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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기 석전대제(先聖이시자 성인임금 文宣王의 칭호를 가지신 공자님 제사).

춘기 석전대제(先聖이시자 성인임금 文宣王의 칭호를 가지신 공자님 제사).



1. 3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성균관 대성전에서 공자탄신 2566년 춘기석전대제가 거행되고 있다. 


뉴시스 조종원 기자 2015.3.22 기사


http://www.newsis.com/pict_detail/view.html?pict_id=NISI20150322_0010743933


2. 지난 달 양력 3월 22일은 음력 2월 3일이었습니다. 유교 경전인 예기 월령에서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자구 해석은 新譯禮記(권오돈 역해, 홍신문화사 간. 2003.10.30 2판 5쇄 발행)에 의거하였습니다.   

天子乃獻開恙冰 先薦寢廟 

천자는 어린양을 신에게 드리고, 얼음을 꺼내고나서, 먼저 종묘(宗廟)에 바친 후에 신하들에게 나누어준다. 

上丁命樂正 習舞釋菜 

그리고 상순의 丁日에 악정에게 명하여 제생(諸生)이 문무(文武)의 춤을 익히고 석채(釋菜)의 예를 행하게 한다. 

天子乃帥三公九卿諸侯大夫 親往視之  천자는 3공.9경.제후.대부를 이끌고 가서 이를 본다  


* 필자 주 1).예기에서는 음력 2월을 중춘(仲春)이라 합니다. 예기에서는 음력 1월은 孟春,음력 3월은 季春이라 합니다. 

* 필자 주 2). 공자님에 대한 제사인 석전(석전대제,문묘제사)은 위에서 釋(上丁命樂丁 習舞釋菜)로 표현됩니다. 중 菜는 나물의 뜻입니다. 소나 양 따위의 희생을 생략하고 다만 약식으로 푸성귀와 나물등으로 간소하게 공자님 제사를 지내는 일을 석채(菜)라 합니다. 

* 필자 주 3). 석전과 석채에 대해서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일설에는 소[]·양() 등 고기를 제물로 올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의식을 석전이라 하고, 오직 나물[: 빈조류()]만 드릴 뿐 일체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 의식을 석채()라 한다.

 

* 필자 주 3-1). 석채는 또 석채(釋采)라고도 쓰는데 이는 선사에게 채백(采帛)을 올려 폐백으로 삼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는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의 의견입니다.


* 필자 주 4). 한국민족문화 대백과는 또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주대()에는 순()·우()·탕()·문왕()을 선성()으로 모시는 것이 고대 중국의 관례였다. 한()나라 이후 유교를 국교로 받들게 되자 공자를 점차 선성·선사의 자리로 올려 문묘의 주향()으로 모시는 동시에 석전으로 우러러 모시는 관례가 정착되었다  

* 필자 주 5). 두산백과는 석전(釋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석전이라는 이름은 '채()를 놓고(), 폐()를 올린다()'에서 유래한다. 처음에는 간략하게 채소만 놓고 지냈으나 뒤에는 고기·과일 등 풍성한 제물을 마련하여 지냈다.


* 필자 주 6). 한국 고전 용어사전은 菜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석채

[  ]

소나 양 따위의 희생을 생략하고 다만 약식으로 소채(蔬菜) 따위로 간소하게 공자(孔子)의 제사를 지내는 일. 석채().

용례

  • 문선왕은 백대 제왕의 스승이니, 석채의 제례를 마땅히 정결하게 하고 혹시라도 삼가함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 文宣王 百王之師 釋采之禮 當致精潔 毋或不虔 [태조실록 권제15, 3장 뒤쪽, 태조 7년 9월 12일(갑신)]
  • 출처:석채[釋采]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3.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필자 주 7). 춘추전국시대에 활동하신 제자백가 중 공자님의 유가사상은 도가.법가.묵가등과 혼재했는데, 한나라 때 공자님의 유가가 유교로 국교가 된것은 잘 아는 사실입니다. 유교를 공자님의 사상으로 집대성된 종교로 본다면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는 그 전래시기를 서기전 3세기의 위만조선과 한사군시대로 추정합니다. 다른 저서들은 한사군시대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여기에서는 자세한 서술은 피합니다. 

* 필자 주 8). 필자가 보기에는 공자님의 사상으로 집대성 되기 이전의 시원유교(始原儒敎)는 황하문명 중국에서 발현하여 역사시대인 은.주시대에 구체적으로 하느님.하늘님(天)이나 천자(天子)사상을 보이다가 한국에는 은나라 멸망이후 은나라 왕족 기자가 한국에 흘러들어 8조법금등으로 영향주고, 중국식 한문성씨 사용의 계기를 마련해 준것 같습니다. 한국 선사시대(先史時代)의 문화나 유교에 대해 한국민족문화 대백과는 이렇게 견해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한국 상고시대에 대해서는 문헌이 부족해 자세히 알기 어렵다. 이 분야는 한중 양국의 현존하는 여러 문헌과 금석학·갑골학·고고인류학·민속학 등의 방증자료를 통해 탐구되어야 할 것이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나라이후 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걸쳐 세계종교로 자리잡아, 2천년정도 동아시아인의 신앙생활에 체화된 유교입니다. 현재는 신생국가인 대만, 싱가포르의 중국인 국가와 각국 화교들을 합쳐 십수억명의 2천년 세계종교 유교입니다. 중국이 현재의 서유럽과 비교하면 1인당 GDP는 낮지만(중국의 1인당 GDP는 서유럽과 격차가 커 오랜세월이 지나야 격차가 좁혀질것. 그러나 황하문명, 유교, 태학.국자감 역사는 세계사의 정설), 수천년 황하문명과 유교, 漢字, 漢나라 太學.國子監(京師大學堂, 북경대로 이어짐)과 여러가지 문물은 서유럽과 교황청이 많이 개입된 세계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은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 교육.홍보하려는 목적으로 자료인용을 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