제의 식민사관에 젖어든 다른 공립중.고등학교와 성격이 비슷하여 제외시켜야 하겠지만, 그 공로를 보아 그 역사적 사실은 인지하면서 묵인하는 방법이 적당할 것입니다.  

일본강점기에 불법.강제의 식민교육에 노출된건 한국인 전체의 상황이었으므로, 향교.서원.사부학당의 역사성을 중심으로 하면서, 신문기사에 나온 위 학교들의 순서는 정형화 시키지 않겠습니다. 여기에 신사참배에 반대해 자진 폐교한 전주 신흥고등도 구한말에 토대한 학교들이므로 추가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일본 식민교육에 강하게 종속된 공립 중고들인 서울중고, 용산중고, 해방이후의 서울사대부중고, 그 이전의 경기중고 및, 각 지역에 세워진 일본 강점기 공립중고교는 식민교육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해야 하는 왜놈학교(경북고, 부산고, 경남고, 대전고, 전주고, 광주제일고, 청주고, 춘천고등 아주 많음)라고 일컬어지므로, 주권은 인정치 않으면서 방관하는 자세도 어느정도 필요할 것입니다.     



2. 고종과 한국정부의 반대 및 자구노력, 의병활동, 군대해산 반대 투쟁, 3.1운동, 임시정부 무력항쟁으로 보면 한국 국내법상 을사조약은 무효가 당연함. 또한 을사조약 강제 체결당시 프랑스의 법학자 프란시스 레이교수의 "을사조약은 무효"라는 학설은 국제관습법에 해당함. 따라서 일본이 일본측 주장대로 그 당시부터 을사조약이 타당하다고 내세우는 논리는 전체적으로 무효였음. 강제.폭력에 의해 을사조약이 행해져서 한일병합도 당연 무효임.   


2차대전당시 한국 임시정부의 참여도 있었고, 강제.폭력으로 체결한 을사조약이나 한일병합은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의 정신에도 맞지 않음. 그리고, 일본이 포츠담선언을 받아들여 항복하였으므로, 이 선언들 기준으로 볼때 그 당시부터 일본의 주권은 한국 영토에 없었고, 일본의 교육제도나 총독부강제 포교종교, 총독부 및 경찰.헌병등의 강제 폭력적인 일본 통치기구는 한국 영토에서 축출되어야 하는 정신(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에 의거함)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함. 물론, 그 이후에 UN국제법위원회에서 을사조약은 무효라고 법리적 의견을 제시한 국제법을 바탕으로, 한국과 일본간에 체결한 한일 기본조약의 한국측 입장, 현행 헌법에 나타난 임시정부(대일 선전포고) 조항으로 볼때도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은 을사조약.한일병합 무효상태에서 한국에 아무런 주권이 없고, 한국 영토에서 축출되어야 할 대상임은 변치 않습니다.    


3. 아베 노부유키의 말이 생각남. 해방당시의 조선일보를 보면서, 경성제대를 국립 서울대로 만드려는 국대안(국립 서울대 설치안) 파동과 연상되어 그의 말이 다시 심각하게 느껴집니다.  

 


1). 경성제대를 국립 서울대로 만드려는 계획에, 일반인들은 대한민국 자주정부가 출범하기 이전이라 시기상조라 반대하고, 대학은 대학 나름대로 반대하고, 이러한 반대운동은 널리 중학교(그 당시는 중.고 통합과정 5년제 중학교들로 많이 존재)에까지 파급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중학생들의 생각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시, 선배들이 겪어온 일본의 노예교육을 받기 싫다는 일본 불법강점기 잔재에 대한 거부였던 것 같습니다. 


다른 해석도 있지만, 위의 의견을 중심으로 그 당시 상황을 살펴봅니다. 


2). 우선 해방당시 미군정치하의 조선일보 기사로 살펴봅니다. 조선일보는 일본 강점기에는 일본식 연호도 쓰다가 해방후에는 다른 신문들이 발간되지 않을때, 단기라는 용어를 도입하다가 나중에는 서기와 함께 사용하여, 그 여파는 전국적으로 번진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군은 실제 역사가 아니라 수천살까지 살았다는 전설.신화입니다(고려시대 후반 중 일연이 삼국사기를 본 따 불교적 입장에서 각색해 낸  후발 불교설화가 삼국유사임. 正史는 아니고 전설.설화적 野史라고 교육되어 옴. 최근에 有史以來라는 사전에 공식 등록된 단어를 놔두고 단군이래라는 전설.설화적 용어를 쓰는 분도 있는데, 이는 공식적인 용어는 아닌것 같습니다). 


주요 관점은 일본강점기에 불법.강제로 만들어진 경성제대를 미군정 당시 국립 서울대로 만드려는 문교부([* 필자 주 2). 유억겸 문교부장은 그 당시 문교부장으로, 최근에 대통령과 국회에 친일파로 보고됨. 동경제대 출신으로 가족들이 친일파가 많음]의 계획에 국대안 파동이 일어나고 교육계는 위기에 직면했던 보도기사가 나갈정도로 국립 서울대 설치에 많은 반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항복선언후 도망.피신도 갔던 한국인들(조선 총독부에 근무하던 한국인들)을 복귀시켜, 미군정에 임용시키니까, 법인체로서의 대학.중학교의 주권은 한국영토에 성립되지 않던 일본 강점기 국립.공립 학교들의 사정과 달리, 미군정의 관리라는 개인적 특성을 활용하여, 일본 강점기 잔재 중심으로 해방 한국의 틀을 짜 버렸다고 여겨집니다(대한제국 구 황실의 황족.정부관리, 임시정부 요인들은 배제됨).

  

3). 그 당시 조선일보 신문기사


가) 1947.1.29(서기)


오차장[* 필자 주 3). 그 당시 문교부 차장 오천석을 말함] 담화. 國大案(국립 서울대 설치안), 종합대학등 언급


* 필자 주 4). 서울대 국대안 파동으로 아주 시끄러워 지기 시작한 때입니다.


나). 1947.2.9


교육계 위기에 직면. 중학교 맹휴선풍. 유억겸 문교부장...


* 필자 주 5). 국립 서울대학안을 에워싼 학생들의 맹휴사건은 널리 중학교에까지 파급되었다는 그 당시 보도가 있습니다.


7일 현재 동맹휴학(맹휴)에 들어간 중등학교는 다음과 같다.


. 朝工 야간부, 漢城中學, 東明高女, 大東상업, 東星中學, 배재중학, 경기공업, 경복중학, 휘문중학, 京東중학, 中東중학.


* 필자 주 6). 이 당시 신문내용은 여러 기사가 나옵니다. 


. 맹휴파동 

.서울대학문제:중학생 제군은 학교로 도라가라. 

.맹휴:배재중학.직원 총사직

.학생등록 겨우 2할:맹휴

.부일협력자 처벌안[* 필자 주 7). 임시정부 요인들도 귀국하고 해방당시니까 당연히 이런 의견이 나왔을 상황이라 여겨짐].


4. 이 당시는 마지막 조선 총독이던 아베 노부유키가 한국을 떠나면서 남기고 간 일본 군국주의 잔재 망령. 한국일보에 이런 내용이 기고되었군요.  


한국일보에 기고된 장영권(국가미래전략원 대표.정치학 박사)대표의 글과 함게 아베 총독의 일본 군국주의 망령을 다시 상기해 봅니다. 2013.10.15 기사입니다. 


[기고/10월 15일] 일본 아베 정권과 동아시아의 미래


" 현재의 조선은 결국 일본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했다.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아베 노부유키는 제 10대 마지막 조선총독부 총독을 지냈다. 아베 노부유키는 조선인에 대한 대규모 탄압과 검거를 자행했다. 그는 1945년 9월 8일 서울에 진주한 미군사령관 하지 중장에게 정식으로 항복문서에 조인했다. 그리고 며칠 후인 9월 12일 조선을 떠나면서 이와 같은 연설문을 발표했다.........

아베 노부유키는 이렇게 예언했다. "일본은 졌다. 그러나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우리 일본은 조선 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사관을 심어 놓았다. 결국 조선인들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우리는 지금 아베 노부유키의 '저주 섞인 예언'대로 역사와 이념문제로 심각한 국민적 갈등을 겪고 있다.'병 속에 든 괴물.' 일본을 지칭하는 표현 중의 하나다. 일본은 과거 20세기 초중반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했다. 급기야는 1941년 미국을 공습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전쟁 괴물' 일본은 끝내 미국에 패망하여 병 속에 갇히게 되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일본을 병 속에 든 괴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그런데 아베 노부유키의 후예인 강경 극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지난 해 12월 태동했다. 아베 정권은 '병 속에 든 괴물'일 가능성이 높다. 이미 그런 증거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부정은 물론 독도 등 주변국들에 대한 노골적인 영토야욕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아베 정권은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한반도 등 어디든 군대를 보낼 수 있도록 하고 자위대를 군대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강한 일본'을 내세운 아베 정권이 '괴물'이 되어 병 밖으로 나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동아시아는 또 다시 전쟁위기의 격랑에 빠져들 것이다...
5.아베 노부유키가  1945년 9월 8일 하지 중장에게 항복문서에 조인하고, 9월 12일 조선을 떠나면서 한말은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후에 한국인들이 시기상조라고 일반인이나 진학예정자들이 노예교육의 재현을 두려워 하는것을 묵살하고, 결국 경성제대를, 국립 서울대로 처리했습니다. 과도기의 미군정시대에 한국인의 공권력이 전혀 발휘될 수 없는 틈을 타, 국립 서울대로 강행해 현재까지 그 Negative Heritage(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및 그 추종세력들이, 한국 최고대학 성균관(성균관대로 이어짐)이나, 구한말에 세워진 중학교(현재는 중.고등학교 분리)들에 불이익을 주는 강점기 잔재로 유지되어왔습니다. 을사조약 무효상태에서, 폭력과 탐욕으로 한국을 약탈한 후,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한 마당에, 식민교육의 노예라든지,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든지 호언한것은 무언가 믿을만한 대책을 세워놓아서 그런것일까요? 그런 믿을만한 대책이 있었어도, 을사조약이 무효고, 일본이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했기 때문에,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및 그 추종세력의 카르텔은 인정해 줄 수 없습니다. 해방 한국인끼리 이간질하여 싸우는 노예적 삶을 살것이다 라고 저주한 그 저변에는 무슨 대책이 있었을까요? 이거 심각하지 않습니까? 최근에 성동격서 작전으로 유교에 대항하는 종교적 약탈도 떠오르고, 막무가내로 대중언론과 입시지, 학원, 배치표등에서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카르텔을 밀어붙이는것도 아베 노부유키의 지침을 이어받은 것일까요? 
여하튼, Royal 宮성균관대=Royal 御서강대 체제는 영구적입니다. 그리고 황사손(이 원)이 구 황실의 유교 국가제사(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를 이어받은 최고 제사장임도 명확합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파괴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패전국에 항복국가가 된 戰犯國(UN敵國) 일본이 왜곡시키고 단절시켰던, 한국의 유교와 교육등을 되돌아보고, 주권수호.상실주권 회복을 위해 다방면으로 연구.검토하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첨부자료. 일본 강점기 잔재 경성제대.관립전문학교 후신 서울대등은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강점기 잔재임은 변하지 않습니다http://blog.daum.net/macmaca/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