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문화대혁명이후 희미하게 꺼져가던 유교의 기득권을 부정치 않고 과거의 찬란한 역사를 망각치 않게 인정해 주신 분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聖下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한국 예수회 대학 서강대 출신도 과거의 유교역사와 성균관대 역사를 학술적으로 재조명하게 된 것 같습니다. 대중언론에서는 완전히 일본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그리고 일본때의 연희전문 후신 연세대, 친일파 김성수의 고려대(보성전문 인수) 체제로, 전기.후기라는 일본 강점기 잔재들의 발상에 의해 새로운 입시일자 구분 수법이 한국을 거의 장악해 가던 시대입니다. 친일파 방응모의 조선일보.친일파 김성수의 동아일보에 남아있던 일본 강점기 세뇌자.추종자들이 이런 입시일 구분법을 들고 나오고, 또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중심 기사를 대중언론에 발표해 대대적으로 세력을 확장해 버렸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로마 가톨릭에 바탕을 둔 폴란드 출신(유서 깊은 폴란드 야기엘론스키 대학교 출신)이신데, 1989년 봄에 필자가 LG그룹 신입사원을 1년을 채 못채우고 그만둘 즈음, 유교의 기득권을 완전 부정치 않고 학술적으로 유지되는 가교 역할을 하신 분들은, 교황청의 실세계파인 예수회 산하 서강대 출신들로 판단됩니다. 세계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던 서유럽과 교황청의 기득권은 그 당시에도 큰 탈 없이 이어지던 시대에 해당됩니다. 미국도 교황청 산하 신부들의 기득권은 존중하는것 같습니다.
필자는 1962년생, 성균관대 1983학번(성균관대 1983학번 퇴계 장학생으로 입학). 경상대학 무역학과 출신인데, 헌법이나 국제법,행정학등도 수강하고 법에 대한 기초는, 성대 입학이전에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없이 반복하며 세계사를 잘 모르는 이공계 출신들과, 대중언론에서 잘 나타나지 않던 국사 성균관 후신 성균관대의 정통성을 인식시켜 가고자 합니다. 1989년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 시작하여 노태우 대통령 당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나 그 추종세력의 위협이나 외압이 없이 수천명 집필자와 편집자들의 소신대로 출판할 수 있던 한국학 중앙연구원(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의 출판 은 노태우 대통령 당시에 대부분 이루어 졌습니다. 그리고 서울대 출신 김영삼 대통령 취임이전에 거의 출판되고 나머지 몇 부분만 추가 발간하였던 시대입니다. 그 당시는 삼성그룹이 학교법인 성균관대 재단으로 再참여하기 이전으로, 유교 교육을 하면서, 해방당시 성균관장이 등록시킨 교육기능 최고대학 성균관대의 상태였습니다. 제사는 성균관이 담당.
그러나 대중언론은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중심 전기.후기 방식의 기사 발표.
필자는 전주 신흥고등학교 출신(미국 선교사가 세운 예수회 장로교 고등학교)인데, 동향의 전라고등학교 출신 서강대 출신이 유교적 역사의 한국에서 교육받고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필자와 연결된 것 같습니다. 필자는 원래, 성장환경이 파평윤씨 양반 의식으로 왜놈학교 거부자인데, 고등학교 진학이후는 UN중심 사고방식도 형성됨. 그런데, 고등학교때의 전주는 중학교때까지의 왜놈학교 거부의식과는 완전히 반대로 돌아가더군요. 그래서 고등학교때의 필자는 일본강점기 잔재들의 대중언론 기사들.입시지 자료.학원자료.예상점수등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세뇌되어, 특별히 반발할 자료도 없이 고등학교.대학교.회사생활당시를 살아왔습니다. 1984년 정도 성대 2학년때, 성대 부근에서 동성고등학교 출신(가톨릭 학교. 대학은 어디인지 모르겠음) 서점주인이 운영하던 책방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보아오던 진학지등에서 1984년 경의 성대 입시점수를 본 기억이 납니다. 그 분은 자기도 잘 모를때 성대 공격했다고 그러면서, 종묘제사 현장도 가보고 그랬다는군요.
1980년경 삼성그룹이 성대의 서울부지가 좁아 성대 자과캠을 수원으로 옮기려고 하다가 학생들이 반대하던 사태가 있었다고 합니다. 서울에 놔두었으면 큰 문제는 없었겠지만, 이공계를 현재의 자과캠으로 옮겨 입시점수가 아주 좋던 성대 이공계 점수가 안 좋던 시대입니다. 여하튼 장을병 총장당시 김영삼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있었을 때, 성대의 국립대화를 요구하는 장을병 총장의 요구는 거절하였고, 대신 이건희 삼성 회장을 연결시켜 준것 같다는 일화를 전해들었습니다.
이병철 선대 회장이 성대 재단에 참여하여 보통 점수였을 성균관대 점수가 많이 좋아졌겠지요. 그 분은 한국계 학교인 중동고등학교에서 공부하던 분이고 와세다대에서도 공부하던 분입니다. 자과캠을 옮겼던 실책을 후대 회장이 점수로 메꿔준것에 해당됩니다. 이병철 회장의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던 소병해 비서실장(그 당시 삼성그룹 비서실장이면 사장들이 쩔쩔매는 최고 실세)이, 필자 졸업당시 1988년 가을경, 추천장 100장을 성대 경상대학(경영학과.경제학과.무역학과.회계학과.산업심리학과)에 비서실장이 직접 가지고 와서 돌렸다고 하더군요. 이병철 회장의 허가가 있었겠지요. 삼성그룹 취직 기득권이 이렇게 이어진 것 같습니다.
한편 UN이나 한국 정부측으로 살펴보면, 꺼져가던 성대의 기득권을 이어가도록 한 직접적 계기는 UN 국제법위원회의 "을사조약 무효"의견 발표이후 같습니다. 이 보고는 박정희 대통령의 심경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것 같습니다. 이 법리적 의견은 해방당시를 경험한 나이많은 학자.정치인.경제인.군인.관료들에 상당부분 반영된 것 같습니다. 헌법을 가르치던 성균관대 김영수 헌법교수의 임시정부 정통성 반영,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출판, 5.18사태를 항의하는 순수한 대학생들의 데모역사로 미국및 양심적인 민주화시대를 살아가려던 군부 지도자.문민정부 지도자들이 성대를 다시 존중해주는 계기를 마련한 것 같습니다.
@ 국사나 세계사 및 관련 참고서.백과사전.학술서 등에서 수천년간 이어진 기득권 세력들은 그 자리를 지키려고 여러가지 노력을 할 때는, 모든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체화되어 자연스럽게 인정되고 반영됩니다.
1. 중국의 지식인이 세계사 불변의 법칙을 언급한것은 중국이 그만큼 세계사에서 황하문명, 유교, 漢字, 공자, 漢나라 太學(國子監. 그 이후 元.明.淸의 國子監은 京師大學堂.북경대로 이어짐), 세계 4대 발명품(종이.화약.나침반.인쇄술)등으로 근대.현대의 지배세력으로 이어진 서유럽.교황청의 학자들이 비교적 공정(완전한 공정은 누구든 불가능함)하게 작성하여 세계적으로 교육되어왔다고 할 수 있는 여러 교과목중 하나인 세계사에서 비교적 호의적인 기득권을 인정받아왔기 때문에, 그런것 같습니다. 한국의 역사는 세계사에 잘 나타나지 않지만, 세계사의 중국부분 역사를 한국사와 연결시키면, 일본 강점기로 인해 불이익을 당해온 대중언론의 왜곡에도 불구하고 가장 正說에 해당되는 교과서(참고서 포함).백과사전.학술서등에서 그 오랜 전통을 확실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습니다.
2. 다음은 수천년의 인류역사를 반영한 세계사에 나타나는 기득권 세력들입니다. 세계사는 다른 교과서.백과사전처럼 서유럽과 교황청이 세계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던 당시 작성되어 교육되어온 신학.법학.철학.의학, 인문학.어학.수학, 사회과학, 자연과학등의 학술서를 바탕으로 중.고등학교 교과서.참고서.학습사전등에 그 내용이 반영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어나 한문, 제 1 외국어.제2 외국어, 수학, 국사, 국토지리.세계지리.세계사.사회문화, 생물.화학.물리.지구과학, 정치경제, 기술(여학생은 가정등), 선택과목으로 상업.공업.농업.수산업(여학생은 해당과목)의 교과목 명칭으로.
- 다 음 -
1). 세계사나 국사에서 국제관습법이나 관습법등의 타당함을 가지고 가르쳐온 교과서 상의 정통대학들
가). 세계사: ㄱ). 유교문화권 : 중국 漢나라 太學[그 이후의 國子監(원.명.청의 국자감에서 京師大學堂, 북경대로 이어짐]
ㄴ). 가톨릭문화권: 수도원의 대강당에서 시작된 이태리 볼로냐대학, 교황윤허 파리대학. 최근에는 일부 교과서(참고서 포함)에서 영국의 옥스포드나 캠브리지 대학도 중세시대에 설립된 유럽의 대학으로 부분적인 언급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
나). 한국사: 조선(대한제국)의 유일무이한 최고대학 성균관(해방후에 성균관대로 이어짐)
2). 전통 세계종교인 유교나 가톨릭(그리고 브라만교, 유태교, 불교, 이슬람교등도 역사가 오래된 종교임)
3). 세계 4대문명(메소포타미아 문명, 황하문명, 인더스문명, 나일문명. 그리고 이에 더해 에게문명)
4).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성인들(공자, 예수, 소크라테스, 부처). 단 이 부분은 세계사에 4대 성인으로 반영되지는 않고, 신학적 성인이라기보다 철학적 성인의미로 일부 학술서나 대중언론에서 서술됨.
5). 수천년 역사에서 형성되어온 왕조시대의 역사와 이에서 비롯된 종교.교육.문화.경제.일상생활적 전통문화등의 역사성 등
3. 그런데, 만일 현대의 격변기(2차대전, 중국의 문화대혁명)로 인해 기득권을 가져온 세계사의 유서깊은 대학들(중국 漢나라 太學과 國子監을 이은 京師大學堂.북경대, 볼로냐.파리대학) 및 유교등이, 세계사의 오랜 기득권을 포기하고 탈퇴하면 이들 유서깊은 세계사의 대학들은 현대의 대중언론에서 30위~200위 정도의 세계 대학중 하나로 평가받고, 이제 새로운 신참 후발 대학들에 도전장을 내밀며 도전하는 위치로 뒤 바뀌게 됩니다. 문화대혁명을 겪은 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제관습법 측면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위의 유서깊은 세계사적 대학이나 중국 유교는, 해당자가 스스로 그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한, 이전과 마찬가지로 오랜 역사의 계승자로 교육되고. 앞으로도 그렇게 계승될 수 있습니다. 한국사의 유일무이한 최고대학 성균관이나, 조선(대한제국)의 國敎였던 유교, 대한제국 황실도 마찬가지입니다(헌법이 바뀌었어도 국제법.국제관습법, 국내의 역사와 관습법은 수천년 역사와 전통을 인정해주려는 경향이 아주 강해 이전만큼은 아니어도 상당부분 존중되고 유지될 수 있습니다) .
도전자들의 외압이 있어도,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인정받은 세계사나 한국사에서 스스로 탈퇴하면 그 이후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신참들 뒤에서 새롭게 후발 지위를 인정받는 고통만 남게 되니까, 그 기득권은 꼭 유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경우, 불법.강제의 일본 강점기를 겪어 대중언론.입시지.학원가.과외업체.배치표.일부 학교등에서 국사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로 이어짐)에 대항하여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의 대중언론 항거 카르텔을 형성해 성균관대가 왜곡되고 불이익을 받아옴. 대중언론과 이에서 유발된 서적.잡지들이 성균관 후신 성균관대에 항거적.미온적인 반응을 보여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정부 지원금으로 수 천명의 집필자.편집자가 참여)" 발간이 있기 전까지는 공신력 있는 자료로 성균관대의 600년 역사를 가르치는게 아주 어려웠었음. 이런 불법 강점기 잔재에 시달리며 세계사의 지배세력 일원인 교황청의 예수회대학인 서강대와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의 영구적 Royal대 체제를 굳힌것이니까, 그렇게 신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학술적 자격이 좋아도 수많은 대중언론.입시지.학원자료.배치표.과외전단지등으로 대항하면 그 쪽의 대중언론 장악세력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자격이 없는 Power로도 영향력을 핼사할 수 있는 맹점이 현대의 매스컴시대에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