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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영상메시지…"우리 한복,우리가 입고 즐겨야 발전".

박근혜 대통령, 영상메시지…"우리 한복,우리가 입고 즐겨야 발전". 



지난 25일 '한복의 날'을 맞아 박근혜 대통령이 영상메시지를 전한바에 따르면 위의 내용대로 발언했다 합니다. 


.출처: 스포츠 투데이 기사(2014.10.26, 손화신 기자 보도 기사에 의함). 


故 육영수여사에 이어 한복 즐겨입는 딸 박근혜 대통령. 전통문화의 유지측면에서 바람직한 현상. 韓服은 여러 공식 행사의 禮服으로도 적합하고, 국제법과 관습법상 유교국가인 한국에서, 가족.친지들이 모이는 명절때나 제사등의 가족행사때, 冠婚喪祭의 유교행사때등도 아주 적합한 우리 고유의 전통 의복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조상제사에 참여하고, 고령 박씨면서, 설날.추석 안부인사를 꼬박 꼬박 해온 측면에서 유교도입니다( 한문성씨와 본관 가진 한국인은 기본적으로는 유교도임). 그리고 일본 강점기 여파로 포교된 불교나 기독교를 같이 믿고 있는 현상도 한국에 광범위하게 퍼진 종교행태임. 필자의 가족.식구중에도 여성쪽으로 유모가 이렇게 유교도의 명절.제사 지내면서 살다가, 필자가 대학졸업할 즈음, 느닷없이 주변 부녀자(딸이 홍대 미대다니던 부녀자 한명, 그 부녀자의 아들이 서울대 다니고 다른 한 부녀자 아들이 서울대 다닌탓에 절에 다니게 된 부녀자들같음)들과 어울리면서, 절 근처에도 안가다가, 필자가 대학졸업할 즈음 절에도 가끔 다니던 현상을 경험하였음. 어머님은 평생 제사만 지내던 맏며느리(종가집은 아님. 이전에는 종가집 맏며느리가 아가씨들의 큰 희망이었던 적이 있었음). 파평윤씨 전통 양반가문이라, 어릴때부터 그렇게 살아온 필자 형님이나 필자는 다행스럽게  공립 왜놈학교 안가고 그 대안으로 사립 기독교 학교를 졸업했지만(그래도 필자 집안과 형님. 필자는 제사 지내는 유교도 가문의 일원으로 살아옴). 


필자의 아버지는 그 시대 양반가문의 특징 중 하나로 일부다처제 상태를 유지하셨습니다. 유모가 한약방집 딸인데, 그 유모 앞으로 집도 사주고 그러면서 지역의 유명한 양반가인 필자 조부의 마음이 필자유모를 배척하지 않았던 듯 합니다. 그런데, 어릴때부터 필자보고 자꾸 유모라고 부르라고 생모가 말해서 그렇게 어머니와 유모 두 분을 호적상 어머니와, 생모로 둔채(공식 명칭은 유모였음) 살아왔습니다. 그 당시 정부(주로 박정희 대통령시대)의 수출 우선주의에 따라, 아버지가 외국에 수출하는 큰 무역회사의 호남지역 총 본부를 운영하셔서, 일본인 거래처들이 필자의(필자가 그 당시 국민학교 3학년) 집에도 탐사차 단체로 방문한적이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상당히 큰 혜택을 보게 된 시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필자가 중학생때인 1977년 정도에 자가용 기사에 자가용까지 굴리는 집은 그 지역에 거의 없던 때인데, 외국 수출업체의 호남지역 총본부를 맡아서 자가용기사에 자가용을 굴리는 집이 되었는데, 자가용이 필자 학교에 찾아오면, 부모님이 빽쓰러 온 것 같아서, 괜히 창피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여하튼 대학교 졸업할때까지 상당히 현금흐름이 좋던 상태로 살았던 것 같은데, 그 섬유수출산업이 사양산업이 되어, 필자의 유모가 벌어놓은 돈으로 여성 한증막을 지으려고 하다가, 어울리던 부녀자 한명과 함께 큰 빚을 지게 된 것 같습니다. 여하튼, 일본 수입업체와 교류하면서, 필자의 가문에서 불교적 영향을 유모가 받게된 것 같습니다. 유모가 하는 일이라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해서 방관했고, 조선시대 부녀자들이 가끔 절에 다니던 현상이 발생한 것 같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결혼하는 일본 불교에 유모가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한증막 짓는다고, 빚을 많이 지고, 집 두채이던 상태에서, 은행에 대출을 많이 받아, 한 채 남은 집을 지키기 위해 배움없는 유모가 행한 여러가지 무모한 행동들은 필자를 당황하게 했었습니다. 재산상 불행보다는 종교적으로 보면, 조선왕조(대한제국 황실) 왕가나, 주요 양반가문을 집중 감시하던 느낌을 받기도 하였는데, 파평윤씨 양반가로 지역에서 인정받던 필자 가문도 일본이나 국내에 잔류한 세력들의 레이더망에 걸려든것 같기도 합니다. 국내에 잔류한 세력들이 살기위해 필자의 유모를 불교쪽에 볼모로 억류한 것 같기도 합니다. 필자가 대학졸업때 유모가 절에 다니던 현상 및 더 심화된 현상은 이런 측면에서 발생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한복관련, 여성들이 이 분야 종사하면 큰 돈은 못 벌어도 맞벌이로 일자리 창줄에 적합할 듯. 


* 필자의견: 일본 강점기에 강제로 포교된 일본 신도, 불교, 기독교(주로 개신교. 그러나 구한말 을사조약 이전에 설립된 기독교 학교들의 학교 자격은 그대로 인정하는게 타당함. 소위 왜놈학교라 불리는 을사조약.한일병합 이후의 공립 중.고교, 경성제대등의 일본 관립 전문학교.대학교의 자격은 한국 영토에 없음), 천주교 극소수 성당의 종교주권은 을사조약이 무효고 일본이 항복하면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서 학교주권도 없고, 포교종교들의 종교주권도 한국에는 없습니다. 미군정때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모든 국민은 일본의 창씨 개명이나, 일본이 만든 후발 국교인 神道의 신자가 되기를 강요받던  강제.압박 상태를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미군정 포고령이후 다시 한국적인 조선 유교의 姓과 本貫등을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하기때문에, 행정법상 한국인은 유교도입니다. 그 행정법 상태에서 설날.입춘.추석.한식.단오.대보름.동지 같은 유교 전통 명절과 조선왕조(대한제국 황실)의 유교 국가제사, 문중별.가족별 조상제사, 성균관.향교의 문묘대제, 지방 여러 단체들의 여러가지 제사를 치르고, 유교 경전의 관혼상제 전통을 따르고, 유교 교육을 받고 있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서강대 같은 경우는 해방이후 합법적으로 설립되어, 서강대 출신 양희은님은 최근 십년 넘게 일본 강점기 잔재현상을 타파하기 위하여 100번 서울, 국시110브(서울대뒤의 카르텔로 대중언론의 위치를 유지하려던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추종 카르텔 연세대를 의미함)같은 의견도 내고, 문성근 선생은 친일파 신문인 조선.동아 구독부수 줄이기 운동의 사회운동을 펴왔습니다. 여하튼 교황청과 서유럽의 스페인 국왕등께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국이 되었으니,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의 임금배출은 국제법상 큰 무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 이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차원의 글입니다. 

연구와 교육목적 및, 공익적인 목적으로 보도하고자 자료를 인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