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세계사 교과서영역(참고서.백과사전.학술서적 포함)의 볼로냐대학을 분명히 인정하지만(수도원의 대강당에서 출발), 패전국인 이태리의 국익까지 위해줄수는 없습니다.
@ 역사가 오래된 대학들이라 조금 복잡하게 규정해야 할 대학들이지만,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필자의 입장을 다시정리해 둡니다.
교황이 윤허한 로마대학이나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대학등은 해당대학 출신자들이 패전국인 이태리나 독일의 이익을 과도하게 반영하기 위해 활동하면 않되며(2차대전의 결과를 따라야 합니다. 이런경우 2차대전이후 해당대학 졸업자들의 의견은 필자의 글에서 채택 가능합니다), 패전국에 UN적국인점은 해당규정이 유지될때까지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수해야 합니다. 다만, 교황이 윤허한 역사와 2차대전 이전의 역사에서 그 졸업생들이 이루어내고 인정받은 업적들은 존중하겠습니다.
한국의 역사를 보면 고려시대 무신란이라는게 있었습니다. 문신(文臣)들이 무신(武臣)을 업신여기니까 참다못한 무신들이 들고 일어나 정변을 일으키고 임금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을 세우고 그 몰아낸 왕을 죽여버립니다. 그런데 왕의 지위까지 무신들이 빼앗지는 못하고 왕을 상징적인 허수아비로 내세우고 실제적인 권한은 무신들이 가지고 100년 정도 국가의 실세로 고려를 움직였지요. 그러다가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무신출신 장군 이성계가 권력을 잡고 고려왕을 축출하고 조선을 개국하게 됩니다. 이런건 역사에서 합법적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저명한 국제법학자나 UN 국제법위원회에서 무효라고 한 을사조약 이전에 서유럽 국가들이 인도나, 아시아.아메리카.아프리카 국가들을 식민지배하고, 중국이 이웃나라들을 정복한것도 역사적으로 합법적입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를 보면 무신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의
고려 후기에 무신에 의해 일어난 난.
.역사적 배경
고려를 건국한 세력은 무장(武將)들이었지만, 과거제도와 유교주의가 채택됨으로써 차차 문치를 지향하는 사회로 변모되었다. 여기에서 같은 지배층이라 하더라도 문신의 지위는 높아지고, 상대적으로 무신의 지위는 낮아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전쟁이 발생했을 때에도 그 최고지휘관은 문신이 되었고, 무신은 그 아래에서 지휘를 받았다.
관등에 있어서도 무신의 최고직은 정3품이 고작이었다. 또한 경제적 배경이 되는 전시과(田柴科)체제에 의한 토지지급이나 녹봉체제에 의한 현물의 지급도 같은 위계의 문신에 미치지 못하였다.
고려시대 무신의 난으로 성공한 것은 1014년(현종 5)과 1170년(의종 24)에 일어난 무신의 난이었다. 전자의 성과는 1년 만에 수포로 돌아갔지만, 후자의 성과는 1세기 동안 정권을 장악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 다시 필자의 글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주의할점은 무신란(武臣亂, 1170년, 의종 24) 이후 고려를 멸망시키기 전까지 고려의 왕은 정변을 일으킨 무신출신이 아니라 이전처럼 고려태조 왕건의 후손들이 이어받았다는 점입니다. 무신들이 의종을 거제도로 추방하고 그 아우를 왕으로 세워(명종) 그를 꼭두각시로 조종하며 무신정치를 펼치기 시작했는데 최씨정권으로 이어지며 100년정도 무신이 고려를 움직였지요. 한국 고중세사 사전에 의하면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1173년(명종 3)에 김보당(金甫當)이 장순석(張純錫) 등과 함께 의종을 복위하고자 군사를 일으켜 경주에 운거하자 의민은 이를 평정하고 경주에 있던 의종을 연못에 빠뜨려 죽였다.
. 필자 주 1). 여기에서 의민이라면 이의민(李義旼)을 말합니다.
몰아낸 왕을 죽일수 있을 정도로 무신들이 막강한 권한을 가졌지만, 무신들이 왕으로 등극하지는 않았지요.
이렇듯 무신들이 고려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풍토가 조성된 후 무장출신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거쳐 개경에서 우왕을 폐하고 창왕을 옹립하고, 다시 창왕을 폐하고 공양양을 옹립했다가, 1392년 공양왕을 원주로 내 쫓고 새 왕조의 태조로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 위 내용들은 한국사를 근거로 필자가 대략적으로 정리한것인데, 학술적 논문용으로 쓰는 글은 아니니까 이 점을 참작하시고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하튼 고려는 중국의 교육제도를 본받아 유교 최고대학인 국자감을 운영하고, 유교를 治國의 道로하고 불교를 修身의 道로하면서 유.불.선을 조화시킨 나라입니다. 조선은 중국이 불교를 배척한 사례를 차용한 듯 불교를 배척했지요.
1). 국사 전자교과서(http://contents.history.go.kr/eh_kk/teach/tong/vi/53.html
)는 고려의 사상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 고려 사상의 특징 : 유교(정치와 관련된 치국의 도) + 불교(신앙 생활과 관련된 수신의 도)
2). 이 서술문을 필자가 개인적으로 해석해보면 治國의 道는 國敎에 해당되는 용어라고 판단합니다. 필자가 고등학교 다닐때 교육은 국자감등의 유교, 종교는 불교가 국교라고 배운적도 있었습니다. 한국 역사나 학술적의견들은 을사조약이후 해방때까지 백과사전.학술서등을 편찬할때 일본강점기의 억압분위기에서 그 당시 일본(유교보다는 일본神道나 불교적인)의 주도와 감시하에서 쓰여졌겠는데, 그래도 다른 대안이 없으면 이러한 강점기 학술서적등을 인용할 수 밖에 없을것입니다.
. 필자 주 2). 국교(國敎)는 사전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됩니다.
국가에서 법으로 정하여 온 국민이 믿도록 하는 종교. 교무(敎務)가 국무(國務)의 일부로 처리된다.
敎務가 國務의 일부로 처리되는게 國敎로 한국 유교에는 다음과 같은 유교제사가 國敎에 해당됩니다. 고대부터 왕이 올리던 여러형태의 제천의식(祭天儀式) 및 종묘제사(왕실 조상제사의 형태), 사직제사(토지와 곡식의 신에 제사), 그리고 황제나 왕이 선성(先聖)에 올리던 석전(釋奠. 공자님제사. 원래 왕조시대에는 王이 석전의 초헌관이었는데. 해방후 왕이 공석상태여서 문교부장관이나 성균관장등이 왕을 대신하여 초헌관이 됨. 입헌군주국이 되면 공식적으로 왕이 석전의 초헌관으로 복귀하여야 할것). 또한 王이 참여하여 유교 經典등을 익히고 토론하는 경연(經筵) 도 國務로 國敎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중국이나 한국등 유교국가에서 온 국민이 믿게 하던 유교의 설날(중국은 春節), 추석(중추절)등의 유교권 전통 名節이 있습니다. 중국은 유교전통 4대 名節로 춘절(元日, 한국은 설날), 청명절(한국은 한식), 단오절(한국의 단오), 중추절(한국은 추석)이 있어 한국도 이 전통을 따라왔습니다. 이런 유교명절을 통하여 하느님(하늘天,하늘천의 부분적 형태로 日月神에도 제사. 여기서의 하늘天이란 초월적이며 人格天이시기도 하고 自然天이시기도 함 )에 제사하고 기도하고, 조상에 제사하고 생활에 체화된 관습적 전통 國敎가 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신생국가인 대만.싱가포르인의 유교입니다. 그런데 유교는 황하문명의 형성이후 수천년동안 중국이라는 문화대국이자 강대국의 國敎형태로 전해져 와 다른 주변국들의 강요로 바뀌지 않고 하늘天을 중심으로 山川의 神, 조상신(祖上神), 선성제사(先聖祭祀),여러 형태의 하위신을 섬기는 多神敎 형태를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이라크.이란등은 나라가 강대국이 아니라 정복을 자주 당해 지금은 이슬람교입니다. 나일문명(이집트문명)의 이집트도 고대부터 로마에 정복당해 지금은 이슬람교입니다. 인더스문명의 인도는 그리스지역 마케도니아 왕인 알렉산더 대왕에게 북서부가 지배당했고, 브라만교에서 대략적으로 불교,이슬람교, 힌두교로 바뀌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세계 4대 문명은 아니지만 에게문명의 유럽쪽은 그리스.로마신화라는 신화를 바탕으로,헬레니즘전통을 가지면서, 나중에 이스라엘의 부족신앙인 여호와숭배를 구약성경으로 하고 하느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신약성경으로 하면서 그리스도교를 인정하여 로마 가톨릭(기타 그리스.러시아 정교, 영국 성공회, 신대륙의 개신교등)을 관습적인 國敎로 승계해오고 있습니다.
1천 몇백년동안 수천년간 유교를 국교 전통으로 하는 나라는 중국과, 漢나라가 정복한 고대 한국, 베트남지역,몽고지역이며 신생국가인 대만.싱가포르입니다. 고대시대는 중국이나 로마제국이 대표적인 동서양의 강대국으로 주변국들의 자아형성이 확실하게 정립되기 전에 역사적으로 합법적인 정복활동을 많이 했었습니다.
유럽지역은 밀라노칙령에 의해 박해하던 그리스도교를 인정한 후 1천년 넘게 로마 가톨릭등을 국교 전통으로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 필자 주 3). 밀라노 칙령은 두산백과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됩니다.
313년 2월 로마제국의 공동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Constantinus I, 280?~337)와 리키니우스(Licinius, 270?~325)가 메디오라눔(Mediolanum, 지금의 Milano)에서 공동으로 발표한 칙령(勅令)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를 포함해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따를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여, 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교가 보호되고 장려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유교(儒敎)편에 의하면 이렇게 설명됩니다.
...태조는 고려의 창업에 즈음하여 유·불·도 및 재래의 토속신앙 등을 폭넓게 포섭해 정치를 안정시키고 민심을 수습하고자 하였다...
@ 힘이 없어도, 漢나라 太學(國子監으로 이어지고 京師大學堂.북경대로 명칭변경됨)이나 볼로냐 대학, 파리대학은 세계사 교과서나 백과사전.학술서적에서 가장 대표적인 자격을 가지는 대학들임은 분명합니다. 옥스브리지(옥스포드와 캠브리지 대학)도 최근에 한국의 교과서(참고서 영역 포함)에 나타나고 있지만 세계사에서 중세 유럽의 대학을 대표하는 대학들은 볼로냐대학과 파리대학입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2차대전 승전국이자 강대국인 미국의 하버드대학이나 러시아의 모스크바대학이 세계사의 대표적 자격을 가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가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漢나라 太學(국자감, 경사대학당, 북경대로 이어짐), 볼로냐.파리대학은 이전처럼 현재처럼 앞으로도 세계사의 대표적인 대학들로 교육되어질 것 같고, 그렇게 교육시켜도 충분히 타당합니다. 필자는 세계사영역에서 앞으로도 그렇게 교육되는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달리 이태리나 독일, 일본등은 UN헌장이나 관련 법규가 삭제되지 않는한 분명히 UN적국입니다. 그리고 2차대전 패전국입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국사나 세계사에 대한 이해를 넓혀보고자 자료인용을 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