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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대기인 1905년에 발생한 을사조약은 세계인들이 국제법상 무효라고 해주어서 다행인데...이런 경우 빼고는 인류역사는 약육강식의 世界史임.

한국의 근대기인 1905년에 발생한 을사조약은 세계인들이 국제법상 무효라고 해주어서 다행인데...이런 경우 빼고는 인류역사는 약육강식의 世界史임.

 

@ 인류의 오래된 특성이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해서 지배하고 자기 이념.생활방식.언어.종교.문화등을 전파해 온것임.

 

중국, 그리스.로마, 페르시아, 이슬람세력, 이집트(이스라엘인을 복속시킴. 이스라엘민족은 고대에 이집트에 지배당하고, 한때는 독립국으로 강하게 살다가,다시 로마에 정복당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치 않아, 유태인으로 핍박받다가 영국의 영향력으로 요즘 영토에 정착하여 미국의 전폭적인 묵인하에 요즘은 팔레스타인과 아랍인들 꼼짝 못하게 함), 오스만 제국(유럽일부나, 주변국들 침략하여 정복함)등의 역사등에서 보면 그러함.

 

고대에 漢나라에 정복당해 한국.베트남처럼 유교국으로 살아온 몽고. 몽고는 중세시대 비교적 약한상태이던 宋나라시대 몽고가 金나라를 이기고 나서 국력이 약해진 南宋을 이겨 중국도 통일해보고 그랬음. 그러다가 다시 중국 유교와 중국의 정치.경제체제, 중국식 과거제, 중국식 생활풍속에 동화되고 물러나서 중국의 우수한 문물을 익힌 징기스칸 후손들이 인도의 무굴제국도 세우고 그 무굴제국은 다시 서양세력에 침략당함.

 

근대적인 민족 동일성이 형성되기 이전에는 그 중국.한국 및 아시아 유럽등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인류역사임.

 

@ 漢族이란 용어는 진한(秦漢)에 토대를 둔 민족으로 오늘날까지 중국인은 한족(漢族)이라고 통칭하고 있다고 합니다. 필자가 보기에 漢나라당시 중국의 영토가 그 당시 아주 커서 오래된 민족적 동일성을 표시하기 위해 그러한 명칭을 사용해 온 것 같습니다. 그 이전 중국은 五帝나 요.순.우.탕.문.무.주공 누구의 자손이란 개념으로 현대의 중국 영토에서 군웅할거 해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漢族들은 자신들을 ‘염황(炎黃)의 자손’이라고 칭한다 합니다   

 

중국은 夏나라를 殷나라가 멸망시키고 周나라는 은나라를 멸망시키고...진나라.한나라.위나라.수나라.당나라...

 

@ 따져보면 한국인이란 동일 정체성을 가지기 이전에 한국내에서 여러 나라들(위만이 기자조선 기준왕의 나라 빼앗고, 삼국시대는 힘이 강하면 고구려가 백제나 신라 쳐들어가고 같은 형제에 해당되는 백제도 고구려 쳐들어가고, 신라는 삼한의 맹주인 마한에 조공바치고, 백제밑에서 살던 나라임)도 그런 약육강식의 역사를 가지고 살아옴. 고구려.백제.신라는 황하문명 중국 유교에 영향받아 시조묘에 조상제사 지내고 나중에 한문성씨가 없으면 추증이라도 해서 중국식 한문성씨를 쓰던 유교국들임(先史時代 고인돌의 유적이 한국에는 있음). 왕릉이나 귀족들의 분묘가 한국에는 보존되어 옴. 庶人들의 墓야 대부분 정리해주었을 것임. 家祭형태로 조상에 제사지내는 차례나 위패를 모시고 제사하는 형태로 토지부족 문제에 국제법.관습법.역사적 유교국인 현대 한국인들은 대처하고 있다 할 수 있음.

 

조상제사를 행하면 원칙상으로 기독교나 불교가 아님. 유교도로 유교의 조상제사를 변형하여 치르는것은 기독교나 불교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한국인은 한문성명과 마찬가지로 조상제사를 치르는 유교도임. 다만 가톨릭 예수회의 경우 신도국가이자 민중불교가 주축인 일본과 달리 해방후에 예수회가 서강대를 설립한 측면을 반영해서 서강대 학내와 예수회의 동반자가 치르는 예배는 가톨릭적 신앙행위로 인정해 주겠음. 예수회의 서강대는 종교보다 일본강점기로 피폐해진 한국의 성균관대와 유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교황청의 실세라 필자가 宮 성균관대 임금이 되어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로 십년 넘게 세계적인 매체들과 블로그등에 발표해 옴(필자가 宮 성균관대 임금으로 인식된다면 御 서강대 임금님이신 서진교 교수를 통하여 교황청의 정신적 영향력과 스페인 국왕님의 발표때문에 그러할것). 교황청.서유럽은 세계사의 지배세력(예수회는 교황청의 실세 계파)인점을 존중하여 유교와 같이 세계적으로 공존하기 원하기때문에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 Royal대학 공존체제는 영구적임.

 

일본 강점기와 미군정기를 거치며 대중언론이나 학원.학교.과외업체, 기타 제반분야에서 성균관대와 유교는 왜곡되고 손해보아왔기에 필자는 교과서.참고서, 백과사전.학술지 중심임.  한국사 성균관과 세계사의 기득권자.지배세력인 중국의 太學(국자감.경사대학당.북경대), 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학(또는 교황 윤허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필자의 선택도 영구적임.         

 

@ 유교의 祭天儀式을 본받아서 삼한의 상달제(시월제), 부여의 영고, 고구려 동맹, 예의 무천등은 유명하고 백제는 교천이 있었고, 신라는 설날등에 日月神을 숭배하던 유교국들임. 이 유교 제천의식은 고려의 유교 제천의식과 종묘제사로 이어짐. 조선은 잘 알다시피 불교를 강력하게 억압하던 유교나라임.       

 

일본도 네덜란드 상인이나 스페인.포르투갈등 해양문화를 꽃 피운 나라들을 통해서 조총기술이나 여러가지 서양과학등을 일찍 받아들여, 근대기에는 淸日전쟁, 러.일전쟁도 이기고, 아시아 영토에서 프랑스령.영국령.네덜란드 식민지도 차지하고 그랬음. 그리고 필리핀도 침공.

 

그런데 그 당시부터 을사조약이 무효라고 국제적인 국제법학설이 발표되고, 2차대전에 패전국이 되고, 나중에 UN국제법위원회에서 을사조약이 무효라고 해서 한국같은 경우는 정말 구제받은 나라에 해당됨.   

 

고대에 보면 한국인이 일본보다 강하니까 일본영토에 진출하고, 문화형성 능력이 별로 없던 외진 섬나라 일본은 한국에서 각종 문물을 수입해가고 그래왔음.

 

혹자들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던 당시 서양 선교사들의 포교정책이 어느정도 일정부분 작용했다고 보기도 하는데, 약육강식의 인류역사에서 그리 틀린의견도 아닐것임. 유럽은 모두가 그렇게 살던 시대였으니까...로마제국에 지배당하다가 元나라의 지배를 경험한 이슬람세력이 우수한 중국문화를 익혀 유럽의 일부도 공략하고, 스페인.포르투갈은 다시 이런 과학기술로 해양원정에 나서고, 스페인은 네덜란드를 지배하고, 영국은 인도 및 아시아로 신대륙으로, 프랑스도 마찬가지.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인류역사임.

 

독일은 후발 강대국이 되어 유럽을 정복하려다 큰 코 다친 나라가 되었음. 우리 인류는 이렇게 약육강식으로 살아온 것임.  

 

만국공법등의 국제법 개념이 형성되어 현대에는 이런 대외 정복하기가 아주 힘들게 되었음.   

 

@ 세계사의 혜택자는 동양은 중국, 서양은 고대 그리스, 로마제국이었는데 밀라노 칙령이후 기독교의 교세가 확장되어 서유럽의 교황청과 이태리, 동방의 동로마제국으로 이어지며 로마제국의 전통적 영향력을 유지해 옴. 이후 대학이 발생하고 르네상스를 발생시키고 대외무역이 강한 중세 이탈리아의 번영기가 있었음. 서유럽의 이태리는 로마제국의 영광을 영토측면에서 대부분 잃고 교황청.대학.대외무역.문화측면에서 이어옴. 영토측면으로 보면 새로운 강자들이 등장하여 스페인.포르투갈의 대항해시대를 거쳐 프랑스.영국의 해외개척기가 이어짐. 독일은 학문의 발달.

 

2차대전 이후는 多極化되어 미국과 러시아가 군사적 능력으로 군사적 超 强大國이 되었음.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교종주국 중국 다음 NO.2의 유교국으로 살아오며 일본이 한국을 어버이나라로 섬기던 중국문물 직수입국가였었음.       

 

정치적 측면의 강대국이라하면 UN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인 (역사적 순서) 영국.미국.중국.러시아.프랑스(독일에 점령당했었지만 형식상 승전국)가 맞음. 종교적 측면에서는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가진 바티칸시티의 교황청!

2차대전때 영국과 미국이 중국을 끌어들인 이유는 일본과 전쟁중이던 중국이기도 하겠지만, 2차대전동안 인도가 영국군과 독립전쟁시 일본군의 인도지원이 발생되어서 그럴것입니다.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 영토를 차지하고 영국령도 차지하니까 그랬겠지요. 1941년 12월 8일, 일본은 말레이시아를 점령했고, 이듬해 1월 31일 영국군은 싱가포르를 포기했으며 2월 15일 영국군은 일본군에게 항복했던 2차대전의 사료가 있습니다. 

  

 

스페인같은 경우는 UN공용어인 스페인어(중남미의 가톨릭국가를 이룩해 냄)를 가졌고, 한국은 역사적인 기자조선이후 중국문명의 영향으로 아시아에서 중국 다음 NO.2 유교국으로 신라시대에는 처용같은 이국적인 인물도 접해보았음. 인더스문명에서 유래된 인도문화의 주요 형태(브라만교에 대항해 일어난 네팔출신 석가모니의 불교도 전달받음)도 접해보고(그러나 중국은 無君無父의 금수로 불교를 배척하던 정책이 있었으며, 한국도 불교를 배척하여 신라시대 이차돈의 죽음을 거치며 외래종교 형태로 불교를 전달받음), 유교최고대학 國子監을 가진 유.불.선 혼합시대인 고려시대에는 아라비아 상인들과 교류함. 고려시대는 중국 元나라시대에 강성해진 이슬람교의 回回敎도 접하는 국제적 문물교류 국가중 하나였었음.  

 

* 이 글은 학문적인 논문이 아니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학교교과서나 참고서에서 이전에 가르치거나 참고항목으로 언급되던 세계의 4대 문명.4대종교 중 4대 문명은 그대로 유지되는 것 같은데(漢나라 太學.국자감 및 볼로냐.파리대학의 역사도 그대로 서술됨), 세계 4대 종교는 세계사에서 언급하지 않고 다만 고대의 종교들로 그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필자가 국민학교때는 4대 성인을 공자.예수.부처.마호멧으로 가르치기도 했는데, 중.고등학교때는 교과서.참고서 영역으로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세계의 4대 성인은 공자.예수.소크라테스.부처로 확립된 것 같습니다. 최근에 다시 새로운 이론으로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이의 추종세력이 잔재세력임. 일본 신도나 일본 민중불교세력).이의 추종자들로 보이는 도전자들이 한국의 세계사전통을 회피하며 세계 3대 종교니 세계사 아닌 일부 지리교과서등에서 세계종교를 논하는 현상이 보여지기도 합니다. 이는 새롭고 생경한 新이론이라 기득권자들이 별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새로운 시도에 해당됩니다. 중국의 삼황오제등에 대한 저 마다의 이견처럼 요즘은 세계 3대 종교 이론이 특이하고 생경하고 별 설득력 없이 대두하고 있는데 교과서.참고서 및 전통 학술서의 개념과는 달라 필자는 이를 채택해 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필자는 원래 교과서.참고서 및 정부측 의견.백과사전.학술서적으로 국사 성균관 중심 대학 학벌(宮 성균관대=御 서강대) 의견을 중심으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급작스럽고 황당하게 대중언론에서, 또는 세계사 아닌 우회적 방법으로 새로운 도전이론(세계 3대 종교 新이론, 힌두교를 유교에 대체하여 세계 4대 종교에 넣으려는 新이론)이 한국의 대중언론과 일부 백과사전등에 나타나길래 세계 4대 성인을 중심으로 하여 인원이 10억명 이상이 넘은 전통적인 세계종교를 검토해보고 있습니다. 유교.기독교의 전통적 有神論종교는 10억 이상의 전통 종교임. 중국인구가 13억 5천만이며 중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임. 중국 공산당은 정치체제상 국가의 군대가 아니고 당의 군대며 일당체제지만 중국은 국가주석과 공산당 주석(이후 당주석 제도가 폐지되고 총서기로 변함. 군사력을 통솔하는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중국의 실권자라고 할수도 있음)을 별도의 직책(유소기 국가주석.모택동 당주석 시대도 있었음)으로 하던 나라기때문에 헌법상 종교의 자유가 있는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유교 전통명절인 춘절.중추절.단오절.청명절 및 조상제사, 공자 아카데미의 해외 진출, 공자님제사등이 있기 때문에 공산당이 종교를 박멸대상으로 한다는 이론을 가져보았다고 해서 헌법에서의 유교의 종교자유를 부정할수는 없었다고 할 수 있으며, 공산당식 해석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유교까지 박멸대상으로 할 수 없었기에, 이슬람.기독교.불교의 외래 소수 종교를 공산당식 기준으로 박멸대상으로 하여 종교단체로 관리해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불교는 신도수도 적고 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대만.싱가포르의 유교국가 통계를 조작하여 잠식하지 않으면 신도수가 적은 종교임. 일본은 유교신자 집계가 없으니까 불교적으로 변한 후발국지적 신앙인 신도나.불교를 한국에서 집중 강조하기 위해 일본이나 일본 잔재세력이 여러가지 다양한 왜곡 시도를 하는것으로 보고 있기도 함. 필자는 불교를 브라만교에 대항하여 창조주 범천등을 피조물에 해당하는 부처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사상이라고 의견을 피력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